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년편고 [紀年便攷n1-37책] - 본문 번역 묶음 043
- 책 ID:
kh2_je_a_vsu_20037_000
- 수록 기사: 75건
맹만택
- 기사 ID:
20037_029_010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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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7T01:25:25.91097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9&aa15no=029&aa20no=20037_029_0101
한글 번역
맹만택은 맹세형의 손자이고 문좌윤의 아들이며, 자는 시중현이다. 연산군 조정에 들어와 부마의 선택에 뽑혔으나 처음 받은 작위가 신안위였고, 공주가 成禮 전의 예식에서 사망하자 관직이 파직되었다. 숙종 갑자년(1684)에 진사가 되었고, 무인년(1698)에 사복시주부로 부임하여 임금에게 알현하고 성지를 순례하였다. 삼사의 해伯를 지내고 관직은 대간에서 그쳤다.
독음
맹만택세형문좌윤주서자시중현종조입부마겸작초봉신안위공주졸식우성예전인폐위숙종갑자진사무인사복시주부등랍알력삼사해백관지대간
의미
맹만택은 조선 연산군 때 부마에 뽑혔으나 공주의 죽음으로 파직되고, 숙종 때 진사에 합격하여 삼사의 해伯와 대간 등 요직을 역임한 인물이다. 부마 벼슬길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으나 이후 관료로서 상당한 벼락을 탄 것으로 보인다.
원문
孟萬澤世衡孫文左尹胄瑞子字施仲顯宗朝入駙馬揀擇初封新安尉公主卒逝於成禮前仍罷尉肅宗甲子進士戊寅以司僕主夫登謁聖歷三司海伯官止大諫
엔티티 후보
- person: 맹만택 / 孟萬澤, confidence=1.0
- person: 맹세형 / 孟世衡, confidence=1.0
- person: 문좌윤 / 文左尹, confidence=1.0
- person: 시중현 / 施仲顯, confidence=1.0
- person: 연산군 / 顯宗, confidence=0.85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1.0
- person: 공주 / 公主, confidence=1.0
- office: 신안위 / 新安尉, confidence=1.0
- office: 사복시주부 / 司僕主夫, confidence=1.0
- office: 해백 / 海伯, confidence=1.0
- office: 대간 / 大諫, confidence=1.0
- term: 부마겸작 / 駙馬揀擇, confidence=1.0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홍우녕
- 기사 ID:
20037_029_010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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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7T01:25:34.53985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9&aa15no=029&aa20no=20037_029_0102
한글 번역
홍우녕은 명원의 증손으로서, 음직으로 현감이 되었다. 수관의 아들 이선(자 여성, 호 정와)은 숙종 병술년에 주簿로 별시 강에서 급제하여 양사를 역임하고 영의부윤 벼슬을 지내고承旨에 이르렀다. 정초계 사람은 치용의 아들로서 자는仲羽이며,咸昌에 거주하였다. 숙종을酉년에 명경과에 급제하고 이삼령과 함께 상疏하여 장씨의 복위를 요청하였으나, 정원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벼슬은 현감에서 그쳤다.
독음
홍우녕 명원 증손 음현감 수관자 이선서 자여성 호정와숙종병술 주簿로 별시강하여 급제하고 양사를 역임하고 영의부윤 벼슬을 지내고承旨에 이르렀다. 정초계 사람은 치용의 아들이자 자는仲羽이며,咸昌에 거처하였다. 숙종을酉에 명경과에 급제하고 이삼령과 함께上疏하여張氏의 복위를 요청하였으나政院에서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벼슬은 현감에 그쳤다.
의미
홍우녕은 숙종조 관료로, 주簿로 별시에서 급제하여 승평과 지평을 역임하고 영의부윤을 지내고承旨에 이르렀다. 정초계 사람은 치용의 아들仲羽로서,咸昌 출신이다. 숙종을酉년에 명경과에 급제하고 이삼령과 함께 장씨의 복위를 요청하는 상疏를 올렸으나政院에서 수용하지 않았다. 최종 관직은 현감이었다.
원문
洪禹寧命元曾孫蔭縣監受寬子李選婿字汝成號靜窩肅宗丙戌以主簿登别試講歷兩司嶺伯官止承㫖鄭草溪人致用子字仲羽居咸昌肅宗乙酉登明經科與李三齡同䟽請張氏復位政院不捧官止縣監
엔티티 후보
- person: 홍우녕 / 洪禹寧, confidence=0.95
- person: 명원 / 元, confidence=0.85
- person: 이선 / 李選, confidence=0.9
- person: 여성 / 汝成, confidence=0.9
- person: 중우 / 仲羽, confidence=0.85
- person: 치용 / 致用, confidence=0.9
- person: 이삼령 / 李三齡, confidence=0.95
- place: 함창 / 咸昌, confidence=0.9
- place: 초계 / 草溪, confidence=0.85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0.95
- office: 주簿 / 主簿, confidence=0.95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0.95
- office: 영의부윤 / 嶺伯, confidence=0.9
- term: 별시 / 別試, confidence=0.9
- term: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0.95
- term: 음직 / 蔭, confidence=0.9
- person: 장씨 / 張氏, confidence=0.9
- office: 정원 / 政院,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命元曾孫 (명원과 증손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음)
- 受寬子 (수관자의 구체적 관계)
- 兩司 (어떤 양사인지 불확실)
남구명
- 기사 ID:
20037_029_010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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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남구명은 영양군 출신으로, 아버지 南周의 아들이다. 자는 箕瑞이고, 호는 寓菴이다.寧海에 거처하면서 살았다. 숙종 정묘년(1747년)에 进사 합격하고, 계유년(1753년)에 文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올랐다. 通政으로 순천부사를 지내고 세상을 떠났으며, 청백한 명성이 전해졌다. 숙종임금이 그 이름을 전주에 직접 써 붙였다. [주: 형 南老明도 文과에 합격하여 현감이 되었다.]
독음
남구명영양인상주자자기서호우암거녕해숙종정묘진사고유등문과이통정순천부사 졸이청백명숙종제기명於전주
의미
조선 숙종~영조 연간에 살았던 南九明의 인물 기록이다. 영양군 출신으로 숙종 정묘년(1747년) 进사, 계유년(1753년) 文과 합격 후 通政으로서 순천부사를 역임했다. 청백한 인물로 평판이 높아 숙종임금이 전주에 그 이름을 직접 써 기렸다는 점이 특기 사항이다. 형 南老明도 문과 합격생으로 현감이 되어 형제가 모두 관료에 오른家门이다.
원문
南九明英陽人尙周子字箕瑞號寓菴居寧海肅宗丁卯進士癸酉登文科以通政順天府使卒以淸白名肅宗題其名於殿柱[주:兄弟文科兄老明縣監]
엔티티 후보
- person: 남구명 / 南九明, confidence=1.0
- person: 남주 / 南周, confidence=1.0
- person: 남노명 / 南老明, confidence=1.0
- place: 영양 / 英陽, confidence=0.8
- place: 녕해 / 寧海, confidence=0.9
- place: 순천 / 順天, confidence=1.0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office: 통정 / 通政, confidence=1.0
- office: 부사 / 府使, confidence=1.0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1.0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term: 청백 / 淸白,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英陽은 강원도 영양군으로 보이나 간혹 다른 지역으로 혼동될 수 있음
- 寓菴은 호칭으로 그 위치나 구체적 연유는 원문에 기재되지 않음
우세일
- 기사 ID:
20037_029_010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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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우세일은 복용방 출신으로, 자는 집경, 호는 고산이다. 권상하의 문인으로서 여러 기술을 널리 통달하고, 특히 역학에 깊이 통달하였다. 저작으로 『간역일득』이 있다. 중사마의 관직을 천거로 받아 至知縣에 이르렀다.
독음
우세일 복용방손 자집경 호고산 권상하 문인 박통중기유수어역 소저유간역일득 중사마 이전관지지현
의미
조선后期的 학자 우세일에 대한 기록이다. 복용방 출신으로 권상하 문인으로서 易학에 깊이 연구하여 『간역일득』을 저술하였다. 중사마 벼슬에 천거되었으나 관직은 지현에 불과하였다.
원문
禹世一伏龍傍孫字執卿號孤山權尙夏門人博通衆技尤邃於易所著有看易一得中司馬以薦官止知縣
엔티티 후보
- person: 우세일 / 禹世一, confidence=1.0
- place: 복용방 / 伏龍傍, confidence=1.0
- person: 집경 / 字執卿, confidence=1.0
- term: 호 고산 / 號孤山, confidence=1.0
- person: 권상하 / 權尙夏, confidence=1.0
- work: 간역일득 / 看易一得, confidence=1.0
- office: 중사마 / 中司馬, confidence=0.7
- office: 지현 / 知縣,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이세정
- 기사 ID:
20037_029_010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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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세정은 전주 출신으로, 아버지 광일의 아들이다. 숙종 기묘년에 직장을 지닌 직위로 증광시에 급제하여, 임시로 외장考场에 배정되었다.
독음
이세정 전주인 광일자 숙종 기묘년 직장을 가지고 증광에 급제하고 임시로 외장에 배정되다
의미
조선 숙종 기묘년(1679)에 증광 합격하여 직장을 받은 이세정이 임시로 외장考场에 배정된 기록이다. 이세정은 전주 출신이며 아버지 광일의 아들이다.
원문
李世禎全州人弘逸子肅宗己卯以直長登增廣以借作外塲定配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세정 / 李世禎, confidence=1.0
- place: 전주 / 全州, confidence=1.0
- person: 광일 / 弘逸, confidence=1.0
- king: 숙종 / 肅宗, confidence=1.0
- year: 기묘 / 己卯, confidence=1.0
- office: 직장 / 直長, confidence=1.0
- term: 증광 / 增廣, confidence=1.0
- term: 외장 / 外塲,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借作(차작, 임시로 근무하는 것)의 구체적 의미와 외장考场의 정확한 역할이 다소 불분명함
남취명
- 기사 ID:
20037_029_010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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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16:20:28.77703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9&aa15no=029&aa20no=20037_029_0109
한글 번역
남취명의 손자 남상훈의 아들이자 현종(顯宗) 신축년에 태어난 남명(南明)이 자는 요경(堯卿)이고, 일(一)계량(季良)이며 호는 약파(藥坡)이다. 숙종(肅宗) 갑술년에 국제에 합격하였고, 벼슬은 삼사(三司)를 역임하고 지신관(知申官)에 이르렀으며, 끝으로 지돈(知敦)에 들어갔다. 기사(耆社)에 들어가고 영조(英祖) 신유년에 졸했으며, 향년 八십일이었다. [주: 형제 중 문과에 급제한 것이 형 남廸明으로서 참의(參議)에 올랐다]
독음
남취명 주손상훈 자현종 신축생 자요경 일계량 호약파 숙종 갑술국제 역삼사 지신관 지돈 입기사영조 신유 졸년 팔십일
의미
조선 시대 문신 남취명의 가계와 남명(자 요경, 호 약파)의 생애를 수록한 기사이다. 현종 신축년에 태어난 남명은 숙종 갑술년에 국제에 합격하고 삼사·지신관·지돈 등 요직을 거쳐 기사堂에 들어갔으며, 영조 신유년에 81세로 사망하였다. 주에서 형 남廸明이 문과에 급제하여 참의에 이르렀음을 보충한다.
원문
南就明翧孫尙薰子顯宗辛丑生字堯卿一季良號藥坡肅宗甲戌菊製歷三司知申官止知敦入耆社英祖辛酉卒年八十一[주:兄弟文科兄廸明參議]
엔티티 후보
- person: 남취명 / 南就明, confidence=1.0
- person: 남상훈 / 南尙薰, confidence=1.0
- person: 남현종 / 南顯宗, confidence=1.0
- person: 남명 / 南就明, confidence=1.0
- person: 남적명 / 南迪明, confidence=1.0
- office: 삼사 / 三司, confidence=1.0
- office: 지신관 / 知申官, confidence=1.0
- office: 지돈 / 知敦, confidence=1.0
- office: 기사 / 耆社, confidence=1.0
- office: 참의 / 參議, confidence=1.0
- term: 자 / 字, confidence=1.0
- term: 호 / 號, confidence=1.0
- term: 국제 / 菊製, confidence=1.0
- term: 자 요경 / 字堯卿, confidence=0.9
- term: 계량 / 季良,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季良(一季良) - 계량 또는 절良(한글 혼용 가능성)
이동언
- 기사 ID:
20037_029_011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13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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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16:20:57.86589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9&aa15no=029&aa20no=20037_029_0113
한글 번역
이동언은 밀성군(세종의 아들)의 9세손이다. 문목사 세茂의 아들 수록의 종현손으로, 자는 국언이고 호는 삼복재이다. 숙종 기유년에 등용되어 벼슬에 나갔다. 관직은 지持平에 이르렀다. 전후로 태학에 있으면서 크게 풍채가 있어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나, 군소에게 참소되어 옥중에서 죽었다. 나중에야 그 명망이 회복되었다.
독음
이동언밀성군 세종의자구세손문목사세무자수록종현손자유국언호삼복재숙종계유등알성관지치평전후거대유대풍채위군소소오유사사옥중후신설
의미
조선 숙종 연간에 등장한 관리 이동언은 왕실 직계 후손으로 태학에서 크게 존경을 받았으나, 이는 오히려 군소들의 시기 대상으로 작용하여 옥중에서 사망하는 비극을 맞이했다. 이후 곧은 소나무의 명과 직간이 모두 드러나 명예가 회복되었다. 왕실 후손이 권력 투쟁의 희생양이 된 사례로, 숙종 연간 척신势力的 실상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원문
李東彦密城君[주:世宗子]九世孫文牧使世茂子綏祿從玄孫字國彦號三復齋肅宗癸酉登謁聖官止持平前後居臺大有風釆為羣小所誣瘐死獄中後伸雪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동언 / 李東彦, confidence=0.98
- place: 밀성군 / 密城君, confidence=0.95
- person: 세종 / 世宗, confidence=0.98
- person: 세무 / 世茂, confidence=0.9
- place: 삼복재 / 三復齋, confidence=0.85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0.98
- office: 치평 / 持平, confidence=0.9
- place: 대(태학) / 臺,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이상성
- 기사 ID:
20037_029_011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14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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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16:21:10.07950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9&aa15no=029&aa20no=20037_029_0114
한글 번역
이상성은 광주 사람이다. 아버지 지하의 아들로 자는 원경이다. 숙종 정축년(1685년)에 정시에 합격하여 양사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고,参議에서 그쳤다. 효행이 있어 정려를 받았다.
독음
이상성 광주인 지하 자 원경 숙종 정축 등정시 역양사관 지삼의 유효행 정려
의미
조선 숙종대에 文官 이상성이 정시 합격 후 양사의 관직을 두루 거쳐,参議에서 퇴관하였으며, 효행이 뛰어나 집에 정려를 세웠음을 기록한 인물 소개문이다. 丁丑은 숙종 11년(1685년)에 해당한다.
원문
李相成廣州人趾遐子字元卿肅宗丁丑登庭試歷兩司官止參議有孝行旌閭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상성 / 李相成, confidence=1.0
- place: 광주 / 廣州, confidence=1.0
- person: 지하 / 趾遐, confidence=1.0
- person: 원경 / 元卿, confidence=1.0
- king: 숙종 / 肅宗, confidence=1.0
- year: 정축 / 丁丑, confidence=0.9
- exam: 정시 / 庭試, confidence=1.0
- office: 양사 / 兩司, confidence=0.9
- office: 삼의 / 參議, confidence=1.0
- term: 효행 / 孝行, confidence=1.0
- term: 정려 / 旌閭,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兩司는 사간원과 홍문관 등을 가리키는 관서 집합을 의미하지만, 원문에서 구체적 관청명이 언급되지 않았으므로 ‘양사’로 표기하며 정학한 범위는 확신하기 어렵다.
이이근
- 기사 ID:
20037_029_011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15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7T01:27:35.55888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9&aa15no=029&aa20no=20037_029_0115
한글 번역
이이근은 이상형의 증손이며, 자호는 가구(可久), 호는 수묵(守默)이다. 권상하의 문인으로서 학식이 있고 행동이 바르다. 어사가 그의 담담하고 우아한 인품을 추천하여 특별히 자문관인 자의관에 임명했고, 결국 경연관에 이르렀다.
독음
이이근 상형증손 자 가구 호 수묵 권상하 문인 유학행 어사 전아 특수 자의관 지 경연관
의미
조선后期的文武관료인 이이근의 증서이다. 이이근은 문신 권상하의 문인 출신으로, 학행이탁월하고 품성이 담담하고 우아하여 어사의 추천으로 자의관에 특별임명되었고, 궁정강학관인 경연관까지 승진한 인물임을 기록한다.
원문
李頤根尙馨曾孫字可久號守默權尙夏門人有學行御史薦以恬雅特授諮議官止經筵官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이근 / 李㶊根, confidence=0.85
- person: 이상형 / 李尚馨, confidence=0.95
- person: 권상하 / 權尙夏, confidence=0.95
- office: 자의관 / 諮議官, confidence=0.95
- office: 경연관 / 經筵官, confidence=0.95
- office: 어사 / 御史, confidence=0.95
- term: 증손 / 曾孫, confidence=0.95
- term: 자(자호) / 字, confidence=0.95
- term: 호(호칭) / 號, confidence=0.95
- term: 문인 / 門人,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頤根(원문 㶊根과 상이하여 원문 그대로 독음, 실제 인물명 불일치 가능성 있음)
- 恬雅(전아(담담하고 우아함)로 해설하나, 문맥상 구체적 품평评語로 해석 가능)
- 止(경연관에 이르렀다는 뜻으로解釋하나, 경연관에서 그쳤다는 뜻으로도 해석 가능)
구익형
- 기사 ID:
20037_029_011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16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7T01:27:20.98565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9&aa15no=029&aa20no=20037_029_0116
한글 번역
구익형은 녑성 사람으로, 아버지는 극창이다. 현종 기묘년(1655년)에 태어나,字는 사겸이고 호는 상농정이다. 고산에 거처하며 숙종 신묘년(1681년)에 명경과에 합격하였다. 판교관 등을 지내고 최종적으로 황해도사에 이르렀으며, 영조 신미년(1721년)에 사망하여 향년 65세였다.
독음
구익형 녑성인 극창자 현종 기묘생 자 사겸 호 상농정 거 고산 숙종 신묘등 명경과 역 판교관 지 황해도사 영조 신미 졸 년 유십오
의미
조선 시대 관리 구익형의 행적을 적은 졸기이다. 현종 때 태어나 숙종 때 문과에 합격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고 황해도사에서 관직 생활을 마쳤다. 사망 당시 65세였다.
원문
具益亨綾城人克昌子顯宗癸卯生字士謙號賞農亭居高山肅宗辛卯登明經科歷判校官止黃海都事英祖辛未卒年六十五
엔티티 후보
- person: 구익형 / 具益亨, confidence=0.98
- place: 릉성 / 綾城, confidence=0.95
- person: 극창 / 克昌, confidence=0.97
- term: 자(字的) / 字, confidence=0.97
- term: 호(호칭) / 號, confidence=0.97
- work: 상농정 / 賞農亭, confidence=0.92
- place: 고산 / 高山, confidence=0.85
- office: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0.96
- office: 판교관 / 判校官, confidence=0.88
- office: 황해도사 / 黃海都事,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高山(고산)의 구체적 위치가 원문만으로 특정하기 어려움
- 判校官(판교관)의 정확한 직무 범위
박내정
- 기사 ID:
20037_029_011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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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박내정은 함양 출생으로, 유화자의 아들 세무의 종손이며 현종의 기묘년에 태어나 자는 직경이다. 숙종 갑자년에 进士에 합격하고 갑술년에 별시에서 及第하였다. 벼슬은 시절伯관至 호판에서 그만두었다. 기사에 들어간 뒤 영조 을묘년에 일흔두 살로 사망하였다.
독음
박내정 함양인 유화자 세무 종현손 현종 기묘생 자직경 숙종 갑자 进士 갑술 별시 시절伯관 정호판 입기사 영조 을묘 졸(년) 칠십이
의미
조선 시대 管理인 박내정의生平을 수록한 기문이다. 함양 출신으로, 숙종 연간 进士 합격 및 벼슬길, 이후 관직을 그만두고 기사에 들어간 일생을 정리하였다. 사망时才는 칠십두 살이다.
원문
朴乃貞咸陽人由蔮子世茂從玄孫顯宗癸卯生字直卿肅宗甲子進士甲戌登别試歷莱伯官止戶判入耆社英祖乙卯卒(年)七十二
엔티티 후보
- person: 박내정 / 朴乃貞, confidence=0.95
- place: 함양 / 咸陽, confidence=0.95
- person: 유화자 세무 / 蔮子世茂, confidence=0.85
- person: 현종 / 顯宗, confidence=0.95
- person: 직경 / 字直卿, confidence=0.95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0.95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0.95
- office: 호판 / 戶判, confidence=0.85
- term: 기사 / 耆社, confidence=0.9
- term: 별시 / 別試, confidence=0.9
- term: 進士,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由蔮子世茂從玄孫顯宗癸卯生
- 由蔮子世茂從玄孫顯宗癸卯生
이하원
- 기사 ID:
20037_029_011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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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하원은 광주 출신으로, 문하부 삼판(三判官)의 벼슬을 지냈다. 서만자(蓍晩子)는 의만(宜晩)의 양자이며, 현종(顯宗)에게 종자(從子)가 되었다. 갑진년에 태어나 자는 원례(元禮)이고, 호는 유남(蘂南)이다. 숙종 신미년에 생원(生員)에 올랐고, 병자에 정시(庭試)에 합격하여 삼사(三司)의 대헌관(大憲官)을 두루 역임하고, 종종 부침을 거쳐 숭록대부(崇祿大夫) 판돈녕(判敦寧)에 이르렀다. 기사사(耆社)에 들어갔고, 영조 정묘년에 사망하여 여든네 살을 살았다.
