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2_je_a_vsu_20111_000G002+AKS-AA55_20111_000 【정의】 【서지사항】 筆寫本이며, 불분권 1책으로 모두 100장이다. 無郭, 無絲欄이며, 半葉 15行 28字이고 註雙行이다. 표제는 “明史紀略”이고, 內題도 동일하다. 서문이나 발문이 없어 언제 누가 편찬한 책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명나라 멸망의 전 과정까지를 수록한 것으로 보아 17세기 후반이후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된다. 【체제 및 내용】 중국 명나라 황제를 중심으로 편년체 형식에 따라 서술되어 있다. 내용은 1368년 명 태조 朱元章이 명나라를 건국하고, 원나라가 멸망한 사실을 시작으로, 1662년 南明의 遺王인 永明王이 버마에서 잡히면서 완전히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중국의 전국을 장악하는 명나라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하여 편찬한 것으로, 모든 시기의 역사를 정리하지 않고 중요한 정치적 사건 등이 발생한 해를 기준으로 서술되었다. 南明은 1644년 의종이 자살하면서 명나라 왕들이 청나라에 항거하여 華中·華南 등지에서 싸우다가 1661년 永明王이 버마에서 잡히는 기간까지를 말한다. 서술은 雙註로 干支를 기록하며 명나라 황제의 王曆을 밝힌 후 해당 시기에 있었던 일들을 월별로 정리하였다. 이 과정에서 고려말과 조선 관련 내용들이 함께 기록되었다. 예를 들어 태조 고황제 7년인 1374년 11월 崔萬生과 洪倫이 王顓(공민왕의 諱임)을 시행한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든지, 우왕의 즉위 사실, 우왕의 폐위와 창왕 즉위 사실, 요동정벌, 조선 태조의 즉위 사실과 국호를 정하는 일 등이 수록되었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본서는 명나라의 역사를 한권으로 간단히 정리한 책으로, 지식인들에게 명나라의 역사를 이해시키기 위해 편찬된 것으로 추정된다. 더구나 17세기 두차례의 胡亂을 경험한 조선은 北伐論과 함께 중국본토에서 점차 청나라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명나라의 중화 문명을 이은 ‘小中華’를 자처하였다. 이런 소중화 의식은 중국이 이룩한 문명은 세계에서 가장 찬란하고 위대하여 주변 모든 국가에 대해 지도적 위치에 있다고 하는 사상인 中華主義의 연장이었다. 즉 소중화란 조선은 세계 최고의 중화문명을 가장 잘 받아들여 세계에서 중국 다음으로 높은 문명의 수준을 이루었고, 특히 명나라가 멸망한 이후로는 중국을 대신하여 중화문명을 수호하고 발전시킬 책임을 떠맡았다고 자부하는 의식이었다. 이런 소중화 의식은 우리에게 箕子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으며, 자연히 명나라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멸망해 버린 명나라에 대한 관심이 결국은 명나라 역사를 정리하도록 만들었고, 많은 관심에 따라 한 권으로 정리한 역사책이 간행되기에 이르렀다. 본서 역시 이러한 관심을 배경으로 편찬된 것이다. 明에 대한 역사책은 이미 17세기 초반 金堉에 의해 『황명통기』 등의 간행이 이루어지기도 하였고, 18세기 초반에도 이현석에 의해서 『明史綱目』 등이 간행된 바 있다. 본서는 그 편찬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이 같은 관심 하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차후 明史 관련 서적들과 비교 검토가 이루어진다면, 조선 지식인들의 명나라에 대한 인식 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에 영향을 미쳤던 小中華 의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