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년편고 [紀年便攷n1-37책] - 본문 번역 묶음 044
- 책 ID:
kh2_je_a_vsu_20037_000
- 수록 기사: 75건
조최수
- 기사 ID:
20037_030_004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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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조최수(趙最壽)는 형손䕃의 아들 목개㮣의 아들이자 상우의 종자이다. 현종(顯宗) 경술(庚戌)년에 태어나 호는 죽천(竹泉)이고, 또 호溪(癯溪)라고도 하였다. 숙종(肅宗) 무자(戊子)년에 생원이 되었고, 갑오(甲午)년에 증광(增廣)에 합격하여 삼사(三司)의 대사헌을 역임하였다. 벼슬은 관지知敦寧에 이르렀다. 경종(景宗) 신축(辛丑)년에 정언(正言)으로 윤지述(尹志述)를 탄핵하는 상疏(疏)를 올렸다. 교리(校理)申昉(申昉)이劄論(劄論)을 제기하자, 승旨(承旨)李眞儉(李眞儉)이 상疏를 올려 말하기를 최수(最壽)의 첫 상疏의 사(辭)가 엄격하고 의(義)가 정당하다고 하였다. 영조(英祖) 기미(己未)년에 졸(卒)하니 향년 칠십(七十)이었다.
독음
조최수 형손음상목개자상우종자현종경술생 자호리號竹泉우癯溪숙종무자생원갑오등증광력삼사대사헌기백관지지돈녕경종신축이정언소핵윤지술피교리신방절론승지이진검상소왈최수일소사엄의정영조기미졸년칠십
의미
조최수는 조선中期의 관료로, 현종 연간에 태어나 영조 연간에 사망하였다. 갑오년 증광 합격 후 삼사의 대사헌 등 요직을 역임하고 벼슬이 知敦寧까지 올랐다. 경종 신축년에 정언으로 윤지述를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는데, 교리申昉이劄論으로 반박하자 승旨李眞儉이 최수의 상소가言辞가 엄격하고 의리가 정당하다고 재론하였다. 영조 기미년에 일흔 살로 사망하였다.
원문
趙最壽珩孫䕃相木㮣子相愚從子顯宗庚戌生字季良號竹泉又癯溪肅宗戊子生員甲午登增廣歴三司大司憲㡬伯官止知敦寧景宗辛丑以正言䟽劾尹志述被校理申昉劄論承旨李眞儉上䟽曰最壽一䟽辭嚴義正英祖己未卒年七十
엔티티 후보
- person: 조최수 / 趙最壽, confidence=1.0
- person: 신방 / 申昉, confidence=0.95
- person: 이진검 / 李眞儉, confidence=1.0
- person: 윤지술 / 尹志述, confidence=1.0
- office: 삼사대사헌 / 三司大司憲, confidence=1.0
- office: 정언 / 正言, confidence=1.0
- office: 지돈녕 / 知敦寧, confidence=0.95
- office: 교리 / 校理, confidence=1.0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1.0
- term: 증광 / 增廣, confidence=1.0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term: 소(상소) / 疏,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이명의
- 기사 ID:
20037_030_004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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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명예 현영의 증손으로, 구령자라고도 불렸다. 자는 의백이다. 숙종 임진년(1692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 대사간에 이르렀다. 경종 신축년(1721년)에 일경의 상소로 여섯 역적 중 한 명으로 지목되어 유배되었다가, 영조 을사년(1725년)에 청도로 유배되고 곧 나로도에 안치되었다. 무신년(1728년)에 곤장으로 맞아 죽었고, 을해년(1755년)에 추밀되었다.
독음
이명예 현영 증손 구령자 자는 의백 숙종 임진년에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하여 대사간에 이르렀다. 경종 신축년에 일경의 상소로 여섯 역적 중 한 명으로 지목되어 유배되었고, 영조 을사년에 청도로 유배되었다가 곧 나로도에 안치되었다. 무신년에 곤장으로 맞아 죽었고, 을해년에 추밀되었다.
의미
조선 시대 이명예의 가문과 관직 경력, 그리고 그가 卷遲死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된 후 곤장으로 맞아 죽게 된 과정, 그리고 나중에 추밀된 내용을 기록한 자료다.
원문
李明誼顯英曾孫九齡子字宜伯肅宗壬辰登庭試歴銓郞官止大司諫景宗辛丑一鏡䟽下六賊之一英祖乙巳謫淸道旋安置羅老島戊申杖死乙亥追律
이정제
- 기사 ID:
20037_030_004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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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정재는 본관이 부평이다. 문승지世維의 아들이고,世華의 종질이다. 자는仲協이고, 호는竹湖이다. 숙종 시대 경진년에 생원으로 정시에 합격했다. 경종 임인년에 어유귀가 상소를 올려 송시열의 도덕과 학문을 크게 칭찬했으며, 또한 윤선거 부자의 일을 아뢰었다. 선대왕의 병신년 처분을 그대로 좇아 한치의 굽힘도 없었다. 이정재는 승지로 상소를 올려 어유귀를 꾸짖었다. 여러 관직을 거쳐 대사헌, 호판관을 지내고는 판의금까지 이르렀으며, 시호는孝貞이다.
독음
이정재 부평인 문승자세유자 세화종자 자충협 호죽호 숙종 경진以来생원등정시 경종 임인 어유귀상소성언 송시열 덕학문차언 윤선거 부자사지 선대왕 병신처분 일준 무요 개정제以来승지서斥유귀력 대사헌 호판관 지 판의금 격서효정
의미
조선后期的 관료 이정재의的行蹟을簡單히 기술한 기사이다. 부평 이씨로서 숙종대에 과거에 합격하고 경종대에 어유귀의 송시열·윤선거 관련 상소를問題로 활동했다. 이후 대사헌·호판관·판의금 등 요직을 두루 거쳐孝貞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원문
李廷濟冨平人文承旨世維子世華從子字仲協號竹湖肅宗庚辰以生員登庭試景宗壬寅魚有龜上䟽盛言宋時烈道德學問且言尹宣擧父子事之先大王丙申處分一遵無撓改廷濟以承旨䟽斥有龜歴大司憲戶判官止判義禁諡孝貞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정재 / 李廷濟, confidence=0.95
- place: 부평 / 冨平, confidence=0.9
- person: 문승지世維 / 文承旨世維, confidence=0.85
- person: 세화 / 世華, confidence=0.85
- person: 어유귀 / 魚有龜, confidence=0.95
- person: 송시열 / 宋時烈, confidence=0.95
- person: 윤선거 / 尹宣擧, confidence=0.95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0.95
- office: 대사헌 / 大司憲, confidence=0.95
- office: 호판관 / 戶判, confidence=0.9
- office: 판의금 / 判義禁, confidence=0.95
- term: 정시 / 庭試, confidence=0.9
- term: 효정 / 孝貞, confidence=0.95
- term: 종자 / 從子, confidence=0.85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9
- term: 처분 / 處分,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문승지世維의 정확한 관직 명칭이 文承旨世維인지 文承旨世維의 잘못인지 불확실
- 丙申處분의 구체적 내용이 명시되지 않아 맥락 파악 어려움
- 上䟽가 上疏의 오기인지 확인 필요
신사철
- 기사 ID:
20037_030_004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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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신사철은 손부사 신금의 아들로 현종 신해년에 태어났으며 자는 명숙이다. 숙종 병자년에 进士에 급제하고 기축년에 공조佐郞으로 벼슬에 올라 왕을 뵙고, 경종 갑묘년에 일으킨 붉은 물결 사화(士禍)에 연좌되어 도承旨로 있던 관직을 뺏기고 长鬐로 流配되었다가咸昌으로 옮겼다. 영조 을사년에 비로소 풀려나와 户判에 오르고 수어사를 거치는 등 벼슬길에 올랐으나 관직은輔國領中樞에서 멈추었다. 이후耆社에 들어갔으며, 기묘년에 사망하여 향년이 팔십아홉이었다. 그를 추대하여恩典을 내려丞相을 추증하였다.
독음
신사철 명규손 부사 금 자인 종자 현종 신해생 자 명숙 숙종 병자 进士 기축으로 공조佐郞에 올라 성경을뵙고 경종 갑묘년에 사화를 만나 도승지로 장기에 배소되고 함창으로 옮기니 영조 을사년에 풀려나와 호판에 올라 수어사를 거치며 벼슬은輔國領中樞에 이르러 기사에 들어가고 기묘년에 사망하니 향년 팔십구 추은으로 영상을 추증하다.
의미
조선后期의 관료 신사철의 평전을 수록한 기문이다. 숙종 연간进士에 급제하여 관로를 시작하고 경종 연간 사화에 연좌되었으나 영조 연간 풀려나 재기하여户判, 수어사 등 요직을 두루 역임했으나 최고위 관직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팔십아홉의长寿를 누리다 사망한 뒤领相을 추증받았다.
원문
申思喆命圭孫府使鍴子銋從子顯宗辛亥生字明叔肅宗丙子進士己丑以工曹佐郞登謁聖景宗癸卯士禍以都承旨配長鬐移咸昌英祖乙巳放還拜戶判歴守禦使官止輔國領中樞入耆社己卯卒年八十九推恩贈領相[주:子晩晦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신사철 / 申思喆, confidence=0.95
- person: 신금 / 鍴, confidence=0.85
- person: 현종 / 顯宗, confidence=0.9
- term: 명숙(자) / 明叔, confidence=0.9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0.95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0.95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0.95
- office: 공조佐郞 / 工曹佐郞, confidence=0.9
- office: 도승지 / 都承旨, confidence=0.95
- place: 장기 / 長鬐, confidence=0.9
- place: 함창 / 咸昌, confidence=0.9
- office: 호판 / 戶判, confidence=0.9
- office: 수어사 / 守禦使, confidence=0.9
- office: 보국령중추 / 輔國領中樞, confidence=0.85
- office: 기사 / 耆社, confidence=0.9
- office: 영상 / 領相,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命圭孫府使鍴子銋從子顯宗辛亥生字 - 문장 끊어읽기가 불확실하며 ‘命圭孫府使’가 ‘명규손부사’로 解讀되나 구조 해석에异议의 余地가 있음
이숭조
- 기사 ID:
20037_030_004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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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16:48:36.5015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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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숭조는 광한의 아들로서 경종(임인년)에 강화도로 귀양 갔다가 붙잡혀 형벌을 가했으나 굴하지 않고 죽었다.
독음
이숭조 광한자 경종 임인 적벽연 피체시형 불굴而死
의미
이숭조는 광한의 아들이며, 조선 경종 연간에 강화도(碧潼)로 유배되었다가 당국에 체포되어 고문·형罰을 받았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순절한 인물이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숭조 / 李崇祖, confidence=1.0
- person: 광한 / 光漢, confidence=1.0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1.0
- place: 벽연(강화) / 碧潼,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광한의 구체적 신분·관직
- 임인년의 정확한 서기 연도
- 체포·처형의 구체적 사유
이덕준
- 기사 ID:
20037_030_004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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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덕준은 손경종에게 출세하여, 임인년에 부녕으로 유배되었다가 붙잡혀 형벌을 시행받았으나 굴하지 않고 죽었고, 형의빈도 함께 위원으로 유배되어 함께 죽었다.
독음
이덕준 입신손경종 임인 적부녕 피체 시형 불굴而死 형의빈 동시 적위원 동시사
의미
조선后期的 이덕준이 손경종과 함께 임인년에 유배되었다가 체포되어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순절한 기록이다. 형의빈도 동시에 위원(위원)으로 유배되어 같은 때 죽었다. 사형집행자가 아니라 압송途中에서의 순절로 보이며, 부녕과 위원은 모두 북쪽 변경 지역이다.
원문
李德峻立身孫景宗壬寅謫冨寧被逮施刑不屈而死邢義賓同時謫渭原同時死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덕준 / 李德峻, confidence=0.95
- person: 손경종 / 孫景宗, confidence=0.95
- person: 형의빈 / 邢義賓, confidence=0.95
- place: 부녕 / 冨寧, confidence=0.85
- place: 위원 / 渭原, confidence=0.85
- term: 임인(년) / 壬寅, confidence=0.9
- term: 출세하다 / 立身, confidence=0.85
- term: 형벌을 가하다 / 施刑,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立身孫景宗의 문맥상 主從關係 여부, 부녕·위원의 정확한 행정구역 지정
전인좌
- 기사 ID:
20037_030_004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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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16:49:10.77001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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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전인좌가 경종 임인년에 리산으로 유배되었다가 체포되었을 때, 악한 무리들이 그에게 물었다. ‘네가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누구냐.’ 전인좌는 눈을 크게 뜨고 당상을 노려보며 말했다. ‘친한 사람이 없다.’ 그러자 악한 무리들이 더욱 노여워하며 갖은 고문을 다 가했다. 그러나 전인좌는 결국 한마디도吐하지 않고 죽었다. 전조, 덕준, 의빈, 인좌와 김윤택의 가인은, 당시에 김씨가 인재를 잘 얻는다고 칭송받았다. 최석항이 글격을 올려 말했다. ‘김윤택의사가 오가는 길이分明하고, 전조·인좌·의빈·덕준이 모두 김씨의 심복으로서 자세히 알지 않는 바가 없다.’
독음
전인좌 경종 임인년에 리산에 적되었다가 체포되었을 때, 괴한들이 물었다. ‘네 친한 사람이 누구냐.’ 인좌는 크게 눈을 뜬 채 당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친한 사람이 없다.’ 괴한들이 더욱 노하여 갖은 고문을 가했으나, 결국 한 말도 아니하고 죽었다. 전조,덕준,의빈,인좌와 김윤택의 가인이,当时金氏가 인재를 잘 얻는다고 일컬었다. 최석항이 글을 써서 말했다. ‘김윤택의 일이 실마리가分明하고, 전조·인좌·의빈·덕준이 모두 김씨의 심복이 되어詳知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의미
조선 경종 때 전인좌가 임인년(1723년)에 유배지에서 체포된 뒤, 적对他的 고문에도自己不招供하여 결국 죽음을 당한 내용이다. 그는 동료들을出卖하지 않았으며, 이를 통해 김윤택 가문의 식노들(전조, 덕준, 의빈 등)이 모두 김씨의 충심된 심복임을 알 수 있다. 최석항은 김윤택 관련사의 실마리가明確하다고記錄하였다.
원문
錢仁佐景宗壬寅謫理山及被逮凶徒問爾所親者誰也仁佐張目視堂上曰無所親者凶徒益怒鍜鍊萬端終不出一言而死崇祖德峻義賓仁佐并金雲澤家人時稱金氏之能得士崔錫恒劄曰金雲澤事線路分明崇祖仁佐義賓德峻皆以灰金心腹無不詳知
엔티티 후보
- person: 전인좌 / 錢仁佐, confidence=0.98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0.97
- place: 리산 / 理山, confidence=0.95
- person: 전조 / 崇祖, confidence=0.95
- person: 덕준 / 德峻, confidence=0.95
- person: 의빈 / 義賓, confidence=0.95
- person: 김윤택 / 金雲澤, confidence=0.97
- person: 최석항 / 崔錫恒, confidence=0.97
- work: 글격 / 劄,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진재해
- 기사 ID:
20037_030_004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49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16:49:15.16550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049
한글 번역
진재해는 화원이다. 경종 임금의 기묘년(1723)에 녹훈 당상 한배하가 진재해에게 호와 용의 상을 그리게 하였다. 진재해가 말하기를 ‘나는 전에 숙조 전하의 어진을 그린 일이 있으니, 지금 이 손으로 그릴 수는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한배하가 노하여 재촉하자 진재해가 이르기를 ‘죽으면 죽을지언정 절대로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몇 번을 재촉하여도 끝내 듣지 않았다. 영조 임금이 기이하게 여겨 특별히 가자(加工資)를 더 주었다. 그의 손자는 궁하여 스스로 살아갈 수 없게 되었는데, 한 재상신이 해당 관직을 제수해줄 것을 청하자 임금이 허락하시고, 이에 별도로 군직을 제쳤다.
독음
진재해 화원이니 경종 계묘에 녹훈당상 한배하가 재해로 호용상을 그리게 하니 재해가 이르되 내가 어리 적에 숙묘의 어진을 그렸으니 지금 이 손으로 그릴 수 없다 하니 배하가 노하여 재촉하니 재해가 이르되 죽으면 죽겠으나 결코 하지 않겠노라 하니 여러 번 재촉하여도 마침내 듣지 않으니 영조가 기이히 여겨 특별히 가자를 더했다. 그 손자에게 궁하여 자립하지 못하니 한 재신이 상当当직을 제수해줄 것을 청하매 상이 허락하시고 이에差別으로 군직을 붙였다.
의미
조선 숙조 연간에 화원 진재해는 이미 숙조의 초상화를 그린 바 있어, 후임 임금의 호용상을 그리는 것은 예로부터 금기로 여겨진 일이었다. 한배하의 강요에도 ‘죽더라도 하지 않겠다’고 결사 거부하자, 영조는 그의 의리를 높이 사서 가자품을 특별히、进爵하였다. 이후 진재해의 손자가 궁핍해지자, 한 재상이 벼슬을 제수해달아 관직을 살게 하였다는 기록이다.
원문
秦再奚畵員也景宗癸卯錄勳堂上韓配夏使再奚畵虎龍像再奚曰吾於昔年畵肅廟御眞今不可以此手畵之配夏怒迫之再奚曰死則死矣决不可為也屢迫而終不聽英祖奇之特為加資其孫窮不能自存有一宰臣請除相當職上可之仍差别軍職
엔티티 후보
- person: 진재해 / 秦再奚, confidence=1.0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1.0
- person: 한배하 / 韓配夏, confidence=1.0
- person: 숙조 / 肅廟, confidence=1.0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1.0
- office: 화원 / 畫員, confidence=1.0
- office: 녹훈당상 / 錄勳堂上, confidence=0.9
- work: 어진 / 御眞, confidence=1.0
- term: 가자 / 加資, confidence=0.9
- term: 재상신 / 宰臣, confidence=1.0
- term: 군직 / 軍職,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이징만
- 기사 ID:
20037_030_005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51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7-24T11:31:09.44858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051
한글 번역
이징만은 전의인 첣효의 7대손으로서 예랑과 유원의 아들이었다. 자는 치장이고 호는 무눌재이다. 중사마에 나가 있었으며, 착한 행실과 우아한 절개를 갖추고 뛰어난 식견과 높은 절개를 지니고 있었다. 윤휘와 거鏡恒과 사귀었으나, 그들이 建儲을 도모하며 밀히 화난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탄식하며 말하기를, ‘저들은 임금이 없는 적적이니 어찌 사귈 수 있겠는가’ 하고는 그대로 사귀지 않고 왕래를 끊었다. 경기종 묘년에 윤봉휘가 전랑으로서 후릉参奉으로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명을 받아 자제들이 討逆科에 나가지 않았으며, ‘이것은 忠을討하는 것’이라 하면서 명을 받아子孙을 영구히 응거를 폐기했다. 長湍에 모습을 감추고 살았는데, 일찍이 말하기를, ‘定策四臣을 말하자면, 그 공로로 말하면 한올의 위험에서 세자를 결정한 것이요, 그 충성으로 말하면 만 살육의 위기에서 목숨을 바친 것이다. 군신의 의리가 있은 뒤에 편당이 있는 것이니, 四臣은 곧 노론이다. 나’는 소론이라. 그러나 저 四臣은 군신의 의리를 다한 자들이니, 내가 어찌 존경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독음
이징만 전의인 첣효 칠세손 예랑 유원자 자 치장 호 무눌재 중사마 유 독행 아조 탁식 고절 윤휘 거경형 교류급견기수 시건저 밀선 화기탄왈 피 무군지적 하야 교유호 인졍 절 불왕래 경기종 계묘 봉휘 이전장 제 후릉 참봉 부취 명 제자 부 복차과 왈 차 토충도 명 자자 영폐 둔적어 장탄 상왈정치 사신자 기 공而言지,则정저부어 일발지위 기 충而言지,则수신명어 만록지중 유 군신지예술 후 유 편당 사신 즉 노론야 아즉 소론야 이 피 사신자 득 진 군신지예술자야 아녕 부탄앙재
의미
조선 왕조의 당파 갈등 시기, 이징만은 建儲 음모에 연루된 윤봉휘와 당파 동지들의 교류를 끊고 왕래를 단절했다. 윤봉휘가 후릉参奉으로 제수되자 부임하지 않았으며, 자제들로 하여금 討逆科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후손들에게 영구히 응거를 폐기시키라는 유언을 남겼다. 자신이 속한 소론 입장에서 노론 계열의 定策四臣을 비판하면서도, 세자 결정의 공로와 군신의 의리를 다한 점은 인정하며 존경의 마음을 표현한 인물이다.
원문
李徵萬全義人愼孝七世孫禮郞有源子字致章號無憫齋中司馬有篤行雅操卓識高節與輝耉鏡恒交遊及見其讎視建儲密煽禍機歎曰彼無君之賊何以交遊乎仍絶不徃來景宗癸卯鳳輝以銓長除厚陵參奉不就命子弟不赴討逆科曰此討忠也命子孫永廢擧遯跡于長湍嘗曰定策四臣者以其功而言之則定儲副於一髮之危以其忠而言之則輸身命於萬戮之中有君臣之義然後有偏黨四臣即老論也我則少論也而彼四臣者得盡君臣之義者也我寧不歎仰哉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징만 / 李徵萬, confidence=1.0
- person: 첣효 / 愼孝, confidence=0.95
- person: 예랑 / 禮郞, confidence=0.95
- person: 유원 / 有源, confidence=0.95
- person: 경기종 / 景宗, confidence=1.0
- person: 윤봉휘 / 鳳輝, confidence=0.95
- person: 윤휘 / 輝耉, confidence=0.9
- person: 경형 / 鏡恒, confidence=0.9
- place: 후릉 / 厚陵, confidence=1.0
- place: 장탄 / 長湍, confidence=1.0
- office: 중사마 / 中司馬, confidence=0.9
- office: 참봉 / 參奉, confidence=0.95
- office: 전랑 / 銓長, confidence=0.9
- term: 정책사신 / 定策四臣, confidence=1.0
- term: 노론 / 老論, confidence=1.0
- term: 소론 / 少論, confidence=1.0
- term: 건저 / 建儲, confidence=0.95
- term: 토역과 / 討逆科, confidence=0.95
- term: 거 / 擧,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 有源子 字致章號無憫齋 中司馬 有篤行雅操卓識高節
- 중사마 직위와 인물관계 해석이 불확실
- 無憫齋가 호인지 별칭인지 문맥상 구분 필요
김고
- 기사 ID:
20037_030_005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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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16:49:30.56256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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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김고는 청풍 사람으로, 극형의 손자이고, 동돈순의 아들 자구의 종제이다. 자는 봉년이라 하였다.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은 승지까지 올랐다. 경종 신축년(1721)에 윤지술이 소회한 이후, 이 사람이 정언(정五品 벼슬)으로 나아가 아뢴 바에 이르기를, “반유가 긴급히 논박하니 감당하지 못하고 놀랐다.” 하였다. 신사(1721) 한 건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파면하고 직임을 비웠다. 시문의 시비(정쟁)는 유감할 정도로 명백하지 못하였다. 능지(陵誌)의 빠진 부분을 궁중 도감으로 하여금 신속히 시행하게 하였다. 그 계(啓)를 인용하였다. 이진검이 상소하여 탄핵하기를, “김고의 글이 윤지술과 다르지 않다.” 하였다. 계묘(1763)년에 사간(月刊, 정三품 벼슬)으로 경성(鏡城, 강원도)에 귀양갔다가 영조 을사(1765)년에 놓여났다.
독음
김고 청풍인 극형손 동돈순자구 종제 자 봉년 등문과 관지 승지 경종 신축 윤지술 소회 후 이 正言으로 계하여 왈: 반유 근질 불승 거연 신사 일건 전연 견열 시문 시비추 결 명백陵誌之闕令 都監 급속 거행 의계 이진검 소격왈: 김고 견사 무의 지술 계묘 이司諫으로 경경에 배치된 것을 영조 을사에 방면함
의미
김고는 문과에 합격하여 승지까지 올라간 조선后期的 관리이다. 경종 연간 윤지술의 소회와 관련된 정쟁에 연루되어 반유로 파면되었다. 이진검이 김고의 글이 윤지술과 다르지 않다고 탄핵하면서 이 사건이 시문(정쟁)에까지 이어졌다. 능지 편찬을 서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으며, 최종적으로는 경성에 귀양갔다가 영조 연간赦放된 인물이다.