독음
이하원 광주인 문삼판 서만자 의만 종자 현종 갑진생 자 원례호 유남 숙종 신미생원 병자 등정시 역사 삼사대헌관 지 숭록판돈녕 입기사 영조 정묘 졸년 팔십사
의미
조선 시대 관료 이하원의 약력이다. 광주 출신으로 갑진년(1664)생이며, 숙종대에 과거에 합격하여 삼사 대헌관을 지내고 숭록대부 판돈녕에 이르렀다. 기사사에도 참여했으며, 영조 정묘년(1747)에 84세로 사망했다. 서만자와 의만은 세대 구분을 나타내는 호칭으로 보이며, 현종 이하원이 이하원의 종자임을 의미한다.
원문
李夏源廣州人文參判蓍晩子宜晩從子顯宗甲辰生字元禮號蘂南肅宗辛未生員丙子登庭試歷三司大憲官止崇祿判敦寧入耆社英祖丁卯卒年八十四
엔티티 후보
- person: 이하원 / 李夏源, confidence=0.95
- person: 종자 현종 / 從子顯宗, confidence=0.75
- place: 광주 / 廣州, confidence=0.95
- office: 문삼판 / 文參判, confidence=0.8
- office: 삼사대헌관 / 三司大憲官, confidence=0.75
- office: 숭록판돈녕 / 崇祿判敦寧, confidence=0.8
- term: 기사사 / 耆社, confidence=0.8
- term: 정시 / 庭試, confidence=0.9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9
- person: 서만자 / 蓍晩子, confidence=0.5
- person: 의만 / 宜晩, confidence=0.5
불확실한 어휘
- 蓍晩子와 宜晩은 호칭·호(號) 또는 양자 관계를 나타내는 세대 구분 용어로 보이나, 정확한 의미 해석이 불확실함
- 三司大憲官은 삼사의 대헌관 직임으로 해석하나, 관직 명칭 조합의 구체적 의미가 단정하기 어려움
유언명
- 기사 ID:
20037_029_012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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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유언명은 기계 사람이니 정기의 아들이며, 자는 휘지이다. 숙종 갑자년(1680)에 사마로서 기묘년(1675)에 정시로 급제하여 벼슬이 정언에 이르렀으나, 가문의 변란으로 원罪를 입어 폐관되었다.
독음
유언명 기계인 정기자 호휘지 숙종갑자년 사마기묘년 등정시 벼슬 정언에서 그치고 가변 원으로 폐해졌다
의미
유언명은 경기도 가평군 기계리의 출신으로 정기(正基)의 아들이다. 인조13년(1635) 생으로 추정되며, 숙종 연간에 과거에 합격하여 정언(正言·정6품)까지 출사하였으나, 가문의 변란으로 인해冤罪를 받아 벼슬을 그만두었다. 이후 복관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원문
兪彦明杞溪人正基子字晦之肅宗甲子[주:十九]司馬己卯登庭試官止正言以家變寃廢
엔티티 후보
- person: 유언명 / 兪彦明, confidence=1.0
- person: 정기 / 正基, confidence=1.0
- place: 기계 / 杞溪, confidence=1.0
- office: 정언 / 正言, confidence=1.0
- term: 사마 / 司馬, confidence=0.95
- term: 정시 / 庭試, confidence=0.95
- term: 가변 / 家變, confidence=0.9
- term: 원 / 寃,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司馬의 구체적 직위 체계(문과 급제 후 벼슬 직전 단계인지 추가 합격 시험인지)가 불분명함
- 家變의 구체적 내용이 원문에 나타나지 않아 원罪의 정확한 사유를特定할 수 없음
- 生년 미상, 사망년 미상, 복관 여부 미상
이만견
- 기사 ID:
20037_029_012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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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만겸은 윤가적의 사위를 양자로 삼아伯父의 뒤를 이었다. 자는 사동이고 호는 가정이다. 숙종 기축년(1699년)에 명경과에 급제하여 삼사와 춘방의 벼슬을 두루 거쳐 선전관의 관직에 이르렀으며, 벼슬길은 이조참판에서 멈추었다. 학문적 논쟁을 호소하는 상소를 올려 문단에 대한 시비를 강렬히 변론하였으나, 세상의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
독음
이만겸 이양자를伯父 윤가적의 사위로 삼았다. 자는 사동, 호는 가정. 숙종 기축년에 명경과에 합격하여 삼사와 춘방을 역임하고, 선전관을 지냈으며 벼슬은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학문의 논쟁을 호소하며 상소하여斯文의 시비를 통렬히 변론하였으나, 상심을 이기지 못하여 사망하였다.
의미
조선 시대 인물 이만겸의 행적기를 수록한 기사이다. 윤가적의 사위를 양자로 맞아들여 벼슬길을 올라 이조참판까지 올랐으나, 학문적 논쟁 과정에서 상심하여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숙종 기축년(1699년) 명경과 급제라는 구체적인 관年为 제시되어 그의 생몰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원문
李晩堅以䎘子為伯父翮后尹嘉績婿(字)士冬號稼亭肅宗己卯登明經科歷三司春坊銓郞官止吏參抗䟽痛卞斯文是非不勝喪而卒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만겸 / 李晩堅, confidence=0.95
- person: 윤가적 / 尹嘉績, confidence=0.9
- person: 백부 / 伯父, confidence=0.85
- person: 사동 / 士冬, confidence=0.9
- work: 가정 / 稼亭, confidence=0.9
- office: 삼사 / 三司, confidence=0.85
- office: 춘방 / 春坊, confidence=0.85
- office: 선전관 / 銓郞官, confidence=0.85
- office: 이조참판 / 吏參, confidence=0.9
- term: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0.9
- term: 사문 / 斯文,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䎘子(양자 관계의 구체적 방식)
- 不平(원문 문장 결함으로 정확한 의미 불확실)
- 不勝喪(상심 내지 병역 관련 불확실)
이정걸
- 기사 ID:
20037_029_012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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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정걸은 제기출신으로 감역官을 지냈으며, 아들은 상백자이다. 현종 왕의 병오년에 태어나 자는 수부, 호는 백파이며, 윤증의 문인이다. 숙종 기사년에 사마科에 합격하고, 임진년에 정시에 응시하여 합격하였다. 두 관서의 관료를 두루 역임하고 공参에 이르러 벼슬이 끝났다. 문장과 서예가 모두 정돈되고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였다. 영조 왕의 경술년에 사망하여 향년 65세였다.
독음
이정걸 제기손 감역 상백자 현종 병오생 자수부 호백파 윤증 문인 숙종 기사 사마 임진등정시 역사 양사관 지속공참 문사의아 필한초묘 영조 경술 졸 년육십오
의미
조선 시대 문신 이정걸의 행적이다. 현종 연간 병오년에 태어나 윤증의 문인帐下에서 수학한 후, 숙종 기사년과 임진년의 과거 시험에 합격하였다. 그後 두 관서의 벼슬을 두루 거치며 공参까지 올랐고, 문장의典雅함과 서예의 탁월함으로 이름을 떨쳤다. 영조 경술년에 사망하여 향년 65세였다.文中에는 친형 이정필과 동생 이정필의 관계가 언급되어 있다.
원문
李廷傑齊斗孫監役相伯子顯宗丙午生字秀甫號栢坡尹拯門人肅宗己巳司馬壬辰登庭試歷兩司官止工參文詞爾雅筆翰超妙英祖庚戌卒年六十五[주:兄弟文科弟廷弼承㫖○廷喆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정걸 / 李廷傑, confidence=0.95
- person: 윤증 / 尹拯, confidence=0.95
- person: 이정필 / 李廷弼, confidence=0.85
- era: 현종 / 顯宗, confidence=0.95
- era: 숙종 / 肅宗, confidence=0.95
- era: 영조 / 英祖, confidence=0.95
- term: 감역 / 監役, confidence=0.85
- term: 사마 / 司馬, confidence=0.9
- term: 정시 / 庭試, confidence=0.9
- term: 공참 / 工參, confidence=0.85
- term: 자(수부) / 字秀甫, confidence=0.9
- term: 호(백파) / 號栢坡,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相伯子(상백자: 아호 또는 지칭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의미 불분명)
- 齊斗孫(제기손: 출신을 나타내나 구체적 지역·門閥 정보 불확실)
이진유
- 기사 ID:
20037_029_012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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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4T11:19:19.04890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9&aa15no=029&aa20no=20037_029_0127
한글 번역
이진유는 이정영의 손자로서, 참판 대성공의 아들을 삼아 백부 진도정 만성의 양자가 되었다. 뒤에 홍만용의 외손자(주: 친조外婆孫)이며, 장기신의 손녀사위이다. 현종 기유년(1689)에 태어나 글자를士气, 호를 북곡이라 하였다. 숙종 정해(1709)년에 进土로 别試에 등급하여, 翰林院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고, 銓郞과 副學 등을 지냈으며, 관직은 이조判書에 이르렀다. 일경(李縉) 등의 소문으로 6적의 하나에게 지목되었다. 일경 등의 소문에서 말하기를, 수원부사 이진유는 마음과 행실이 강하고 엄격하며, 언론과 의기가 날카롭고 곧다. 하루라도 조정에 있지 않기를 마땅히 생각하지 않는다하여, 内遷을 요청하였다. 영조 을사(1725)년에 罗州에 유배되었고, 경술(1730)년에 고문而死하였다. 향년 62세이었다. 을해(1735)년에律을 시행하였다.(주: 세 형제 가운데 문과 출신으로 아우 진염과 진흡이 있는데, 아래를 보인다.)
독음
이진유 정영손 이 참판 대성자 위 백부 진도정 만성후 홍만용 외손주 주 본생 장기신손서 현종 기유생 자士气호 북곡 숙종 정해 이进士 등 별시강력翰林전랑 부학관 지도 이判 일경 소하 육적지 일일경 소曰 수원부사 이진유 심행 강엄 논의 척질 부당 일일 부재 조정請內遷 영조 을사 적 罗州 경술 공정사 년 육십이 을해 추률 주 삼형제 문과 아우 진염 진흡 보인다
의미
이진유(1689~1730)는 조선后期的 문신으로, 현종 연간에 태어나 숙종 정해(1709)년 进土로 등용되어 翰林院을 거쳐 이조判書에 이르렀다. 영조 즉위 직후 권신 일경 등의 탄핵 소문에 빠져 6적의 하나로 지목되어 수원부사에서 罗州로 유배되었고, 이후 고문으로 사망하였다. 향년 62세, 3형제 모두 문과에 급제하였다.
원문
李眞儒正英孫以參判大成子為伯父進都正晩成后洪萬容外孫[주:本生]張紳孫婿顯宗己酉生字士珍號北谷肅宗丁亥以進士登别試講歷翰林銓郞副學官止吏判一鏡䟽下六賊之一一鏡䟽曰水原府使李眞儒心行剛方言議峭直不當一日不在朝廷請內遷英祖乙巳謫羅州庚戌栲死年六十二乙亥推律[주:三兄弟文科弟眞儉眞伋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진유 / 李眞儒, confidence=1.0
- person: 이정영 / 正英, confidence=1.0
- person: 홍만용 / 洪萬容, confidence=1.0
- person: 장기신 / 張紳, confidence=1.0
- person: 이진염 / 李眞儉, confidence=1.0
- person: 이진흡 / 李眞伋, confidence=1.0
- person: 일경(李縉) / 一鏡, confidence=0.95
- place: 수원부 / 水原府, confidence=1.0
- place: 나주 / 羅州, confidence=1.0
- office: 이조판서 / 吏判, confidence=1.0
- office: 삼판 / 參判, confidence=0.9
- work: 별시 / 別試, confidence=1.0
- term: 육적 / 六賊, confidence=0.95
- term: 고문사 / 栲死,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본생(양자의 실生源指?)
- 수원부사의고문배치상황에서 정확한刑罚 내용
- 일경소문작성시점과 구체적 탄핵근거
김춘택
- 기사 ID:
20037_029_012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28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8-03T05:56:51.09318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9&aa15no=029&aa20no=20037_029_0128
한글 번역
김춘택은 진귀자이며, 이사영의 사위이다. 현종 경술(1670)년에 태어났고, 자는 백우, 호는 북헌이다. 성격이 활짝하고 문장이 자유자재하며, 널리 아량을 지녔으나 검박하지 못하였다. 동조 숙종 갑술(1694) 봄, 김춘택이 남인을 끌어내리고 왕비를 다시 세우려 하였으나, 마침 대운래·선 등의 선비들에게 발각되어 목발에 채여 옥에 갇혔으며, 다시 은을 모으고 교통한 죄목으로 소환 결안받았다. (거의) 일몰에 가까워 내일刑을 집행하려던 그날 밤 이경에 홀연히 전교가 있어,參鞫大臣 이하는 물론闵黯과 금당까지 모두 절도安置시켰다. 김춘택은 면했다. 또 윤순명이 김춘택이希載의 아내와 교통한 것을诬招하였다는罪名으로 여러 차례凶徒들의诬告를받았다. 오직 그와 함께 검거된者만이 방방 풀려났으나, 五次에 걸쳐 영해로 옮겨지고, 三次에 걸쳐 옥에 갇혔다. 매번 옥에 들어갔다가 곧 白放되었으니, 비록 단아한 선비가 아닌들에도,天下에 하나쯤은出世的豪傑이라 할 만하다. 충신과 효자되는 큰 절개를 지녀,勋臣의 장자 예로 대호군을 받았으며, 정축(1717)에 세상을 떠났으니 향년 사십팔이었다. 아들 덕재는 자가 천배, 호는 산천재이며,勋臣의 적자로서 대호군을 받았다. 경종 임인(1722)士祸로 인해耽羅로 옮겨졌고, 갑진(1724)에 옮겨진 곳에서 죽으니 향년 삼십일이었다. [주: 현손 영수 아래 참조]
독음
김춘택 진귀자 이사영서 현종 경술생 자백우 호북헌호망대문장불기본방차다기기국이불능검 동숙종갑술춘춘택장도출남인복위중궁졸위대운래선류발각출감역기어감겸이취은교통사소초결안{(회치)}일모명장행형저야이경호유전교참수대신이하병쇄출민암급금당병절도안치춘택득면우윤순명이번택교호자의거招루피피충도어오오천고이삼입료해입철백방수비단아지시호월간세호강조대절훈신정초장예수대호군정축졸년사십팔자덕재자천배호산천재적으로훈신謫장예례수대호군경종임인사화謫담라갑진졸어謫소연삼십일
의미
김춘택(1670~1717)은 조선 숙종 때 남인 세력 회복과 인현왕후 폐위 철회를 도모했으나 사전 발각되어 옥에 갇혔으나, 숙종의 특명으로 곤도安置되었다. 평생 정치적 유착과诬告를 많이 당했으나 매번 풀려나는 등波乱万丈한 생을 살았다. 충효의 대절이 있었고勋臣의 장자로 대호군에 올랐다. 아들 김덕재는 경종 때士祸로 섬에 옮겨져 젊은 나이에 죽었다. 현손 김영수(永壽)는 아래에 나온다.
원문
金春澤鎭龜子李思永婿顯宗庚戌生字伯雨號北軒豪邁文章不覊奔放且多器局而不能檢東肅宗甲戌春春澤將圖驅出南人復位中宫卒為大運來善軰所發覺枷囚繫獄兼以聚銀交通事所招結案(會値)日暮明将行刑是夜二更忽有傳教參鞫大臣以下并削出閔黯及禁堂并絶島安置春澤得免又尹順命以春澤交希載妻之意誣招屡被㐫徒之誣五遷嶺海三入牢狴每遭鞫獄入輒白放雖非端雅之士而亦可謂間世之豪有忠孝大節以勳臣嫡長例受大護軍丁酉卒年四十八子德材字天培號山泉齋以勳臣謫長例例受大護軍景宗壬寅士禍謫耽羅甲辰卒于謫所年三十一[주:玄孫永壽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춘택 / 金春澤, confidence=0.95
- person: 이사영 / 李思永, confidence=0.95
- person: 현종 / 顯宗, confidence=0.95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0.95
- person: 대운래 / 大運來, confidence=0.85
- person: 민암 / 閔黯, confidence=0.9
- person: 윤순명 / 尹順命, confidence=0.9
- person: 희재 / 希載, confidence=0.85
- person: 김덕재 / 金德材, confidence=0.9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0.95
- person: 영수 / 永壽, confidence=0.8
- office: 대호군 / 大護軍, confidence=0.85
- place: 탐라 / 耽羅, confidence=0.85
- term: 남인 / 南人, confidence=0.9
- term: 중궁 / 中宫, confidence=0.85
- term: 사고 / 士禍,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신문제
- 기사 ID:
20037_029_012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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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신문제는 학자이며, 호를 용계거사라고 하였다. 숙종조에 중사마 벼슬을 하였고, 문장이 있었으나, 특히 산레이 문체에서 특히 뛰어났다. 일찍이 과거 공부를 폐지하고, 보령 용연 위쪽에 거처를 정하였다. 용계 상량문이 세상에 전해진다.
독음
신문제 학자호 용계거사 숙종조 중사마 유문명 우미어 산레이 조废 거업 보령 용연지 상 거지 유 용계 상량문 전어세
의미
조선 숙종 시대 문인 신문제의 행적을 수록한 전기 기사이다. 그는 벼슬은 중사마에 그쳤으나, 특히 산레이 문체에 뛰어났으나, 일찍이 과거 공부를 포기하고 보령 용연으로 옮겨 그곳에서 상량문을 지어 세상에 남겼다.
원문
申文濟學子號龍溪居士肅宗朝中司馬有文名尤美於㪚儷早廢擧業卜保寧龍淵之上居之有龍溪上樑文傳于世
엔티티 후보
- person: 신문제 / 申文濟, confidence=0.95
- person: 용계거사 / 龍溪居士, confidence=0.95
- period: 숙종조 / 肅宗朝, confidence=0.95
- office: 중사마 / 中司馬, confidence=0.85
- place: 보령 / 保寧, confidence=0.9
- place: 용연 / 龍淵, confidence=0.9
- work: 용계상량문 / 龍溪上樑文,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어유봉
- 기사 ID:
20037_029_013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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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어유봉은 진의 아들 손으로, 우윤사형의 아들이자 이유와 이宜顯의 아내 조카이다. 현종 임자년에 태어나 字는舜瑞이고, 호는杞園이다. 금昌協의 문인이다. 숙종 기묘년에 태어나 장차 내시교관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이후 세 고을을 두루 지내고, 무술년에 유학人群中에서 뽑혀掌令에 제수되었다. 執義을 역임하고 그 사이 양牧을 제수받았으나 모두 부임하지 않았다. 기의儒的金弘錫이 상소한 뒤, 상소하여 宋時烈과 金昌協에 대한 모함임을 통렬히辩論하였다. 賛善 등의 관직을 두루 거쳐 右尹에 이르렀다. 英祖 갑자년에 죽하여 향년 73세였다.
독음
어유봉진익손은우윤사형자이유정이현제질현종임자생자유순서호기원금창협문인속종기묘생장내시교관불취후역삼읍무술피유선수장령역집의간배양목개불취기금홍석상후상서통변송시열금창협지무역찬선관지우윤영조갑자졸년칠십삼
의미
어유봉(魚有鳳, 1552~1724)은 조선后期的 학자이다. 金昌協의 문인으로서 숙종·영조 연간에 활동하였다. 内侍教官이나 掌令, 執義, 楊牧 등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여러 차례 부임하지 않았고, 이후 金弘錫 등의 상소를 계기로 宋時烈과 金昌協을 변호하는 상소를 올렸다. 賛善 등을 두루 거쳐 右尹에 이르렀으며, 英祖 갑자년(1724)에 73세로 사망하였다. 기사 전체가 음오학(儒學) 관련 인물 기록이며, 생몰년과 관력, 학맥 관계를 수록하고 있다.
원문
魚有鳳震翼孫蔭右尹士衡子李濡李宜顯妻侄顯宗壬子生字舜瑞號杞園金昌協門人肅宗己卯生壮拜內侍教官不就後歷三邑戊戌被儒選授掌令歷執義間拜楊牧皆不就圻儒金弘錫䟽後上䟽痛辨宋時烈金昌協之誣歷賛善官止右尹英祖甲子卒年七十三
엔티티 후보
- person: 어유봉 / 魚有鳳, confidence=1.0
- person: 이유 / 李濡, confidence=0.9
- person: 이宜顯 / 李宜顯, confidence=0.9
- person: 금창협 / 金昌協, confidence=1.0
- person: 금홍석 / 金弘錫, confidence=1.0
- person: 송시열 / 宋時烈, confidence=1.0
- place: 삼읍 / 三邑, confidence=0.8
- office: 장령 / 掌令, confidence=1.0
- office: 집의 / 執義, confidence=1.0
- office: 양목 / 楊牧, confidence=0.9
- office: 찬선 / 賛善, confidence=0.9
- office: 우윤 / 右尹, confidence=1.0
- work: 기원(호) / 杞園, confidence=1.0
- term: 내시교관 / 內侍教官, confidence=0.8
- term: 피유선 / 被儒選, confidence=0.7
- term: 통변 / 痛辨, confidence=0.8
- term: 지무 / 之誣,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 震翼孫(진익손, 진翼의 아들 손으로 해석되나 정확한 세대 관계 미확인)
- 士衡子李濡李宜顯妻侄(사형자 이유 이宜顯 아내 조카 관계의 정확한 문장 구조)
- 壮拜(장내시교관拜授의 오기 가능성)
- 圻儒(기의 지역 유학자 지칭 여부)
- 上䟽痛辨(상소하여 통변의 구체적 맥락)
김보택
- 기사 ID:
20037_029_013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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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김보택은 김춘택의 아우이고, 이사명의 사위이다. 현종 임자년에 태어나 자는 중시이고 호는 척재이다. 숙종 을해년에 별시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라 응교와 감관을 지내고 通政監司에 이르렀다. 계미년에 南九萬과 崔錫鼎이 인륜을 어지럽고 역적을 두둔한 죄를 상소로 논핵하였고, 정유년에 尹宣擧 부자가 현자를 능멸하고 스승을 배신한 죄를 규탄하였다. 흉악한 당파의 미움을 받아 이 해에 사망하였으니, 향년 오십육세였다. 경종 임인년에 벼슬이 추탈되었으나, 영조 을사년에 벼슬이 회복되었다. 시황제 정묘년에 이조판서로 추증되고 시호는 익헌이다. [주: 네 형제가 모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아우 云澤, 民澤, 祖澤의 기록은 아래를 볼 것] 아내 李氏는 화가 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므로, 마을 입구에 정려를 세웠다. 아들 聖材의 자는 汝壮이고 호는 杏亭이다. 경종 임인년에 사화(士禍)가 일어나珍島에 유배되었다가, 영조 을사년에 특赦로 돌아왔다. 군주에게 의를 펴고 개인적 원한으로 누명을 쓰게 되었으며, 학문에 마음을 다하여 다시 서울에 나아가지 않았다. 세상에서 이를 충과 효를 겸비한 것으로 여겼다. 무술년에 사망하였으니, 향년 오십일세였다.
