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년편고 [紀年便攷n1-37책] - 본문 번역 묶음 029
- 책 ID:
kh2_je_a_vsu_20037_000
- 수록 기사: 75건
조경남
- 기사 ID:
20037_018_015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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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05:59:57.00510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8&aa15no=018&aa20no=20037_018_0151
한글 번역
조경남은 남원의 유학이다. 선조 정유년(1597)에 왜병의화를 피해 지리산 파근사에서 피난하였다. 이때 의분하게 의거를 일으키매, 천한 신분인 박언량 등이 그를 따르며 내적 도적을 많이 참杀하여 피란하는 백성을 구했다. 도적 36급을 베었고, 이어 도적 123급을 죽였다. 거느린 군사 중 다친 이는 없었으며, 스스로 공을 내세우지 않고 적의 귀를 헌납하였다. 또한 『난중잡록』을 지어 그 내용이 매우 상세하였고, 그 안에 분발하고 의로운 기개가 많이 담겨 있었다.
독음
조경남 남원유생이니라 선조 정유년에 병사의 화를 피해 지리산 파근사에 피난하였더니, 의분하게 의거를 일으키매, 천한 자인 박언량 등이 따라가 많이 내적 도적을 살육하여 피난 백성을 구원하였으니, 도적 36급을 베었으며, 또 도적 123급을 죽였으며, 거느린 병사는 손상된 자가 없었으며, 또한 공을 자랑하지 않고 적의 귀를 헌납하였으며,,曾经『난중잡록』을 지어 매우 상세하였고, 또한 분발한 의리가 많았다.
의미
조선 선조 시기 남원 출신 유학 조경남이 정유년(1597) 임진왜란 기간에 지리산 파근사로 피난하여 의거를 일으켰다. 천한 출신 박언량 등이 그의 거사에 가담하여 내적 도적을 소탕하고 피란 백성을 구했다.斩馘功으로 도적 159급을 베었으나 자부심을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적의 귀를 헌납하는 검소한 태도를 보였으며, 후에 『난중잡록』을 편찬하여 당시 난황을 상세히 기록하였다는 내용이다.
원문
趙慶男南原儒生也宣祖丁酉避兵于智異山波根寺慷慨擧義於是賤人朴彦良等從之多殺內賊以救避兵之民斬賊三十六級又殺賊一百二十三級所領之兵無有損傷亦不衒功獻馘甞著亂中雜錄頗詳亦多發憤之義
엔티티 후보
- person: 조경남 / 趙慶男, confidence=0.97
- person: 박언량 / 朴彦良, confidence=0.91
- place: 남원 / 南原, confidence=0.95
- place: 지리산 / 智異山, confidence=0.94
- place: 파근사 / 波根寺, confidence=0.75
- king: 선조 / 宣祖, confidence=0.98
- work: 난중잡록 / 亂中雜錄, confidence=0.97
- term: 유생 / 儒生, confidence=0.92
- term: 급 / 級, confidence=0.95
- term: 적귀 / 馘, confidence=0.88
불확실한 어휘
- 波根寺의 정확한 위치와 현대어 명칭이 불분명하며, 파근사가 南海 波根寺 또는 咸陽 波根寺인지 확인이 필요함
- 賤人의 해석: 천한 신분(비천한 계층)인지 自비(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한 표현)인지 확정하기 어려움
박경업
- 기사 ID:
20037_018_015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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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8&aa15no=018&aa20no=20037_018_0152
한글 번역
박경업은 효민(孝敏)의 손자이다. 선조 갑오년에 문과에 올랐다. 성격이 의리 있고 호방하며 고집이 세었다. 처음에 정언이 되어 여러 번 수령의 다스리지 않는 일을 반박하니 곧은 명성이 크게 떨쳐 조정은 물론 온 나라가 주목하였다. 여러 번 벼슬하여 대간이 되었는데, 공의에 합치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비록 권贵이라도 탄핵하였다. 한 달 사이에 십여 명을 파직시켰고, 이로 인해 원망이 쌓여 마침내 벼슬길이 막혔다. 여러 번 고을을 맡아 다스렸으나 다 좋은治績가 있었고, 행동할 때마다 비방을 받아 연달아 탄핵을 당하였다. 사람들은 이것을 그가 앞서 행한 반박에 대한 보복이라 여기었다. 관직은 同中樞에서 그쳤다.
독음
박경업은손선조갑오등문과성강개편집시위정언야려반수령치지자직성대진조야식목려위태간유불겹공의자수권귀역론할일월파척위십여인이이차적원수지지질연단주군개유치성동칩득방연피대평가인위희반지보호관지동중추
의미
조선 선조 시대의 관료 박경업의 인물평이다. 갑오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과 대간 자리를 맡아 수령의 부정행위와 권贵의 비리를 곧게 비판하고 탄핵하였다. 한 달에 십여 명을 파직시킬 정도로 직격을 펼쳤으나, 이로 인해 원망을 사서 벼슬길이 막히고 연이은 탄핵을 받았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의 직격 행위가 보복의 원인이 되었다 여기졌고, 결국 同中樞로 벼슬이 멈추었다. 강직하면서도 고집이 세어 이해 관계에 융통성이 없었던 성격이 벼슬에서의 성공과 실패 양면을 만들어낸 것으로 평가된다.
원문
朴慶業誾孫宣祖甲午登文科性慷慨偏執始為正言也屡駁守令之不治者直聲大振朝野拭目屡為臺諌有不愜公議者雖權貴亦論劾一月罷斥為十餘人以此積怨遂至蹇滯屡典州郡皆有治聲動輒得謗連被臺評人以為喜駁之報官止同中樞
엔티티 후보
- person: 박경업 / 朴慶業, confidence=1.0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1.0
- work: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office: 정언 / 正言, confidence=1.0
- office: 대간 / 臺諫, confidence=1.0
- office: 동중추 / 同中樞, confidence=1.0
- term: 수령 / 守令, confidence=1.0
- term: 질체 / 蹇滯, confidence=0.9
- term: 대평 / 臺評,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이언길
- 기사 ID:
20037_018_015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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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언길이 선조 기축년에 있었습니다.汝立이 옥에 갇혔을 때, 김제군수로서 창곡 열여섯 섬을汝立에게 题給하여 죄를 이루게 하였습니다. 호남 유생 정암수 등이 임금의 명을 받아 상소하여 이언길과 유종지가 역적과 결탁한 죄를 논핵하며, 결국 곤장을 맞아 죽었습니다.
