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년편고 [紀年便攷n1-37책] - 본문 번역 묶음 039
- 책 ID:
kh2_je_a_vsu_20037_000
- 수록 기사: 75건
권대재
- 기사 ID:
20037_026_004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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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14:16:37.71056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6&aa15no=026&aa20no=20037_026_0049
한글 번역
권대재는 안동 사람으로, 진사 위중의 아들이자 대운의 종제이다. 광해군 기미년(1619년)에 태어나 자는 중거이고, 호는 돈건재이며 또 소천 또는 용문이라고도 했다. 인조 을유년(1625년)에 진사가 되어 함께 합격하였고, 효종 계사년(1653)에 별시에 등제하였다. 을신년(1656)에了承文正字로 重試에 합격하여 관직을 두루 거쳐提學에 이르고 入衡圈에 들어가,官止는 戶判이다. 팔기사에 소속되었고, 숙종 기해년(1689)에 큰 천둥이 치는 가운데 갑자기 죽었는데, 사람들이 의심하였다. 향년 71세였다.
독음
권대재 안동인 진사 위중자 대운 종제 광해 기미생 자 중거 호 돈건재 又소천 又용문 인조 을유생 진구 중 효종 계사등 별시 을신以来承文正字등 중시 례 제학입 형권 관지기호판 팔기사 숙종 기해 대뢰 중 폭사인 의 년 칠십일
의미
조선后期的 관료 권대재의 행적이다. 안동 출신으로 1619년 태어나 1625년 진사에 합격한 후, 1653년 별시에 합격하여 관계를 시작하였다. 1656년承文正字로 重試에 합격한 후提學, 入衡圈 등 요직을 두루 거쳐 戶判까지 승진하였다. 숙종 15년(1689년) 71세의 나이로 천둥에 맞아 갑자기 세상을 떠났으나, 이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가 있었다고 전한다.
원문
權大載安東人進士偉中子大運從弟光海己未生字仲車號敦艮齋又蘇川又龍門仁祖乙酉生進俱中孝宗癸巳登别試丙申以承文正字登重試歴提學入衡圈官止戶判八耆社肅宗己巳大雷中暴死人疑之年七十一
엔티티 후보
- person: 권대재 / 權大載, confidence=1.0
- place: 안동 / 安東, confidence=1.0
- person: 위중 / 偉中, confidence=1.0
- person: 대운 / 大運, confidence=0.9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term: 자 / 字, confidence=1.0
- term: 호 / 號, confidence=1.0
- work: 돈건재 / 敦艮齋, confidence=1.0
- work: 소천 / 蘇川, confidence=1.0
- work: 용문 / 龍門, confidence=1.0
- term: 별시, confidence=1.0
- term: 중시 / 重試, confidence=1.0
- term: 승문정자 / 承文正字, confidence=0.9
- office: 제학 / 提學, confidence=1.0
- office: 형권 / 衡圈, confidence=0.7
- office: 호판 / 戶判, confidence=1.0
- term: 기사 / 耆社,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한은
- 기사 ID:
20037_026_005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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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한은은 청주 사람으로, 문헌참판 한형길(호는 유헌)의 아들이다. 광해군 연간에 태어나 기미년에 태어났으며, 자는 중에, 호는 만은이다. 은일 생활로 여러 번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관직은 집의에서 그쳤다. 숙종 임진년에 일흔 살로 세상을 떠났다.
독음
한엄 청주인 문삼판 형길 주의 호 유헌 자 광해 한은 기미생 자 중에 호 만은 은일으로 여러 번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아니하고 관직은 집의에 그쳤으며 숙종 임진년에 향년 칠십으로 졸하다
의미
한은(漫隱)은 청주 출신으로 문헌참판 한형길(유헌)의 아들이다. 기미년에 태어나 자는 중에, 호는 만은이라 하였다. 은거하며 여러 차례 천거를 받았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고, 결국 집의 벼슬에 그쳤다. 숙종 임진년에 일흔 살로 세상을 떠났다.
원문
韓垽淸州人文參判亨吉[주:號柳軒]子光海己未生字仲徵號漫隱以隱逸屡徵不起官止執義肅宗戊辰卒年七十
엔티티 후보
- person: 한은 / 한垽, confidence=0.95
- place: 청주 / 淸州, confidence=0.98
- person: 형길 / 亨吉, confidence=0.92
- office: 문삼판 / 文參判, confidence=0.85
- term: 집의 / 執義, confidence=0.9
- term: 은일 / 隱逸,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光海는 광해군 즉위 연호로 보이나, 丁丑年 등 구체적 생년과 배치되는 부분이 있어 추가 검증 필요
정석
- 기사 ID:
20037_026_005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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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정칙은 동생 광해군이 기미년에 태어났으며, 표자를 백이라 하고 호를 악남이라 하였다. 인조 임오년에 진사에 급제하고, 기축년에 별시에 합격하여 대간관을 두루 역임하고 예부참의에서 관직을 마쳤다.
독음
정칙 달제 광해 기미생 자 백야 호 악남 인조 임오진사 기축등별시 역사대간관지지참
의미
정칙의生平을 수록한 기사이다. 광해군 시대에 태어나 인조 연간에 과거에 합격하고 대간관(비서관에 해당)을 두루 역임한 뒤 예부참의(예조 부참찬)에 이르렀음을 보인다.
원문
鄭晳榏弟光海己未生字白也號嶽南仁祖壬午進士己丑登别試歴大諌官止禮參
엔티티 후보
- person: 정석 / 鄭晳, confidence=0.95
- person: 광해 / 光海, confidence=0.85
- person: 인조 / 仁祖, confidence=0.95
- year: 기미 / 己未, confidence=0.9
- year: 임오 / 壬午, confidence=0.9
- year: 기축 / 己丑, confidence=0.9
- office: 진사 / 進士, confidence=0.95
- office: 대간관 / 大諫官, confidence=0.9
- office: 예부참의 / 禮參,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한성보
- 기사 ID:
20037_026_005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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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한성보는 응인의 증손자이다. 음목사(監牧使)寿遠의 아들로서, 광해군 경신년에 태어났다. 글자는汝碩이고, 호는理隱亭이다. 송시열의 문인이다. 벼슬은 가선까지 올랐고, 경주부윤을 지냈으며, 清原君 작위를 계승했다. 성리학을 탐구하여 학식이 뛰어났고, 스승이 무곡을 당한 것을辩明하기 위해 상소하였는데, 그 문장이 엄격하고 의리가 바르다. 아들 배하와 학술적 소지가 달랐으며, 그 당시에 한氏 부자라고 불렸다. 숙종 정축년에 돌아가셨으며, 향년 칠십팔이었다. 왕의推恩으로 뇌조랑으로 추증하였다.
독음
한성보응인의증손자음목사수원자광해경신생자유여석호이해정송시열문인음사지가선경주부윤습봉청원군택택성리학식고맥소변기사수무변엄의정여기자배하소집부동시칭한지부자숙종정축졸년칠십팔추은증뇌판
의미
한성보(1601~1702)는 조선后期的 성리학 학자이자 정치가로, 송시열의 문인이다. 벼슬은 가선까지 올랐고 경주부윤을 지냈으며, 清原君 작위를 계승했다. 학식이 뛰어나 성리학을 탐구했고, 스승이冤罪를 당한 것을辩明하기 위해 상소하여 논증이 엄격하고 의리가 바르게 논증하였다. 아들 한배하와는 학술적 관점에서意見이 달랐으며, 당대에 한氏 부자로 불렸다. 숙종 정축년(1709?)에 사망하고 향년 78세로 뇌조랑으로 추증되었다.文中에서 䕃는 省略(略)의 오기일 가능성이 있다.
원문
韓聖輔應寅曾孫䕃牧使壽遠子光海庚申生字汝碩號理隱亭宋時烈門人䕃仕止嘉善慶州府尹襲封淸原君揬賾性理學識高邁䟽辨其師受誣辭嚴義正與其子配夏所執不同時称韓之父子肅宗丁丑卒年七十八推恩贈吏判[주:系子配夏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한성보 / 韓聖輔, confidence=1.0
- person: 송시열 / 宋時烈, confidence=1.0
- person: 수원 / 壽遠, confidence=0.9
- person: 배하 / 配夏, confidence=1.0
- person: 응인 / 應寅, confidence=0.9
- place: 경주 / 慶州, confidence=1.0
- office: 음목사 / 監牧使, confidence=0.8
- office: 가선 / 嘉善, confidence=1.0
- title: 청원군 / 淸原君, confidence=1.0
- term: 성리학 / 性理學, confidence=1.0
- term: 택택 / 揬賾, confidence=0.5
불확실한 어휘
- 䕃(省略의 오기로 추정)
- 揬賾(택택으로 읽으나 정확한 뜻 불확실)
- 䟽辨(소변으로 읽으나 상소로辨明之意로 해석)
- 丁丑(숙종 丁丑년이 1689년인지 확인 필요)
이만웅
- 기사 ID:
20037_026_005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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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6&aa15no=026&aa20no=20037_026_0054
한글 번역
이만웅은 전의 사람으로, 아버지의 직첩으로 동추에 보임되었다. 행정의 아들이며, 행원의 종자(조카) 서경재의 서사(女婿)이다. 경신(1680)년에 태어났으며, 자(字)는 심포이고 호는 몽탄이다. 한 번 좋은 경관을 꿈속에서 놀아본 뒤, 나중에 청강의 유적을 얻었는데 그곳이 바로 꿈속의 경계였다. 그래서 꿈속의 호수라는 뜻으로 몽탄(夢灘)을 호로 삼았다. 인조 기묘년(1627)에 진사(進士)에 급제하고, 효종 경인년(1650)에 참봉(三奉)으로 증광(增廣)에 올랐다. 삼사(三司)의 전랑관을 두루 역임하고 정통(通政)에 이르러 벼슬이 그쳤다. 해백(海伯)은 윤선도의 음란하고 배덕한 풍습을 한때 논박한 일이 있으며, 이단상(李端相)·김수항(金壽恒)과 교유하면서 문장과 행실이 서로 막론이지 못 가렸다. (孙德寿는 아래를 볼 것, 현손 이육회는 아래를 볼 것)
독음
이만웅전의인음동추행정자동원종자유경재서광해경신생자심포호몽탄상몽유일승경후득청강유적내몽중경야인이미탄위호인조기묘,进士,효종경인,이삼봉등증광,력과삼사전랑관,지통정,해백상론윤선도음벽지습,여이단상,김수항교호,문장행정상백속
의미
조선中期文臣 이만웅(1627~?, 전의출신)의生平이다. 음동(蔭同) 벼슬로 출사하여 삼사 전랑관을 두루 역임하고 통정대부로 그쳤다. 윤선도의 사상을 비판한 해백과 가깝게 지냈으며, 당대 문장가 이단상·김수항과 어울렸다. 호의 유래가 꿈에서 본 경관을 실제에서 발견한 데 있다.
원문
李萬雄全義人蔭同樞行健子行遠從子徐景霌婿光海庚申生字心甫號夢灘甞夢遊一勝境後得淸江遺址乃夢中境也仍以夢灘為號仁祖己卯[주:二十]進士孝宗庚寅以參奉登增廣歴三司銓郞官止通政海伯甞論尹善道滛悖之習與李端相金壽恒交好而文章行義相伯仲[주:孫德壽見下玄孫翊會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만웅 / 李萬雄, confidence=1.0
- person: 전의 / 全義, confidence=1.0
- person: 서경재 / 徐景霌, confidence=1.0
- person: 윤선도 / 尹善道, confidence=1.0
- person: 이단상 / 李端相, confidence=1.0
- person: 김수항 / 金壽恒, confidence=1.0
- person: 손덕수 / 孫德壽, confidence=0.9
- person: 이육회 / 李翊會, confidence=0.9
- place: 청강 / 淸江, confidence=0.9
- office: 참봉 / 參奉, confidence=1.0
- term: 음동(,父亲의 직첩으로 벼슬함) / 蔭同, confidence=1.0
- term: 삼사전랑관 / 三司銓郞官, confidence=0.9
- term: 통정(,정6품 벼슬) / 通政, confidence=1.0
- term: 증광(,임금의 특명으로 베푼 시험) / 增廣,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行健子·行遠
- 海伯
- 從子徐景霌婿
- 與李端相金壽恒交好而文章行義相伯仲
이무
- 기사 ID:
20037_026_005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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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무는 두식 내지는 아우 이무와 아꼐 최래길을 사위로 삼았다. 광해군 시절 신유년에 태어났으며, 자는 자삼이고 호는 낙계이다. 효종 신묘년에 진사가 되었고, 계사년에 등예성에서 배례를 마쳤다. 역임한 관직은 한림원춘방의 관원으로서, 현종 갑진년에掌令으로 재직하면서 소서許積를抨撃하고 등용을 건의하다가拜相議論的过程中左遷되었다. 또한 소인으로論難하여旨意를忤逆하여 이에10년간 폐직되어 관직은知敦寧에 그쳤다. 서사耆社에 들어갔고, 숙종 계사년에 사망하였으며,寿命은93세였다. 추식推息을追贈하여吏判를 내렸고, 시호는荘靖이다.
독음
이무는 두제최래길서광해신유생자자삼호낙계효종신묘진사벽계사등예성역한림춘방현종갑진이장령소척허적배상지소인론지의忤旨十年폐속관지知돈녕입서사숙종계사 졸년구십삼추식증리판시장정
의미
조선 시대 문신 이무의 졸력이다. 효종 신묘년 진사로 벼슬길에 올라 한림원 춘방 등을 역임하고 현종 갑진년掌令으로 재직하던 중佞臣許積를斥退할 것을 상소하다 소인論人物로帝意를忤逆하여十年간 폐직되었다. 이후知敦寧朴으로 끝났으나 서사耆社에 들어갔고, 숙종대에93세로 사망한 뒤追贈되어吏判가 되고荘靖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원문
李堥垕弟崔來吉婿光海辛酉生字子三號駱溪孝宗辛卯進士䏈壁癸巳登謁聖歴翰林春坊顯宗甲辰以掌令䟽斥許積拜相至以小人論之以是忤旨十年廢錮官止知敦寕入耆社肅宗癸巳卒年九十三推息贈吏判謚荘靖[주:子箕翊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무 / 李堥, confidence=1.0
- person: 최래길 / 崔來吉, confidence=0.9
- place: 광해 / 光海, confidence=0.9
- person: 허적 / 許積, confidence=0.95
- term: 장령 / 掌令, confidence=0.95
- term: 배상 / 拜相, confidence=0.85
- term: 지도녕 / 知敦寧, confidence=0.9
- term: 서사 / 耆社, confidence=0.95
- office: 한림원춘방 / 翰林春坊, confidence=0.95
- term: 추식 / 推息, confidence=0.8
- term: 리판 / 吏判, confidence=0.95
- term: 장정 / 荘靖,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이성석
- 기사 ID:
20037_026_005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57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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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14:19:37.42837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6&aa15no=026&aa20no=20037_026_0057
한글 번역
이성석은 성종 때 윤순의 사위가 되었다. 자는 종시, 호는 양촌이다. 송시열의 문인이다. 갑인년의 화가 일어나자 동문생들과 함께 세 번에 걸쳐 상소를 올려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스승이 연해(嶺海)의 건극(栫棘)에 유배되자 학업을 버리고 돌아가 양주(楊州)의 녹양촌(淸修篤行)으로 들어가 성품을 닦으며 바른 행실을 하였다. 나이才刚刚 마흔에 세상을 떠났다.
독음
이성석 성종 후 윤순지서 자 종시 호 양촌 송시열문인 갑인화작 여 동문생 삼상장소송완급 기사 건극영해 기업계 주귀양주 녹양촌 청수독행 년재 사십이 졸
의미
조선 시대 문인 이성석의 행적을 수록한 기문이다. 이성석은 송시열의 문인으로서 갑인년(1674년)의 붕당 관련 사건에 연루되었다. 스승 송시열이 유배되자 학업을 버리고 고향 녹양촌으로 돌아가 清修篤行으로 일생을 마무리하였으며, 40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다.
원문
李聖碩成宗后尹順之婿字仲時號楊村宋時烈門人甲寅禍作與同門生三上章訟寃及其師栫棘嶺海棄擧業走歸楊州綠楊村淸修篤行年才四十而卒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성석 / 李聖碩, confidence=1.0
- person: 윤순 / 尹順之, confidence=1.0
- person: 송시열 / 宋時烈, confidence=1.0
- person: 건극영해(유배지) / 栫棘嶺海, confidence=0.85
- place: 양주 녹양촌 / 楊州綠楊村, confidence=0.95
- event: 갑인화(1674년 인조반정 관련 사건) / 甲寅禍, confidence=0.9
- term: 청수독행(성품 닦고 바른 행실 함) / 淸修篤行, confidence=0.9
- office: 사위 / 婿, confidence=1.0
- term: 자(별칭) / 字, confidence=1.0
- term: 호(예호) / 號,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三上章의 구체적 횟수와 상소 내용이 원문만으로 명확하지 않음
- 栫棘嶺海가 유배 지명의 구체적 위치와 해당 인물이 누구인지 불확실함
이단석
- 기사 ID:
20037_026_005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59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7T00:26:56.14148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6&aa15no=026&aa20no=20037_026_0059
한글 번역
이단석은 경명군忱의 6대 손자로, 집의齊衡의 아들이었다. 인조 을축년에 태어나 字를 유初라 하고 호를 쌍호당이라 하였다. 효종 경인년에도 태어나 현종 경자년에 증광시에 합격하여 양사를 두루 역임하였다. 대간에서 여러 차례 강하게 논쟁을 벌였고, 승지가 되어 김수흥을 구원하다가 삭탈관직되었다. 여러 차례 주郡에 제수되었으나 사(四)번이나 번任에 오르면서 부임하거나 하지 않거나 하였다. 얼음과 쵸칭나무 같은 절개를 가졌으며, 대신들이 문무의 재능을 칭찬하여 천거하니 북병사가 되었다. 남구만이 청백하고 고절한 절개에 구제와 혜택이 있어야 한다고 아뢌다. 숙종 신미년에 사망하여 향년 67세이고, 청렴한 절개로 이조판서에게 추증되었다. 형제가 문과에 급제하고 아우 明錫은 權을 승承하였다… 6대손 学承… 증손 周爀은 벼슬이 병사에 머물렀으나 역逆을 호호호하여 보직되었다.
독음
이단석 경명군忱 육세손 집의 제갈평 아들 인조 을축년에 태어남 자 유초 호 쌍호당 효종 경인년에 태어남… 현종 경자에 증광에 급제하여 양사를 역임하였으며, 대간에서 많이 강론하여, 승지를 거쳐 김수흥을 구원하다가 삭탈관직되었다. 여러 번 주군에 제수되었으나 사번에 오가며 부임하거나 하지 않거나 하였으며, 얼음과 쵸칭나무 같은 절개가 있었다. 대신들이 문무의 재능으로 천거하여 북병사에 발탁되었으며, 남구만이 청백하고 고절한 바에 응하여 구제할 것이 있다고 아뢌다. 숙종 신미년에 사망하여 향년 67세이며, 청廉절로 이조판서에게 추증되었다. 형제가 문과에 급제하였고 아우 명석은 권을 승承하였다… 육대손 학承… 증손 주흨은 관직이 병사에 그쳤으나 역逆을 호호호하여 보직되었다.
의미
조선后期的 文武兼備한 관료 李端錫의 약력이다. 경명군忱(성종 아들)의 6대손으로 태어나 6代에 걸쳐 家系를 정리하였으며, 현종대에 증광시에 합격하여 양사를 역임하고 대간에서 비판 활동을 벌였다. 승지 재직 중 김수흥 구원 사건으로 숙고 탄핵을 받아 삭탈관직되었으나, 청백한 절개로 재기되어 북병사에 발탁되었다. 숙종 신미년에 사망하여 향년 67세에 추증되었다.文中의 역逆 관련 부분은 의미 전달이 불분명하여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
원문
李端錫景明君[주:成宗子]忱六世孫執義齊衡子仁祖乙丑生字有初號雙壺堂孝宗庚寅生貟顯宗庚子登增廣歴兩司以臺諌多抗論以承旨救金壽興被削黜屡除州郡四拜藩任或赴或不赴有氷蘗之操廷臣以文武才薦拜北兵使南九萬奏以淸白苦節宜有賙恤肅宗辛未卒年六十七以㢘節贈吏判兄弟文科弟明錫承權[주:從子義淵見下六世孫學承見下]曽孫周爀官止兵使以護逆見枳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단석 / 李端錫, confidence=0.95
- person: 경명군忱 / 景明君忱, confidence=0.95
- person: 김수흥 / 金壽興, confidence=0.9
- person: 남구만 / 南九萬, confidence=0.9
- person: 이명석 / 李明錫, confidence=0.9
- person: 주흨 / 周爀, confidence=0.85
- place: 북병사 / 北兵使, confidence=0.9
- office: 이조판서 / 吏判, confidence=0.9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0.9
- office: 대간 / 臺諫, confidence=0.9
- term: 빙녁 / 氷蘗,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이익상
- 기사 ID:
20037_026_006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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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익상은 아우 이익제(柳琳)의 사위이다. 인조 을축년(1625)에 태어나 자는 질경이고 호는 매간이다. 효종 신묘년(1651)에 진사(進士)에 급제하고, 기해년(1659)에 감제(登柑製)에 급제하여 한림서인, 선전관, 부학예(副學藝), 제리(提吏), 반관 등을 역임하고 좌참찬에서 그만두었다. 풍류와 문雅으로 가문을 이어갔으며, 관직에 있을 때에는 풍골(風節)로 자립하였다. 어려서 윤활과 친교를 맺었으나 나중에 그 마음술을 미워하고 끊었다. 윤활에게 거의 화를 입을 뻔하였다. 숙종 신미년(1691)에 사망하고 향년 67세이며, 시호는 문희이다.
독음
이익상유상제유림서인조을축생자질경호매간효종신묘진장기해등감제력한림서인선전관부학예제리반판관지좌참찬풍류문아세기가업당관이풍절자지소여윤활선후악기심술이절지위기소중기불측숙종신미졸년육십칠시문희
의미
조선中期의 문신 이익상의 행적을 적은 기사이다. 어려서 윤활과 교류하였다가 그를 제거하려는 윤활의 계략으로 위기를 겪기도 하였다. 풍류적이고 문雅한 성격으로 가문을 이어갔으며, 풍골을 지키며 관직을 수행한 인물이다. 좌참찬까지 올라가 그만두었고, 향년 67세에 사망하여 문희의 시호를 받았다.文中 ‘登柑製’는 기해년(1659)에 친시(親試)에 급제한 것을 가리키며, ‘提吏’는 학예提吏의 준말로 보존다.