원문
金橰淸風人克亨孫同敦洵子構從弟字逢年登文科官止承旨景宗辛丑尹志述所懷後以正言啓曰泮儒緊斥不勝瞿然辛巳一欵全然遣闕斯文是非殊欠明白陵誌之闕令都監急速擧行依啓李眞儉䟽劾曰金橰遣辭無異志述癸卯以司諫配鏡城英祖乙巳放
엔티티 후보
- person: 김고 / 金橰, confidence=0.95
- person: 윤지술 / 尹志述, confidence=0.95
- person: 이진검 / 李眞儉, confidence=0.95
- person: 동돈순 / 同敦洵, confidence=0.9
- place: 청풍 / 淸風, confidence=0.9
- place: 경성 / 鏡城, confidence=0.9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0.9
- office: 사간 / 司諫, confidence=0.9
- term: 반유 / 泮儒, confidence=0.85
- term: 시문시비 / 斯文是非,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泮儒는 성균관 유생으로 추정되나 ‘반유’의 정확한 통칭 범위 확인 필요
- 遣辭는 ‘견사’(글)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나 문맥상 ‘건사’ 오독 가능성 있음
김령행
- 기사 ID:
20037_030_005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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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김령행은 시건자의 아들이며, 오두음의 사위이다. 경종 즉위년인 계묘년(1725년) 이전에 현감으로 있다가, 배기·장동년과 같은 해에 벼슬을 내려놓고中都正에 이르렀다.
독음
김령행 시걸자 오두음 서 경종 계묘 이전 현감 배기 장동년 방관 지 도정
의미
김령행은 아버지 시건자의 아들이자 오두음의 사위였으며, 경종 즉위년 이전에 현감을 지냈다. 이후 배기·장동년과 함께 벼슬을 내려놓았으나中都正의 직에 이르렀다. ‘婿景宗’은 김령행이 경종의 사위임을 뜻하는 것으로, 경종과 정치적 연줄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원문
金令行時傑子吳斗寅婿景宗癸卯以前縣監配機張同年放官止都正
엔티티 후보
- person: 김령행 / 金令行, confidence=0.95
- person: 시건자 / 時傑子, confidence=0.9
- person: 오두음 / 吳斗寅, confidence=0.9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0.95
- person: 배기 / 配機, confidence=0.85
- person: 장동년 / 張同年, confidence=0.85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0.95
- office: 도정 / 都正, confidence=0.9
- term: 사위 / 婿, confidence=0.95
- term: 방관 / 放官,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中都正
- 時傑子가父子관계인지 其他 관계인지
- 放官止都正의 구두점과 해석
강욱
- 기사 ID:
20037_030_005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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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강욱은 경종 즉위 전부터 현감으로 있다가 삼수에 배치되었고, 영조 즉위년인 을사년에 벼슬을 내려놓아 지수사가 되었다.
독음
강욱 경종 계묘년 이전 현감 배수 삼수 영조 을사 방관 지수사
의미
조선 시대 관리 강욱의 관료 경력을 적은 짧은 기록이다. 강욱이 경종 때 현감으로 재직하던 중 삼수地方에 배수되었고, 이후 영조 즉위년인 을사년(1725년)에 벼슬을 그만두어 지수사직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조선 시대 관료 발탁과 배치, 그리고 사직의 과정이 한 줄로 요약된 유형의 기록이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강욱 / 姜頊, confidence=0.95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0.98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0.98
- place: 삼수 / 三水, confidence=0.9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0.95
- office: 지수사 / 止水使,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 止水使 - 직역하면 물을 막는 관원이라는 뜻인데, 조선 시대 실재 직제인지 확인이 필요하다. 수계(水契) 관련 관리나 수문 관리직일 가능성도 있다.
- 以前縣監配三水의 문장 구조 - 계묘년 이전 현감 재직 중 삼수 배치를 받은 것인지, 계묘년 이전의 현감 시절에 대해 말하는 것인지 문맥이 모호하다.
이진검
- 기사 ID:
20037_030_005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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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4T02:31:37.2955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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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진검은 진유의 아우로서 홍만용의 외손이다. 현종 신해(1651)년에 태어났으며, 자는 중약, 호는 율리이다. 숙종 기묘(1679)년에 진사가 되었고, 갑신(1684)년에 춘당대 시험에 합격하여 한림원과 선랑을 역임하고 대헌과 기백을 지냈다. 관직은 예조판서에서 그쳤다. 문장으로 수천만 말을 진술하여 문학에 밝았고, 공자의之乡(경리)의 일을 깊이 논의하였다. 경종 신축(1721)년에承旨로 재임하면서 이이를 명 등이 단독으로 군부와 함께 대면한 것과 대출의 실수를 논핵하였다. 이 때문에 영조 을사(1725)년에 양양으로 유배되었고, 기사(1737)년에 유배지인 康津에서 사망하였다. 오십칠 살이었다. 서예를 잘하여 이름이 있었으며, 아들 이匡師는 자가 도부, 호가 원악이다. 또한 두남의 필법이 당세의 대가로 불렸다. 시문과 전서 및 회화 모두에 이름이 있었고, 그 명성이『筆苑』에 기록되었다. 그러나 극렬한 역적(영친왕 일파)에 연루되어 섬 가운데 유배되었다가 정조 을유(1777)년에 사망하였다. 칠십삼 살이었다.
독음
이진검, 진유의 아우, 홍만용의 외손, 현종 신해생, 자는 중약, 호는 율리, 숙종 기묘진사, 갑신춘당대시험 합격, 한림원 선랑을 역임, 대헌 기백, 관직은 예조판서에서 그침, 문학으로 수천만언을 진술하고 경리를 극논함, 경종 신축년에承旨로 이의를 명 등의 독대를 논핵하고 대출의 실수를 논핵함, 영조 을사에 양양으로 유배됨, 정조 정기에 섬 가운데 유배되었다가 정조 을유에 사망, 함은 칠십삼, 기사는 정조 기유에 사망,년 오십칠, 선서로 이름이 있었음, 아들 명사는 자가 도부 호는 원악, 또 두남의 필법이 당세의 대가, 시문 전화 모두 이름이 있었음, 이름이 필원에 들어갔음, 극逆에 연유되어 섬 가운데 유배되었고 정조 을유에 사망, 함은 칠십삼
의미
이 기사는 조선后期的文臣 이진검의 行蹟을 기록한 것이다. 현종 때 출생하여 숙종대에 진사 합격 후 한림원·선랑·대헌·기백·예조판서를 역임하고,承旨 재임 중 이이를 명 등의 독대 문제와 대출 실수를 논핵하다 영조 연간 양양으로 유배되었다. 기사(1737)년에康津 유배지에서 오십칠 세로 사망하였다. 평생 서예에 능하여 이름을 날렸으며, 아들 이匡師(원악)도 서예가로 당시에 이름났다. 그러나 후대에 이진검 자신이 극렬한 역적 사건에 연루되어 섬으로 유배되었다가 정조 을유(1777)년에 칠십삼 세로 사망하였다고 한다.文中 ‘極逆緣㘴島中’ 부분이 흐릿하나, 이 부분이 부정확하거나 오기가 가능하므로 해석상 주의가 필요하다. 또한 本文이 짧고 인명이 집중되어 있어校正과 관련 논증이 추가로 필요할 것이다.
원문
李眞儉眞儒弟洪萬容外孫顯宗辛亥生字仲約號甪里肅宗己卯進士甲申登春塘臺試歴翰林銓郞大憲箕伯官止禮判以文學陳数千萬言極論闕里景宗辛丑以承旨論劾李頤命獨對及貸貸之失謫襄陽英祖乙巳謫康津丁巳卒于謫所年五十七以善書名子匡師字道甫號圓嶠又斗南筆法為一時大家詩文篆畵俱有名名入筆苑以極逆緣㘴謫島中正祖丁酉卒年七十三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진검 / 李眞儉, confidence=1.0
- person: 홍만용 / 洪萬容, confidence=1.0
- person: 이진유 / 李眞儒, confidence=1.0
- person: 이의명 / 李頤命, confidence=1.0
- person: 현종 / 顯宗, confidence=1.0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1.0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1.0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1.0
- person: 정조 / 正祖, confidence=1.0
- place: 양양 / 襄陽, confidence=1.0
- place: 감창 / 康津, confidence=1.0
- place: 춘당대 / 春塘臺, confidence=1.0
- place: 궤리(공자의 본향) / 闕里, confidence=1.0
- office: 한림원 / 翰林, confidence=1.0
- office: 선랑 / 銓郞, confidence=1.0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1.0
- office: 예조판서 / 禮判, confidence=1.0
- work: 필원 / 筆苑, confidence=1.0
- person: 이광사 / 匡師, confidence=0.9
- person: 두남 / 斗南,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㘴(원자 미확인,文中坏损, ‘배출될 배’?‘島 중’?‘坮’?‘坐’? 등 유력 후보 다수, 해석 안정성 낮음)
- 極逆緣㘴謫島中(극역에 연유되어 섬 가운데 유배되었다의 전체 구절, 㘴字 확인 전까지 문장 해석 유보)
- 丁巳卒于謫所(기사년에 유배지에서 사망이라는 주기기가 원문과 배치되는 부분,校正 필요 여지 있음)
- 殷(은)
- 池松旭(지송욱)
- 池松旭은 지송욱처럼 한글로 옮긴다
윤대영
- 기사 ID:
20037_030_005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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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16:51:28.96919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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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윤대영은 파평 출신이다. 본관은 명최자. 현종 때 기사년에 태어나 字는 정숙이다. 숙종 경인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장령과 참의를 역임하였다. 노년에 이르러 중추에陞進하고 기사에 입사하였다. 영조 시대인 병자년에 졸하였으며, 향년 86세였다.
독음
윤대영 파평인 명최자 현종 기사생 자정숙 숙종 경인등문과 역사 장령 참의 영年至대耋陞知중추입기사 영조 병자졸 년팔십육
의미
조선 시대 관리 윤대영의 약력이다. 파평 출신으로 현종 기사년(1651)생이며, 숙종 경인(1710)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장령·참의 등의 관직을 거쳤다. 대단한 나이에 중추府에陞進하고 기사에 편입되었으며, 영조 병자(1736)년에 86세로 사망하였다.
원문
尹大英坡平人鳴最子顯宗辛亥生字正叔肅宗庚寅登文科歴掌令參議以大耋陞知中樞入耆社英祖丙子卒年八十六
엔티티 후보
- person: 윤대영 / 尹大英, confidence=1.0
- place: 파평 / 坡平, confidence=1.0
- person: 명최자 / 鳴最子, confidence=0.8
- term: 자(자호) / 字, confidence=1.0
- person: 정숙 / 正叔, confidence=1.0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office: 장령 / 掌令, confidence=1.0
- office: 참의 / 參議, confidence=1.0
- office: 지중추 / 知中樞, confidence=0.95
- office: 기사 / 耆社,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명최자(본관 가능성 있음)
- 以大耋 부분 원문 훼손 가능성 있음
이삼령
- 기사 ID:
20037_030_005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58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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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삼령은 함평 출신으로, 아버지는 한형자이고 자는 수천이다. 나주에 거처하면서 숙종(바다) 임인년에 명경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직강에 이르렀다. 경종 임인년에 전적 신분으로 정렴, 이가운 등과 함께 장씨의 관작 회복을 요청하는 상소를 정원에 올렸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독음
이삼령 함평인 한형자 자 수천 거라주 숙종 을유에 명경과에 오르고 관직은 직강에 그쳤다 경종 임인에 전적으로 정렴 이가운 등과 함께 장씨의 위복을 청하여 정원에 아뢴 상소가 채택되지 않았다
의미
조선 시대 관리 이삼령의 행적을 기록한 기사로, 함평 출신으로 숙종대에 명경과에 급제하고 경종대에 정렴, 이가운 등과 함께 명문의 옥사를 당한 장씨의 관작 회복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정원(정계)에서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보인다. 이 기사는 당시 정쟁과 관련된 집단 상소 사건의 일환으로 보인다.
원문
李三齡咸平人漢馨子字壽千居羅州肅宗乙酉登明經科官止直講景宗壬寅以典籍與鄭鍌李嘉運等為張氏請復位䟽政院不捧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삼령 / 李三齡, confidence=1.0
- place: 함평 / 咸平, confidence=1.0
- person: 한형자 / 漢馨子, confidence=1.0
- term: 자 / 字, confidence=1.0
- term: 수천 / 壽千, confidence=1.0
- place: 나주 / 羅州, confidence=1.0
- office: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1.0
- office: 직강 / 直講, confidence=1.0
- person: 정렴 / 鄭鍌, confidence=1.0
- person: 이가운 / 李嘉運, confidence=1.0
- person: 장씨 / 張氏, confidence=1.0
- term: 위복 / 復位,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肅宗은 시기를 특정하기 어렵다. 숙종을 가리키는지 다른 임금을 가리키는지 문맥상 숙종으로 추정된다.
- 䟽는 疏(소)의 오기일 수 있으며 ‘상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 政院의 첫 글자가 명확하지 않아 정확한 관청명을 특정하기 어렵다. 정원(政院) 또는 政院으로 추정된다.
황구하
- 기사 ID:
20037_030_005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59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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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16:51:18.94821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059
한글 번역
황구하는 창원 출신으로, 건자진의 5세손이며, 일하와 재종질(四世孫과 再從姪) 관계이다. 현종 임자년에 태어나 字는 성징이다. 숙종 을유년에 등제하여 벼슬에 나아갔다. 성력(聖曆)의 전랑관에서 시작하여 호판(戶判)에 이르렀다. 경종 임인년에 사화가 일어나 이사진에게 무고하여 먼 데로 유배되었다. 영조 을사년에 놓여났고, 영조 무신년에 졸하였다. 향년 57세였다. 그의 공로로奋力武功(분무공)으로 左䝺成(좌진성)에 추증되었다.
독음
황구하 창원인 건자진종오세손 일하재종질 현종임자생 자성징 숙종을유 등엽 성력 전랑관 지호판 경종임인 사화 피 이사진 무원원 몰 영조을사 방환 영조무신년赠 좌䝺성
의미
조선 숙종~영조 연간 관료 黄龜河의 열전이다. 창원 출신으로 현종 임자년(1672) 생, 숙종 을유(1689) 등제 후 전랑에서 호판에 이르렀다. 경종 임인(1721) 사화 때 이사진에게 무고받아 유배되었다가 영조 을사(1725) 풀려났고, 이후 무신(1769)년에 사망, 향년 57세였다.奋力武功으로 左䝺成에 추증되었다.
원문
黃龜河昌原人鍵子璡從五世孫一夏再從姪顯宗壬子生字聖徵肅宗乙酉登謁聖歴銓郞官止戶判景宗壬寅士禍被李師尙誣遠竄英祖乙巳放還戊申卒年五十七以奮武從功贈左䝺成
엔티티 후보
- person: 황구하 / 黃龜河, confidence=0.95
- person: 건자진 / 鍵子璡, confidence=0.9
- person: 이사진 / 李師尙, confidence=0.95
- place: 창원 / 昌原, confidence=0.95
- office: 호판 / 戶判, confidence=0.9
- office: 좌진성 / 左䝺成, confidence=0.8
- term: 일하재종질 / 一夏再從姪, confidence=0.7
- term: 전랑관 / 銓郞官, confidence=0.85
- term: 사화 / 士禍, confidence=0.95
- term: 분무공 / 奮武從功, confidence=0.75
불확실한 어휘
- 一夏再從姪의 구체적 계보 관계 해석
- 左䝺成의 정확한 직위 의미
- 원문 丁字 부분의 탈자 여부
홍석보
- 기사 ID:
20037_030_006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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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홍석보는 만용손의 손자로, 기자의 이민서가 외손이다. 현종 임자년(1654)에 태어났고, 글자를 량신, 호를 수은이라 하였다. 숙종 병자년(1656)에 태어났다. 과거에 병과로 급제하여 을유년(1685)에 문과에 발탁되고 을술년(1686)에 등정시험에 올랐다. 삼사를 역임하였다. 경종 신축년(1721)의 사화 때 영암으로 멀리 유배되어 여러 차례 형벌을 받아 거의 예기치 않은 화근에 빠졌다. 영조 을사년(1725)에 능에서 멀리 유배되었다가 같은 해에 놓여났다. 기백을 역임하고 관직은 이조참의에서 그쳤다. 기유년(1729)에 죽었으며, 향년 오십팔 세였다. 증직으로 좌승승에 올라 성호를 충경이라 받았다. 형제는 문과 출신이고 아우 현보는 아래를 참조하며, 아들 중한은 아래를 참조한다.
독음
홍석보 만용손 음점자 기자 이민서 외손 현종 임자생 자량신 호수은 숙종 병자생 진구중 을유문과 발거 을술등정시험 역사삼사 경종 신축사화 영암원소 여차수형 기함부측지화 영조 을사 출릉원배 동년방환력기백작관지리삼 기유졸 년오십팔 증좌승성호충경제형문과제 제현보간하 자중한간하
의미
조선后期的官僚인 홍석보(1654~1729)의 평전이다. 이민서의 외손으로 현종과 숙종 연간에 활동했으며, 과거에 합격하여 삼사를 두루 거쳐 관직 생활을 하였다. 경종 때 일어난 사화(1721)에 연루되어 영암으로 유배되고 여러 차례 고문을 받았다. 영조 즉위 후 출릉원배로 평반되었으며, 기백 등을 역임하고 이조참의에서 떠났다. 기유년(1729)에 사망, 향년 58세로 추증되었다.
원문
洪錫輔萬容孫䕃僉正重箕子李敏敍外孫顯宗壬子生字良臣號睡隱肅宗丙子生進俱中乙酉文科拔去丙戌登庭試歴三司景宗辛丑士禍靈巖遠竄屢次受刑㡬䧟不測之禍英祖乙巳出陵遠配同年放還歴箕伯官止吏參己酉卒年五十八贈左䝺成諡忠敬[주:兄弟文科弟鉉輔見下子衆漢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홍석보 / 洪錫輔, confidence=0.95
- person: 만용손 / 萬容孫, confidence=0.95
- person: 이민서 / 李敏敍, confidence=0.95
- person: 현종 / 顯宗, confidence=0.98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0.98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0.98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0.98
- person: 현보 / 鉉輔, confidence=0.95
- place: 영암 / 靈巖, confidence=0.95
- place: 기자 / 箕子, confidence=0.9
- office: 이조참의 / 吏參, confidence=0.9
- office: 삼사 / 三司, confidence=0.85
- office: 좌승 / 左承, confidence=0.85
- term: 사화 / 士禍,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정시험 / 庭試, confidence=0.9
- work: 수은 / 睡隱,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정해
- 기사 ID:
20037_030_006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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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정해는 일본인 무군수를 맞이하여 도행의 아들 호의 16촌손으로 자는汝式이다. 숙종 을유년에 进士에 급제하고, 그 해 동년에 成均관에 나아가聖蹟을 배알하였다. 양사의 승지관을 역임하고 월성 윤에 이르렀다. 경종 신축년에 일경이 상소하여 流配之下되어 육적의 한 사람이었다. 영조 을사에서 영천으로 유배되었고, 을해년에 추서하여 벼슬을 추증받았다.
독음
정해 영일인 무군수 도행자호 십육촌 손 자여식 숙종 을유进士 동년등알성력량사승지관지월성윤 경종 신축일경 소하 육적지일 영조 을사 척영천 을해 추률
의미
정해는 숙종 연간에 进士에 급제한 조선后期的 문신이다. 경종 치사년(1721년) 노론 핵심 인물 이일경의 상소로 六賊의 한 사람으로 지목되어 유배되었다가, 영조 연간에 풀려났고, 을해년(1755년)에 추서되었다. 일본인 무군수와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어 대일 외교 업무에 관여했음을 알 수 있다.
원문
鄭楷迎日人武郡守道行子澔十六寸孫字汝式肅宗乙酉進士同年登謁聖歴兩司承旨官止月城尹景宗辛丑一鏡䟽下六賊之一英祖乙巳謫永川乙亥追律
엔티티 후보
- person: 정해 / 鄭楷, confidence=1.0
- person: 무군수 / 武郡守, confidence=0.8
- person: 자호 / 子澔, confidence=0.85
- person: 여식 / 汝式, confidence=0.9
- person: 일경(李麟弼) / 一鏡, confidence=0.85
- place: 영천 / 永川, confidence=0.95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0.95
- office: 월성윤 / 月城尹, confidence=0.85
- term: 육적 / 六賊, confidence=0.9
- term: 추률 / 追律, confidence=0.85
- year: 숙종 을유(1725년) / 肅宗乙酉, confidence=0.95
- year: 신축(1721년) / 辛丑, confidence=0.9
- year: 영조 을사(1729년) / 英祖乙巳, confidence=0.9
- year: 을해(1755년) / 乙亥,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十六寸孫(십육촌손, 16촌 손묘사로 친고손 또는 정확한 대의 해석이 불확실)
- 道行(도행,武郡守와의 관계 불명확)
- 迎日人(영일인, 일본인 맞이 또는 관련 해석)
김희로
- 기사 ID:
20037_030_006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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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김희로는 이세백의 사위였다. 현종 기축년에 태어났으며, 자는 성득이었다. 숙종 임오년에 진사에 급제하고, 경종 임인년에 강화판관이 되었으나 벼슬을 버림받고 돌아왔다. 기묘년에 리산으로 유배되었고, 이어 영주로 옮겨졌다. 영조 을사년에 놓여 환환하여回来官에 돌아갔으나, 벼슬은 호부참의에 그쳤다. 기유년에 사망하여 향년 81세였다.
독음
금희로구자이세백서현종기축생자성득숙종임오진사경종임인이고화판관기귀기묘천리산이영수영조을사방환관지호삼기유졸년팔십일
의미
김희로는 이세백의 사위로서 현종 기축년(1669)에 태어난 조선后期的 인물이다. 숙종 임오년(1702)에 진사에 급제하고 강화판관을 지냈으나, 경종 임인년(1722)에 벼슬을 버림받고 돌아왔다. 기묘년(1723)에 리산으로 유배되었다가 영주로 옮겨졌고, 영조 을사년(1729)에 놓여 환환하였다. 관직은 호부참의에 이르렀으며, 기유년(1745)에 사망, 향년 81세였다.
원문
金希魯構子李世白婿顯宗癸丑生字聖得肅宗壬午進士景宗壬寅以江華判官棄歸癸卯竄理山移永柔英祖乙巳放還官止戶參癸酉卒年八十一[주:孫鍾厚鍾秀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김희로 / 金希魯, confidence=1.0
- person: 이세백 / 李世白, confidence=1.0
- king: 현종 / 顯宗, confidence=1.0
- king: 숙종 / 肅宗, confidence=1.0
- king: 경종 / 景宗, confidence=1.0
- king: 영조 / 英祖, confidence=1.0
- place: 강화 / 江華, confidence=1.0
- place: 리산 / 理山, confidence=1.0
- place: 영주 / 永柔, confidence=1.0
- office: 판관 / 判官, confidence=1.0
- office: 호부참의 / 戶參, confidence=1.0
- office: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term: 자 / 字, confidence=1.0
- term: 유배 / 竄, confidence=1.0
- term: 석방후 귀환 / 放還,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構子(사위)-원문 표기 순서가 일반적 용례와 상이함
- 官止戶參(벼슬이 호부참의에 그침)-향발과 직위 이동 과정이 불분명
이지규
- 기사 ID:
20037_030_006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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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지규가 경종 신축년에 군사주簿의 벼슬로 상서문을 올렸다. (주: 지규가 상서의 주도자가 되어 구정훈과 함께 참여했다.)文中에서, 역적이 궁궐 안에서 일어나 왕자를害하려고、逆節을 꾀하였으니 그 죄상이 명백하니, 절대로 부사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급히 물심으로 심문을 펼쳐 그 결탁한 정황을 캐내야 한다. 윤지술이 교수형을 받은 뒤祭文을 지어 그를 곡하러 갔는데,「求仁得仁, 又何怨焉(仁을 구하면仁을 얻으니, 무엇을 원망하리)」이라는 구절을 썼다. 이 글로 安東縣의 사당에配享하였다. 英祖 시대인 을巳년에 상서를 의결할 때,右議政闵鎭遠이 말하기를 「이지규는 어려서부터 행실과 우애로 칭송을 받았고, 평生 동안 궁핍하였으며, 유배된 뒤에는 더욱 의지할 곳이 없었으나, 여든 살의 나이에 배고픔을 참으면서 책을 읽었으니, 이를賢士라 할 만하다. 그대로 기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임금이 말씀하시길, 「그 당시에 능히祭文을 지어 곡의하였으니, 그 지절이 존경받을 만하다. 그대로 시행하라」고 하셨다. 정형익이 또 그의 기개를 표창해줄 것을 청하였다.
독음
이지규 경종 신축에 군사주簿로 상서하다. 주: 지규가 상서두 구정훈과 동참. 가운대 역적이궁掖에서일어나 東宫을謀害하려고逆節을 만들어그 죄상이분명하니 결코 부사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급히鞫를 베풀어 그 결탁한 정상을 캐내라. 윤지술이법을받은후祭文을지어,哭하러갔다. 求仁得仁,又何怨焉이라는 구절이있다. 이것으로配享하다. 英祖 을사에 상서를 결정할 때,右議政闵鎭遠이 이지규는 어려서부터 行誼로 이름을 듣고 평생 곤궁하였으며, 유배된 후에 더욱 의지할 바가 없었으나, 팔십 살의 나이에 배고픈대로 책을 읽으니 이를賢士라 할 만하다. 그대로 起用함이 좋겠다. 상이 말씀하시길 그 당시에 능히 祭文을 지어 곡하니, 지절이 존경받을 만하다. 그대로 하라 하셨다. 정형익이 또 그 기개를 表창해줄 것을 청하다.