독음
이언길선조기축여립옥시음이제군수제급창곡십여석어여립처성죄호남유생정암수등응지상소론언길유종지결정역적치지병피장사
의미
이 기사는 선조 연간 이언길이 김제군수 재임 중汝立이라는 인물의 옥사에 관련하여 창곡을 제공하고 이를 죄로 삼은 사건을 기록한다. 이후 호남 유생 정암수 등이 이언길과 유종지의 역적 결탁을 논핵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그들은 곤장을 맞아 죽었다. 이 사건은 사초 편찬 과정에서汝立 관련 사案中 이언길의 죄과를 기재하면서 호남 유생의 상소 결과까지 함께 수록한 기사이다.
원문
李彦吉宣祖己丑汝立獄時以金堤郡守題給倉穀十餘石於汝立處成罪湖南儒生丁巖壽等應旨上䟽論彦吉柳宗智締結逆賊之罪并被杖死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언길 / 李彥吉, confidence=0.95
- person: 여립 / 汝立, confidence=0.6
- person: 유종지 / 柳宗智, confidence=0.9
- person: 정암수 / 丁巖壽, confidence=0.95
- place: 김제군 / 金堤郡, confidence=0.95
- place: 호남 / 湖南, confidence=0.95
- term: 제급 / 題給, confidence=0.7
- term: 창곡 / 倉穀, confidence=0.95
- term: 장사 / 杖死,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유덕수
- 기사 ID:
20037_018_015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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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8&aa15no=018&aa20no=20037_018_0154
한글 번역
유덕수는 음서로 문화인문옥자의 작호를 받았고, 자는 맑정이며, 명종 기유년에 태어났다. 경신년에 별시에서 합격하여 여러牧使(목사)를 두루 역임하고 벼슬이 정3품에 이르렀다. 선조 기축년에 윤임 등이 옥에 갇혔을 때, 유덕수는 선산부사로 재임하던 중이었다. 예언서가 유출되었는데, 이 때문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고 죽었다.
독음
유덕수문화인문옥자 자 맑정 명종기유생 빈 경신등별시 녑목사관지정 선조기축 여립옥시 덕수시임 선산부사 유잠서지출 이차 연고사
의미
유덕수는 조선 명종 연간에 벼슬에 진출하여 여러 지역의 목사를 지내고 정3품 벼슬에 이르렀다. 선조 기축년(1658) 윤임 등의 옥사가 일어났을 때, 선산부사로 재임하던 중 예언서(잠서)가 유출된다는 이유로 이 사건에 연루되어 고문 과정에서 사망하였다.
원문
柳德粹文化人文沃子字仲精明宗己酉生貟庚申登别試厯牧使官止正宣祖己丑汝立獄時德粹時任善山府使有䜟書之出以此辭連栲死
엔티티 후보
- person: 유덕수 / 柳德粹, confidence=1.0
- person: 여립 / 汝立, confidence=0.9
- place: 선산부 / 善山府, confidence=1.0
- office: 목사 / 牧使, confidence=1.0
- term: 별시 / 別試, confidence=1.0
- term: 잠서 / 䜟書, confidence=1.0
- term: 잠서유출 / 䜟書之出,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이정면
- 기사 ID:
20037_018_015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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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8&aa15no=018&aa20no=20037_018_0155
한글 번역
이정면은 홍남손 문가선민각(자(字)는 지윤, 호는 사병당, 예문관의 노관이 되어 가선으로 승진하였다)의 아들이었다. 자는 효유, 호는 오재이다. 선조 정유년(1597)에 사과(司果)로 정시(庭試)에 급제하였다. 양중(養中)으로부터 이정면에 이르기까지 열세대 동안 모두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여러 고을의 군수를 지내고 관직은 정(正)에 이르렀다.
독음
이정면 홍남손 문가선민각(자 지윤호 사병당 예참의노관 승가선) 자 효유호 오재 선조 정유년以来 사과로 정시험에 급제양중으로부터 정면까지 십세 과거 급제 졸군수 관직은정에 이르렀다
의미
조선 선조 때 인물 이정면의 가계와 약력을 적은 기록이다. 홍남손 문가선민각의 아들로 선조 정유년(1597)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양중(養中)부터 자신에 이르기까지 열세대가 모두 과거에 합격한 가문 출신이다. 여러 고을의 군수를 역임하고 정(正) 자의 관직에 이르렀다.
원문
李廷冕洪男孫文嘉善民覺[주:字志尹號四屏堂厯參議老陞嘉善]子字孝移號痦齋宣祖丁酉以司果登庭試自養中至廷冕十世登科厯郡守官止正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정면 / 李廷冕, confidence=0.95
- person: 홍남손 / 洪男孫, confidence=0.9
- person: 문가선 / 文嘉善, confidence=0.9
- person: 민각 / 民覺, confidence=0.9
- person: 지윤 / 志尹, confidence=0.9
- person: 효유 / 孝移, confidence=0.85
- office: 사과 / 司果, confidence=0.9
- office: 참의 / 參議, confidence=0.9
- office: 군수 / 郡守, confidence=0.95
- term: 정시 / 庭試, confidence=0.9
- term: 등과(과거 급제) / 登科, confidence=0.95
- term: 가선(관직명) / 嘉善,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痦齋(오재) - 호의 정확한 뜻이 불분명하며 오자 가능성 있음
- 正(정) - 관직명이 중간에 잘린 것으로 보임, 정확한 직함이 불확실함
이황종
- 기사 ID:
20037_018_015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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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8&aa15no=018&aa20no=20037_018_0156
한글 번역
이황종이 선조 기축년에 유영경이 옥에 갇힌 때, 유영경의 문서 중에 이황종이 지은 글이 시사를 극도로 비방한 것이 있어, 결국 붙잡아 끌어다가 형을 받아 죽게 되었다.
독음
이황종 선조 기축 유립 옥시 유영경 문서 중 유황종서 극지시사 수나치 형사
의미
선조 기축년(1569년경) 옥사 과정에서 유영경의 문서를 압수·검토하던 중, 이황종이 시사를 심하게 비방하는 글을 썼다는 사실이 드러나 이황종을 체포하여 형에 处했다는 사건 기록이다. 유영경과 연루된 옥사의 한 축에 해당한다.
원문
李黃鍾宣祖己丑汝立獄時柳永慶文書中有黃鍾書極詆時事遂拿致刑死
엔티티 후보
- person: 이황종 / 李黃鍾, confidence=0.95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0.95
- person: 유영경 / 柳永慶, confidence=0.95
- term: 형사(사형) / 刑死, confidence=0.9
- term: 문서 / 文書,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宣祖己丑년비록 선조 시대 기축년이 여러 해 있어 실제 연도가 불확실함
- 極詆時事의 구체적 내용과罪名의 법적 성격이 원문만으로 명확하지 않음
신로
- 기사 ID:
20037_018_015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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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06:00:50.56483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8&aa15no=018&aa20no=20037_018_0157
한글 번역
신로는 고령 지역 사람으로, 자는 제이이다. 명종 정묘년에 사마(군직)를 수여받아 오품 직급을 받았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선조 임진년에 단천 태수 강찬에게 의거를 권고하여 격문을 지었는데, 이를 읽은 자는 눈물을 흘렸다. 두 왕자가 포로로 잡혀갔을 때, 신로는同族인 석윤 등과 함께 무장을 하고 일어나, 정문부를 지도자로 삼아 군사를 일으켰다. 마침내 적을 격파하여 육진을 회복하였다.
