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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지 [箕子志] - 해제

G002+AKS-AA55_20174_000 【정의】 【서지사항】 표제는 기자지(箕子志)이고, 편자는 정인기(鄭璘基)외 27명이고, 간인 시기는 1878년(고종16)에 중간한 것이다. 분량은 9권 3책으로 책차는 天∙地∙人이며, 금속활자본(金屬活字本;全史字)이다. 장정은 선장(線裝)이고, 책의 크기는 30.7×19.8cm이고, 사주단변(四周單邊)에 반곽(半郭)의 크기는 21.4×14.9cm이다. 행자수는 10行 19字이며, 주(注)는 쌍행(雙行)이다. 판심(版心)은 상하백어미(上白魚尾)이고, 판심(版心)은 상하향백어미(上下向白魚尾)이며 계선(界線)은 오사란(烏絲欄)이다. 서(序)는 기정진(奇正鎭)이 찬하여고, 발(跋)은 송병선(宋秉璿)하였다. 장서인은 ‘제실도서지장(帝室圖書之章)’, ‘구궁(舊宮)’, ‘이왕가도서지장(李王家圖書之章)’ 등이 있다. 정신문화연구원의 『장서각종합도서목록』에는 본 『기자지(箕子志)』의 편자가 윤두수(尹斗壽)로 되어 있으나, 이는 본 책의 저본이 되었던 윤두서(尹斗緖; 1533~1601)가 지은 기자지(箕子志)에 대한 잘못이다. 【체제 및 내용】 본 『기자지(箕子志)』는 윤두서가 짖고 이이(李珥)가 편한 『기자지(箕子志)』와 서명응(徐命膺)이 편한 『箕子外紀』를 저본으로 평양부 유림들이 공동으로 편집∙교정∙수집∙선서(繕書)∙감인(監印)하여 1879년(고종 16)에 중간한 것이다. 본서는 종래의 기자지류(箕子志類)를 망라했으므로 후대의 사인(士人)들의 시문이 많이 추가되어 있다. 내용은 범례 다음의 권수(卷首)에 진상(眞像;箕子像)∙수필(手筆)∙사적도(事蹟圖)∙사묘도(祠墓圖)∙보계도(譜系圖)∙세계(世系)∙서(序) 등을 실었고, 권1에 홍범(洪範), 권2에 전∙록(傳·錄), 권3에 사전(祀典)∙치제문(致祭文)∙어제(御製), 권4에 부∙시(賦∙詩), 권5에 사∙조∙가∙찬(辭·操·歌·贊), 권6에 논(論), 권7에 설∙어∙변(說·語·辦), 권8에 서∙기∙발(序·記·跋), 권9에 발문(跋文)을 수록하였다. 수권에 홍범(洪範)을 표창(表彰)한 것은 서명응의 『기자외기』를 본받은 것이고, 기전도(箕田圖)는 한백겸(韓百謙)의 것을 따온 것이다. 권2의 전(傳)은 각종 사서에서 기자에 관련된 기사를 모은 것이다. 권3의 사전(祀典)은 기자를 배향한 영전(影殿)과 서원에 관한 것이며, 아울러 역대 국왕이 기자사우에 치제(致祭) 사실을 기록하였다. 권5의 부(賦)는 중국과 조선에서 기자에 대하여 지은 부(賦)를 모아 놓았고, 권7의 설(說)은 한백겸의 ‘기전유제설(箕田遺制說)’, 허성(許筬)의 ‘기전도설후어(箕田圖說後語)’, 홍직필(洪直弼)의 ‘조주변(朝周辨)’ 등을 실었다. 권8에는 윤두수(尹斗壽)의 ‘평양지서(平壤志序)’, 남용익(南龍翼)의 ‘묘비명병서(墓碑銘幷書)’, 이이(李珥)의 ‘실기(實記)’, 최립(崔岦)의 ‘홍범학기(洪範學記)’, 정원용(鄭元容)의 ‘인현서원장수기(仁賢書院蔣修記)’, 유근(柳根)의 ‘기전도설발(箕田圖說跋)’ 등이 실려 있다. 권9에는 각종 비문이 실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변계량(卞季良)이 찬한 ‘토산묘비문(兎山墓碑文)’, 이정구(李廷龜)의 ‘숭인전비문(崇仁殿碑文)’, 김조순(金祖淳)의 ‘인현서원묘비문(仁賢書院墓碑文)’ 등이 실려 있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기자에 대한 사료집으로 조선시대 사인(士人)들의 기자에 대한 역사적 인식을 알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으며, 규장각에도 같은 책이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규장각에는 이이(李珥)가 편한 5권 1책이 『기자지』가 또 있다. 【참고문헌】 『奎章閣圖書韓國本圖書解題(사부 1~4)』, 1983, 서울대학교규장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