의미
이지규가 경종(景宗) 신축년(1721)에 군사주簿 벼슬로 역모 사건 관련 상서를 올렸다. 윤지술의 교수형 이후 그를 곡하러 가며 求仁得仁의 글을 남긴 것을 英祖가 높이 평가하여 安東縣에 배享시켰다. 을사년(1735) 상서 의결 논의에서 右議政闵鎭遠이 지규의 清白한 행실과 여든 살의 노령에도 곤궁 속에서도 학문을 쉬지 않은 정신을 칭찬하며 기용을 건의했고, 英祖도 그의 지절을 인정하여 그대로 시행했으며, 정형익이 다시 그의 기개를 표창할 것을 청한 사이다.
원문
李志逵景宗辛丑以軍資主簿上䟽[주:志逵為䟽頭具鼎勳同參]曰變起宫掖妖賊作俑謀害東宫逆節彰著决非婦寺所可獨辦急急設鞫鉤得其締結之情迹尹志述㐲法之後操文徃哭有求仁得仁又何怨之句以此配安東英祖乙巳䟽决時右議政閔鎭遠曰李志逵少以行誼見稱平生貪窮被謫之後尤無所頼而八十之年忍飢讀書可謂賢士仍為敍用好矣上曰當其時能行吊祭志節可尙依為之鄭亨益又請奬其氣節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지규 / 李志逵, confidence=1.0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1.0
- person: 구정훈 / 具鼎勳, confidence=1.0
- person: 윤지술 / 尹志述, confidence=1.0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1.0
- person: 민진원 / 閔鎭遠, confidence=1.0
- person: 정형익 / 鄭亨益, confidence=1.0
- place: 안동 / 安東, confidence=0.9
- office: 군사주부 / 軍資主簿, confidence=1.0
- office: 우의정 / 右議政, confidence=1.0
- term: 동궁 / 東宫, confidence=1.0
- term: 부사 / 婦寺, confidence=0.9
- term: 국(심문) / 鞫,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東宫谋害: 역모 사건의 구체적 대상과 정황
- 䟽: 상서문의 通字로 추정되나 고전 표기가 불확실
- 志逵为䟽头: 지규가 상서의 주도자였다는注의 해석
- 操文往哭: 윤지술 곡하러 간 구체적 상황
- 以此配安東: 安東 사당에 배享한 구체적 제향 명칭
황보겸
- 기사 ID:
20037_030_006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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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황보겸이 경종 임인년에 후릉 참봉으로 있으면서 상소하길, 겸이 향곡의 천한 출신으로서 뇌물을 많이 써서 건명에게 비벼 붙고, 단종(조)의 상신 황보인의 적손이라고 거짓 칭호하며 재랑을 무단 점거하였다. 또世相과 마음을 합하여 심복 삼아 그 집에 머물러 있다가,世相이 법에 붙잡혀 밤에 도망쳤으므로, 그 가산을 몰수에 넣었으니, 죽을 줄고岛配를 청하니, 계에 따라 거제에 배치한다.
독음
황보겸인후경종임인을후후릉참봉대계일검이익향곡비천多用화루㧌부건명위칭단종조상신황보인적손모점재랑우세상위심복유접기가세상법승야도방구역지가산혼입적몰청감사도배의계배거제
의미
조선 경종 임인년(1722)에 후릉 참봉 황보겸이 향곡 출신의 천한 신분으로 뇌물을 써서 관료 건명에게 접근하고, 단종 때的重臣 황보인의 적손이라고 거짓 주장하여 재랑 자리를 무단 점거하였다는 탄핵 내용이다. 함께 결탁한世相이 법에 붙잡혀 도망치자, 황보겸의 가산도 몰수하고 사면 감형하여 섬配인 거제에 유배하였다.
원문
皇甫謙仁後景宗壬寅為厚陵參奉臺啓曰謙以鄕曲卑賤多用貨賂㧌附健命偽稱端宗朝相臣皇甫仁嫡孫冒占齋郞又與世相作為心腹留接其家世相㐲法乘夜逃避渠之家產混入籍沒請减死島配依啓配巨濟
엔티티 후보
- person: 황보겸 / 皇甫謙, confidence=0.95
- person: 황보인 / 皇甫仁, confidence=0.9
- person: 건명 / 健命, confidence=0.85
- person: 세상 / 世相, confidence=0.85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0.95
- place: 후릉 / 厚陵, confidence=0.9
- place: 거제 / 巨濟, confidence=0.95
- office: 참봉 / 參奉, confidence=0.9
- office: 재랑 / 齋郞, confidence=0.85
- term: 적몰 / 籍沒, confidence=0.9
- term: 도배 / 島配,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최탁
- 기사 ID:
20037_030_006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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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7T01:43:14.05693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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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최탁이 경종(임금) 즉위년인 기묘년(1720)에 사도(사부四학) 유생들이 상소할 때, 최탁이 상소의 소두(첫 서명자)가 되었다. 상소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송시열은 그저 문인의 도적에 불과하며, 제사 지내는 자의 예우를 더럽혀 조정을 욕보이고 서학 流流을 수치스럽게 하였으니, 부당하게 내려진 제사를 철거해 줄 것을 바라노이다.
독음
최탁 경종 계묘 사도 유생 상소 시에 탁이 소두가 되었다. 상소문에 이르길, 송시열은 극히 사문의 적적이며 조두의 제사 지내는 자로 조정을 욕보이고 사림을 수치스럽게 하였으니, 제请하여 남향을 마구 베푸는 것을 철거하라.
의미
조선 경종 즉위년인 기묘년(1720), 서인 소론계 유생 최탁이 사도 유생들의 상소에 소두로 참여하여 송시열을 강하게 비판한 사건이다. 송시열을 사문의 적적이라 규정하고, 그가 문묘 등에 부당하게 제향되고 있다며 철거를 요청하였다. 이는 숙종 말기 영수학살 이후 지속된 서인 내부 소선두파와 소론파의 대립, 그리고 경종 초기 소론 정권 시기 북인 세력 견제를 둘러싼 논쟁의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원문
崔鐸景宗癸卯四道儒生上䟽時鐸為䟽頭䟽曰宋時烈特一斯文之賊爼豆之享辱朝廷而羞士林請撤去濫享
엔티티 후보
- person: 최탁 / 崔鐸, confidence=0.98
- person: 송시열 / 宋時烈, confidence=0.98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0.95
- office: 유생 / 儒生, confidence=0.92
- term: 소두 / 疏頭, confidence=0.88
- term: 사문 / 斯文, confidence=0.85
- term: 사림 / 士林, confidence=0.88
- term: 남향 / 濫享, confidence=0.82
- term: 조두 / 爼豆, confidence=0.85
- term: 사도 / 四道, confidence=0.8
- term: 상소 / 上疏,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爼豆之享은 제사 예우의 의미를 가진다 하나, 송시열의 문묘 제향 여부와 구체적 연결 관계는 문맥상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이기중
- 기사 ID:
20037_030_006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67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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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4T02:32:18.74230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067
한글 번역
이기중은 경종임금의 임인년에 태어난 생원으로서, 생전에父亲的 사친을 추존하는 것의 부정을 강하게 논했으며, 구진훈과 함께 연명으로 올렸고 동參자는 107인이었다.
독음
이기중 경종 임인년 생원으로 극론 추존사친지비를 구진훈과 연장하여 동삼자 107인
의미
이기중은 경종(1720~1724) 즉위년인 임인년(1720)에 태어난 생원이었다. 그가 생전에 구진훈 등 107명과 연서하여, 임금이 친어나머니를 추존하는 일을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이는 경종 연간에 있던 대표적인 소론파 언론운동으로, 당대 정치적 쟁점이었던 추존사친 문제를 학술적 관점에서 비판한 사건이다.
원문
李箕重景宗壬寅以生員極論追崇私親之非與具晉勳聯章而同參者一百七人
엔티티 후보
- person: 이기중 / 李箕重, confidence=0.98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0.97
- term: 임인 / 壬寅, confidence=0.95
- person: 구진훈 / 具晉勳, confidence=0.95
- term: 추존사친 / 追崇私親, confidence=0.92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93
- term: 연장 / 聯章,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이덕배
- 기사 ID:
20037_030_006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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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덕배는 청주의 유생이었다. 경종 임인년에 상소하여 말하기를, ‘오늘의 징계 토벌의 법은 네 명의 흉악한 자들이 수괴가 되고,凶烈이 괴수로 삼은 데 그치지 않고, 한꺼번에 모두 역적의 법으로審判 단죄해야 합니다.’
독음
이덕배 청주 유생이요 경종 임인년에 상소하여 가로되 오늘의 징계 토벌의 법은 사흘이 수为首凶烈이 수를 괴로 삼은 데 그치지 않고 일괄로 역률로勘断한다
의미
조선 경종 임인년(1722년)에 청주 유생 이덕배가 상소하여, 효종·영조 즉위 과정에서 관련자들에 대한惩討(징계 토벌)의 대상이 사흘(四凶)뿐만 아니라凶烈까지 포함되어야 하며, 이들을 역적의 법으로 일괄审判하라고 주장한 내용이다. 이는 당시 숙청风波과 관련된 사案的议论으로 보인다.
원문
李德培淸州儒生也景宗壬寅上䟽曰今日懲討之典不但四凶為首凶烈為魁一併以逆律勘㫁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덕배 / 李德培, confidence=1.0
- place: 청주 / 淸州, confidence=1.0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1.0
- person: 사흘 / 四凶, confidence=0.9
- person: 흉열 / 凶烈,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凶烈 (사희·정역 등의 당세인물로 추정되나 명확한신분 미확인)
- 䟽 (상소의意思으로 보이나 정자 사용 여부와文中 위치 비정형)
권서봉
- 기사 ID:
20037_030_006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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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권서봉은 경기도의 유학이다. 경종 임진년(1722년)에 상소하여 말하기를, 이인상 등의 두 악당을 왕돈이 무릎을 꿇고 칼로 찌른 옛 일에 의거하여 즉시 추나(죽은 뒤 목을 거두는刑罚)의 법을 시행해야 하며, 채곣과 건명도 한 몸으로 취급하여 함께 시행한 뒤에야 비로소 왕의 신전에 고할 수 있겠다고 하였다. 또한 윤지술, 홍계적, 심경, 서명균, 홍치중, 심공, 송인명의 죄를 논하면서 추방하거나 참형을 가할 것을 요청하였다. 권서봉은 이후 을유년(1728년) 역적의 난에 연루되었다.
독음
권서봉 경기 유학이니 경종 임진년에 상소하여 가로되 이인상 두 악당을 왕돈이 무릎 꿇고 칼로 찌른 일로써 즉시 추나의 법을 시행하소서 채곣과 건명을 한 몸으로 취급하여 함께 시행한 뒤에야 비로소 왕묘에 고할 수 있겠나이다 하였으며 또 윤지술 홍계적 심경 서명균 홍치중 심공 송인명의 죄를 논하고 추방하거나 참바를 요청하였으니 권서봉은 이후 을유년 역적이 되었음
의미
조선 경종 연간에 경기도 유학 권서봉이 1722년 상소를 올려 이인상 등의 두 악당을 추나의 형으로 처벌하고 채곣과 건명도 함께 처리한 뒤 왕묘에 고한 뒤 시행할 것을 청하였다. 아울러 윤지술 등 여러 신하들의 죄를 논하며 추방이나 참형을 요청하였다. 권서봉은 이후 1728년 을유년 역적 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된 인물이다. 이는 조선后期的 정치적 갈등과 관련된 사료로 보인다.
원문
權瑞鳳畿儒也景宗壬寅上䟽曰頤集兩賊依王敦跪剌之事亟行追戮之典采賊與健命一體施行然後可以告廟矣云云又論尹志述洪啓迪沈坰徐命均洪致中沈珙宋寅明之罪請或竄或殛瑞鳳後為戊申逆賊
엔티티 후보
- person: 권서봉 / 權瑞鳳, confidence=0.95
- place: 경기도 / 畿, confidence=0.85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0.95
- person: 윤지술 / 尹志述, confidence=0.95
- person: 홍계적 / 洪啓迪, confidence=0.95
- person: 심경 / 沈坰, confidence=0.95
- person: 서명균 / 徐命均, confidence=0.95
- person: 홍치중 / 洪致中, confidence=0.95
- person: 심공 / 沈珙, confidence=0.95
- person: 송인명 / 宋寅明, confidence=0.95
- term: 유학 / 儒, confidence=0.9
- term: 상소 / 疏, confidence=0.95
- term: 추나 / 追戮, confidence=0.85
- term: 고묘 / 告廟, confidence=0.85
- term: 추방 / 竄, confidence=0.9
- term: 참형 / 殛, confidence=0.9
- term: 역적 / 逆賊,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유하기
- 기사 ID:
20037_030_007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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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유하기는 기손 윤문거의 외손이다. 경종 임인년(1725년)에 남평 부사로 재임하던 중 헌부 탄핵을 받았다. 건달에게 비위를 맞추고 명색 있는 고을 기호 물건의 죄를 범하여, 미움을 받아 주인이 계속하여 풍금을 청하여 관직을罷職하기를 요청하니 그대로 따랐다.
독음
유하기 기손 윤문거 외손 경종 임인년에 남평 임소에서 대간의 탄핵을 만나 건역에 아부하여 명색 고을 기호 기물 죄라 일컬어 미움을 받아 주인이 풍금을 계속 청하여 관직을罷职 할 것을 요청하니 이에 따랐다
의미
조선 시대 관료 유하기가 남평 부사로 재임하던 중 건달에 비위를 맞추고 기물 죄를 범하여 탄핵을 받고 파면된 인사 기사로, 외손관계와 관련人事이 연결되어 있다. 경종 즉위 직후인 1725년에 처리된 인사 사건으로 보인다.
원문
兪夏基棨孫尹文擧外孫景宗壬寅在南平任所遭臺彈曰謟附健賊猥典名邑喜器罪謫作為主人餽遺相繼請罷職依允配機張
엔티티 후보
- person: 유하기 / 兪夏基, confidence=1.0
- person: 윤문거 / 尹文擧, confidence=0.95
- place: 남평 / 南平, confidence=1.0
- term: 대탄 / 臺彈, confidence=0.95
- term: 건역 / 健賊, confidence=0.9
- term: 명색기호 / 名邑喜器, confidence=0.7
- term: 풍금 / 餽遺, confidence=0.85
- term: 파직 / 罷職, confidence=0.95
- term: 배소장 / 配機張,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名邑喜器罪는 ‘명색 고을 기호 기물 죄’로 해석하나, 기물 수급 과정에서 부정 행위가 있었는지 구체적 사연이 불분명함
- 配機張의 전체 의미(배치 장소와 경위)가 문맥상 명확하지 않음
유댁기
- 기사 ID:
20037_030_007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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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유택기가 중진사에 제명된 뒤, 경종 신축년에 이진유가 사간으로서 아뢰기를, ‘유택기가 김용택, 이희지, 침상길 등의 무리들과 깊이 결탁하였다’고 하였다. 유택기는 김용택 등과 함께 옥에 갇혔으며, 홍원으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독음
유택기 중진사 경종 신축년 이진유 이후사간 계왈 유택기와 김용택 이희지 침상길 배 정결주뮤 운운 여용택 등 동입옥중 적홍원 몰어배소
의미
조선 경종 시대, 유택기가 김용택·이희지·침상길 등과 정치적 결탁을 했다는 것으로 사간 이진유의 탄핵을 받았다. 이들은 함께 투옥되었으며, 유택기는 홍원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원문
兪宅基中進士景宗辛丑李眞儒以司諫啓曰兪宅基與金龍澤李喜之沈尙吉軰締結綢繆云云與龍澤等同入獄中謫洪原殁於配所[주:子彦吉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유택기 / 兪宅基, confidence=1.0
- person: 이진유 / 李眞儒, confidence=1.0
- person: 김용택 / 金龍澤, confidence=1.0
- person: 이희지 / 李喜之, confidence=1.0
- person: 침상길 / 沈尙吉, confidence=1.0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1.0
- place: 홍원 / 洪原, confidence=1.0
- office: 사간 / 司諫, confidence=1.0
- office: 중진사 / 中進士, confidence=0.9
윤양래
- 기사 ID:
20037_030_007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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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윤양래는 인경의 6대 손으로, 문승지 리의 아들이다. 현종 기축년에 태어났으며, 자는不详, 호는晦窩이다. 숙종 기묘년에 사마가 되고, 무자에 명경과에 급제하여 삼사를 역임했다. 경종 임인년에 태황자 건저 문제를 상소하여 부사로 파견되어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왔다. 전촉되어 갑산에 유배되었다가 영조 을사년에 풀려났다. 기부장이나 육조관 등을 거치며 벼슬하다가 보조국 판단돈녕에서致仕하고 기사에 들어갔다. 병인년에知中樞로서 조현명에 대해 상소 논쟁을 벌였으나, 임금의 엄한 조칙이 내려져 벼슬을 삭탈당했다. 신미년에 사망하니 향년 79세, 시호는翼獻이다.
독음
윤양래 인경 육세손 문승지 리자 현종 기축생 자不详 호晦窩 숙종 기묘 사마 무자 등명경과 녁삼사 경종 임인 이건저 조청 부사 준사而還 전촉 자 갑산 영조 을사 방환 녁기부장육조관 지도 보조국 판단돈녕 치사 입기사 병인 이지중추 소론 조현명 상하 엄지삭양래직 신미 졸 년칠십구 질역헌
의미
조선后期的官僚 윤양래의略傳이다. 인경의 6대 손으로 현종기에 태어나 숙종기에 급제하여 승진하다가 경종기에建儲 논쟁에 관여하여 부사로 파견되었다가 귀환 후 갑산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났다. 이후 벼슬을 계속하여 보조국 판단돈녕까지 이르렀으나, 병인년에 조현명에 대한 상소 논쟁으로 임금의 엄한 꾸지름을 받아 벼슬을 삭탈당하고, 신미년에 사망했다.兄锡来는文科에兄弟였고,兵參는玄孫泰駿의 직계先祖이다.
원문
尹陽來仁鏡六世孫文承旨理子顯宗癸丑生字季亨號晦窩肅宗己卯司馬戊子登明經科歴三司景宗壬寅以建儲奏請副使竣事而還栫棘子甲山英祖乙巳放還歴箕伯長六曹官止輔國判敦寧致仕入耆社丙寅以知中樞䟽論趙顯命上下嚴旨削陽來職辛未卒年七十九諡翼獻[주:兄弟文科兄錫來兵參玄孫泰駿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윤양래 / 尹陽來, confidence=1.0
- person: 윤인경 / 尹仁鏡, confidence=1.0
- person: 윤석래 / 尹錫來, confidence=1.0
- person: 윤태준 / 尹泰駿, confidence=1.0
- person: 조현명 / 趙顯命, confidence=1.0
- place: 갑산 / 甲山, confidence=1.0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1.0
- office: 삼사 / 三司, confidence=1.0
- office: 지중추 / 知中樞, confidence=1.0
- office: 보조국 판단돈녕 / 輔國判敦寧, confidence=1.0
- office: 병참 / 兵參, confidence=1.0
- term: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1.0
- term: 건저 / 建儲, confidence=1.0
- term: 기사 / 耆社, confidence=1.0
- term: 역헌 / 翼獻,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정린중
- 기사 ID:
20037_030_007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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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8-03T06:08:43.95528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075
한글 번역
정린중의 파손玄孫 이량자가 백부 참봉 이상을 양아버지로 삼았다. 이후 현조 갑인년에 태어났으며, 자는 숙저였다. 의기를 지니고 큰 절개를 가지며, 글을 잘 지어 행동거지가 시종 밝고 정의로운 모습이었다. 강개하고 담담한 성품을 지녀 연고擊筑의 소리와 같은 장중함이 있었다. 왕세자를 세우는 큰 계책에 참여하여 들었다. 벼슬은䕃仕하여義盈庫 직장에까지 이르렀다.景종 신축년에 일어난 재변士禍에 다섯 사람 중 하나로 붙잡혀堂峴에서 곤장을 쳐서 옥에 가두었다. 서른여덟 살의 나이에 영조 을사년에 풀려났고, 순조 임술년에 대사간 백사근의 상疏을 인하여執義로 추증받았다. 아들 정珀 자는汝谷은 아버지와 함께堂峴에서 교수형을 당하였다.
독음
정린중 발현손 이 참봉 이량자위 백부 참봉 이상이 후 현종 갑인년에 나으며 자는 숙저 부의 기 대절 선詞行 부仰 낙색에 은 조 격축성과 건저 대책에 예문하여 䕃仕는義盈 직장에 머물렀으니景종 신축년에 사화하여 오인 중의 하나로 체포되어堂峴에서 고문과 형을 받아 서거하니 나이 사십팔세이었고, 영조 을사에 와서 신원되었다. 순조 임술년에 이르러 대사간 백사근의 소를 인하여執義로 추증하였으며, 아들珀 자는汝谷이 아버지와 동시에堂峴에서 교수형을 당하였다.
의미
정린중은 현종 갑인년에 태어난 조선后期的 문관으로, 의기를 중시하고 시문을 잘 지었다.景종 재위 시 연좌사화五人之一로牵连되어堂峴에서 고문 투옥되었으며 서른여덟 살에 사망 처리되고 48세에 이르러 영조 치세에 신원되었다. 이후 순조대에 白師謹의建白으로 사관執義로 추증받고 아들 정珀 역시 같은 처형을 받은 것으로 기록되었다.
원문
鄭麟重撥玄孫以參奉爾亮子為伯父參奉爾尙后顯宗甲寅生字叔雎負義氣大節善詞行俯仰慷慨有燕趙撃筑聲與聞建儲大策䕃仕止義盈直長景宗辛丑士禍以五人之一被逮受栲掠施刑於堂峴年四十八英祖乙巳伸雪純祖壬戌因大司諫白師謹䟽贈執義子珀字汝谷與父同時堂峴處絞
엔티티 후보
- person: 정린중 / 鄭麟重, confidence=1.0
- person: 이량자 / 爾亮子, confidence=0.95
- person: 이상 / 爾尙, confidence=0.95
- person: 이백 / 爾珀, confidence=0.9
- person: 백사근 / 白師謹, confidence=0.9
- person: 여곡 / 汝谷, confidence=0.85
- place: 당현 / 堂峴, confidence=0.8
- office: 의영고 / 義盈庫, confidence=0.75
- office: 참봉 / 參奉, confidence=0.95
- office: 집의 / 執義, confidence=0.95
- term: 건저 대책 / 建儲大策, confidence=0.9
- term: 연조 격축 / 燕趙撃筑, confidence=0.75
불확실한 어휘
- 䕃仕止義盈直長 전체 구문의 정확한 끊어읽기
- 연조 격축의 구체적 의미
- 五人士禍의 정확한 사건명
- 堂峴의 오늘날 행정구역 상 위치
조경명
- 기사 ID:
20037_030_007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78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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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7T01:44:12.250068+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078
한글 번역
조경명은 풍양 사람으로, 도사 벼슬에 올라 인수(仁壽)의 아들이다. 호는 백분당이고, 자는 석명이다. 종제(從弟)는 김만균이며, 외손은 김시건이다. 서자(壻)는 군석으로 호는 귀락정이다. 중진사(中進士)에 올랐고, 경종 임인년(景宗壬寅年) 이전에 현감으로庭試(청시)에서 장원을 하고, 직접 통정(通政)으로 승진했다. 호용(虎龍)이 변을 고변한 뒤에承旨(승지)로 참여하여 구매(鞫官)하였고, 대사간(大司諫)에 그쳤다. 삼형제 문명·현명과 문과에 동시에 합격했으니, 아래를 참고하라. 그의 서부는 이광덕과 같은 방(榜)인데, 어사(御史)는 갑(甲)이고 서부는 을(乙)이다.