독음
신로 고령인 자 제이 명종 정묘 사마 오품 직 부취 선조 임진 권 단천 수 강찬 거 의 위 작 격문 문자 제하 급 이 왕자 피로 신로와 종인 석윤등 기병 추 정문부 위帅哥 졸 파 적 복 육진
의미
신로는 고령 출신으로, 명종대에 관직을 받았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선조 임진년(임진왜란) 때 단천 태수 강찬의 의거를 권고하며 격문을 지어 동의를 얻었다. 두 왕자가 피로 잡힌 뒤, 동족 석윤 등과 함께 무장하여 정문부를 지도자로 삼아起義하였고, 결국 적을 격파하고 육진을 회복하였다. 임진왜란기에義兵을 일으킨 인물의 활동과功勳을 기록한 기사이다.
원문
申櫓高靈人字濟而明宗丁卯司馬授五品職不就宣祖壬辰勸端川守姜燦擧義為作檄文聞者涕下及二王子被擄櫓與宗人石潾等起兵推鄭文孚為帥卒破賊復六鎭
엔티티 후보
- person: 신로 / 申櫓, confidence=0.95
- place: 고령 / 高靈, confidence=0.98
- person: 석윤 / 石潾, confidence=0.92
- person: 강찬 / 姜燦, confidence=0.95
- place: 단천 / 端川, confidence=0.96
- person: 정문부 / 鄭文孚, confidence=0.93
- place: 육진 / 六鎭, confidence=0.88
- year: 정묘 / 丁卯, confidence=0.85
- year: 임진 / 壬辰, confidence=0.85
- office: 사마 / 司馬, confidence=0.9
- office: 수(태수) / 守,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字濟而에서 字와 이름의 정확한 연결관계
- 五品職의 구체적 직명
장인우
- 기사 ID:
20037_018_015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58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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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3T23:28:56.650528+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8&aa15no=018&aa20no=20037_018_0158
한글 번역
장인우는 풍덕인이다. 태어난 지 다섯 달에 아버지를 여의고, 세 살에 어머니를 여의어 각각 삼년상을 지냈다. 부모의 제사를 직접 맡아的主持하며 상복을 풀지 않았으며, 매일 아침과 저녁에 향을 피워 빌고 나아가 무릎이 굳을 정도로 닦였다. 나이 예순여덟 살에야 상복을 벗었을 때, 턱수염과 머리카락에 검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이체가 효행을 지었다.
독음
장인우 풍덕인생 오월 실호 삼세 실시 추상 각 삼년 친집전奠 불해 상복 매 어 신혼 분향 배성 이지 등지 전지 오십팔 세 시 탈쇠 수발 무 일이 흑자 이이 체 찬 효행
의미
조선 시대 효자 장인우의 행적을 기록한 기사이다. 장인우는 태어나 자기도 전에 부모를 모두 여의었으나, 부모의 상을 삼년가량 지내고 그 뒤로도 매일 아침과 저녁에 제사를 지내며 무릎이 굳도록 절하며孝敬했다. 예순여덟 살에 상복을 벗었을 때 이미 턱수염과 머리카락이 온데다 희어져 있을 정도로 오래 혼자 상을 지킨孝行者였다. 유명한 문신 이이체가 이를 효행으로 기록했다.
원문
張仁友豊德人生五月失怙三歲失恃追喪各三年親執奠不觧喪服每於晨昏焚香拜省以至滕胝年五十八始脫衰鬚髪無一二莖黑者李珥撰孝行
엔티티 후보
- person: 장인우 / 張仁友, confidence=1.0
- person: 이이체 / 李珥, confidence=1.0
- place: 풍덕 / 豊德, confidence=0.95
- term: 부모 / 怙恃, confidence=1.0
- term: 상복 / 衰, confidence=1.0
- term: 효행 / 孝行,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신경행
- 기사 ID:
20037_018_016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62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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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3T23:29:16.27041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8&aa15no=018&aa20no=20037_018_0162
한글 번역
신경행은 영산 출신으로, 뎽자(경서)를 익히고 읽었다. 자는 백도, 호는 전시이다. 선조 임금 즉위년인 계유년에 进土 시험에 합격하고, 정축년에 文科 시험에 합격하였다. 병신년에 도적 이몽학을 토평하는 공을 세우고, 임진왜란 때 清難의 공을 일으켰다. 삼등으로 영성군에 봉해졌으며, 마지막 관직은 병사였다.
독음
신경행 영산인 습독 뎽자 자백도 호 전시 은 선조 계유進土 정축 등文科 병신 평토적 이몽학 책청난공 삼등 봉 영성군 관지병사
의미
조선中期 문신 신경행의 이력이다. 영산 출신으로 학문을 익히고 선조 연간 문과에 합격하였다. 임진왜란 시기 도적 이몽학을 진압하고, 清難(왜란 관련 병란)平定의 공을 세워 삼등으로 영성군에 봉해졌으며, 최종 관직은 병사였다.
원문
辛景行靈山人習讀垤子字伯道號釣隐宣祖癸酉進土丁丑登文科丙申平土賊李夢鶴策淸難功三等封靈城君官止兵使
엔티티 후보
- person: 신경행 / 辛景行, confidence=1.0
- place: 영산 / 靈山, confidence=1.0
- person: 백도 / 伯道, confidence=1.0
- term: 전시 / 釣隐, confidence=1.0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1.0
- person: 이몽학 / 李夢鶴, confidence=1.0
- place: 영성 / 靈城, confidence=1.0
- office: 병사 / 兵使, confidence=1.0
- work: 뎽자 / 垤子,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이흡
- 기사 ID:
20037_018_016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63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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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3T23:29:42.48163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8&aa15no=018&aa20no=20037_018_0163
한글 번역
이흡은 한산 사람이다. 자(아호)는 화보이고 호는 취암이다. 선조 경오년(1557)에 태어나 임인오년(1582)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기축년(1589)에 대간 관직에서 척영경의 졸기를 발동하여 벼슬이 헌납에서 그쳤다.
독음
이흡 한산인 한양군 흥준자 화호호 취암 선조 계유년생 건인오년 문과 급제 기축년 대간 발 척영경 졸기 관직 지 헌납
의미
조선后期的文臣 이흡의 간단한 행적이다. 선조 연간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올랐으며, 대간(臺諫)으로서 척영경의 졸기(謫戍)를 발동한 것으로 보아 소격파 사건에 연루된 인사인 것으로 추정된다. 최종 관직은 헌납에 그쳤다.