원문
李翊相有相弟柳琳婿仁祖乙丑生字弼卿號梅磵孝宗辛卯進壮己亥登柑製歴翰林舍人銓郞副學藝提吏判官止左參䝺風流文雅世其家業當官以風節自持少與尹鑴善後惡其心術而絶之為其所中幾不測肅宗辛未卒年六十七謚文僖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익상 / 李翊相, confidence=1.0
- person: 유림 / 柳琳, confidence=0.9
- person: 윤활 / 尹鑴, confidence=1.0
- person: 인조 / 仁祖, confidence=1.0
- person: 효종 / 孝宗, confidence=1.0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1.0
- year: 을축 / 乙丑, confidence=0.95
- year: 신묘 / 辛卯, confidence=0.95
- year: 기해 / 己亥, confidence=0.95
- year: 신미 / 辛未, confidence=0.95
- office: 한림서인 / 翰林舍人, confidence=0.9
- office: 선전관 / 銓郞, confidence=0.9
- office: 부학 / 副學, confidence=0.85
- office: 좌참찬 / 左參䝺, confidence=0.9
- term: 등감제 / 登柑製, confidence=0.85
- term: 문희 / 文僖,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이지익
- 기사 ID:
20037_026_006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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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지익은 춘원손(都正孫)으로서, 아버지는 서로(李椘老 : 호는 연강)이다. 인조 을축년에 태어났고, 자는 여휘이며 호는 계촌이다. 무자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효종 임진년에 증광시에 합격하여 등용되었다. 한림과 오도백관을 역임하고 예랑에서 관직을 그쳤다. 수사(耆社)에 들어갔다. 언로가 완고하고 바른 것으로 시론과 서로 맞지 않아 세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으므로,世人都稱頌他의 절操을 지킨다. 직임肅宗 갑술년에 일흔 살로 사망하였다. 현손 경운은 아래를 참조. 증손 영휘는 문승지 윤성의 아들이자, 자는 사보이고 초명永福이다.英祖 계축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정사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등용되었다. 관직은 승지에서 그쳤다. 세자西行시에 임금이 물어 ‘네가 반드시 세자를 보았느냐’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반드시 보았소’라하였다.某년이 지난 후欺罔之罪를追正하여銀臺에서 時事를 논하다가海島에荐棘되었고, 1년余에 도에서 졸하였다. 임금이 이를 듣고 특별히 애석히 여기시어 관직을 회복하도록 명하고 그에게 아들이 있느냐고 물었다.
독음
이지익춘원손도정서로[주:호연강]자인조을축생자여휘호계촌무자진사효종임진등증광력한림오도백관전기리즈입기사언의준정불합시론견오어세인칭절직숙종갑술칠십년[주:현손경운견하]증손영휘문승지윤身子字사보초명영복영조계축진사정사등문과관전기승지세자서행시상문왈여정독세자부대왈정독모년후추정기망지재은대론시사천격해도유년방달도졸상문지적탄식명복관문기유자
의미
이지익은 조선 시대 완고한 성품으로知制誥와修撰 등을 역임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현손 이경운 아래에 기록되어 있다. 증손 이영휘는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가 되었으나, 세자西行시에 세자를 반드시 보았다고 진술한 것이欺罔之罪로問責되어銀臺에서海島로 유배되었다가 도중 사망하였다. 후에 임금이 그를追慕하여 복관시켰다.
원문
李之翼春元孫都正椘老[주:號烟江]子仁祖乙丑生字汝輝號桂村戊子進士孝宗壬辰登增廣歴翰林五道伯官止禮判入耆社言議峻正不合時論見忤於世人称節直肅宗甲戌卒年七十[주:玄孫庚運見下]曽孫永暉文承旨潤身子字士報初名永福英祖癸丑進士丁巳登文科官止承旨世子西行時上問曰汝定覩世子否對曰定覩某年後追正欺罔之罪在銀臺論時事荐棘海島逾年放遝道卒上聞之悼惜命復官問其有子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지익 / 李之翼, confidence=0.95
- person: 이로 / 李椘老, confidence=0.85
- person: 연강 / 烟江, confidence=0.9
- person: 여휘 / 汝輝, confidence=0.95
- person: 계촌 / 桂村, confidence=0.9
- person: 이영휘 / 李永暉, confidence=0.9
- person: 경운 / 庚運, confidence=0.85
- office: 도정 / 都正, confidence=0.85
- office: 한림 / 翰林, confidence=0.9
- office: 오도백 / 五道伯, confidence=0.8
- office: 예판 / 禮判, confidence=0.9
- office: 기사 / 耆社, confidence=0.9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0.95
- office: 은대 / 銀臺, confidence=0.9
- term: 증광 / 增廣, confidence=0.9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천극 / 荐棘, confidence=0.75
불확실한 어휘
어진익
- 기사 ID:
20037_026_006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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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4T10:32:55.96595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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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어진익은 세공의 7대손이다. 아버지는 한명자이고, 인조 을축년(1625)에 태어났다. 자는 익지, 호는 겸재이다. 효종 임진년(1652)의 진사이고, 현종 임인년(1662)에 호조佐郞으로 정시관에 오르며 벼슬이 통정監司에 이르렀다. 예전에 윤鑴을 이웃집에서 만나 옷자락을 털어 일어나 그를 대했으나, 이 일로 흉계를 맺어 체포되어 먼 땅으로 유배되었다.持平에 있을 때 황제의 명에 불손하여 황国外的 변경으로 귀양 갔으나, 재상의 구원을 받아 다시 관직에 쓸렸다. 숙종 갑자(1684)년에 사망하고, 향년 60세였다.[주: 형제가 문과에 합격했고, 형 어진說은 병정官至이고, 손자 어유봉과 어유귀는 아래를 볼 것]
독음
어진익세공칠세손음판관한명자인조을축생자유익지호겸재효종임진진사현종임인호조좌랑등정시관지통정감사당윤혁을이웃집에서만나옷자락을털며일어나이것으로인해흉계를생겨몰려배족됨치평에서황旨를거스러황제에불손하여황외로귀양가다가이렇게인해재상에게구출되어복관됨숙종갑자에사망하고향년60세[주:형제가문과에 합격했고형 어진설은병정孙어유봉과어유귀는아래를참조]
의미
어진익(1625~1684)은 조선后期的 관료로, 효종 연간 진사 급제 후 호조佐郞으로 벼슬길에 올랐다. 그러나 윤鑴과의 불화으로 유배되었다가 재상의 도움으로 복관했으나 숙종 갑자년에 사망했다. 겸재라는 호를 사용했고 향년 60세를 살았다. 형 어진說과 문과 합격 친족이 있었으며, 손자 유봉·유귀도 이름을 남겼다.
원문
魚震翼世恭七世孫蔭判官漢明子仁祖乙丑生字翼之號謙齋孝宗壬辰進士顯宗壬寅以戶曺佐郞登庭試官止通政監司甞遇尹鑴於隣舍拂衣而起以此生釁至被徒配以持平忤旨竄荒裔因相臣救蒙敍肅宗甲子卒年六十[주:兄弟文科兄震說兵正孫有鳳有龜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어진익 / 魚震翼, confidence=0.95
- person: 윤혁 / 尹鑴, confidence=0.85
- person: 어진설 / 魚震說, confidence=0.9
- person: 유봉 / 有鳳, confidence=0.85
- person: 유귀 / 有龜, confidence=0.85
- place: 황외 변경 / 荒裔, confidence=0.75
- office: 판관 / 判官, confidence=0.85
- office: 치평 / 持平, confidence=0.85
- office: 감사 / 監司, confidence=0.85
- office: 정시 / 庭試, confidence=0.8
- work: 겸재 / 謙齋, confidence=0.9
- term: 유배 / 徒配, confidence=0.8
- term: 투방 / 徒配, confidence=0.7
- term: 생혈(흉계) / 生釁, confidence=0.75
- term: 몽서(복관) / 蒙敍, confidence=0.75
불확실한 어휘
- 徒配(투방 혹은 유배)
- 蒙敍(몽서의 정확한 뜻)
- 拂衣而起(옷자락을 털며 일어남의 구체적 의도)
정시술
- 기사 ID:
20037_026_006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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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14:20:53.65949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6&aa15no=026&aa20no=20037_026_0065
한글 번역
정시述은 옥형의 5세손이다. 표자는 여치이고, 호는 어은이다. 현종 연간에 행실이 뛰어나 천거를 받아 교관이 되었으며, 벼슬은 전簿에서 멈추었다. 보학에 밝아 그 저작으로 『동국만성보』가 있다.
독음
정시술 옥형 오세손 자 여치 호 어은 현종조 천행의 제관 관지 전簿 명습 보학 소저 유 동국만성보
의미
조선 현종 때 인물 정시述의略傳이다. 옥형의5세손으로, 자는 여치, 호는 어은이다. 현종 때 천거되어教官이 되었으나 벼슬은 전簿에 그쳤다. 씨족 계보학을 깊이 익혀 『동국만성보』를 저술한 인물이다.
원문
丁時述玉亨五世孫字汝痴號寓隱顯宗朝薦行誼除教官官止典簿明習譜學所著有東國萬姓譜
엔티티 후보
- person: 정시술 / 丁時述, confidence=1.0
- person: 옥형 / 玉亨, confidence=1.0
- person: 여치 / 汝痴, confidence=1.0
- person: 어은 / 寓隱, confidence=1.0
- period: 현종조 / 顯宗朝, confidence=1.0
- office: 교관 / 教官, confidence=0.9
- office: 전簿 / 典簿, confidence=0.8
- work: 동국만성보 / 東國萬姓譜,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玉亨(옥형) - 원문에는 ‘玉亨’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인명인지 확인 필요
조여수
- 기사 ID:
20037_026_006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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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조여수는 풍양 사람이었고, 관직은 삼판(三判)에 이르렀으며, 아들은 즉자(濈子)이다. 자는 신부(愼甫)이다. 효종(孝宗) 신묘(辛卯)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원(翰林院) 벼슬을 두루 지내고 관직은 참판(參判)에서 그쳤다. 과중뇌연(過重牢宴)과 회방연(回榜宴)을 치렀고, 향년 85세에 세상을 떠났다.
독음
조여수 풍양인문 삼판즐자 자신부 효종 신묘 등문과 역한림 관지삼판 과중뇌연 회방연 년팔십오 졸
의미
조선 시대 관료 조여수의 행적을 적은 짧은 기록이다. 경기도 양주(풍양) 출신으로 1655년(효종 신묘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원 벼슬을 거쳐 참판(三판의 하나)으로 관직 생활을 마쳤다. 과거 급제 후 거행한 중쇄연(과중뇌연)과 회방연을 언급한 것은 그가 과거에 합격한 해와 같은 나이에 비슷한 연회를 다시 베푼 사실을 뜻한다. 85세까지 생존하여 세상을 떠났다.
원문
趙汝秀豊壤人文參判濈子字愼甫孝宗辛卯登文科歴翰林官止參判過重牢宴回榜宴年八十五卒
엔티티 후보
- person: 조여수 / 趙汝秀, confidence=1.0
- place: 풍양(양주) / 豊壤, confidence=0.95
- office: 참판 / 參判, confidence=1.0
- office: 한림원 / 翰林,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회방연 / 回榜宴, confidence=0.8
- term: 과중뇌연 / 過重牢宴,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주동백
- 기사 ID:
20037_026_006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68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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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14:21:29.1638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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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주동백의 이름은 상으로, 본래 유생이었다. 현종 임자년(1652년)에 상소하여, 명나라 신종 황제의 자신을 구원해준 은혜를 들어 대마도(관서)에 신위를 모시는 사당을 세울 것을 청愿하였다. 임금이 대신들을 소집하여 예전 전당에 그 상소를 보여주며, ‘이 일은 번복하기 어렵겠으니 여러 대관과 직접 의논하겠다’고 말하였다. 영의정 정태화가 ‘섬국에 사당을 세우는 것은 형식상 불가할 뿐 아니라, 오늘날의 사정으로 보아 더욱 실행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결국 이 일은 파기되었다.
독음
주동백상은 원유생이니 현종 임자년에 상소하여 말하기를 대명신종황제의 재조의 은혜를 원하고 관서에 사당을 세울 것을 청하였습니다. 상이 대신들을 소집하여 전당에 그 상소를 보여주며 말하기를 이 일은 되돌리기 어렵고诸位와 함께 의논하고자 한다 하였습니다. 영의정 정태화가 말하기를 번국에 사당을 세우는 것은 형체상 할 수 없을 뿐더러 오늘의 형세로 보아 더욱 시행하기 어려운 바가 있나이다 하였습니다. 마침내 일이 그르게 되었습니다.
의미
조선 현종 연간에 유생 출신의 주동백이 임진왜란 때 조선의 구원에 기여한 명나라 신종 황제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대마도에 사당을 세울 것을 상소하였다. 영의정 정태화를 비롯해 신하들이 번국(일본)에 사당 건립은 형식적·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는 의견을 제기하였고, 결국 이 건의는 채택되지 않았다. 이는 조선이 일본과의 외교적 관계를 고려하여 명나라 관련 독자적 추모 사업을慎重하게 다루었음을 보여준다.
원문
周東伯祥原儒生也顯宗壬子上䟽言大明神宗皇帝再造之恩請立廟于関西上召大臣僃堂示其䟽曰此事難以回啓欲與諸公面議之領議政鄭太和曰藩國立廟非但事軆不可且今日事勢尤有所難行者事遂寢
엔티티 후보
- person: 주동백 / 周東伯, confidence=0.95
- person: 상 / 祥, confidence=0.9
- person: 현종 / 顯宗, confidence=0.95
- person: 정태화 / 鄭太和, confidence=0.95
- place: 관서(대마도) / 関西, confidence=0.85
- person: 대명신종황제(명나라 신종) / 大明神宗皇帝, confidence=0.95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0.95
- term: 번국(일본) / 藩國, confidence=0.9
- term: 재조의 은혜(재구원의 은) / 再造之恩,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김총
- 기사 ID:
20037_026_006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69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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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14:22:38.47313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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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김종은 의성 출신으로, 아버지는 광술이다. 자는 명보, 호는 우헌이다. 효종 임진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현종 경자년에 명경과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나아가 교리 등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 최종적으로 사간 대부까지 올랐으나, 일본来接倭( 일본 외교관과의 접촉을 담당하는 관직)을 역임하다가 그 직임 속에서 사망하였다.
독음
금종 의성인 광술자 자 명보 호 우헌 효종 임진 진사 현종 경자등 명경과 척 교리관 지 사감 이접왜관 사
의미
조선中期의 文臣 김종(金璁)의 간단한 行蹟이다. 효종 때 진사에 합격하고 현종 때 명경과에 급제하여 교리 등 궁중의 文翰 관직을 지냈으며, 최종 관직은 사간대부였다. 외교적으로 일본 接倭官을 맡아 수행하다가 그 직임에서 세상을 떠난 것으로 파악된다.
원문
金璁義城人光述子字明寶號迃軒孝宗壬辰進士顯宗庚子登明經科歴校理官止司諌以接倭官死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종 / 金璁, confidence=0.95
- place: 의성 / 義城, confidence=0.98
- person: 광술 / 光述, confidence=0.92
- term: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0.85
- term: 교리 / 校理, confidence=0.88
- term: 사간 / 司諫, confidence=0.88
- term: 접왜관 / 接倭官,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接倭官(왜인접대관)의 구체적 직제 명칭과 근무 형태
- 壬辰進士와 明經科 급제의 정확한 시기와 방식
홍만형
- 기사 ID:
20037_026_007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71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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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6&aa15no=026&aa20no=20037_026_0071
한글 번역
홍만형은 홍만용의 아우로, 인조 때 계유년에 태어났다. 자는 숙평, 호는 약헌이다. 무자년에 16세의 나이로 진사가 되었다. 현종 임인년에 증광시에 합격하였는데, 같은 해에 형 만용이 차례로 합격하였다. 한림원과 전랑을 거쳤으며, 병오년에 성균관 직강이 되어 중시 시험에 합격하였다(만용도 같은 과에서 1위를 하였다). 명나라 사람 임인관을 어물초에 압송한 것에 대해 상소를 올렸는데, 그 문사가 엄격하고 의리가 바랐으며, 기억력이 비상하고, 문장이 우아 아름다웠다. 용모는 마치 한식 선비와 같았다. 관직은 교리에서 그쳤고, 경술년에 38세로 사망하였다.
독음
홍만형 만용 제 인조 계유생 자 숙평 호 약헌 무자(십육) 진사 현종 임인등 증광(동년 만용 계과) 녕 한림 전랑 병오 성균 직강으로 중시등(만용 동반 거괴) 명 인 임인관 지 압송 어물초 지 소 자 엄 의 정 기 억 절륜 문사 완려 의용 여한식 관 지 교리 경술 졸 년 38
의미
조선 시대 문신 홍만형의 행적을 기록한 기사이다. 만형은 어려서 16세에 진사 급제를 하고 현종대에 증광시에 합격하였다. 형 만용과 함께 학업에 뛰어났으며, 한림원과 전랑 등을 역임하고 성균관 직강으로 중시에도 합격하였다. 특히 명나라 사람 임인관을 어물초에 압송한 사건에 대해 상소를 올린 것이 주목할 만한데, 문장이 엄정하고 기억력이 비상하였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교리 직에서 그쳐 38세에 요절하였다. 한자 이름은 홍만형이고, 호는 약헌이다.
원문
洪萬衡萬容弟仁祖癸酉生字叔平號藥軒戊子[주:十六]進士顯宗壬寅登增廣[주:同年萬容繼科]歴翰林銓郞丙午以成均直講登重試[주:萬容同榜居魁]皇明人林寅觀之押送于魚也草䟽辭嚴義正記性絶倫文詞婉麗儀容如寒士官止校理庚戌卒年三十八
엔티티 후보
- person: 홍만형 / 洪萬衡, confidence=1.0
- person: 홍만용 / 洪萬容, confidence=1.0
- person: 임인관 / 林寅觀, confidence=1.0
- year: 인조 계유 / 仁祖癸酉, confidence=1.0
- year: 현종 임인 / 顯宗壬寅, confidence=1.0
- year: 경술 / 庚戌, confidence=1.0
- year: 무자 / 戊子, confidence=1.0
- office: 한림 / 翰林, confidence=1.0
- office: 전랑 / 銓郞, confidence=1.0
- office: 성균관 직강 / 成均直講, confidence=1.0
- office: 교리 / 校理, confidence=1.0
- place: 어물초 / 魚也草, confidence=0.8
- term: 자 / 字, confidence=1.0
- term: 호 / 號, confidence=1.0
- term: 중시 / 重試, confidence=1.0
- term: 증광 / 增廣,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이지렴
- 기사 ID:
20037_026_007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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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14:22:35.57783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6&aa15no=026&aa20no=20037_026_0073
한글 번역
이지렴은 부위(벼슬) 서옥자의 손자 춘원의 종손이며, 인조 무진년에 태어났다. 자는 양이이고 호는 치암이다. 김집의 문인으로서 학식과 행실이 있어 천거되어 동교에 제수받았으나 취하지 않았고, 부율에 나가 사면한 뒤 곧 천거를 면했으며, 두 고을의 군윤으로 보내심을 받았다. 견이 아들을 보내어 만나고자 하였으나 가지 않았으며, 견이 와서 찾아오자 의리로 책망하였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위명의 선물도 받지 않았고, 허묵의 질문에도 응하지 않았다. 칙지를 받들어 만언소를 올렸으니 이는 영구히 만세에 쓸 법도가 될 수 있었다. 숙종 임신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향년 예순다섯이었다.
독음
이지렴 부위 서옥자의 춘원 종손 인조 무진년에 태어나 자는 양이요 호는 치암이니 김집의 문인이다. 학식이 있어 천거되어 동교를 제수받았으나 가지 아니하고 부율에 나가 사면한 뒤 곧 천거를 면하고 이읍윤으로 보내심을 받았다. 견이 아들을 보내어 만나고자 하였으나 가지 않았으며, 견이 와서 찾아오매 의리로 책망하였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위명의 뇌물을 받지도 않았고 허묵의 질문에도 응하지 않았다. 칙旨를 받들어 만언소를 올리니 이는 영구히 쓸 만세의 장정이 될 수 있었다. 숙종 임신년에 죽으니 향년 예순다섯이었다.
의미
이지렴의 생애를 적은 기사이다. 김집의 문인으로서 학식이 있었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았고, 두 고을의 군윤을 지냈다. 선조·인조 연간에 활동한 학인이며, 만언소를 올려 칙지에 응하는 등 학문과 풍골로 인정받았다. 숙종 임신년에 향년 65세로 세상을 떠났다.
원문
李之濂副尉椘玉子春元從孫仁祖戊辰生字養而號耻菴金集門人有學行薦授童教不就拜副率出謝旋免薦除二邑尹鑴送子要見不徃鑴來訪責以理義不受趙威明之饋不答許穆之問應旨上萬言䟽可作永世章程肅宗壬申卒年六十五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지렴 / 李之濂, confidence=1.0
- person: 서옥자 / 椘玉, confidence=0.9
- person: 인조 / 仁祖, confidence=1.0
- person: 김집 / 金集, confidence=1.0
- person: 조위명 / 趙威明, confidence=1.0
- person: 허묵 / 許穆, confidence=1.0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1.0
- office: 부위 / 副尉, confidence=1.0
- office: 동교 / 童教, confidence=1.0
- office: 부율 / 副率, confidence=1.0
- office: 읍윤 / 邑尹, confidence=1.0
- term: 자 / 字, confidence=1.0
- term: 호 / 號, confidence=1.0
- term: 만언소 / 萬言䟽, confidence=0.9
- term: 장정 / 章程, confidence=1.0
- place: 이읍 / 二邑,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椘玉子春元從孫仁祖戊辰生字養而號耻菴金集門人有學行薦授童教不就拜副率出謝旋免薦除二邑尹鑴送子要見不徃鑴來訪責以理義不受趙威明之饋不答許穆之問應旨上萬言䟽可作永世章程肅宗壬申卒年六十五 - 전체 문장이 지나치게 긴데 분절과 주어-목적어 관계에 불확실성이 있음. 특히鑴이 인명인지 확인 필요.
조원기
- 기사 ID:
20037_026_007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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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조원기는 이시형의 아들 이경석의 사위로서 인조 경오년에 태어나 자는 면경, 호는 우봉이다. 효종 경인년에 생원이 되고 현종 경자년에 증광시에 급제하여 아우 조창기와 같은 급제榜에 올랐다. 삼사의 관직을 두루 거쳐 通政大夫에 이르렀고, 동래부사를 역임했다. [주: 세 형제가 모두 문과에 합격했는데, 조창기는 사간, 조亨期는 기백을 지냈다.] 아우 조현기는 김좌명의 사위로서 자는 양경, 호는 일봉이고, 음사로 벼슬하여 부사에 이르렀다. 식견이 깊고 시무에 정통했다. 조현기의 아들 조정서는 글씨에 뛰어났으며, 음사로 벼슬하여 부여현감이 되었다. 조정강도 글씨에 능하여 음사로 벼슬하여 工郞에 이르렀다. 형제들은 모두 松雪體를 배웠으며, [주: 조정서의 아들 明履는 아래 참조, 종조카 明鼎은 아래 참조]
독음
조원기희진손음군수시형자이경석서인조경오생자면경호우봉효종경인생원현종경자등증광여제창기동방역삼사관지통정해백제삼형제문과창기사간제형기기백제현기김좌명서자양경호일봉음사관지부사연박시무현기기자정서선필법음사지부여현감정강선필법음사지공랑형제구학송설체정서자명려견하종자명정견하
의미
조선 시대 문신 조원기에 대한 기록이다. 인조(1626)년에 태어나 현종(1666)년 증광시에 급제하여 삼사 관직을 두루 거쳐 통정大夫에 이르렀다. 동래부사를 역임했으며, 조창기, 조현기 등 세 형제가 모두 과거에 합격한 것으로 유명하다. 조현기는 김좌명의 사위이고, 후손인 조정서와 조정강은 서예에 뛰어났다. 형제들은 모두 송설체 서체를 수련했다.