독음
조경명풍양인음도사인수[호백분당]자석명종제김만균외손김시걸서자군석호귀락정중진사경종임인이전현감괴청시직승통정호용고변후이승旨참구매관지고대사간[삼형제문과문명현명하]여기서서이광덕동방이갑서환위을
의미
조경명은 조선 시대 문신으로, 풍양出身, 호는 백분당, 자는 석명이다. 김시건의 서부(壻)이자 김만균의 종제이다. 경종 임인년에 현감 재직 중庭試에서 장원하고, 호용의 옥사에 연루되어 승지·구매관·대사간 등 요직을 역임했으나, 삼형제 문명·현명과 동시에 문과에 합격한 문신 가문 출신이다. 서부는 이광덕과 같은 방 출신으로, 당시 어사(御史)는 갑科, 서부는 을科에 합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문
趙景命豊壤人䕃都事仁壽[주:號白賁堂]子錫命從弟金萬均外孫金時傑婿字君錫號歸樂亭中進士景宗壬寅以前縣監魁庭試直陞通政虎龍告變後以承旨參鞫官止大司諫[주:三兄弟文科弟文命顯命見下]與其婿李匡德同榜而翁為甲婿為乙
엔티티 후보
- person: 조경명 / 趙景命, confidence=0.95
- place: 풍양 / 豊壤, confidence=0.95
- person: 인수 / 仁壽, confidence=0.85
- work: 백분당 / 白賁堂, confidence=0.9
- person: 자석명 / 子錫命, confidence=0.85
- person: 김만균 / 金萬均, confidence=0.95
- person: 김시건 / 金時傑, confidence=0.9
- person: 군석 / 字君錫, confidence=0.85
- work: 귀락정 / 歸樂亭, confidence=0.9
- person: 경종임인 / 景宗壬寅, confidence=0.95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0.9
- office: 통정 / 通政, confidence=0.85
- person: 호용 / 虎龍, confidence=0.95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0.95
- office: 대사간 / 大司諫, confidence=0.9
- person: 문명 / 文命, confidence=0.9
- person: 현명 / 顯命, confidence=0.9
- person: 이광덕 / 李匡德,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이정엽
- 기사 ID:
20037_030_008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80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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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4T11:33:51.09299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080
한글 번역
이정엽은 제도(齊杜孫)의 교관상임[주: 호는 돈옹]이었다. 아들은 이정속이고, 질제(再從弟)는 이현종으로 갑인년에 태어나 자는 광보이며 호는 문양거사이다. 처음에는 송시열에게 수학하고 정도에게 수업을 마쳤다. 학문과 행실, 효도와 의로움을 갖추었으므로 천거되어 순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경종 신축년에储君을 세울 때, 밀히 큰일을 의뢰받아 역적인逆賊을 토멸하고 성상을 모욕하는 죄를 변별하는 것을 자임으로 삼았다. 극력으로䥴積과 윤선거 부자의 간사하고 악한 것으로 나라를 해치는 상황과, 무리들이 충성스럽고 선량한 자들을 도륙살육한 죄상을詳論上疏하였으나, 답이 없었다. 영조 을묘년에 사망하니 향년 예순두 살이었다. 뇌贈하여리议事를赠직했으며, 정조 조대에 이르러 다시追加로리參兼제酒를追贈하였다.
독음
이정엽 제도손교관상임[주:호돈옹]자 이정속 질제 이현종 갑인생 자광보 호문양거사시학어송시열 졸업어정호이학행효의천저순릉참봉부구경종 신축건저시밀의대사이토호역변성제辨성려위기임겁진䥴적급윤선거부자견사화국상태군호도려량지죄소입부보영조 을묘졸년육십이전리정책조조가증리삼겸제주
의미
이정엽(1678-1739)은 조선后期的 문신으로, 송시열과 정도에게 수학한 학자이다. 효행과 의로움으로 천거되어 순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경종 즉위년(1721년)에 왕위 계승 문제와 관련하여 밀명을 받고, 역적을 토灭하고 사면을 방호하는 것을 자임하였다. 특히䥴積과 윤선거 부자의 국가를 해치는 간악함과忠良을 학살한 죄상을 상소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영조 즉위년인 1739년에 사망하였고, 이후 정조대에追加로追贈되었다.
원문
李廷燁齊杜孫教官相任[주:號遯翁]子廷熽從弟顯宗甲寅生字光甫號文陽居士始學于宋時烈卒業于鄭澔以學行孝義薦除順陵參奉不就景宗辛丑建儲時密䝺大事以討凶逆辨聖誣為已任極陳䥴積及尹宣擧父子奸邪禍國之狀羣凶屠戮忠良之罪䟽入不報英祖乙卯卒年六十二贈吏議正祖朝加贈吏參兼祭酒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정엽 / 李廷燁, confidence=1.0
- person: 이정속 / 李廷熽, confidence=1.0
- person: 이현종 / 李顯宗, confidence=1.0
- person: 송시열 / 宋時烈, confidence=1.0
- person: 정호 / 鄭澔, confidence=1.0
- person: 윤선거 / 尹宣擧, confidence=1.0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1.0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1.0
- person: 정조 / 正祖, confidence=1.0
- place: 순릉 / 順陵, confidence=1.0
- office: 리의를 / 吏議, confidence=0.8
- office: 리삼 / 吏參, confidence=0.8
- office: 제주 / 祭酒, confidence=1.0
- term: 문양거사 / 文陽居士, confidence=1.0
- term: 돈옹 / 遯翁,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䥴積 - 원문의 특정 인물을 지칭하는 용어로 보이나 정확한 인물이 불확실함
박사익
- 기사 ID:
20037_030_008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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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박사익은 미서손으로, 참봉 별하(호는 지비재)의 아들이다. 문진장의 사위이다. 숙종 을축년에 태어나 자는 겸지, 호는 오주이다. 경인년에 생원이 되고, 임진년에 등정시에 합격하여 한림원과 전랑을 역임하였다. 경종 계묘년에 사화가 일어나자, 회맹에 참여하지 않은 죄목으로 태인에 유배되었다가 청하로 옮겼다. 영조 을사년에 풀려나와 벼슬에 돌아갔으며, 관직이 병판에 이르렀다. 금원군(金川君)을 습봉받았다. 병진년에 사망하여 향년 62세, 시호는 장효이다.(형제는 문과 출신이고, 아우 박사정은 참판이었다.)
독음
박사의익 미서손 참봉 별하(주호 지비재) 아들 문진장 서방 숙종 을축생 자는 겸지 호는 오주 경인 생원 임진 등정시 역한림 전랑 경종 계묘 사화 이불참 회맹 책태인 이동청하 영조 을사 방환 관지 병판 습봉 금원군 병진 졸년 육십이 시호 장효(주 형제 문과 아우 사정 참판)
의미
조선后期的武臣兼文臣 박사익의 약력이다. 생원·정시 합격으로 벼슬길에 올라 한림원·전랑을 역임하였으나, 경종 연간 사화 때 회맹 불참으로 유배되었다. 영조 때 풀려나 병판에 이르렀고, 금원군을 습봉받았다. 향년 62세로 사망하였다.
원문
朴師益瀰玄孫參奉弼夏[주:號知非齋]子閔鎭長婿肅宗乙卯生字謙之號鷺洲庚寅生員壬辰登庭試歴翰林銓郞景宗癸卯士禍以不參會盟謫泰仁移淸河英祖乙巳放還官止兵判襲封錦原君丙辰卒年六十二諡章孝[주:兄弟文科弟師正參判]
엔티티 후보
- person: 박사익 / 朴師益, confidence=1.0
- person: 별하 / 弼夏, confidence=1.0
- person: 문진장 / 閔鎭長, confidence=1.0
- person: 사정 / 師正, confidence=1.0
- place: 태인 / 泰仁, confidence=1.0
- place: 청하 / 淸河, confidence=1.0
- office: 참봉 / 參奉, confidence=1.0
- office: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office: 정시 / 庭試, confidence=1.0
- office: 한림 / 翰林, confidence=1.0
- office: 전랑 / 銓郞, confidence=1.0
- office: 병판 / 兵判, confidence=1.0
- term: 사화 / 士禍, confidence=1.0
- term: 회맹 / 會盟, confidence=1.0
- term: 책(유배) / 謫,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瀰玄孫은 미서손으로 해석하나 확정적이지 않음
- 사과의 구체적 명칭과 시기가 불분명함
신무일
- 기사 ID:
20037_030_008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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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신무일은 신희복의 6세손이고, 경윤의 손자이다. 시직에 나아가 관직을 수행하였다. 이헌의 아들이자, 자는 경조이며 호는 백연이다. 중진사에 합격하였다. 경종(재위 1720~1724)의 신축년(1721)에 현감으로 부임하여 정시(형정 시험)에 응시하였다. 양사를 두루 역임하였다. 임인년(1722)에 정청(정족리의 청탁)을唯諾(승낙)한 죄로金山에 유배되었다가, 영조(재위 1724~1776)의 을사년(1725)에 풀려나 관직에 돌아왔다. 관직은 대사감에 그쳤다.
독음
신무일희복육세손경윤손시직이헌자경조호백연중진사경종신축이현감등정시력양사임인정이청유낙첩금산영조을사방환관지대사감
의미
조선 중기 문신 신무일의 가계와 관직 이력을 적은 행적문이다. 중진사에 합격한 뒤 현감으로 출발하여 양사(사간원과 사헌부)를 두루 역임하였다. 임인년(1722) 정청 사건에 연루되어金山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을사년(1725) 영조에 의해赦宥되어 관직에 복귀하였으나, 대사감에 머물렀다.
원문
愼無逸希復六世孫景尹孫侍直爾憲子字景祖號白淵中進士景宗辛丑以縣監登庭試歴兩司壬寅以庭請唯諾謫金山英祖乙巳放還官止大司諫
엔티티 후보
- person: 신무일 / 愼無逸, confidence=1.0
- person: 신희복 / 愼希復, confidence=0.9
- person: 경윤 / 景尹, confidence=0.9
- person: 이헌 / 爾憲, confidence=0.9
- person: 경조 / 景祖, confidence=1.0
- person: 백연 / 白淵, confidence=1.0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1.0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1.0
- place: 금산 / 金山, confidence=1.0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1.0
- office: 정시 / 庭試, confidence=1.0
- office: 양사 / 兩司, confidence=1.0
- office: 대사감 / 大司諫, confidence=1.0
- term: 정청 / 庭請, confidence=0.9
- term: 유낙 / 唯諾, confidence=0.9
- term: 중진사 / 中進士, confidence=1.0
- term: 방환 / 放還,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정청唯諾의 구체적 죄명과 정청의 정확한 대상 및 경위
김시혁
- 기사 ID:
20037_030_008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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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김시㷜은 형 김시환의 아우로, 숙종(肅宗) 즉위년인 병진년(1736)에 태어났으며, 자는 휘(晦)이다. 무자년(1748)에 절제에 오르고, 삼사와 홍제관(弘提官)을 역임하였으며, 지위(止)는 판돈녕(判敦寧)이었다. 정기사(耆社)에 들어갔으나, 영조(英祖) 을사년(1765)에 삭직되었다. 경오년(1766)에 사망하여 향년 75세, 시호는 경헌(景憲)이다.
독음
금시㷜 시환제 숙종 병진생 자 휘이 무자등절제력 삼사홍제관 지반돈녕입기사영조 을사삭출 경오졸년 칠십오세 시양경헌
의미
조선中期 문신 김시혁(김시㷜)의 행적을 수록한 기문이다. 숙종 연간에 태어나 무자년 출발(1748)으로 관직에 진출, 삼사와 홍제관을 역임하고 판돈녕에 이르렀다. 정기사에도 들어갔으나 숙종과 영조 치세 전환기에 삭직된 것으로 파악된다. 1766년 향년 75세로 사망하고 시호 경헌을 받았다. 원문 인물명이 金始㷜으로 표기되어 제목 金始爀와 상이하나, 通時된 인물로 판단된다.
원문
金始㷜始煥弟肅宗丙辰生字晦而戊子登節製歴三司弘提官止判敦寧入耆社英祖乙巳削黜庚午卒年七十五諡景憲[주:子尙喆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시㷜(김시혁) / 金始㷜, confidence=0.85
- person: 김시환 / 始煥, confidence=0.9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0.95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0.95
- person: 경헌 / 景憲, confidence=0.95
- office: 절제 / 節製, confidence=0.9
- office: 판돈녕 / 判敦寧, confidence=0.9
- office: 기사(퇴직고관들의 향사) / 耆社, confidence=0.9
- term: 자(표자) / 字, confidence=0.95
- term: 시호 / 諡,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㷜(金始㷜): 원문에는 㷜자가 사용되어 김시별로도 읽힐 수 있으나, 제목 金始爀와同一人物로 판단됨
- 三司弘提官: 三司와 弘提官을 합쳐 서술한 것으로 정확한 직제 구분이 불확실함
- 止判敦寧: 지위(止)의 의미가 직위中止任之意인지 단순 서술인지 명확하지 않음
김창언
- 기사 ID:
20037_030_008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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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김창언은 광찬의 손자이다. 호는 수칭자이고, 김창집의 종제이다. 숙종 병진년에 태어났으며, 자는 자미이다. 벼슬은 찰방에서 그쳤다. 경종 임인년에 사화가 일어나 거짓 죄명 아래 옥에 연루되었다가, 완에 맞아死去하시니 향년 사십칠세였다.
독음
김창언 광찬손 학관 수칭자 창집종제 숙종 병진생 자 자미 관지찰방 경종 임인 사화 자연어어 졸어장하년 사십칠
의미
조선中期의 文人 김창언의 略傳이다. 숙종대에 태어나 경종대 사화(임인사화)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완에 맞아 사망한 비극적 인물임을 보여준다. 벼슬은 中央 관직인 찰방에 그쳤으며, 향년 사십칠세에 절로世를 떠났다.
원문
金昌彦光燦孫學官壽稱子昌集從弟肅宗丙辰生字子美官止察訪景宗壬寅士禍辭連於誣獄卒於杖下年四十七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창언 / 金昌彦, confidence=1.0
- person: 광찬 / 光燦, confidence=1.0
- person: 김창집 / 昌集, confidence=0.9
- person: 자미 / 子美, confidence=1.0
- office: 학관 / 學官, confidence=0.9
- office: 찰방 / 察訪, confidence=1.0
- term: 사화 / 士禍, confidence=1.0
- term: 장하 / 杖下, confidence=1.0
- term: 숙종 / 肅宗, confidence=1.0
- term: 경종 / 景宗,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光燦孫 - ‘광찬손’으로 읽으나 ‘광찬’의 정확한 관계(손자 또는 후손 전반)를 확정하기 어려움
- 辭連於誣獄 - ‘자연어어’(거짓 죄명에 연루됨)로 해석하나 구체적 고발 맥락이 불분명함
박창원
- 기사 ID:
20037_030_008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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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박창원은 밀양 출신으로, 자는 선장, 호는 탐옹이다. 거리의 낮은 집에서 태어났으나 시문(詩文)에 능했다. 집안이 가난하여 책과 조보(官方의 소식지)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였다. 경종(景宗) 임신·신묘년(1697~1698) 무렵, 흉악한 무리들이 행하는 것을 보고 탄식하기를, ‘어찌 능히 내 붓을 더럽히겠는가’ 하고는 이내 글을 쓰지 않게 되었다. 이로써 그의 기개를 볼 수 있으며, 문집이 세상에 전해진다.
독음
박창원 밀양인 자 선장 호 탐옹 생於 여관이 능 시문 가 겸하여 책 조보의자 생계의景종 신임년 간 흉徒 소위 관찰하여歎曰 하인 능 염 오비 수불서지 가이 견 기절 유 문집 행於세
의미
조선 시대 밀양 출신 문인 박창원(1670-1730년대 추정)의 행적을 수록한 기사이다. 가난한 환경에서도 시문创作的 능력을 갖추고, 책과 조보 판매로 생계를 유지했다. 경종 즉위 직후 정국에서 흉악한 무리들의 행위에 분노하며, 자신의 붓을 더럽히는 일을 하지 않겠다며 글쓰기를 중단한 사건이 기록되었다. 이로써 그의 강직한 기개와 양심을 보여주며, 졸고 문집이 전해진 것으로 보아 문학적으로도 인정받았음을 알 수 있다.
원문
朴昌元密陽人字善長號澹翁生於閭巷而能詩文家貪書朝報以資生景宗辛壬年間見凶徒所為歎曰何忍汚我筆遂不書之可以見氣節有文集行于世
엔티티 후보
- person: 박창원 / 朴昌元, confidence=0.98
- person: 선장 / 善長, confidence=0.95
- person: 탐옹 / 澹翁, confidence=0.95
- place: 밀양 / 密陽, confidence=0.97
- place: 여관 / 閭巷, confidence=0.85
- term: 조보 / 朝報, confidence=0.88
- term: 경종 / 景宗, confidence=0.97
- term: 기절 / 氣節, confidence=0.82
- work: 문집 / 文集,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閭巷(여관/거리)의 정확한 통치 사회 계층 지칭 여부
- 凶徒(흉악한 무리)의 구체적 정체
- 不書之의 범위(모든 글쓰기 중단인지 특정 사항만 중단인지)
- 文集의 정확한 명칭과 편년
권익관
- 기사 ID:
20037_030_008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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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권의관은 권익관절의 8세손이다. 대간 권두기의 아들 권익순의 재종제로서 조사의 아내의 조카朴弼顯의 남편이며, 자는弘甫이다. 숙종 임묘년에 호조佐郞으로柑製에 올라 벼슬길에 올랐으며, 삼사를 두루 지냈다. 경종 임진년에諫長으로 있으면서李器之의 아들 李鳳馨을啟請하였다. 정씨의 아들 再興이懸賞으로 사又快正玉法을 얻었다. 이후 벼슬은 北伯에 불과했으며, 英祖时才에 聖躬를 위협하고凶黨을 은밀히 보호한 죄로慶源으로 유배되었다. 무술년에 대계에서追律을請하였다.
독음
권의관
의미
조선中期 관료 권익관의 가계와 관료 경력을 적은 기사이다. 권익관은 권익관절(권두기의 가문)의 8세손으로, 호조佐郞으로 벼슬에 나가 삼사를 두루 지내고 北伯에 이르렀다. 경종대에諫長으로 재직하면서 특정 인물推蔫에 관여했으며, 英祖时才에는 聖躬威胁 및凶黨窩藏혐의로慶源으로 유배되고追律(추궁 처분)을 받았다. 세습적 가문 기반의 관료制 사회상과 政治事案處理 과정이 드러난다.
원문
權益寬節八世孫大諫斗紀子益淳再從弟趙師錫妻姪朴弼顯妺夫字弘甫肅宗辛卯以戶曹佐郞登柑製歴三司景宗壬寅以諫長啓請李器之之子鳳馨鄭字寬之子再興懸賞購得快正玉法後官止北伯英祖乙巳以脅制聖躬隂護凶黨謫慶源戊申臺啓請鞫乙亥追律
엔티티 후보
- person: 권의관 / 權益寬, confidence=0.95
- person: 권두기 / 權斗紀, confidence=0.9
- person: 권익순 / 權益淳, confidence=0.85
- person: 박필현 / 朴弼顯, confidence=0.8
- person: 이기의 / 李器之, confidence=0.85
- person: 이봉형 / 李鳳馨, confidence=0.8
- person: 재흥 / 再興, confidence=0.75
- place: 경원 / 慶源, confidence=0.9
- office: 호조좌랑 / 戶曹佐郞, confidence=0.9
- office: 감제 / 柑製, confidence=0.85
- office: 간장 / 諫長, confidence=0.85
- office: 북백 / 北伯, confidence=0.85
- term: 성공 / 聖躬, confidence=0.9
- term: 흥당 / 凶黨, confidence=0.85
- term: 추율 / 追律,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김홍석
- 기사 ID:
20037_030_008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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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7T01:45:20.34533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088
한글 번역
김홍석은 진사 진규의 아들이며, 자(표자)는 윤보이다. 숙종 갑오년(1654년)에 증광에 급제하였다. 경종 임인년(1722년)에 헌부에서 조정만을 탄핵하였다. 갑진년(1724년)에 교리로 올라 상疏를 올려 이의연의 죄를 극력 논박하고 일경을 구하려 하였으나, 결국 좌폐되었다. 영조 을해년(1755년)에 추렴에 따라 아들 김광수가 정형(공개처형)되었다.
독음
김홍석 세정손 진사진규자 윤보 숙종갑오년 증광에 급제한 경종임인년 헌부에서 조정만을 논핵하였으며 갑진년에 교리로 올라 상疏를 올려 이의연의 죄를 극력 논박하여 일경을 구하려 하니 좌폐되었으며 영조을해년에 추렴에 따라 아들 광수가 정형됨
의미
조선中期의 관료 김홍석의 가계와 행적을 적은 기사이다. 숙종대에 급제하여 경종대에 조정만을 탄핵하고, 갑진년에 교리로 올라 소위 갑진사변 당시 일경(一鏡·李稆)을 구하려 하였으나 좌폐되었다. 이후 영조대에 아들 광수가 추렴에 연좌되어 정형당한 것으로 보인다. 인물 자체보다 가계와 관료 경력, 그리고 후손의 최후가 기록된 짧은 기사이다.
원문
金弘錫世鼎孫進士震奎子字潤甫肅宗甲午登增廣景宗壬寅在憲府論劾趙正萬甲辰以校理上䟽極論李義淵之罪以救一鏡㘴廢英祖乙亥追律子光秀正刑
엔티티 후보
- person: 김홍석 / 金弘錫, confidence=0.95
- person: 진규 / 震奎, confidence=0.9
- person: 윤보 / 潤甫, confidence=0.9
- person: 조정만 / 趙正萬, confidence=0.9
- person: 이의연 / 李義淵, confidence=0.95
- person: 일경(李稆) / 一鏡, confidence=0.85
- person: 광수 / 光秀, confidence=0.85
- period: 숙종 갑오년(1654년) / 肅宗甲午, confidence=0.95
- period: 경종 임인년(1722년) / 景宗壬寅, confidence=0.95
- period: 갑진년(1724년) / 甲辰, confidence=0.9
- period: 영조 을해년(1755년) / 英祖乙亥, confidence=0.95
- office: 헌부 / 憲府, confidence=0.9
- office: 교리 / 校理, confidence=0.95
- office: 증광 / 增廣, confidence=0.9
- exam: 진사 / 進士,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이의천
- 기사 ID:
20037_030_008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89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7-24T11:34:44.04970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089
한글 번역
이의천은 선성군 이무생(定宗의 아들)의 8세손이다. 아버지는 통사 이택이다. 숙종 병진년(1676)에 태어나 자는 사립이고 호는 박직재인데 영조가 내려준 호이다. 海美에 거처하였다. 계사년(1713)에 증광(文科試)에 합격하여 两司(승지, 대사간)를 지냈다. 경종 신축년(1721)에持平(감찰관)이 되어 역적을 토벌하니 하루에 열여덟 번이나 상소하였다. 영암에 유배되었다. 영조 을사년(1725)에 풀려났다. 정미년(1727)에 무리한 잔당들이 다시 권세를 잡고,柳儼·曺命敎 등이遠竄을 청하므로 비로소 사천에 유배되었다. 신해년(1731)에泰安으로 양이되었고, 임자년(1732)에德山으로 옮겼다. 갑인년(1734)에 특별히 풀려났다. 성상을 위해 모함을辯白하고 난신을 토멸하며 역심을 토렴劾하는 상소 글 수십 편이 가을 서리처럼 맹렬하고 한여름烈日처럼 엄숙하였다. 관직은承旨에서 그쳤고, 계유년(1753)에 졸하여 향년 78세였다.
독음
이의천 선성군 무생의 팔세손 통사택의 아들 숙종 병진년생, 자는 사립, 호는 박직재, 영조가 호를 내림, 거하는 곳은 해미, 계사년에 증광에 오름, 양사를 경력, 경종 신축년에 평지로서 역적을 토벌, 하루에 열여덟 번 상소, 영암에 유배, 영조 을사년에 풀려남, 정미년에 군흉이 다시 뜻을 얻고 유엄 조명교 등이 원窜을 청하자 비로소 사천에 유배, 신해년에 태안으로 양이, 임자년에 德山으로 옮김, 갑인년에 특별히 풀려남, 성신을 위해 모함을辩하고 난신을 토하며 역절을 토렴劾하는 상소 글 수십 편이 맹렬한 가을 서리와 같고 엄숙한 한여름의烈日과 같음, 관직은承旨에서 그침, 계유년에 졸, 향년 78세
의미
이의천(1676~1753)은 조선后期的 관료이자 충절의 선비이다. 경종 연간持平으로 하루에 18건의 상소를 올리며 역적을 토벌한 충성파였다. 왕권 찬탈을 도모한 소론 잔당들에 의해 두 차례 유배되었으나, 영조复位 후 풀려났다. 그 뒤 성금과 대비를 위해 모함을辯하고 난신을 토멸하는 상소数十편을 올렸으며, 그 문장이 가을 서리처럼 맹렬하고 한여름烈日처럼 엄숙하여 충절의 상징으로 기억되었다. 관직은承旨에 머물렀으나, 실천과 글의 힘으로 역사에 길이 남은 인물이다.
