한국학 디지털 아카이브 고도서 한문 원문·한글 번역

난보초록 [爛報抄錄n1-2책] - 해제

G002+AKS-AA55_20177_000 【정의】 【서지사항】 불분권 2책. 필사본, 국한문 혼용. 서문이나 발문이 없어 저자를 알 수 없다. 표제의 난보는 기별(奇別)∙조보(朝報)∙조지(朝紙)라고도 하는 것으로, ‘조보’라 하면 조선시대 승정원에서 국왕이 내리는 명령이나 지시 및 유생이나 관리들이 올리는 소장(疏狀)과 관리의 임면 등 정부에서 벌어지는 일 등을 적어 각 지방에 내려보내는 문서로써, 1894년(고종31) 갑오개혁 때 ‘관보(官報)’라는 이름으로 대치되었다. 따라서 난보초략이란 관보를 초략한 것으로 이해된다. 【체재 및 내용】 본서의 기록형식은 제목과 일자를 기록하고, 이후 간단히 내용을 요약하여 정리하거나, 중요한 상소 같은 경우는 전문을 수록하기도 하는 등 통일적이지는 않다. 건(乾)∙곤(坤) 2책으로 나누어진 본서의 내용을 권별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우선 건권(乾卷)은 1904년 1월 5일 성진(城津) 부근의 러시아 병사가 지난달 26일부터 퇴각을 시작해 현재 경성(鏡城)에 머물고 있다는 내용인 「노병퇴각(露兵退却)」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며, 이후 같은 해 1월 13일자의 「경성오서내대소민인이내부대신게상서(京城五署內大小民人이內部大臣게上書)」라는 제목하에 경성의 민인들이 정부에 제출한 것으로 당시 경무사(警務使) 신태휴(申泰休)의 탐학과 부정을 고발하고 이를 금지하게 해달라는 내용을 비롯해, 1월 25일자의 의정부를 포함한 관제개혁안(官制改革案), 1월 28일자로 일진회원 이용구(李容九) 등이 주식회사저축은행(株式會社貯蓄銀行)을 설립한 사실, 2월 13일 전진 부대가 철령을 점령한 사실을 수록하였다. 다만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전진부대에 “我(아)”라는 표현을 하고 있는 점이다. 이로써 본다면 대체로 일본에 우호적인 인사의 기록으로 추정되는데, 이와 관련해 3월 14일 「정계대파란(政界大波瀾)」이라는 제목하의 글에서는 “배일운동(排日運動)을 시(試)하 자(者)가 궁중부중(宮中府中)을 통(通)하고 일월(日月)이 증가(增加)하야 괴보(怪報)가 일세(一世)를 탁란(濁亂)함으로 인심(人心)이 흉흉(恟恟)하야”라고 하는 지적 등이 이를 반증한다. 건권에는 이밖에도 2월 23일 「붕우가(朋友謌)」와 2월 26일자로 일본군에 의한 최익현의 귀향, 3월 14일자로 제1차세계대전의 발발 소식, 3월 25일자로 「최익현약사(略史)」를 서술하였으며, 서술 가운데는 “최익현씨가 간세배지척되야 치안에 방해함이 유홈으로”이라고 하였다. 또한 5월 3일자로 「향약조례(鄕約條例)」를, 4월 13일로 러시아군이 주둔하고 있는 「성진성황(城津盛況)」을 수록하였고, 「군제개혁실시(軍制改革實施)」, 「삼도내한(三島來韓)」, 「친왕환영(親王歡迎)」, 「고교도한(高橋渡韓)」 등과 5월 16일자로 일본공사관에서 요구한 연안급내지하천통행사안에 관한 회의를 의정부회의「(議政府會議)」라는 제목으로 소개하였다. 이외에 주목되는 기사를 보면, 5월17일자로 윤효정(尹孝定) 등이 헌정연구회(憲政硏究會)를 창립한 것과 5월 25일자로 「경성장관개략(京城壯觀槪略)」이라 하여 경성내의 궁궐과 왕실의 건축물, 사찰 명소 등을 소개한 것, 5월 27일자로 「지회통의(支會通議)」라 하여 일진회 강원도지부 평의원 이규봉(李圭鳳)이 보낸 것을 수록하기도 하였으며, 5월 31일자에 부속하여 「신체기관(身體機關)」, 「골격개론(骨骼槪論)」 등 의학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 이어 곤권(坤卷)에서는 앞책에 이어서 의학적 내용인 「성음(聲音)」을 시작으로 「독물지해(毒物之害)」까지를 수록하였고, 이어 7월 14일자로 해산회사 사원 유석(劉錫) 등이 수산업 발전을 위해 200원을 출연하여 중앙과 지방에 해산회사의 설립하고, 이를 통해서 외국 잠수기계 등을 무역하기를 청원하는 내용을 「해사청원(海社請願)」이라는 제목으로 수록하였다. 이밖에도 주목되는 것은 7월 20일자의 「화폐정리문제(貨幣整理問題)」, 7월 25일로 언론 통제를 위해 각지에 내려 보낸 「소청통문조례(疏廳通文條例)」 등이 있고, 1월 7일자로는 찬정 최익현의 상소 2통을 전사하여 수록하였으며, 1월 12일자로 일본공사 임권조(林權助)가 우리 정부에 요청한, 각지 지방관을 일어졸업생으로 서임하자는 내용이 있고, 국가의 발전을 위해 지식인에게 대중의 계몽을 선동하는 내용인 1월 13일자의 「국가사상론(國家思想論)」, 진사 유진수(兪鎭洙)가 발의한 3백만원 차관 상환을 위한 출연금운동을 소개한 1월 14일자의 「분의발통(奮義發通)」, 1월 16일 「논국시미정(論國是未定)」 등이 있다. 특히 「논국시미정」에서는 “동년 동원 23일 한일협약 체결로 아한에 독립과 영저토전이 이로 말미암아 십분견고해짐”이라고하여 한일협약 체결을 긍정하는 입장을 소개하였다. 이외에 「아국근황(俄國近況)」, 「군대감성 문제(軍隊感省問題)」, 등을 비롯해 2월 3일자로 「국력진흥재교육발달(國力振興在敎育發達)」을, 2월 29일자로 국가와 사회의 관계를, 3월 4일자로 「해충구제법」과 탁지부에서 전국각도에 고시한 백동화교환(白銅貨交換)에 관한 고시를 전문을 소개하였으며, 자유정당이 합심하여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강변한 4월 6일자의 「홍긍섭수국론(洪肯燮守國論)」, 4월 13일 헌정연구회, 취지문 전문 소개, 도시 발달을 위한 상업의 촉진이 급선무임을 강조한 「도시흥황책(都市興旺策)」 등을 수록하였으며, 4월20일 「상정부서(上政府書)」라 하여 우용택(禹容澤) 등이 1차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하여 하천항해권을 탈취하는 등 일본이 침략정책을 강화하자 이를 규탄하는 내용의 전문을 수록하면서 끝을 맺고 있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본 서는 1904년 정부에서 벌어지는 각종 내용을 수록한 관보를 초략한 것으로써, 당시 국가적 중요 정책 사안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예를 들어 러∙일전쟁 당시의 전황, 관제 및 군제 개혁, 화페정리 문제 등이 그것이다. 이밖에도 헌정연구회∙일진회 등 사회단체의 동향을 이해하는데도 참고가 된다. 다만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일본측에 가까운 인사가 작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을 가능케 하는 서술 등이 있어 이용시 주의를 요구한다.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