원문
李洽韓山人韓陽君興峻子字和甫號醉巖宣祖癸酉生貟壬午登文科己丑以臺諌發崔永慶啓官止獻納
엔티티 후보
- person: 이흡 / 李洽, confidence=0.95
- person: 최영경 / 崔永慶, confidence=0.9
- place: 한산 / 韓山, confidence=0.8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대간 / 臺諫, confidence=0.9
- term: 헌납 / 獻納, confidence=0.9
- term: 자(아호) / 字, confidence=0.9
- term: 호 / 號, confidence=0.95
- term: 졸기 / 啓, confidence=0.8
- date: 선조 계유년(1557) / 宣祖癸酉, confidence=0.85
- date: 임인오년(1582) / 壬午, confidence=0.85
- date: 기축년(1589) / 己丑,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김찰
- 기사 ID:
20037_018_016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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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8&aa15no=018&aa20no=20037_018_0164
한글 번역
김찰은 곁의 5대손으로, 문참의 염침의 아들이다. 자는 숙진이고 호는 눙항이다. 명종 정묘년에 진사가 되었고, 같은 해 명경과에 급제하여 한림원을 역임했다. 선조 임진년에 도어사로 수행하여 송도에 이르렀다. 동료들과 함께 이山海의 잘못된 벌채의 죄를 논하는 계를 올렸다. 김공량이 권세를 끼고 재물을 탐하여 화근을 만들었다. 장찬이 서쪽으로 떠나 어머니를 영평 산중에 보냈다. 평양에 있을 때 관동이 적에게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죽음을 무릅쓰고 수도로 들어가 산골에서 어머니를 만나 강화도로 모시고 들어갔다. 관직은 이부에 이르렀다.
독음
금참괵오세손문참의염침자숙진호눙항명종정묘진사동년등명경과력한림선조임진도가어사호행지송도솔동료계론이산해오윤지죄김공량이권독화양성화근상태찬시서행송모어영평산중재평양문관동위적소함모사입기우모산곡중부입강화관정이리판
의미
김찰은 문과进士 출신으로 선조 임진년에 도어사로 수원中都에 종행하였다. 당시 평양에서 어머니를 영평 산중에安置한 상태였는데, 관동이 적에게陷落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수도로 들어가 산 속에서 어머니를 찾아江華로 옮겼다. 이 기록은 임진왜란初期의 혼란과 함께 관료 개인의 가족 보호 행적을 보여주는史料이다.
원문
金礸礩五世孫文參議彦沉子字叔珍號訥巷明宗丁卯進士同年登明經科厯翰林宣祖壬辰以都御使扈駕至松都率同僚啓論李山海誤爴之罪金公諒招權黷貨釀成禍根狀瓉始西行送母于永平山中在平壤聞關東為賊所陷冐死入畿遇母山谷中扶入江華官止吏判[주:從孫鍰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찰 / 金礸, confidence=0.95
- person: 염침 / 彦沉, confidence=0.95
- person: 이산해 / 李山海, confidence=0.9
- person: 김공량 / 金公諒, confidence=0.85
- place: 영평 / 永平, confidence=0.9
- place: 강화 / 江華, confidence=0.95
- place: 송도 / 松都, confidence=0.95
- office: 문참의 / 文參議, confidence=0.9
- office: 도어사 / 都御使, confidence=0.9
- office: 이판 / 吏判, confidence=0.85
- term: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0.9
- term: 호행 / 扈駕,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유사원
- 기사 ID:
20037_018_016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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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유사원은 문화인 이몽량의 6세손이며 이몽량의 사위이다. 본래 이름은 응룡이고 자는 경오이다. 명종 정묘년(1547년)에 태어났으며 진사와 거중을 모두 취득하였다. 선조 을유년(1569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병신년(1576년)에 왜적 우두머리가 정청을 청하며 북상할 것을 말하였다. 유사원이 서장관으로 정기간, 청 등과 함께 천조(중국)에 구원을 청하러 갔는데, 그 요청의 뜻이 간절하여 중국인들이 감동하여 들었다. 공을 표창하여武功 三等으로 서임하고 文興君에 봉해졌으나 관직은 左尹에 그쳤다.
독음
유사원문화인양종육세손이몽량서초명응용자경오명종정묘생진거중선조을유등문과병신왜酋청정성언북상사원기사장관청정기원청구조어천조자의간절화인동청책선무공삼등봉문흥군관지좌윤
의미
유사원은 조선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관료가 된 인물이다. 임진왜란 전조인 1576년(선조 9년) 왜구가 명에 정청을 청하며 북상할 뜻을 보이자, 서장관으로 중국에 파견되어 구원을 청하였다. 그의 요청이 간절하여 성과를 거두고武功 三等의 공을 인정받아 文興君에 봉해졌으나, 최종 관직은 左尹에 그쳤다. 이 기록은 임진왜란 이전 조선의 외교적 대응과 관련 있다.
원문
柳思瑗文化人亮從六世孫李夢亮婿初名應龍字景悟明宗丁卯生進俱中宣祖乙酉登文科丙申倭酋請正聲言北上思瑗以書狀官偕鄭期遠淸救于天朝辭意懇迫華人動聼策宣武功三等封文興君官止左尹
엔티티 후보
- person: 유사원 / 柳思瑗, confidence=1.0
- person: 응룡 / 應龍, confidence=1.0
- person: 경오 / 景悟, confidence=1.0
- person: 이몽량 / 李夢亮, confidence=1.0
- person: 정기간 / 鄭期遠, confidence=0.95
- place: 천조 / 天朝, confidence=0.9
- title: 문흥군 / 文興君, confidence=1.0
- title: 좌윤 / 左尹, confidence=1.0
- title: 서장관 / 書狀官,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계옥중
- 기사 ID:
20037_018_016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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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옥에 갇힌 채 매질을 받아 거의 죽을 뻔하였다. 금소용은 후궁에서 총애를 독차지하였는데, 그의 가문이 세력을 믿고 남의 묘산에 장사지냈다. 묘산 주인이 소송을 제기하여 법에 따라 이장시켰다. 선조 임진년에 부제학으로서 왕의 행차에 수행하고 이서에 올랐으며, 계유년에 졸하여 향년 오십삼세였다.
독음
계옥중 치격기사 금소용 총관후궁 기가세勢 장압인묘산 주정소 거법 이전장 선조 임진 이부제학 호가拜이사 계사 졸년오십삼
의미
조선 선조 연간에 일어난 사건이다. 옥중에서 고문당한 어떤 인물의 상황과 함께, 후궁 금소용의 가문이 묘산을 침해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묘산 주인이 소송을 제기하여 법적으로 이장이 이루어졌다. 같은 인물이 선조 임진년에 부제학으로 호차하고 이서에 올랐으며, 다음 해인 계유년에 53세로 사망하였다.
