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2_je_a_vsu_20153_000G002+AKS-AA55_20153_000 【정의】 【서지사항】 이 책은 영조의 명에 의해 6권 4책 짜리 금속활자본으로 편찬되었고, 편찬자는 송인명과 박시수 등이다. 【체제 및 내용】 권두에 영조의 명에 의해 조현명(趙顯命)이 쓴 ‘어제감난록서(御製勘亂錄序)’에서 영조는 “군자는 두루 사귀되 편당 짓지 아니하나 소인은 편당 짓고 두루 사귀지 아니한다”는 논어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감란록』을 통해 바로 “금세에 의리를 밝히고 백세 뒤에도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명백히 하여, 붕당에 빠진 당시의 조정을 경계하고 후세에 귀감을 삼고자 한다”고 했다. 우선 기록에 의하면, 이인좌의 난의 원인은 난이 일어나기 한해 전인 1727년(정미년) 가을과 겨울에 걸쳐 전라도 변산에서 발생한 소요에서 찾고 있다. 이때 도성의 사람들은 이 일을 와전하여 적군들이 창의문 밖 여염집에 이르러 소란을 일으켰다는 소문이 났다고 했다. 얼마 뒤에 전라도 감사인 鄭思孝가 전라도 남원에서 무도한 掛書가 나돈다는 글을 올렸으나 왕은 반드시 잡아낼 것은 없다고 하고 글만 불 태웠다. 그런데 2월에 성의 서쪽 문에 다시 괘서가 걸리자, 3월에 포도대장 李森이 난을 일으켰다는 의심을 받은 李世龍을 잡아 전라도 전주의 옥에 가두었다. 그런데 이때의 소란이 생각보다 심각해서 서울의 사대부들이 남산 일대로 피난하고, 경기도 양주와 용인 등지에 있는 마을이 텅 비게 되었고, 용인 사람 安鎛이 이때 용인에 내려가 살고 있던 소론인 崔奎瑞의 집에 와서 이웃에 사는 張欽이라는 자가 무리를 이끌고 난을 일으키려 하니 어서 피하라고 알려주었다. 이에 최규서가 다음날 도성으로 들어와서 많은 신하들에게 글로서 이를 알려 왕이 안박과 그의 형인 安鎬, 안호의 노비 莫實을 임금이 의금부에 가두고, 안박과 장흠 등을 잡아들이게 하고, 도성을 단단히 수비도록 하였다고 한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는 양주 출신인 金重萬이라는 자가 적진에서 도망쳐 와서 훈련도감 앞에 와서 말한 것을 보면, 양주의 九萬里 등 경기도 각 지역에서 모인 자들이 밤을 타서 청주 병영을 치려하고 했고, 明火賊으로 자처하면서 삼남 등지로 와 서로 교통하도록 되어 있다고 했다. 이에 영조는 병조판서 吳命恒을 都巡撫使로 임명하여 평정토록 하였다고 했다고 했다. 충청, 경상, 전라 등 삼남지방에 국한되지 않고, 함경도, 평안도 등지에서까지 난이 일어나는데, 이로 미루어보아 이인좌의 난이 단순히 당쟁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민란의 성격을 띠고 전국적인 규모로 일어나고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중앙과 지방의 여러 관리들이 난을 평정하는 데, 이에 대한 여러 기록들이 실려 있다. 예를 들어 포도대장을 새로 임명하여 난을 진압토록 했다거나, 충청도 감사를 보내어 진압토록 했다거나, 임금이 직접 仁政門에 나와서 친국을 했다거나, 난과 관련하여 조정에서 급파된 관리들의 활동 상황이나 죄인들을 문초하거나 효수한 일 등 난을 일으킨 자들을 처리하는 일, 공을 세운 자들을 왕이 위로하는 일,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임금이 전시상황을 보고받는 일 등이 자세하게 기술되고 있다. 난이 진압된 이후에는 임금이 친히 경복궁으로 나와서 신무문에서 유숙하면서 난을 마무리 짓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공을 세운 자들을 위로하였다고 했다. 끝으로 別單을 만들어 각 군공의 크기에 따라 53명의 이름과 군공의 내용을 적고 있다. 예를 들어 昆陽군수 禹夏亨, 경상감사 黃璿, 假將 鄭載興, 난적을 평정한 공을 세웠다고 했고, 折衝 申熽, 軍士 趙泰先 등은 安竹에서 군공을 세웠다고 했고, 營將 孫命大 등은 八艮嶺을 지킨 군공이 있다고 했고, 倡義使 朴敏雄 등은 청주의 적을 참수한 군공이 있다고 했고, 충주목사 金在魯는 충주를 지킨 군공이 있다고 했고, 군수 林世謙 등은 敵情을 염탐한 군공이 있다고 했고, 군관 金柱天 수괴를 압송한 군공이 있다고 했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이 책은 이인좌의 난을 다룬 자료 가운데 가장 체계적인 보고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인좌의 난의 전개과정과 원인, 규모, 성격 등을 밝히는 데 있어서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더구나 이인좌의 난 이후로 노론이 정권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의 정치사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자료라고 하겠다. 다만 난을 평정한 조정 쪽의 시각에서만 다루어지고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이용 시 주의해야할 필요가 있다.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영조실록』. 『승정원일기』. 『국조보감』. 『대사편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