원문
趙遠期希進孫䕃郡守時馨子李景奭婿仁祖庚午生字勉卿號尤峯孝宗庚寅生員顯宗庚子登增廣與弟昌期同榜歴三司官止通政海伯[주:三兄弟文科昌期司諌弟亨期圻伯]弟顯期金佐明婿字楊卿號一峯䕃仕官止府使淵博時務顯期子正緖善筆法蔭仕止扶餘縣監正綱善筆法蔭仕止工郞兄弟俱學松雪軆[주:正緖子明履見下從子明鼎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조원기 / 趙遠期, confidence=1.0
- person: 이경석 / 李景奭, confidence=1.0
- person: 조창기 / 昌期, confidence=1.0
- person: 조현기 / 顯期, confidence=1.0
- person: 조형기 / 亨期, confidence=1.0
- person: 김좌명 / 金佐明, confidence=1.0
- person: 조정서 / 正緖, confidence=1.0
- person: 조정강 / 正綱, confidence=1.0
- person: 명려 / 明履, confidence=1.0
- person: 명정 / 明鼎, confidence=1.0
- person: 이시형 / 時馨, confidence=0.9
- place: 부여 / 扶餘, confidence=1.0
- place: 동래부사 / 海伯, confidence=0.95
- office: 통정대부 / 通政, confidence=0.9
- office: 부사 / 府使, confidence=1.0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1.0
- office: 공랑 / 工郞, confidence=0.95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term: 증광시 / 增廣, confidence=1.0
- term: 삼사 / 三司, confidence=0.95
- term: 송설체 / 松雪體,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亨期의 한자 독음
- 주석의圻伯 해석
- 海伯의 직위 명칭 구체적 범위
서문상
- 기사 ID:
20037_026_007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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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4T01:28:33.1546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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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서문상은 경제의의 손자이고, 진부사 정기의 아들 이시발의 외손이며, 이명한의 사위였다. 자는 국익, 호는 송파이다. 인조 무자년(1649년)에进士에 급제하고, 현종 무신년(1688년)에 사과로 되어科举 시험에서 1등을 했다. 사관·관료·관찰사를 두루 역임하고 병의로 끝났다. 숙종 을묘년(1715년)에 사망하여 마흔여덟 살이었다. 세 형제 중 문과에 급제한 아우 서문중과 서문유는 아래를 참조. 아들 서종泰, 손자 명균, 증손 지修으로 삼대에 걸쳐 재상에 이르고, 현손 유신, 5세손 영보, 6세손 기순으로 삼대에 걸쳐 文衡을 맡았다.
독음
서문상이 경제의의 손자이며, 진부사 정기의 아들 이시발의 외손으로서 이명한의 사위였다. 자는 국익, 호는 송파이다. 인조 무자년에进士에 급제하고, 현종 무신년에 사과로 되어魁科에 올랐다. 삼사관을 두루 거쳐 삼사관에 이르렀으며, 병의에 그쳤다. 숙종 을묘년에 사망하여享年 사십팔이었다. 주: 세 형제 중 문과에 급제한 아우 서문중과 서문유는 아래를 볼 것. 아들 서종泰, 손자 명균, 증손 지修으로서 삼세에 이어 재상에 들어갔고, 현손 유신, 오세손 영보, 륙세손 기순으로서 삼세에 이어 문형을 맡았다.
의미
조선中期의 文臣 서문상의 약력이다. 인조 무자년(1649년)进士 급제 후 현종 무신년(1688년) 1등으로 등용되어 삼사관을 두루 거쳐 병의에 이르렀으며, 숙종 을묘년(1715년)에 마흔여덟 살로 사망했다.兄弟 중 문과 급제자 서문중·서문유와同一 계열이며, 아들 서종泰에서 현손 유신에 이르기까지 6대에 걸쳐 재상과 文衡을 배출한 명문 가문이다. ‘景霌’는 景宗을避諱한 것으로 추정된다.
원문
徐文尙景霌孫進府使貞履子李時發外孫李明漢婿字國益號松坡仁祖戊子[주:十九]進士顯宗戊申以司果登魁科歴三司官止兵議肅宗乙卯卒年四十八[주:三兄弟文科弟文重文裕見下子宗泰孫命均曽孫志修連三世入相玄孫有臣五世孫榮輔六世孫箕淳連三世典文衡]
엔티티 후보
- person: 서문상 / 徐文尙, confidence=1.0
- person: 경제(경종) / 景霌, confidence=0.9
- person: 이시발 / 李時發, confidence=1.0
- person: 이명한 / 李明漢, confidence=1.0
- person: 서문중 / 徐文重, confidence=1.0
- person: 서문유 / 徐文裕, confidence=1.0
- person: 이종태(서종泰) / 李宗泰, confidence=1.0
- person: 이명균 / 李命均, confidence=1.0
- person: 이지修 / 李志修, confidence=1.0
- person: 이유신 / 李有臣, confidence=1.0
- person: 영보 / 李榮輔, confidence=1.0
- person: 기순 / 李箕淳, confidence=1.0
- place: 송파 / 松坡, confidence=0.8
- office: 진부사 / 進府使, confidence=1.0
- office: 사과 / 司果, confidence=1.0
- office: 병의 / 兵議, confidence=1.0
- office: 문형 / 文衡, confidence=1.0
- term: 무자(1649년) / 戊子, confidence=1.0
- term: 무신(1688년) / 戊申, confidence=1.0
- term: 을묘(1715년) / 乙卯, confidence=1.0
- term: 괴과(1등) / 魁科, confidence=1.0
- term: 삼사관 / 三司官,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景霌의 정확한 계통(경종避諱 여부)
- 進府使의 관직 品秩
- 三兄弟文科의 구체적所指
조종저
- 기사 ID:
20037_026_007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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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4T01:28:37.73659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6&aa15no=026&aa20no=20037_026_0078
한글 번역
조종저는 중여자의 자는 경叔이고 호는 곤재였다. 나이가 들어晚年에 이르러서는 경기도 남하군에居住하면서 호를 南岳으로 바꾸었다. 일곱 살에文章을 지을 수 있었다. 현종 임인년에教官에 任用되고, 임자년에 別試에 합격하여 三司와 春坊의 전랑을 역임한 뒤 通政室로 승진했다. 明人 林寅觀을 포박하여 연(燕京)로 압송한 문제에 격분하여 수천 言의 상소를 써서 그不妥함을大力으로陈述하였고, 또한 별도의 계책策을 갖춘 자루를 갖추어 올렸다. 숙종 경오년에死去하니 향년 六十세였다.
독음
조종저는 중여자의 자는 경叔이고 호는 곤재이다. 늦게에居于 남하에 이르러 호를 南岳으로 고쳤다. 일곱 살에 문장을 지을 수 있었다. 현종 기유년에 교관에 제수되고, 임자년에 별시(別試)에 오르니 삼사와 춘방의 전랑을 지내고 通政室로 승진했다. 明人 林寅觀을 포박하여 연(燕)으로 압송한 일에, 분분히数千言의 상소를 써서 그 불가한 점을 극력 진술하였으며, 또한 별도의 계책을 갖추어 올렸다. 숙종 경오년에 졸하니 향년 六十이었다.
의미
조선 시대 관료 조종저(1609~1690)의 간단한 行狀이다. 7세에 재능을 보이고 현종대教官에 任用된 뒤 중앙 관청을 두루 역임하며 通政室로 승진했다. 명나라 사람 林寅觀을 포박하여燕으로 압송한 사건에 대해数千言 상소를 써서 적극 반대하고 별도의 구체적 계책을 갖춘 점이 특기된다. 숙종 경오년(1690)에 60세로 사망했다.
원문
趙宗著重呂子字褧叔號艮齋晩居終南下改號南岳七歲䏻屬文顯宗己酉除教官壬子登别試歴三司春坊銓郞陞通政室明人林寅觀之縛送于燕也奮筆草䟽数千言極陳其不可且具别紙計䇿肅宗庚午卒年六十
엔티티 후보
- person: 조종저 / 趙宗著, confidence=1.0
- person: 임인관 / 林寅觀, confidence=0.9
- place: 연(북경) / 燕, confidence=1.0
- place: 남악 / 南岳, confidence=0.9
- office: 삼사 / 三司, confidence=0.8
- office: 춘방 / 春坊, confidence=0.8
- office: 통정실 / 通政室, confidence=0.7
- term: 속문(문장을 지음) / 屬文, confidence=1.0
- term: 별시 / 別試, confidence=1.0
- term: 전랑 / 銓郞, confidence=0.9
- term: 명인(명나라 사람) / 明人,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褧(경叔) - 원문 자형이 불분명하여 璟叔로 볼 가능성도 있음
- 通政室 - 通政寺의 오기 가능성 있음
- 三司의 구체적所指이 명시되지 않음
정재희
- 기사 ID:
20037_026_007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79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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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4T01:28:47.11712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6&aa15no=026&aa20no=20037_026_0079
한글 번역
정재희는 살피어 관(察訪)에 이르렀고, 지화자(至和子)는 숙부 지화후의 뒤를 이은 자였다. 인조 신미년에 태어나 자는 자순, 호는 양촌, 또 용호라 했다. 현종 경자에 명경과에 급제하여 관직은 숭록대부 예조판서에서 그쳤다. 팔매복을 뽑았으나 퇴직하지 않았다. 부자가 연이어 기사사에 들어갔다. 숙종 신미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향년 八십일.
독음
정재희 살피어 관원 지화자 위 숙부 지화후 인조 신미생 자 자순 호 양촌 우용호 현종 경자 명경과에 오르관 직 숭록례판 팔매복 퇴립 불기 부자 연입 기사사 숙종 신미 졸년 팔십일
의미
정재희는 인조 연간인 신미년(1621)에 태어나 현종 경자(1660)에 명경과에 급제하여 숭록대부 예조판서까지 오른 조선后期的文武官이다. 지화자라는 호는 숙부 정知和의 뒤를 이은 자라는 뜻이다. 팔매복을 뽑았으나 벼슬을 내려놓지 않았고, 부자 모두 기사사에 들어갔다. 숙종 신미(1701)년에 사망, 향년 81세.
원문
鄭載禧以察訪至和子為叔父知和后仁祖辛未生字子純號陽村又龍湖顯宗庚子登明經科官止崇祿禮判八枚卜退休不起父子連入耆社肅宗辛未卒年八十一
엔티티 후보
- person: 정재희 / 鄭載禧, confidence=1.0
- person: 지화자 / 至和子, confidence=1.0
- person: 지화후 / 知和后, confidence=1.0
- person: 자순 / 子純, confidence=1.0
- person: 양촌 / 陽村, confidence=1.0
- person: 용호 / 龍湖, confidence=1.0
- office: 살피어 관 / 察訪, confidence=1.0
- office: 숭록대부 / 崇祿, confidence=1.0
- office: 예조판서 / 禮判, confidence=1.0
- term: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1.0
- term: 기사사 / 耆社, confidence=1.0
- term: 팔매복 / 八枚卜, confidence=0.8
- term: 퇴직불기 / 退休不起,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김만균
- 기사 ID:
20037_026_008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80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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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4T01:29:15.95264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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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김만균은 김익희(金益熙)의 아들이며, 이덕수(李德洙)의 외손자이고, 이일상(李一相)의 사위이다. 인조 신미년에 태어났으며, 자는 정평(正平), 호는 이호(梨湖)이며, 은휴당(恩休堂)이라고도 했다. 효종 임진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갑오년에庭試에 급제하여 한림원수찬을 역임했다. 벼슬아지로서 상서하여 신덕왕후를 종묘에 함께 모시기를 청했고, 다시 상서하여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을 종사(從祀)로 모시기를 청했다. 벼슬은 승지에서 그쳤으며, 숙종 을묘년에 사망하여 향년 사십오세에 이조판서로 추증되었다. 아들 진옥은 아래를 참고한다.
독음
금만균 익희자 이덕수 외손 이일상서 인조 신미생 자 정평 호 이호 우은휴당 효종 임진진사 갑오등정시 력 한림서인 소청 신덕왕후 부묘 우소청 이이성혼 종사 관지 승지 숙종 을묘졸 년 사십오 증 이판 자 진옥견하
의미
조선 시대 문신 김만균의略傳이다. 효종 연간에 진사와庭試에 합격하고 한림서인을 지냈으며, 신덕왕후 종묘배향과 이이·성혼의 종사 등을 상서로 청한 관료였다. 벼슬은 승지에 그쳤으나 사후 이조판서로 추증되었고, 이일상의 사위로서 이덕수의 외손으로 출생 배경이 화려했다. 향년 사십오세에 사망.
원문
金萬均益熙子李德洙外孫李一相婿仁祖辛未生字正平號梨湖又恩休堂孝宗壬辰進士甲午登庭試歴翰林舍人䟽請神德王后祔廟又䟽請李珥成渾從祀官止承旨肅宗乙卯卒年四十五贈吏判子[주:鎭玉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김만균 / 金萬均, confidence=1.0
- person: 김익희 / 金益熙, confidence=1.0
- person: 이덕수 / 李德洙, confidence=1.0
- person: 이일상 / 李一相, confidence=1.0
- person: 이이 / 李珥, confidence=1.0
- person: 성혼 / 成渾, confidence=1.0
- person: 신덕왕후 / 神德王后, confidence=1.0
- person: 진옥 / 鎭玉, confidence=1.0
- place: 이호(호) / 梨湖, confidence=0.8
- place: 은휴당(호) / 恩休堂, confidence=0.8
- office: 한림서인 / 翰林舍人, confidence=1.0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1.0
- office: 이조판서 / 吏判, confidence=1.0
- term: 정시(궁중 시험) / 庭試, confidence=0.9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term: 종사 / 從祀, confidence=1.0
- term: 부묘 / 祔廟,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주:文中의 주(注)가 원문 주석인지 편집자 주인지 불분명
- 梨湖·恩休堂이 호인지 별칭인지 미확인
박신규
- 기사 ID:
20037_026_008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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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4T01:29:01.24094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6&aa15no=026&aa20no=20037_026_0081
한글 번역
박신규는 문재겸서(文僉樞)의 아들이자 정원(鼎元)의 종손(從孫)이다. 황을(黃㦿)의 매부(妹夫)이다. 인조(仁祖) 신미년(辛未年)에 태어났고, 효종(孝宗) 임진년(壬辰年)에 진사(進士)에 합격했으며, 현종(顯宗) 경자년(庚子年)에 명경과(明經科)에 올랐다. 관력을 삼사(三司)의 참려(參吏)로 시작하여崇政戶判로 나갔다. 성품이 냉정한 것으로 청백리(淸白吏)라 일컬어졌고, 서예(書藝)에 능했다. 숙종(肅宗) 정묘년(丁卯年)에 사망하여 향년 57세였다. 영상의 직을 증직(贈職)받고, 시호는 청숙(淸肅)이다.
독음
박신규 문재첨서계영자정원종손황을매부인조신미생효종임진진사현종경자등명경과력삼사참려관지승정호판이성혹칭청백리선필법숙종정묘졸년오십칠증영상謚청숙[주:형제문과제진규감사]
의미
朴信圭는 인조 9년(1631)생으로 효종 3년(1652) 진사, 현종 1년(1660) 명경과에 합격하여 삼사 참려관을 지내고崇政戶判로 관직 생활을 마감했다. 성품이 냉정하고 청렴하여 청백리로 불렸으며 서예에도 능했다. 숙종 13년(1687)에 사망, 향년 57세에 영상을 추증받고 청숙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동생 박진규도 문과 출신으로 감사를 지냈다.
원문
朴信圭文僉樞啓榮子鼎元從孫黃㦿妹夫仁祖辛未生孝宗壬辰進士顯宗庚子登明經科歴三司參䝺官止崇政戶判以性酷稱淸白吏善筆法肅宗丁卯卒年五十七贈領相謚淸肅[주:兄弟文科弟鎭圭監司]
엔티티 후보
- person: 박신규 / 朴信圭, confidence=1.0
- person: 정원 / 鼎元, confidence=0.9
- person: 황을 / 黃㦿, confidence=0.85
- person: 박진규 / 朴鎭圭, confidence=0.9
- term: 문재겸서 / 文僉樞, confidence=0.85
- term: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1.0
- term: 승정호판 / 崇政戶判, confidence=0.9
- term: 청백리 / 淸白吏, confidence=1.0
- term: 영상 / 領相, confidence=1.0
- term: 청숙 / 淸肅, confidence=1.0
- term: 삼사 / 三司, confidence=0.95
- term: 참려 / 參吏, confidence=0.85
- year: 신미 / 辛未, confidence=0.95
- year: 임진 / 壬辰, confidence=0.95
- year: 경자 / 庚子, confidence=0.95
- year: 정묘 / 丁卯,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文僉樞: 정확한 벼슬명칭 확인 필요
- 參吏: 삼사 소속 직위명 정확도 낮음
- 黃㦿: 해당 인물의 한자명 확인 필요
김윤장
- 기사 ID:
20037_026_008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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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김윤장은 상주 출신으로, 홍준의 아들이며 풍기에 거처하였다. 현종 경자(1640년)의 진사에 합격하여 같은 해 명경과에 급제하였다. 관직은 마지막으로 거산찰방에 이르렀으며, 㢄으로 인하여 세상을 떠났다.
독음
김윤장 상주인 홍준자 거풍기 현종 경자진사 동년등명경과 관지거산찰방 이㢄서
의미
김윤장의生平을 수록한 기사이다. 상주 출신이며 홍준의 아들로 풍기에 거주하였다. 현종(1640년) 경자년에 진사와 명경과에 동시에 급제하였다. 벼슬은 거산찰방에서 멈추었으며, 㢄(약혼자나 특정 상황 관련 것으로 보이나 전사 불명확)로 인해 사망하였다.
원문
金潤璋尙州人弘俊子居豊基顯宗庚子進士同年登明經科官止居山察訪以㢄逝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윤장 / 金潤璋, confidence=1.0
- place: 상주 / 尙州, confidence=1.0
- person: 홍준 / 弘俊, confidence=1.0
- place: 풍기 / 豊基, confidence=1.0
- office: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1.0
- office: 거산찰방 / 居山察訪,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유하익
- 기사 ID:
20037_026_008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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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유하익은 기군수 찰의 아들 대기종(大棋從)의 증손으로, 목대흠의 맹서이다. 자는 사겸이다. 효종 갑오년(1654년)에進士에 급제하고, 현종 경자년(1660년)에 증광(增廣)에 합격하였다. 삼사(三司)의 전랑관을 역임하고 예관 판사(禮判)에 이르렀다. 서법을 잘 알았다. 숙종 기사년(1689년)에 윤전(尹鑴)의 억울한 사건을 힘써申诉하여 마침내 복관과 제사를 하사받게 되었다. 심자(沈梓)·민黯(閔黯)·권대재(權大載)·이우정(李宇鼎) 등의 공문과 함께 금수항(金壽恒)과 송시열(宋時烈)의 처형을 요청하였다.
독음
유하익 기군수 찰의 아들 대기종(大棋從)의 증손 목대흠의 맹서 자 사겸 효종 갑오(甲午)進士 현종 경자(庚子) 등증광(增廣) 역임 삼사 전랑관官至 예판(禮判) 서예에 능함 숙종 기사(己巳)에 힘써 윤전(尹鑴)의 원한 사정을 말하여 복관·사제(賜祭)에 이르렀으며, 심자(沈梓)·민黯(閔黯)·권대재(權大載)·이우정(李宇鼎) 등의 조목(疏請)과 함께 금수항(金壽恒)·송시열(宋時烈)을 처형해줄 것을 청하다
의미
유하익은 조선后期的文臣으로, 효종과 현종대에 进士에 급제하여 관료를 역임하고 예관 판사까지 올랐다. 서예에 능했으며, 숙종대 윤전(尹鑴)의 억울한 옥사를 위해 힘써 고변하여 복관과 제사特例를 받았다. 이후 민시앙·송시열 관련 논쟁에서 금수항·송시열 처형을 요청한 정계 인물이다.
원문
兪夏益䕃郡守柲子大棋從曽孫睦大欽婿字士謙孝宗甲午進士顯宗庚子登增廣歴三司銓郞官止禮判善書法肅宗己巳力訟尹鑴寃狀至於復官賜祭與沈梓閔黯權大載李宇鼎等䟽請金壽恒宋時烈賜死
엔티티 후보
- person: 유하익 / 俞夏益, confidence=1.0
- person: 기군수 찰의 아들 대기종 / 柲子大棋從, confidence=0.9
- person: 목대흠 / 睦大欽, confidence=0.9
- person: 윤전 / 尹鑴, confidence=1.0
- person: 심자 / 沈梓, confidence=0.9
- person: 민암 / 閔黯, confidence=0.9
- person: 권대재 / 權大載, confidence=0.9
- person: 이우정 / 李宇鼎, confidence=0.9
- person: 금수항 / 金壽恒, confidence=1.0
- person: 송시열 / 宋時烈, confidence=1.0
- office: 삼사 전랑관 / 三司銓郞, confidence=0.85
- office: 예관 판사 / 禮判, confidence=0.9
- term: 증광 / 增廣, confidence=0.9
- term: 서법 / 書法,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기군수 찰의 정확한 직위와 가문 관계
- 삼사 전랑관의 구체적 관직 명칭
- 䕃郡守의 정확한 표기 의미
조근
- 기사 ID:
20037_026_008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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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조근은 함안 사람으로, 아버지는 봉원이다. 인조 신미년(1621년)에 태어났고, 자는 복형, 호는 손菴이다. 송시열의 문인이다. 효종 경인년(1650년)에 스물두 살의 나이로 생원이 되었다. 현종 병오년(1666년)에 별시에서 합격하여 삼사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고 교리에서 관작이 멈추었다. 문학으로 이름을 알렸다. 평소 발언이 정직하여奸당에게 불쾌감을 사서 화를 입었다. 숙종 기미년(1679년)에 송상敏의 사건에 연좌되어 형벌을 받아 유배되었다가 특사받았으나, 오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주: 종자 영복은 아래를 볼 것. 서제인 송은 무과에 합격했다. 경종 신임년에 화를 당했다.
독음
조근 함안인 봉원자 인조 신미생 자 복형 호 손菴 송시열 문인 효종 경인년 이십 생원 현종 병오년 별시 등력 삼사관 자지 교리 이문학 저명平日지지 정직견오 於奸당고 및 어화 숙종 기미년 이송상민 사연연 형배 몽우 미구 졸 종자 영복 형하 서제 송등 무과 경종 신임 화
의미
조선 시대 문신 조근의 짧은 전기이다. 송시열의 문인으로서 문학으로 명성을 얻었으나, 정직한 발언으로奸당에게得罪하여 숙종대에 송상敏의 연좌제에 휘말려 유배되었다가 석방받았으나 오래지 않아 사망했다. 서제인 조송이 무과에 합격한 것도 기록되었다.