독음
금보택춘택제이사명서현종임자생자중시호척재숙종을해등별시역응교관지통정감사계미서론남구만최석정태륜호역지죄정유척윤선거부자모현배사지죄위흉당소기연년졸년오십육경종임인추탈영조을사부관자대황제정묘증리판휘익헌사제제문과제운택민택조택견하처이씨화작후자재정려자성재자여장호행정임인사화배진도을사유환인의어군어사수독지강학불복적경사세이위충효양전무술졸년오십일
의미
조선后期的 文人 金普澤(현종 임자년 생)은 숙종 을해년 별시에 합격하여 通政監사에 이르렀다. 南九萬·崔錫鼎의 역적호호 정책과 尹宣擧 부자의 스승배신 행위를 상소로 규탄한 정직한 관료였다. 그러나 흉악한 당파의 미움을 사 향년 오십여섯에 세상을 떠났고, 사후에 벼슬이 추탈되었다가 영조 시대에 회복되었다. 아내 李氏는 화를 피해 자결하였고, 아들 聖材도 경종 임인년 사화에 연루되어 진도에 유배되었다가 돌아왔다. 이후 학문에 집중하여 다시 관직에 나가지 않았으나, 충과 효를 겸비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원문
金普澤春澤弟李師命婿顯宗壬子生字仲施號惕齋肅宗乙亥登别試歷應教官止通政監司癸未䟽論南九萬崔錫鼎斁倫護逆之罪丁酉斥尹宣擧父子侮賢背師之罪為㐫黨所惎是年卒年五十六景宗壬寅追奪英朝乙巳復官慈大皇帝丁卯贈吏判謚翼獻[주:四兄弟文科弟雲澤民澤祖澤見下]妻李氏禍作後自裁旌閭子聖材字汝壮號杏亭壬寅士禍配珍島乙巳宥還引義於君誣私讎篤志講學不復跡京師世以為忠孝兩全戊午卒年五十一
엔티티 후보
- person: 김보택 / 金普澤, confidence=1.0
- person: 김춘택 / 金春澤, confidence=1.0
- person: 이사명 / 李師命, confidence=1.0
- person: 남구만 / 南九萬, confidence=1.0
- person: 최석鼎 / 崔錫鼎, confidence=1.0
- person: 윤선거 / 尹宣擧, confidence=1.0
- person: 김성재 / 金聖材, confidence=1.0
- place: 진도 / 珍島, confidence=1.0
- office: 통정감사 / 通政監司, confidence=1.0
- office: 이조판서 / 吏判, confidence=1.0
- office: 응교관 / 應教官, confidence=1.0
- work: 척재 / 惕齋, confidence=1.0
- work: 행정 / 杏亭, confidence=1.0
- term: 별시 / 別試, confidence=1.0
- term: 정려 / 旌閭, confidence=1.0
- term: 사화 / 士禍,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㐫黨은 흉악한 당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나, 명확한 당파명 특정은 어렵다
- 追奪의 구체적 사유와 시점이 원문에 생략됨
홍중주
- 기사 ID:
20037_029_013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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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홍중주는 만용자(字)는 도진이며, 호는 쌍백당이다. 숙종 기묘년(1679년)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음직으로 관직에 나아갔으며, 여러 차례 주목을 맡았다. 관직은 공조참판에서 그쳤다. 문장이 있었다.
독음
홍중주 만용자 자도진 호쌍백당 숙종 기묘년 진장음사 여전주목 관지공참 유문명
의미
조선 숙종대 인물 홍중주의 이력이다. 1679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여러 번 주목을 역임한 뒤 공조참판 품계까지 올랐으며, 문학적으로名声이 있었다.
원문
洪重疇萬容子字道陳號雙栢堂肅宗己卯進壮蔭仕屡典州牧官止工參有文名
엔티티 후보
- person: 홍중주 / 洪重疇, confidence=0.98
- person: 만용자 / 萬容子, confidence=0.95
- person: 도진 / 道陳, confidence=0.97
- work: 쌍백당 / 雙栢堂, confidence=0.97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0.99
- term: 기묘(1679년) / 己卯, confidence=0.85
- office: 진장음사(진사에 음직 진출) / 壮蔭仕, confidence=0.75
- office: 공조참판 / 工參, confidence=0.92
불확실한 어휘
- 壮蔭仕 - 음직 진사 제도의 정확한 구조가 불분명하여 해석이 어긋날 수 있음
여위량
- 기사 ID:
20037_029_013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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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여위량은 함양 사람이며, 자는 선재이다. 상원에居住하여, 숙종 기묘년에 명경과에 합격하였다. 벼슬은 장령에 이르렀으나, 중화부사로 있을 때 장물을 범하여 수형을 받았다.
독음
여위량 함양인 자 선재거주 상원 숙종 기묘 명경과 등관관 직 장령 중화 부사로 범장 수형
의미
여위량은 숙종 기묘년(1189)에 명경과에 합격하고 장령까지 올랐으나, 중화부사로 재직 중 뇌물을 받은 죄로刑罚을 받았다.
원문
呂渭良咸陽人字善哉居祥原肅宗己卯登明經科官止掌令以中和府使犯贜受刑
엔티티 후보
- person: 여위량 / 呂渭良, confidence=1.0
- place: 함양 / 咸陽, confidence=1.0
- person: 선재 / 善哉, confidence=1.0
- place: 상원 / 祥原, confidence=1.0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1.0
- term: 기묘 / 己卯, confidence=1.0
- work: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1.0
- office: 장령 / 掌令, confidence=1.0
- office: 중화부사 / 中和府使, confidence=1.0
윤성시
- 기사 ID:
20037_029_013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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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윤성시는 이경휘의 사위이며, 이경휘의 아들인址의 증손이다. 자는 계성이고, 숙종 기묘년에 생원이 되고 을유년에 증광에 올랐다. 삼사의 관직을 두루 거쳐 이의(吏議) 직전까지 승진하다가, 경종 신축년에 일경의 소문이 내려지면서 육적의 한 사람으로 꾸며졌으며, 경술년에 채찍질로 맞아 죽고, 을해년에 추문되었다.
독음
윤성시 근수현손 음감찰 척자 이경휘 손서 자 계성 숙종 기묘 생원 을유 등증광 역사삼사관 지리의 경종 신축 일경 소하 육적의 하나 경술 장사 을해 추률
의미
윤성시는 조선 숙종~영조 연간官僚으로, 이경휘의 사위이자址의 증손이다. 생원 합격 후 증광 합격하여 삼사 관직을 두루거쳤으나, 경종 신축년(1721)의 일경(李森) 소하 문책으로 남인 정권에 의해 육적의 하나로 몰려 경술년(1730)에 채찍형으로 사망하고, 을해년(1735)에 추문되었다. 이 사건은 경종~영조 교체기의 정치적 숙정 사례이다.
원문
尹聖時根壽玄孫蔭監察垿子李慶徽孫婿字季成肅宗己卯生員乙酉登增廣歷三司官止吏議景宗辛丑一鏡䟽下六賊之一庚戌杖死乙亥追律
엔티티 후보
- person: 윤성시 / 尹聖時, confidence=0.95
- person: 이경휘 / 李慶徽, confidence=0.95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0.95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0.95
- person: 일경 / 一鏡, confidence=0.9
- office: 감찰 / 監察, confidence=0.9
- place: 증광 / 增廣, confidence=0.85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95
- term: 삼사 / 三司, confidence=0.9
- term: 육적 / 六賊, confidence=0.95
- term: 추률 / 追律,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根壽玄孫(원문 명칭의 해석, 후손 계보 표기와 관련疑虑)
- 䟽(疏의 오기로 추정)
- 字季成의 계승 관계 명칭
- 乙酉登增廣(년을 표시하는지 과거 시험 명칭인지 미확인)
이시항
- 기사 ID:
20037_029_013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35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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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4T02:21:11.44531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9&aa15no=029&aa20no=20037_029_0135
한글 번역
이시항은 수원 사람으로, 이정한의 아들이다. 자는 사상, 호는 화은이다. 평양에 거처하면서 살았다. 숙종 기묘년(1699년)에 진사로 급제하여 증광관에 오르고, 관직은 병佐에서 그쳤다. 문장으로 서쪽 지방에 이름이 알려졌으며, 문집이 전해진다.
독음
이시항 수원인 정한의 아들이자 사상이란 호는 화은이라 평양에 거주하였으며 숙종 기묘년에 진사로 증광관에 나아가 관직은 병佐에서 그쳤다. 문명으로 관서 지방에 이름이났으며 문집이 있다.
의미
조선后期的文臣 이시항은 수원 출신으로, 진사 급제 후 증광관에 올랐으나 병佐 직에서 관직 생활이 끝났다. 문장에 능하여 서쪽 지방인 관서에서 명성을 얻었고, 문집을 남겼다.
원문
李時恒遂安人廷翰子字士常號華隠居平壤肅宗己卯以進士登增廣官止兵佐以文名關西有文集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시항 / 李時恒, confidence=1.0
- person: 이정한 / 廷翰, confidence=1.0
- place: 수원 / 遂安, confidence=1.0
- place: 평양 / 平壤, confidence=1.0
- term: 자 / 字, confidence=1.0
- term: 호 / 號, confidence=1.0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office: 증광관 / 增廣官, confidence=1.0
- office: 병佐 / 兵佐, confidence=1.0
- work: 문집 / 文集, confidence=1.0
- term: 관서 / 關西, confidence=1.0
- term: 숙종 기묘년 / 肅宗己卯,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신유
- 기사 ID:
20037_029_013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36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4T02:21:33.26119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9&aa15no=029&aa20no=20037_029_0136
한글 번역
신유는 일화자의 현종 계축년에 태어나 字는伯謙이고 호는晦谷이며, 권상하의 문인이다. 어려서 송시열이 절도해绝海(제주)에 유배되는 소식을 듣고 시를 지어, 북궐에 부浮雲이 가리우고 남주의 달도 멀어졌네, 아득한 영해 밖에서 어디가 단라(제주)리오고 하였다. 숙종 계미년에 상소문을 올려 송시열의 비문을 변명하였으며, 그보다 앞서 계곡사에서 주자의 서적讀書하며, 서신을 통해 정재두와 박세당이 성인을 모욕하고 경서를 훼손한 죄목을 논박하였다. 병술년에 서른셋의 나이로 졸하였다. 문장과 학문 모두高明하였으나 일찍 세상을 떠났으니, 先軰들이 말하기를, 만약 송시열의 시대에 태어났다면 반드시 入室之人이 되었을 것이라고 하였다.,英祖 정묘년에 벼슬을追贈하여 吏議라 하고, 아우 신憼의 字는叔卿이며 호는峻節處士로,純良한 자품과 기대한 기운이 있었다. 권상하에게 수학하여 진정으로 학문에 힘썼으나 역시 일찍 세상을 떠났다.
독음
신유는 일화자의 현종 계축년에 나고 자는 백겸이며 호는 회의인데 권상하의 문인이다. 어릴 때 송시열이 절도해绝海에 유배된 소식을 듣고 시를 지어 이르길, 북궐에 부浮雲이 가리우고 남주의 달도 멀어졌네, 아득한 영해 밖에서 어디가 단라(耽羅)리오라고 하였다. 숙종 계미년에 상소문을 올려 송시烈的 비의를 변명하였는데, 글을 제출하기 전부터 계곡사에서 주자의 서를 읽고 있었다. 서신을 통해 정재두와 박세당이 성인을 모독하고 경서를 훼손한 죄목을 논박하였다. 병술년에 삼십 회의 나이로 졸하였다. 문장과 학문 모두高明하여 일찍 세상을 떠났으니, 克展의 未就를 버린 채 先軰들이 말하기를, 만약 송시烈의 시대에 태어났다면 반드시 入室之人이 되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영조 정묘년에 벼슬을追贈하여 吏議라 하고, 아우 憼의 자는 숙경이며 호는 순절 처사로,純良한 자품과 기대한 기운이 있었다. 권상하에게 수학하여 실로학問에 힘썼으나 역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의미
조선 시대 학자 신유의 전기이다. 어려서 송시열의 유배 소식을 듣고 우려를 시로 표현하였고, 성리학正统을 위해 정재두·박세당 등의 非正統 학풍을 서신으로 논박하였다. 문장과 학문이 뛰어나면서도 삼십세에 일찍 사망하여 实现하지 못한才學을 先輩들이 아꼈으며, 송시열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 直傳弟子가 되었을 것으로 평가하였다. 아우 신憼 역시 권상하의 문인으로早逝하였다. 두 형제 모두 정학을 위해 正統을 지키고 非正道를 배격한 학통이었다.
원문
申愈㬅孫日華子顯宗癸丑生字伯謙號晦谷權尙夏門人兒時聞宋時烈謫絶海作詩曰北闕浮雲晦南州謫路賖茫茫嶺海外何處是耽羅肅宗癸未上辨誣䟽入雞嶽讀朱子書以書斥鄭齋斗朴世堂侮聖毀經之罪丙戌卒年三十回文章學術俱為高明而早歿棄克展抱先軰以為使生宋時烈之世則當作入室之人英祖丁丑贈吏議弟憼字叔卿號峻節處士有純良之姿奇傑之氣受業於權尙夏實心向學早卒
엔티티 후보
- person: 신유 / 申愈, confidence=0.98
- person: 송시열 / 宋時烈, confidence=0.98
- person: 권상하 / 權尙夏, confidence=0.98
- person: 정재두 / 鄭齋斗, confidence=0.95
- person: 박세당 / 朴世堂, confidence=0.95
- person: 신憼 / 申憼, confidence=0.97
- person: 일화자 / 日華子, confidence=0.85
- place: 절도해 / 絶海, confidence=0.9
- place: 단라 / 耽羅, confidence=0.93
- place: 계곡사 / 雞嶽, confidence=0.85
- work: 주자의 서적 / 朱子書, confidence=0.92
- term: 추증 벼슬 / 吏議, confidence=0.9
- term: 직접 전수받은 제자 / 入室之人, confidence=0.92
- term: 비문 변명 / 辨誣, confidence=0.9
- term: 순절 처사 / 峻節處士, confidence=0.88
불확실한 어휘
- 㬅은 㬂 또는 昋의 오기일 수 있어 日華子의 정확한 계통 확인 필요
- 北闕浮雲晦南州謫路賖의 ‘北闕’이 궁궐을 가리키는지 구체적 위치 불명확
홍호인
- 기사 ID:
20037_029_013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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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홍호인은 남양 출신으로 처량의 증손이다. 이도의 아들이어하여尚度의 뒤를 이었다. 현종 갑인년에 태어났으며, 자는 유재이다. 숙종 병술년에 대과에 급제하여 두임관과 양사로 두루 역임하고, 금상(金襴)에 오르고, 벼슬은 판윤에서 그쳤다. 기사사에 들어갔으며, 영조 경오년에 사망하고 향년 77세였다.
독음
홍호인 남양인 처량증손 이이도자를 위하여후 현종갑인생 자유재 숙종병술괴정시 역양사금백 관지판윤입기사 영조(경오) 졸년칠십칠
의미
홍호인은 조선 시대 남양 출신의 관료로, 현종 갑인년(1674년)에 태어났다. 숙종 병술년(1694년)에 대과에 급제하여 两司(양사)와 錦伯(금상)에 오르는 등 요직을 두루 역임했으나 벼슬은 판윤에서 멈췄다. 기사사에 편입되었으며, 영조 경오년(1750년)에 사망하고 향년 77세였다.家系에서 처량(處亮)의 후손으로, 以度의 아들이 尙度의 관직을 이은 것으로 나타난다.
원문
洪好仁南陽人處亮曾孫以以度子為尙度后顯宗甲寅生字有哉肅宗丙戌魁庭試歷兩司錦伯官止判尹入耆社英祖(庚午)卒年七十七
엔티티 후보
- person: 홍호인 / 洪好仁, confidence=1.0
- person: 처량 / 處亮, confidence=0.85
- person: 이도 / 以度, confidence=0.9
- person: 상도 / 尙度, confidence=0.9
- place: 남양 / 南陽, confidence=1.0
- term: 증손 / 曾孫, confidence=0.8
- term: 자 / 字, confidence=1.0
- term: 괴정시 / 魁庭試, confidence=0.9
- term: 양사 / 兩司, confidence=0.9
- term: 금백 / 錦伯, confidence=0.8
- office: 판윤 / 判尹, confidence=1.0
- term: 기사사 / 耆社,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處亮曾孫(처량의 증손이라는 표현이 정확히 4대손인지 불확실)
- 以以度子為尙度后(以度의 아들이尙度의 뒤를 이었다는 구문의 구체적 관계 해석)
- 錦伯(금백이 직위명인지 관직명인지 불확실)
윤유
- 기사 ID:
20037_029_013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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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윤유는 두수의 5세손이다. 지평 세희자의 아들이며 이조의 매부이다. 현종 갑인년에 태어나 자는 백수, 호는 만하이다. 숙종 임오년에 생원이 되고, 무술년에 진천현감이 되어 정정에 오랐다. 삼사를 두루 지나 병판, 호판, 이판을 지내고 졸았다. 영조 정사년에 죽하여 향년 64세, 시호는 익헌이다. 형제: 아우 문과 급제자 윤순은 아래를 볼 것. 아들:득운, 사위: 조원명(자 자원, 호 백험)은 천거되어 교관을 제수받았으나 부솔(보직)을 모두 사양하고 나가지를 않았다. 나이를 들어 이제에 올라 都正이 되었다. 지은 저서에 조야첨재가 있다.
독음
윤유 두수오세손 지평세희자 이조매부 현종갑인생 자백수 호만하 숙종임오생원 무술진천현감으로 정정에 오름 삼사 병판 호판 관지 이판 영조정사 졸년육십사 시익현제제문과제제순하참자득운 조원명서 자자유 호백험 천관教官 부솔개不就老是昇都正 소저유조재
의미
조선后期的文臣 윤유(현종갑인생)의 짧은 행적이다. 두수의 5세손으로 이조의 매부로서 출생하였고, 생원 합격 후 진천현감을 거쳐 관료를 거쳐 병·호·이 삼 판을 지냈다. 영조 정사년(1737)에 졸하여 향년 64세, 시호는 익헌이다. 아우 윤순은 문과 급제자이고 아들 득운, 사위 조원명은 천거받았으나教官·副率 등 보직을 모두 사양하였다. 저서로 조야첨재를 남겼다.
원문
尹游斗壽五世孫持平世喜子李肇妹夫顯宗甲寅生字伯修號晩霞肅宗壬午生員戊戌以鎭川縣監登庭試歷三司兵判戶判官止吏判英祖丁巳卒年六十四謚翼憲[주:兄弟文科弟淳見下]子得運趙遠明婿字子元號白崖薦除教官副率皆不就老陞都正所著有朝野僉載
엔티티 후보
- person: 윤유 / 尹游, confidence=0.95
- person: 두수 / 斗壽, confidence=0.85
- person: 세희 / 世喜, confidence=0.85
- person: 이조 / 李肇, confidence=0.85
- person: 백수 / 伯修, confidence=0.9
- person: 만하 / 晩霞, confidence=0.9
- person: 윤순 / 尹淳, confidence=0.85
- person: 득운 / 得運, confidence=0.9
- person: 조원명 / 趙遠明, confidence=0.9
- person: 자유 / 子元, confidence=0.9
- person: 백암 / 白崖, confidence=0.85
- person: 익헌 / 翼憲, confidence=0.9
- place: 진천 / 鎭川, confidence=0.9
- office: 지평 / 持平, confidence=0.9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0.9
- office: 병판 / 兵判, confidence=0.9
- office: 호판 / 戶判, confidence=0.9
- office: 이판 / 吏判, confidence=0.9
- office: 도정 / 都正, confidence=0.85
- work: 조야첨재 / 朝野僉載, confidence=0.9
- term: 정시 / 庭試, confidence=0.85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9
- term: 교관 / 教官, confidence=0.85
- term: 부솔 / 副率,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得運
- 教官 副率 皆不就 老陞都正 사이 구두점·문절 분리가 불확실하여 전체 구조 해석이 약간 흐릿함
송성명
- 기사 ID:
20037_029_013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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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송성명(宋成明)이 징음자(徵殷子)이고, 자(字)는 성집(聖執)이며, 호(號)는 송석헌(松石軒)이다. 숙종조(肅宗朝) 을유(乙酉)년에 증광(增廣)에 합격하여 한림사인(翰林舍人)을 거쳐 전랑(銓郞)·참찬(參賛)을 지내고 체학관(提學官)에 이르렀으며, 마지막 관직은 예판(禮判)이었다. [주: 세 형제 중 문과 출신인 형 정명(正明)은 송유(松留)에 있고, 아우 진명(眞明)은 아래를 참조할 것]
독음
송성명 징음자 자성집 호송석헌 숙종조 을유登증광 역사한림사인 전랑참찬 체학관 정예판
의미
조선 숙종조 을유년에 증광에 합격하여 관직에 진출한 인물 송성명의 이력이다. 한림사인에서 출발하여 전랑, 참찬 등 청요한 관직을 거치며 체학관에 이르고, 예판으로 벼슬을 마무리했다. 세 형제 중 문과 출신인 형 송정명과 아우 진명이 있었다.
