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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문 [記聞n1-11책] - 해제

G002+AKS-AA55_20173_000 【정의】 【서지사항】 필사본. 불분권 11책. 전통시대 사서(史書) 편찬 형식 가운데서 주제별로 내용을 정리한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의 형식을 띠고 있다. 표제는 ‘記聞’(기문)으로 기록되었으며, 서문은 없다. 모두 11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제8책까지와 제9책부터의 내용이 각각 다른 인물과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즉 제8책까지의 경우 1680년(숙종6) 허견(許堅)의 주살(誅殺)사실을 기록하였으며, 이후 1694년(숙종20) 갑술환국 이후 이사명(李師命) 등의 공신 작호를 복구한 사실과 1698년 묘호가 복구된 단종(端宗)이 노산군(魯山君)으로 기록되고 있어, 최소한 1698년 이전에 편찬된 것임을 알 수 있으나, 제2책에서 장희빈의 사실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서는 1701년까지로 연장해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제8책 마지막 부분에 수록된 ‘朝野記聞跋’(조야기문발)에 의거한다면, 소론계 서문중(徐文重:1634~1709)이 찬술한 『조야기문』의 이본으로 파악된다. 반면 제9책부터는 1701년(숙종27) 이후부터 1718년 세자의 대리청정까지의 내용이 추가되었다. 【체재 및 내용】 책의 내용을 보면, 제1책은 명태조의 홍무원년를 기준으로 조선 태조의 시호 및 왕후를 시작으로 재상, 청백리, 주문(主文, 문한직을 역임한 인물), 공신책봉 사실과 배향공신 등을 정리한 각 왕대의 간단한 연표인 국조연표(國朝年表)를 시작으로, 호당피선(湖堂被選), 중국 사신의 왕래 기록인 빈관록(儐館錄), 문묘종향(文廟從享), 조선의 전례 문제를 정리한 전례고사(典禮故事), 세종대의 왜구정벌 사실과 세조대 4군6진 개척 사실 등을 수록한 정토고사(征討故事, 역대 과거에서 특이사항을 정리한 과식고사(科式故事) 관방고사(官方故事), 의장고사(儀章故事), 경복궁의 각종 전각의 명칭 제정사실을 시작으로, 세종대 편경 및 흠경각의 제정 등에 대한 고사를 정리한 제도고사(制度故事), 각종 경비의 지출과 수입에 대한 일부 사실을 정리한 경비고사(經費故事), 역대 군신관계에서 특별한 은총에 대한 기록인 포총고사(褒寵故事) 등을 수록하였다. 제2책은 태조대부터 간략한 연표를 정리한 것이다. 1701년 장희빈의 사사 사실 등을 수록한 국조대사기(國朝大事記) 및 , 1394년(태조3)부터 시작된 종계변무에 대한 사실을 정리한 변개종계(辨改宗系) 역대 세자 책봉에 관한 사실을 정리한 개역저사(改易儲嗣), 파저강 야인 등의 정벌 사실을 기록한 서변정토(西邊征討), 단종대 계해정란과 이후 단종의 양위와 세조의 즉위, 이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사육신 사건 등과 인종대 이후 제기된 사육신에 대한 선양과 1657년(효종8) 송준길(宋浚吉)이 제기한 박팽년사우 의 건립 등에 대한 을해옥사(乙亥獄事), 이시애란 평정을 기록한 토평시애(討平施愛) 등이 수록되었다. 제3책은 무오사화(戊午士禍), 윤비폐의(尹妃廢議), 숙종대 복작을 청원하는 신규(申奎)의 상소까지 수록한 폐신비의(廢愼妃議), 문종비 현덕왕후의 복작에 대한 논의인 복소릉의(復昭陵議), 기묘사화, 복성군의 옥사를 정리한 복성옥사(福城獄事), 을사옥사(乙巳獄事), 1548년(명종3) 양재역벽서사건을 정리한 벽서옥사(壁書獄事), 기축옥사(己丑獄事) 등에 대해 수록하였다. 제4책은 임진왜란 기록인 임진병사(壬辰兵事), 성종과 중종 능이 일본군에 의해 훼손된 문제를 정리한 이능사적(二陵事蹟), 1606년(선조39) 영창대군의 탄생부터 인목대비의 서궁유폐 및 인조반정후 관련인들의 치죄 상황 등을 정리한 서궁폐론(西宮廢論), 이괄의 난을 정리한 갑자역변(甲子逆變) 등을 수록하였다. 