원문
趙根咸安人逢源子仁祖辛未生字復亨號損菴宋時烈門人孝宗庚寅[주:二十]生員顯宗丙午登别試歴三司官止校理以文學著名平日持論正直見忤於奸黨故及於禍肅宗己未以宋尙敏辭連刑配蒙宥未乆卒[주:從子榮福見下]庶弟松登武科景宗辛壬禍
엔티티 후보
- person: 조근 / 趙根, confidence=1.0
- person: 봉원 / 逢源, confidence=1.0
- person: 송시열 / 宋時烈, confidence=1.0
- person: 송상민 / 宋尙敏, confidence=1.0
- person: 영복 / 榮福, confidence=0.95
- person: 송 / 松, confidence=0.9
- place: 함안 / 咸安, confidence=1.0
- office: 교리 / 校理, confidence=1.0
- office: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term: 무과 / 武科, confidence=1.0
- term: 별시 / 別試, confidence=0.95
- term: 삼사 / 三司, confidence=0.9
- term: 형배 / 刑配, confidence=0.95
- term: 몽우 / 蒙宥, confidence=0.9
- term: 서제 / 庶弟,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손菴의 정확한 호 표기
- 경종 신임 화의 구체적 내용
- 三司官의 정확한 직역
윤경교
- 기사 ID:
20037_026_008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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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14:26:32.55085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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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윤경교는 집의 벼슬을 지냈다. 변자의 손자 순거의 종손이다. 인조 임신년에 태어나 자는 양일이다. 효종 정유년에 사마가 되었다. 현종 계묘년에 명경과에 급제하여 부학관 등을 역임하고 금백에서 그쳤다. (주: 형제는 문과에 급제한 아우 윤성교가 양사 부사에 이르렀다.)
독음
윤경교 집의 변자 순거 종손 인조 임신년생 자 양일 효종 정유 사마 현종 계묘 등명경과 력 부학관 지 금백
의미
조선 시대 관료 윤경교의 행적을 수록한 기사이다. 윤경교는 인조 임신년(1621년)에 태어나 효종 정유년에 사마에 합격하고 현종 계묘년(1669년)에 명경과에 급제하였다. 부학관 등의 벼슬을 역임했으나 최종 직위는 금백에 그쳤다. 동생 윤성교는 문과에 급제하여 양사 부사에 올랐다.
원문
尹敬敎執義抃子舜擧從孫仁祖壬申生字養一孝宗丁酉司馬顯宗癸卯登明經科歴副學官止錦伯[주:兄弟文科弟誠教两司府使]
엔티티 후보
- person: 윤경교 / 尹敬敎, confidence=1.0
- person: 변 / 抃, confidence=0.8
- person: 순거 / 舜擧, confidence=0.9
- person: 윤성교 / 誠教, confidence=1.0
- period: 인조 임신년 / 仁祖壬申, confidence=1.0
- period: 효종 정유년 / 孝宗丁酉, confidence=1.0
- period: 현종 계묘년 / 顯宗癸卯, confidence=1.0
- office: 집의 / 執義, confidence=1.0
- office: 사마 / 司馬, confidence=1.0
- office: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1.0
- office: 부학관 / 副學官, confidence=1.0
- office: 금백 / 錦伯, confidence=1.0
- office: 부사 / 府使, confidence=0.9
- term: 종손 / 從孫,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抃子舜擧從孫의 구체적 관계 표현이 단편적이어서 종손 관계의 정확한 해석이 불확실함
이선원
- 기사 ID:
20037_026_008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87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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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4T01:29:18.38458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6&aa15no=026&aa20no=20037_026_0087
한글 번역
이선원은 형의 여섯 대 손으로, 현령(군부사관) 관하의 아들 이행원의 외손이며, 조형의 사위이다. 인조 임신년에 태어나 字는 경부이다. 열 살余에 관첩시를 지어 「납차천거 세첨 성사해다」라는句를 넣었는데, 정두경이 크게 칭찬하였다. 현종 기유년에 정시에 올라 两사관리를 두루 거쳐 至하여 부리에 그쳤다. [주: 형제는 文科弟로, 선유는 아래를 참조하라]
독음
이선원 형육세손 현령관하자 이행원 외손 조형서인조 임신생 자경부십여세 부 관첩시 납차천거세첨성사해다지 정두경 대칭지 현종 기유등정식력량사관지지부리[주:형제文科제선유견하]
의미
이선원은 문관 가문 출신으로, 열 살 때 관첩시를 지어 문장가 정두경의 칭찬을 받았고, 현종대에 정시에 합격하여 两사(의금부·홍문관) 관리를 두루 역임했으나 결국 부리(군관)에 그쳤다. 형제는 과거 시험에 합격한 선유이다. 열 살 아이의 시句인 「납차천거 세첨 성사해다」은 千渠에 물을 가늘게 보태면 사방 四海가 된다라는 뉘앙스로, 비범한 재주를 보여준 작품이다.
원문
李善源荇六世孫縣令觀夏子李行逺外孫趙珩婿仁祖壬申生字敬甫十餘歲賦觀漲詩納此千渠細添成四海多之句鄭斗卿大穪之顯宗己酉登庭試歴两司官止府吏[주:兄弟文科弟善漙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선원 / 李善源, confidence=1.0
- person: 이행원 / 李行逺, confidence=1.0
- person: 조형 / 趙珩, confidence=1.0
- person: 정두경 / 鄭斗卿, confidence=1.0
- person: 이선유 / 李善漙, confidence=1.0
- person: 형 / 荇, confidence=1.0
- work: 관첩시 / 觀漲詩, confidence=1.0
- term: 정시 / 庭試, confidence=1.0
- term: 양사 / 两司, confidence=1.0
- term: 부리 / 府吏, confidence=1.0
- place: 인조 / 仁祖, confidence=1.0
- place: 현종 / 顯宗,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손지
- 기사 ID:
20037_026_008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88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14:26:20.17004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6&aa15no=026&aa20no=20037_026_0088
한글 번역
손지는 구례출신으로, 아버지 유조의 아들이다. 본관은 손씨이고, 아들의 자는 보성군이다. 효종 임진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에 나아가 시관이 되었으나, 군수 직에 그쳤다. 원수에게 찔려 살해당했다.
독음
손지 구례인 유조자 자不详 효종 임진등별 시관지군수 위수인작살
의미
손지(孫志)는 조선中期 구례출신 인물이다. 효종 임진년(1522년 또는 이후 임진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진출했으나, 시관 직위에서 진급하지 못하고 군수에 그쳤다. 결국 원수에게 살해를 당했다. 짧은 기록으로 평생이 극적으로 마무리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원문
孫志求禮人裕祖子字士尙孝宗壬辰登别試官止郡守為讐人斫殺
엔티티 후보
- person: 손지 / 孫志, confidence=1.0
- place: 구례 / 求禮, confidence=1.0
- person: 유조 / 裕祖, confidence=1.0
- person: 보성군 / 士尙, confidence=0.8
- era: 효종 / 孝宗, confidence=1.0
- year: 임진년 / 壬辰, confidence=0.9
- office: 시관 / 試官, confidence=1.0
- office: 군수 / 郡守,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士尙 - ‘보성군’으로 읽으나 원문 누락이나 오기 가능성 있음, 정확한 字를 단정하기 어려움
- 登别 - ‘등별’로 읽으나 등용(登用)과 혼동 가능성 있음, 과거 급제 직전의 절차를 의미하는 듯하나 정확한 절차명 확인 필요
송창영
- 기사 ID:
20037_026_008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89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7T00:29:54.53061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6&aa15no=026&aa20no=20037_026_0089
한글 번역
송창영은 고증손(먼 후손)이다. 아들의 이름은 유전자이다. 인조 계유년(1629년)에 태어났고, 자(字)는 한경이며, 전주에 거처한다. 효종 정유년(1657)에 명경과에 급제하였다. 관직은 참봉에서 그쳤다. 기사사에 들어갔다. 아우의 이름은 성이다. 숙종 기묘년(1699)에 증광에 합격하여, 피부(皮封)를 제위(除位)하여 노비가 되었다.
독음
송창영 고증손 유전자 인조 계유생 자 한경 거전주 효종 정유등명경과 관지참봉 입기사사 제성 숙종 기묘증광 이피부 제위노
의미
송창영은 인조 연간(1629년)에 태어난 인물로 효종 연간(1657년)에 명경과에 합격하여 과거에 진출하였다. 최종 관직은 참봉이었고 이후 기사사에 가입하였다. 그의 아우 송성은 숙종 기묘년(1699년)에 증광에 합격하였으나, 피부(皮封)를 제거당하여 노비 신분으로 전락하였다. 조선 시대에 과거 급제와 관계없이 법적·신분적 문제로 인해 노비가 될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원문
宋昌英耉曽孫有佺子仁祖癸酉生字漢卿居全州孝宗丁酉登明經科官止參䝺入耆社弟晟肅宗己卯增廣以換皮封濟為奴
엔티티 후보
- person: 송창영 / 宋昌英, confidence=1.0
- person: 유전자 / 有佺子, confidence=0.9
- person: 성(송성) / 晟, confidence=0.9
- person: 한경(자) / 漢卿, confidence=1.0
- place: 전주 / 全州, confidence=1.0
- work: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1.0
- office: 참봉 / 參䝺, confidence=1.0
- term: 기사사 / 耆社, confidence=0.9
- term: 증광 / 增廣, confidence=0.9
- term: 피부 / 皮封,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 皮封(피부) - 관직이나 신분과 관련된 용어로 정확한 의미가 불분명하며 군사적 직책, 피부제도, 또는 신분적 특권을 의미할 수 있음
- 參䝺(참봉) - 원문에서 䝺는봉의 이체자로 판단됨
강유후
- 기사 ID:
20037_026_009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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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강유후는 종경손이고, 자는 여수이며, 호는 옥계이다. 인조대 에 과거에 급제하여 삼사를 두루 역임하고 관직은 감사에 이르렀다. 청백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60세에 사망하였다.
독음
강유후 종경손 자 여수 호 옥계 인조조 등문과 역삼사 관지감사 이청백서 년육십 졸
의미
조선 인조대의 문관 강유후의 이력이다. 과거 급제 후 삼사를 두루 관료 생활을 하였으나 최종 관직은 감사에 그쳤다. 청렴洁白한 것으로 이름이 났으며, 60세에 세상을 떠났다. 대략 17세기 인물로 추정된다.
원문
姜裕後宗慶孫字汝垂號玉溪仁祖朝登文科歴三司官止監司以淸白著年六十卒
엔티티 후보
- person: 강유후 / 姜裕後, confidence=1.0
- person: 종경손 / 宗慶孫, confidence=1.0
- person: 여수 / 汝垂, confidence=1.0
- term: 옥계 / 玉溪, confidence=1.0
- period: 인조조 / 仁祖朝, confidence=1.0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office: 삼사 / 三司, confidence=1.0
- office: 감사 / 監司, confidence=1.0
- term: 청백 / 淸白,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삼사는 홍문관·이조·병조 등 중앙 관서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나, 원문에서 구체적 직제 명시가 없어 관직 전개 과정이 불분명하다
임홍망
- 기사 ID:
20037_026_009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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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임홍망은 풍천 사람이니 진사 및제자. 㬇자[주: 조익의 문인]이다. 자는 유겸종, 6세손이요, 황이장의 매부이다. 인조 을해년에 태어나 자는 덕장, 호는 죽실이다. 아산에 거처하면서 송준길의 문인이 되었다. 효종 정유년에 생원이 되었고, 현종 병오년에 과거에 올랐다. 온천 별시 관직에 나아가 知中樞에서 그쳤다. 기사에 들어갔다. 숙종 을미년에 졸하니 여든한 살이었다. 시호는 효정이다.
독음
임홍망 풍천인 진사 하(주:조익문인) 자 유겸종 육세손 황이장 매부 인조 을해생 자 덕장 호 죽실 거아산 송준길문인 효종 정유생원 현종 병오등 온천별시관 지知중추 입기사 숙종 을미졸 년 팔십일 시효정
의미
임홍망(1609-1689)은 충남 풍천 출신으로, 송준길의 문인으로서 효종 때 생원, 현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동계학자 조익의 문인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아산에居住하며 죽실이라는 호를 사용했다. 온천 별시로 관직에 나아가 知中樞 벼슬까지 했으나 그만두었고, 이후 기사에 들어갔다. 숙종 을미년(1715?)에 81세로 사망하여 시호 효정을 받았다. 풍천 임씨 문중의 인물로 기록되었다.
원문
任弘望豊川人進士㬇[주:趙翼門人]子由謙從六世孫黃爾章妹夫仁祖乙亥生字德章號竹室居牙山宋浚吉門人孝宗丁酉生員顯宗丙午登溫泉别試官止知中樞入耆社肅宗乙未卒年八十一謚孝貞[주:孫徵夏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임홍망 / 任弘望, confidence=0.95
- person: 조익 / 趙翼, confidence=0.9
- person: 송준길 / 宋浚吉, confidence=0.95
- person: 황이장 / 黃爾章, confidence=0.9
- place: 풍천 / 豊川, confidence=0.95
- place: 아산 / 牙山, confidence=0.95
- office: 지중추 / 知中樞, confidence=0.85
- office: 기사 / 耆社, confidence=0.85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0.95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95
- term: 자 / 字, confidence=0.95
- term: 호 / 號, confidence=0.95
- term: 시호 / 謚,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㬇 (원문 오기 또는 희귀한 한자, 조익門人으로 해석)
정보연
- 기사 ID:
20037_026_009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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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정보연은闵光勋의 사위이다.仁祖丁丑년(1627)에 태어났고, 자는 만창이며 호는 태백산인이다. 또 우원림의 处士宋時烈의 문인이다.志尙이 清高하여, 어릴 때부터 嚴子陵의 절개를 가지고 항상 표연하게尘世를 벗어나고 싶어하였다. 어머니의命令으로 宋時烈에게贽를 바쳤다.皇朝가 격침된 소식을 듣고 나서 다시는擧業을 하지 않고, 깊은 곳에 조용히住在하여 태백산山谷에隐居하였다.山谷이幽深하여 임와 川과 새와 짐승의 즐거움이 있다. 가끔 높은 곳에 올라가시는咏歌하면 시詩의 소리가雲天까지 들렸다.顯宗 경자년(1660)에 졸었으니,향년이 스물네 살이었다. 그가 졸었을 때史氏는太白山人鄭普演卒이라고 기록하였다.宋時烈이 通察하고 아까워하여, 사람마다 이를孔門의顔淵에 비겼다.
독음
정보연양자민광훈서인조정축생자유만창호태백산인우원림처사송시열문인지상청고유엄자릉지절상유표연출진지모명집질어송시열자문황조지파불복위거업정거심처태백산산곡유심유림천조위지락왕왕등고즉영시성입운천현종경자졸년이십사기서서인서재태백산인정보연 졸송시열통식인비지공문안연
의미
정보연(1627-1660)은 宋時烈의 문인으로서, 어릴 때부터严子陵처럼清高한 节操를 추구하였다. 明亡 소식을 듣고 이후科擧를 끊고 태백산에隐居하여 시를 짓는 삶을 살았다. 스물네 살에死亡하자, 스승 宋時烈은顔淵을 빗대어 깊이 애도하였다.
원문
鄭普演瀁子閔光勳婿仁祖丁丑生字晩昌號太白山人又園林處士宋時烈門人志尙淸高幼時有嚴子陵之節常有飄然出塵之想以親命執贄於宋時烈自聞皇朝之破不復為擧業靜居深處太白山山谷幽深有林川鳥獸之樂徃徃登高卽詠歌詩聲入雲天顯宗庚子卒年二十四其卒也史氏書曰太白山人鄭普演卒宋時烈痛惜之人比之孔門顔淵
엔티티 후보
- person: 정보연 / 鄭普演, confidence=0.95
- person: 민광훈 / 闵光勋, confidence=0.95
- person: 송시열 / 宋時烈, confidence=0.98
- person: 정축(1627년) / 丁丑, confidence=0.98
- person: 엄자릉 / 严子陵, confidence=0.98
- person: 안연 / 颜渊, confidence=0.98
- place: 태백산 / 太白山, confidence=0.98
- term: 처사 / 处士, confidence=0.92
- term: 질(스승에게 바치는 初見禮) / 贄, confidence=0.88
- term: 거업(科擧 공부) / 擧業, confidence=0.95
- person: 경자(1660년) / 庚子, confidence=0.98
불확실한 어휘
- 瀁子閔光勳婿仁祖丁丑生字晩昌號太白山人又園林處士宋時烈門人志尙淸高幼時有嚴子陵之節常有飄然出塵之想以親命執贄於宋時烈自聞皇朝之破不復為擧業靜居深處太白山山谷幽深有林川鳥獸之樂徃徃登高卽詠歌詩聲入雲天顯宗庚子卒年二十四其卒也史氏書曰太白山人鄭普演卒宋時烈痛惜之人比之孔門顔淵
윤해거
- 기사 ID:
20037_026_009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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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윤해거는 파평 지역 사람으로, 서윤 힙의 아들 황의 종자이다. 자는 숙오이고 호는 불우당이다. 사람은 유순하고 평易하며 외모를 가다듬지 않는다. 어려서 거자 시험 과업을 배우기는 했으나不屑하게 여겨 버렸다. 가난천함에悲悲하지 않았고,名利에汲汲하지 않았다. 들과 전으로优游하며 세상을 마쳤다. 돌아가셨을 때 일흔 살이었다.
독음
윤해거 파평인 서윤힙 자황 종자 자 숙오 호 불우당 위인낙역 불수변폭 소습거자업 불선이기의 불질질어창천 불급급어명리 우수전야 이종 졸년칠십
의미
윤해거는 조선 시대 파평 출신 인물로, 서윤 힙의 조카이다. 어려서 과거 공부를不屑하게 여기고 버렸으며, 가난이나名利에 연연하지 않는 생활 태도를 가졌다. 들과 전야에서优游하며 자유롭게 살다 일흔 살에 세상을 떠났다.名利를 떠나田園에서 살았던隐居的人物의形象을 보여준다.
원문
尹海擧坡平人庶尹熻子煌從子字叔敖號不憂堂為人樂易不修邉幅少習擧子業不屑而棄之不戚戚於貧賤不汲汲於名利優游田野以終卒年七十
엔티티 후보
- person: 윤해거 / 尹海擧, confidence=1.0
- place: 파평 / 坡平, confidence=1.0
- person: 힙 / 熻, confidence=1.0
- person: 황 / 煌, confidence=1.0
- person: 자 숙오 / 字叔敖, confidence=1.0
- work: 불우당 / 不憂堂, confidence=1.0
- term: 거자업(과거 시험 공부를 뜻함) / 擧子業, confidence=0.9
- term: 변폭(외모 차림새) / 邊幅,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樂易 - 인물 성격 기술로 보이나 고유명사 가능성 있음, 원문 邉은 邊의 오기 또는 비표준写法
민주면
- 기사 ID:
20037_026_009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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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7T00:31:35.81131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6&aa15no=026&aa20no=20037_026_0098
한글 번역
민주면은 여흥 사람이다. 아버지는 진량(晉亮)이고, 아들은 장오(章五)이다. 인조 무자(1628)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효종 계사(1653)년에 으뜸으로 합격하였다. 합격 후 성전에 나아가 예배하고, 인천부사로 부임하였다. 관하에 자연도(紫燕島)가 있었다. 조정이 그것을 군사 보루로 삼고器械를 수리하고 설장을 늘리는 것으로 의논하였다. 길주목사로 제수되었으나赴任하기 전 천거로 특별 승진하여 광주부윤이 되었다. 남겨진 사무가 매우 중대하였으므로心力을 다 기울여方正이 시작되려는 때 일을 벌이다가罢職하였다. 기유(기유)에 경주부윤으로 제수되고 신편한『동경지』3권을 간행하였다.
독음
민주면 여흥인 진량자 자 장오 인조 무자 진사 효종 계사 괘 얼성 인 인천 부사 부 유 자연도 조가 의 의위 보장 선치 기계 다유 설장 위 길주 목사 미급 부 용천 초수 광주 부윤 이留下来 무 심중 진력 절 서 방 흥 이罢 기유 除 경주 부윤 간행 신찬 동경지 삼권
의미
민주면은 조선 시대 여흥 출신 관료로, 인조 무자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효종 계사년에 으뜸으로 합격하였다. 인천부사로 재임하면서 자연도(紫燕島)의 군사적 방어 가치를 조정에 건의하였고, 이후 천거로 광주부윤에 특별 승진하였다. 광주에서의 중대한 책임을 다하던 중方正方革의 시기에官職을 잃었다가 기유년에 경주부윤으로 다시 기용되어『동경지』3권을 편찬 간행한 인물이다. 생몰년은 불명이다.
원문
閔周冕驪興人晉亮子字章五仁祖戊子進士孝宗癸巳魁謁聖為仁川府使府有紫燕島朝家議以為保障繕治器械多有設張為吉州牧使未及赴用薦超授廣州府尹以留務甚重遂竭殚心力切緖方興而罷己酉除慶州府尹刊行新纂東京志三卷
엔티티 후보
- person: 민주면 / 閔周冕, confidence=0.95
- person: 진량 / 晉亮, confidence=0.9
- person: 장오 / 章五, confidence=0.95
- place: 여흥 / 驪興, confidence=0.95
- place: 인천 / 仁川, confidence=0.95
- place: 자연도 / 紫燕島, confidence=0.9
- place: 길주 / 吉州, confidence=0.95
- place: 광주 / 廣州, confidence=0.95
- place: 경주 / 慶州, confidence=0.95
- office: 부사 / 府使, confidence=0.95
- office: 목사 / 牧使, confidence=0.95
- office: 부윤 / 府尹, confidence=0.95
- work: 동경지 / 東京志, confidence=0.9
- term: 보장 / 保障, confidence=0.85
- term: 선치 기계 / 缮治器械, confidence=0.75
- term: 설장 / 設張, confidence=0.8
- term: 절서 방흥 / 切緖方興, confidence=0.7
- term: 괘 / 魁,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설장(設張)의 구체적 의미, 절서방흥(切緖方興)이方正方革의 약어인지 여부,罢직의 원인
성준설
- 기사 ID:
20037_026_009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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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5T04:42:33.40057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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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성준설은 자를 이문이라 하였다. 어릴 때 이춘원에게 수업을 받았다. 인조 임오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효종 신묘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벼슬은 승지에 이르렀으며, 홍주목사가 되어 3년을 머물러 치적이 뛰어났다. 의주부윤이 되어 임금님을 뵐 때 처음으로 간신의 폐단을 아뢰었다. 부임지에 이르러 江을 따라 초소를 설치하고 순찰하여 감시하였다.
독음
성준설 자이문 소종 이춘원 수업 인정 임오 진사효종 신묘등문과 관지 승지 위 홍주목사거 삼년 치적 탁저 위 의주부윤 벽견수진 간신지 폐 至府 연강 치숱 순경 이찰
의미
조선 시대 관료 성준설의 생애를 적은 기사이다. 이춘원에게 수학하고 인조 임오년(1642) 진사, 효종 신묘년(1651)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에 이르렀다. 홍주목사로서 3년간 뛰어난 치적을 올렸고, 의주부윤으로 있을 때 간신의 폐단을 임금에게 처음으로直言하였으며,边防을 강화하기 위해 江 지역에 초소를 두어 순찰 감시 체계를 갖추었다.