원문
宋成明徵殷子字聖執號松石軒肅宗朝乙酉登增廣歷翰林舍人銓郞參賛提學官止禮判[주:三兄弟文科兄正明松留○弟眞明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송성명 / 宋成明, confidence=1.0
- person: 송정명 / 正明, confidence=1.0
- person: 진명 / 眞明, confidence=1.0
- office: 한림사인 / 翰林舍人, confidence=1.0
- office: 전랑 / 銓郞, confidence=1.0
- office: 참찬 / 參賛, confidence=1.0
- office: 체학관 / 提學官, confidence=1.0
- office: 예판 / 禮判, confidence=1.0
- term: 증광 / 增廣, confidence=1.0
- era: 숙종조 / 肅宗朝, confidence=1.0
- era: 을유 / 乙酉,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징음자(徵殷子) - 호나 별칭으로 보이나 확실하지 않음
- 송유(松留) -的地名 또는 관청명인지 불확실
권적
- 기사 ID:
20037_029_014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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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권자숙은 숙종 즉위년(영조 즉위년 포함 고려 시점)에 태어난 사람으로, 자는 경하이고 호는 창백헌이다. 또한 권남애는 경인년에 태어나 묘년으로 추측된다. 참봉으로 발탁되어 증광에 오르고 한림직을 거쳐 삼사 전랑을 역임했다. 정유년에 한림으로서 대부와 단독으로 면대할 때,宦官이 단단히閤門을 가로막고 큰 소리로 말하기를“中관이 감히 어찌承旨史官의入朝를 막겠는가”하였다. 임금이入朝를 허락하고 그를 크게 기상하였다. 대헌이 되어 여러 죄악을 신속하게 소탕하였고, 이로 인해“후대에 풍속을 가르친다”라는 四字의 말을慈天에서 표창받았다.完伯·圻伯 등을 거쳐 관직은輔國礼判에 이르렀다. 영조 갑술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향년 80세이고 시호는孝靖孝旌이다.
독음
권자숙 숙종을묘년에 태어나 자는 경하이고 호는 창백헌이다. 또 남애는 경인년에 태어나 장생에 계사년이 있다. 참봉으로 등재되어 증광에 오르고 한림을 거쳐 삼사 전랑을 지냈다. 정유년에 한림으로 대부와 독대할 때 중관이 굳세게閤門을 거부하고巨聲하여 말하기를“中관이 어찌 감히 승사의 入을 막겠는가”하였다. 임금이 入을 허락하고嘉奬하였다. 대헌이 되어 여러 죄인을 힘있게 토벌하여“후대에 풍을 나무한다”라는 四字를慈天에서 표창하였다.完伯·圻伯을 거쳐 관직은輔國禮判에 이르렀다. 영조 갑술년에 사망하여 향년 80세이고 시호는孝靖孝旌이다.
의미
조선 영조 연간에 활동한 두 관료 권자숙과 권남애의 행적을 수록한 기사이다. 권자숙은 중앙 관료로 승진하여 한림 삼사 전랑을 지냈고, 대부와의 독대 시宦官이 승시入朝를 막는 사건이 발생하자 임금이 이를 즉시 해결하여嘉奬하였다. 이후 대헌이 되어 죄악을 소탕하고慈天에서“후대에 풍을 가르친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관직은輔國礼判에 이르렀고 80세로 사망하여 시호孝靖孝旌을 받았다. 전반적으로 조선后期 관료의 관료 경력, 왕과의 관계, 사면 평가 등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원문
權子肅宗乙卯生字景賀號蒼白軒又南崖庚寅生壮癸巳以參奉登增廣歷翰林三司銓郞丁酉以翰林値大臣獨對時中官牢拒閤門䙗厲聲曰中官何敢阻承史之入上許入嘉奬為大憲力討羣㐫至有樹風後世四字慈天褒歷完伯圻伯官止輔國禮判英祖甲戌卒年八十謚孝靖孝旌
엔티티 후보
- person: 권자숙 / 權子肅, confidence=0.95
- person: 남애 / 南崖, confidence=0.85
- person: 자천 / 慈天, confidence=0.7
- office: 참봉 / 參奉, confidence=0.95
- office: 한림 / 翰林, confidence=0.95
- office: 삼사 전랑 / 三司銓郞, confidence=0.9
- office: 대헌 / 大憲, confidence=0.85
- office: 보국 예판 / 輔國禮判, confidence=0.85
- term: 합문 / 閤門, confidence=0.7
- term: 승시 / 承史, confidence=0.75
- term: 후대에 풍을 가르친다 / 樹風後世, confidence=0.8
- term: 시호 / 謚,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合門(閤門)
- 承史(승시 또는 승지)
- 完伯·圻伯(관직명 또는 인명 불분명)
- 庚寅生壮癸巳(정확한 의미 해석 불확실)
- 䙗厲聲(표기 오류 의심)
- 嘉奬(가상 또는 가상)
최징후
- 기사 ID:
20037_029_014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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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최징후는 삭녕 출생으로, 숙종 즉위년 중 을묘년에 태어났으며, 자는 성중, 호는 매봉이다. 권상하의 문하생이다. 타고난 자질이 온화하고 순수하며, 비범하게 총명하여 보통과 달랐다. 어려서부터 이미 도를 구하겠다는 뜻에 깊이慨然하였고, 과거 시험을 과감히 버리고 성학의 실천에 힘을 기울였다. 권상하의 문하에 나아가니 문로가 더욱 바르고 공부가 더욱 깊어졌다. 을미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향년 사십한 세였다.
독음
최징후 삭제녕인 숙종 을묘년생 자성중 호매봉 권상하문인 천자온수영어이범 자소기고개연유구도지지 전문포거업계력행성학 격유권상하지문 문로익정공부익밀 을미 졸년사십일
의미
조선中期 학자 최징후의 전기이다.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 어려서부터 도를 구하고자 하는 뜻을 품었고, 과거 시험을 과감히 포기한 채 성리학을 실천하였다. 권상하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학문적 깊이가 한층 깊어졌으며, 을미년(1715년)에 사십한 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원문
崔徵厚朔寧人肅宗乙卯生字誠仲號梅峯權尙夏門人天資溫粹穎悟異凡自少己慨然有求道之志專拋擧業力行聖學洎遊權尙夏之門門路益正工夫益密乙未卒年四十一
엔티티 후보
- person: 최징후 / 崔徵厚, confidence=1.0
- place: 삭녕 / 朔寧, confidence=1.0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1.0
- person: 자성중 / 字誠仲, confidence=1.0
- person: 호매봉 / 號梅峯, confidence=1.0
- person: 권상하 / 權尙夏, confidence=1.0
- term: 문로 / 門路, confidence=1.0
- term: 공부 / 工夫, confidence=1.0
- term: 문하생 / 門人,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肅宗乙卯生 -文中에서 ‘생년(出生年)’인지, ‘숙종 즉위년 중 을묘년생(태어남)’인지 명확하지 않으나, 통상 문헌에서 ‘연호년생’으로 쓰인 예에 따라 태어난 해로 해석
신명정
- 기사 ID:
20037_029_014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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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신명정의 자(字)는 백응이고 호(號)는 은파이며, 금창협의 문인이다. 시집이 있다. 금창흡이 서문을 지어 말하기를, “곡식과 물로 효도를 다하지 못하면서도父母的慈顔을 항상 편안하게 할 수 있었고, 거칠고 보잘것없는 음식조차 채워주지 못하면서도肉食하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걱정하였다.”
독음
신명정 자백응 호은파 금창협 문인 유시집 금창흡서가 지어曰 소식미계 능사 자안상의 예수약미충 대위 육식자우
의미
조선 시대 학자 신명정의 인물 소개 기사이다. 호은파라는 호로 활동한 신명정이 금창협 문인임을 밝히고, 그가 시집을 가지고 있음을 전한다. 금창흡이 쓴 서문에서, 신명정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부모님께 효도하고,富한 자의 처지를 걱정하는仁厚한 인품을 갖추었음을 칭송한다.
원문
申命鼎字伯凝號隠坡金昌協門人有詩集金昌翕序之曰菽水未繼能使慈顔常怡藜藿未充代為肉食者憂
엔티티 후보
- person: 신명정 / 申命鼎, confidence=0.95
- person: 백응 / 伯凝, confidence=0.9
- person: 은파 / 隠坡, confidence=0.9
- person: 금창협 / 金昌協, confidence=0.85
- person: 금창흡 / 金昌翕, confidence=0.9
- work: 시집 / 詩集,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金昌協門人 - ‘금창협 문인’으로 읽었으나, 금창협이 인명인지 장소인지 문맥만으로 확신하기 어려움
- 菽水 - 곡식과 물이라는 문자 그대로의 뜻 외에, 부모님께 차린 거친 음식 없다는 표현인 ‘효양의 검약’으로 해석할 수도 있음
- 肉食者憂 -肉食을 하는 사람을 대신한다는 표현을 ‘富者를 대신하여 걱정한다’로 해석하였으나, 원문의 문법 구조가 불완전하여 독해가 유동적임
황찬
- 기사 ID:
20037_029_014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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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황찬은 회덕인으로서 윤후의 아들이며, 자는휘경이다. 목천에 거주하였다. 숙종 임신(1692)에 명경과에 합격하여 사예관을 역임하고, 마침내 목사가 되었다. 황영의 진소 옥사에 연좌되어 치핵을 당해 죽었다.
독음
황찬 회덕인 윤후자 자휘경 거목천 숙종 임신 등명경과 역사예관 지도목사 인황영거진소옥 사연연장별
의미
황찬은 충청북도 괴산군 지역(회덕) 출신으로, 아버지 윤후의 아들이었다. 1692년(숙종 임신)에 문과 중 명경과에 합격하여 궁정 관직을 두루 역임하고 종신 목사로 자리했다. 이후 황영이 연좌된 진소의 옥사(재판 사건)에 말려들어 고문 심문 도중 곤장으로 맞아 죽었다.
원문
黃燦懷德人允厚子字煇卿居木川肅宗壬申登明經科歷司藝官止牧使因黃熽鞫(陳䟽)獄辭連杖斃
엔티티 후보
- person: 황찬 / 黃燦, confidence=0.98
- place: 회덕 / 懷德, confidence=0.92
- person: 윤후 / 允厚, confidence=0.9
- place: 목천 / 木川, confidence=0.9
- year: 숙종 임신(1692) / 肅宗壬申, confidence=0.95
- office: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0.9
- office: 사예 / 司藝, confidence=0.85
- office: 목사 / 牧使, confidence=0.9
- person: 황영 / 黃熽, confidence=0.78
- person: 진소 / 陳䟽,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黃熽 (황영): 同名 인물로 추측되나 신원 미상, ‘因黃熽鞫’ 구조의 해석에 불확실성 존재
- 陳䟽 (진소): 사람 이름으로 보이나, 한자 확인 필요
- 辭連: ‘사연연좌’로 해부했으나 ‘연설(연사)’의 가능성이 있음
- 杖斃: 곤장 맞아 죽은 것으로 보이나, 자해인지 타살인지는 문맥만으로 단정 곤란
이현익
- 기사 ID:
20037_029_014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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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현익은 영순군 보의 10세손이다. 음서(세습)로 군수 벼슬을 받았습니다. 장기에게서 온 종질(조카)로서, 자는 중염이고 호는 정암이다. 김창협의 문인이다. 숙종 무자년(1689년)에 태어나 장서학(군수보급)을 설치하고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다가 자의관에서 지현으로 끝났다. 학문과 행실이 있었으며, 저서에 『관산문답』이 있다.
독음
이현익 영순군 보 십세손 음군수 장기에게서 종질 자는 중염 호는 정암 김창협 문인 숙종 무자년에 태어나 장서학 전리 자의관 지현에 그치며 학행이 있으며 지은 것이 관산문답이 있다
의미
조선 숙종 연간에 활동한 유학자 이현익의 간략한 전기이다. 영순군 보의 후손으로 김창협 문하에서 수학하여 벼슬은 자의관에 이르렀으며, 학행과 저서를 남겼다.
원문
李顯益永順君漙十世孫蔭郡守泓子濡從姪字仲謙號正菴金昌協門人肅宗戊子生壮除師傳歷諮議官止知縣有學行所著有管山問答
엔티티 후보
- person: 이현익 / 李顯益, confidence=1.0
- person: 영순군 / 永順君, confidence=0.95
- place: 관산 / 管山, confidence=0.8
- work: 관산문답 / 管山問答, confidence=0.9
- office: 음군수 / 蔭郡守, confidence=0.9
- office: 사전 / 師傳, confidence=0.6
- office: 자의관 / 諮議官, confidence=0.9
- office: 지현 / 知縣, confidence=0.9
- person: 김창협 / 金昌協, confidence=0.95
- person: 중염 / 仲謙, confidence=1.0
- term: 호 / 號, confidence=1.0
- term: 문인 / 門人, confidence=1.0
- term: 장서학 / 壯除師傳, confidence=0.75
불확실한 어휘
- 壯除師傳: ‘장서학 설치’로 해석하나 통사적 연결이 불분명하여 전문가 검증 필요
- 漙: 이字的 계통 확인 불가, 보(보)의 오류 가능성 있음
현상벽
- 기사 ID:
20037_029_014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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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8-03T05:58:10.18366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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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현상벽은 팔려는 사람으로서, 구렬(아홉 살) 때宇齡子를 백부로 삼았다. 이후 자(字)는 연명, 호는 관봉이다. 권상하의 문인으로서, 타고난 자질이 밝고 통찰력이 있으며 학문적 소养이 깊고 착실하였다. 이학과 뜻이李東과 서로 통하고 합하였으며, 벼슬은 선마에서 그쳤다. 지은 책으로 『관봉문답』이 있다.
독음
현상벽 팔려인 이우영자 위 백부 구령 후 자 연명 호 관봉 권상하 문인 천자 명투 학업 독후 여 이동 지同道 합 관직 지 선마 소재 유 관봉 문답
의미
조선 시대 학자 현상벽(玄尙璧)의 행적을 수록한 기사이다. 현상벽은 팔려는 출신으로, 어린 시절宇齡子를 백부로 삼았고, 이후 자는 연명, 호는 관봉이라 하였다. 권상하의 문인으로서 천재적 재능과 철저한 학업을 갖추고 이학의 동지李東과 뜻과 도를 같이하였다. 벼슬은 선마에 이르렀고, 『관봉문답』을 저작하였다.
원문
玄尙璧八莒人以宇齡子為伯父九齡后字彦明號冠峯權尙夏門人天資明透學業篤厚與李東志同道合官止洗馬所著有管峯問答
엔티티 후보
- person: 현상벽 / 玄尙璧, confidence=0.95
- person: 우영자 / 宇齡子, confidence=0.85
- person: 연명 / 彦明, confidence=0.9
- person: 이동 / 李東, confidence=0.85
- person: 권상하 / 權尙夏, confidence=0.9
- place: 팔려 / 八莒, confidence=0.85
- office: 선마 / 洗馬, confidence=0.9
- work: 관봉문답 / 管峯問答, confidence=0.9
- term: 문인 / 門人, confidence=0.95
- term: 천자 / 天資, confidence=0.9
- term: 백부 / 伯父,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八莒人(팔려는 지역의 행정 단위명칭 여부)
- 天資明透(구체적 의미 범위)
- 所著有(구어체 한문의 문법적 구조)
박필위
- 기사 ID:
20037_029_014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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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박필위는 박세채의 손자로, 박태혜의 아들이었다(김홍복의 사위). 자는 경망이다. 숙종 기묘년(1699년)에 증광과에 합격하였다. 그 후 몸값을 바치는 형벌로 제주도로 노예로 보내졌다.
독음
박필위 세채의 손 태혜자(金洪福 사위) 자는 경망 숙종 기묘년에 증광에 급제하고, 피부[換皮]를 바치고 제주로 노예가 되었다.
의미
조선 숙종 연간 인물 박필위의 가계와 약력이다. 문과에 합격하였으나 무슨 사건으로 제주도로 유배되어 노예 신분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換皮’는 몸값을 바치는 형벌 수단으로 볼 수 있다. 기록이 짧아 구체적 죄명과 경위는 확인이 어렵다.
원문
朴弼渭世采孫泰晦子(金洪福婿)字景望肅宗己卯登增廣以換皮封濟州為奴
엔티티 후보
- person: 박필위 / 朴弼渭, confidence=1.0
- person: 박세채 / 世采, confidence=1.0
- person: 박태혜 / 泰晦子, confidence=1.0
- person: 김홍복 / 金洪福, confidence=0.9
- person: 경망 / 景望, confidence=1.0
- year: 숙종 기묘(1699년) / 肅宗己卯, confidence=1.0
- place: 제주 / 濟州, confidence=1.0
- office: 증광 / 增廣,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換皮封(피부 교환/몸값), 為奴(노예 신분으로 전락한 이유), 換皮封濟州(제주 유배 시 형벌 수단)
권굉
- 기사 ID:
20037_029_015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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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권굉의 10세손 중 한 사람인 영은 자호가 대규이다. 숙종 신묘년(1699년)에 명경과에 급제하여 관직을 거치며 장령관에 이르렀고, 병의에 이르렀다.邵씨 조상이 연좌되어 제주에서 노예가 되었다가, 그 자손인抗이 호소하였으니 아래를 보라.
독음
권굉의 십세손 영은 자가 대규이다. 숙종 신묘년에 명경과에 급제하여 관직을历练하여 장령관에 이르렀으며, 병의에 이르렀다.邵의 조상이 연좌되어 제주에서 노예가 되었다가, 그 자손抗이 호소하니 아래를 보라.
의미
권굉의 10세손穎이 숙종 신묘년(1699년)에 명경과에 급제하여 장령관에서 병의에 이르기까지 관직을 쌓았음을 기록한다. 아울러邵씨 조상이 연좌형으로 제주에서 노예 신분이 된 사건에 대해 그 자손인抗이 호소하는 사안이 있었음을 주석으로 알려준다.
원문
權宏蹲十世孫穎子字大規肅宗辛卯登明經科歷掌令官止兵議以卲之祖緣坐濟州為奴[주:子抗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권굉 / 權宏, confidence=0.95
- person: 영 / 穎, confidence=0.9
- person: 邵, confidence=0.85
- person: 항 / 抗, confidence=0.85
- year: 신묘(1699년) / 辛卯, confidence=0.95
- place: 제주 / 濟州, confidence=0.95
- office: 장령 / 掌令, confidence=0.9
- office: 병의 / 兵議, confidence=0.9
- term: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0.95
- term: …중(씨) / 蹲, confidence=0.7
- term: 연좌 / 緣坐,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蹲(십세손 중의 의미로 추정되나 정확한 문법적 역할 미확인)
- 卲之祖(邵씨 조상의 구체적 신분과 관계 불분명)
- 주석 子抗見下의 정확한 문헌 출처 미확인
유숙기
- 기사 ID:
20037_029_015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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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유숙기를 명하여 아들이자 이관명의 서녀(女婿)가 되게 하였다. 자는 자공, 호는 겸산이다. 김昌翕의 문인으로서, 지조가 돈실하고 문학이 뚜렷하여 春坊으로 통할,即将升任的要職을 역임하게 되었다. 유숙기는 힘써 사직하였으므로, 음로(蔭路) 관직으로 마쳐 正9위 판관에 이르렀다.
독음
유숙기 명자 이관명 서자 자공 호겸산 김창흡 문인 지조 돈실 문학 저현 장통춘방지의 직 유숙기력사지 음로관지정판관
의미
유숙기가 이관명의 서녀가 되었고, 김창흡의 문인으로서 학문과 절의가 뛰어나 春坊의 요직에 제수될 예정이었으나, 이를 극력 사양하여 결국 음로관으로 시작하여 正9위 판관에 머물렀음을 기록한 전기 자료이다.
원문
兪肅基命䧺子李觀命婿字子恭號兼山金昌翕門人志操篤實文學著顯將通春坊之職肅基力辭之以蔭路官止判官
엔티티 후보
- person: 유숙기 / 俞肅基, confidence=0.95
- person: 이관명 / 李觀命, confidence=0.95
- person: 김창흡 / 金昌翕, confidence=0.95
- term: 자(표자) / 字, confidence=0.9
- term: 호(호칭) / 號, confidence=0.9
- office: 춘방 / 春坊, confidence=0.85
- office: 음로관 / 蔭路官, confidence=0.85
- office: 판관 / 判官,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命䧺子(명자)의 䧺 字 구조가 本文에서 오기 또는 탈자 가능성 있음, 通春坊의 通字 역할(장차 전임할 예직임을 表示하는 通임 是否 불확실)
정부천
- 기사 ID:
20037_029_015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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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정복천은 자(字)가 수도이고 호(號)가 강재였다. 이간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우수격기와 깊이 교유하였다. 성품이 지극히 강직했으므로 이것을 호로 삼았다.
독음
정복천 자는 수도 호는 강재 이간에게 종사하고 우질격기와 교유하였다 성품이 지극히 강하여서 그러므로 강을 호로 삼았다
의미
정복천(鄭復天)은 李柬의 문하에서 수학한 학자이며, 우수격기(兪肅基)와 친분이 깊었다. 성품이 지극히 강직했기 때문에 자신의 호를 ‘강재’라 하였다. 字는 수도, 號는 강재, 從은 종사, 遊는 수학, 契好는 친교.
원문
鄭復天字叔道號剛齋從李柬遊與兪肅基契好性至剛故以剛為號
엔티티 후보
- person: 정복천 / 鄭復天, confidence=1.0
- person: 수도 / 叔道, confidence=1.0
- person: 강재 / 剛齋, confidence=1.0
- person: 이간 / 李柬, confidence=1.0
- person: 우질격기 / 兪肅基,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從李柬遊는 이간의 문하에서 수학했다는 뜻으로 해석하나, ‘從’과 ‘遊’의 문법적 관계가 다소 불명확할 수 있음
유종흥
- 기사 ID:
20037_029_015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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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4T02:22:16.47988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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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유종흥은 소의 손자(潚曾孫)이고, 字는 진보, 호는 월곡이다. 숙종 기사년(1689)에 인현왕후가 물러났다. 오두음과 박태보가 간쟁하다가 죽자, 유종흥이 평민으로서 일어나 많은 선비들을 호帅하며 여러 상소를 올렸다. 하늘의 마음을 돌릴希望能实现했으나, 금지되어 뜻을 펴지 못했다. 유종흥은 통곡하며 산으로 들어갔다.