원문
李倚天宣城君茂生[주:定宗子]八世孫統使澤子肅宗丙辰生字斯立號樸直齋[주:英祖賜號]居海美癸巳登增廣歴兩司景宗辛丑以持平討逆一日十八啓謫靈岩英祖乙巳放還丁未羣凶復得志柳儼曺命敎等啓請遠竄乃謫泗川辛亥量移泰安壬子移德山甲寅特放為聖躬辨誣討亂臣逆節䟽劄啓辭数十凛凛如秋霜肅肅如烈日官止承旨癸酉卒年七十八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의천 / 李倚天, confidence=1.0
- person: 무생 / 茂生, confidence=1.0
- person: 정종 / 定宗, confidence=1.0
- person: 택 / 澤, confidence=0.9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1.0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1.0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1.0
- person: 유엄 / 柳儼, confidence=1.0
- person: 조명교 / 曺命敎, confidence=1.0
- place: 해미 / 海美, confidence=1.0
- place: 영암 / 靈岩, confidence=1.0
- place: 사천 / 泗川, confidence=1.0
- place: 태안 / 泰安, confidence=1.0
- place: 덕산 / 德山, confidence=1.0
- place: 선성 / 宣城, confidence=0.9
- office: 평지 / 持平, confidence=1.0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1.0
- office: 증광 / 增廣, confidence=1.0
- term: 양사 / 兩司, confidence=1.0
- term: 원찬 / 遠竄, confidence=0.9
- term: 양이 / 量移, confidence=1.0
- term: 변오 / 辨誣, confidence=0.9
- work: 박직재 / 樸直齋,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統使澤子
- 茂生[주:定宗子]八世孫統使澤子
- 丁未羣凶復得志柳儼曺命敎等啓請遠竄乃謫泗川
- 為聖躬辨誣討亂臣逆節䟽劄啓辭
이헌
- 기사 ID:
20037_030_009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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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섬(우항)은 숙종조에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군사를 두루 지내고, 결국 북병사 벼슬에 이르렀다. 경종 임인년(1722년) 옥사에 연좌되어 곤장을 맞아 죽었고, 다시 군기시에서 추형까지 받았다. 그 전년에 나이 사십육으로 병도감의 병판으로 추증되었다.
독음
이섬 우항之子 숙종조 등무과 녁 릉목관 지 북병사 경종 임인 사화 졸 어장하又被 추형 어 군기시 전년 사십육 증병판
의미
조선 숙종조에 무과로 출사하여 북병사까지 오른 이섬(우항)이 경종 즉위 직후인 임인년(1722년) 옥사(사화)에 연좌되어 곤장 맞아 죽고, 사후에도 군기시에서追加 처벌을 받은 뒤 병판으로 추증된 인물이다. 젊은 나이에 政治적 옥사에 희생된 무관 출신 관료의 사례이다.
원문
李瀗宇恒子肅宗朝登武科歴騼牧官止北兵使景宗壬寅士禍卒於杖下又被追刑於軍器寺前年四十六贈兵判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섬 / 李瀗, confidence=0.9
- person: 우항 / 宇恒, confidence=0.95
- king: 숙종 / 肅宗, confidence=0.95
- king: 경종 / 景宗, confidence=0.95
- office: 무과 / 武科, confidence=0.95
- office: 북병사 / 北兵使, confidence=0.95
- office: 병판 / 兵判, confidence=0.9
- office: 군기시 / 軍器寺, confidence=0.85
- term: 사화 / 士禍, confidence=0.9
- term: 임인 / 壬寅,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騼牧官(늑목관)의 정확한 직역이 불확실하며, 騼 字의 의미와 이 字가 원문에서 독립된 단어인지 복합어의 일부인지 추가 확인 필요
이재항
- 기사 ID:
20037_030_009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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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재항은 홍연의 아들이며 홍술의 재종질이다. 숙종 무오년(1686)에 태어나 자는 군망이다. 이약의 문인이 되어 무과에 급제하였다. 경종 계묘년(1685)의 붕당 사건에 연루되어 동래부호군으로 부임했다가 유탁기를 위리에서 만나다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영조가 즉위한 갑진년(1724)에 벼슬길에 다시 오를 수 있었으나, 관직은 통사에 그쳤으며, 신해년(1751)에去世하여 향년 54세였다.
독음
이재항 홍연자 홍술 재종질 숙종 무오생 자 군망 이약 문인 등무과 경종 계묘 사화 동래수사往常見 유탁기 위리 중 피격파직 영조 즉위 갑진 몽서 관지통사 신해 졸년오십사
의미
李載恒는 1686년 숙종 무오년에 태어나 이약의 문인으로서 무과에 급제한 조선后期的武官이다. 경종 연간 붕당 사건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가 영조 즉위 후 다시 등용되었으나 벼슬은 통사에 머물렀다. 1751년에 54세로 사망하였다.
원문
李載恒弘遾子弘述再從姪肅宗戊午生字君望李縡門人登武科景宗癸卯士禍以東莱水使徃見兪拓基圍籬中被劾罷職英祖即位甲辰蒙敍官止統使辛亥卒年五十四[주:子國賢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재항 / 李載恒, confidence=0.95
- person: 이약 / 李縡, confidence=0.95
- person: 유탁기 / 兪拓基, confidence=0.9
- period: 숙종 무오(1686) / 肅宗戊午, confidence=0.95
- period: 경종 계묘(1685) / 景宗癸卯, confidence=0.95
- period: 영조 즉위 갑진(1724) / 英祖即位甲辰, confidence=0.95
- period: 신해(1751) / 辛亥, confidence=0.9
- place: 동래 / 東莱, confidence=0.9
- office: 수사(부호군) / 水使, confidence=0.9
- office: 통사(통고사) / 統使, confidence=0.85
- term: 사화(붕당사화) / 士禍, confidence=0.9
- term: 위리(유배) / 圍籬,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再從姪의 정확한 친족 관계 범위
- 蒙敍의 구체적 벼슬 단계
- 統使의 최종 관직명 전체
이진순
- 기사 ID:
20037_030_009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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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진순은 덕성의 아들이며, 진검의 재종제이다. 숙종 무오년에 태어나, 자는 자후, 호는 하서이다. 무자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경종 임인년에 신천군수가 되어 등정시험에 올라 벼슬길에 나섰다. 두 사관(사간원과 홍문관 등)을 두루 역임하고 대사헌에 이르렀다. 동북방면 변경의 동백(동평안도관찰사), 침류(함경도관찰사), 기경(경기관찰사), 완伯(평안감사) 등을 두루 지냈다. 대간의 신분으로 역적 토벌에 참여하여 영조에게 아뢴 공으로 을사년에 숙천에 유배되었다가, 정미년에 특赦로 풀려났다. 서예로 이름이 났으며, 무오년에 완주의 관서에서 별세하였다. 향년 61세. [주: 형제로 문과에 급제한 아우 진순은 아래를 참조할 것]
독음
이진순 덕성자 진검 재종제 숙종 무오생 자후 호하서 무자진사 경종 임인以来신천군수 등정시험 녁량사관 지대사헌 녁동백심유기완伯以来대감参토역게영조 을사以来이거 선천)에 달粛川 정미유환以来선서명 무오 졸우완영임소 년 육십일
의미
조선后期的文臣 李眞淳의 발해와 관료 경력을 기술한 기록이다. 1686년(무오) 태어, 1706년 진사 급제, 信川郡守로 벼슬길에 올라 양사관을 역임하고 대사헌에 이르렀다. 동평안도·함경도·경기·평안 등 여러 지역 관찰사를 두루 지내고, 王政復古 논의와 관련한 역토의 변에 대간 신분으로 참여하여 숙천 유배 후 곧 특赦 환환된 인물이다. 서예로 이름이 높았으며完營任에서 사망하였다.
원문
李眞淳德成子眞儉再從弟肅宗戊午生字子厚號荷西戊子進士景宗壬寅以信川郡守登庭試歴兩司官止大司憲歴東伯沁留畿伯完伯以臺諫參討逆啓英祖乙巳以此竄肅川丁未宥還以善書名戊午卒于完營任所年六十一[주:兄弟文科弟眞洙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진순 / 李眞淳, confidence=0.98
- person: 덕성 / 德成, confidence=0.85
- person: 진검 / 眞儉, confidence=0.9
- person: 진수 / 眞洙, confidence=0.9
- period: 숙종 무오년 / 肅宗戊午, confidence=0.95
- period: 무자년 / 戊子, confidence=0.95
- period: 경종 임인년 / 景宗壬寅, confidence=0.95
- period: 영조 을사년 / 英祖乙巳, confidence=0.95
- period: 정미년 / 丁未, confidence=0.95
- place: 신천 / 信川, confidence=0.95
- place: 숙천 / 肅川, confidence=0.95
- place: 완영 / 完營, confidence=0.88
- office: 군수 / 郡守, confidence=0.97
- office: 정시 / 庭試, confidence=0.9
- office: 양사관 / 兩司官, confidence=0.88
- office: 대사헌 / 大司憲, confidence=0.97
- office: 동백(동평안도관찰사) / 東伯, confidence=0.9
- office: 심류(함경도관찰사) / 沁留, confidence=0.85
- office: 기경(경기관찰사) / 畿伯, confidence=0.88
- office: 완평(평안감사) / 完伯, confidence=0.85
- office: 대간 / 臺諫, confidence=0.95
- work: 진사 / 進士, confidence=0.97
불확실한 어휘
- 伯(완伯/평안감사로 추측되나 완호 구분이 불확실)
- 이 文章中 ‘弟’의 구체적 관계(재종제가 양사관계 혼용 가능)
- 參討逆(역적 토벌 참여)의 구체적 사건
심상길
- 기사 ID:
20037_030_009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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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심상길은 청송사람이다. 영자의 아들이자 기건의 종자이다. 숙종 무오년에 태어났다. 자는 자팔이고 호는 연옹이다. 을미(1715)년에 진사를 합격했으며, 관직은 형조좌랑에 그쳤다. 경종 임인년(1722) 옥사(士禍)의 다섯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내심을 건드려 이끌어냈다는 말)로 문초하여 포교로 위엄을 보이고 형역을 가했다. ‘내심”的问题出在虎龍變書中记载的‘我的心’这样的语句,用来试探和威胁他。所谓‘心’指的是在虎龍變这本书中提到的內容,也就是‘我的心’这个部分。
독음
심상길청송인영자유건종자숙종무오생자기자팔호연옹을미진사관지형조좌랑경종임인사화오인지일피체대학위형이자력지내심위심云者즉호용변서중曰상길이종복관인선왕어필개간사일방알연연군출위인曰오이유의거래득내심내심자연자변역자也表示상길단曰차곧북면어이기극자소과도재재万万
의미
심상길(1578-1643)은 조선后期的 학자로, 청송出身, 字子八, 號蓮翁, 1715년 진사 합격 후 형조좌랑에 이르렀다. 1722년(경종 임인) 옥사로 다섯 명 중 한 명으로 체포되었다. 호용변(虎龍變) 서적으로 왕의 마음을 건드렸다는 죄로 고문과 극형을 받았다. 1766년(영조 병술) 45세에 복관되었고, 순조 임인년(1800)에 추서되어 충宪전한義를 추증받았다. 아들 재당현은 교수되었다.
원문
沈尙吉靑松人櫓子榗從子肅宗戊午生字子八號蓮翁乙未進士官止刑曹佐郞景宗壬寅士禍五人之一柀逮以挑得乃心之語發問威刑以刼之乃心云者即虎龍變書中曰尙吉以宗簿官因先王御筆開刊事一番謁延礽君出謂人曰吾以㣲意挑得乃心乃心者礽字邊乃字也尙吉但曰此豈北靣於貮極者所可道哉乃瞞捧欵辭施極刑于軍器寺前年四十五英祖丙戌復官純祖壬戌贈執義子載堂峴處絞
엔티티 후보
- person: 심상길 / 沈尙吉, confidence=0.98
- person: 자팔 / 字子八, confidence=0.95
- person: 연옹 / 蓮翁, confidence=0.95
- person: 연녕군 / 延礽君, confidence=0.9
- person: 재당 / 子載堂, confidence=0.85
- person: 영자건 / 櫓子榗, confidence=0.88
- place: 청송 / 靑松, confidence=0.95
- place: 군기시 / 軍器寺, confidence=0.92
- office: 종복관 / 宗簿官, confidence=0.85
- office: 형조좌랑 / 刑曹佐郞, confidence=0.95
- office: 집의 / 執義, confidence=0.9
- work: 호용변 / 虎龍變, confidence=0.92
- term: 사화 / 士禍, confidence=0.95
- term: 북면 / 北面, confidence=0.88
- term: 극형 / 極刑,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乃心云者卽虎龍變書中曰에서 호용변 서적의 구체적 인용 문장이었는지 여부
- 万捧欵辭의 정확한 용어 해독 여부
- 연령 및 연호 대입(사망 연령 45세记载와 생몰년 배치 검증 필요)
어유룡
- 기사 ID:
20037_030_009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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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7T01:46:21.62479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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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어유룡은 商子有龜의 증손(贈注書史)이자 재종제이다. 숙종 무오년(1686)에 태어나 字는 景雨이다. 병자년(1696) 19세에 生員이 되었고, 계사년(1713)에 增廣에 합격하였다. 경종 때 三諫臣 중 한 사람이다. 임인년(1722) 司諫에서 벼슬에서 밀려나靈巖으로 유배되었다가泗川으로 옮겨졌다.英祖 을사년(1725)에 풀려나왔다. 이후 東伯과 判尹을 두루 역임하고, 관직은 判敦寧에 이르렀다.耆社에 들어갔고, 을유년(1735)에 88세로 사망하였다. 시호는 貞憲이다.
독음
어유룡 세공 구세손 증주서사 상자유구 재종제 숙종 무오생 자 경우 병자 십구생원 계사등증광 경종 신임 삼간신 중 하나 임인 사간으로 영암이천 이동 사천 영조 을사방환 역 동백 판윤관 지 판단녕 입기사 을유 졸 년 팔십팔 시 진헌
의미
어유룡은 조선 숙종~영조 연간 활약한 관료로, 경종 때 삼간신(三諫臣) 중 한 명으로 정국에 참여했으나 숙종 말~경종 초 정권 교체 과정에서 탄핵을 받아 유배되었다가 영조 즉위 후 다시 기용된 인물이다. 이후 동부윤·판윤 등 요직을 두루 거쳐 판단녕까지 올랐고, 88세로 사망하여 진헌의 시호를 받았다. 생원시 합격 이력이 있어 문과 급제 이전에 이미 학문적 기반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원문
魚有龍世恭九世孫贈注書史商子有龜再從弟肅宗戊午生字景雨丙子十九生員癸巳登增廣景宗辛壬三諫臣之一壬寅以司諫謫靈巖移泗川英祖乙巳放還歴東伯判尹官止判敦寧入耆社乙酉卒年八十八諡貞憲
엔티티 후보
- person: 어유룡 / 魚有龍, confidence=1.0
- person: 어상자 / 魚商子, confidence=1.0
- person: 경우 / 景雨, confidence=1.0
- person: 어상자유구 / 魚商子有龜, confidence=1.0
- person: 삼간신 / 三諫臣, confidence=1.0
- year: 무오(1686) / 戊午, confidence=1.0
- year: 병자(1696) / 丙子, confidence=1.0
- year: 계사(1713) / 癸巳, confidence=1.0
- year: 임인(1722) / 壬寅, confidence=1.0
- year: 을사(1725) / 乙巳, confidence=1.0
- year: 을유(1735) / 乙酉, confidence=1.0
- place: 영암 / 靈巖, confidence=1.0
- place: 사천 / 泗川, confidence=1.0
- office: 사간 / 司諫, confidence=1.0
- office: 동백(동부윤) / 東伯, confidence=1.0
- office: 판윤 / 判尹, confidence=1.0
- office: 판단녕 / 判敦寧, confidence=1.0
- office: 증광 / 增廣, confidence=1.0
- office: 기사 / 耆社, confidence=1.0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term: 진헌 / 貞憲,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增廣(증광): 문과 장원 급제자 명단에 추가된 자, 또는 그 시험
김려
- 기사 ID:
20037_030_009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97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4T02:35:15.03666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097
한글 번역
금려는 원립의 현손으로, 현감 은호의 아들이자 이학의 외손이다. 숙종 을묘년에 태어나 자는 용여였다. 을유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계사년에 참봉으로 증광에 올라 두 사(사간원, 사헌부)와 춘방을 두루 지냈다. 경종이 대리하던 시절, 하늘을 덮을 큰 화가 아침저녁으로 닥쳐올 것 같았고, 온갖凶狠한 무리들이 틈을 엿보며 올 朝가 모두 침묵하던 가운데, 금려만이 떳떳하게 곧은 말을 하였다. 그 논이 홍만을 다룬 일에서 防微杜漸의 길을 깊이 터득하였다. 임인년에 화아가 일어나 관직을 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계묘년에는 左袒凶論으로 영암에 유배되고, 갑진년에는 영조가 즉위하면서 충주로 옮겼다. 을사년에 풀려나와 집의에 오르고, 관직은 通政과 金伯에 그쳤다. 무술년에 세상을 떠나 겨우 쉰 네 살이었다. 아들 낙증(樂曾)은 전성군 곁의 사위로서, 생원으로 올라가 윤지술의 원冤을 글자로 아뢰어 文科에 올랐고, 관직은 正言에 그쳤다.
독음
금려원립현손현감은호자유학외손숙종을묘생자용여을유진사계사이참봉등증광력양사진방경종대리지제톰천지화비조이석군공사극량이감묵려독정색직언소론홍만우사심득방미두천지도임인화작해관귀향계축이좌담혈론배영암갑진영조즉위양이충주을사방환배집의관지통정금백무술 졸년오십사자낙증전성군곧서녀생원소진윤지술지원등문과관지정언
의미
조선 숙종 때 인물인 金礪의 약력이다. 원립의 5대 손으로 현감 은호의 아들이자 이학의 외손이다. 숙종 을묘년(1675) 생으로 자는 용여, 을유년(1689) 진사 합격, 계사년(1713) 참봉으로 벼슬길에 올랐다. 이후 양사와 춘방을 역임하고, 경종 대리 시절 역모를 꾀하던 무리들이 기회만 엿보던 상황에서도 침묵하지 않고 곧은直言으로 대응하였다. 특히 홍만 사건에서 防微杜漸, 작은祸根을 미리 막는道理를 잘 터득하였다. 임인년(1722)에 사건이 터지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고, 계묘년(1723) 左袒凶論으로 유배, 갑진년(1724) 영조即位와 함께 충주로 옮겨졌다. 을사년(1725) 풀려나 집의에 오르고 무술년(1728) 세상을 떠났다. 아들乐증은 전성군의 사위로, 생원에서文科에 합격하여 正言에 이르렀다.
원문
金礪元立玄孫縣監胤豪子李翮外孫肅宗乙卯生字用汝乙酉進士癸巳以參奉登增廣歴兩司春坊景宗代理之際滔天之禍非朝伊夕羣凶伺隙擧朝莫不含默礪獨正色直言所論洪萬遇事深得防㣲杜漸之道壬寅禍作觧官歸鄕癸卯以左袒凶論配靈巖甲辰英祖即位量移忠州乙巳放還拜執義官止通政錦伯戊申卒年五十四子樂曾全城君漷婿以生員䟽陳尹志述之寃登文科官止正言
엔티티 후보
- person: 금려 / 金礪, confidence=1.0
- person: 이학 / 李翮, confidence=0.95
- person: 홍만 / 洪萬, confidence=0.95
- person: 윤지술 / 尹志述, confidence=1.0
- person: 낙증 / 樂曾, confidence=0.95
- place: 영암 / 靈巖, confidence=0.95
- place: 충주 / 忠州, confidence=0.95
- office: 참봉 / 參奉, confidence=1.0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1.0
- office: 집의 / 執義, confidence=1.0
- office: 정언 / 正言, confidence=1.0
- office: 통정 / 通政, confidence=1.0
- office: 춘방 / 春坊, confidence=1.0
- term: 방미두천 / 防微杜漸, confidence=0.95
- term: 톰천지화 / 滔天之禍,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左袒凶論(좌담혈론) - 좌袒와 左袒의 차이, 구체적 논죄 내용 불확실
- 全城君漷(전성군곧) -漷의 정확한 음독 미확인
- 增廣(증광) -,增과 增의 구별
김조택
- 기사 ID:
20037_030_010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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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김조택은 김민택의 아우이다. 숙종 경신(1678)년에 태어나 字는 克念이고, 호는 平齋이다. 신묘(1711)년에 생원에 합격하였다. 경종 신유(1721)년에 경연에 합격하고, 임인(1722)년에 사화가 일어나 잡혔다. 계축(1723)년에 남해도에 유배되었다가 영조 을사(1725)년에 풀려나 돌아와 通政까지 관직에 올랐다. 경자(1730)년에 세상을 떠났고, 향년 51세였다. 뇌판에 추증되었다. 아들의 이름은 후촌이다. 계축(1723)년에 금갑도에 유배되었고, 같은 때 함께 유배된 사람들로는 금조택(禁府에 잡힌 金祖澤), 南海의 刑曹 金德材는 제주에, 金厚材는 금갑도에, 金延澤은치지, 金驥孫은수수자도에, 金善材는정의에, 金俊材는흑산도에, 金偉材는신치지, 金海得는해음도에, 海孫과古今島 養材와用材는횐도에, 金廷澤은남도에, 金福澤은거제에 이르며 모두 섬에 함께 유배되었다.
독음
김조택 민택 제 숙종 경신생 자극념 호평재 신묘생원 경종 신유등정시 임인사화 피체 계축 남해도 배영조 을사방환관지통정완伯 경자 졸년오십일증뇌판자후촌 계축 배금갑도
의미
김조택(1678~1730)은 김민택의 아우로 태어났으며, 1711년 생원 합격, 1721년 경연 합격 후 1722년 사화牵连으로 남해도에 유배되었다. 1725년 풀려나 관직에 복귀하여 通政까지 올랐으나, 1730년 향년 51세로 세상을 떠났다. 뇌판에 추증되었고, 아들의 이름은 후촌이다. 계축년(1723) 같은 해에 다수의 인물들이 각 섬에 동시에 유배되었는데, 김조택은 금갑도에 유배되었다. 유배된 인물들로는 金德材(제주), 金厚材(金甲島), 金延澤(智島), 金驥孫(楸子島), 金善材(旌義), 金俊材(黑山島), 金偉材(薪智島), 金海得(海孫島·古今島), 養材·用材(蝟島), 金廷澤(南桃), 金福澤(巨濟) 등이며 모두 섬 지역에 함께 배소되었다.
원문
金祖澤民澤弟肅宗庚申生字克念號平齋辛卯生員景宗辛丑登庭試壬寅士禍被逮癸卯南海島配英祖乙巳放還官止通政完伯庚戌卒年五十一贈吏判子厚村癸卯配金甲島[주:同時同發配禁府金祖澤南海刑曹金德材濟州金厚材金甲島金延澤智島金驥孫楸子島金善材旌義金俊材黑山島金偉材薪智島金海得海孫古今島養材用材蝟島金廷澤星材南桃金福澤巨濟并島配]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조택 / 金祖澤, confidence=1.0
- person: 김민택 / 金民澤, confidence=1.0
- person: 김후촌 / 金厚村, confidence=1.0
- person: 김덕재 / 金德材, confidence=0.9
- person: 김후재 / 金厚材, confidence=0.9
- person: 김연택 / 金延澤, confidence=0.9
- person: 김기손 / 金驥孫, confidence=0.9
- person: 김선재 / 金善材, confidence=0.9
- person: 김준재 / 金俊材, confidence=0.9
- person: 김위재 / 金偉材, confidence=0.9
- person: 김해득 / 金海得, confidence=0.9
- person: 김정택 / 金廷澤, confidence=0.9
- person: 김복택 / 金福澤, confidence=0.9
- place: 남해도 / 南海島, confidence=1.0
- place: 금갑도 / 金甲島, confidence=1.0
- place: 치지 / 智島, confidence=1.0
- place: 수수자도 / 楸子島, confidence=1.0
- place: 정의 / 旌義, confidence=1.0
- place: 흑산도 / 黑山島, confidence=1.0
- place: 신치지 / 薪智島, confidence=1.0
- place: 고금도 / 古今島, confidence=1.0
- place: 위도 / 蝟島, confidence=1.0
- place: 거제 / 巨濟, confidence=1.0
- office: 통정 / 通政, confidence=1.0
- office: 뇌판 / 吏判, confidence=1.0
- term: 등정시 / 登庭試, confidence=0.9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完伯(완백)_관직명칭 불확실_동의어나오
- 古今島(고금도)_한자 오기 가능성_고금도인지고금도인지추가확인요함
박필현
- 기사 ID:
20037_030_010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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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박필현은 황의 증손으로, 감사를 지낸 태손의 아들이다. 숙종 때 경신년에 태어나고, 경종 때 계묘년에 태어 성장하였다. 영조 무신년에 태인현감이 되어 무사를 거느리고 반란을 일으켜 이미 처형당하고, 가족을 노적하였다. 아들 사제가 역모를 꾀하여 처형되었고, 사질은 㘴诛하였으며, 질의 아들 사려는 을해년에知情한 죄로 처형되었고, 사질은 을해년에 대逆의 죄로 처형되었다.
독음
박필현 황 증손 감사 태손자 숙종 경신생 경종 계묘생 장 영조 무신년에 태인현감으로 칭병하여 유사誅하고 노적하여 아들 사제에게 모逆를 꾀하여誅하고, 사질이 㘴誅하고, 질자 사려이 을해년에知情로誅하고, 사질이 을해년에 대逆로誅하다
의미
조선 시대 인물 박필현의 가계와 그 후손들이 태인현감 재임 중 반란을 일으킨 죄로 처형된 내용을 기술한 기사이다. 박필현 자신이 반란을 주도하여 이미 처형되고 가산이 압수되었으며, 이후 아들들과 손자 등이 역모죄나知情 등 죄명으로 차례로 처형되었다.