원문
成俊禼字以文少從李春元受業仁祖壬午進士孝宗辛卯登文科官止承旨為洪州牧使居三年治績卓著為義州府尹陛見首陳奸臣之獘至府沿江置戌巡警以察
엔티티 후보
- person: 성준설 / 成俊禼, confidence=1.0
- person: 이춘원 / 李春元, confidence=1.0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1.0
- place: 홍주 / 洪州, confidence=1.0
- office: 목사 / 牧使, confidence=1.0
- place: 의주 / 義州, confidence=1.0
- office: 부윤 / 府尹, confidence=1.0
- term: 임오 / 壬午, confidence=1.0
- term: 신묘 / 辛卯, confidence=1.0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벽견 / 陛見, confidence=0.9
- term: 숱 / 戌,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조가석
- 기사 ID:
20037_026_010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100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14:29:29.29657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6&aa15no=026&aa20no=20037_026_0100
한글 번역
조가석의 아우(弟) 자는 여길이며, 총명하고 뛰어나 다른 이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열 살에『사기』를 다섯 번 읽고 암송했는데 한 글자도 틀리지 않았다. 현종 경자(1690년)에 생원이 되고 같은 해에 문과에 급제했으며, 관직은 이조 참의에서 그쳤다. 한때 윤활의 군주가 없다는 불도한 죄를 꾸짖었다. 경신년(1720년) 개국할 때 승지에 오르렸으나, 당일 일부 비방的文章으로 名臣의 자리에 끼어드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사양하고 고사했다.
독음
조가석 궤석 아우 자 여길총영절륜십세 독사오변 이 배송 부착 일자 현종 경자 생원 동년등 문과 관지 이조 참의尝 척 윤활 무군 부도지 죄경신 개기 배 승지 즉일 미일 소점 명환 치야 고사
의미
조선后期的 文臣 조가석(자 여길)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史書를 빠르게 암송하는 천재적 재질을 보였다. 현종 경자년(1690년)에 생원·문과에 동시에 급제하여 이조 참의까지 올랐으며, 윤활의 역모를 비판한 바 있다. 경신년(1720년) 승지에 제수되었으나, 자신을 미화하는 文章으로 名臣 자리에 끼어드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사양했다고 한다. 주석에 따라 子泰億은 아래 조가석 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원문
趙嘉錫龜錫弟字汝吉聰穎絶倫十歲讀史五遍而背誦不錯一字顯宗庚子生員同年登文科官止吏曺參議甞斥尹鑴無君不道之罪庚申改紀拜承旨即日媒一䟽占名宦耻也固辭[주:子泰億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조가석 / 趙嘉錫, confidence=0.98
- person: 여길 / 汝吉, confidence=0.95
- person: 윤활 / 尹鑴, confidence=0.98
- person: 자태억 / 子泰億, confidence=0.9
- year: 현종 경자(1690년) / 顯宗庚子, confidence=0.98
- year: 경신(1720년) / 庚申, confidence=0.95
- office: 이조 참의 / 吏曹參議, confidence=0.98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0.98
- work: 사기 / 史, confidence=0.85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98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8
- term: 무군부도(반역죄) / 無君不道,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조부형
- 기사 ID:
20037_026_010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101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4T01:30:17.23157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6&aa15no=026&aa20no=20037_026_0101
한글 번역
조복향은 임천 사람으로 인삼봉 희망 성의 아들이자 자는 여방이다. 성품이 효친하여 의술을 행하고 마음을 다하여 부모를 돌보았다. 어느 날 아버지가 갑자기 위중한 병에 걸리자, 복향이 산 밖으로 나가 약을 만들었는데, 어두운 길에서 돌아올 길을 잊어버렸다. 그때 갑자기 큰 호랑이가 길 왼쪽에 나타났다. 복향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형편이 급하고 상황이 다급하니, 비록 네가 야수라 할지라도 남을 몰아세우지 않겠다’고 하였다. 호랑이가 그제야 앞으로 다가와 고개를 숙이고 엉덩이를 높이 들어 마치 태울 것을 청하는 듯하였다. 복향이 그 뜻을 헤아리고 그의 등에 뛰어올랐다. 호랑이가 일어나 걸으니 그 빠름이 나는 듯하여, 눈 깜짝할 사이에 집에 도착하였다. 호랑이는踪影도 없이 사라졌다. 약을 올려 먹이니 병이 나았다. 사람들이 모두 효행의 감응이라고 칭하였다. 병초에 손가락을 끊고 피를 넣었다. 부모의 상을 당하여 무덕에 살며 묘곁에 있었다. 이로 인하여 명성이 자자라 한 지역에서 모두 존경 받았다. 소식이 조정에 전해지자 집에 다행문을 내렸다. 명패에 ‘효자의 문’이라 쓰니라.
독음
조복향 임천인 삼봉 희망 성 자 자 여방 성어효친 집도규 단성구호 일일 친후 졸거 복경 출산제약 혼경망반 홋유대호 복로좌 복경 소설섭 유曰 정급세박 이수 이물부의상박 뇌 재진전 두기고고구 유약청기 복경 축기의 등신기척 뇌 기행기질여비 순식 제기 뇌 인무적 진약이유 함칭효감질초단지진혈 거우庐墓 유시성문 위위일로 소欽服 문어조 정려위효자지문
의미
조선后期的孝子 조복향의 이야기이다. 아버지가 위중한 병에 걸리자 산에서 약을 만들던 중 어둠 속에서 길을 잃었는데, 큰 호랑이가 나타나 복향을 등에 태워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호랑이도 물러났고 약을 먹인後 아버지가 나았다. 사람들이 이를 효행의 감응이라 칭하였다. 또한 부모 상중에 병초에 자신의 손가락을 끊고 피를 넣어 상을 치루었다는 기사가 덧붙여진다. 이같이 효성이 지극하여 그 명성이 한 지역에 퍼지고 조정에까지 알려져 다행문을 받고 ‘효자의 문’이라는 명패를 내렸다.
원문
趙復馨林川人參奉希聖子字汝芳性於孝親執刀圭殫誠救護一日親侯猝劇復馨出山製藥昏徑忘反忽有大虎㐲路左復馨不少懾諭曰情急勢迫爾雖異物不宜相迫虎乃進前低頭高尻有若請騎復馨揣其意騰身其脊虎乃起行其疾如飛瞬息抵家虎仍無迹進藥而瘳咸稱孝感疾草断指進血居憂廬墓由是聲聞蔚為一路所欽服聞于朝旌閭曰孝子之門
엔티티 후보
- person: 조복향 / 趙復馨, confidence=1.0
- place: 임천 / 林川, confidence=1.0
- person: 희망성 / 希聖, confidence=1.0
- place: 효자의 문 / 孝子之門, confidence=1.0
- term: 도규(의술) / 刀圭, confidence=0.9
- term: 정려(다행문) / 旌閭,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이두악
- 기사 ID:
20037_026_010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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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두악은 후산이라는호를 쓰고, 김수현의 외손으로 자는 계첨이다. 어려서부터 기개와 풍도가 있었고 문예가 일찍 이루어졌다. 현종 기유년에 진사에 급제하고, 숙종 임술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치평이 되었다. 수천 자에 달하는 상소를 올려 재해와 흉년이 여러 해 연속으로 일어나 백성들의 궁핍이 날로 심해짐을 아우러, 위를 줄이고 아래를 이롭게 하는 정치를 시행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을축년에 정언에 부임하고 한때의 재상들이 불법한 일을 논박하다가忤逆을 당해 파직되었다. [주: 아들 이세德은 아래를 참조]
독음
이두악 후산자 김수현 외손 자 계첨 유기기도문예조성 현종 기유 진사 숙종 임술 등문과 위 치평 상서 수천언 이 재황 연세 민곤일심 청강 손익하지역 을축 배 정언 론 일시 재 비법지사 견오㘴 파
의미
조선 시대 문신 이두악의 행적을 적은 기사로, 어려서부터 뛰어난 자질을 보였고 현종대에 진사, 숙종대에 문과에 급제하여 치평 등 벼슬을 했다. 여러 해 지속된 재앙과 흉년에 따른 민곤을 개탄하며 백성을 이롭게 하는 정치를 건의했고, 정언 재임 시 재상들의 비리를 논박하다 파직되었다. 아들 이세德도 후대에 등장하는 인물임을 알리고 있다.
원문
李斗岳後山子金壽賢外孫字季瞻幼有氣度文藝早成顯宗己酉進士肅宗壬戌登文科為持平上書屡千言以灾荒連歲民困日甚請講損上益下之政乙丑拜正言論一時宰非法之事見忤㘴罷[주:子世德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두악 / 李斗岳, confidence=1.0
- person: 김수현 / 金壽賢, confidence=0.95
- person: 계첨 / 季瞻, confidence=0.95
- person: 세덕 / 世德, confidence=0.95
- place: 후산 / 後山, confidence=0.7
- office: 치평 / 持平, confidence=0.95
- office: 정언 / 正言, confidence=0.95
- term: 외손 / 外孫, confidence=0.9
- term: 자 / 字, confidence=0.9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정언황
- 기사 ID:
20037_026_010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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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정언황은 관자(好寬子)를 좋아하였다. 조정립의 사위로서 字는 위수(渭叟)이고, 일仲徽는 호를 묵재(默齋)라 하고, 또 졸당(拙堂)이라 하였다. 인조대에 문과에 합격하여 두 벼슬길(양사)을 두루 역임하고, 준양부사가 되었다.峡地方의 풍속으로 전세(田稅)를 누에고치와 베(綿布)로 바쳤다. 정언황은 백성들로 하여금 호랑이와 표범의 가죽을 사냥하여 물품을 관부에 바치게 하고, 전一年内의 조세를 완전히 면제해 주었다. 인천부사로 재임할 때, 백성들로 하여금 각자 자신이 개간한田을 자진 신고하도록 하고, 때때로 직접 나가 순시하여 백성의 감춘 것(은닉)과 아전의 졸弄奸(부정)을 조사하였다. 안동부사가 되었는데, 부에 요사(妖祠)가 있어 新羅공주 오금잠신이라 불리었으며, 매우 영험하여 사람들이 오히려 크게 믿고 경신하였다. 정언황은 유학자들을 대규모로召集하여 그 요사복(恠服)을 불태웠더니, 그 요(妖)가 이내 그쳤다. 벼슬은 감사에 그쳤다.
독음
정언황호관자조정립서자위수일중휘호묵재우졸당인조조등文科력양사위준양부사협속전세작면포상납언황사민렵호표피물수어관부진궤일년조사위인천좌사민자각수소갱전시자출안행이감차민은닉리절용간위안동부사부유요사칭신라공주오금잠신다영인이심경신언황대회유사분기괘복기요수관지감사
의미
정언황은 조선 인조대 문과 급제자로, 여러 지역에서 부사를 역임한 관리였다. 준양부사로 재임할 때 호랑이·표범 가죽을 수탈하되 그 해 조세를 면제해주었고, 인천부사 시절에는 농민의自行개간 신고와 直接순시를 통해 은닉 탈세와 아전의 졸弄奸을 척결하려 했다. 안동부사로 부임했을 때는 新羅공주 오금잠신祠를 파괴하고 유학자들을召集하여 그 복식(服飾)을 불사르는 등 미신적 요사(妖祠)를 제거하였다. 결국 벼슬길은 감사에 그쳤다.
원문
丁彦璜好寬子趙正立婿字渭叟一仲徽號默齋又拙堂仁祖朝登文科歴兩司為准陽府使峽俗田稅作綿布上納彦璜使民獵虎豹皮物輸于官府盡蠲一年租稅為仁川倅使民各自首所墾田時自出按行以驗查民隱匿吏絶弄奸為安東府使府有妖祠稱新羅公主烏金簮神多霊異人甚敬信彦璜大會儒士焚其恠服其妖遂息官止監司[주:子時翰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정언황 / 丁彦璜, confidence=1.0
- person: 조정립 / 趙正立, confidence=1.0
- person: 위수 / 渭叟, confidence=0.9
- person: 중휘 / 仲徽, confidence=0.8
- person: 인조 / 仁祖, confidence=1.0
- place: 준양 / 准陽, confidence=1.0
- place: 인천 / 仁川, confidence=1.0
- place: 안동 / 安東, confidence=1.0
- place: 신라 / 新羅, confidence=1.0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office: 양사 / 兩司, confidence=1.0
- office: 부사 / 府使, confidence=1.0
- office: 감사 / 監司, confidence=1.0
- term: 전세 / 田稅, confidence=1.0
- term: 롱간 / 弄奸, confidence=0.9
- term: 요사 / 妖祠, confidence=0.9
- term: 오금잠신 / 烏金簮神, confidence=0.8
- work: 호관자 / 好寬子, confidence=0.7
- work: 묵재 / 默齋, confidence=0.8
- work: 졸당 / 拙堂,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字渭叟의 全句해석
- 一仲徽의 句讀과 全名
- 協俗의 정확한 의미
- 獵虎豹皮物의 구체적 해석
- 慫弄奸의 정확한 字句
윤형성
- 기사 ID:
20037_026_010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6
- 면/쪽: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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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윤형성은 형의 이름이 형지이고, 아호는 경임이며, 호는 기재이다. 유기와 절친한 벗이었다. 현종 임인년에 증광에 합격하고 양사(양반관)의 보덕을 역임했다. 숙종이 즉위한 갑인년에 화가 막 일어나려 할 때, 사간 벼슬로 조정에 나아가 직언을 했다. 그러나 당세의 동료들에게 모함당해 먼저 공격을 받아 축출되었다. 저서에 『조야첨재』가 있는데 서문이 있다. 벼슬은 문관으로서 통정대부에서 진직하여 군목을 지냈다.
독음
윤형성 형지 제자 경임 호 기재 유기와지기우 현종 임인 증광 등 량사 보덕 숙종 즉위 갑인 화장 작 이 사간 제시 대 극언 위시배 소오 선피격거 소저 유 조야첨재 유서문 문관 지 통정 진목
의미
윤형성은 조선 시대 문신으로, 현종대에 증광에 급제한 후 양사의 보덕을 역임했다. 숙종 즉위 직후 갑인년에 정국이 혼란할 때 사간으로서 직언을 했다가 당파의 모함으로 축출되었다. 이후 통정대부에서 진직하여 군목을 지냈다. 저서 『조야첨재』가 전해진다. 호가 기재이고,好友 유기와의 우정이 주목할 만하다.
원문
尹衡聖衡志弟字景任號棄棄齋與俞棨為知已友顯宗壬寅登增廣歴兩司輔德肅宗即位甲寅禍将作以司諌詣臺極言為時軰所誣先被擊去所著有朝野僉載有序文官止通政晉牧
엔티티 후보
- person: 윤형성 / 尹衡聖, confidence=1.0
- person: 유기 / 俞棨, confidence=1.0
- person: 형지 / 衡志, confidence=1.0
- work: 조야첨재 / 朝野僉載, confidence=1.0
- office: 증광 / 增廣, confidence=1.0
- office: 양사 / 兩司, confidence=1.0
- office: 보덕 / 輔德, confidence=1.0
- office: 사간 / 司諌, confidence=1.0
- office: 통정대부 / 通政, confidence=0.9
- office: 군목 / 牧, confidence=0.9
- term: 아호 / 字, confidence=1.0
- term: 호 / 號,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知已友-원문에 ‘已’로 되어 있으나 ‘知己友(절친한 친구)’의 오기 가능성 있음
- 號棄棄齋-두 번째 ‘棄’가 오기로 보이며 ‘號棄齋’가 자연스러움
- 先被擊去-완전한 문장이 아닌 것으로 보이며 중간에 탈자가 있을 가능성 있음
계유십구년강희삼십이년
- 기사 ID:
20037_027_001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7
- 면/쪽: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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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계유년 19년, 강희 32년. 제릉과 후릉을 차례대로 참배하고 돌아와서 송도의 남문 누상에 올라 백성들을 위로하고勉慰하며, 과거를 설치하여 인재를 뽑고, 공납을 면제하고 탕감하였다. 본부의 구粮米 미수납분과 각 기관에서 대부에게強制課課하여 민간에 부담시킨 채무를 면제하도록 명하였다. 미두조 1,200석, 은전 9,000냥, 대소미 3,000석, 면포 30동, 놋쇠 1,000근을 탕감하였다. 돌아온 뒤 묵청전과 경덕궁의 옛터에 비석을 세우도록 명하였다. 재이로서 10월에 번개가 치는데 서쪽에서 크게 떨리며 수십 번의 소리가 났고, 예조에 배나무가 번개에 맞아 나무와 껍질이 모두 떨어졌으며, 갑자기 우박이 번개와 함께 쳤으나 여름철에 흔한 일과 다름이 없었다.
독음
계유 십구년 강희 삼십이년 열제 제릉 후릉 환도 송도 어 남문루 위유 부로 설과 취사 척滌 공납 미두조 천이백석 은전 구천냥 대소미 삼천석 면포 삼십동 추철 천근 회鸞 후 묵청전 및 경덕궁 구기 명 입비
의미
1693년(강희 32년) 봄, 왕이先去 제릉과 후릉을參拜하고 송도(松都)로 돌아와 남문 누상에서 백성을 위로하며 과거를 통해 인재를 뽑았다. 또한 미수납된 공납과 各기관의 부채를 탕감하고,未豆租·은전·미곡·면포·놋쇠 등 다양한 물자를免除하여 민생을 안정시켰다. 回鑾 후에는 묵청전과 경덕궁의 옛터에 비석을 세우도록 하였다. 同年秋에는 서쪽에서 시작된 대규모 번개와 우박이 발생하여 예조의 배나무가 번개에 맞았으나, 여름철에 흔한 현상이므로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원문
[주:癸酉]十九年[주:康熙三十二年]謁齊陵厚陵還到松都御南門樓慰諭父老設科取士蠲滌公納[주:本府舊籴未捧者及出債各衙門支勑而當責於民間者命蠲滌未豆租一千二百石銀錢九千両大小米三千石綿布三十同鍮鐵千斤回鸞後穆淸殿及敬德宮舊基命立碑]○灾異見[주:十月電光富起酉戌方遠動十数聲禮曺有梨樹為雷所震木及皮盡脫迅雷蜚電旡異盛夏]
엔티티 후보
- period: 계유년 19년 / 癸酉十九年, confidence=0.95
- period: 강희 32년 / 康熙三十二年, confidence=0.95
- place: 제릉 / 齊陵, confidence=0.9
- place: 후릉 / 厚陵, confidence=0.9
- place: 송도 / 松都, confidence=0.95
- place: 남문루 / 南門樓, confidence=0.9
- place: 묵청전 / 穆淸殿, confidence=0.9
- place: 경덕궁 / 敬德宮, confidence=0.9
- office: 예조 / 禮曺, confidence=0.95
- term: 과거 설치하여 인재选拔 / 設科取士, confidence=0.85
- term: 면제 탕감 / 蠲滌, confidence=0.9
- term: 재이 / 灾異,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鍮鐵(추철: 놋쇠 가루 또는 놋쇠와 철의 합금으로 추정)
- 蜚電(비전: 우박 또는 번개에 동반된 기상 현상으로 추정)
경진이십육년강희삼십구년
- 기사 ID:
20037_027_002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7
- 면/쪽: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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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경진(庚辰) 26년, 즉 강희(康熙) 39년에 곡산(金二悌)에게 명하여 어머니의 원수를 갚게 하였다. 이悌이 어린 나이에 시장에서 사람을 찔러 어머니의 원수를 갚았다는 사실을 도신(道臣)이 급히 아뢴 것으로, 명이 내려 분동(分棟)하게 되었다.
독음
경진 이십육년 강희 삼십구년에 명하여 곡산(金二悌)으로 하여금 어머니의 원수를 갚게 하였다. 분동(二悌이 아이의 어리석은 힘으로 시장에 가서 사람을 찔러 어머니의 원수를 갚았다는 것을, 도신이 빨리 아뢴다. 명하여 분동하라)
의미
조선 숙종 대의 기사로, 곡산(金二悌)이라는 인물이 어린 시절 시장에서 어머니의 살해 범인을 찔러 원수를 갚은 효자 사연을 기록한 것이다. 해당 사실을 도신(수령)이 급히 보고하자, 조정은 이를 인정하여 분동(分棟)이라 하는 행정 처분을 내린 사건이다. 이는 효행이 공인된 사례이자, 동아시아 역사에서 보편적인 강화사건의 하나이다.
원문
[주:庚辰]二十六年[주:康熙三十九年]命谷山金二悌復母讎分棟[주:二悌以童穉剌人於埸市以復母讎道臣馳啓命分棟]
엔티티 후보
- term: 경진 / 庚辰, confidence=0.95
- term: 강희 / 康熙, confidence=0.95
- place: 곡산 / 谷山, confidence=0.9
- person: 김이치(곡산의 인물) / 金二悌, confidence=0.95
- office: 도신(수령) / 道臣, confidence=0.9
- term: 분동(처분) / 分棟,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 分棟(분동) - 조선 시대 해당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처분 내용이 문헌 전승 과정에서 불확실하게 전해져 정확한 의미 파악이 어렵다. 강화 이후의 행정 처리 절차를 지칭하는 용어로 추정된다.
무자삼십사년강희사십칠년
- 기사 ID:
20037_027_003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7
- 면/쪽: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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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강희) 47년(무자년) 34차에, 숭례문으로 행차하여 조참례를 거행하였다.
독음
무자 삼십사년 강희 사십칠년 어 숭례문 행 조참례
의미
조선 영조 34차, 즉康熙 47년(1708년·무자년)에 임금이 숭례문(남대문)으로 행차하여 조참례를執이었다는 기사이다. 숭례문은 한양 도성 남쪽의 正門으로, 원래 1398년 세워졌으며 1447년 重熙 이후 崇禮門으로改名되었다.文中의 ‘三十四年’은 영조 즉위 후 34번째 해를 가리키며, 연호와干支를 병기한 점이 특징이다. 叅의 경우 參의 俗字로 보이나, 조参례의 구체적儀節內容은 원문에 부연되지 않는다.
원문
[주:戊子]三十四年[주:康熙四十七年]御崇禮門行朝叅禮
엔티티 후보
- year: 강희사십칠년(무자년) / 戊子三十四年康熙四十七年, confidence=0.95
- year: 숭례문(남대문) / 崇禮門, confidence=0.95
- term: 조참례 / 朝叅禮, confidence=0.75
- place: 숭례문 / 崇禮門,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을미사십일년강희오십사년
- 기사 ID:
20037_027_003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7
- 면/쪽: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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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14:42:38.19745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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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을미년(영조 41년, 강희제 54년)에 호조에 명하여 동그라미를 주조하게 하였다. 되는 중국 제도를 본떠서, 바닥이 넓고 입구가 좁으며 몸체가 작고 높게 만들었고, 이를 팔도에 나누어颁给了.