원문
繋獄中笞掠幾死金昭容寵冠後宮其家恃勢葬逼人墓山主呈訟㩀法移葬宣祖壬辰以副提學扈駕拜吏議癸巳卒年五十三
엔티티 후보
- person: 금소용 / 金昭容, confidence=0.7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0.95
- office: 부제학 / 副提學, confidence=0.95
- office: 이의 / 吏議,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이선
- 기사 ID:
20037_018_016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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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06:05:52.94371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8&aa15no=018&aa20no=20037_018_0169
한글 번역
이선이란 사람이다. 아우 이遴의 자(字)는季膺이다. 명종 기유년에 태어나, 을묘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벼슬이 한림원에서부터户曹참의에 이르렀다. 두 부모를 능히 섬기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조상을 정성껏 모셨다. 특히 형 이遴과 우애가 지극하여 의관과 음식을 다 같이 한 것이 오십 년 동안 하루처럼 같았다.
독음
이선린제자차영명종기유생원을묘登文科력翰林관지호의이불능대사이친봉선비지와형선유애우독피음식동치오십년여일일
의미
이선(李選)은 조선 명종 연간에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원·호조참의 등을 역임한 관리였다. 특히 아우 이遴과 반생에 걸쳐 의복과 음식을 함께 나눠 쓴 깊은 우애를 보여준 인물로, 두 부모를 섬기지 못한 서러운 감정을 조상 제사尽了로 보답한 효행 인물로서 기록되었다.
원문
李選遴弟字季膺明宗己酉生貟乙卯登文科厯翰林官止户議以不能逮事二親奉先備至與兄遴友愛尤篤被服飮食同之者五十年如一日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선 / 李選, confidence=0.98
- person: 이선 / 李遴, confidence=0.98
- person: 기영 / 季膺, confidence=0.95
- year: 기유 / 己酉, confidence=0.92
- year: 을묘 / 乙卯, confidence=0.92
- office: 한림 / 翰林, confidence=0.95
- office: 호의 / 户议, confidence=0.88
불확실한 어휘
- 奉先備至의 ‘비(備)’가 ‘뜻을 다한다’는義의 뜻인지, ‘재물을 넉넉히 한다’는財의 오기인지 불확실
성세녕
- 기사 ID:
20037_018_017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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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3T23:29:55.24822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8&aa15no=018&aa20no=20037_018_0170
한글 번역
성세녕은 창녕의 인문사정(人文寺正)이다. 자는 기대주자(希周子), 표자(字)는 신중(愼仲)이며, 명종(明宗) 대 병오년(丙午)의 진사(進士)이고, 임자년(壬子)에 명경과(明經科)에 올랐다. 벼슬은 첨지(僉知)에 그쳤다. 선조(宣祖) 계사년(癸巳)에 왜인(倭)과 혼인하여 화를 입어 처형당했다.
독음
성세녕 창녕인문사정 기대주자 자 신중 명종 병오진사 임자등명경과 관지첨지 선조 계사여왜교통혼피추
의미
성세녕은 조선中期의 선조 연간 문과 급제자로, 벼슬이 첨지까지 올랐으나 선조 계사년에 왜인과 혼인한 죄명으로 처형된 인물이다. 아우 성세평도文科로 기록되어 있다.
원문
成世寧昌寧人文寺正希周子字愼仲明宗丙午進士壬子登明經科官止僉知宣祖癸巳與倭交婚被誅[주:兄弟文科弟世平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성세녕 / 成世寧, confidence=1.0
- person: 세평 / 世平, confidence=0.9
- place: 창녕 / 昌寧, confidence=1.0
- office: 인문사정 / 人文寺正, confidence=0.85
- office: 첨지 / 僉知, confidence=1.0
- term: 표자 / 字, confidence=1.0
- term: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0.9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era: 명종 / 明宗, confidence=1.0
- era: 선조 / 宣祖, confidence=1.0
- term: 교통혼 / 交婚,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人文寺正의 정확한 직역과 직급
- 交婚被誅의 구체적 처형 경위
성세평
- 기사 ID:
20037_018_017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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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8&aa15no=018&aa20no=20037_018_0171
한글 번역
성세평은 세녕의 아우이고, 자는 정중이다. 명종(조선 제12대 임금) 때 병오년에 급进士되었고, 형수 세녕과 같은 방(榜)에 뽑혔다. 신유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설지、通政등의 벼슬을 지냈고, 동백 지역에 나갔다. 예법으로 자신을 검핵하며,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반드시 관대(관모와 대부)를 갖추었다. 올바른 자세로坐하였는데, 한 번도 태도가 나른하거나懒惰한 적이 없었다. 조정에 서서 삼십 년 동안, 조용하고 담담하게 스스로를 지켜 남에게 굽신거리거나 따르지 않았다.
독음
성세평 세녕제 자정중 명종 병오진사 여형세녕 동방 신유등문과 설지도정 동백 예법검기신 수성서필관대 정좌 미상색타 입조삼십년 염이지수 불형부앙수인
의미
성세평의 약전이다. 그는 명종 때 병오년(1556년)에 급进士되고, 신유년(1561년)에 형 세녕과 함께 문과에 급제했다. 이후 통정 등 벼슬을 지내고 동백으로 나갔다. 그는 예법을 엄격히 지켜 삼십 년 동안 조정에 서면서도, 여름철에도 관모와 의복을 갖춰 입고 한 번도 나른한 태도를 보인 적이 없는 검신한 관료였다.
원문
成世平世寧弟字正仲明宗丙午進士與兄世寧同榜辛酉登文科雪止通政東伯以禮法檢其身雖盛暑必冠帶正㘴未甞色惰立朝三十年恬以自守不肯俯仰随人
엔티티 후보
- person: 성세평 / 成世平, confidence=1.0
- person: 세녕 / 世寧, confidence=1.0
- person: 정중 / 正仲, confidence=1.0
- king: 명종 / 明宗, confidence=1.0
- office: 통정 / 通政, confidence=0.9
- place: 동백 / 東伯, confidence=0.9
- term: 병오 / 丙午, confidence=1.0
- term: 신유 / 辛酉,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正㘴는 원문 소실이나 오류로 보이며, 정좌(올바른 자세로 앉음) 또는 정위(올바른 자리)로 추정), 色惰는 色怠(태도가 나른함)와 通政은 通政大夫의 약칭으로 추정
성식
- 기사 ID:
20037_018_017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72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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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3T23:30:00.14620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8&aa15no=018&aa20no=20037_018_0172
한글 번역
성식의 자는 운손이고,敬甫이다. 명종 갑자년에 태어났으며, 선조 정축년에 문과에 급제했다. 한림관을 역임하고 관직은 장령에서 그쳤다.海西御史로 있을 때白川郡에서 수년간 쌓인 억울한 옥사를 처리했다. 그때 가뭄이 심했으나 비가 내리자, 사람들이御史가 내린 비라고 일컬었다.