독음
유종흥 소존손 자 진호 호 월곡 숙종 기사 인현왕후 손위 오두음 박태보 간사이고 죽으니 종흥 일어나 포의 호帅 다사 창률하여 장정 진수 기회천심 회환受阻 금지 불득 철종흥 통곡而入 산
의미
조선 숙종 기사년(1689) 인현왕후逊位 사건 당시, 오두음·박태보가 왕을 간쟁하다 죽자, 유종흥이平民으로 일어나 선비들을 규합하여 여러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왕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고, 진정을 펴지 못한 유종흥은 통곡하며 산으로 떠나갔다. 이는 인현왕후逊位와 관련한 효종·영조계 시기의 정치적 혼란과 효묘 세도 정치의 시작을背景으로 한다.
원문
柳宗興潚曾孫字振甫號月谷肅宗己巳仁顯王后遜位吳斗寅朴泰輔諫而死宗興起布衣倡率多士陳章冀回天心阻禁不克徹宗興痛哭入山
엔티티 후보
- person: 유종흥 / 柳宗興, confidence=1.0
- person: 진보(유종흥의 字) / 字振甫, confidence=1.0
- person: 오두음 / 吳斗寅, confidence=1.0
- person: 박태보 / 朴泰輔, confidence=1.0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1.0
- person: 인현왕후 / 仁顯王后, confidence=1.0
- term: 소존손(손자의 손자, 4대손) / 潚曾孫, confidence=0.9
- term: 평민복색,平民 / 布衣, confidence=1.0
- term: 산으로 떠나감(은거) / 入山,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潚曾孫의 潚자가 소(昭)의 오자인지 확인 필요
한중혁
- 기사 ID:
20037_029_015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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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4T02:22:35.67459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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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한중혁은 청주 사람으로서 문승시 주의 아들이다. 호는 안소당이고 시부와 사격을 잘 지었다. 어릴 때부터 기개를 품고 호협한 행적으로 소문이 났다. 김춘택 등과 함께 은화를 모으고 음으로 정세를 바꾸려는 음모를 꾸몄다. 모의가 드러나자閔黯이 임금에게 고발하고 그 일을 발각시켰다. 투옥하여 조사하고 처치했으니 연루된 자가 이어졌다.狱이 성립되자 임금은閔黯을 아전승냥배척의 죄목으로 물으시고 모두 내쫓았다. 한중혁 등 여러 사람은 죽을危险的 상황에서 목숨을 건졌으나 살아있으면서도 오히려 옥문을 나가지 못했다. 수상 남구만은 이 무리가 잠복하여 정세를 바꾸려는 논의로 성조에 탈을 물들였다고 여기어 단연 용서할 수 없다며 마침내 곤장打我로 죽였다.
독음
한중혁청주인문승시구주호안소당선시부자소부기로호협문여금춘택등죄은화음도궤망설민암백상발기사하옥구치간련자누십인옥성상어어육제준위암죄이진출치지중혁등제인탈사득생생이유미출옥문수상남구만인이위차비잠도궤지설체루성조결불가사경장사
의미
조선 숙종 연간 清州 출신의 한중혁이 김춘택 등과 함께 임금을 끌어내고 정권을 교체하려는 음모를 꾸몰다가 발각되어 투옥되었다.閔黯은 이들을 투옥시켰고,狱成되자 임금은閔黯을 아전승냥의 죄로 처벌하고 관련자들까지 내쫓았다. 한중혁 등은 죽을 벗어났으나 여전히 옥에 갇혀 있었고, 수상 南九萬은 그들이 음으로 정세를 바꾸려 한 것이 조정에 누를 끼쳤다고 판단하여 결국 곤장으로 죽였다. 정치적 음모가 실패로 끝난 사건이다.
원문
韓重爀淸州人文承㫖構[주:號安素堂善詞賦]子少負氣以豪俠聞與金春澤等聚銀貨陰圖換局謀泄閔黯白上發其事下獄究治干連者累十人獄成上以魚肉搢紳為黯罪而盡黜之重爀等諸人脫死得生生而猶未出獄門首相南九萬以為此軰潜圖換局之說貽累聖朝决不可赦竟杖死
엔티티 후보
- person: 한중혁 / 韓重爀, confidence=1.0
- place: 청주 / 淸州, confidence=1.0
- person: 민암 / 閔黯, confidence=1.0
- person: 남구만 / 南九萬, confidence=1.0
- person: 김춘택 / 金春澤, confidence=1.0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0.95
- office: 수상 / 首相,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허새
- 기사 ID:
20037_029_015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59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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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4T02:22:43.74691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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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허서가 촉종 임술년 옥에 넘겨 심문받던 때의 진술이 이러하다. 이初가 나에게 은화 천여 냥을 약속하며 상인 장사를 하자고 하였으나, 답하기를 “이 일은 쉽게 그만둘 수 없으니 차라리 분수를 지키는 것이 낫다.” 하였다. 그후 한壽萬의 집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먼저 사악한 음모를 먼저 일으키자고 하니, 내가 과연 그에 호응하였다. 이 음모를 꾸민 시작이 바로 이것이다.
독음
허서 양천인 대의 아들 촉종 임술 옥에 넘겨 심문할 때,供告를 대는 것이 李初가 나에게 은화 천여 냥을 약속하고 상인장사 하자고 하니 답하기를,此事는 쉽게 그만둘 수 없으니 차라리 분수를 지키는 것이 낫다고 하였다. 그後에 한수만宅에서 만나는데, 먼저 사악한 음모를 일으키기를李初가 나에게 은화 천여 냥을 약속하여 상인 장사를 하자고 하니, 답하기를 “이 일은 쉽게 그만둘 수 없으니 차라리 분수를 지키는 것이 낫다.” 하였다. 그후 한壽萬의 집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먼저 사악한 음모를 일으키기를李初가 나에게 은화 천여 냥을 약속하여 상인 장사를 하자고 하니, 답하기를 “이 일은 쉽게 그만둘 수 없으니 차라리 분수를 지키는 것이 낫다.” 하였다. 그후 한壽萬의 집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먼저 사악한 음모를 먼저 일으키자고 하니, 내가 과연 그에 호응하였다. 답하기를 “이 일은 쉽게 그만둘 수 없으니 차라리 분수를 지키는 것이 낫다.” 하였다. 그후 한壽萬의 집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먼저 사악한 음모를 먼저 일으키자고 하니, 내가 과연 그에 호응하였다. 이 음모를 꾸민 시작이 바로 이것이다.
의미
조선 촉종(肅宗) 임술년에 옥에 넘겨 심문받던 허서의 심문供告이다. 이初가 은화 천여 냥을 제시하며 상인 장사를 제의하였으나, 허서는 이를 거부하며 분수를 지키라고 답하였다. 그러나 이후 한壽萬의 집에서再会하여, 이初가 먼저 사악한 음모를 제기하자 허서도 이에 호응하였으며, 이것이 음모를 시작하게 된 발단이라고 자백하였다. 이 기록은 당시 정치적 모의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의 관계와 발언을記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원문
許璽陽川人岱子肅宗壬戌就鞫時供曰李初與矣身以銀貨千餘兩約為商賈答曰此事不易莫如守分其後與會於韓壽萬家先以凶謀發端矣身果相應答此為造謀之始云
엔티티 후보
- person: 허서 / 許壐, confidence=0.95
- person: 이초 / 李初, confidence=0.95
- person: 한수만 / 韓壽萬, confidence=0.9
- place: 양천 / 陽川, confidence=0.85
- term: 조모(음모를 꾸미는 것) / 造謀, confidence=0.9
- term: 상고(장사) / 商賈,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陽川人岱子肅宗壬戌就鞫時供曰李初與矣身以銀貨千餘兩約為商賈答曰此事不易莫如守分其後與會於韓壽萬家先以凶謀發端矣身果相應答此為造謀之始云
허영
- 기사 ID:
20037_029_016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60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4T02:23:51.59646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9&aa15no=029&aa20no=20037_029_0160
한글 번역
허영의 서종제인 재가 임술년에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재가 관직 수행을 위해地方을 돌다 지나가며 만났을 때 시사를 논의하며 이르기를, 지금 인심이 예측할 수 없어 만약 변란이 생긴다면 호종할 사람이 없을 것이며, 만일 백 명의 군대가 쳐들어온다면 군사들은 반드시 모두 패주할 것이라 하였다. 허영이 이르기를, 왜 이렇게 흉악한 말을 하느냐, 남에게 절대로 그런 말을 퍼뜨려서는 안 된다 하였다. 재가 나중에 다시 와서 앞서 한 말을 되풀이하며 이르기를, 나와 이某는 이미 약속을 맺고 모의가 이미 결정되었으니, 너는 사람이 믿을 만하여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으니(같이 해도 괜찮을 것이므로) 다시 말하겠다 하였다. 허영이 과연 이를 듣고 허락하였다
독음
허영재서종제임술년에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습니다. 재가 관직을 수행하며 경로를 지나면서 만났을 때 시사를 논의하며 말하기를, 지금 인심이 예측할 수 없어 만약 변란이 생기면 호종할 사람이 없을 것이며, 만약 백 명의 군대가 쳐들어온다면 군사들은 반드시 모두 패주할 것이라 하였습니다.身이 말하기를, 왜 이렇게 흉악한 말을 하는가, 절대로 남에게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 하였습니다. 재가 나중에 다시 와서 앞서 한 말을 되풀이하며 말하기를, 나와 이某는 이미 약속을 맺고 모의가 이미 결정되었으니, 너는 사람이 신의 있어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으니(같이 해도 괜찮을 것이므로) 다시 말하겠다 하였습니다.身이 과연 이를 듣고 허락하였습니다
의미
조선 시대 심문 기록으로, 허영의 서종제인 재가 임술년에 관직 수행 중 만나 시사를 논의하며, 지금 인심이 불측하여 변란이 일어나면 호종할 사람이 없고 백 명 군대가 쳐들어오면 군사들이 모두 패주할 것이라 말했다. 허영이 이를 만류하자, 재는 나중에 다시 찾아와 이某와 이미 결탁하여 모의가 결정되었으니 허영도 함께하자고 했다. 허영이 이를 허락한 것으로,谋反(반역) 관련 심문 기록으로 추정된다.
원문
許瑛壐庶從弟壬戌供曰壐出畨歷路來見言及時事以為即今人心不測脫有事變將無扈從之人若有百名之軍突入則軍士皆必潰走云矣身曰何為此凶惡之言㘦勿向人開口壐後又來更發前言曰吾與李既結約謀議己定而汝為人信實(可與同事故)更言矣身果為聽許云
엔티티 후보
- person: 허영 / 許瑛, confidence=1.0
- person: 재 / 壐, confidence=0.95
- person: 이(씨) / 李, confidence=0.85
- term: 서종제 / 庶從弟, confidence=0.95
- term: 임술(년) / 壬戌, confidence=0.95
- term: 출번 / 出畨, confidence=0.9
- term: 진술하기를 / 供曰, confidence=0.95
- term: 결약 / 結約, confidence=0.9
- term: 모의 / 謀議,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壐의 본명 미상
- 出畨의 구체적 직무 범위
- 李某의 신원
- 供曰 주체(審問官이 재에게 요구한 진술인지 여부)
- 身(자신)이 허영인지寿인지 문맥상 불분명
박규서
- 기사 ID:
20037_029_016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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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박규서는 윤후손의 후손으로, 중학 유생으로서 숙종 신사년 옥사에 연좌되었다. 중학 유생으로서 상소하여 국가 통치의 실책을 간쟁했고, 또한 조승기가 왕비를 모욕한 죄를 말하였다. 국가에서 법에 의거하여 명세리의 죄를惩罰했는데, 명세리의 죄은 조승기보다 실제로 배가 더 나쁘다고 하면서, 빨리 명세리의 목을 베어 두 왕의 모욕을 씻어줄 것을 요청하였다. 명(王)이 이 상소를 환환하여 장성으로 유배를 보냈다. 철종 정사년에 증持平(監察御史의 직임)에 추서되었다.
독음
박규서 은 후손 중 생원 숙종 신사 옥에 중학 유생으로 상서 극언 흡질지 실차언 조승기 뇌욕 선후지 죄 국가 단以后 왕법 명세리 지죄 비 습기 실 위 반언 청 급 참 명세리 지두 으세 양성지 뇌욕 명 차서 환출급 정배어 장성 철종 정사 증持平
의미
박규서는 윤후손의 후손으로, 숙종 때 옥사에 연좌된 유생이다. 국가 통치의 실책과 조승기의 왕비 모욕죄를 비판하고, 명세리의 처벌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되었다가 철종대에 관직에 추서된 인물이다.
원문
朴奎瑞誾後孫中生員肅宗辛巳獄以中學儒生上䟽極言歇治之失且言趙嗣基誣辱先后之罪國家㫁以王法命世李之罪比嗣基實為倍焉請亟斬命世之頭以雪兩聖之誣辱命此䟽還出給定配于長城哲宗丁巳贈持平
엔티티 후보
- person: 박규서 / 朴奎瑞, confidence=1.0
- person: 윤후손 / 尹後孫, confidence=0.9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1.0
- person: 신사 / 辛巳, confidence=1.0
- person: 조승기 / 趙嗣基, confidence=1.0
- person: 명세리 / 命世, confidence=0.7
- person: 철종 / 哲宗, confidence=1.0
- person: 정사 / 丁巳, confidence=1.0
- place: 장성 / 長城, confidence=1.0
- office: 持平, confidence=1.0
- term: 선후 / 先后,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최중태
- 기사 ID:
20037_029_016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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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최중태는 경주 출신으로서, 문감사(문관감찰사) 상익자의 아들이자 이기의 사위였다. 숙종 시대에 문과에 합격하였으며, 신사년(1721)에 묘흉옥 사건에 연루되었다. 사간으로서 상소하여 극언으로 진술하고, 정법관으로 하여금 엄격히 조사 검핵하게 할 것을 요청하였으며, 감사에서 이를 정지시켰다.
독음
최중태 경주인 문감사 상익자 이기의 사위 숙종조 등문과 신사년 묘흉옥 사간으로 상소하여 극언하고 정법관에 의한 조사를 요청하였으며 감사에서 정지되다
의미
조선 숙종 시대 문과 합격자 최중태의 기록이다. 경주 출신으로 문감사 상익자의 아들이자 이기의 사위였다. 신사년(1721) 묘흉옥 사건에 연루되어 사간으로서 극언 상소하고 정법관 조사를 요청하였으나, 감사에서 이를 정지시키는 결과가 있었다. 묘흉옥은 음험한 수단으로 꾸민 옥사로 추정되나, 정확한 사건 연혁은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원문
崔重泰慶州人文監司商翼子李箕翊妻娚肅宗朝登文科辛巳埋凶獄以司諫上䟽極言請鉤覈正法官止監司
엔티티 후보
- person: 최중태 / 崔重泰, confidence=0.95
- person: 상익자(상익의 아들) / 商翼子, confidence=0.85
- person: 이기 / 李箕翊, confidence=0.95
- place: 경주 / 慶州, confidence=0.95
- office: 문감사(문관감찰사) / 文監司, confidence=0.9
- office: 사간 / 司諫, confidence=0.95
- office: 정법관 / 正法官, confidence=0.9
- office: 감사 / 監司,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묘흉옥 / 埋凶獄, confidence=0.8
- term: 신사년(1721) / 辛巳, confidence=0.75
불확실한 어휘
- 商翼子의 商翼이 실존 인물인지 확인 필요
- 埋凶獄의 구체적 사건 내용 미상
- 正法官止監司의 구두점 위치 및 해석歧義
- 止監司의 ‘止’가 정지(멈춤)인지 임지(授任)인지 미확인
이광한
- 기사 ID:
20037_029_016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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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광한은 용인 출신으로, 무군수 중민(정식 직함은 무현감 도마)의 서자이다. 인조 경진년(1640년)에 태어났고, 자(표자)는 한지이다. 숙종 경신년(1666년)에 보사공(保社功臣)에 기록되었고, 용계군에 봉해졌다. 관직은 자헌지추(資憲知中樞)에서 그쳤다. 기묘년(1689년)에 안주목사로 재직 중 붙잡혀 옥에서 투옥되어 죽었고, 향년 50세였다. 갑오년(1694년)에 복관되었으나 훈명과勋名은 그대로 삭제되었다. (주: 아들 이숭조는 아래를 참조할 것)
독음
이광한 용인인 무군수 중민 주의 무현감 도마 서자 인조 경진생 자 한지 숙종 경신록 보사공 봉 용계군 관지 자헌지추 기묘이 안주목사 피나狱死于 요어,年五十 갑오 복관훈명 영 소 주자 숭조견하
의미
조선中期의 管理職관인 李光漢의 생애를 수록한 기문이다. 용인 출신으로 서출 신분이었으나 보사공에 기록되고 용계군에 봉작되는 등 효종·현종 연간에 관직을 진출하였다. 그러나 숙종 즉위 직후인 기묘년(1689년) 안주목사 재임 중 투옥되어 옥사하였고, 이후 갑오년(1694년) 복관되었으나勋名은 회복되지 못했다. 서자 출신이라는 조건이 평생의 제약 요인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원문
李光漢龍仁人武郡守仲敏[주:武縣監曇庶子]庶子仁祖庚辰生字漢之肅宗庚申錄保社功封龍溪君官止資憲知中樞己巳以安州牧使被拿死於鞫獄年五十甲戌復官勳名仍削[주:子崇祖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이광한 / 李光漢, confidence=1.0
- person: 중민 / 仲敏, confidence=1.0
- person: 이숭조 / 崇祖, confidence=1.0
- place: 용인 / 龍仁, confidence=1.0
- place: 안주 / 安州, confidence=1.0
- place: 용계 / 龍溪, confidence=1.0
- office: 자헌지추 / 資憲知中樞, confidence=1.0
- office: 무군수 / 武郡守, confidence=0.9
- office: 무현감 / 武縣監, confidence=0.9
- office: 목사 / 牧使, confidence=1.0
- term: 보사공 / 保社功, confidence=1.0
- term: 서자 / 庶子, confidence=1.0
- term: 등재 / 錄, confidence=0.9
- term: 붙잡힘 / 被拿, confidence=1.0
- term: 요어(심문·투옥) / 鞫獄, confidence=1.0
- term: 훈명(공신 호칭과 작위) / 勳名,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錄,保社功의 정확한功臣 등급 체계
- 知中樞와 資憲官階의 완전한 직급 관계
- 複官 당시 좌천의 구체적 사유
이립신
- 기사 ID:
20037_029_017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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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립신은 흥양 태생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숙종대 조정의 보사공功勤으로 2등을 기록하여 흥양군에 봉해졌다. 관직은 정헌에서 그쳤다. 기사년에 곤장을 맞아 죽었고, 갑술년에 신원받았다.
독음
이립신 흥양인 등무과 숙종묘책 보사공 이등 봉흥양군 관지정헌 평병 기사장사 갑술신
의미
李立身은 영·정조 시대 무과 급제인으로서 보사공(보위공)의 공으로 2등功勤을 세우고 흥양군에 봉해진 인물이다. 관직은 정헌으로 끝났으며, 기사년(1455)에 곤장惩罚으로 사망하였다가 갑술년(1474)에 신원 판결을 받았다. 주에 따라 孫德峻의 기록을 참조할 것임을 나타낸다.
원문
李立身興陽人登武科肅宗廟策保社功二等封興陽君官止正憲平兵己巳杖死甲戌伸[주:孫德峻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립신 / 李立身, confidence=0.95
- place: 흥양 / 興陽, confidence=0.95
- office: 무과 / 武科, confidence=0.95
- work: 숙종 / 肅宗, confidence=0.9
- term: 보사공 / 保社功, confidence=0.85
- place: 흥양군 / 興陽君, confidence=0.95
- office: 정헌 / 正憲, confidence=0.9
- term: 평병 / 平兵, confidence=0.6
- person: 손덕준 / 孫德峻,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保社功(보사공의 구체적 의미와 관련 사직·직책명 여부)
- 平兵(관직명인지 직무 수행 형태인지 명확하지 않음)
박빈
- 기사 ID:
20037_029_017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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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박빈은 밀양 출신이다. 숙종(肅宗) 왕조 이전에 이미 군수(郡守)를 지냈으며, 국가 수호에 공을 세워 삼등 작위로 밀림군(密林君)에 봉해졌다. 기사년(己巳)에 악당들에게 무고하게诬陷되어 고문받아 죽임을 당했고, 갑술년(甲戌)에 비로소冤罪가 풀려 명예가 회복되었다.
독음
박빈 밀양인 숙종조 이전 군수 책보험공 삼등 작위 밀림군 기사에 적당에게 모함받아 고문而死하다 갑술에 신명(평反)받다
의미
조선 시대 인물 박빈의略傳이다. 밀양 출신으로 예전부터 관료로 복무했으며, 나라를 보존하는功勳으로 삼등 공신 작위를 받고 밀림군에 봉해졌다. 그러나 기사년에凶黨에게诬陷되어 고문 살해당했으며, 이후 갑술년에 이르러冤罪가 풀리고名誉가 회복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후대에 부정당한 손다뤄 죽임을 당했다가 나중에 평反된人物的運命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원문
朴斌密陽人肅宗朝以前郡守策保社功三等封密林君己巳被誣於凶黨栲殺甲戍伸
엔티티 후보
- person: 박빈 / 朴斌, confidence=0.98
- place: 밀양 / 密陽, confidence=0.98
- place: 밀림군 / 密林君, confidence=0.95
- office: 군수 / 郡守, confidence=0.97
- term: 보험공(국가 수호 공적) / 保社功, confidence=0.88
- term: 고문 살해 / 栲殺, confidence=0.85
- term: 신(죄독 풀림, 평반) / 伸, confidence=0.82
- term: 적당(악당무리) / 凶黨, confidence=0.92
불확실한 어휘
- 栲殺(고살)의 정확한 동사 활용 방식과 文例, 기사·갑술 연호의 절대 연도 대응, 삼등 보험공의 구체적 등급 체계, 凶黨의 구체적 지칭 대상
정후교
- 기사 ID:
20037_029_017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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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정후교는的字은혜경으로, 홍세태와 정래교와 같은 시대 사람이다. 어릴 적에 책자를 끼고 밤에 나왔다가 순라병에게 붙잡혔다. 순라병이 물어 물었다. “네가 밤에 무슨 죄를 짓느냐.” 대답했다. “마침 학교에 가다가 잡힌 것입니다.” 순라병이 말했다. “그대가 만만하겠나. ‘고주북두명지’(孤舟北斗明之)를 말한 정혜경이 너냐?”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러자 그대로 놓아주었다.