원문
朴弼顯潢曾孫監司泰遜子肅宗庚申生景宗癸卯生壯英祖戊申以泰仁縣監稱兵㐲誅孥籍子師濟謀逆誅師質㘴誅姪師䌖乙亥以知情誅師緝乙亥以大逆誅
엔티티 후보
- person: 박필현 / 朴弼顯, confidence=0.95
- person: 감사 / 監司, confidence=0.9
- person: 태손 / 泰遜, confidence=0.85
- king: 숙종 / 肅宗, confidence=0.95
- king: 경종 / 景宗, confidence=0.95
- king: 영조 / 英祖, confidence=0.95
- place: 태인현감 / 泰仁縣監, confidence=0.9
- person: 사제 / 師濟, confidence=0.85
- person: 사질 / 師質, confidence=0.85
- person: 사려 / 師䌖,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黃(황) - 시호인지 호인지 불확실
- 㐲 - 유사誅(이미 처형)와 혼용된 표현으로 추정되나 전신이 불분명
- 㘴 - 유사诛의 다른 표현으로 추정되나 전신이 불분명
- 壯 - 성장 또는 다른 의미로 해석 가능
홍현보
- 기사 ID:
20037_030_010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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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홍현보는 홍석보의 아우이다. 이민서의 외손녀사위이고, 임수(任埅)의 사위이다. 숙종 경신년에 태어났으며, 자는 군거이고 호는 수재이다. 무술년에 참봉으로 과거 시험인 정시에 장원하여 벼슬에 나아가 남상·전랑·참여관 등을 역임하고 예조판서에서 그쳤다. 시호는 정헌이다. 아들 홍붕한과 홍한린은 아래를 참조할 것.
독음
홍현보석보제이민서외손임수서숙종경신생자군거호수재무술이참봉괴정시력남상전랑참여관지기예판시정헌자[붕한린한견하]
의미
조선 숙종·영조 때의 관리 홍현보의 가문과 경력에 관한 간략 기록이다. 이민서의 외손녀사위로서 명문 가문과 혼인관계를 맺었고, 무술년(1698) 과거 장원 합격 후 남상·전랑·참여관 등을 거쳐 예조판서까지 올랐다. 숙종 경신년(1680)생이며 시호는 정헌이다.文中의 任埅는 실존 인물로 보이나 상세사항이 불분명하며, 參奉은 참봉의 오기일 수 있다.
원문
洪鉉輔錫輔弟李敏敍外孫任埅婿肅宗庚申生字君擧號守齋戊戌以參奉魁庭試歴南床銓郞參䝺官止禮判諡貞獻子[주:鳳漢麟漢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홍현보 / 洪鉉輔, confidence=0.98
- person: 홍석보 / 洪錫輔, confidence=0.95
- person: 이민서 / 李敏敍, confidence=0.93
- person: 임수(임埅) / 任埅, confidence=0.7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0.98
- person: 정헌 / 貞獻, confidence=0.98
- office: 참봉 / 參奉, confidence=0.85
- office: 정시 / 庭試, confidence=0.95
- office: 남상 / 南床, confidence=0.9
- office: 전랑 / 銓郞, confidence=0.9
- office: 참여관 / 參䝺官, confidence=0.88
- office: 예조판서 / 禮判, confidence=0.95
- term: 자 / 字, confidence=0.98
- term: 호 / 號, confidence=0.98
- term: 시호 / 諡, confidence=0.97
- term: 외손자 / 外孫, confidence=0.9
- term: 사위 / 婿,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參奉(참봉 오기로 전봉일 가능성 있음)
- 任埅(인물·지명 여부 및 정확한 한국어 독음 불확실)
- 李敏敍外孫의 정확한 문절 관계(혼인관계 해석이 복수 가능)
조상경
- 기사 ID:
20037_030_010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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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조상경은 합의 증손이다. 영도 정도의 아들 보자의 손자이다. 숙종 신유년에 태어나 호는 학당이며, 자는 자장이다. 김창협의 문인이다. 무자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경인년에 증광에 급제하여 삼사의 전랑을 역임하고, 구경에 네 번이나 출사하고, 병판에 다섯 번, 이판에 출사하였으며, 십 년간 전량을 관장하고 수어사를 겸임하였다. 경종 임인년에 사화가 일어나 안주에 유배되고, 계묘년에 양이되어 아산으로 옮겼다. 영조 을사년에 풀려나와 돌아왔다. 관직은 판돈녕에 이르렀으며, 충후하고 노성하여 상하에게 신임을 받았다. 임금이 늘 칭찬하기를 ‘흡탈 손상 인해 물지 않는 마음이 조금도 없다’고 하였으며, 또 ‘곧은 덕을 가진 재상’이라고 하였다. 세상에서도 그를 그렇게 믿었다. 병인년에 여든여섯 살로 졸하였다. 영상의 관직을 추증받고 시호는 경헌이다. 대황제(영조)의 명으로 불조하지 않았다.
독음
조상경 합 증손 영도 정도 보자 숙종 신유생 자 자장 호 학당 김창협 문인 무자 진사 경인 등 증광 역 삼사 전랑 구경 사拜 병판 오拜 이판 십년간 전량 관장 겸수어사 경종 임인 사화 작 안주 계묘 양이 아산 영조 을사 방환 관직은 판돈녕으로 그침 충후 노성 상하에게 신복됨 상이 늘 칭찬하기를 점차 인해물지의 심이 없음 곧 유덕 재상 세상이 믿고 따름 병인 졸 예순여섯 살 증 영상 시 경헌 대황제 명 불조
의미
조선后期的名臣 조상경의 약력이다. 무자년 진사, 경인년 증광 급제하여 삼사 전랑, 구경·병판·이판 등을 역임하고 십년간 전량을 관장한 핵심 관리이다. 경종 임인 사화 때安州에 유배되었다가 계묘년 아산으로 옮겨지고, 영조 을사년에 풀려나와 판돈녕에 이르렀다. 충후하고 노성하여 상하의 신임을 받아 영조대왕이 흡탈 인해 물지 않는 마음이 없다고 칭찬하였다. 병인년 여든여섯 살로 졸하고 영상의 직을 추증받았으며, 시호는 경헌이다.
원문
趙尙絅潝曾孫䕃都正道輔子肅宗辛酉生字子章號鶴塘金昌協門人戊子進士庚寅登增廣歴三司銓郞九卿四拜兵判五拜吏判十年秉銓兼守禦使景宗壬寅士禍謫安州癸卯量移牙山英祖乙巳放還官止判敦寧忠厚老成為上下所信服上每稱之曰無一點傷人害物之心又曰直有德宰相世以為信然丙寅卒年六十六贈領相諡景獻大皇帝丙寅命不祧[주:子暾曮晸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조상경 / 趙尙絅, confidence=1.0
- person: 김창협 / 金昌協, confidence=1.0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1.0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1.0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1.0
- place: 안주 / 安州, confidence=1.0
- place: 아산 / 牙山, confidence=1.0
- office: 삼사 전랑 / 三司銓郞, confidence=1.0
- office: 병판 / 兵判, confidence=1.0
- office: 이판 / 吏判, confidence=1.0
- office: 수어사 / 守禦使, confidence=1.0
- office: 판돈녕 / 判敦寧, confidence=1.0
- office: 영상 / 領相, confidence=1.0
- term: 사화 / 士禍, confidence=1.0
- term: 양이 / 量移, confidence=1.0
- term: 불조 / 不祧, confidence=1.0
- term: 시호 / 諡,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이명좌
- 기사 ID:
20037_030_011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111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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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17:03:33.11146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111
한글 번역
이미좌는 덕흥대원군의 7대 손이다. 도정 벼슬을 지낸 세정의 아들 홍술의 종손이다. 숙종이 재위하던 신유년에 태어나 자는 사우이다. 중진사에 급제하였다. 경종이 즉위한 임인년에 정치적 화를 입어 여섯 명 중 한 명이 되었다. 이 해에堂峴에서 혹형으로 처단되어 서른두 살에 세상을 떠났다. 영조가 즉위한 갑진년에冤枉을 풀어주었으나 후사가 없었다.
독음
이미좌 덕흥대원군 칠세손 도정 세정의 아들 홍술의 종손 숙종 신유생 자사우 중진사 경종 임인 사화를 여섯 사람 중이다 이 해에 당현에서 혹형을 당해 서른둘 살 영조 즉위 갑진에 원冤을 풀어줌 그러나 후사가 없다
의미
조선 숙종·경종·영조 연간 인물인 이미좌의 가계와生平을 적은 짧은 기록이다. 덕흥대원군의 후손으로 태어나 중진사에 급제했으나, 경종 연간에 연좌제(사화)로 투옥되어堂峴에서 혹형으로 처단되었다. 영조 즉위 후 신원이 되었으나 자식이 없었다. 약 100년간의 時隔問題가 있어 원문 전사 오류 가능성도 제기된다.
원문
李明佐德興大院君七世孫都正世禎子弘述從孫肅宗辛酉生字士遇中進士景宗壬寅士禍為六人之一是年被酷刑于堂峴年四十二英祖即位甲辰伸寃無后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미좌 / 李明佐, confidence=0.95
- person: 덕흥대원군 / 德興大院君, confidence=0.95
- person: 세정 / 世禎, confidence=0.9
- person: 홍술 / 弘述, confidence=0.9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0.95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0.95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0.95
- office: 도정 / 都正, confidence=0.85
- office: 중진사 / 中進士, confidence=0.9
- term: 사화 / 士禍, confidence=0.9
- place: 당현 / 堂峴, confidence=0.7
- term: 신유 / 辛酉, confidence=0.85
- term: 임인 / 壬寅, confidence=0.85
- term: 갑진 / 甲辰,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堂峴(당현):的地名인지 행형 장소인지 불확실
- 四十二歲記載와 신유생의 시간 간격이 약 100년으로 원문 전사 또는 계산 오류 가능성 있음
- 從孫 관계의 정확한 가계 연결이 원문만으로 불분명함
신석
- 기사 ID:
20037_030_011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113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4T02:37:53.01630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113
한글 번역
신석은 아버지 정손의 아들이며, 조부 음부사 서화의 손자이다. 숙종 연간 신유년에 태어나 字를 성이라고 하였다. 기묘년에 진사에 급제하고, 무술년에 대구 판관으로 부임하여庭試에 합격하였다. 관직을 두루 거쳐 전랑관에서 응교 직전까지 올랐다. 경종 즉위년인 계묘년에 유죄 판결을 받아 선산에 유배되었다가, 갑진년에 유배지에서 사망하니 향년 사십사세였다. 영조 즉위년인 을사년에 관직이 복관되었다.
독음
신석 정손 음부사 서화자 숙종 신유생 자성의 기묘진사 무술 대구판관으로 정시에 합격하여 전랑관至應教까지 역임하다. 경종 계묘년에 이른諾을 죄로 삼아 선산에 유배되었고, 갑진년에 배소에서 사망하니 향년 사십사세. 영조 을사년에 관직을 회복하다.
의미
조선 숙종대에 진사에 급제하여 관직을 올린 管理晳의 약력이다. 경종 즉위년(1723) 연호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갑진년(1724)에 유배지에서 사망하였다. 사망 이듬해 영조 즉위년(1725)에 복관되었다. 숙종 치세 말기와 경종 즉위 직후의 정치적 변동이、管理晳의 개인 운명에 영향을 미친 사례이다.
원문
申晳晸孫䕃府使瑞華子肅宗辛酉生字聖與己卯[주:十九]進士戊戌以大邱判官登庭試歴銓郞官止應教景宗癸卯士禍以唯諾為罪謫善山甲辰卒於配所年四十四英祖乙巳復官
엔티티 후보
- person: 신석 / 申晳, confidence=0.98
- person: 정손 / 晸孫, confidence=0.92
- office: 부사 / 府使, confidence=0.9
- place: 대구 / 大邱, confidence=0.97
- office: 판관 / 判官, confidence=0.97
- office: 응교 / 應教, confidence=0.93
- place: 선산 / 善山, confidence=0.95
- term: 정시 / 庭試, confidence=0.94
- term: 사고 / 士禍, confidence=0.95
- term: 복관 / 復官, confidence=0.94
불확실한 어휘
- 䕃府使瑞華子肅宗의 문맥상 계보 표기 방식이 불확실하여 䕃府使와瑞華의 관계가 조부 직함과 이름인지 명확하지 않음
임익빈
- 기사 ID:
20037_030_011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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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임익빈은 위진 사람으로, 아버지 주호의 아들이며 호는 농헌이다.中和에 거처하면서 선우흡에게 사숙하였다. 숙종 정유년에 생원으로 도과에 장원 합격하였다. 관직은 부사(府使)로부터 시작하여 사예(司藝)에 이르렀다. 유학자로서 반궁(泮宮)에 다닐 때 사악한 논의가 있었으나, 임익빈이 큰 소리로 말하기를 ‘나는 오직 동국에 송우앙암을 알았을 뿐이다’ 하니,凶徒가 점점 물러났다. 그가 조정에 서자, 사류들이 그를 청직에 끌어들이고자 하였으나, 다른 길을趋向하는 자들에게 가로막혔다.
독음
임익빈위진인주호자호농헌거중화사숙어선우흡숙종정유이생원괴도과력부사관지도사예유시유반궁유사의익빈대언왈오지동국유송우앙암이而已흉도점저급기립조사류욕인지청도위이철자沮格
의미
조선 숙종 연간 선비 임익빈의生平을 적은 기사이다. 그는 위진 출신으로 선우흡에게 수학하여 정유년(1697)에 생원 도과에 장원 합격하였다. 이후 부사부터 관직을 시작하여 사예에 이르렀으며, 반궁 유학 시절 선우흡의 학통을 지키기 위해 宋尤菴을 존숭하는 발언을 하였다. 그가 立朝한 후 清流 인사들이 그를 등용하려 하였으나, 이방 세력에게 견제받았음을 보여준다.
원문
林益彬蔚珍人柱昊子號農軒居中和私淑於鮮于浹肅宗丁酉以生員魁道科歴府使官止司藝儒時遊泮宫有邪議益彬大言曰吾知東國有宋尢菴而已凶徒漸沮及其立朝士流欲引之淸塗為異趨者沮格
엔티티 후보
- person: 임익빈 / 林益彬, confidence=0.98
- person: 선우흡 / 鮮于浹, confidence=0.97
- person: 송우앙암 / 宋尤菴, confidence=0.95
- place: 위진 / 蔚珍, confidence=0.96
- place: 중화 / 中和, confidence=0.85
- place: 반궁 / 泮宫, confidence=0.92
- office: 부사 / 府使, confidence=0.94
- office: 사예 / 司藝, confidence=0.93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95
- term: 도과 / 道科, confidence=0.91
- term: 사숙 / 私淑, confidence=0.9
- term: 청도 / 淸塗, confidence=0.88
불확실한 어휘
- 柱昊子(부호아들의 의미로 보이나 문맥상 아버지 주호의 아들로 추정)
- 農軒(호로 보이나 정확한 의미 미확인)
- 大言(큰 소리로 말함, 확고한 발언의 의미)
- 沮格(저격, 가로막힘의 의미로 추정되나 정확한 고사 활용인지 불확실)
김취로
- 기사 ID:
20037_030_011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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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김취로는 基夏의 사위로 魯에서 태어났다. 숙종 임술년에 태어나 자는 취사, 을유년에 사마에 합격하고 경인년에 증광시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삼사의 춘방을 지냈고, 경종 계묘년 삼성구화 이전에 위산부사로 있다가 유배되고 상주로 이배되었다. 영조 을사년에 석방되어 귀환한 뒤 대헌, 기백, 장, 륙조관 등을 역임하고 숭록에서 의금부 판사로 至하여 경인년에 사망하였다. 향년 오십구세, 시호는 충헌이다.
독음
김취로 구재재 종제 이기하 서 경종 임술생 자 취사 을유사마 경인등 증광력 삼사 춘방 경종 계묘 사화 이전 부사配 위산 이동 상주 영조 을사 방환 역 대헌 기백 장 륙조관 지 숭록 반 의금 강 갑술 졸 년 오십구 희 충헌
의미
조선中期 관료 김취로의略傳이다. 숙종 임술년에 태어나 경인년 증광시 급제 후 삼사 춘방을 지내고 경종대 삼성구화 이전에 위산부사로 있다가 유배·이배되었다가 영조 연간에 석방·복관하여 대헌·기백·장 등 요직을 두루 역임한 뒤 숭록의 품계에서 의금부 판사에 이르렀다. 50세에 졸했다.
원문
金取魯構子在魯從弟李基夏婿肅宗壬戌生字取斯乙酉司馬庚寅登增廣歴三司春訪景宗癸卯士禍以前府使配蔚山移尙州英祖乙巳放還歴大憲箕伯長六曹官止崇祿判義禁庚戌卒年五十九諡忠憲[주:三兄弟文科弟若魯尙魯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취로 / 金取魯, confidence=0.95
- person: 이기하 / 李基夏, confidence=0.85
- place: 위산 / 蔚山, confidence=0.95
- place: 상주 / 尙州, confidence=0.95
- office: 부사(군수) / 府使, confidence=0.85
- office: 대헌 / 大憲, confidence=0.8
- office: 기백 / 箕伯, confidence=0.8
- office: 의금부 / 義禁, confidence=0.9
- term: 삼성구화 / 士禍, confidence=0.9
- term: 증광시 / 增廣,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構子在魯從弟李基夏婿肅宗壬戌生의 정확한 문절 해석
- 配의 의미(유배 관련 용어 여부)
- 庚戌卒年五十九의 정확 연도 확인
- 若魯尙魯見下 주석과의 관계
박인양
- 기사 ID:
20037_030_011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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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박인양은 원정 연간에 태어난 10세손으로,后来 증 참판에 추증되었다. 시화자이며, 숙종 임술년에 태어나 자는 성포, 호는 포옹이다. 갑오년에 사마가 되고, 태학에 있을 때 서간을 올려 동양, 하번, 진동, 구양청에게 사당을 세울 것을 청하여 그를 범했다. 이건명이 특별히 조정에 끌어들였으나 인양은 급진적인 진출을 사양했다. 처음으로 송시열, 송준길이 범인의 논에 따랐다는 논의를 제기했고, 윤지술과 깊은交朋友를 맺었다. 경자년 큰 상에 연서로 3년복을 정했고, 나중에 또 함께 명릉의 묘지문을 고쳐달라고 청했다. 곽수걸 등이卷堂을 일으켜 正을 훼손하는 무리가 되어, 심지어凶門에 가담하고 서술에 참여한다는 등의 말이 있었다. 이에 결심하여 남쪽으로 돌아가再也没有 나오지 않았다. 영조 계미년에 우로로 통정에陞进하고 同중추、同樞에서 그쳤다. 정해년에 졸하고 향년 86세였다.
독음
박인양은 원정(元貞)의 10세손으로, 증 참판(贈參判)에 추증되었다. 시화자(始華子)이고, 숙종 임술년에 태어났으며, 자는 성포(聖甫), 호는 포옹(圃翁)이다. 갑오년에 사마(司馬)가 되었고, 태학에 있을 때 서간(疏)을 올려 동양(董養), 하번(何蕃), 진동(陳東), 구양청(歐陽澈)에게 사당을 세울 것을 청하다가 그에게 죄가 미쳤다. 이건명(李健)이 특제로 조정에 등용시켰으나, 인양은 급진적인 진출을 사양했다. 처음으로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이 범인의 논설에 따랐다는 논의를 제기했으며, 윤지술(尹志述)과 깊은交朋友를 맺었다. 경자년에 숙모의 큰 상이 있었을 때 연서(聯章)로 3년복(三年制)을 정했고, 나중에 또 함께 명릉(明陵)의 묘지문(誌文)을 고쳐달라고 청했다. 곽수걸(郭守傑) 등의 무리가卷堂(捲堂)의 일을 하여 正을 훼손하는 무리들이 되어, 심지어 그 무리에 가담하여 서술에 참여한다는 등의 말이 있었다. 이에 결심하여 남쪽으로 돌아가再也没有 나오지 않았다. 영조(英祖) 계미년에 우로(優老)로 통정(通政)에陞进하고 同중추、同樞에서 그쳤다. 정해(丁亥)년에 졸(卒)하고, 향년 86세였다.
의미
이 기사는 조선后期的 인물 박인양의生平을記한 것이다. 그는 성리학자로 송시열, 송준길의 학통에 비판적 태도를 보였고, 윤지술과 교류하며 북학론에도 참여했다. 大喪時 3년복 시행을 주도하고, 明陵 묘지문 수정 건에도 관여했다. 곽수걸 등의卷入堂 관련 인물과 논쟁을 벌인 후 정치적 갈등을 피해 남쪽으로 귀향하여再也 출사하지 않았다. 영조 연간에 관직에 다시 등용되었으나 同중추에 머물렀고, 86세로 사망했다.
원문
朴麟样元貞十世孫贈參判始華子肅宗壬戌生字聖甫號圃翁甲午司馬在太學䟽請董養何蕃陳東歐陽澈建祠犯之李健命特汲引於朝麟祥以徑進辭首發宋時烈宋浚吉從犯之論與尹志述為莫逆交庚子大喪聯章定行三年制後又同請改明陵誌文與郭守杰等即為捲堂醜正之徒至有跡投凶門名參述䟽等語遂决意南歸仍不出英祖癸未以優老陞通政官止同中樞丁亥卒年八十六
엔티티 후보
- person: 박인양 / 朴麟祥, confidence=0.95
- person: 시화자 / 始華子, confidence=0.85
- person: 성포 / 聖甫, confidence=0.95
- person: 포옹 / 圃翁, confidence=0.95
- person: 송시열 / 宋時烈, confidence=0.95
- person: 송준길 / 宋浚吉, confidence=0.95
- person: 윤지술 / 尹志述, confidence=0.95
- person: 곽수걸 / 郭守杰, confidence=0.95
- person: 이건 / 李健, confidence=0.85
- person: 동양 / 董養, confidence=0.9
- person: 하번 / 何蕃, confidence=0.9
- person: 진동 / 陳東, confidence=0.9
- person: 구양청 / 歐陽澈, confidence=0.9
- place: 태학 / 太學, confidence=0.95
- place: 명릉 / 明陵, confidence=0.95
- office: 참판 / 參判, confidence=0.95
- office: 사마 / 司馬, confidence=0.9
- office: 통정 / 通政, confidence=0.95
- office: 중추 / 中樞, confidence=0.95
- term: 막역교 / 莫逆交, confidence=0.9
- term: 삼년제 / 三年制, confidence=0.9
- term: 권당 / 捲堂, confidence=0.85
- term: 추정 / 醜正, confidence=0.85
- term: 경진 / 徑進, confidence=0.85
- term: 우로 / 優老,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卷堂(권당) 관련 구체적 의미와 사건 맥락이 불확실함
- 凶門의 구체적所指이 불확실함
- 시화자是否是 자호 혼용인지 불확실함
- 원정 연호의 확인 필요
박필정
- 기사 ID:
20037_030_012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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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박필정은 박향의 6세손이다. 아버지는 참봉 세극이고, 어머니는 숙종 갑자년에 태어났다. 자는 계심, 호는 질휴재이다. 거가는 청주에 살았다. 신묘년에 명경과에 급제한 후 양사와 춘방을 두루 역임했다. 경종 신임년 사이에 명분을 수호하고 난적을 토灭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여기며, 장래와 단서(소식通报)를 쓱지 않고 아끼지 않았으나, 많은 사악한 자들에게 밀려나 관직을 삭탈당했다.持平이 되어 윤선거의 문집 판을 파괴할 것을 청했고,掌令이 되어 한배하가 마음대로 하며 법도를 돌보지 않는 죄와 김중기가 교만하고 망령된 죄를 다스렸다. 송시열을 효종 폐정에 배향하고, 남구만·윤지지완·최석鼎을 묘정에 출입하는 것을 파면하도록 청했다. 영조 을사년에 다시 기용되어 벼슬이 左尹에 이르렀다. 병자년에 사망하여 향년 73세였다.
독음
박필정 훤육세손 참봉 세극자 숙종갑자생 자계심 호질휴재 재거청주 신묘등명경과력양사춘방 경종신임간 이부의명토란뢰적위기임 장소단계 무소회피위 군흉소척 소직 이지평청훼윤선거 문집판 이장령힐 한배하 종肆意무기 김중기 교망지죄 청송시열 배효종묘정 우청남구만 윤지완 최석鼎 출묘정 영조을사 부관관지좌윤 병자졸 년73
의미
조선后期的 관료 박필정의 주요生平을 수록한 기사이다. 명경과 급제 후 양사와 춘방을 역임하고, 경종 연간에 정의를 위해 난적을 토灭하겠다는 강한 입장을 취했으나 당파 세력에게 관직을 삭탈당한 인물이다. 이후持平과掌令 등 직임을 통해 윤선거 문집 파판, 한배하와 김중기 처벌, 송시열 배향, 남구만 등 3인의 묘정 출퇴 등의 정론을展开했다. 영조 연간에 다시 등용되어 左尹에 이르렀고, 73세로 사망하였다.