제5책은 정묘호란을 정리한 정묘로난(丁卯虜難), 임진왜란의 와중에서 발생한 송유진의 난과 이몽학의 난 등을 정리한 호관구란(湖關寇亂), 인조의 생부인 원종(元宗)의 추숭문제를 정리하는 장릉추숭(章陵追崇) 등을 수록하였다. 제6책은 병자호란을 정리한 병자로난(丙子虜難), 태조비 신덕왕후의 복위 관련된 정릉복의(貞陵復議), 문묘출향 및 승향사에 대한 문묘승출(文廟陞黜) 등을 수록하였다. 제7책은 앞부분이 결락되기는 하였으나 내용상으로 보아 현종 후반에 있었던 예송(禮訟)을 정리한 갑인예론(甲寅禮論)인 듯하며, 후반부에는 당대 어느 당파에도 기울지 않은 공평무사(公平無私)한 것이라 하며 이광려(李匡呂, 1720~1783)의 「기해예론」을 수록하였다. 제8책은 현종 즉위초에 있었던 예송을 정리한 기해예론(己亥禮論), 1694년 서인이 다시 정치에 복구하는 갑술환국(甲戌換局), 세조의 즉위에 따른 교서와 단종의 사사, 단종의 복위를 건의한 1695년 신규의 건의와 이에 따른 반교문(頒敎文)을 수록한 단종복호(端宗復號), 조선왕실의 선대인 목조(穆祖)와 목조비의 능을 찾고 이를 정비한 기록인 황지사적(黃池事蹟), 그리고 조야기문발(朝野記聞跋)이 수록되었다. 제9책은 김장생(金長生)의 문묘종사 문제를 다룬 추종사의(追從祀議)와 1701년(숙종 27) 최석정(崔錫鼎)이 발의한 사부국휼시제복(士夫國恤時除服), 계성묘 종사 인원의 조정 문제에 관련해 현종대 관학유생 신응징(申應澄) 등의 발의한 내용과 1700년의 논의 과정이 정리된 계성묘의(啓聖廟議), 1698년 단종의 복위를 기념하여 시행한 경과(慶科)에서 발생한 과거 부정을 다룬 환봉절과(換封竊科) 등이 수록되었다. 제10책은 장희빈의 사사 과정을 다룬 신사옥사(辛巳獄事)를 수록하였고, 제11책은 1707년에 있었던 임부(林溥)의 옥과 이잠(李潛)이 태학에 보낸 통문을 전사하여 수록하였고, 이밖에도 1717년 세자의 대리청정과 관련해 같은 해 7월 동춘추 신임(申銋)과 대교 권적 등이 강화도 사고에 가서 관련기록을 살펴 정리한 것과 예조에 계하한 절목, 같은 해 8월 1일 조참(朝參)을 대신 받은 청정조참(靜聽朝參) 등이 수록되었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이 책의 편찬에는 관찬인 『국조보감(國朝寶鑑)』, 『세종실록』을 비롯해 사찬 기록으로 개인의 문집인 『점필재집(佔畢齋集)』(김종직)『퇴계집』(이황),『우복집』(정경세), 『월사집』(이정구) 등과 함께 야사류인 『필원잡기(筆苑雜記)』(서거정), 『해동야언(海東野言)』(허봉) 및 광주이씨 자손들의 기록인『광평자손록(廣平子孫錄)』과 같은 각 문중의 기록들이 이용되었다. 본서는 18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통사(通史)와 총서류(叢書類) 형식의 야사 편찬이 활발해지던 당대의 시대적 분위기에서 편찬된 것이다. 이 시기 이 같은 야사편찬이 활발해진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서문중과 같은 관료의 입장에서 본다면 정책 결정에 참고할 수 있는 나라의 고사에 대한 자료가 필요했다는 점과 당대까지를 일관되게 정리한 정사(正史)가 편찬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탕평책이 새롭게 추진되고 있었던 시대적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따라서 본서 역시 이러한 시대적 추이하에서 편찬된 통사류 야사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기문』이라는 제명으로 장서각에 수록되었으나, 같은 내용의 책인 『조야기문』은 장서각을 비롯해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燃藜室記述의 編纂體制에 대한 再考察」(鄭萬祚, 『韓國學論叢』17, 국민대 한국학연구소,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