독음
성식운손 자경부 명종갑자생 선조정축등문과 역한림관정장령 위기서어시 백천군 유적년冤獄 치즉신리 시한심이우 인물어서우칭지
의미
성식(成軾)은 명종 갑자년생으로 선조 정축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관을 역임하고 최종적으로掌令에 이르렀다.海西御史로 백천군을 순찰할 때 수년간 해결되지 않았던 억울한 옥사를 즉시 처리했다. 그 무렵 가뭄이 극심했으나 비가 내렸고, 이를 민심이御史의 정직한 직무 수행으로 인한 일이라고 여겨御史雨라 칭했다.官止掌令은 벼슬이 장령에서 멈춤을 뜻한다.
원문
成軾雲孫字敬甫明宗甲子生貟宣祖丁丑登文科厯翰林官止掌令為海西御史白川郡有積年冤獄致即申理時旱甚而雨人以御史雨称之
엔티티 후보
- person: 성식 / 成軾, confidence=1.0
- person: 운손 / 雲孫, confidence=1.0
- person: 경부 / 敬甫, confidence=1.0
- person: 명종 / 明宗, confidence=1.0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1.0
- place: 백천군 / 白川郡, confidence=1.0
- place: 해서 / 海西, confidence=1.0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office: 한림관 / 翰林官, confidence=1.0
- office: 장령 / 掌令, confidence=1.0
- office: 어시 / 御史, confidence=1.0
- term: 억울한 옥사 / 冤獄, confidence=1.0
- term: 어시비 / 御史雨, confidence=1.0
길회
- 기사 ID:
20037_018_017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73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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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3T23:30:17.04117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8&aa15no=018&aa20no=20037_018_0173
한글 번역
길회는 5대손 면의 아들이며, 자는 사가이다. 선조 경오년에 태어나 정축년에 성전에 나아가 뽑히었고, 검렴에 임명되었다. 계사년에 임금의 행렬이 도성에 돌아올 때, 길회가 수레 앞에서 나아와 말하기를, “적이 여전히 변경에 깊이 자리잡아 있으며, 묘와 사직까지辱을 당하고 있으니, 지금은 바로 군신이 와신상담(목숙이를 잠으로 삼고 쓸개를 맛보는 식으로 곤궁을 참아 분발하는 것)을 할 때입니다. 수레를 타고 말을 쓰지 않는 것은 스스로安逸에 빠지는 것에 가깝습니다.” 임금이 즉시 수레를 내리라고 명하였다.
독음
길회 재오세손 면의 아들 자는 사가 선조 경오년에 태어나 정축년에 성선에 오르고 검렴에 임명되었다. 계사년에 대가가 도성에 돌아올 때, 회가 수레 앞에서 나아와 말하기를 적이 여전히 변경에 깊이 박혀 있으며 묘사에 욕을 입히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군신이 와신상담의 때입니다. 수레로 말을 대치하면 스스로 편안해짐에 가까우나 상이 즉시 수레를 덜 것을 명하였다
의미
조선 선조 연간에 관료 길회가 임금의 행렬 앞에서直言으로 적의 침략과 묘사의辱을 지적하며, 현재가 와신상담의 각오로 분발해야 할 때라고进言하였다. 이에 임금이 자신의 수레를 내리라고 명하여 군신의 곤궁극심한 상황에서의 결의심을 실천에 옮긴 역사적 장면을 기록한 기사이다.
원문
吉誨再五世孫勉之子字士可宣祖庚午生貟丁丑登謁聖選授檢閱癸巳大駕還都誨進言輦前曰賊尙㩀邊境廟社帶辱此正君臣臥薪甞膽之秋以輦代馬近於自逸上即命去輦
엔티티 후보
- person: 길회 / 吉誨, confidence=0.95
- person: 면 / 勉, confidence=0.9
- person: 사가 / 士可, confidence=0.95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0.95
- office: 검렴 / 檢閱, confidence=0.9
- term: 연(임금이 타는 수레) / 輦, confidence=0.85
- term: 와신상담(극심한 곤궁 속에서도 분발하는 결심) / 臥薪甞膽,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윤광원
- 기사 ID:
20037_018_017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74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3T23:30:12.12595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8&aa15no=018&aa20no=20037_018_0174
한글 번역
윤광원은 윤석보의 증손 윤창명의 재종제(再從弟)이다. 자는 희보이다. 선조 기묘(1539)년에进士가 되었고, 병술(1542)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은 좌랑에서 멈추었다. 임신(1552)년에 우성전(禹性傳)과 함께 강화도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행재(行在)로 가서 재사를 아뢰어 관직에 오르고 전적(典籍)에 임명되었다.
독음
윤광원 석보 증손 창명 재종제 자 희보 선조 기묘进士 병술 등문과 관지 좌랑 임신与우성전 기의병어강화 행재 재사 사건拝전적
의미
윤광원은 조선 선조 연간 문과 급제 관료로, 강화도에서 의병을 일으킨 인물이다. 윤석보의 증손 윤창명의 재종제堂兄弟이며, 좌랑까지 관직이 올랐으나 임진왜란 때 우성전과 함께 강화도에서 의병을 일으켜行재에 나가 벼슬에 오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원문
尹光遠碩輔曾孫昌鳴再從弟字晦甫宣祖己卯進士丙戌登文科官止佐郞壬辰與禹性傳起義兵於江華赴行在奏事拜典籍
엔티티 후보
- person: 윤광원 / 尹光遠, confidence=1.0
- person: 윤석보 / 碩輔, confidence=1.0
- person: 윤창명 / 昌鳴, confidence=1.0
- person: 우성전 / 禹性傳, confidence=1.0
- place: 강화 / 江華, confidence=1.0
- office: 좌랑 / 佐郞, confidence=1.0
- office: 전적 / 典籍, confidence=1.0
- term: 재종제 / 再從弟, confidence=1.0
- term: 행재 / 行在, confidence=1.0
- term: 의병 / 義兵,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再從弟의 정확한 친족 관계 단계(다섯 번째 사촌 이내의 재종제弟의 범위)
- 行在의 구체적 위치(거점 행재所인지 행재天子 행재지인지)
- 壬辰년이 관직 이동과 관련하여 1552년인지 다른 해석이 있는지
안광윤
- 기사 ID:
20037_018_017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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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안광윤은 순흥 사람이다. 처음 이름은 몽윤이고 자는 술부이며 호는 죽정이다. 열한 살이 되던 해 선조 임진년에 난리가 났을 때, 열다섯 살인 몽량과 일곱 살인 아우 몽구와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이녕으로 피난을 갔다. 적이 어머니를 협박하자 어머니가 울며 말했다. “더럽힘을 참으며 살아가는 것不如 차라리 여유롭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낫다.” 그러고는 죽었다. 적이 창으로 꿰뚫으려 하자 세 아이가 어머니의 시체를 안고 울며 어머니 곁에서 죽으려 했다. 적이 그 의리를 보고 살려주었다. 이에 시체를 등에 업고 산으로 들어가 피로 손가락을 물들이고 맹세했다. “우리들은 비록 어른이 되지 못했으나, 아직 하늘의 양심이 있으니 어찌 적과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살겠는가.” 정유년에 곰재우의 군사、作따라 싸웠는데, 매 전투마다 앞장서 나갔으며 화살과 돌을 맞았다. 몽량은 싸우다 죽었으나, 광윤과 몽구는 끝까지 함께 힘을 합쳐 적을 많이 죽였다. 임금이 말했다. “한 가문의 세 어린아이가 효도와 우의를 함께 밝혔으니, 노국의 왕개와 같아鲁의 汪錡조차 이르지 못할 기개이다.” 마침내 공조佐郞으로 추증했다.