원문
朴弼正薰六世孫參奉世極子肅宗甲子生字季心號逸休齋居淸州辛卯登明經科歴兩司春坊景宗辛壬間以扶名義討亂賊為已任長䟽短啓無所回避為羣凶所斥削職以持平請毀尹宣擧文集板以掌令劾韓配夏縱恣無忌金重器驕妄之罪請宋時烈配孝宗廟庭又請南九萬尹趾完崔錫鼎黜廟庭英祖乙巳復起官止左尹丙子卒年七十三
엔티티 후보
- person: 박필정 / 朴弼正, confidence=1.0
- person: 박향 / 朴弼正薰, confidence=0.95
- person: 세극 / 世極, confidence=0.95
- person: 계심 / 字季心, confidence=1.0
- person: 윤선거 / 尹宣擧, confidence=1.0
- person: 한배하 / 韓配夏, confidence=0.9
- person: 김중기 / 金重器, confidence=0.9
- person: 송시열 / 宋時烈, confidence=1.0
- person: 남구만 / 南九萬, confidence=1.0
- person: 윤지지완 / 尹趾完, confidence=0.95
- person: 최석정 / 崔錫鼎, confidence=0.95
- person: 효종 / 孝宗, confidence=1.0
- place: 청주 / 淸州, confidence=1.0
- office: 참봉 / 參奉, confidence=1.0
- office: 지평 / 持平, confidence=1.0
- office: 장령 / 掌令, confidence=1.0
- office: 좌윤 / 左尹, confidence=1.0
- work: 문집판 / 文集板, confidence=0.95
- term: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1.0
- term: 양사 / 兩司, confidence=0.95
- term: 춘방 / 春坊, confidence=0.95
- term: 묘정 / 廟庭,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長䟽短啓
- 장소단계의 구체적 구별이 불확실함, ‘長䟽短啓’를 장문 상소와 단문 소식通报로 해석
이현록
- 기사 ID:
20037_030_012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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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4T02:38:39.13799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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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현록은 이완원의 현손이다. 그는 이섭의 아들이자 김수항의 외손이며, 권상유의 사위이다. 숙종 갑자년에 태어나 字는 영보라 하였다. 정해년에 이완원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특별히 참봉에 제수되었다. 경종 임인년에 왕을 알현하였다. 그러나 당파에 가담한 죄로 회맹祭에 참여하지 못하여 순흥에 유배되었다. 英祖를사년에 풀려나回来了.完伯을 두루 거치며 관직은 대사헌에 이르렀고,完陵君에 습봉되었다. 경자년에 사망하니 향년 사십칠세였다.
독음
이지현록 후원현손 섭자 김수항 외손 권상유서 숙종갑자생 자영보 정해以来원사손 특제 삼봉 경종임인등알성목以来 당역 부정 회맹제 전순흥 영조을사 방환 역사완백 관지 대사헌 습봉完了군 경자 졸 년사십칠
의미
조선 숙종~영조 연간 인물 이현록의生平을 적은 기문이다.完原氏族으로 특혜를 받아 관직에 나왔으나, 당파 갈등에 연루되어 회맹祭 불참 논란으로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벼슬을 거쳐完陵君에 봉해졌다. 사사십칠세에 사망.
원문
李顯祿厚源玄孫涉子金壽恒外孫權尙游婿肅宗甲子生字永甫丁亥以厚源嗣孫特除參奉景宗壬寅登謁聖目以黨逆不參會盟祭謫順興英祖乙巳放還歴完伯官止大司憲襲封完陵君庚戌卒年四十七
엔티티 후보
- person: 이현록 / 李顯祿, confidence=1.0
- person: 김수항 / 金壽恒, confidence=1.0
- person: 권상유 / 權尙游, confidence=1.0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1.0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1.0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1.0
- person: 완릉군 / 完陵君, confidence=1.0
- place: 순흥 / 順興, confidence=1.0
- office: 참봉 / 參奉, confidence=1.0
- office: 대사헌 / 大司憲, confidence=1.0
- office: 완백 / 完伯, confidence=0.95
- term: 회맹제 / 會盟祭, confidence=0.9
- term: 사손 / 嗣孫, confidence=0.85
- term: 외손 / 外孫,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完伯은 관직명이나 호칭으로 명확하지 않음. 세자배설·영의정 등의 다른 관직으로 보기도 함
김광택
- 기사 ID:
20037_030_012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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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7T01:50:21.24281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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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金光澤은 김용택의 아우이며,闵鎭厚의 사위이다. 숙종을축년(1685)에 태어나 字는 德輝이고, 호는 存吾齋이다. 경종 신축년(1721)에進士에 합격하였고, 임인년(1722) 사화가 일어났을 때 장기(長鬐)에 유배되었다. 영조 을사년(1725)에 놓여 풀려나 여주에 은거하며 스스로 조용히 처신하였다. 임술년(1742)에 사망하였으며, 향년 58세였다.
독음
金光澤은 龍澤의 아우이며 閔鎭厚의 사위이다. 숙종 을축년에 태어나 字는 德輝이며 號는 存吾齋이다. 경종 신축년에進士에 뽑혔고, 임인년에 사화가 일어나자 장기(長鬐)에 유배되었다. 영조 을사년에 놓여 풀려나서 여주에 퇴거하여 스스로 조용히 처신하며 살았다. 임술년에 죽었으며, 향년 58세였다.
의미
조선后期的 文人인 金光澤의 行履를 수록한 기사로, 영·정 시대 정치적 사건과 관련하여 进土 합격, 임인년사화 때 유배, 이후 귀환하여 여주에서 은거하다 사망한 과정을 기록하였다. 그의 생몰년을 추산하면 1685년생, 1742년몰이다.
원문
金光澤龍澤弟閔鎭厚婿肅宗乙丑生字德輝號存吾齋景宗辛丑進士壬寅士禍謫長鬐英祖乙巳放還屏居驪州杜門自靖壬戌卒年五十八
엔티티 후보
- person: 김광택 / 金光澤, confidence=1.0
- person: 용택(김용택) / 龍澤, confidence=1.0
- person: 민진후 / 閔鎭厚, confidence=1.0
- person: 덕휘(자) / 德輝, confidence=1.0
- person: 존아재(호) / 存吾齋, confidence=1.0
- term: 사화 / 士禍, confidence=1.0
- place: 장기 / 長鬐, confidence=1.0
- place: 여주 / 驪州, confidence=1.0
- term: 進士,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字德輝는 표자(字)로서 현대 한국어 대응어를 따로 두기 어려운 고유 명칭이므로 그대로 두었다.
홍성보
- 기사 ID:
20037_030_012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125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8-03T06:14:17.76964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125
한글 번역
홍성보는 여상의 5대손으로, 생원 중화의 아들이며 숙종을축(1725)년에 태어났다. 자는 유량이고 호는 삼성와이다. 일찍 고아가 되었으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아 문장이 홀연히 진보하여 선비 친구들 사이에서 인정받았다. 경인년에 사마景宗(景宗)의 신유년 이전에 삼봉(三奉)으로 등용되어 증광특제(增廣特除)로 옥당(玉堂)에 오르니, 처음에 기주(記注)가 되었다. 이때 흉도(凶徒)의 전계(傳啓)를 보았으나 임금이 발낙(發落)이 없었고, 나중에 ‘允’ 자가 서하(書下)되자 비로소 흉도의 소행임을 알게 되어 돌아가서 바르게 되었다. 이에 흉도들에게 무곡(誣告)을 당하여 영월부사(寧越府使)가 되었다. 단종(端宗)이 승하(陟遐)할 때 여사(侍女)가 투수한 곳에 ‘落花巖(낙화암)’ 세 자를 석 위에 새기고 집을 지어愍忠(민충)이라 이름하며 전지를 놓아 수리에게 속하게 하고 매년 한식에 제사지냈다. 관에서 졸하자 관직은 대사감(大司諫)에 머물렀다.
독음
홍성보 여상오세손 생원중화자 숙종을축생 자유량호 삼성와 조고이수불석권 조사骤진견추사우간 경인 사마경종 신유이전 삼봉 등증광특제 옥당 시위기주 시견흉도전계이상무발락급출이자允서하 시지흉도지소위 수귀정 내이 위흉도시위 영월부사 於단종 첵하 시 여사투자사처 각락화암삼자어석 구옥이면명일 민충 치전이속수리 매년 한식일제지 졸어관 관지 대사감
의미
홍성보는 1725년 숙종을축년에 태어난 조선 후기 관료이다. 일찍 부모를 여이에도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아 문장이 뛰어났고, 벼슬길에 올라 옥당 기주관이 되었다. 흉도(凶徒)의 전계를 보고 이를 즉시 보고했으나 임금이 반응이 없자 이후 ‘允’ 자가 내려오자 비로소 진실을 알게 되어 그들을 정당하게 처리했다. 그러나 역으로 흉도들에게 무곡을 당해 영월부사로 좌천되었다. 단종이 승하할 때侍女가 투신한 장소에 낙화암 세 글자를 새기고 민충사를 지어 한식제사를 지냈다. 벼슬은 대사감에 그쳤다.
원문
洪聖輔履祥五世孫生員重華子肅宗乙丑生字幼良號三省窩早孤而手不釋卷藻思驟進見推士友間庚寅司馬景宗辛丑以前參奉登增廣特除玉堂始為記注時見凶徒傳啓而上無發落及出以曰允書下始知凶徒之所為遂歸正乃已為凶徒所誣為寧越府使於端宗陟遐時侍女投死處刻落花巖三字於石搆屋而名曰愍忠置田而屬首吏每年寒食一祭之卒于官官止大司諫
엔티티 후보
- person: 홍성보 / 洪聖輔, confidence=1.0
- person: 여상 / 履祥, confidence=1.0
- person: 중화 / 重華, confidence=1.0
- person: 유량 / 幼良, confidence=1.0
- person: 여사 / 侍女, confidence=1.0
- place: 영월 / 寧越, confidence=1.0
- place: 낙화암 / 落花巖, confidence=1.0
- office: 옥당 / 玉堂, confidence=1.0
- office: 삼봉 / 參奉, confidence=1.0
- office: 대사감 / 大司諫, confidence=1.0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term: 기주 / 記注, confidence=1.0
- term: 민충 / 愍忠, confidence=1.0
- term: 한식 / 寒食,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藻思驟進의 구체적 의미
- 增廣特除의 정확한 벼슬 등용 방식
- 陟遐의 구체적 맥락 및侍女 투신의 상황
- 屬首吏의 정확한 구조와 수리 관할 관계
이의종
- 기사 ID:
20037_030_012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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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의종은 이안대군의 12대손이다. 이억영의 아들을 양아들로 삼아 이형운의 가호를 받았다. 태조는 경종(景宗) 갑축년에 태어나 자는 德之이다. 임신년에 증광에 합격하여 양반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여러 고을의 관리를 지내고 정장령에서 그쳤다.景宗 계묘년에 흉악한 무리가 이의종을 모함诬陷하였다.承旨 李世德이 계启하여 말하기를, “전 현감 李義宗은 그 생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난 뒤에 재물을 탐내어 외종숙의 재산을 빼앗으려 하고, 형제와 여러 삼촌이 만류하는 것을 단호히 뿌리치며 스스로 양자가 되기를 구하였습니다. 이 어찌 사람이 행할 수 있는 일입니까.” 하였다. 집 가까이에 있는 노비 출신의賊[주: 다른 기록으로는 ‘喜之에게 붙어 섬겼다’고도 한다]에게 스스로 종부리처럼 부리며,等到 그자가 법에 처해지자 비근친척처럼 애도하였다. 邊配를 청하여鐵山에 유배되었다. 英祖 을사년에赦免되어 돌아왔다.
독음
이의종
의미
조선中期의 管理 李義宗은 이안대군의 12대손으로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을 올렸으나, 경종 연간에 자신의 친생父母를 떠나 재산을 탐내어 외종숙의 양자가 되려는 등 도덕적 비행으로 同僚 李世德의弾劾을 받았다. 또한 집 주변의 노비 출신 인물과 결탁하여 그를 부하처럼 부렸고, 그 인물이 죄에 묻혀 처형되자 가장親戚처럼悲嘆하였다. 이 죄명으로邊配를 청해鐵山에 유배되었다가英祖 연간에赦免되어 풀려났다. 양자를 둘러싼 재산 분쟁과 비인격적 행위가非難의 핵심 사유였다.
원문
李義宗義安大君和十二世孫以億齡子為族叔亨運后肅宗乙丑生字得之癸巳登增廣歴兩司諸郡官止掌令景宗癸卯凶徒搆誣承旨李世德啓曰前縣監李義宗其本生父母俱沒後利其寸外族叔之財產牢拒兄弟諸父之力自求為後此豈人理所忍乎家近喜賊[주:一云附托喜之]自同奴隷及其㐲法如悲親戚請邊配乃謫鐵山英祖乙巳宥還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의종 / 李義宗, confidence=0.95
- person: 이억령 / 李億齡, confidence=0.85
- person: 이형운 / 李亨運, confidence=0.85
- person: 이세덕 / 李世德, confidence=0.9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0.95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0.85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0.9
- person: 이안대군 / 義安大君, confidence=0.9
- place: 철산 / 鐵山, confidence=0.85
- office: 장령 / 掌令, confidence=0.85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0.85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0.8
- work: 증광 / 增廣,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寸外族叔(寸의 해석)
- 家近喜賊(구체적 의미)
- 㐲法(㐲자의 정자 확인)
유복명
- 기사 ID:
20037_030_012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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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유복명은 속(穡)의 5대손이다. 도사성자의 아들로서 숙종 을축년(1685)에 태어나 자는 양휘이고 호는 만촌이다. 신묘년(1679)에 생원이 되었고 병신년(1696)에 절제와殿試에서 모두 수석으로 급제하였다. 양사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고 판돈녕에 이르렀다.景宗朝에 상疏를 올려 풍辉와泰耉의 죄를 논박斥責하였다. 英祖 경진년에 사망하였으며 향년 76세였다.
독음
유복명 속오세손 도사성자 숙종 을축년에 태어나 자는 양휘 호는 만촌 신묘 생원(1679) 병신에 절제와殿試의 수석으로 급제하고 두루 양사의 관직을 역임하여 판돈녕에 이르렀으니 경종조에 상疏를 올려 풍辉와泰耉의 죄를 논박하였으며 영조 경진년에 사망하고 향년 76세였다
의미
조선中期의 管理文學者인 유복명(1644~1719)의 行狀이다. 속의 5대손으로 숙종 1685년에 태어나 만촌이라는 호를 사용하였다. 1679년 생원, 1696년 武科文武科 급제로 관료에 진출하여 양사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고 종종 판돈녕에 올랐다.景宗朝에 重臣인 풍辉와泰耉 등의 죄를 상疏로 논박하였으며 英祖 시대인 1719년에 사망, 향년 76세였다.
원문
柳復明穡五世孫都事宬子肅宗乙丑生字陽輝號晩村辛卯生員丙申登節製魁殿試歴兩司官止判敦寧景宗朝上䟽論斥鳳輝泰耉之罪英祖庚辰卒年七十六
엔티티 후보
- person: 유복명 / 柳復明, confidence=0.98
- person: 도사성 / 都事宬, confidence=0.92
- person: 양휘 / 字陽輝, confidence=0.95
- person: 만촌 / 晩村, confidence=0.98
- person: 풍휘 / 鳳輝, confidence=0.88
- person: 태구 / 泰耉, confidence=0.88
- period: 숙종 을축(1685) / 肅宗乙丑, confidence=0.97
- period: 신묘(1679) / 辛卯, confidence=0.97
- period: 병신(1696) / 丙申, confidence=0.97
- period: 경종조 / 景宗朝, confidence=0.95
- period: 영조 경진(1720) / 英祖庚辰, confidence=0.85
- office: 양사(사간원·사헌부) / 兩司, confidence=0.9
- office: 판돈녕 / 判敦寧, confidence=0.95
- office: 절제와殿試의 수석 / 節製魁殿試, confidence=0.9
- term: 5대손 / 五世孫, confidence=0.95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98
- term: 급제 / 登, confidence=0.95
- term: 상疏 / 上䟽, confidence=0.95
- term: 논박斥責 / 論斥, confidence=0.88
- term: 향년 76세 / 卒年七十六, confidence=0.97
불확실한 어휘
- 泰耉의 한자음(태구) 및 정확한 인물이 불확실
- 風輝泰耉가 구체적으로 何人을 가리키는지 문맥 추가 확인 필요
- 절제魁殿試의 구조(병시과 武科 급제 방식) 추가考證 필요
이명회
- 기사 ID:
20037_030_012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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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명회는 명조의 아우로서, 숙종 을축(1685)년에 태어나 자는 제숙이다. 중진사가 되었고, 경종 임인(1722)년 기사 사건 때 명조의 동생으로서 대부彈劾에 올랐다가 위도에 유배되었다. 영조 을사(1725)년에 사면되어 돌아왔으며, 특명으로 대원군을 받들었다. 사직 도정이 되었다가 을미(1729)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향년 마흔셋 살이었다. 뒤에 추증하여 이리판이 되었다.
독음
이명회 명조제 숙종을축생 자제숙 중진사 경종임인 기사祸 명조의 아우로 대부에 오르고 대부彈劾을 열어 위도에 귀양 갈하다 영조을사에서 사면되어 돌아오다 특명으로 대원군을 받들어 사직 도정이 되다 을미년에 졸하니 향년 사십삼세 되니 추증하여 이리판이 되다
의미
조선中期의 관리 이명회의 行狀이다. 숙종 때 태어나 중진사에 올랐고, 경종 때 기사 사건에 연루되어 위도에 유배되었다. 이후 영조 즉위 직후 사면되고, 특명으로 대원군爵位를 받았다. 사직 도정으로 있다가 을미년에 향년 43세로 사망하였고, 추증으로 이리판이 되었다. 형 이명조와 함께 기사 사건의 受殃자였다.
원문
李明會明佐弟肅宗乙丑生字際叔中進士景宗壬寅士禍以明佐之弟登臺啓謫蝟島英祖乙巳宥還以特命奉大院君祀都正丁未卒年四十三贈吏判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명회 / 李明會, confidence=1.0
- person: 이명조 / 李明佐, confidence=1.0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1.0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1.0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1.0
- place: 위도 / 蝟島, confidence=0.9
- office: 중진사 / 中進士, confidence=1.0
- office: 대부(탄핵입啟) / 臺啓, confidence=0.85
- office: 대원군 / 大院君, confidence=1.0
- office: 도정 / 都正, confidence=1.0
- office: 리판 / 吏判, confidence=1.0
- term: 기사사건 / 士禍, confidence=0.95
- term: 사면돌려보냄 / 宥還, confidence=0.9
- term: 추증 / 贈,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홍철인
- 기사 ID:
20037_030_013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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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홍철인은 홍의인의 아우이다. 숙종 정묘년(1747)에 태어났으며, 자는 명숙이고, 중진사가 되었다. 경종 임인년(1722)의 학사(실학자弾劾 사건)에 그 형 홍의인과 함께 六人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 체포되었을 때, 일경(一鏡) 등이 그를 능욕하며 죽음에 임한 순간에 至於愚弄하려 하자, 철인은 눈을 크게 뜨고 위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번에 소위 결안(結案) 취초(取招)할 때에率用此例한 것이 이로 말미암아 알 수 있다.」라고. 이에 于打之下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36세였다. 영조 을사년(1725)에 그를伸雪하고, 후에持平을追贈하였으며, 대황제 정묘년에 이르러 더하여吏參를追贈하였다.
독음
홍철인 의인제 숙종정묘생 자명숙 중진사 경종임인사화 여형의인병참육인급피체 일경등욕봉지만어수의지際 철인장목앙시왈금번소위결안취초솔용차렬가지식遂殞於杖下년삼십육 영조을사신설 후증편치대황제정묘가증삼참
의미
홍철인은 조선 숙종 때 태어난 학자로, 경종 임인년 학사 사건에 그 형 홍의인과 함께 六臣으로 참여하였다. 체포된 후 일경(一鏡) 등에게 능욕당하면서도 곧게 죽으며, 죽기 직전 결안 취초에 예우를濫用함을 비판하였다. 향년 36세로 于打之下에서 순절하였고, 영조 때伸雪되어 관직이追贈되었다. 영조 대에 이르러追贈秩品이 加增되었다.
원문
洪哲人義人弟肅宗丁卯生字明叔中進士景宗壬寅士禍與兄義人並參六人及被逮一鏡等欲捧遲晩於垂死之際哲人張目仰視曰今畨所謂結案取招率用此例可知遂殞於杖下年三十六英祖乙巳伸雪後贈持平大皇帝丁卯加贈吏參
엔티티 후보
- person: 홍철인 / 洪哲人, confidence=1.0
- person: 홍의인 / 洪義人, confidence=1.0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1.0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1.0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1.0
- person: 일경 / 一鏡, confidence=1.0
- term: 육인 / 六人, confidence=1.0
- office: 중진사 / 中進士, confidence=1.0
- office: 편치 / 持平, confidence=1.0
- office: 삼참 / 吏參, confidence=1.0
- term: 결안 / 結案, confidence=1.0
- term: 취초 / 取招, confidence=1.0
- term: 사화 / 士禍,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大皇帝 정묘년의 정확한 계칭 의미
- 垂死之際의 문맥상 일경 등의 구체적 행위 묘사
윤지
- 기사 ID:
20037_030_013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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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윤지가 상자의 아들이자 자를 씨심이라 하였다. 경종 임금 연간 계묘년에 일경·호용 등의 무리가 선량한 사람들을 해친 뒤 정시를 설치하였다. 상의 조카 슬도 이 옥사에서 죽었다. 윤지는 이전의 참봉직으로 양양하게 그 과목에 응시하여 방에 올랐다. 그父子의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조임금이 즉위한 갑신년에 여러 사람의 억울함이 풀려 그科를 취소하였다. 정미년에 다시 복귀하여 이미持平이 되었고, 아버지의 죄로 인해 탐라에 유배되었다가羅州로 옮겼다. 을해년에 밀서를 몰래 던져 투옥되어 곤장打我아프다. 아들 광철이 대역모반죄로 임금이 친히崇禮門에서 처참하였고, 형 희철은 교수형에 처하였다.
독음
윤지가 상자(商子)의 자(字)를 씨심(士心)이라 하고 경종(景宗) 계묘(癸卯)년에 일경(一鏡)·호용(虎龍) 등의 무리가 선류(善類)를 해치고 이후 정시(庭試)를 설치하였다. 상(商)의 조카 슬(慤)도 이 옥(獄)에서 죽었다. 그리고 윤지는 이전의 참봉(參奉)으로 양양(揚揚)히 그 과목에 참가하여 방(榜)에 올랐다. 그父子의 무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영조(英祖)가 즉위하시어 갑신(甲辰)년에 여러 사람이伸雪하니,仍하여 그科를削하였다. 정미(丁未)년에后又 다시 하고 이미持平이 되었고, 아버지의累로하여 탐라(耽羅)에謫하고羅州로移하였다. 을해(乙亥)년에凶書를潜投하여拿鞫杖斃하였다. 아들 광철(光喆)이 대역불도(大逆不道)로 친림(親臨)崇禮門에서 처참(處斬)하였고, 형 희철(希喬)은絞하였다.
의미
조선 시대 윤지(尹志)는 상자의 아들로 일경·호용 등의 당색과 연관된 인물이다. 영조 즉위 후 당색 내的分사들의 옥사가 풀리며科가 취소되었다가后来 복귀하여持平이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죄로 탐라와羅州로 유배되었다. 을해년에는密投凶書하여投獄되어 곤장打我아프다. 아들 광철이 대역불도죄로崇禮門에서 처참되고 형 희철은 교수형당했다.父子의 무리한 행위와 비극적 결말을記錄한 기사이다.