독음
을미 사십일년 강희 오십사년 명호조 주동두 두 방식 화제 저확 구쇄 체소고 반우팔도
의미
조선 영조 41년(1755년, 을미년)에 호조에서 동두(곡물 측정기)를 제작하도록 명하고, 그 방식은 중국 제도를 본떠서 바닥은 넓고 입구는 좁으며 작고 높은 형태로 만들었으며, 완성된 동두를 팔도에 나누어 지급했다는 내용이다. 이 기록은 강희제 54년(1715년)과 40년 이상의 시간 차이가 있어 왕위 연수와 연호 연수 사이에 불일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문
[주:乙未]四十一年[주:康熙五十四年]命戶曺鑄銅斗[주:斗仿華制底闊口殺軆小而高頒于八道]
엔티티 후보
- term: 을미 / 乙未, confidence=0.95
- term: 호조 / 戶曺, confidence=0.98
- office: 호조 / 戶曺, confidence=0.98
- term: 팔도 / 八道, confidence=0.97
- term: 동그라미(두) / 斗, confidence=0.9
- term: 중국 제도 / 華制,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권대운
- 기사 ID:
20037_028_000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8
- 면/쪽: 0005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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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4T01:39:02.06325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8&aa15no=028&aa20no=20037_028_0005
한글 번역
권대운은 손사어(三司禦)의谨中子이고, 갈계(葛溪) 우정(禹鼎)의 사위이다. 광해군 기축년에 태어나 字는 시회(時會), 호는 석담(石潭)이다. 인조 임오년에 태어났으며, 벼슬은宁陵叁奉으로 출세하여 기축년에 이조좌랑으로 별시에 합격하여 등용되었다. 관력이 삼사(三司)의 전서(銓郞)를 지내고, 숙종 을묘년에 영의정에 进相하여 至終的几杖를赐下받았다. 入耆社한 뒤 기사년에废母事件으로 수상이되어 반나절 间庭请而被罢官하고, 종종 一言으로匡正하지 않았다. 宋時烈이 체포될 때, 中路에서 병이 重하여 거의 죽을 뻔하자, 헌대운이 上奏하기를, 「時烈의 죄逆이彰著하니鞫問을 待할 필요가 없으니, 즉시赐死해 주십시오」고 하니, 그대로 따랐다. 갑戌년에 流竄당하다가 풀려났고, 기묘년에 87세로 졸하였다. 임금님이 특별히爵을 회복시켜 주셨다. 아들 珪는 字가 德章이고, 숙종 을묘년 进士에 同榜으로 합격하여 벼슬이 대감에 이르렀고, 갑戌년에 먼 남쪽으로 流竄되었다.
독음
권대운 궘손사어 근중자 갈계우정서 광해 계축생 자시회 호석담 인조 임오생 전서녕녕위 삼봉 기축 이조좌랑 별시 승제한림삼사 전서 숙종 을묘 입상 至영的几杖 입자사 기사 폐모시 이내수 반일청청이罢 종무일언 양성,宋時烈之就拿也,中路病重有徑卒之,헌대운 졸曰시열 죄역장착 불필등대국문 청즉위사사 종지갑戌 피총 몽방 기축 졸 년팔십칠 자상특위 복작손중경견하
의미
조선 숙종대 영의정 권대운의 약력이다. 인조 때 벼슬에 나가 숙종대 영의정에 이르렀으며, 宋時烈을 죽이라고 상주하여 비판을 받은 인물이다.废母事件으로 半日 만에 파직되었으나, 宋時烈 사건에서는 적극 가담하였다. 87세까지 살며 복직되었다. 아들 權珪도 进士出身으로 대감까지 올랐으나, 갑戌년에 유배되었다.
원문
權大運悏孫司禦謹中子葛溪禹鼎婿光海癸丑生字時會號石潭仁祖壬午生貟除寧陵叁奉己丑以佐郞登别試歴翰林三司銓郞肅宗乙卯入相至領賜几杖入者社己巳廢母時以首相半日庭請而罷終無一言匡正宋時烈之就拿也中路病重有徑卒之憲大運奏曰時烈罪逆彰著不必待鞫問請即為賜死從之甲戌被竄蒙放己卯卒年八十七自上特為復爵[주:孫重經見下]子珪字德章肅宗乙卯進士同年登增廣官止大憲甲戌遠竄
엔티티 후보
- person: 권대운 / 權大運, confidence=1.0
- person: 우정 / 禹鼎, confidence=0.9
- person: 송시열 / 宋時烈, confidence=1.0
- person: 권규 / 珪, confidence=0.9
- person: 손중경 / 孫重經, confidence=0.9
- office: 삼봉 / 叁奉, confidence=0.9
- office: 좌랑 / 左郞, confidence=0.9
- office: 삼사전랑 / 叁司銓郞, confidence=0.8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1.0
- office: 대감 / 大憲, confidence=0.8
- office: 사어 / 司禦, confidence=0.7
- place: 갈계 / 葛溪, confidence=0.9
- term: 입상 / 入相, confidence=0.9
- term: 기장 / 几杖, confidence=0.8
- term: 폐모 / 廃母, confidence=0.9
- term: 찬 / 竄,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孙司禦(원문 오류 또는 미확인 관직명)
- 庭請(정확한 사건 맥락)
- 徑卒(거의 죽을 뻔한 상태 표현)
민희
- 기사 ID:
20037_028_000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8
- 면/쪽: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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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민희는 여흥 사람으로서 대사헌 응협(호는 명호)의 아들 응형의 종질(金壽賢의 외손 정세구)의 사위이다. 광해군 갑인년에 태어나 字는 호여이고 호는 설루와 우석호이다. 인조 기유년에进士가 되었고, 효종 경인년에 현령으로 증광에 발탁되어 삼사를 두루 전임하였다. 숙종 을묘년에 入相하여 左相에 이르렀다가 경신년에 安寘되었으며, 정축년에 유배지에서 사망하여 향년 74세였다. 기묘년에 복직되고 시호는 文忠이었다.
독음
민희 여흥인 대사헌 응협 주:호 명호) 자 응형 종질 금수현 외손 정세구 서 광해 갑인생 자 호여 호 설루 우 석호 인조 계유进士 효종 경인 가을현령으로 증광에 발탁되어 삼사를 전임하고 숙종 을묘에 入相하여 左相에 이르렀다가 경신에 安寘되고 정축에 유배지에서 사망하여 향년 74세, 기묘에 복직되어 시호 文忠이다 주:자昌道는 아래를 참조)
의미
조선 시대 명문 가문인 여흥 민씨 출신으로, 숙종대에 좌상에까지 이르렀으나 경신년에 벼슬에서 정리 安寘되었다가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사망한 인물이다. 이후 기묘년에 복직되어 文忠의 시호를 받았다. 한문의 특이한 주석 표기 방식이 눈에 띄며, 安寘된 시점과 사망 시점의 연호가 유배 생활 기간을 보여준다.
원문
閔熙驪興人大司憲應協[주:号鳴皐]子應亨從姪金壽賢外孫鄭世矩婿光海甲寅生字皞如號雪楼又石湖仁祖癸酉進士孝宗庚寅以縣令登增廣歴三司肅宗乙卯入相至左庚申安寘丁卯卒于謫所年七十四己巳復官謚文忠[주:子昌道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민희 / 閔熙, confidence=1.0
- person: 응협 / 應協, confidence=1.0
- person: 응형 / 應亨, confidence=1.0
- person: 금수현 / 金壽賢, confidence=1.0
- person: 정세구 / 鄭世矩, confidence=1.0
- person: 창도 / 昌道, confidence=1.0
- place: 여흥 / 驪興, confidence=1.0
- office: 대사헌 / 大司憲, confidence=1.0
- office: 좌상 / 左相, confidence=1.0
- office: 현령 / 縣令, confidence=1.0
- term: 증광 / 增廣, confidence=1.0
- term: 삼사 / 三司, confidence=1.0
- term: 입상 / 入相, confidence=1.0
- term: 안치 / 安寘, confidence=1.0
- term: 탐소 / 謫所, confidence=1.0
- term: 시호 / 謚, confidence=1.0
- term: 문충 / 文忠, confidence=1.0
- work: 설루 / 雪楼, confidence=1.0
- work: 우석호 / 又石湖, confidence=1.0
- term: 자 / 字, confidence=1.0
- term: 호 / 號, confidence=1.0
- term: 외손 / 外孫, confidence=1.0
- term: 종질 / 從姪, confidence=1.0
- term: 서위 / 女婿, confidence=1.0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入相이 成均館 입학인지相位 진출인지
- 安寘의 정확한 의미와 처리 경위
- 號鳴皐와號雪楼의文中 표기 순서
민정중
- 기사 ID:
20037_028_000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8
- 면/쪽: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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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민정중(효종의 조 배향에 포함된 인물임)
독음
민정중(주: 효종 조제향)
의미
민정중은 효종 임금의 조상을 모시는 제사(조 배향)에 함께 모셔진 인물임을 나타낸다. 효종의 조상에 대한 제사 때 함께 제를 지내고配享的人物이라는 뜻이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민정중 / 閔鼎重, confidence=1.0
- person: 효종 / 孝宗, confidence=1.0
- term: 배향 / 配享, confidence=1.0
이상진
- 기사 ID:
20037_028_001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8
- 면/쪽: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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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상이 정란(廷鸞)의 증손으로, 참봉 영선(號 時習齋)의 아들이며, 민여임의 외손이다. 광해군 갑인년에 태어나 자는 천득, 호는 만암, 또 건강거라也表示辑,全州의 全州人이다. 인조 을유년에 별시榜으로 及第하여 翰林院을 역임하고, 正言이 되기 전부터 應旨하여 상서乞救하여 조석인을 구하고, 유기와 조익·김집의 소환을 청하였다. 숙종 을묘년에 宋時烈의 論禮事로 유배되어窜逐되자, 상진이 상서를 올려 그를 신구하였다. 임금의 业엄한 批答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소회를 다시 아뢴 끝에 力救功으로 嶺伯·錦伯·业伯과 两銓을 역임하였다. 경신년에 우승승에 오르고, 清白吏에 선정되어 耆社에 들어갔다. 무진년에는 卞尹拯의 背師之事를 살펴 신정하였고, 기사년에는 廢妃事가 일어나자 상소를 올려 尹拯을 간하였다. 그 결과 극히 변방의 圍籬에 安치되었고, 业청의 鍾城으로 옮겨졌다가 곧 철원으로 量移하였으며, 数개월 뒤에 비로소 蒙放되었다. 경오년에 죽었으며 향년 77세였다. 特旨로 복직을 명하고, 시호는 忠貞을 내렸다.
독음
이상진 정란 증손 참봉영선[주:호 시습재] 아들 민여임 외손 광해갑인생 자 천득 호 만암 또 건강거 전주인조을유등별시력 한림이전 정언 응지 상서 구 조석인 유기 청소환 조익 김집 숙종을묘 송시열론례 피窜逐 상진 상서 신구 승엄비 또 진소회력구 역영백 금백 업백 양전 경신배 우상 선청백리 입기사 무진 신 변윤준 배사지사 기사 폐비시 상 척 준 간명극변 위리 안치 시정 업청개종성 심량이 철원 수월후 몽방 경오 졸년 칠십칠 특명 복관 시 충정
의미
조선后期的 관료 이상진(李尚眞)의 행적을 수록한 기사이다. 문묘배향군 현인 송시열이 예론 논쟁으로 유배되었을 때 상서로 적극 구명하여 정치적 인맥을 형성하였다. 이후 영의정부인·금부참의·호부참의·이조참의·좌의정 등을 두루 역임하며 清白吏로 선정되었고, 기사 폐비사건 때 올린 상소로 인해 유배되었다가 철원에서 풀려났다. 향년 77세로 세상을 떠났으나 사후에 特旨로 복관되고 충정 시호를 받았다.文中의窜·业·圍籬 등 字形은 通借 또는 異體字로 판단된다.
원문
李尙眞廷鸞曽孫参奉榮先[주:号時習齋]子閔汝任外孫光海甲寅生字天得號晩菴又琴岡居全州仁祖乙酉登别試歴翰林以前正言應㫖䟲救趙錫胤俞棨請召還趙翼金集肅宗乙卯宋時烈論禮被竄逐尙眞上䟲伸救承嚴批又陳所懐力救歴嶺伯錦伯业伯両銓庚申拜右相選淸白吏入耆社戊辰伸卞尹拯背師之事己巳廢妃時上劄拯諌命極邉圍籬安寘始定业靑改鍾城尋量移鐵原数月後蒙放庚午卒年七十七特命復官謚忠貞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상진 / 李尚眞, confidence=1.0
- person: 정란 / 廷鸞, confidence=1.0
- person: 송시열 / 宋時烈, confidence=1.0
- person: 윤준 / 尹拯, confidence=1.0
- person: 조석인 / 趙錫胤, confidence=1.0
- person: 조익 / 趙翼, confidence=1.0
- person: 김집 / 金集, confidence=1.0
- person: 유기 / 俞棨, confidence=1.0
- person: 광해군 / 光海, confidence=1.0
- place: 전주 / 全州, confidence=1.0
- place: 종성 / 鍾城, confidence=1.0
- place: 철원 / 鐵原, confidence=1.0
- office: 우승승 / 右相, confidence=0.9
- office: 참봉 / 參奉, confidence=0.9
- office: 정언 / 正言, confidence=0.9
- office: 한림 / 翰林, confidence=0.9
- office: 기사 / 耆社, confidence=0.8
- term: 청백리 / 淸白吏, confidence=1.0
- term: 양전 / 兩銓, confidence=0.8
- term: 위리 / 圍籬, confidence=0.9
- term: 충정 / 忠貞,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囲籬(圍籬)
- 竄逐(窜逐)
- 业批(엄批)
- 围围(圍籬) 관련 字形 혼용
남구만
- 기사 ID:
20037_028_001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8
- 면/쪽: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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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14:48:24.88686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8&aa15no=028&aa20no=20037_028_0012
한글 번역
남구만[주: 배향을 볼 것]
독음
남구만[참조: 배향]
의미
남구만이라는 인물에 대한 짧은 기록. 주석을 통해 이 인물의 배향(功臣을 함께 모심)에 관한 설명이另有所在함을 나타낸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남구만 / 南九萬,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配享(배향) -功臣재 등 구체적 배향 대상과 맥락이 이 짧은 인용만으로 확인하기 어려움
정재숭
- 기사 ID:
20037_028_001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8
- 면/쪽: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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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4T10:47:54.67887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8&aa15no=028&aa20no=20037_028_0013
한글 번역
정재숭은 태화자이고, 인조 임신년(1622)에 태어났으며, 자는 자고이고 호는 낙남이며, 또한 의곡이라고도 하였다. 효종 신묘년(1655)에 진사(20세)에 합격하고, 무술년(1658)에 참가봉으로 임명되었으며, 현종 경자년(1660)에 명경과에 합격하였다. 그 뒤翰林院直提學과 이부판서, 병부판서를 역임하였다. 숙종 을축년(1685)에 우승상에 오랐다. 수신을 닦아 외부의 사치를 삼가하였으며, 임신년(1682)에 사망하여 향년 61세였다.
독음
정재숭 태화자 인조 임신생 자자고 호낙남 우의곡 효종 신묘년 진사 무술년 제참봉 현종 경자년 등명경과력翰林 이부판서 병부판서 숙종 을축년 우수상修身 불립외사 임신년 졸 년육십일
의미
조선 숙종대 우상정재숭의 약력이다. 1622년생으로 효종 때 진사, 현종 때 명경과 급제하여翰林과 판서 등 요직을 거쳤고, 1685년 우승상에 올라 정계에 입문하였다.修身을 중시하여 사치와 외부를 삼가는 삶을 살았으며, 1682년에 사망하였다.
원문
鄭載嵩太和子仁祖壬申生字子高號洛南又義谷孝宗辛卯[주:二十]進士戊戌除参奉顯宗庚子登明經科歴翰林吏兵判肅宗乙丑拜右相修身不立外舍壬申卒年六十一
엔티티 후보
- person: 정재숭 / 鄭載崇, confidence=0.95
- person: 낙남(호) / 洛南, confidence=0.9
- person: 의곡(호) / 義谷, confidence=0.85
- place: 외사 / 外舍, confidence=0.75
- term: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0.9
- office: 참가봉 / 參奉, confidence=0.9
- office: 우수상 / 右相, confidence=0.95
- office: 이병판서 / 吏兵判, confidence=0.9
- term: 임신(년차) / 壬申,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주해,二十으로 추정되지만 원문 괄호 주석은 현대 편집으로 보임
이단하
- 기사 ID:
20037_028_001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8
- 면/쪽: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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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14:48:16.9651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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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단하[주:현종조 문형을 볼 것]
독음
이단하[주:현종조문형]
의미
조선 시대 인물 이단하에 대한 조항이다. 주석에서 현종朝文衡을 참조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단하 / 李端夏, confidence=0.95
- period: 현종조 / 顯宗朝, confidence=0.9
- office: 문형 / 文衡,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조사석
- 기사 ID:
20037_028_001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8
- 면/쪽: 0015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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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14:48:56.21450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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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조사석은 구석의 아우이며, 신흠의 외손이다. 인조 임인년에 태어나大字는 공거이며, 호는 만휴당이고, 또 만회라고도 하였다. 현종 경자년에 식년시에 합격하고, 임인년에 증광试题에 올랐다. 벼슬은翰林院과 삼사의 전랑을 역임하였다. 숙종 정묘년에 이조 판결로 相位에 들어갔다. 좌상에 이르러 占卜을 바꾸어 들어갔다. 그때 占卜을 바꾸어 들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연이하여 占卜을 더하였다. 좌상이 청하여 아뢰었다. ‘더 가려할 사람이 없습니다. 몰라 임금의 미쁜所在입니다.’ 임금이 말씀하셨다. ‘예전에 조사석이 국가사에 힘을 다한 줄을 알았다.’ 이에 물러나서 가려入상하려 하였다.閭巷에서 조사석이 귀인인 장씨 어머니 집과 친밀하므로 그에게請托이 있는 줄 의심하여 벼슬을 면致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부장교리闵鎭周가 소를 올려 占卜을 바꾼失政을 논하였다. 신미년에 참소를 받아 고성으로 유배되었다. 계유년에 유배지에서 졸하였다. 향년 육십이세였다. 갑유년에 관작이 회복되고, 시호는충헌이다.
독음
조사석구석자 공거호 만휴당又称만회 현종 경자진사 임인등증광력翰林삼사전랑 숙종 정묘 이리패입상지좌오개卜而入시유개卜지요 연명가卜좌상청대왈경무피제의인지 미지성의소재상왈증지조사석진심국사수퇴이입력여항위조사석여귀인장씨모가친밀고이의청탁면치지상야부장교리민진주소론가卜지실 신미피참염고성 계유 졸어적소년 육십이 갑유 복관시충헌
의미
조사석은 조선中期의 관료로, 인조 임인년생, 현종 경자년 식년시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숙종 정묘년에 이조 판결로入相하여 좌상에 이르렀다. 이후 占卜을 바꾸어入相하는 과정에서左상로서 추천하였으나, 임금이 조사석을 称賛하여 결국入상시켰다. 그러나民間에서 그와 귀인 장씨母家가 친밀하다는 비난이 있어請托으로 의심받았다. 부장교리闵鎭周가 占卜改政을 비판하는 소를 올렸다가 신미년에 탄핵을 받아 고성으로 유배되었고, 계유년에 그곳에서 졸하였다. 갑유년에 복관되어 시호는충헌이었다.
원문
趙師錫龜錫弟申欽外孫仁祖壬申生字公擧號晩休堂又晩悔顯宗庚子進士壬寅登增廣歴翰林三司銓郞肅宗丁卯以吏判入相至左五改卜而入時有改卜之謠連命加卜左相請對曰更無可擬之人未知聖意所在上曰曽知趙師錫盡心國事遂退而擬入閭巷謂以師錫與貴人張氏母家親宻故疑其請托靣致相也副校理閔鎭周疏論加卜之失辛未被讒謫固城癸酉卒于謫所年六十二甲戌復官謚忠憲[주:子泰老泰耉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조사석 / 趙師錫, confidence=0.98
- person: 신흠 / 申欽, confidence=0.95
- person: 민진주 / 閔鎭周, confidence=0.97
- person: 장씨 / 張氏, confidence=0.9
- place: 고성 / 固城, confidence=0.95
- office: 이조판결 / 吏判, confidence=0.85
- office: 翰林원 / 翰林, confidence=0.88
- office: 삼사 / 三司, confidence=0.85
- office: 전랑 / 銓郞, confidence=0.9
- office: 부장교리 / 副校理, confidence=0.92
- term: 입상 / 入相, confidence=0.85
- term: 개복 / 改卜, confidence=0.75
불확실한 어휘
이숙
- 기사 ID:
20037_028_001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8
- 면/쪽: 0016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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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7T00:44:55.40975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8&aa15no=028&aa20no=20037_028_0016
한글 번역
이숙은 박동량의 사위이다. 인조 갑인년에 태어나 字는仲羽이고 号는晩休亭이다. 정축년에 스물이었을 때 호란에 사로잡혀 몇 달을 지내고, 我国 사신이 이숙에게 이르자 스스로 성명을 말하자 박동량이 그 은혜에 감사하며 불쌍히 여겨 돈을 주고 데려왔다. 무자년에進士가 되었고, 효종 경인년에太学生으로서金壽恒과朴世采와 함께 上疏하여嶺南 출신 학자柳稷이先正을醜陋하게 모함한 죄상을 논쟁하였다. 을미년에庭試에 올라 翰林을 두루 역임하고, 奉教로銓郞이 되었다.嶺南按察使로 있을 때 큰 기근에 赤誠으로 나눠주고 구제하여, 해당 부인들이 사당을 세우고 초상화를 그렸다. 宋時烈이 그 편액에「尙德」이라題字하고, 宋浚吉은「褥德」이라 썼다. 方伯이 宋時烈과結党한 이유로 明川으로 左遷되었으나, 다음 해에 돌아와 두銓을 두루 역임하였다. 숙종 정묘년에 右相에 오르니 대신의 풍모가 있어 나라를 걱정하기를 집을 돌아보는 듯하고,사에 임하여 말을 다하였으며,忠厚樸直하여 당세의 준수한 신하였다. 기축년에 사망하니 예순셋 살이었으며, 시호는忠憲이다.
독음
이숙
의미
이숙(1610-1672)은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박동량의 사위이다. 인조 연간에 호란이 일어나 사로잡혔으나 박동량이 발견하여 데려왔다. 이후進士하여 효종대에太学生으로서金壽恒,朴世采와 함께嶺南 학자柳稷의 先正 모독 상소를 올렸다. 翰林을 역임하고嶺南按察使로 부임하여 기근에 구호를 잘 베풀어 民들이 사당을 세웠다. 宋時烈, 宋浚吉이 그곳 편액에 글씨를 썼다. 宋時烈과의 관계로 明川으로 左遷되었다가 돌아와 两銓을 역임하고 右相에 올라忠厚樸直한 名臣으로 불렸다. 숙종 기축년에 사망, 시호忠憲.