독음
정후교,字은혜경,홍세태·정래교와 동시에 사람이다. 어릴 적에 책자를 끼고 밤에 나갔다가 순라병에게 붙잡혔다. 물어曰“네가 밤에 무슨 죄를 짓느냐”曰“마침 학교에 가다가 붙잡힌 것이다.” 순라병曰“네가 사람이 아니로다.孤舟北斗明之라고 말한鄭惠卿이냐”曰“그러하다.” 하고 이에 놓아주었다.
의미
정후교가 어릴 적 밤에 공부하러 나갔다가 순라병에게 붙잡힌 일을 기록한 기사이다. 순라병이 밤에 거행하는 행인을 의심했으나, 정후교가 자신이 정혜경임을 증명하면서 풀려났다. ‘孤舟北斗明之(약한 배에 북두성이 밝다)’는 시구로써 정후교의 신원을 확인하는 장면이 특히 주목된다.
원문
鄭後僑字惠卿與洪世泰鄭來僑同時人也兒時挾冊侵昏出為邏卒所執問曰爾何犯夜曰方上學而見執邏卒曰爾非人語孤舟北斗明之鄭惠卿乎曰然仍釋之
엔티티 후보
- person: 정후교 / 鄭後僑, confidence=1.0
- person: 혜경 / 惠卿, confidence=1.0
- person: 홍세태 / 洪世泰, confidence=1.0
- person: 정래교 / 鄭來僑, confidence=1.0
- term: 자(,字) - 인도자(字) / 字, confidence=1.0
- term: 순라병(밤순찰병) / 邏卒, confidence=1.0
- term: 바다(犯夜) - 밤에 나오다 / 犯夜, confidence=1.0
- term: 고주북두명지 / 孤舟北斗明之,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孤舟北斗明之는 시구로 추정되나 구체적 출전作品과 문맥이 불분명하며, ‘侵昏’(밤에 나오다)과 ‘約’(죄를 범하다)의 관계 설정이 원문 해석상 유의미한 차이를 줄 수 있다
김숭겸
- 기사 ID:
20037_029_017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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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김숭겸은 창협의 아들이며 이단상의 외손자이고 박권의 사위이다. 숙종 임술년에 태어나 자는 군산이고 호는 관복재이다. 재능과 행실이 있고 또한 뜻도 가졌으나 불행하게도 목숨이 짧았다. 시를 지어 기묘하고 준고하며, 글귀의 작은 선비로 자처하지 않으려 하였다. 홀로 남들과 달라 빼어났고, 정직하며 어짊과 신의가 있었다. 서예를 배울 때 격판을 고수하지 않고 서예의 필묵을 정교하게 인식하며 이해력이 좋아서 경술년에 일흔아홉 살로 사망하였다.
독음
금숭겸 창협之子 이단상 외손 박권서 숙종임술생 자군산 호관복재 유재유행차유지而不행단명 부시기준창고 불겵이장구소유자명 탁이불군 정직인신 학서불점점행묵정 식호해 경술졸년십구
의미
조선 시대 인물 김숭겸의略傳이다. 명문가 출신으로 이단상의 외손자이자 박권의 사위이며, 재능과 행실 그리고 뜻을 갖춘 인물이었다. 시를 지어 기묘하고 준고한風格으로, 서예에서도 격판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솜씨를 보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목숨이 짧아 열아홉 살에 사망하였다. 경술년은 1650년, 임술년은 1682년이다.
원문
金崇謙昌協子李端相外孫朴權婿肅宗壬戌生字君山號觀復齋有才有行且有志而不幸短命賦詩奇峻蒼古不肯以章句小儒自命卓爾不羣正直仁信學書不帖帖行墨精識好觧庚戌卒年十九[주:系子元行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숭겸 / 金崇謙, confidence=1.0
- person: 창협 / 昌協, confidence=1.0
- person: 이단상 / 李端相, confidence=1.0
- person: 박권 / 朴權, confidence=1.0
- person: 군산 / 君山, confidence=1.0
- work: 관복재 / 觀復齋, confidence=1.0
- term: 임술 / 壬戌, confidence=1.0
- term: 경술 / 庚戌,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승처경
- 기사 ID:
20037_029_017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9
- 면/쪽: 0177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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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16:35:44.35743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9&aa15no=029&aa20no=20037_029_0177
한글 번역
승려 처경이 죽산의 봉송암에 머물러 묘향산을 오갔는데, 숙종 병신년에 스스로 소현세자의 서자라 칭하면서 내인처를 오갔으며, 이에 영의정에게 고하여졌다. 영의정이 회의소를 열어 의논하게 하니, 그의 허위와 간교함 때문에 사형에 처하였다.
독음
승처경 재 죽산 봉송암 来왕 묘향산 숙종 병신 자칭 소현세자 유복자 来복어 내인처 인위 내고어 영상 명 회의 빈정 기以其 허위 간교 당고개 행형
의미
승려 처경이 묘향산 지역에서 활동하며 숙종대에 스스로 소현세자의 서자라고 사칭하고 내인들을 교묘하게 교유하다가, 영의정에게 그 사실이 고발되어 회의를 거쳐 사형 판결을 받은 사건이다. 소현세자의 유복자 신분을 사칭한 사기 사건으로, 궁정의 위신과 왕실 혈통의 문제를 활용한 범행으로 분석된다.
원문
僧處瓊在竹山鳳松菴徃來妙香山肅宗丙辰自穪昭顯世子遺腹子徃復于內人處仍為來告于領相命會議賓㕔以其虚偽奸巧堂古介行刑
엔티티 후보
- person: 승처경 / 僧處瓊, confidence=0.95
- person: 소현세자 / 昭顯世子, confidence=0.98
- place: 죽산 / 竹山, confidence=0.95
- place: 묘향산 / 妙香山, confidence=0.95
- place: 봉송암 / 鳳松菴, confidence=0.9
- office: 영의정 / 領相, confidence=0.95
- term: 내인 / 內人, confidence=0.9
- term: 유복자 / 遺腹子, confidence=0.95
- term: 행형 / 行刑,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이유
- 기사 ID:
20037_030_000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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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유(인물명). 해당 인물의 내용은 ‘숙종조 상신(肅宗朝相臣)’ 조항에 대한 주의를 참조할 것.
독음
이유
의미
이유는 조선 숙종(肅宗) 대의 재상(相臣) 계열 인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이 조항은 본문을 간략히 하고 상세 내용을 해당 주석 조항으로 이전하는 편집 양식을 보인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유 / 李濡, confidence=0.95
- term: 상신 / 相臣, confidence=0.9
- term: 숙종조 / 肅宗朝,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주석이 단순 인용 지시어的形式만 제시하여 구체적 사적이 불명확함
조태구
- 기사 ID:
20037_030_000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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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조태구는 조태로의 아우이다. 이유상의 사위가 되었다. 현종 경자(1648)년에 태어나 자는 처음이다. 덕수라는 호를 썼으며, 백문(白門)·소선(素軒)·하곡(霞谷)이라고도 불렀다. 숙종 병인(1686)년에 별시(別試)에 급제하여, 사촌동생 조태채와 함께 같은 방에 올라랐다. 전랑·부학·육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경종이 즉위한 경자(1700)년에 재상에 오르고, 신축(1721)년에 왕세자를 세우는 대사 앞에서 선인문으로 잠입하여 큰 계책을 적극적으로 막았다. 김창집 등 4대신을 모살한 죄로 계유(1723)년에 졸했으며, 향년 64세였다. 왕과 왕세제가 함께 조문했으며, 영조 병인(1726)년에 벼슬을 추탈했고, 을해(1735)년에 가문까지 멸족시켰다.
독음
조태구 태로의 아우 이유상 사위 현종 경자생 자 처음 덕수호 백문우 소선우 하곡 숙종 병인 등별시 여종제 태채 동방 역 전랑 부학 판육조 경종 즉위 경자 입상而至 영사 신축 건저시 선인문 잠입 역대책夸大策 토살 금창집등 사대신 계묘 졸 년 육십사 상여 왕세대 거재 영조 병인 추탈관작 을해 추시 노적
의미
조태구는 조선 시대 문신으로, 숙종 때 급제한 뒤 요직을 두루 역임하고 경종 때 재상이 되었다. 신축년에 왕세자 건저와 관련하여 선인문으로 잠입하여 반대 입장을 폈으며, 이후 김창집 등 4대신을 토륙했다고告糾되었다. 죽은 뒤 영조대에 벼슬이 추탈되고 가문까지 멸족되는 극적인 운명을 겪었다.
원문
趙泰耉泰老弟李有相婿顯宗庚子生字德叟號白門又素軒又霞谷肅宗丙寅登别試與從弟泰采同榜歴銓郞副學判六曹景宗即位庚子入相至領辛丑建儲時從宣仁門潜入力阻大策誣殺金昌集等四大臣癸卯卒年六十四上與王世弟擧哀英祖丙寅追奪官爵乙亥追施孥籍
엔티티 후보
- person: 조태구 / 趙泰耉, confidence=0.95
- person: 이유상 / 李有相, confidence=0.9
- person: 조태채 / 趙泰采, confidence=0.85
- person: 김창집 / 金昌集, confidence=0.95
- person: 현종 / 顯宗, confidence=0.95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0.95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0.95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0.95
- place: 선인문 / 宣仁門, confidence=0.9
- office: 전랑 / 銓郞, confidence=0.85
- office: 부학 / 副學, confidence=0.85
- office: 육조판서 / 判六曹, confidence=0.85
- term: 별시 / 別試, confidence=0.9
- term: 건저 / 建儲, confidence=0.9
- term: 노적 / 孥籍, confidence=0.85
- work: 백문 / 白門, confidence=0.7
- work: 소선 / 素軒, confidence=0.7
- work: 하곡 / 霞谷,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 力阻大策(역저대책) - 역대책으로 해석, ‘큰 계책을 막았다’는 의미로 추정되나 문맥상 정확한 뉘앙스 불확실
- 卒年六十四 위의 원문은 ‘卒年六十四’로 보이나, 계묘년 기준이면 향년 64세는 출생연도와 부합하지 않아 원문 전철 확인 필요
최규서
- 기사 ID:
20037_030_000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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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최규서[주: 숙종조의 문학대사학정(文衡)을 볼 것]
독음
최규서
의미
최규서는 조선 숙종(肅宗) 때의 문학대사학정(문서의 질서整顿과 인사任免을 총괄하던 벼슬아치)이었다는 뜻이다. 이 짧은 인용은 인물 열전 본문이 아닌 유배된 편목(篇目)의 제목줄에 해당하며, 자세한生平은 ‘문학대사학정’ 조에서 확인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최규서 / 崔奎瑞, confidence=1.0
- term: 문학대사학정 / 文衡, confidence=1.0
- period: 숙종조 / 肅宗朝,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문헌 출처가 주(注)로만 제시되어 있어 최규서의 구체적 활동기와 관계는 이 인용만으로 파악할 수 없다
이광좌
- 기사 ID:
20037_030_000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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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광좌는 이세귀의 아들이며 박장원의 외손녀, 홍주원의 손녀사위이다. 현종 갑인년에 태어나 字는 상보이고 號는 운곡이다. 숙종 갑술년에 별시에서 1등으로 합격하였다. 벼슬은 사인, 전랑, 부학 등을 지냈고, 경종조에 文衡을 맡았다. 계묘년에 入相하여 세 번 영상에 오르고 병조사를 겸임하다 정년으로 퇴직하였다. 신해년에 建儲 문제 이후 김창집 등 여러 사람을 살육하였으며, 약원 제기거 직을 수행하면서 성제를 이유로 직숙을 두지 않았다. 영조 경신년에 사망하니 향년 예순일곱 살이었다. 효행으로 정려를 받았으며, 을해년에 관직이 추탈되고 기묘년에 복관되었다. 정조 병신년에 다시 文衡 관직이 추탈되었다.
독음
이광좌세귀자박장원외손홍주원손녀사위현종갑인생자상보호운곡숙종갑술괴별시력사인전랑부학경종조전문형계묘입상삼배영상겸병조사치사진해후금창집등제인약원제거회성질불설직숙영조경신 졸년육십칠이효정려을해추탈귀사복관정조병신우추탈문형
의미
조선后期的政治家 李光佐의略傳이다. 박장원의 외손녀로 홍주원의 손녀사위로서 사대부 가문 출신이다. 숙종대에 별시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경종조에 文衡至相至退仕하는過程을記錄하였다. 신해년 建儲論爭 때金昌集 등을 살해하고 약원 제기거가 되었으나, 영조 즉위 후 사후에追奪과 복관의 운명을 겪었다.
원문
李光佐世龜子朴長遠外孫洪柱元孫婿顯宗甲寅生字尙輔號雲谷肅宗甲戌魁别試歴舎人銓郞副學景宗朝典文衡癸卯入相三拜領相兼兵曹事致仕辛丑建儲之後誣殺金昌集等諸人以藥院提擧諱聖疾不設直宿英祖庚申卒年六十七以孝旌閭乙亥追奪癸巳復官正祖丙申又追奪文衡
엔티티 후보
- person: 이광좌 / 李光佐, confidence=1.0
- person: 박장원 / 朴長遠, confidence=1.0
- person: 홍주원 / 洪柱元, confidence=1.0
- person: 김창집 / 金昌集, confidence=1.0
- office: 별시 / 別試, confidence=1.0
- office: 사인 / 舎人, confidence=1.0
- office: 전랑 / 銓郞, confidence=1.0
- office: 부학 / 副學, confidence=1.0
- office: 문형 / 文衡, confidence=1.0
- office: 영상 / 領相, confidence=1.0
- office: 병조 / 兵曹, confidence=1.0
- office: 약원 제기거 / 藥院提擧, confidence=0.95
- term: 건저 / 建儲, confidence=1.0
- term: 치사 / 致仕, confidence=1.0
- term: 직숙 / 直宿, confidence=0.95
- term: 정려 / 旌閭, confidence=1.0
- term: 추탈 / 追奪,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典文衡 - 문형의 오기 가능성
- 藥院提擧 - 약원 제시거 또는 약원 제기거의 정확한 직위명
- 諱聖疾 - 성제를 핑계로 한다는 해석에 일부 이견
이광좌
- 기사 ID:
20037_030_000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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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16:38:26.10286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007
한글 번역
이광좌[주:상신을 볼 것]
독음
이광좌
의미
이광좌는 조선后期的 정치인으로, 상신(相臣) 항목에서 상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인물이다. 본 문헌에서 단순히 이름만 수록하고 해당 인물의 구체적 행적은 별도 항목에서 다루고 있음을 알리는 상호참조 표기이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이광좌 / 李光佐, confidence=0.95
- term: 상신 / 相臣, confidence=0.9
이삼
- 기사 ID:
20037_030_001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10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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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7T01:37:02.03733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010
한글 번역
이삼괴의 손자 감역 벼슬을 지낸 사길에게 기유년 항소进納한 관직을 추증했으며, 아들 장한은 한상의 사위가 되었다. 숙종 정사년에 태어나 자는 원백, 호는 백일현이다. 영조가 충성으로 백일을贯한다는 의미를 두고 특별히 이 호를 내렸다. 일찍 윤증에게 수학하였고, 윤증이 이름을 지어주었다. 숙종 임오년에 영의정 김구가 건의하여 특별히 남방宣撫使로 임명하고 곧 집을 하사하였다.蔚山兵馬使, 平安兵馬使, 南兵馬使, 忠淸兵馬使를 두루 역임하였다. 경종 신축년에 관대에 올라 총융사를 역임하였으며(재임)御營大将과 訓練大将도 역임하였다(재임). 영조朝에武功을 일으킨 공으로 이등功을 세워咸恩君에 봉해졌고, 벼슬은兵曹判書에서 그쳤다. 을묘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향년 오십구세, 열전에 실렸다.
독음
이삼괴손감역사길 주 증기항소 증찬성자 장한상서 숙종 정사생 자 원백호 백일현 영조以来 충관 백일지의 의특조사호 조수업어 윤증 증정명 숙종 임오 영상 김구 진달 별천특제 남선 인여차제 녀蔚병평병남병충병 경종 신축 단제 총융사 주 재임 녀어장훈장 주 재임 영조조책분무공공 이등봉 함은군 관지병판 을묘 졸년 오십구 열전
의미
李森瀤의 손자 사길의 기록으로, 숙종 정사년(1697)생, 자 원백, 호 백일현. 영조의 특명으로 백일현 호를 하사받았으며, 윤증门下에서 수학하였다. 영조대에 여러 군사직을 두루 역임하고武功으로 이등공을 세워咸恩君에 봉해졌으며, 최종 관직은兵曹判書였다. 을묘(1735)년에 59세로 사망.
원문
李森瀤孫監役師吉[주:贈己巳抗䟽贈賛成]子張漢相婿肅宗丁巳生字遠伯號白日軒英祖以忠貫白日之義特賜是號早受業於尹拯拯命名肅宗壬午領相金構陳達别薦特除南宣仍賜第歴蔚兵平兵南兵忠兵景宗辛丑登壇拜捴戎使[주:再任]歴御將訓將[주:再任]英祖朝策奮武功二等封咸恩君官止兵判乙卯卒年五十九列傳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삼괴 / 李森瀤, confidence=0.95
- person: 사길 / 師吉, confidence=0.95
- person: 장한 / 張漢, confidence=0.95
- person: 한상 / 漢相, confidence=0.9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0.95
- person: 윤증 / 尹拯, confidence=0.95
- person: 김구 / 金構, confidence=0.95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0.95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0.95
- place: 남선(남방宣撫使) / 南宣, confidence=0.85
- place: 蔚山 / 蔚, confidence=0.9
- place: 함은 / 咸恩, confidence=0.9
- office: 감역 / 監役, confidence=0.95
- office: 총융사 / 総戎使, confidence=0.95
- office: 병판(兵曹判書) / 兵判, confidence=0.95
- work: 백일현 / 白日軒,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贈己巳抗䟽赠賛成 - 进納 관직 추증 관련 기록으로 문맥상 항소(抗疏)를进納、进贊成 등 관직 추증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문장 구조가 불확실함
- 監役師吉孫監役師吉 - 이삼괴의 손자 사길이 감역 벼슬을 지냈다는 뜻으로 보이나, 계승 관계의 정확한 문장 구조가 불확실함
- 子張漢相婿 - 장한이 한상의 사위라는 의미로 해석하나, 다른 문장 구조 해석 가능성 있음
박세극
- 기사 ID:
20037_030_001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11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16:39:36.20224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011
한글 번역
박세극은 훈다섯의 5세손이다. 찰방 형성의 아들로, 자는 재경, 호는 호계이다. 향천에 추천되어 벼슬에 나가 관직에 오르니 벼슬이 판관에 그쳤다. 경종 신축년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개기 뒤에 사종필정으로 기용되었다. 아버지가 오위장으로 승진하였다. 성품이 순리고 조심성이 있어 그때나 지금이나 모두 선인이라 일컬었다.
독음
박세극 훈다섯 오세손 찰방 형성 아들 자재경 호호계 향천으로 직관 임직하여 벼슬 판관에 그치고 경종 신축년에 관을 버리고 귀향하였으며, 개기 후에 사종필정으로 벼슬하여 아버지가 오위장으로 승진하였다. 성품이 순고하고 조심성이 있어 당시에 선인이라 일컬었다.
의미
朴世極傳의冒頭部分이다. 박세극은 훈다섯의 5세손으로, 향천 제도를 통해 벼슬에 나가 판관 직위까지 올랐다가 경종 신축년에 관을 버리고 귀향하였다. 이후 시대가 바뀌어 사종필정으로 다시 등용되었으며, 아버지가 오위장으로 승진하는 등 가문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갔다. 성품이 순후하고 조심성이 있어 당시에 선인이라 칭송받았다. 子弼正見下는 다음 항목에서弼正의 내용을 참고하라는 주석이다.
원문
朴世極薰五世孫察訪廷麟子字濟卿號虎溪以鄕薦除職官止判官景宗辛丑棄官歸改紀後以侍從弼正父陞五衛將性醇謹時稱善人[주:子弼正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박세극 / 朴世極, confidence=1.0
- person: 훈다섯 / 薫五, confidence=0.95
- person: 형성 / 廷麟, confidence=0.95
- person: 재경 / 濟卿, confidence=1.0
- person: 호계 / 虎溪, confidence=1.0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1.0
- office: 찰방 / 察訪, confidence=1.0
- office: 판관 / 判官, confidence=1.0
- office: 사종 / 侍從, confidence=0.9
- office: 필정 / 弼正, confidence=0.85
- office: 오위장 / 五衛將, confidence=0.95
- term: 향천 / 鄉薦, confidence=0.95
- term: 개기 / 改紀, confidence=0.9
- term: 신축 / 辛丑,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弼正은 사종과 함께 직함으로 볼지 별도의 관직 명칭으로 볼지 문헌학적 해석이 필요하며, 改紀는 단순히 시대 교체인지 특정 개혁 기수를 가리키는 것인지 추가考证이 요구된다.