원문
尹志就商子字士心景宗癸卯一鏡虎龍軰戕害善類後設庭試就商姪慤亦死此獄而志以前參奉揚揚赴其科參榜其父子之無人理可知英祖即位甲辰諸人伸雪仍削其科丁未後又復已經持平而以父累謫耽羅移羅州乙亥潜投凶書拿鞫杖斃子光喆以大逆不道親臨崇禮門處斬兄希喆絞
엔티티 후보
- person: 윤지 / 尹志, confidence=0.95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0.95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0.95
- person: 광철 / 光喆, confidence=0.9
- person: 희철 / 希喆, confidence=0.9
- person: 슬 / 慤, confidence=0.85
- place: 탐라 / 耽羅, confidence=0.9
- place: 나주 / 羅州, confidence=0.9
- place: 숭례문 / 崇禮門, confidence=0.95
- office: 평준 / 持平, confidence=0.85
- office: 참봉 / 參奉, confidence=0.9
- term: 정시 / 庭試, confidence=0.9
- term: 일경호용 / 一鏡虎龍,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士心(씨심으로 추정되나 정확한音讀 불명)
- 一鏡(일경, 남당 계열 비칭으로 보이나 구체적所指 불확실)
- 虎龍(호용, 비칭으로 보이나 구체적所指 불확실)
- 投鞫杖斃(투옥되어 곤장打我死亡으로 해석되나 정확한法制 용어인지 불확실)
- 潜投凶書(밀서를 몰래 던지다, 구체적 내용과情形 불확실)
김범갑
- 기사 ID:
20037_030_013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135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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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17:09:34.541288+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135
한글 번역
금은 범갑은 영구의 9세손이다. 아버지는 주서 하영(夏英)이며, 이세백(李世白)의 외숙 및 이、母방의 조카이다. 숙종 경오년에 태어났고, 자는 중만이며 진안에 거처랐다. 정유년에 진사가 되었고, 경종 계묘년에 만반의 유학들을 이끌며 여러 선비들에게 먼저 으뜸이 되었다. 상소를 올려 송시열의 도봉서院에서 퇴향할 것을 요청했으며, 윤증을 구원하는 상장을 올렸다. 영조 을묘년에 증광에 합격하여 두 관서를 두루 역임하고 좌랑으로 관직에 올랐으나 끝내 맹산현감에서 그쳤다. 을해년에 사망하여 향년이 예순여섯이었다. [주: 형제는 문과에 급제한 아우 우갑의 자는 정(正)이다.] 형 성갑은 자가 시중이고 호는 채진이며 시에 이름이 있었으나 일찍 요절하였다.
독음
금은범갑 영구구세손 주서 하영자 이세백생질 숙종 경오생 자 중만 거 진안 정유진사 경종 계묘以来 반유 창다사 소청 송시열 도봉서원 척향 상장 구 윤증 영조 을묘등 증광력 양사좌랑 관지 맹산현감 을해 졸 년육십육 주 제형 문과 제 우갑 정자 형 성갑 자 시중 호 채진 어유 시명 조요
의미
금은 범갑(1848~1912 추정)은 조선后期的 文科及第者이다. 영구(瑛)의 9세손으로 진안 출신이며, 정유년에 진사가 되고 경종대에 급제하였다. 송시열의 도봉서원 퇴향问题和 윤증 구원问题上에서 적극论쟁에 참여했으며, 영조 연간에 관직을 두루 역임하고 맹산현감에서退官하였다. 형 성갑은 시로 이름 높았으나 일찍 사망하고, 아우 우갑도 文科에 급제하였다.
원문
金范甲瑛九世孫主簿夏英子李世白甥姪肅宗庚午生字仲萬居鎭安丁酉進士景宗癸卯以泮儒倡多士䟽請宋時烈道峯書院黜享上章救尹拯英祖乙卯登增廣歴兩司佐郞官止孟山縣監乙亥卒年六十六[주:兄弟文科弟禹甲正字]兄盛甲字時中號采眞于有詩名早夭
엔티티 후보
- person: 금은 범갑 / 金范甲, confidence=0.98
- person: 영구 / 金瑛, confidence=0.95
- person: 하영 / 夏英, confidence=0.95
- person: 이세백 / 李世白, confidence=0.95
- person: 송시열 / 宋時烈, confidence=0.97
- person: 윤증 / 尹拯, confidence=0.97
- person: 금성갑 / 金盛甲, confidence=0.9
- person: 금우갑 / 金禹甲, confidence=0.92
- place: 진안 / 鎭安, confidence=0.97
- place: 도봉서원 / 道峰書院, confidence=0.93
- place: 맹산현감 / 孟山縣監, confidence=0.95
- office: 주서 / 主簿, confidence=0.92
- office: 진사 / 進士, confidence=0.97
- office: 양사좌랑 / 兩司佐郞, confidence=0.9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0.95
- term: 증광 / 增廣, confidence=0.92
- term: 반유 / 泮儒, confidence=0.85
- term: 자 / 字, confidence=0.97
- term: 호 / 號, confidence=0.97
불확실한 어휘
- 甥姪의 정확한 관계(외조카 또는 이종사촌 형제姉妹의 아들)
- 仲萬이 자인지 호인지(원문상 字仲萬으로 읽으나 호일 가능성 배제 불가)
- 于有詩名의 于가 어介어인지 존재有無의 于인지
- 采眞堂의 于가 오기인지 正文과의 관련성
이면지
- 기사 ID:
20037_030_013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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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면지는 이건명의 아들이자 김만균의 외손이다. 숙종 경오년(1690)에 태어나 자는 희문이며, 기해년(1699)의 생원이다. 경종 임인년(1722)의 사화 때 아우 서지와 같은 날 德山에서 교수형에 처해졌으며, 서른세 살이었다. 영조 을사년(1765)에 신원된 후持平을 추증하고,推恩으로 더하여 更曹參判을 추증 받았다.
독음
이면지 건명자 김만균 외손, 숙종 경오년에 태어나다. 자는 희문, 기해년에 생원, 경종 임인년 사화에 아우 서지와 같은 날、德山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서른세 살. 영조 을사년에 신원된 후持平을 추증하고,推恩으로 인해 加贈하여吏參가 되었다. [주: 증손 이헌기 이헌위 이헌구 하参见]
의미
이면지는 숙종대에 태어나 경종 사화(1722)에牵连되어 서른셋에 교수형으로 처형된 인물이다. 同胞 아우 서지와 함께 처형되었고, 이후 영조대에 이르러 신원되어 벼슬이 추증되었다.
원문
李勉之健命子金萬均外孫肅宗庚午生字希文己亥生員景宗壬寅士禍與弟述之同日處絞於德山年三十三英祖乙巳伸雪後贈持平推恩加贈吏參[주:曾孫憲琦憲瑋憲球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면지 / 李勉之, confidence=1.0
- person: 이건명 / 李健命, confidence=1.0
- person: 김만균 / 金萬均, confidence=1.0
- person: 이서지 / 李述之, confidence=1.0
- place: 덕산 / 德山, confidence=0.95
- office: 持平, confidence=0.95
- office: 참판 / 吏參,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吏參: 원문 ‘吏參’에 해당하는 정확한 직임 명칭이 불확실하나,吏部參判(더부참판)으로 추정됨. 추가 검토 필요.
황재
- 기사 ID:
20037_030_013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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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황자는欽의 손자요, 윤도정의 아들이며 서하의 아들이다. 숙종 기사년에 태어나 자는 자직이다. 무술년에 등정시에 합격하여 선전랑과 부학 및 대사헌을 역임했다. 경종 임인년에 사화가 일어나자 정청에서 청원에唯諾함으로 고부로 유배되었다가 영조 을사년에 풀려났다.
독음
황자흠손윤도정서하자숙종기사생자유직무술등정시역선전랑부학송류관지대사헌경종임인기사화이정청유낙저고부영조을사방환
의미
조선后期的 관료 황자(黃梓)의生平을記錄한 기사이다. 숙종 기사년(1689년) 태어나 무술년(1718년) 등정시 합격 후 선전랑·부학·대사헌 등 요직을 거쳤으나, 경종 임인년(1722년) 기유사화 때 정청에서의 청원에 응한 죄로 고부로 유배되었다가 영조 을사년(1725년) 복권되었다. 子仁儉仁點은 주석에서 확인할 것임을 나타낸다.
원문
黃梓欽孫䕃都正瑞河子肅宗己巳生字子直戊戌登庭試歴銓郞副學松留官止大司憲景宗壬寅士禍以庭請唯諾謫古阜英祖乙巳放還[주:子仁儉仁點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황자 / 黃梓, confidence=0.95
- person: 흠 / 欽, confidence=0.85
- person: 윤 / 䕃, confidence=0.8
- person: 도정 / 都正, confidence=0.85
- person: 서하 / 瑞河, confidence=0.85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0.95
- office: 선전랑 / 銓郞, confidence=0.9
- office: 부학 / 副學, confidence=0.95
- office: 대사헌 / 大司憲, confidence=0.95
- place: 고부 / 古阜, confidence=0.95
- event: 사화 / 士禍, confidence=0.95
- event: 정청 / 庭請, confidence=0.9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0.95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0.95
- person: 이자진인 / 子仁儉仁,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곽진위
- 기사 ID:
20037_030_014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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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곽진위는 청주 사람이다. 감역(관직명) 희적의 아들이며 만적의 종질이다. 자는 재웅이고 호는 기菴이다. 경종 신축년(1721년)에 사마에 급제했다. 계묘년(1723)에 군흉이 뜻을 이루어 문사에 화가 미쳤다. 송시열의 도봉원 제사를 폐지하고, 그를 모욕하는 행위가 이어졌다. 이때 곽진위가 먼저 상소하여 송시열의 원冤을辩护했다. 금갑도에 유배되었다. 영조 을사년(1725)에 돌아와 풀려났으며, 관직은 현감에 그쳤다. 정묘년(1727)에 사망하니 향년이 59세였다.
독음
곽진위 청주인 감역 희적의 아들 만적의 종질 자 재웅 호 기菴 경종 신축 사마 계묘 군흉득지 화급사문 척거 송시열 도봉원 향 수선 상소변무 금갑도안치 영조 을사 반환관 지현감 정묘 졸 년오십구
의미
조선 후기 학자 곽진위의 개괄이다. 경종 신축년에 사마에 급제하고 계묘정변 때 송시열을 변호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금갑도에 유배되었다가 영조 즉위 후 풀려났으나, 관직은 현감에 그치고 59세로 세상을 떠났다. 송시열 도봉원 제폐 사건과 관련된 당파 갈등의 영향을 받은 관료의 행적이다.
원문
郭鎭緯淸州人監役熙績子萬績從子字載雄號畸菴景宗辛丑司馬癸卯羣凶得志禍及斯文撤去宋時烈道峯院享首先上䟽辨誣金甲島安置英祖乙巳放還官止縣監丁卯卒年五十九
엔티티 후보
- person: 곽진위 / 郭鎮緯, confidence=1.0
- place: 청주 / 淸州, confidence=1.0
- person: 희적 / 熙績, confidence=1.0
- person: 만적 / 萬績, confidence=1.0
- person: 송시열 / 宋時烈, confidence=1.0
- place: 금갑도 / 金甲島, confidence=1.0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1.0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1.0
- place: 도봉원 / 道峯院, confidence=0.9
- office: 감역 / 監役, confidence=0.9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홍룡조
- 기사 ID:
20037_030_014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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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홍룡조는 홍봉조의 아우이다. 숙종 병인년에 태어나 字는 희서이다. 정유년에 절제에 합격하여 급제하고, 양사와 금백관을 역임했으며, 벼슬이 대사간에 이르렀다. 경종 임인년에 사화가 일어나 안정으로 유배되었다가, 영조 을사년에 풀려났다.
독음
홍룡조 봉조제 숙종 병인생 자 희서 정유등절제 역양사 금백관 관지 대사간 경종 임인 사화 척 안정 영조 을사 방환
의미
조선后期的 관료 홍룡조(1676~?)는 홍봉조의 아우로, 정유년(1689)에 절제 합격 후 양사 서리, 금백관 등을 역임하고 대사간으로 끝났다. 경종 임인년(1722) 기유사화 때 안정(은천군)에 유배되었다가, 영조 을사년(1729)에 효유되어 귀환하였다.
원문
洪龍祚鳳祚弟肅宗丙寅生字羲瑞丁酉登節製歴兩司錦伯官止大司諫景宗壬寅士禍謫穩城英祖乙巳放還[주:子檍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홍룡조 / 洪龍祚, confidence=1.0
- person: 홍봉조 / 洪鳳祚, confidence=1.0
- person: 자액 / 子檍, confidence=0.9
- place: 안정(은천군) / 穩城, confidence=0.95
- office: 양사(사간원·승문사) / 兩司, confidence=0.9
- office: 대사간 / 大司諫, confidence=1.0
- term: 절제(제과) / 節製, confidence=0.95
- term: 사화 / 士禍, confidence=1.0
- term: 자(아호) / 字,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금백관(견습단계인지 관직명인지 불분명)
- 安定이 현 은천군 안정면인지 다른 지역인지
오서종
- 기사 ID:
20037_030_014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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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오서종은 빈성 사람으로, 호는 투천자, 자는 응보이다. 거문에서 활동하며, 숙종 정유년에 도과에 합격하였다. 경종 임인년에 사화가 일어나 매질로 맞아 죽었고, 관직은 성박에서 멈추었다.
독음
오서종 빈성인 투천자 자응보 거문의 숙종 정유년 등도과 경종 임인년 사화 장필 관지성박
의미
조선 시대 인물 오서종은 숙종 정유년에 도과에 합격하여 관료로 진출하였다. 경종 때 일어난 임인년 사화(1728년)에 연좌되어 매질로 맞아 죽었다. 최종 관직은 성박에 불과했다.
원문
吳瑞鍾賓城人斗天子字應甫居文義肅宗丁酉登道科景宗壬寅士禍杖斃官止成愽
엔티티 후보
- person: 오서종 / 吳瑞鍾, confidence=1.0
- place: 빈성 / 賓城, confidence=1.0
- person: 투천자(호) / 斗天子, confidence=1.0
- person: 응보(자) / 應甫, confidence=1.0
- place: 거문 / 文義, confidence=0.95
- event: 숙종 정유년 등도과 합격 / 肅宗丁酉登道科, confidence=0.9
- event: 경종 임인년 사화 / 景宗壬寅士禍, confidence=1.0
- event: 장필(매질로 죽음) / 杖斃, confidence=1.0
- office: 성박 / 成愽,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이술지
- 기사 ID:
20037_030_014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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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술지는 이면지의 아우로, 김흥경의 사위였다. 숙종 갑술년(1694년)에 태어나 字는 계선이었다. 경종 임인년(1722년)에 사화가 일어나 형인 면지와 함께 德山(이산)에서 동시에 교살형을 받아 서른 살에 세상을 떠났다. 영조 을사년(1785년)에 그의 억울함이 풀렸다. 이후 추존되어 平坦直이 되었고,推恩으로 더 추증되어 吏參이 되었다.
독음
이술지는 면지의 아우이다. 김흥경의 사위이다. 숙종 갑술년에 태어나 자는 계선이다. 경종 임인년에 사화가 일어나 형 면지와 함께 德山에서 동시에 교살형을 받았다. 서른 살이었다. 영조 을사년에 천언되었다. 후에 평탄直으로 추존되고,推恩으로 인해 더 추증하여 이참이 되었다.
의미
조선 시대 사형 이씨 가문의 인물 이술지의 간단한 전기이다. 김흥경의 사위로서 경종 때 연립 사건(갑술사화)에 연루되어 형 이면지와 함께 德山에서 교살형에 처해졌다. 스물아홉 살의 젊은 나이에 순절했으며, 약 60년이 지난 영조 연간에 비로소 신원되었다.死后에 관직이 추증되어 平坦直에서 吏參으로 추증된 것으로 보아, 생전에는 벼슬에 오르지 못한 서얼 신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원문
李述之勉之弟金興慶婿肅宗甲戌生字季善景宗壬寅士禍與兄勉之同時處絞於德山年二十九英祖乙巳伸雪後贈持平推恩加贈吏參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술지 / 李述之, confidence=1.0
- person: 이면지 / 李勉之, confidence=1.0
- person: 김흥경 / 金興慶, confidence=1.0
- place: 덕산 / 德山, confidence=1.0
- term: 사위 / 女婿, confidence=1.0
- term: 자 / 字, confidence=1.0
- term: 사화 / 士禍, confidence=1.0
- term: 교살형 / 處絞, confidence=1.0
- term: 신원 / 伸雪, confidence=1.0
- term: 평탄 / 持平, confidence=1.0
- term: 이참 / 吏參, confidence=1.0
- term: 추은 / 推恩,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德山의 위치 - 江原道 德山郡(현 강원도 원주시 태백출장소)으로 추정되나, 형제同时 처형 장소로서 더 정확한 지역 정보 불분명
- 處絞의 처형 시점 - 年二十九가 사망 당시 나이인지, 사화 연도 기준인지 명확하지 않음
서덕수
- 기사 ID:
20037_030_014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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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서덕수는 종형제의 아들이었다. 보조선 출신으로 군수(음군수)에 임명된 명백의 아들이었다. 숙종 갑술년(1694)에 태어나 字는 사민이었다. 경종 임인년(1722) 사화 때 여섯 명 중 한 사람으로서 군기시에서 형을 받았다. 사건 전 그의 나이는 스물아홉 살이었다. 영조 무오년(1744)에 억울함이 풀려 신세되었다. 이후 서씨(執義)로 추증하고, 다시 이조참의로 加贈하였다.
독음
서덕수 종질손 음군수 명백자 숙종갑술년생 자사민 경종임인년 사화 여섯 명 중 하나로서 군기시에서 형을 받음 그 전 해에 스물아홉 영조무오년에 신세된 후 서씨로 추증하고 다시 이조참의로 加贈
의미
조선 숙종~영조 연간 인물이었던 서덕수의 간단한 행적을 적은 비문이다. 종형제로부터 파출되어 보조선 벼슬을 받은 집안 출신으로, 경종 임인년(1722) 남인 중심 사화 때 여섯 명 중 한 명으로 연좌되어 군기시에서 처벌을 받았다. 이때 나이 29세였다. 약 22년이 지난 영조 무오년(1744)에 비로소 신세(伸冤)되어 관직이 추증되었다.
원문
徐德修宗悌孫䕃郡守命伯子肅宗甲戌生字士敏景宗壬寅士禍以六人之一施刑于軍器寺前年二十九英祖戊午伸雪後贈執義加贈吏參
엔티티 후보
- person: 서덕수 / 徐德修, confidence=1.0
- person: 종悌 / 宗悌, confidence=0.9
- place: 군수 / 郡守, confidence=0.9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1.0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1.0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1.0
- office: 군기시 / 軍器寺, confidence=0.95
- office: 집의 / 執義, confidence=1.0
- office: 이조참의 / 吏參, confidence=0.9
- term: 신세 / 伸雪, confidence=0.95
- term: 자 / 字, confidence=1.0
- term: 음 / 蔭,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조석명
- 기사 ID:
20037_030_014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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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4T02:40:21.99579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146
한글 번역
조석명은 경기도 풍양 사람으로, 사인(舍人) 대수(호는 지와)의 아들 자형의 종증손(從曾孫)이며 서문중의 외손이다. 현종 갑인년에 태어나 글자는伯承, 호는墨沼이다. 숙종 임오년에 진사가 되었고, 정해년에 별시 강학에 합격하여 삼사관을 두루 다니다가 판돈녕에 이르렀다. 이후 노사(耆社)에 들어갔으며, 영조 계유년에 사망하여 향년 80세였다. 손자는 홍진으로, 아래를 참고한다.
독음
조석명 풍양인 사인 대수(호 지와) 자형의 종증손 서문중의 외손. 현종 갑인년에 태어나 자는 백승, 호는 묵소. 숙종 임오년에 진사가 되고, 정해년에 별시 강학에 올랐다. 삼사관을 두루 거쳐 돈녕 판서로 나아갔다. 서사(耆社)에 들어갔으며, 영조 계유년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80세. 손자 홍진은 아래를 본다.
의미
조석명은 조선后期的 관료로, 풍양 출신이다. 현종대에 태어나 숙종 임오년에 진사가 되었으며, 삼사관을 두루 판돈녕에 올랐다. 서사에 가입한 뒤 영조 계유년에 80세로 사망한 인물이다. 손자 홍진이 있다.
원문
趙錫命豊壤人舎人大壽[주:號止窩]子珩從曾孫徐文重外孫顯宗甲寅生字伯承號墨沼肅宗壬午進士丁亥登别試講歴三司官止判敦寧入耆社英祖癸酉卒年八十[주:孫弘鎭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조석명 / 趙錫命, confidence=1.0
- place: 풍양 / 豊壤, confidence=1.0
- person: 대수 / 大壽, confidence=1.0
- person: 자형 / 子珩, confidence=1.0
- person: 서문중 / 徐文重, confidence=1.0
- person: 홍진 / 弘鎭, confidence=1.0
- office: 사인 / 舎人, confidence=1.0
- office: 판돈녕 / 判敦寧, confidence=1.0
- office: 서사 / 耆社, confidence=1.0
- term: 삼사관 / 三司官, confidence=1.0
- term: 별시 / 別試,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號止窩는 주에서 제시된 호로, 原文中 직접 확인되지 않음
김일관
- 기사 ID:
20037_030_014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148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7T01:52:59.08385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148
한글 번역
김일관이 김창도와 맞은편에 살았으며, 이정식과 정우관과 친분을 맺었다. 이천기의 지시를 받아 그에게 부추겨져政局를 바꾸려 했다. 이로 인해 죄를 얻었으니, 경종 임인년(1722)에 체포하여 투옥하고, 네 차례 형을 집행한 뒤 당현에서 처형하였다.
독음
금일관여금창도대문거생여이정식정우관상친수이천기지수도환국이차구죄경종임인나수형사차행형우당현
의미
김일관이 김창도와 맞은편에 거주하며 이정식·정우관과 교류하던 중, 이천기의 부추김을 받아政局교체 음모에 가담하였다가 경종 임인년(1722)에 체포·수감되고, 네 차례에 걸친 고문과 처형을 당한 사건을 기록한 기사이다.
원문
金一觀與金昌道對門居生與李正植鄭宇寬相親受李天紀指嗾圖換局以此搆罪景宗壬寅拿囚刑四次行刑于堂峴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일관 / 金一觀, confidence=1.0
- person: 김창도 / 金昌道, confidence=1.0
- person: 이정식 / 李正植, confidence=1.0
- person: 정우관 / 鄭宇寬, confidence=1.0
- person: 이천기 / 李天紀, confidence=1.0
- place: 당현 / 堂峴, confidence=0.95
- term: 경종(조선 제19대 임금) / 景宗, confidence=1.0
- term: 임인년 / 壬寅,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四次行형(네 차 시형 또는 처형 해석 가능)
- 搆罪(죄를 구성하다의 구체적 법적 의미)
박태준
- 기사 ID:
20037_030_014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149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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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17:11:30.99784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149
한글 번역
박태준이 경종(景宗) 임인년(壬寅年, 1722년)에 벽사부찰방(碧沙府察訪)으로 재임하면서 이희지를 체포해 데려올 당시, 희지를 산촌에 유배시키자 유용(有容)이 그를 호위해 준 행적이 있었다. 그 뒤 이듬해 계묘년(癸卯年, 1723년)에 곤양(昆陽)으로 먼 곳으로 유배시켰다.
독음
박태준 경종 임인년에 벽사찰방으로 이희지를 나래 올 때, 희지를 산촌에 유용이 호지한 자리가 있었으나, 계묘년에 곤양으로 원배하였다.
의미
박태준이 경종 때 벽사찰방으로 이희지를 체포한 뒤 산촌에 유배했는데, 유용이라는 자가 그를 은밀히 지켜 준 행적이 있었다는 내용이다. 결국 이희지는 계묘년에 곤양으로 다시 유배되었다.
원문
朴泰俊景宗壬寅以碧沙察訪李喜之拿來時置喜之於山村有容護之跡癸卯昆陽遠配
엔티티 후보
- person: 박태준 / 朴泰俊, confidence=1.0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1.0
- person: 이희지 / 李喜之, confidence=1.0
- place: 벽사 / 碧沙, confidence=1.0
- place: 곤양 / 昆陽, confidence=1.0
- office: 찰방 / 察訪,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김극부
- 기사 ID:
20037_030_015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150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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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김극복이 군사관(察訪)으로서 진보자(鎭普子)에 있을 때, 경자년에 어떤 사정이 있어 서울에 올라갔다. 이우형과 태양의 흑점에 관한 문답을 나눈 일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죄명을 삼아 임인년에 붙잡아 옥에 가두고 형을 네 차례 집행하여堂峴에서 처형하였다.
독음
김극복 살방 진보자 경자년 원인사 상경하여 이우형과 일중 흑점의 문답이 있었으니, 이로써 죄를 삼아 임인년에 잡아 가두고 형을 네 번 시행하며 당현에서 형을 집행하다.
의미
김극복이 관직에 있을 때 이우형과 태양 흑점에 관한 학술 문답을 나눈 일이 곧 이단적 사상이나 불온한 행위로 판단되어, 임인년에 투옥된 뒤堂峴에서 네 차례에 걸친 고문 후 처형된 사건을 기록한 것. 당현은 당시 사형 집행 장소였음을 알 수 있다.
원문
金克復察訪鎭普子庚子因事上京與李宇恒有日中黑點之問答以此為罪壬寅拿囚刑四次行刑于堂峴
엔티티 후보
- person: 김극복 / 金克復, confidence=0.95
- person: 이우형 / 李宇恒, confidence=0.9
- office: 살방(군사관) / 察訪, confidence=0.85
- place: 진보자 / 鎭普子, confidence=0.75
- place: 당현(처형 장소) / 堂峴, confidence=0.85
- term: 일중 흑점(태양 흑점 관측 관련 논쟁) / 日中黑點,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鎭普子(진보자)의 정확한 지명과 소속, 경자·임인의 정확한 서기 환산, 日中黑點의 구체적 논의 내용, 四次行刑이 고문 횟수인지 처형 절차인지 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