독음
안광윤순흥인초명몽윤자술부호죽정십일세당선조임진란여십오세지몽량칠세제몽구봉모피란어이의적태어모긔창욕구화불여종용자진수적사적이관관속쇄이무삼동포곡모시삼쟁사모방적의이설지수음입산혈지이호왈오배수미성인상유병의겨여적공대일천정유종곰재우전매진첩정신이전몽석광윤몽구종시력력살적심다상왈일문삼동효우구창노지일왕개부족장야증공조좌랑
의미
임진왜란 시기 순흥 출신 안광윤의 일기이다. 열한 살 때 적의 위협을 받자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세 형제가 어머니 시체를 지키며 함께 죽으려 했으나 적이 양심을 보고 살려주었다. 시체를 등에 업고 산으로 들어가 피로 맹세하며 복수와 의리를 다짐했다. 정유년에 장수 곰재우의 군사에 참여하여 용감하게 싸웠고, 형 몽량은 전사했으나 광윤과 아우 몽구는 끝까지 함께 싸우며 많은 적을 죽였다. 이에 임금이 일문삼동의 효우를 칭송하며 공조佐郞으로 추증했다.
원문
安光胤順興人初名夢尹字述甫號竹亭十一歲當宣祖壬辰亂與十五歲只夢良七歲弟夢丘奉母避亂于宜寧賊逼其母母泣曰汚辱苟活不如從容自盡遂死賊欲貫槊以舞三童抱哭母屍爭死母傍賊義而捨之遂負屍入山血指而誓曰吾軰雖未成人尙有秉彛豈與賊共戴一天丁酉從郭再祐戰每陣輒挺身而前蒙矢石夢良戰死光胤夢丘終始戮力殺賊甚多上曰一門三童孝友俱彰魯之一汪錡不足壯也贈工曺佐郞
엔티티 후보
- person: 안광윤 / 安光胤, confidence=0.95
- person: 몽윤 / 夢尹, confidence=0.95
- person: 몽량 / 夢良, confidence=0.95
- person: 몽구 / 夢丘, confidence=0.95
- person: 곰재우 / 郭再祐, confidence=0.95
- place: 순흥 / 順興, confidence=0.95
- place: 이의 / 宜寧, confidence=0.95
- office: 공조좌랑 / 工曺佐郞, confidence=0.95
- term: 병이(하늘의 양심, 천륜) / 秉彛, confidence=0.85
- term: 정유(임진왜란 1592년 이후) / 丁酉, confidence=0.85
- term: 왕개(춘추시대 충절한 아이) / 汪錡,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貫槊以舞(창으로 꿰뚫으려 하며)
- 不如從容(차라리 여유롭게)
민유부
- 기사 ID:
20037_018_017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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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민유부는 기문손정언액의 손서로서, 자는 경응이고 호는 양졸당이다. 선조 기축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신묘년에 문과에서 장원을 차지했다. 벼슬은 정려에 이르렀다. 임진년에 우성전의 천거로 종사가 되어 많은 수립을 했다. 갑오년에去世했으며 향년 36세였다. 아들 민성徽의 공으로 인해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독음
민유부 기문손질자 정언액손서 자경응호 양졸당선조기축진사신묘괴문과관정려임진우성전벽위종사다유소촉영갑오졸년삼십육이자성徽귀증좌찬성
의미
민유부는 선조 연간에 문과 장원을 찍은 관료로, 우성전의幕僚로서才學을 발휘했으나 36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민성徽의 출세로 인해 사후에 좌찬성이라는 높은 벼슬까지 추증받은 인물이다.
원문
閔有孚起文孫涖子鄭彦慤孫婿字景應號養拙堂宣祖己丑進士辛卯魁文科官止正郞壬辰禹性傳辟為從事多有所籌營甲午卒年三十六以子聖徽貴贈左賛成[주:子聖徽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민유부 / 閔有孚, confidence=1.0
- person: 경응 / 景應, confidence=1.0
- person: 성徽 / 聖徽, confidence=0.9
- person: 우성전 / 禹性傳, confidence=1.0
- person: 정언액 / 鄭彦慤, confidence=0.9
- office: 정려 / 正郞, confidence=1.0
- office: 좌찬성 / 左賛成, confidence=1.0
- office: 종사 / 從事, confidence=1.0
- work: 양졸당 / 養拙堂, confidence=1.0
- term: 괴문과(장원) / 魁文科,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기문손(起文孫) - 문과 급제 후 初授官인 起家와 문손의 복합어로 보이나 정확한 직칭 체계 미확인
- 涖子 - 자칭으로 보이며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지 불확실
노경임
- 기사 ID:
20037_018_017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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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노경임은 강화 사람으로, 진사 노수성의 아들이자 자율(자)은弘仲이고 호는敬菴이다.張顯光의 외손자이며 문하에서 수학하였다.선조 임신년에文科에 급제하여 벼슬이 교리에서 그쳤고,御史가 되어 삼척 부사 홍인건이 포로들을 함부로 죽이고 상부를 기만하며 공을 바라는 죄를 다스려 물의가 기뻐하였다.홍인건이 명성을 도용하자 노경임이 찾아가 그 심술의 곡악함을 들취냈다.출임되어星州牧使가 되었으나 홍인건이 무리들을 부추겨 무고로 탄핵罢職시켰다.柳成龍이 그 아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평생 사람을 보았으나忠孝하고 무게를 중시하며信義로운 이는从来没有 이러한 사람이니, 너는 마땅히 스승으로 모시라’고 하였다.