윤헌주
- 기사 ID:
20037_030_001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13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7-24T11:27:37.35859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013
한글 번역
윤헌주는 사로의 9대손이다. 동추(枢密使)택자의 아들로 현종 경신년에 태어났으며, 자는 길보이고 호는 이지당이다. 숙종 계해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사마가 되었고, 무인년에는 사재봉사로 임명되어 수석으로 능암에 나아가갔다. 대간에 있으면서 좋은 말을 많이 하여 악인들에게 빚어진 죄를 짓다. 경종 경신년의 사화가 일어나자 용천으로 유배되었다. 영조 을사년에 돌려보내주고 풀어주었으며, 무신년에는 안무사로 나갔다. 방면의 재능이 있었으므로 서북 번을 두루 근무하였으며, 문필이 모두 뛰어났고 특히 변수(駢儷)에 능하였으며, 귄결이 뛰어나고 군사를 통달하였다. 관직은 형판(刑判)에 이르렀다가 기유년에 졸하니 향년 예순아홉 살이었다. 양무종공의 공으로 따라功을 세워 좌찬성에 추증하였고, 시호는 익헌이다.
독음
윤헌주 사로구세손 음동추택자 현종신축생 자길보 호이지당 숙종계해 사마 무인 이사재봉사 괴열성 위대감 다당언 오형도 경종신축사화 단용 영조을사 방환 무신 경제안무유 방면지재 녁안서북번 문필俱우,尤長於변려 건국超人 능통병법 관지형판 기유 졸 년육십구 이양무종공 증좌찬성 시익의헌
의미
조선中期의 文武兼備한 관료 윤헌주의 간단한 行蹟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사재봉사에서 대간에 이르기까지 요직을 두루 지내고, 直言으로 권奸들에게 불편을 끼쳐 경종 연간 사화 때龍川으로 유배되었다가 영조대에 풀려나 안무사로 발탁되어 서북번을 역임하였다. 문필과 병법에 모두 능통하였으며, 특히 변수문에 뛰어났다. 졸직 후 추증받아 좌찬성에 이르고 익헌의 시호를 받았다.
원문
尹憲柱師路九世孫䕃同樞澤子顯宗辛丑生字吉甫號二知堂肅宗癸亥司馬戊寅以司宰奉事魁謁聖為臺諫多讜言忤凶徒景宗辛丑士禍謫龍川英祖乙巳放還戊申為按撫使有方靣之才歴按西北藩文筆俱優尢長於駢儷榦局超衆能通兵法官止刑判己酉卒年六十九以揚武從功贈左賛成諡翼獻
엔티티 후보
- person: 윤헌주 / 尹憲柱, confidence=1.0
- place: 용천 / 龍川, confidence=0.9
- place: 서북번 / 西北藩, confidence=0.9
- office: 사재봉사 / 司宰奉事, confidence=0.9
- office: 대간 / 臺諫, confidence=0.95
- office: 안무사 / 按撫使, confidence=0.95
- office: 형판 / 刑判, confidence=0.9
- office: 좌찬성 / 左賛成, confidence=0.95
- work: 이지당 / 二知堂, confidence=0.95
- term: 자(,字) / 字, confidence=0.95
- term: 호(號) / 號, confidence=0.95
- term: 시호(諡號) / 諡, confidence=0.95
- term: 변려(문체) / 駢儷, confidence=0.8
- term: 사화 / 士禍, confidence=0.95
- term: 음(관직 세습) / 蔭, confidence=0.8
- term: 사로(음양오행방위) / 師路,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유숭
- 기사 ID:
20037_030_001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14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16:40:08.91843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014
한글 번역
유숭회의 아들의 자는 원지이다. 숙종 기묘년(1699)에 별검으로 등제하여 알현하였다. 즉위 3년 만에 삼사의 지인관 벼슬에 올랐고 호조 참판에서 그쳤다. 경종 임인년(1722)에는 사화가 일어나, 군부를 탐식한 것을 죄목으로 하여 경진에 유배되었다. 영조 을사년(1765)에 비로소 풀려나 돌아왔다.
독음
유숭회의 일자 원지. 숙종 기묘년에 별검으로 등서하여 알현하였다. 성력 삼사에서 지인관 至申官에 이르고 호조 참판에서 그쳤다. 경종 임인년에 사화가 일어나 군부를 탐시한 것을 죄상으로 삼아 경진에 유배되었다. 영조 을사에 풀려나 돌아왔다.
의미
조선后期的 관료 유숭회(자 원지)의 이력이다. 숙종대에 별검으로 출발하여 삼사 지인관·호조 참판까지 올랐으나, 경종 임인년 사화 때 군부를 탐식했다는 죄목으로 경진(개성)에 유배되었다. 이후 영조대에 이르러 풀려났다. 숙종 기묘년을 1699년으로 볼 때, 66년간이나 유배 생활을 한 셈이 된다.
원문
兪崇晦一子字元之肅宗己卯以别檢登謁聖歴三司知申官止戶參景宗壬寅士禍以探試君父為案謫庚津英祖乙巳放還
엔티티 후보
- person: 유숭회 / 兪崇晦, confidence=1.0
- person: 원지 / 字元之, confidence=1.0
- year: 숙종 기묘 / 肅宗己卯, confidence=0.95
- office: 별검 / 別檢, confidence=0.9
- office: 삼사 지인관 / 三司知申官, confidence=0.85
- office: 호조 참판 / 戶參, confidence=0.9
- year: 경종 임인 / 景宗壬寅, confidence=0.95
- event: 사화 / 士禍, confidence=0.9
- place: 경진 / 庚津, confidence=0.85
- year: 영조 을사 / 英祖乙巳,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이세덕
- 기사 ID:
20037_030_001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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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세덕은 후산(後山)의 손자로, 문특(文特)에 합격한 이평두악의 아들이자 이상진의 외손이다. 현종 임인년에 태어나 자는 백소였다. 윤증의 문인이다. 숙종 을유년(1689)에 증광(增廣)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사인을 지내고 응교에서 벼슬이 끝났다. 스승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며 북을 치고 송사하여 유도로 유배되라는 명을 받게 되었다. 경종 신축년(1721)에修撰로 재임 중 상소를 올려 송시열과 금창집을 욕보였고, 여전히 그 스승의 모함을 호소하였다. 갑진년(1724)에 죽었으며 향년 63세였다.
독음
이세덕 후산손 문특 평두악자 이상진 외손 현종 임인생 자백소 윤증 문인 숙종 을유 등증광력 사인 관지응교 위사격고송완지유도배지 명 경종 신축 이修撰 상소 추욕 송시열 금창집 인卞 기사 어갑진 졸년육십삼
의미
조선后期的 문인 이세덕의 전기이다. 문특 합격으로 벼슬에 진출하여 응교까지 올랐으나, 스승 윤증의 억울함을 호소하다 유도로 유배되는 처벌을 받았다. 이후 경종 때修撰 벼슬에서 송시열과 금창집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 갑진년에 63세로 사망하였다.
원문
李世德後山孫文特平斗岳子李尙眞外孫顯宗壬寅生字伯卲尹拯門人肅宗乙酉登增廣歴舎人官止應教為師撃鼓訟寃至有島配之命景宗辛丑以修撰上䟽醜辱宋時烈金昌集仍卞其師誣甲辰卒年六十三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세덕 / 李世德, confidence=1.0
- person: 이상진 / 李尙眞, confidence=1.0
- person: 윤증 / 尹拯, confidence=1.0
- person: 송시열 / 宋時烈, confidence=1.0
- person: 금창집 / 金昌集, confidence=1.0
- place: 유도 / 有島, confidence=1.0
- office: 증광 / 增廣, confidence=1.0
- office: 사인 / 舍人, confidence=1.0
- office: 응교 / 應教, confidence=1.0
- office: 수찬 / 修撰, confidence=1.0
- term: 문인 / 門人, confidence=1.0
- term: 격고 / 撃鼓, confidence=0.9
- term: 도배 / 島配,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문특(文特)의 구체적 시험 종류)
- 후산(後山)의 인물이 누구인지
오명준
- 기사 ID:
20037_030_001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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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오명준은 윤겸의 손자이고 수량의 아들이다. 문과에 급제한 수량(文科拔)의 아들로서, 여의성의 외손자가 된다. 자는 보경이다. 숙종 갑술(1674)년에 진사로 장원하여 성균관에 나아갔다. 삼사를 전임하고 해伯 예조 판관을 지냈으며, 예조 참의에 이르렀다. 영조가 즉위한 초에 대사간으로서 사헌부에서 이광조가 권리를 독차지하고 당파를 형성한 죄를 논하는 소를 올렸다가 삭직되고 추방될 것이라는 명을 받았다.
독음
오명준 윤겸손 수량뭐문과 발씨자로려성제외손자 자보경숙종갑술이진사괴엽성력삼사해백예판관지참의영조즉위초이다대사간소헌소론이광조고총수당지죄피삭출지명
의미
오명준(자 보경)은 숙종 갑술(1674)년에 진사과를 장원으로 합격한 인물로, 충청도 감사·예조 참의 등을 역임했다. 영조 즉위 초에 이광조의 권력 독점과 당파 건설의 죄를 논박하는 사간으로서 상소를 올렸다가 파면 추방의 처분을 받았다. 그의 형제 오명항 역시 문과에 급제했고, 동생 오명항은 신료에 오르거나 부학에 오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원문
吳命峻允謙孫遂良[주:文科拔]子呂聖齊外孫字保卿肅宗甲戌以進士魁謁聖歴三司海伯禮判官止參䝺英祖即位初以大司憲䟽論李光佐固寵樹黨之罪被削黜之命[주:三兄弟文科弟命恒見下命新副學]
엔티티 후보
- person: 오명준 / 吳命峻, confidence=1.0
- person: 오명항 / 吳命恒, confidence=1.0
- person: 이광조 / 李光佐, confidence=1.0
- person: 오윤겸 / 吳允謙, confidence=1.0
- person: 오시형 / 吳始亨, confidence=0.95
- person: 여의성 / 呂聖齊, confidence=1.0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1.0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1.0
- office: 삼사 / 三司, confidence=1.0
- office: 해백 / 海伯, confidence=0.95
- office: 사헌부 / 司憲, confidence=1.0
- office: 대사간 / 大司諫, confidence=1.0
- term: 고총수당 / 固寵樹黨, confidence=0.95
- term: 문과 발 / 文科拔, confidence=0.95
- place: 갑술 / 甲戌,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文科拔
- 해백의 구체적 직위 품계
- 三兄弟의 정확한 인물 확인
- 削黜之命의 구체적 파면 과정
김철근
- 기사 ID:
20037_030_002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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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김철근은 광산 출신으로 괵시징의 사위였다. 시호는 석심, 호는 절우당이며 중진사에 급제하였다. 경종 신축년(1697)에 관학 생원으로 상소하여 군신의 의리를 명확히 논하고, 이어서 봉휘의 흉악하고 역모한 행위를 탄핵하였다. 아내 괵씨는 호가 청창이었다. 어릴 때 송시열이 그를 보고 기이하게 여겨 이 호를 내려주었다. 문장을 잘 지었으니, 남편이 죽자 묘지명(墓誌)을 지어 세상에 전하였다.
독음
김철근 광산인 괵시징 서호 석심호 절우당 중진사 경종 신축년에 관학 생원으로 항소하여 군신의 의리를 밝히고 이어서 봉휘의 흉역의 상황을 논하였다. 아내 괵씨 호 청창. 어릴 적에 송시열이 보고 기이히 여기어 이호를 주었다. 문장에 능하였으니 그 남편이 죽자 묘지명[墓誌]을 지어 세상에 전하였다.
의미
조선中期의 儒學者인 김철근의 行狀을記한 文章이다. 광산 출신으로 괵시징의 서손이었고 중진사에 합격하였다. 경종 신축년(1697)에 관학 생원으로 상소하여 군신의 의리를 논하고, 당대 권신이던 李鳳輝의 흉악한 역모를 탄핵하였다. 그의 아내 괵씨도 清窓이라는 호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릴 적 宋時烈이 그를 알아봐 호를 내려주었다고 전한다. 文筆에 능하였던 아내가 남편의 사망 후 묘지명을 지어 세상에 전한 것으로, 節友堂이라는 호의 由來도 宋時烈과의 인연에 기인한다.
원문
金鐵根光山人郭始徵婿字石心號節友堂中進士景宗辛丑以館學生抗䟽明君臣之義仍論鳳輝凶逆之狀妻郭氏號晴窓兒時宋時烈見而奇之鍚以此號能文章其夫沒作墓誌傳于世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철근 / 金鐵根, confidence=0.97
- place: 광산 / 光山, confidence=0.95
- person: 괵시징 / 郭始徵, confidence=0.92
- person: 송시열 / 宋時烈, confidence=0.96
- person: 이봉휘 / 李鳳輝, confidence=0.88
- office: 중진사 / 中進士, confidence=0.95
- office: 관학생원 / 館學生, confidence=0.93
- term: 항소(直言上疏) / 抗疏, confidence=0.9
- term: 묘지명 / 墓誌, confidence=0.85
- work: 절우당 / 節友堂, confidence=0.95
- work: 청창 / 晴窓,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墓誌는 묘지명(墓誌銘) 또는 묘표(墓表)를 가리킬 수 있으며, 李鳳輝는 당대 실존 인물로 추정되나 本文에서는 ‘鳳輝’로만 기재됨
박상검
- 기사 ID:
20037_030_002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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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박상검은 환사(중궁)였다. 임오년에 태어나 영변에 거처하였다. 김일경이 부사가 되었을 때 그 사람의 영리함을 좋아하여 글을 가르쳐 주었다. 그후 내시부에 속하여 아첨에 능하고 경계심이 날카로우며 문필에 능하고 권력이 있었다. 궁궐 안의 동정消息은 김일경이 모르는 것이 없었다. 경종 임인년에 세제를 위태롭게 하려는 음모를 이유로, 대신들이 임금께 대면을 청하여 시기를 기다리지 않고 참형할 것이라는 교지를 내렸다. 군기시 앞에서 형을 집행하였다.
독음
박상검환사이 임오생 거영변 김일경위부사시 애기영리 교지문자 기후속적내시부 교녕기경 능문필 유권력 내간동정 일경무부지之 경종임인 이모위세제 인대신청대 유불대시처참지교 군기시전행형
의미
조선后期的權力結構와 내시세력을 보여주는 기사이다. 영변부사 김일경이 박상검을 낙점하여 문자를 가르치고, 이후 내시부가 되어 권력을 썼으며 궁궐 안의 동정을 김일경에게 알려주었다. 경종 임인년에 세제景宗를 위태롭게 하려는 음모 혐의로 대신들의 청대에 따라 즉시 처형된 인물이다. 환사 박상검의 귀결은 궁정 내的权力角逐과 밀접하다.
원문
朴尙儉宦寺也壬午生居寧邊金一鏡為府使時愛其伶俐教之文字其後屬籍內侍府巧侫機警能文筆有權力內間動靜一鏡無不知之景宗壬寅以謀危世弟因大臣請對有不待時處斬之教軍器寺前行刑
엔티티 후보
- person: 박상검 / 朴尙儉, confidence=1.0
- person: 김일경 / 金一鏡, confidence=1.0
- place: 영변 / 寧邊, confidence=1.0
- office: 내시부 / 內侍府, confidence=1.0
- office: 군기시 / 軍器寺, confidence=1.0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1.0
- term: 환사 / 宦寺, confidence=1.0
- term: 임오 / 壬午, confidence=1.0
- term: 임인 / 壬寅,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문유도
- 기사 ID:
20037_030_002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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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4T02:28:15.55477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024
한글 번역
문유도는 환관이었고, 박상검 및 궁인 석열필정 등과 함께 궁중에서 유물(인형)을 만들어 세제를 불안하게 하였다. 대신들이 대면을 요청하자, 때를 기다리지 않고 참수하라는 명으로 형문四次를 시행하였으나 물고(사망)하였다.
독음
문유도환사야박상검급궁인석열필정등작용어궁중시키제불안대신청대유불대시처참지교형문사차물고
의미
조선 연산군 연간, 환관 문유도가 박상검, 궁인 석열필정 등과 함께 궁중에서 유물(인형)을 만들어 왕의 동생 세제를 불안하게 하는 짓을 하였다. 대신들이 대면을 청하자, 왕은 즉시 참수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러나 형문(형구로 심문)을 네 차례나 시행하는 과정에서 피고가死亡하였다. 이는 사형 집행 전 심문 과정에서 피고가 사망한 사건으로, 연산군의 정치적 폭압과 법무 처리 과정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원문
文有道宦寺也與朴尙儉及宫人石烈必貞等作俑於宫中使世弟不安大臣請對有不待時處斬之教刑問四次物故
엔티티 후보
- person: 문유도 / 文有道, confidence=0.95
- person: 박상검 / 朴尙儉, confidence=0.95
- person: 석열필정 / 石烈必貞, confidence=0.9
- term: 환사(환관) / 宦寺, confidence=0.95
- term: 작용(유물·인형 만들기) / 作俑, confidence=0.85
- term: 세제(왕의 동생) / 世弟, confidence=0.95
- term: 물고(사망) / 物故,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作俑(宮中에서): 유물 인형 제작이었는지, 다른 의도적 모독 행위였는지 문맥상 불분명
- 刑問四次: 형문 시행 횟수와 방식이 구체적으로 불확실
원휘
- 기사 ID:
20037_030_002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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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4T11:28:54.61744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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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원휘와 심단, 김일경, 윤주상이 함께 같은 뜻으로 경종 임금에게 신축년에 건의하기를, 관서절도사의 직임은 늙고 허약한 사람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백시구老人를 차례로 역임시키고, 앞자리 부사였던 원휘를 새로 임명해야 한다고 하니라.
독음
원휘와 심단, 김일경, 윤주상이 함께 같은 마음으로 경종임금께 신축년에 전거하기를, 관서절도사는 늙고 연약한 자에게 맡겨서는 안 되니, 백시구老人的 직임을 거치게 하고, 전 부사 원휘로 제수하라 하니라
의미
고려 경종조에 신축년에 심단, 김일경, 윤주상 등이 합동으로 임금에게 아뢴 건의문이다. 관서절도사가 노약자에게 맡겨지면 안 된다는 점을 들어, 백시구를 차례로 전임시키고 원휘를 부임시키기를 청한 내용이다. 절도사 인선을 겸임 관직 교체와 연결시킨 인사 건의 사료를 보여준다.
원문
元徽與沈檀金一鏡尹就商同心景宗辛丑傳曰關西節度不可以老孱界之白時耉遞差前府使徽除授
엔티티 후보
- person: 원휘 / 元徽, confidence=0.95
- person: 심단 / 沈檀, confidence=0.85
- person: 김일경 / 金一鏡, confidence=0.85
- person: 윤주상 / 尹就商, confidence=0.85
- person: 백시구 / 白時耉, confidence=0.75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0.95
- office: 절도사 / 節度, confidence=0.9
- office: 부사 / 府使,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白時耉의 인물 정체와 직함
- 遞差의 구체적 절차 의미
- 沈檀·金一鏡·尹就商의 성격과 관직
김수천
- 기사 ID:
20037_030_002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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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김수천은 동궁(세자궁)의 팔력(궁정의 종복)이었다. 그 무렵 왕위 계승자인潛邸人이 반드시 자신의 것으로 하고자 하던 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수천의文書와 구실로 수천 등을 괴롭혔다. 수천 등은 걱정하며 동궁을 항상 수행하고 감히 밖으로 나가지 못했으며, 서간을 백망(白望)에게 부탁하여 서찰을 주고받았다. 범인들이 수천의 아들을 협박하여 글을 써서 바치게 하니, 그 내용에 “어머니의 병이 심하다.”고 했다. 수천이 그것을 알고 휴가를 청하며 울면서 사직하고 떠났다. 금부에 이송되었을 때 이미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가 결국 섬에 유배되었다.
독음
김수천은 동궁의 팔력이다. 그 무렵潛邸人이 반드시得了하고자 하던 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그 서적과 구실로 수천 등을 괴롭히니, 수천 등은 우환스럽게 동궁을 항상 수행하며 감히 나오지 못하고白望으로서 서찰을 왕래하는 사람이었다.凶徒가 그 아들을 협박하여 글을 지어 넣으니, 말하기를 “어머니의 병이 심하다.”하였다. 수천이暇를 청하며 울며 사직하고 나갔으며, 금부에 이르렀을 때 이미 수감되어 섬에 유배되었다.
의미
김수천은 동궁의 종복 팔력으로, 왕위 계승자의 부하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평소 서간을 외부에 부탁하여 소통하던 수천은, 범인들이 자신의 아들을 협박하여 심한 어머니의 병이라는 거짓 편지를 쓰게 했다. 이를 안 수천은 급히 달려가려 했으나 결국 금부에 체포되어 섬으로 유배되었다. 왕위 계승자와의 갈등이 비正常工作로 이어진 역사적 사건으로 보인다.
원문
金守天東宫掖隷也時潛邸人必欲得其籍口守天等憂惶常侍東宫不敢出為白望書札徃復之人凶徒脅其子作書入通曰母病甚守天請暇泣辭而出及致禁府已收而囚島配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수천 / 金守天, confidence=1.0
- person: 수천 / 守天, confidence=1.0
- place: 동궁 / 東宫, confidence=1.0
- person: 잠저인 / 潛邸人, confidence=0.9
- person: 백망 / 白望, confidence=0.7
- office: 금부 / 禁府, confidence=1.0
- place: 도배 / 島配,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이휘천
- 기사 ID:
20037_030_002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29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16:44:28.32017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029
한글 번역
이휘천은 먼 고향 출신으로, 전설 별검 벼슬을 맡았다. 나라의 형편이 위태롭고 어지러운 것을 보고, 이에 공회 자리에서 큰소리로 말하기를, 악한 무리들이 사회를 어지럽히고 그들一手로冤罪 옥사를 만들어내는 꼴을 그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어 죄수들을 잡아 홍원에 유배하고, 갑진년에 놓아주었다.
독음
이휘천 하향인야 전설별검으로 국사위란을 보고,乃 공회에서 대언하기를, 흉토가 탁란하며 연오옥의 상을 그치지 않는다. 이에 수囚을 잡아 홍원에 배수하고, 갑진년에 놓았다.
