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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란 [斷爛] - 해제

G002+AKS-AA55_20039_000 【정의】 肅宗의 서거 후 服制를 비롯한 왕위계승에 관련된 여러 정치적 사건들을 기록한 문건. 【서지사항】 이 책은 숙종 46년 庚子년(1720) 6월 8일 승하한 때로부터 景宗 3년 癸卯년(1723)까지의 정치적 사건들을 編年 형식으로 筆寫한 것으로서, 누가 언제 이것을 필사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책의 내용 가운데 李觀命(1661-1733) 등의 상소문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여러 자료들을 일괄 수집하여 여러 사람이 필사했을 것이다. 다만, 『辛壬紀年提要』의 引用書目을 보면 ‘斷爛 都正榮祐所錄云云’이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이를 근거할 때 李榮祐라는 사람이 주요 편집자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숙종이 죽고 경종이 재위에 있었던 1721년과 1722년에는 이른바 辛壬士禍가 일어나 소론정권이 들어서게 되는데, 이 책은 이와 같은 정치적 변란을 둘러싼 여러 사건들을 노론의 입장에서 연대기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1721년(경종 1)경종의 多病無子를 이유로 노론인 영의정 金昌集, 좌의정 李健命 등이 연잉군(영조)을 世弟로 책봉하도록 하였고, 이어 趙聖復의 疏에 따라 세제의 대리청정을 시도하자, 소론이 크게 반발하여 철회되었다. 그해 12월 金一鏡 등이 세제대리청정을 제기한 조성복과 이이명, 김창집, 이건명, 조태채 등 노론 4대신을 축출하고 소론정권을 수립하였고, 1722년 3월에는 노론일파가 왕을 시해하고자 모의하였다는 睦虎龍의 告變으로 노론 4대신을 비롯한 관련자 50여인을 처단하고 170여인을 처벌하여 소론이 정권을 전횡하게 된 사건을 신임사화라고 한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정변 이후 경종이 죽고 영조가 즉위하여 노론이 집권하기 직전까지의 기록이다. 卷을 나누지 않은 이 책은 총 13책으로 되어 있으며, 표지에는 ‘斷爛’이라고 표제가 되어 있고, 표제 아래에 책 수를 표기하였다. 상단 우측에는 ‘庚子五月 至 九月’이라고 해당 기간을 표시하였다. 굵은 하나의 윤곽선이 있고(四周單邊), 半郭의 크기는 12.5× 15.9cm, 半葉에는 11行 23字로 되어 있으며, 판심에는 魚尾가 없다. 【체제 및 내용】 이 책은 권의 구분 없이 이어져 있다. 총 13책으로 되어 있는데, 1책은 庚子(1720) 5월부터 9월까지의 기록이고, 2책은 庚子 10월부터 辛丑(1721) 2월까지의 기록이다. 3책은 辛丑 3월부터 5월까지의 기록이고, 4책은 신축 6월부터 8월까지, 5책은 신축 8월부터 11월까지, 6책은 신축 12월부터 壬寅(1722) 正月까지, 7책은 壬寅 2월부터 3월까지, 8책은 임인 4월부터 5월까지, 9책은 임인 6월의 한 달간의 사건을 기록하였고, 10책은 임인 7월, 11책은 임인 8월부터 11월까지, 12책은 임인 12월부터 癸卯(1723) 2월까지, 13책은 癸卯 2월부터 7월까지의 기록으로 되어 있다. 책의 내용은 辛丑년과 壬寅년 두 해에 걸친 이른바 신임사화에 관한 것이 주가 된다. 1책은 경자년 6월 初八日 癸卯辰 正二刻 경종이 昇遐하였다는 기사를 필두로 이야기의 서말을 시작한다. 소론은 숙종과 이이명의 丁酉獨對를 구실로 경종을 보호할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러나 자식이 없고 병이 많아 왕위 계승자를 빨리 정할 것을 건의한 正言 李廷聊의 상소를 시발로, 노론 4대신인 영의정 김창집, 좌의정 이건명, 영중추부사 이이명, 판중추부사 조태채 등이 연잉군을 왕위계승자로 정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 주장이 관철되어 신축(1721)년 8월 연잉군을 王世弟로 책봉하였다. 이에 소론의 行司直 유봉휘는 그 부당함을 상소하고, 우의정 조태구도 그를 비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다. 노론측에서는 왕세제를 정한 지 두 달 뒤인 10월에 집의 조성복의 상소로 世弟聽政을 요구하였고, 이에 경종은 세제의 대리청정을 명했다가 환수하기를 반복한다. 1721년 12월에 소론의 司直 김일경 등 7인이 세제 대리청정을 요구한 조성복과 청정명령을 받들어 행하고자 한 노론 4대신을 왕권교체를 기도한 역모라고 공격하는 소를 올렸다. 이 상소로 소론 세력이 정권을 잡는 換局이 단행되었다. 노론 4대신 중 김창집은 거제부에, 이이명은 남해현에, 조태채는 진도군, 이건명은 羅老島에 각각 안치되었다. 그 밖의 여러 노론들도 삭직, 門外黜送 또는 정배되었다. 소론측에서는 영의정에 조태구, 좌의정에 최규서, 우의정에 최석항이 임명되었다. 1722년 3월 강경론자들이 노론의 과격한 처단을 요구하고 있을 때에 睦虎龍은 노론측에서 경종을 시해하고자 모의했다는 이른바 三急手說을 고변하게 된다. 삼급수란 大急手(칼로써 살해), 小急手(약으로 살해), 平地手(폐출)을 말한다. 이 고변에 의해 鞠廳이 설치되고, 역모에 관련된 자들을 처단하는 옥사가 일어났다. 이 옥사에서 노론 주요 인물들이 사사되었고, 반대로 소론의 주요 인물들이 중직을 맡게 되었다. 이 책은 경종이 죽기 전해인 계묘(1723)년 7월까지 여러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이 책은 조선후기 당쟁 가운데 가장 치열했던 경종-영조 교체기에 관련된 기록으로서, 비록 노론측의 입장에서 서술한 것이지만 당시 정쟁의 양상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현재 장서각 소장본(귀K2-39)가 유일하며, 영인본은 없다. 【참고문헌】 『景宗實錄』. 『英祖實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