원문
李䎘翔弟朴東說婿[주:后]仁祖丙寅生字仲羽號晩休亭丁丑[주:二十]難被擄居数月我使至䎘自言姓名懷恩君德仁憐而買歸戊子進士孝宗庚寅以太學生與金壽恒朴世采疏論嶺儒柳稷醜誣先正之罪乙未登庭試歴翰林奉教銓郞按嶺南當大餞赤誠賙救府人立祠繪像宋時烈題其額曰尙德宋浚吉曰褥德方伯以宋時烈黨謫明川翌年還歴両銓肅宗丁卯拜右相有大臣風憂國如家遇事盡言忠厚樸直為時藎臣戊辰卒年六十三謚忠憲[주:兄弟文科弟翊見下子晩成見下孫縡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숙 / 李䎘, confidence=1.0
- person: 박동량 / 朴東亮, confidence=0.9
- person: 김수형 / 金壽恒, confidence=1.0
- person: 박세채 / 朴世采, confidence=1.0
- person: 유직 / 柳稷, confidence=1.0
- person: 송시열 / 宋時烈, confidence=1.0
- person: 송준길 / 宋浚吉, confidence=1.0
- person: 효종 / 孝宗, confidence=1.0
- place: 영남 / 嶺南, confidence=1.0
- place: 명천 / 明川, confidence=1.0
- office: 우상 / 右相, confidence=1.0
- office: 한림 / 翰林, confidence=1.0
- office: 선랑 / 銓郞, confidence=1.0
- term: 정시 / 庭試, confidence=1.0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term: 태학생 / 太學生, confidence=1.0
- term: 방백 / 方伯, confidence=1.0
- term: 양선 / 両銓, confidence=1.0
- term: 충헌 / 忠憲,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翔弟의 정확한 뜻과 읽기
- 東說의 정확한 한자
- 兄弟文科弟翊見下子晩成見下孫縡見下 부분의 상세 해석
여성제
- 기사 ID:
20037_028_001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8
- 면/쪽: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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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여성제는 음부사 여이양의 아들이며, 종숙 여이징의 후사로 한준겸의 외손(주:소후)이 되고, 한효순의 외손(주:본생)이 되며, 본생 모 한씨(주:본생)는 江都에서 순절하였다. 강석기의 손녀의 남편이며, 인조 을축년에 태어났고, 자는 희천, 호는 운포이다. 효종 경인년에 태어나 장년하여 여러 번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고, 갑오년에 明經科에 급제하여 역임했다. 한림원 사인, 거백광에 있을 때 양천과 호제를 거쳤고, 호패와 숭조하여 다시户判가 되었다. 숙종 무진년에 入相하여 至領이 되었고, 이 해에 右相으로서 領相 남구만과 함께 入對하여 朴世釆를 구하고 成渾과 李珥를 멀리 流竄시켰다. 李珥가 벼슬에서 물러날 때에는 大臣으로서 두 신하의 도덕과 학문을 䟲直하게 진술하였다. 기축년에 坤宮이 폐쇄되려는 것을 고하니 章疏로 간쟁하였고, 신미년에 사망하여 향년 67세, 시호는 景憲이다.
독음
여성제는 음부사 여이양자의 종숙 여이징 후 한준겸 외손 주:소후 한효순 외손 주:본생 모 한씨 주:본생 순절於江都 강석기 손서 인조 을축 생 자 희천 호 운포 효종 경인 생 장 여 제관 불임 갑오 등 명경과 역 한림 사인 거백광 류 양 천 호제 패 숭종 무진 입상 至領 이년 우 우승 여 영상 남구만 청대 구 박세재 원 산 영변 성혼 이여 제물 부 시 대신 䟲 진 양신 도덕 학문 기축곤궁 장 폐 풍장 이 간 신미 졸 년 육십칠 시 경헌
의미
조선 후기 문신 여현(여성제, 1635~1701)의 전기이다. 인조 연간에 태어나 명경과에 급제하고 한림원 등을 역임한 뒤 숙종 무진년(1688)에 入相하여 至領에 이르렀다. 右相으로서 領相 남구만과 함께 정사를 논하다. 朴世釆를 구하고 成渾·李珥를遠竄시켰으며, 李珥가 벼슬에서 물러났을 때에는 두 사람의 도덕과 학문을 力辨하였다. 후일 坤宮 폐쇄问题时 상소하여 간쟁하다가 신미년(1701)에 사망하였다.
원문
呂聖齊以䕃府使爾亮子為従叔爾徴后韓浚謙外孫[주:所后]韓孝純外孫[주:本生]母韓氏[주:本生]殉節于江都姜碩期孫婿仁祖乙丑生字希天號雲浦孝宗庚寅生壮屡除官不仕甲午登明經科歴翰林舍人㐀伯廣留两銓戶判肅宗戊辰入相至領是年以右相與領相南九萬請對救朴世釆遠竄寧邉成渾李珥黜廡時以大臣䟲陳両臣道徳學問己巳坤宫将廢封章以諌辛未卒年六十七諡景憲
엔티티 후보
- person: 여현(여성제) / 呂聖齊, confidence=0.95
- person: 한준겸 / 韓浚謙, confidence=0.95
- person: 한효순 / 韓孝純, confidence=0.95
- person: 강석기 / 姜碩期, confidence=0.95
- person: 남구만 / 南九萬, confidence=0.95
- person: 박세재 / 朴世釆, confidence=0.95
- person: 성혼 / 成渾, confidence=0.95
- person: 이여 / 李珥, confidence=0.95
- place: 강도 / 江都, confidence=0.95
- office: 음부사 / 䕃府使, confidence=0.9
- office: 한림사인 / 翰林舍人, confidence=0.95
- office: 호패 / 戶判, confidence=0.9
- office: 우승 / 右相, confidence=0.95
- office: 영상 / 領相, confidence=0.95
- office: 곤궁 / 坤宮, confidence=0.95
- work: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0.95
- term: 자 / 字, confidence=0.95
- term: 호 / 號, confidence=0.95
- term: 시호 / 諡,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䟲陳(직진) - 직언하여 진술함, 威白廣(거백광) - 직위 명칭으로 추정
목내선
- 기사 ID:
20037_028_001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8
- 면/쪽: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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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목내선은 이명웅의 사위이다. 광해 연간 정축년에 태어나 자를 래지, 호를 모헌이라 하였다. 인조 갑술년에 진사가 되었고, 효조 경인년에 별과로 증광에 합격하였다. 한림원 출신으로 숙종 기사년에 入相하여 左相에 이르렀으며, 이후기사사에 들어갔다.诬逼坤聖의 죄로 갑오년에 사형을 감경받아荐棘에 유배되었다가, 계미년에 졸하였다. 향년 팔십팔세였다. 아우 목兼任은 文과로서 겸선승임直旨을 지냈다. 아들 林일은 字를士伯, 호를靑軒이라 하였다. 또한 늦게 각성하여, 숙종 을묘년에 진사가 되고 을오년에增광에 합격하였다. 한림원, 삼사 전랑, 삼관을 두루 거쳐 대헌에 이르렀으며, 갑오년에 安定向에 있게 되었다. 문집이 있다. 아들 天任과 天顯은 아래를 참조.
독음
목내선 서예자 이명웅서 광해병진생 자래지 호모헌 인조병술진사 효종경인 이후별거등증광력翰林 숙종기사입상至此좌입기사 甲戌감사.荐棘癸未 졸년팔십팔.형 문과 겸선습임承接 子林일 자사백 호청헌 또만오 숙종을묘진사 을오등증광력翰林삼사전랑삼관至大憲 甲戌안전유문집..
의미
조선中期의 문신 목내선의 行狀을 적은史料이다. 광해군~인조~효종~숙종 연간을 살아 文階를 거쳐 左相에 이르렀으나, 이후诬逼坤聖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졸한 인물이다. 아들 林일도 높은 관직에 올랐음을一并 기재하였다.
원문
睦來善敍欽子李命雄婿光海丙辰生字來之號眊軒仁祖丙戌進士孝宗庚寅以别㘴登增廣歴翰林肅宗己巳入相至左入耆社以誣逼坤聖甲戌减死荐棘癸未卒年八十八[주:兄弟文科兄兼善承㫖]子林一字士伯號靑軒又晩悟肅宗乙卯進士戊午登增廣歴翰林三司銓郞吏叁官至大憲甲戌安寘有文集[주:子天任天顯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목내선 / 睦來善, confidence=0.95
- person: 이명웅 / 李命雄, confidence=0.95
- person: 목임일 / 林一, confidence=0.95
- person: 목겸선 / 兼善, confidence=0.9
- person: 목천임 / 天任, confidence=0.9
- person: 목천현 / 天顯, confidence=0.9
- era: 광해 / 光海, confidence=0.95
- era: 인조 / 仁祖, confidence=0.95
- era: 효종 / 孝宗, confidence=0.95
- era: 숙종 / 肅宗, confidence=0.95
- office: 한림 / 翰林, confidence=0.95
- office: 입상 / 入相, confidence=0.9
- office: 대헌 / 大憲, confidence=0.9
- term: 증광 / 增廣, confidence=0.95
- term: 삼사 / 三司, confidence=0.9
- term: 기사사 / 耆社, confidence=0.9
- term: 곤성 / 坤聖, confidence=0.85
- work: 문집 / 文集,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别㘴(별거)
- 荐棘(荐棘)
- 池松旭(목천임·목천현에 해당하나 확인 필요)
민암
- 기사 ID:
20037_028_002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8
- 면/쪽: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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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민암은 김시진을 사위로 삼았으며, 인조 정축년에 태어나 字는 장서, 호는 의호이다. 현종 무신년에 별시(別試)에 합격하여 출사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삼사의 직을 두루 역임하고 병판이 되었다. 숙종조에 문전을掌管하였으며, 기사년 폐비 사건 당시 进教文을 지어 그 문구가 극히 흑독하고 패역하였다. 신미년에 우승상에 오르고, 갑술년에伏誅되어 향년 58세, 재산은 적몰되었다. 아들의 장도는 字가汝明이며, 숙종 무오년에 진사가 되었다. 신미년에 호조좌랑으로 别見聖에 나아가고, 春坊과 기기 등 관직을 두루 거쳐 마침내持平에 이르렀으나, 갑술년에 곤장으로 맞아 죽었다.
독음
민암희제김시진서인조정축생자장서호의호현종무신등별시력삼사리랑병판숙종조사전문형기사폐비시찬진교문어극흑배신미배우승상갑술부주연오십팔적몰자장도자유명숙종무오진사신미이호조좌랑등별견성력춘방기기도관지시의갑술장폐
의미
조선 숙종대의 문신 민암은 인조 때 태어나 현종 때 벼슬에 올라 병판 등 요직을 역임하였고, 숙종 때 文衡을 맡았다. 기사년 폐비 사건 때 进教文을 지어 극히 흑독한 글로 폐비 완존론을 폈으며, 신미년에 우승상에 올랐다가 갑술년에 처형되었다. 그의 아들 장도 역시 진사가 되어 호조좌랑 등 요직을 두루 거쳐持平에 이르렀으나, 같은 갑술년에 곤장으로 맞아 죽었다. 부자가 모두 갑술년에非命으로死亡한史書記事이다.
원문
閔黯凞弟金始振婿仁祖丁丑生字長孺號义湖顯宗戊申登别試歴三司吏郎兵判肅宗朝典文衡己巳廢妃時撰進教文語極㐫悖辛未拜右相甲戌㐲誅年五十八籍沒子章道字汝明肅宗戊午進士辛未以戶曹佐郞登謁聖歴春坊圻都官止持平甲戌杖斃
엔티티 후보
- person: 민암 / 閔黯, confidence=1.0
- person: 김시진 / 金始振, confidence=1.0
- person: 장도 / 章道, confidence=1.0
- person: 인조 / 仁祖, confidence=1.0
- person: 현종 / 顯宗, confidence=1.0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1.0
- office: 별시 / 別試, confidence=1.0
- office: 삼사 / 三司, confidence=1.0
- office: 리랑 / 吏郞, confidence=1.0
- office: 병판 / 兵判, confidence=1.0
- office: 문항 / 文衡, confidence=1.0
- office: 우승상 / 右相, confidence=1.0
- office: 호조좌랑 / 戶曹佐郞, confidence=1.0
- office: 시의 / 持平, confidence=1.0
- term: 부주 / 伏誅, confidence=1.0
- term: 적몰 / 籍沒, confidence=1.0
- term: 장폐 / 杖斃, confidence=1.0
- work: 교문 / 敎文,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義湖(호)
- 㐫悖(흑패)
- 㐲誅(부주)
- 旜都官(기지도관)
박세채
- 기사 ID:
20037_028_002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8
- 면/쪽: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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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박세채(朴世采) [주:功臣配享 항목을 볼 것]
독음
박세채[주: 배향 참조]
의미
박세채는 조선后期的 문신으로,功臣配享에 관련된 인물의 항목에서 상세히 기술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본 기사는 핵심 인물 박세채에 대한 간략한 표제이며, 자세한 내용은功臣配享항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相互參照되어 있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박세채 / 朴世采, confidence=1.0
- term: 배향 / 配享, confidence=1.0
윤지완
- 기사 ID:
20037_028_002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8
- 면/쪽: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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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윤지완[주: 배향을 참조할 것]
독음
윤지완
의미
윤지완은 조선 시대 문신으로, 문전에 배향된 인물이다. 본문에서 직접적인 전기나 행적이 서술되지 않고, 기재된 문전의 배향 인물을 참고하라는 뜻의 주석이 붙어 있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윤지완 / 尹趾完, confidence=0.85
윤지선
- 기사 ID:
20037_028_002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8
- 면/쪽: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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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윤지선은 강자(絳子)이고, 정광성의 외손자이며 홍종록의 손녀의 남편이다. 인조 정묘(1627)년에 태어나 자는 중린, 호는 두포이다. 현종 임인(1662)년에 증광에 합격하여 한림과 선랑을 역임했다. 숙종 을해(1695)년에 수상에 오르고 좌의정에 이르렀으며, 기사사에 들어갔다. 갑신(1708)년에 사망하여 향년 78세였다.
독음
윤지선강자정광성외손홍종록손서인조정묘年生字중린호두포현종임인등증광력한림전랑숙종을해입상지좌입기사갑신졸년칠십팔
의미
조선 중기의 문신 윤지선의 약력이다. 인조 정묘년에 출생하여 현종 임인년에 증광에 합격하고 한림과 선랑을 지냈으며, 숙종 을해년에 수상에 오르고 좌의정에 이르렀다. 기사사에 들어간 후 갑신년에 사망했다.
원문
尹趾善絳子鄭廣成外孫洪宗祿孫婿仁祖丁卯生字仲麟號杜浦顯宗壬寅登增廣歴翰林銓郞肅宗乙亥入相至左入耆社甲申卒年七十八[주:三兄弟文科弟趾完見配享趾仁見趾完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윤지선 / 尹趾善, confidence=1.0
- person: 정광성 / 鄭廣成, confidence=1.0
- person: 홍종록 / 洪宗祿, confidence=1.0
- person: 인조 / 仁祖, confidence=1.0
- person: 현종 / 顯宗, confidence=1.0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1.0
- person: 중린 / 仲麟, confidence=1.0
- place: 두포 / 杜浦, confidence=1.0
- office: 한림 / 翰林, confidence=1.0
- office: 선랑 / 銓郞, confidence=1.0
- office: 수상 / 相, confidence=1.0
- office: 좌의정 / 左, confidence=1.0
- office: 기사사 / 耆社, confidence=1.0
- term: 강자 / 絳子, confidence=0.9
- term: 외손자 / 外孫, confidence=1.0
- term: 손서 / 孫婿, confidence=1.0
- term: 증광 / 增廣,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絳子는 호 또는 아명으로 보이나 확신하기 어려움
서문중
- 기사 ID:
20037_028_002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8
- 면/쪽: 0026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8-03T05:26:32.92483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8&aa15no=028&aa20no=20037_028_0026
한글 번역
서문중은 경량손으로서 부사 정기(달성위 경제자의 아들)의 아들을 종숙 감사 원여자의 손으로 삼았다. 이후 금륵의 외손녀(계모)를 두었고, 이시발의 외손녀(친생)를 두었으며, 이후산의 사위가 되었다. 인조 갑술년(1634)에 태어나 자는 도윤, 호는 몽어이고, 효종 정유년(1659)에 태어나 벼슬길에 올랐다. 숙종 경신년(1680)에 상목원에서 선발되어 과거에 장원하고 벼슬길에 나아가 윤청과 청류에랐다. 갑자년(1684)에 어장에 임명되고 훈련장수를 지냈다. 병자년(1700)에 수상에 올라 영의상에 이르렀으며, 이후 未社에 들어갔다. 성격이 삼가고 공손했으며,仁顯后复位에 기여하였다. 병조판서가 되었을 때張氏를 퇴치하였으나, 세론에 배척당했다. 相에 오르자申銋는彈劾할 수 없다고 하였다. 저서에『조야기문』과『장병설』이 있다. 重牢宴을 베풀었다. 기축년(1709)에 사망하니 향년 76세, 시호는 숙헌이다.
독음
서문중 경양손으로 부사 정기(달성위 경제자의 아들)의 아들을 종숙 감사 원여자의 손으로 삼았다. 이후 금륵의 외손녀(소후)가 되고, 이시발의 외손녀(본생)가 되었으며, 이후산의 사위가 되었다. 인조 갑술년에 태어나 자는 도윤, 호는 몽어이다. 효종 정유년에 태어나 벼슬하여 숙종 경신년에 상목으로 선발되어 과거에 장원하고 벼슬길에 나아가 윤청과 청顯에랐다. 갑자년에 어장으로 임명되고, 훈련장수를 지냈다. 병자년에 入相하여 영에 이르고, 이후에는 未社에 들어갔다. 사람이 삼가고 공손하였으며,仁顯后复位에 공로가 있었다. 병판이 되었을 때 張氏를 퇴치하였으나,士論에 배척당했다. 相에 오르자申銋는劾할 수 없다고 하였다. 저서에『조야기문』과『장병설』이 있다. 重牢宴을 지냈다. 기축년에 졸하니 향년 76세, 시호는 숙헌이다.
의미
조선后期的文武兼备의 高官 서문중(1634~1709)의略傳이다. 경량손 출신으로, 여러 외가와 혼인을 통해 권문세족과 연결되었다. 태조 갑술생으로 효종 정유년에 벼슬길에 올랐다. 숙종대에 어장과 훈련장수를 지내고 병자년(1700)에 入相하여 영의상에 이르렀다.仁顯后复位에 공로가 있었으나, 병조판서 재임 시 張氏를 퇴치한 것이 세론의 반발을 샀고, 이후 相에 오르자申銋가 탄핵을 만류했다. 저서『조야기문』과『장병설』이 있었고, 향년 76세에 졸하여 시호 숙헌을 받았다.
원문
徐文重景兩孫以府使貞履[주:達城尉景霌子]子為從叔監司元履子[주:景雨子]后金堉外孫[주:所后]李時發外孫[주:本生]李後山婿仁祖甲戌生字道潤號夢漁孝宗丁酉生貟肅宗庚申以尙牧魁庭試歴颺淸顯甲子拜御将歴訓将丙子入相至領入耆社為人謹恭仁顯后復位也以兵判為張氏陳䟲為士論所擯及拜相申銋以不可劾之所著有朝野記聞将兵說過重牢宴己丑卒年七十六謚肅憲
엔티티 후보
- person: 서문중 / 徐文重, confidence=1.0
- person: 정기 / 貞履, confidence=0.9
- person: 경제 / 景霌, confidence=0.9
- person: 원여 / 元履, confidence=0.9
- person: 금륵 / 金堉, confidence=0.9
- person: 이시발 / 李時發, confidence=0.9
- person: 이후산 / 李後山, confidence=0.9
- person: 신념 / 申銋, confidence=0.9
- work: 조야기문 / 朝野記聞, confidence=0.9
- work: 장병설 / 將兵說, confidence=0.9
- office: 부사 / 府使, confidence=1.0
- office: 감사 / 監司, confidence=1.0
- office: 어장 / 御將, confidence=0.9
- office: 훈련장 / 訓將, confidence=0.9
- office: 병조판서 / 兵判, confidence=1.0
- term: 외손녀 / 外孫, confidence=0.9
- term: 入相, confidence=0.9
- term: 기사 / 耆社, confidence=0.8
- term: 중뇌연 / 重牢宴,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 所后
- 本生
- 所后와 本生의 정확한 구분이 문맥상 불확실
- 張氏
- 陳䟲
- 陳䟲의 정확한 인물 특정과 관계가 불확실
- 過重牢宴
- 過의 의미와중뇌연의 관계가 불확실
최석정
- 기사 ID:
20037_028_002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8
- 면/쪽: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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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4T01:40:18.84722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8&aa15no=028&aa20no=20037_028_0027
한글 번역
최석정[주: 배향을 볼 것]
독음
최석정[주: 배향
의미
최석정은 조선后期的 관료이다. 주석에 배향을 언급하였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최석정 / 崔錫鼎, confidence=0.95
- term: 배향 / 配享, confidence=0.9
이세백
- 기사 ID:
20037_028_002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8
- 면/쪽: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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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8&aa15no=028&aa20no=20037_028_0028
한글 번역
이세백은 사경(士慶)의 증손이며, 음목사(䕃牧使) 정기악(挺岳)의 아들이다. 후손 중 천종손(天從孫) 김광찬(金光燦)의 외손이며, 정유성(鄭維城)의 손서(孫婿)이다. 인조 을해년(1629년)에 태어나 자는 중경(仲庚), 호는 우사(雩沙) 또는 기계(㐀溪)이다. 효종 정유(丁酉)년에 진사(進士)에 합격하고, 숙종 을묘(1679)년에 홍천현감(洪川縣監)으로 증광(增廣)에 합격하여,历任三司銓郞과両銓을 역임하였다.戊寅년에 入相하여 左宅心制行에 이르렀으며, 행실이 밝고 바르며 또 단정하여 한 시대의 명流였다. 계미(1683)년에 졸했으며, 향년 69세이고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형제文科弟世勉과 子宜顯은 아래를 참조.
독음
이세백 사경증손 음목사 정기악자 후천종손 김광찬 외손 정유성 손서 인조을해생 자중경 호우사又一기계 효종정유진사 숙종을묘이홍천현감등증광역삼사전랑양전무인입상지좌재심制행명백준결위일시명류계미졸년육십구언충정
의미
조선后期的 관료 이세백의生平과 가계를 수록한 기사로, 인조 연간에 태어나 효종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숙종년간에 홍천현감을 거쳐 삼사 전랑과 양선을歴任한 뒤 入相하여 左宅心制行에 이르렀다. 행실이 바르고 단정하여 당대 名流로 평가받았으며, 69세에 졸하고 충정 시호를 받았다. 가계는 사경의 증손, 정기악의 아들로 김광찬의 외손, 정유성의 손서이다.
원문
李世白士慶曽孫䕃牧使挺岳子後天從孫金光燦外孫鄭維城孫婿仁祖乙亥生字仲庚號雩沙又㐀溪孝宗丁酉進士肅宗乙卯以洪川縣監登增廣歴三司銓郞両銓戊寅入相至左宅心制行明白峻潔為一時名流癸未卒年六十九謚忠正[주:兄弟文科弟世勉見下子宜顯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세백 / 李世白, confidence=1.0
- person: 사경 / 士慶, confidence=0.9
- person: 정기악 / 挺岳, confidence=1.0
- person: 김광찬 / 金光燦, confidence=1.0
- person: 정유성 / 鄭維城, confidence=1.0
- person: 세면 / 世勉, confidence=0.9
- person: 의현 / 宜顯, confidence=0.9
- place: 홍천 / 洪川, confidence=1.0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1.0
- office: 전랑 / 銓郞, confidence=1.0
- office: 재심제행 / 宅心制行, confidence=0.8
- term: 증광 / 增廣, confidence=0.9
- term: 입상 / 入相, confidence=0.9
- term: 손서 / 孫婿, confidence=0.9
- term: 천종손 / 天從孫, confidence=0.8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term: 시호 / 謚,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䕃牧使(음목사의 정확한 직격과 뜻)
- 後天從孫(천종손의 정확한 계율관계)
- 㐀溪(계기가 원문에서 정확한 한자인지 불확실)
- 左宅心制行(좌재심제행의 정확한 관직 명칭)
- 制行(제행의 정확한 직위)
민진장
- 기사 ID:
20037_028_002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8
- 면/쪽: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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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8&aa15no=028&aa20no=20037_028_0029
한글 번역
민진장은 민정중의 아들이자 홍처윤의 외손이며, 남이성의 사위이다. 인조 기축년에 태어나 字는 유치이고, 현종 기유년에 进士(진사)에 합격하였다. 参奉(삼봉)에 除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이후 두 고을을 두루 지냈고, 숙종 병인년에 별시에서 魁(괴)하여 直陞通政(三陞通政)이 되었다. 삼대 장원(三代壯元)은 학문과 德望이 드물었으며, 士林의 관면이 되었다. 양세에 清操를 지닌 것은 예전에 혹 있었으나,忠孝를 함께 미처 못한 자가 거의 없었다. 수어사(守禦使)를 두루 지낸 후 경진년에 右相에拜授되었으나, 부임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52세, 시호는 文孝이다.