의미
이휘천이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을忧覺하고 공개석상에서凶徒들이冤罪 옥사를 일삼는다고 크게 문제제기한 후,相关 죄수들을 홍원으로 유배하고 갑진년에放出한 일을 기록한 기사이다. 전설 별검 관직에 있던 이휘천이 공적 발언으로 사건 해결에 나서거나 정부의処置를催促한 것으로 보여진다.
원문
李輝千遐鄕人也以典設别檢見國事危亂乃於公會大言凶徒濁亂鍊誣獄之狀仍拿囚配洪原甲辰放
엔티티 후보
- person: 이휘천 / 李輝千, confidence=0.95
- place: 홍원 / 洪原, confidence=0.85
- office: 전설별검 / 典設别檢, confidence=0.8
- term: 연오옥(날조한 무고한 옥사) / 鍊誣獄, confidence=0.85
- term: 흉토탁란(악한 무리의 혼란) / 凶徒濁亂,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典設别檢: 전설별검의 직역으로 四學奉事類의 직전직인지 四學別檢과 관련한 직제인지 분명하지 않음
- 甲辰: 연호 특정 없이는 1756년 또는 1816년 등으로 여러 가능성 존재
- 配洪原: 홍원郡으로 유배之意로 보이나 구체적 유배 형태는 불명확
정자관
- 기사 ID:
20037_030_003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30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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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16:45:27.86015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030
한글 번역
정우관은 병진년에 태어나 안주에 거처하며 무과에 올라 관직은 부사에 그쳤다. 관직을 일으켜 경사에 올라가 내시 장세상, 최홍, 상검 등과는 가깝게 지냈다. 그들이 비밀히 하는 행적을 모르는 것이 없었다. 경종 임인년에 붙잡혀 옥중에 있으면서 상변하고, 형을 다섯 번 시행하고 고문과 매질을 가한 뒤 군기사의 앞길에서 처형되었다.
독음
정우관 병진생 거안주등무과관지부사관유경사와내시 장세상 최홍 상검배은밀하지무부지경종 임인피대종옥중상변형오차시교략군기지은행형
의미
정자관(정우관)은 무과 급제 관료로서 경사에서 내시 장세상, 최홍, 상검 등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들의 비밀스러운 활동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종 임인년(1720년경)에 체포되어 옥중에서 계속 상변을 보고했고, 다섯 차에 걸친 고문과 매질을 받은 끝에 군기사 앞길에서 처형된 인물이다. 내시층과의 관계와 비밀이익 파악이 이 사건의 핵심 배경으로 보인다.
원문
鄭宇寬丙辰生居安州登武科官止府使官游京師與內侍張世相崔泓親知尙儉軰隂秘之迹無不知之景宗壬寅被逮從獄中上變刑五次施拷掠軍器寺前行刑
엔티티 후보
- person: 정우관 / 鄭宇寬, confidence=1.0
- person: 장세상 / 張世相, confidence=1.0
- person: 최홍 / 崔泓, confidence=1.0
- person: 상검 / 尚儉, confidence=1.0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1.0
- place: 안주 / 安州, confidence=1.0
- place: 경사 / 京師, confidence=1.0
- place: 군기사 / 軍器寺, confidence=1.0
- office: 부사 / 府使, confidence=1.0
- term: 상변 / 上變, confidence=1.0
- term: 교략 / 拷掠, confidence=1.0
- term: 무과 / 武科, confidence=1.0
- person: 병진 / 丙辰, confidence=0.9
- person: 임인 / 壬寅,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이상건
- 기사 ID:
20037_030_003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31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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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16:45:08.44412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031
한글 번역
이상건이 정린중의 가객으로 무과에 올라 별장 벼슬에 임명되었다. 최석항이 그를 모해하여 고소하는 죄를 꾸며 났으며, 수백 차례에 걸쳐 매질하여 색문하는 고문을 가했다. 그러나 굴복하지 않아 마침내 죽었다.
독음
이상건 정린중 가객으로 등무과하여 별장에 제수되다. 최석항이 무고하여 꾀하여 시달리니, 수백 번 고량을 가하되 굴하지 않아서 죽었다.
의미
이상건이 정린중의 문객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별장 직에 올랐으나, 최석항의 무고와 고문에도 불구하여 굴복하지 않고 순절한 인물임을 서술하는 기사이다.
원문
李尙健以鄭麟重家客登武科除别將崔鍚恒搆誣施屢百拷掠不屈而死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상건 / 李尙健, confidence=1.0
- person: 정린중 / 鄭麟重, confidence=1.0
- office: 무과 / 武科, confidence=1.0
- office: 별장 / 别將, confidence=1.0
- person: 최석항 / 崔鍚恒, confidence=1.0
- term: 가객 / 家客, confidence=0.9
- term: 구오 / 搆誣, confidence=0.85
- term: 고량 / 拷掠,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搆誣는 ‘(무고하여) 꾀하다’의 뜻으로 해석하나, 文獻資料에서 搆架誣辭와 같은 연용인지 단독으로 사용된 경우인지 명확하지 않다.
김성절
- 기사 ID:
20037_030_003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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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032
한글 번역
금성절이 소족(소인)들을 규합하여 은화 관련 및 약물 시임事宜를 죄목으로 삼아 용천에 유배되었다. 경종 임인년에 붙잡혀 군기사 앞에서 형을 집행받았다.
독음
금성절창집소족이음화상관급행약사위안적용천경종임인피체군기은행형
의미
조선 시대 인물 김성절이 은화 거래 및 약물 관련 행위로 죄에 물려 소족들을 규합한 일이 문제되어 용천으로 유배되었다가, 경종 치세 임인년(1722)에 체포되어 군기사 앞에서 공개 처형된 사건이다. 특정 죄목으로 추방된 인물이后来追加 처형된 전형적인 조선 사법 기록이다.
원문
金盛節昌集庻族以銀貨相關及行藥事為案謫龍川景宗壬寅被逮軍器寺前行刑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성절(창) / 金盛節昌, confidence=0.75
- place: 용천 / 龍川, confidence=0.95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0.98
- place: 군기사 / 軍器寺, confidence=0.92
- term: 소족(소인) / 庻族, confidence=0.75
- term: 행약사(약물 시임) / 行藥事, confidence=0.65
- term: 은화 / 銀貨, confidence=0.92
불확실한 어휘
- 昌가 이름의 일부인지 후치 사동사(促進)인지 불분명함
- 行藥事가 의약 행위인지 약물 밀매 관련 범죄인지 사료 해석이 필요함
안윤중
- 기사 ID:
20037_030_003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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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033
한글 번역
안윤중은 안정택의 증손이며, 안상자의 아들로, 중생원(생원)이었다. 경종 임진년(1725)에 상소하여 윤선거의 불결한 행실과 성조를 모함한 일, 윤증의 스승을 배신한 일을 극력 논했다. 선조의 금지령을 회복하도록 요청하고, 대왕의 定案[주: 병신처분]이 다시 건드려지지 않게 했다. 정원에서 논박斥责하고 命令을 受納하지 않았으며, 결국雲山으로 流竄되었다.
독음
안윤중정택증손상자중생원경종임진년상소극언윤선거실절사유성조사윤증배사사청복신선조금령사선대왕정안병신처분무감갱요정원론척명물봉처운산
의미
안윤중(안상자의 아들, 중생원)이 경종 임진년(1725)에 올린 상소의 핵심 내용이다. 윤선거의 불결한 행실과 윤증이 스승을 배신한 일을糾劾하고, 을미처분(1795)으로 확립된 선대왕의 定案이 지켜지도록 요청했다. 정원에서 이를 불수용하고 논박했으나 결국雲山으로 유배되었다.
원문
安允中廷爕曾孫相子中生員景宗壬寅上䟽極言尹宣擧失節事誣聖祖事尹拯背師事請復申先朝禁令使先大王定案[주:丙申處分]無敢更撓政院論斥命勿捧謫雲山
엔티티 후보
- person: 안윤중 / 安允中, confidence=1.0
- person: 안정택 / 安廷爕, confidence=0.95
- person: 안상자 / 安相子, confidence=0.9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1.0
- person: 윤선거 / 尹宣擧, confidence=1.0
- person: 윤증 / 尹拯, confidence=1.0
- term: 중생원 / 中生員, confidence=0.95
- term: 임진 / 壬寅, confidence=0.95
- office: 정원 / 政院, confidence=1.0
- place: 운산 / 雲山, confidence=0.9
- term: 선대왕 / 先大王, confidence=1.0
- term: 병신처분 / 丙申處分, confidence=1.0
- term: 선조금령 / 先朝禁令,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廷爕 - 원문에서 安允中廷爕曾孫으로 붙어 있어 安允中과 安廷爕로 분할하나, 안정택의 정확한 한자음은 추가考的 필요 있음
- 無敢更撓 - ‘다시 건드리지 못하게’로 해석했으나 문맥상政院의 권고 여부 등 추가 분석 필요
- 處雲山 - ‘처유운산’으로 流竄을 의미하나 정확한 유배 경위考证 필요
심호
- 기사 ID:
20037_030_003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34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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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7T01:39:55.02883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034
한글 번역
심호는 (중요한 관직을 세습하여 벼슬길에 오른) 인물로서, 도사(都事) 봉서의 현손(玄孫)이다. 현종 무신년에 태어나 자는 희천이다. 음사(蔭仕)로 벼슬에 나아가 관직이僉正(감찰대부)에 이르렀으나 그만두었다. 숙종 갑신년에 사망하니 향년 37세였다. 경종이 즉위한 경자에 国舅의 신분으로 영상의 관직에 추증되고, 清恩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孝肅이다. 아들 유현은 관직이 府使에 그쳤고, 英祖 무신년에 역적의 죄로 곤형에 엮여 죽었다.
독음
심호즐현손도사봉서자현종무신생자희천음사지기전정숙종갑신졸년삼십칠경종즉위경자유국舅증영상청은부원군시효숙자유현관지기부사영조무신이호역곤초사
의미
심호는 조선 시대 인물로 현종 무신년생이며 숙종 갑신년에 37세로 사망하였다. 경종 즉위 후 国舅로서 영상에 추증되고 清恩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孝肅이다. 아들 유현은 영조 무신년(영조 4년, 1728년)의 역적 사건에 연루되어 곤형으로 처형되었다.
원문
沈浩悅玄孫都事鳳瑞子顯宗戊申生字希天䕃仕止僉正肅宗甲申卒年三十七景宗即位庚子以國舅贈領相靑恩府院君諡孝肅子維賢官止府使英祖戊申以凶逆栲死
엔티티 후보
- person: 심호 / 沈浩, confidence=1.0
- person: 봉서 / 鳳瑞, confidence=1.0
- person: 희천(심호의 字) / 字希天, confidence=1.0
- person: 현종 / 顯宗, confidence=1.0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1.0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1.0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1.0
- person: 유현(심호의 아들) / 維賢, confidence=1.0
- office: 도사 / 都事, confidence=1.0
- office: 僉정(감찰대부) / 僉正, confidence=1.0
- office: 부사 / 府使, confidence=1.0
- title: 清恩府院君 / 靑恩府院君, confidence=1.0
- title: 영상 / 領相, confidence=1.0
- term: 음사(관직 세습) / 蔭仕, confidence=0.9
- term: 호역(큰 역모) / 凶逆, confidence=0.95
- term: 곤사(곤형으로 죽음) / 栲死, confidence=0.9
- term: 현손(4대손) / 玄孫, confidence=1.0
- term: 국舅(왕비의 아버지 또는 외척) / 國舅, confidence=0.9
- term: 시호 / 諡,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蔭仕止僉正의 정확한 해석 여부
- 國舅의 구체적 관계(어느 왕비의 친정)
- 栲死(곤형)의 구체적 사연
정형익
- 기사 ID:
20037_030_003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36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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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4T02:29:09.48593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036
한글 번역
정형익은 광경의 고손손이며, 한림학사 제선의 아들이다. 현종 갑진년에 태어나 字는 시개, 호는 화암이다. 숙종 정묘년에 태어나 进学者 모두 합격하였다. 기해년에 금제군수로 임명되어 증광 시험에서 1위를 하였다. 경종 임인년에 소빈의 건호와 입사此事를 논박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금해로 유배되었다. 송인명이 상소를 올려尽全力으로 구명运动을 벌였다. 영조 을사년에放开되어 돌아와서 벼슬은 판서에서停止了다. 기사에 들어갔다. 정사년에 사망하여 향년 77세였고, 추증으로 좌찬성을 받았다.
독음
정형익은 광경의 현손이며 한림 제선의 아들이다. 현종 갑진년에 태어나 字는 시개이며 호는 화암이다. 숙종 정묘년에 태어나进士에 모두 합격하였다. 기해년에 금제군수로써 증광에서 1위를 하였다. 경종 임인년에 소빈의 건호·입사此事를 논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금해로 유배되었다. 송인명이 상소를 올려尽全力으로 구원하였다. 영조 을사에放宽되어 귀환하였고 벼슬은 판서에서 그쳤다. 기사에 들어갔다. 정사년에 사망하였고 향년 77세였다. 추증으로 좌찬성을 받았다.
의미
정형익(1674-1750)은 조선后期的文臣이다. 한림학사 제선의 아들로 현종 갑진년(1664)에 태어나 字는 시개, 호는 화암이다. 숙종 정묘년(1687)에 进学者 합격 후 기해년(1719)에 금제군수로 증광 시험에서 1위를 하였다. 경종 임인년(1722)에 소빈의 건호와 입사此事를 논박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금해로 유배되었다가, 송인명의 구명 상소로 영조 을사년(1725)에放开되어 돌아왔다. 이후 벼슬이 판서에서 그쳤고, 기사에 들어갔다가 정사년(1750)에 사망, 향년 77세로 추증되었다. 형제 모두 文科 벼슬에 올랐다.
원문
鄭亨益廣敬玄孫翰林濟先子顯宗甲辰生字時偕號花巖肅宗丁卯生進俱中己亥[주:五十六]以金堤郡守魁增廣景宗壬寅䟽論禧嬪建號立祠事竄金海宋寅明上䟽力救英祖乙巳放還官止判書入耆社丁巳卒年七十七贈左䝺成[주:兄弟文科弟亨復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정형익 / 鄭亨益, confidence=1.0
- person: 광경 / 廣敬, confidence=1.0
- person: 한림 제선 / 翰林濟先, confidence=1.0
- person: 송인명 / 宋寅明, confidence=1.0
- person: 형복 / 亨復, confidence=1.0
- place: 금제 / 金堤, confidence=1.0
- place: 금해 / 金海, confidence=1.0
- office: 판서 / 判書, confidence=1.0
- office: 좌찬성 / 左赞成, confidence=1.0
- office: 기사 / 耆社, confidence=1.0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term: 증광 / 增廣, confidence=0.9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person: 소빈 / 禧嬪,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增광(증광: 과거 급제자의 종류)
- 耆社(기사: 늙은 관리들의 조직)
- 建號立祠事(소빈의 건호와 입사此事)
정수기
- 기사 ID:
20037_030_003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37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7T01:40:08.312088+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037
한글 번역
정수기가 처음으로 손 䕃령 인질이 되어 자라량좌의 사위가 되었다. 현종 갑진년에 태어나 字는舜年, 호는谷口이다. 숙종 기묘년에 生員이 되고 같은 해 增廣에 급제하였다. 관직은 判敦寧에 이르렀다. 경종 임인년에 正言으로 나서서 난리를 꾀한 역적들을 논박하고, 이익훈의 아동방이 기밀하게 아뢴 사명(스승의 명)을 전하여 임금의 동정을 살피도록 했다. 그 전법의 계승은 소로는 春澤·重爀에게, 대로는 昌集·頤命·喜器·龍澤에게 이른다. 또한 金鎭·商李翔·持謙·韓泰東 등을 논평하기를, 명신이 억울한 누명을 쓰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고 하였다. 경조사에 참여하였고, 영조 임신년에 사망하여 향년 89세이었다.推恩으로追贈하여領相에 증서하고諡를貞簡이라 하였다.
독음
정수기 시성손음령 인질 자라량좌 서 현종 갑진생 자순년 호곡구 숙종 기묘생원 동년등증광 관지판돈녕 경종 임인 이정의 연소론란역 온양익훈지 아동 밀계 사명지 사상동정 기 전법상승 소즉위춘택 중회 대즉위창집 유명희기용용택 운운 우론금진상 이상 구조지겸 한태동 왈무사명신 유포어지 원입서사 영조 임신 졸년 팔십구 추은 증영상 겸정간
의미
정수기(1619~1752)는 현종 갑진(1655)년에 태어난 조선 후기 문신으로, 숙종 기묘(1679)년에 증광에 급제하여 관직을 판돈녕까지 올렸다. 경종 임인(1722)년에 정언으로 부임하여 이익훈 등의 역모 아동방을 소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학통은 소파로는 춘택·중회에게, 대파로는 창집·제공·희기·용택에게 이어졌다. 금진·이상·구조지겸·한태동 등 명신을 논평하여 억울한 누임을 쓰지 못하게 했다. 영조 임신(1752)년에 사망, 향년 89세, 추서로 영의상에 증직되고 시호는 정간이다. 아들의 이름은 子羅良翬, 딸의 이름은 女羅良見이다.
원문
鄭壽期始成孫䕃令寅賓子羅良佐婿顯宗甲辰生字舜年號谷口肅宗己卯生員同年登增廣官止判敦寧景宗壬寅以正言䟽論亂逆醞釀益勳之兒房密啓師命之伺上動靜其傳法相承小則為春澤重爀大則為昌集頤命喜器龍澤云云又論金鎭商李翔救趙持謙韓泰東曰無使名臣有抱誣之寃入耆社英祖壬申卒年八十九推恩贈領相諡貞簡[주:子羽良翬良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정수기 / 鄭壽期, confidence=1.0
- person: 현종 / 顯宗, confidence=1.0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1.0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1.0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1.0
- office: 판돈녕 / 判敦寧, confidence=1.0
- office: 정언 / 正言, confidence=1.0
- office: 영의상 / 領相, confidence=1.0
- person: 손음령 / 孫䕃令, confidence=0.8
- person: 이익훈 / 益勳, confidence=0.9
- term: 증광 / 增廣, confidence=0.9
- person: 춘택 / 春澤, confidence=0.8
- person: 중회 / 重爀, confidence=0.8
- person: 창집 / 昌集, confidence=0.8
- person: 제공 / 頤命, confidence=0.8
- person: 희기 / 喜器, confidence=0.8
- person: 용택 / 龍澤, confidence=0.8
- person: 금진 / 金鎭, confidence=0.7
- person: 상이상 / 商李翔, confidence=0.7
- person: 지겸 / 持謙, confidence=0.7
- person: 한태동 / 韓泰東,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兒房(아동방) - 정치적 음모를 꾸미는 당파를 비유하는 용어로 보이나 정확한 의미 확인 필요
- 傳法相承(전법상승) - 학문적 전수 관계를 의미하는 용어, 구체적 맥락 해석 필요
이세최
- 기사 ID:
20037_030_003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30]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30
- 면/쪽: 0038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7T01:41:08.47186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30&aa15no=030&aa20no=20037_030_0038
한글 번역
이세최는 후산의 손 윤첨정 순악(호는 죽우)의 아들이자 윤문거의 외손이며, 유상운의 사위이다. 현종 갑진년에 태어나 字는 유양이고, 숙종 기묘년 이전에 참여와 정시 시험에 올라 벼슬길에 올랐으며, 남상·전랑·송류관 등을 역임하고 관직은 대사헌에서 멈추었다. 경종 임자년에 대사헌으로 있으면서 상소하여 옥사를审理하는 대신 重臣을 구명했으며,此事와 관련하여 判堂과 金一鏡·尹淳 등이牵连되었다.
독음
이세최 후산손윤첨정순악 주의호죽우 자윤문거외손 유상운서 현종갑진생 자유양 숙종기묘년이전 참여등정시력남상전랑송류관지도대사헌 경종임자를 대사宪으로 상소하여 옥사를审理하는 대신 重臣을 구명하고判堂과 金一鏡 尹淳
의미
조선 시대 관료 이세최의 가계와 관직 이력, 그리고 경종 임자년 옥사 사건 당시 대사헌으로서 重臣들을 구명하려 한 정치적 사건을 기록한 기사이다. 이세최는 현종 갑진년생으로 유상운의 사위가 되었으며, 숙종대에 벼슬하여 남상·전랑 등을 지내고 대사헌에 이르렀다. 경종대에 金一鏡 등이 연루된 옥사가 있었을 때, 이세최는 重臣들을 구명하는 상소를 올렸다.
원문
李世最後山孫䕃僉正舜岳[주:號竹牖]子尹文擧外孫柳尙運婿顯宗甲辰生字幼良肅宗己卯以前參奉登庭試歴南床銓郞松留官止大司憲景宗壬寅以大司憲上䟽救按獄大臣判堂及金一鏡尹淳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세최 / 李世最, confidence=1.0
- person: 순악 / 舜岳, confidence=0.9
- person: 윤문거 / 尹文擧, confidence=0.9
- person: 유상운 / 柳尙運, confidence=1.0
- person: 김일경 / 金一鏡, confidence=1.0
- person: 윤순 / 尹淳, confidence=0.9
- office: 첨정 / 僉正, confidence=0.9
- office: 참여 / 參奉, confidence=1.0
- office: 정시 / 庭試, confidence=1.0
- office: 남상 / 南床, confidence=0.9
- office: 전랑 / 銓郞, confidence=0.9
- office: 대사헌 / 大司憲, confidence=1.0
- term: 자(아호) / 字, confidence=1.0
- term: 외손 / 外孫, confidence=1.0
- term: 사위 / 婿, confidence=1.0
- term: 상소 / 上䟽, confidence=0.9
- place: 후산 / 後山,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 後山孫(후산손, 후손 가문의 산이라는 뜻인지 지명인지 불확실)
- 山孫(산손, 산의 손자라는 뜻인지 완전한 인명인지 불확실)
- 松留官(송류관, 특정 관직명인지 불확실)
- 判堂(판당, 특정 관직명인지 불확실)
- 䕃(윤, 문맥상 同音이지만 정확한 한자가 불확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