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2_je_a_vsu_20159_000G002+AKS-AA55_20159_000 【정의】 【서지사항】 87장 1책짜리 필사본으로 서문이나 발문이 없다. 이 자료는 일명 ‘黃江問答’이라고도 한다. 책이름은 권상하가 당시 남한강에 있는 黃江村에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체제 및 내용】 내용은 크게 「江上問答」과 「後洞問答」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그 뒤에 여러 가지의 서간들이 실려 있다. 우선 「강상문답」에서는 누가 권상하에게 회니시말(會尼始末: 會德에 살던 宋時烈과 尼城에 살던 尹拯 사이에 윤휴의 아버지인 윤선거의 묘지명 때문에 벌어진 宿怨에서 시작되어 노론과 소론의 분당에 이른 사건의 전말을 말함)에 관하여 질문하자 권상하가 이 일은 단순히 ‘尼事’가 아니라 ‘國事’라고 대답하면서 송시열을 옹호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인평대군의 세 아들과 許積의 서자인 許堅이 역모를 꾸미다가 들통 나면서 남인들이 쫓겨나는 경신대출척에 대한 경위부터 언급하면서 당시의 상황을 서술하고 있다. 다음으로 崔愼이 쓴 우암 송시열의 제문에서 “윤증이 우리 선생(송시열)을 죽였다고 하면서 그 자취는 비록 미미하나 그 일을 뚜렷하다”는 말에 대해 권상하는 이러한 말의 출처에 대해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즉 송시열의 아들 宋基泰의 생질이 갑술년 할머니를 뵈러 尼城에 갔을 때 윤증의 친척들이 모여 있는 잔치 자리에 우연히 참석했다가 윤증이 “남인이 득세하니 우암이 士禍를 면치 못하리라”는 말을 듣고 돌아와 우암에게 고함으로써 그러한 말이 나오게 되었다고 했고, 여러 가지 일로 송시열이 윤증의 인간됨을 힐난하는 일들이 많이 적혀 있다. 또한 우암이 장기로 유배 갔을 때 있었던 일, 경신대출척을 일으킨 光南 金益勳이 관계된 일, 즉 신유년 監試를 보는 자리에서 겉봉이 열린 시권에서 午人 13명을 告變하는 글을 발견하고 이를 임금에게 올려 김석주로 하여금 찾도록 하여 金煥이라는 자를 찾아내게 하여 남인들은 쫓아내게 된 일, 소현세자의 嬪인 姜嬪이 사약을 받게 된 일, 충신이라는 정몽주가 고려의 신하로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을 세운 일에 대한 송시열의 비판, 이언적이 을사사화에 직언을 하지 못하고 뒤에 도리어 녹을 받게 된 것을 비판한 송시열의 글, 尹任에 대해 율곡은 죄가 있다고 평하고, 퇴계는 죄가 없다고 평하여 두 성현의 평이 다른 데 대하여 송시열의 언급, 동인과 서인에 관련하여 언급한 송시열의 글, 병자호란 때 主和派였던 최명길의 행동에 대한 송시열의 평, 우암과 동춘당 송준길이 거론한 종묘의 昭穆에 대한 의론, 현종이 온양 행궁에 행차했을 때 가서 뵙지 못하고 全義 부근에서 올린 疏에서 白軒 李景奭이 ‘三田渡碑’를 쓴 것을 송나라의 孫覿(손적)이 金 나라에 잡혀가 金 나라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갔던 일에 비유했는데, 그 뒤에 이경석이 이를 알고 크게 노한 일 등이 실려 있다. 다음은 「後洞問答」이라고 하는 소제목으로 나그네가 주인에게 질문을 하고, 주인이 대답하는 형식의 글로 이루어져 있는데, 바로 송시열과 윤증의 ‘老少分黨’의 전말을 기록하고 있는 글이다. 이 글의 끝에는 宋夏明가 아버지 宋奎禎이 尹鑴와 이종형제로서 송시열과 송준길의 제자였기에 윤휴가 득죄한 뒤로 입장이 난처해진 자신의 방어하기 위해 썼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런 연유로 일방적으로 송시열과 노론에 대한 두둔에 치우쳐 있다. 우선 제일 먼저 당시 세간에 분분한 尼城 윤증의 일에 대해 시종을 언급하고 있다. 즉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의 성문을 지키던 윤선거 등이 죽기를 각오하고 강화의 성문을 지켰는데, 성이 함락되었을 때 적군이 난입하여 투항하면 살려주고 그렇지 않으면 죽인다 하니, 많은 사람들이 자결하였고 윤선거의 처 또한 윤선거의 앞에서 죽었다. 그러나 윤선거는 스스로 죽기를 결심하고도 죽지 않고 탈출하여 목숨을 연명하였고 병난이 끝난 뒤에 스스로 부끄럽고 아내가 자신을 위해 죽었음을 생각하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평생 홀로 살았다고 했다. 이에 대하여 지은이는 강하게 비판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다음으로 ‘尼城立說’이라 하여 윤증이 여러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 윤증과 우암 사이에서 오고 간 편지 등이 실려 있다. 끝으로 ‘黎湖集雜著’라고 하여 黎湖 朴弼周(1665~1748)의 잡저가 실려 있는데, 윤선거가 강화도에서 죽지 못하고 탈출한 일에 대해 의론한 글, 회니시비의 전말에 대하여 의론할 글 등이 실려 있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이 글은 이른바 송시열과 윤증으로 비롯되는 노론과 소론의 분당 과정에 대해 노론의 입장을 두둔하는 권상하의 평가를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연세대학교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갑을록』. 『송자대전』. 『당의통략』.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