독음
민진장정중자홍처윤외손남이성서인조기축생자 유치현종기유진사제삼봉不就후력이읍축종병인괴별시직승통정삼대장원한유문학덕망위사림관면이양세잉유고혹유지충효혼미대유야전력수어사경진배우상미숙배이자연년오십이칠명문효효명
의미
조선后期的文臣閔鎭長의 行蹟이다. 閔鼎重의 아들이자 洪處尹의 외손으로, 남이성의 사위이다. 인조·현종·숙종에 걸쳐 활동하며, 현종 기유년 进士에 합격하고, 숙종 연간에 별시 魁로 特진되어 通政階에 오르며 三代 장원이라는 武科 이력을 쌓았다. 학문과 德望으로 士林의 지도자가 되었고,忠과 孝를 모두 갖춘 절개를 보였다. 숙종 경진년에 右相에 任大臣 되었으나 부임 전에 졸하니, 향년 52세에 文孝라는 시호를 받았다.
원문
閔鎭長鼎重子洪䖏尹外孫南二星婿仁祖己丑生字稚久顯宗己酉進士除参奉不就後歴二邑肅宗丙寅魁别試直陞通政三代壮元罕有文學徳望為士林冠冕而両世秉有古或有之忠孝婫美殆未有也歴守禦使庚辰拜右相未肅拜而卒年五十二謚文孝孝㫌[주:孫命爀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민진장 / 閔鎭長, confidence=0.98
- person: 민정중 / 閔鼎重, confidence=0.95
- person: 홍처윤 / 洪處尹, confidence=0.95
- person: 남이성 / 南二星, confidence=0.92
- person: 인조 / 仁祖, confidence=0.99
- person: 현종 / 顯宗, confidence=0.99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0.99
- office: 삼봉 / 参奉, confidence=0.9
- office: 수어사 / 守禦使, confidence=0.88
- office: 우상 / 右相, confidence=0.95
- term: 장원 / 壮元, confidence=0.92
- term: 별시 / 別試, confidence=0.9
- term: 사림 / 士林,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김석주
- 기사 ID:
20037_028_004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8
- 면/쪽: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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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금석주(김석주) [주:『상신(相臣)』항을 볼 것]
독음
금석주[주:견상신]
의미
금석주(김석주)에 대한 항목으로, 상세 내용은 상신(相臣) 항목에서 볼 수 있다는 지시 주소(注)를 수록하고 있다. 인물 항목을 상호 참조 형태로 연결한 고전 체례를 보인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석주 / 金錫胄, confidence=0.9
남구만
- 기사 ID:
20037_028_004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8
- 면/쪽: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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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南九만[주:配享 및 相臣 항参照]
독음
남구만
의미
역사 인물 南九만(남구만)을 수록한 항목이다. 주석을 통해 이 인물의 상세 내용이 ‘配享’(배향) 및 ‘相臣’(상신) 항목에서 확인할 수 있음을 안내하고 있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남구만 / 南九萬,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주석의 ‘見’자는 ‘參照’의 의미로 보이나, 원문 전체의 정확한 编纂 체계를 파악하기 전에는 완전한 해석이 불확실하다
김만중
- 기사 ID:
20037_028_004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8
- 면/쪽: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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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김만중은 김만기의 아우이며 이은상의 사위이다. 인조 정축년(1627년)에 태어나 자는仲叔이고 호는 서포이다. 서자(遺腹子)로서 아버지를 한 번도 뵙지 못한 것이 평생의 슬픔이었다. 효종 임진년(1652년)에 진사에 급제한 뒤 성균관에 들어가 시관(試官)이 되었는데, 벼슬을 아껴준 사람이 그를 아래 관직에 두었다. 현종 을사년(1665년)에 장원하고 정시(庭試)에 합격하여 한림원과춘방 등을 역임하고 전랑과 부학을 지냈다. 숙종 때 두 차례에 걸쳐文衡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숭정大夫와 병조판승에 그쳤다. 충성과 효도의 큰 절개를 지녔으며, 문장이 당세에서 으뜸이었으니 특히 시와歌에 능하였다.直言으로 인해 여러 번 귀양을 가았다. 재상 相積의奸을 논박하여金城에 유배되었다. 숙종조에經筵을 알던 자리에서 그림을 동반하여 강론하며 아뢴 글에서, 조사석이 십리 마을에서 다투는 말에, 귀인 장씨와 어머니 가문이 친밀하기 때문에 부탁으로 재상이 되었다고 하였다. 임금을 노여워하게 하여 선천에 귀양 보냈다. 2년 뒤 풀려났고, 기해년에 다시 南海에 유배되었다. 임신년(1692년)에 귀양지에서 사망하니 향년 오십여섯 살이었다. 갑술년(1694년)에 관직이 회복되었고, 시호는 文孝 효정이다.
독음
금만중 만기제 이은상서 인조정축생 자중숙 호서포 이축자불식부면위终身痛 효종임진진사거괴시험관위석기복치하 현종을사괴정시력翰林춘방전랑부학 숙종조재위문형불,拜관지지 숭정병반유충효대절문장관당세유선우시歌이直言룰피竄謫론척상적지간배금성 숙종조이지경연인화강주왈 조사석가지십려항지언왈 여귀인장씨모가친밀고청탁이지상矣 촉상눠竄선천거이년 유환기해荐棘남해 임신 졸어謫소년오십육갑술복관휘문효효정
의미
조선 숙종조 문신 김만중(1627~1692)의 행적을 수록한 기문이다. 서자로 태어나 아버지를 모른 채 성장한 불우한 어린 시절, 문장과 시서로 당세에名声을 얻어 벼슬길에 올랐으나直言으로屡次 귀양을 떠도는 불안한 관료 생활을 했다. 특히 재상 相積과 그 측근 조사석의 권력 비리를 논박하다 선천 등지로 유배되었다가, 기해년에再度 南海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갑술년에 복관되고 문효 시호를 받았다. 효종 임진시관의 下處배치, 현종 을사년의 장원, 숙종조文衡不就 등 주요 사건이 시기별로 기재되어 있으며,文中 加十閭巷, 貴人張氏 등 당대 정치势力과 관련된 핵심 인물이 등장한다.
원문
金萬重萬基弟李殷相婿仁祖丁丑生字仲叔號西浦以遺腹子不識父面為終身痛孝宗壬辰[주:十六]進士居魁試官為惜其福寘之下顯宗乙巳魁庭試歴翰林春坊銓郞副學肅宗朝再為文衡不拜官止崇政兵判有忠孝大節文章冠當世尤善於詩歌以直言屡被竄謫論斥相積之奸配金城肅宗朝以知經筵因畫講奏曰趙師錫之加十閭巷之言曰與貴人張氏母家親宻故請托而致相矣觸上怒竄宣川居二年宥還己巳荐棘南海壬申卒于謫所年五十六甲戌復官諡文孝孝㫌[주:孫龍澤光澤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김만중 / 金萬重, confidence=0.98
- person: 만기 / 萬基, confidence=0.97
- person: 이은상 / 李殷相, confidence=0.97
- person: 조사석 / 趙師錫, confidence=0.96
- person: 상적 / 相積, confidence=0.93
- person: 손용택 / 孫龍澤, confidence=0.95
- place: 금성 / 金城, confidence=0.96
- place: 선천 / 宣川, confidence=0.96
- place: 남해 / 南海, confidence=0.96
- office: 문형 / 文衡, confidence=0.97
- office: 숭정대부 / 崇政, confidence=0.95
- office: 병조판승 / 兵判, confidence=0.95
- office: 경연 / 經筵, confidence=0.96
- office: 부학 / 副學, confidence=0.94
- term: 서자 / 遺腹子, confidence=0.95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0.97
- term: 정시 / 庭試, confidence=0.96
- term: 장원 / 魁, confidence=0.94
- term: 천적 / 竄謫, confidence=0.92
- term: 지경연 / 知經筵, confidence=0.88
불확실한 어휘
- 才學이 아닌 孝宗壬辰進士의 直接續讀 구조 (효종 임진진사의 是否直接 붙여 읽는지가文脈상 명확하지 않음)
- 荐棘의 荐자가 再度 유배之意인지 특정 단어의 오기 가능성
- 孝㫌 주기 部分文中에서 孫龍澤光澤見下의 구체적所指人物이 명시되지 않음
남용익
- 기사 ID:
20037_028_004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8
- 면/쪽: 0047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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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14:56:06.47222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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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남용익[주: 인조조 호당을 참조할 것]
독음
남용익
의미
남용익은 조선 인조 연간에 활동한 문인으로, 호당(湖堂)에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이 짧은 항목은 인조조 호당에서 그를 찾을 수 있다는 지시 사항을 포함하고 있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남용익 / 南龍翼, confidence=1.0
- term: 호당 / 湖堂, confidence=1.0
- period: 인조조 / 仁祖朝, confidence=1.0
민암
- 기사 ID:
20037_028_004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8
- 면/쪽: 0048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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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14:57:13.49921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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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민암[주:재상들을 감찰하다]
독음
문민암[주:견상신]
의미
閔黯은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주석에 의하면 상신(재상)들을 감찰·검열하는 직책을 맡은 인물임을 나타낸다. 相臣을 見한다는 표현은 재상들의 언행이나 직임을 살피는 감찰 업무를 의미한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민암 / 閔黯, confidence=0.95
- term: 상신 / 相臣, confidence=0.9
- term: 견 / 見,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주석 ‘見相臣’의 구체적 직칭이 한림보궐 등 특정 감찰 직책인지 불분명
권유
- 기사 ID:
20037_028_004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8
- 면/쪽: 0049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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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4T01:43:35.5558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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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권유는 괴(跬)의 10세손이다. 음봉사(奉事)의 아들이며, 이덕영의 손녀의 남편이 정백형이다. 또 다른 사위는 인조 계유년에 태어난 자(字)가 퇴보(退甫)이고 호가 하계(霞溪)이다. 현종 을사년에 별시(別試)에 합격하여 전랑과 사인을 역임하고, 숙종조에 가선(嘉善)으로서 문호를 주관하는 벼슬을 맡았으며, 관至 예조 판서예관至禮判에 이르렀다. 기사사(耆社)에 들어갔다. 갑술년에 길주 부윤을 보임하고, 을해년에 예산으로 좌천되었다. 문장이 뛰어나 당세에 존중받았다. 갑신년에 사망하여 향년 72세였다.
독음
권유 괴십세손 음봉사 선자 이덕영 손서 정백형 서 인조 계유생 자 퇴보 호 하계 현종 을사 등별시 역 선랑 사인 숙종조以来 가선 전 문형 관至 예판 입 기사 갑술 보 길주 을해 좌 예산 문장 전첨 견중 당세 갑신 졸 년 칠십이
의미
조선 시대 문신 권유의 행적을 적은 기문이다. 권유는 권괴의 10세손으로 현종 연간 별시에 합격하여 전랑·사인 등을 역임하고 숙종조에 가선으로 문호를 주관하는 벼슬을 맡은 뒤 예조 판서에 이르렀다. 기사사에 들어갔으나 갑술년에 길주 부윤에 보임되었다가 을해년에 예산으로 좌천되었다. 문장이 뛰어나 당세에 존중받았으며, 갑신년에 향년 72세로 사망하였다.文中에는 묘자의 관계와 관료 경력, 그리고 인물 평가가 간결하게 수록되어 있다.
원문
權愈跬十世孫䕃奉事偳子李德泂孫婿鄭百亨婿仁祖癸酉生字退甫號霞溪顯宗乙巳登别試歴銓郞舍人肅宗朝以嘉善典文衡官至禮判入耆社甲戌補吉州乙亥竄禮山文章典贍見重當世甲申卒年七十二
엔티티 후보
- person: 권유 / 權愈, confidence=1.0
- person: 이덕영 / 李德泂, confidence=1.0
- person: 정백형 / 鄭百亨, confidence=1.0
- person: 인조 / 仁祖, confidence=1.0
- person: 현종 / 顯宗, confidence=1.0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1.0
- person: 퇴보 / 退甫, confidence=1.0
- person: 하계 / 霞溪, confidence=1.0
- place: 길주 / 吉州, confidence=1.0
- place: 예산 / 禮山, confidence=1.0
- office: 봉사 / 奉事, confidence=0.9
- office: 별시 / 別試, confidence=1.0
- office: 전랑 / 銓郞, confidence=1.0
- office: 사인 / 舍人, confidence=1.0
- office: 가선 / 嘉善, confidence=1.0
- office: 문형 / 文衡, confidence=1.0
- office: 예판(예조 판서) / 禮判, confidence=1.0
- office: 기사사 / 耆社, confidence=1.0
- term: 음봉사 / 䕃奉事, confidence=0.7
- term: 문장 전첨(문장이 풍부하고 풍성함) / 文章典贍, confidence=0.9
- term: 괴십세손(10세조손) / 跬十世孫,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䕃奉事는 봉사의 일종으로 보이나 정확한 직제 명칭이 불확실함
- 跬은 권씨의 조상 이름으로 추측되나 확인 필요
박태상
- 기사 ID:
20037_028_005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8
- 면/쪽: 0050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4T01:43:23.43595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8&aa15no=028&aa20no=20037_028_0050
한글 번역
박태상이 먼저 손승지지堅의 서사를 맡았다. 호는 고흡이다. 아들 조涑이 인조 병자년에 출생했고, 자는 사행이며 호는 만휴堂이다. 또存誠齋가 있다. 효종 갑오년에 열아홉 살의 진사가 되었고, 현종 신해년 이전에 교관으로 청시에서 1위를 하였다. 벼슬은 선랑을 지냈고, 숙종 기미년에 복정으로 重試에서 1위를 하며典文衡官을 맡았다. 벼슬은 더 올라가吏判에서 그쳤다. 경종이 입학할 때에 박사가 되었고, 관례 때에 대종백이贊官이 되었다. 타고난 자질이 도에 가까웠고, 말에 조잡함이 없었다. 한때 청의(清議)에서 의지하여 중하게 여겼다. 글을 지음이 명쾌하고 말씨가 깨끗하여, 시험을 주관할 때에 문장을専求贍達하게 하였다. 숙종 병자에 사망하여 향년 61세였다. 영상에 추증되고 보禄功臣에 보충되었으며, 반계부원군이며 시호는 文孝이다.
독음
박태상炡손승지지堅[주:호고흡]자조속서인조병자생자사행호만휴당우존성재재효종갑오[주:십구]진사현종신해이전교관괴청시력선랑숙종기미이복정괴중시전문형관정리즈판경종입학시위박사관례시다대종백위제관천자近도어무조속일시청의의뢰이위중위문리창어결장시소문전구전달숙종병자졸년육십일증영상보록공신반계부원군시문효
의미
박태상(朴泰尚)은 인조 병자년에 태어난 조선后期的 문관이다. 효종 갑오년 19세에 진사가 되고 현종·숙종 연간 교관, 선랑, 복정 등을 역임했다. 重試에서 1위를 하며典文衡官이 되었고, 숙종 때吏判에 이르렀으나 그쳤다. 경종의 입학식 박사로 재직했고 관례 때贊官을 맡았다. 타고난 자질이 도에 가깝고 清議에서 중하게 여겨졌으며, 시험 주관 시 명쾌하고 깨끗한 文體를 추구했다. 숙종 병자에 사망, 향년 61세로 영상에 추증되고 반계부원군에 추봉되었으며 文孝의 시호를 받았다.
원문
朴泰尙炡孫承㫖堅[주:号痼翕]子趙涑婿仁祖丙子生字士行號晩休堂又存誠齋孝宗甲午[주:十九]進士顯宗辛亥以前教官魁庭試歴銓郞肅宗己未以僕正魁重試典文衡官止吏判景宗入學時為博士冠禮時以大宗伯為䝺官天資近道語無粗俗一時淸議倚以為重為文理暢辤潔掌試所文専求贍達肅宗丙子卒年六十一贈領相補祿功臣潘溪府院君諡文孝[주:兄弟文科弟泰素兵佐子弼健見下玄孫宗甲見下宗來見下五世孫晦壽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박태상 / 朴泰尚, confidence=1.0
- person: 손승지지 / 孫承㫖堅, confidence=0.9
- person: 조속 / 趙涑, confidence=1.0
- person: 박태소 / 朴泰素, confidence=1.0
- person: 필건 / 弼健, confidence=1.0
- person: 종갑 / 宗甲, confidence=1.0
- person: 종래 / 宗來, confidence=1.0
- person: 회수 / 晦壽, confidence=1.0
- place: 만휴당 / 晩休堂, confidence=1.0
- place: 존성재 / 存誠齋, confidence=1.0
- place: 반계부원군 / 潘溪府院君, confidence=1.0
- office: 교관 / 教官, confidence=1.0
- office: 선랑 / 銓郞, confidence=1.0
- office: 복정 / 僕正, confidence=1.0
- office: 전문형관 / 典文衡官, confidence=1.0
- office: 리판 / 吏判, confidence=1.0
- office: 박사 / 博士, confidence=1.0
- office: 대종백 / 大宗伯, confidence=1.0
- office: 영상 / 領相, confidence=1.0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term: 청시 / 庭試, confidence=1.0
- term: 중시 / 重試, confidence=1.0
- term: 관례 / 冠禮, confidence=1.0
- term: 입학 / 入學, confidence=1.0
- term: 청의 / 清議, confidence=1.0
- term: 시호 / 諡, confidence=1.0
- term: 공신 / 功臣,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炡는 전거(傳記) 표기 오류로 추정되며下文承接의 약칭으로 보임
- 堅[号痼翕]는 명확한 해석이 어려우나 호고흡으로 추정
- 䝺官은 贊官의 오기일 가능성 있음
최석정
- 기사 ID:
20037_028_005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8
- 면/쪽: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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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14:57:25.13205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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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최석정[주: 영의정을 역임한 인물]
독음
최석정[주:견상신]
의미
조선의 과거 영의정(丞相)을 역임한 인물 최석정에 대한 짧은 기재이다. ‘見相臣’은 상신을 볼 것, 즉 영의정 벼슬을 지냈음을 의미하는 주석이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최석정 / 崔錫鼎, confidence=1.0
이여
- 기사 ID:
20037_028_005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8
- 면/쪽: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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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여[주:『상신(相臣)』항参照]
독음
이여
의미
이여는 조선시대 재상 열전인 『상신』편에 그 전기(傳記)가 수록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상호참조 표제어이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여 / 李畬, confidence=0.95
- work: 상신 / 相臣,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相臣의 구체적 편명(篇名)知道她 全集 編者 不詳으로 인하여 표기 이원화 가능성 있음
서종태
- 기사 ID:
20037_028_005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8
- 면/쪽: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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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서종태[주: ‘상신’ 조항을 볼 것]
독음
서종태[주:견상신]
의미
조선 시대 인물 서종태의 이름과 관련 주석을 수록한 사전 인용 항목이다. ‘見相臣’은 이 인물에 대한 상세 설명이 ‘상신’ 항목에 수록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참조 표지이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서종태 / 徐宗泰, confidence=0.95
- term: 견상신 / 見相臣,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송상기
- 기사 ID:
20037_028_005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2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28
- 면/쪽: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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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7T00:49:39.79427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28&aa15no=028&aa20no=20037_028_0056
한글 번역
송상기는 궤염의 아들이며 김수증의 아우이다. 그의 조카는 효종이다. 정유년에 태어나 옥여라는 字를 사용하고 옥오재라는 호를 칭했다. 송시열의 문인이다. 숙종 갑자년에 경시(庭試)에 합격하여 등제하였다. 벼슬은 한림(翰林)·남상(南床)·사인(舍人)·부학(副學)을 역임하고, 통정(通政)·전문(典文衡)·육조판관(六曹判官)을 지냈다. 열 번째 벼슬인 이판관(吏判官)에까지 이르렀으나, 숭록(崇祿)에 이르러 종결하고 판돈녕(判敦寧)에 이르렀다. 문장이 풍부하고 민첩하여 당시에 비할 만한 자가 적었다. 경종 임인년에 사화(士禍)가 일어나, 병판(兵判)의 신분으로 강진(江津)으로 유배되었다. 계묘년에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향년 67세였다. 영조 을사년에 아우가 복관되었고,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독음
송상기 궤염자 김수증 남질제효종정유생 자옥여호옥오재 송시열문인 숙종갑자등정시력翰林 남상사인 부학 이내통정전문형반육조십배리판관지숭룩판돈녕문장섬민당시한비 경종임인사화 이내병반둔강진계축 졸우적소연령육십칠 영조을사제부관시문정
의미
조선后期的文臣 宋相琦는 송시열의 문인으로서 한림·사인·부학 등을 거쳐 이조판서에까지 올랐으나, 경종 임인년(1722) 사화 때 병조판서 신분으로 강진으로 유배되었다가 그다음 해 사망한 인물이다. 문장이 뛰어나 당시에 드문 인물이었으며, 사후 영조대에 복관되고 문정 시호를 받았다.文中의 제복과 효종에 대한 언급은 그의 가문과 관련한 기록이다.
원문
宋相琦奎濂子金壽增娚侄孝宗丁酉生字玉汝號玉吾齋宋時烈門人肅宗甲子登庭試歴翰林南床舍人副學以通政典文衡判六曹十拜吏判官止崇祿判敦寧文章贍敏當時罕比景宗壬寅士禍以兵判竄江津癸卯卒于謫所年六十七英祖乙巳弟復官諡文貞
엔티티 후보
- person: 송상기 / 宋相琦, confidence=0.98
- person: 궤염 / 奎濂, confidence=0.95
- person: 김수증 / 金壽增, confidence=0.98
- person: 송시열 / 宋時烈, confidence=0.99
- person: 효종 / 孝宗, confidence=0.99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0.98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0.99
- place: 강진 / 江津, confidence=0.97
- office: 정시 / 庭試, confidence=0.96
- office: 한림 / 翰林, confidence=0.98
- office: 사인 / 舍人, confidence=0.98
- office: 부학 / 副學, confidence=0.98
- office: 병판 / 兵判, confidence=0.97
- office: 리판 / 吏判, confidence=0.95
- office: 판돈녕 / 判敦寧, confidence=0.96
- term: 사화 / 士禍, confidence=0.99
- term: 숭록 / 崇祿, confidence=0.95
- term: 문정 / 文貞, confidence=0.98
- term: 자(표자) / 字, confidence=0.97
- term: 호(별호) / 號, confidence=0.97
불확실한 어휘
- 남상(南床)은 사인의 한칭으로 추정되나 구체적 직위 명칭이文中省略 가능
- 娚侄의 구체적 관계(형제·조카) 표현이文中축약됨
- 文章贍敏은 문장의 풍성과 민첩함을 뜻하나 구체적 작품 언급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