독음
노경임 강화인 진사 수성자 자율호 경암 장현광 외손자 역수업 선조 신묘년 급文科 관직 교리御史 삼척부사 홍인건 살육 허위 죄상 논평 윤역 도용 권력 탐내 방문 극론 신랄 비판 후 任당파 고소 파면 유성룡 충효 신용 실천 충실
의미
노경임은 선조 임신년(1591년)에 문과에 급제한 조선 중기의 管理官이다.御史로서 부패 관리 홍인건을 처벌하는 등 清正한 행적을 남겼으나, 홍인건 일파의 모함으로 파면되었다. 당시 대신 유성룡은 노경임을 충·효·중·신을 모두 갖춘稀有한 인물로 평가하며 아들에게 배우게 하였다.
원문
盧景任安康人進士守誠子字弘仲號敬菴張顯光甥侄仍受業宣祖辛卯登文科官止校理為御史按治三陟府使洪仁傑擅殺被虜人罔上希功之罪物論快之仁弘盗名景任徃見之還極其心術之邪出補星州牧使仁弘嗾羣小誣劾罷之柳成龍謂其子曰吾平生閱人多矣忠孝重信未有如此人汝宜師事之
엔티티 후보
- person: 노경임 / 盧景任, confidence=0.98
- person: 장현광 / 張顯光, confidence=0.95
- person: 홍인건 / 洪仁傑, confidence=0.97
- person: 유성룡 / 柳成龍, confidence=0.98
- person: 노수성 / 守誠, confidence=0.9
- place: 강화 / 安康, confidence=0.92
- place: 삼척 / 三陟, confidence=0.96
- place: 성주 / 星州, confidence=0.95
- office: 교리 / 校理, confidence=0.97
- office: 어사 / 御史, confidence=0.97
- office: 목사 / 牧使,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6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0.95
- term: 물론 / 物論, confidence=0.85
- term: 심술 / 心術, confidence=0.82
불확실한 어휘
- 甥侄(외손자还是조카관계不確定)
- 物論快之(물론이痛快하다는表現解釋)
유복립
- 기사 ID:
20037_018_018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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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유복립은 전주 사람이다. 부학 윤덕군 서호의 호는 김성이라고 했으며, 유복립은 그의 외숙부와 조카 사이였다. 성격이 씩씩하고 큰 절의가 있었다. 벼슬은 음보로 종복시 주부를 거쳤다. 선조 임진년에 난리가 일어나자, 김성이라는 사람이慶상우監司로 진주성을 지켰다. 유복립이 검을 들고 이에 따르며 전략을 함께 도모하고 여러 번 싸워 승전했다. 김성이 병으로 죽게 되어 그때 수성을 부탁하자, 유복립이 김천일·고종후·황진 등과 함께 힘을 합하여 적을 막았다. 적이 대거 와서 양식이 떨어지고 화살이 떨어지자 성이 결국 함락되었다. 같은 날 죽으니, 주(州) 사람들이 성루 아래 비를 세웠다. 사변이 전해지자문을 表창하고 집에旌表를 세우며, 벼슬을 더하고院享에 함께 받들었다.
독음
유복립 전주인 부학 윤덕군서호 김성의 외제우간慨有大節 음보 종복시 주부 선조 임진란 김성의 이 경상우감사 수 진주성 유복립 장검 종지 협력 찬筹策 수회 승절시의 병 졸 시탁 이 수성 유복립과 김천일고종후황진등력拒적 적 대지粮진 시절궁성 수해同日死 주인 수비 于矗성루하 사문문 제기 영려 증 이 판원 향
의미
유복립은 선조 임진왜란 때 진주성 방어에 참여했다. 어머니 형제인 김성의가慶상우監司로서 진주성을 지켰으나 병으로 사망하면서 수성(日)을 유복립에게 부탁했다. 유복립은 김천일·고종후·황진 등과 함께 끝까지 성을 지키다 적의 대공격으로 양식과 무기가 떨어뜨린 끝에 성이 함락되자 같은 날 죽었다. 주人们在 성루 아래에 비를 세웠고, 이 사실이 전해지자 관리의 표창과 함께 추존되었다.
원문
柳復立全州人副學潤德君瑞號金誠一甥姪慷慨有大節蔭補宗簿寺主簿宣祖壬辰亂金誠一以慶尙右監司守晉州城復立杖劒從之協賛籌策屡獲勝捷誠一病卒時托以守城復立與金千鎰高從厚黃進等戮力拒賊賊大至粮盡矢窮城遂陷同日死州人竪碑于矗城樓下事聞旌閭贈吏判院享
엔티티 후보
- person: 유복립 / 柳復立, confidence=0.95
- person: 김성의 / 金誠一, confidence=0.93
- place: 전주 / 全州, confidence=0.95
- place: 진주성 / 晉州城, confidence=0.95
- place: 곳성루 / 矗城樓, confidence=0.7
- office: 부학 / 副學, confidence=0.9
- office: 종복시 주부 / 宗簿寺主簿, confidence=0.85
- office: 경상우감사 / 慶尙右監司, confidence=0.95
- position: 윤덕군 / 潤德君, confidence=0.85
- person: 김천일 / 金千鎰, confidence=0.9
- person: 고종후 / 高從厚, confidence=0.9
- person: 황진 / 黃進,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潤德君瑞號 (윤덕군 서호로 해석하나 ‘君瑞’ 연결 방식 미確)
- 金誠一甥姪 (정확한 계열 관계 특정 곤란)
- 矗城樓 (樓名確實性 不確)
- 吏判院享 (추존된 벼슬의 정확한 직제명 미확인)
박사관
- 기사 ID:
20037_018_018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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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박사관이 죽산 사람은 자가 관부였고, 관직은 감역에서 그쳤다. 선조 임진년에 난이 일어나니, 어머니는 나이가 아흔을 넘었고 늙어 병들어 걸음이 불편하였다. 사관이 어머니를 모시고 먼저 전묘 옆으로 피신하자,贼들이 사방으로 관동에 나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희롱삼았다. 사관이 어머니를 모시고 여러 누이동생들을 데리고 숲과 잡초 사이에 숨어 있었는데,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이르길, ‘贼들이 비록 나를 보더라도 반드시笃老하다는 이유로杀掉하지 않을 것이니 근심이 없겠구나. 너희들은 흩어져 각각 조산하여라.’ 여러 딸들이 어머니의 명을 듣고 모두 피했으나, 사관만이 곁에 있어 차마 떠나지 못하였다. 오래지 않아贼들이 백인(白刃)을 뽑고 곧장 앞으로 나아가 어머니에게 이르려 할 때, 사관이 즉시 어머니를 가려 숨겼다.贼들이 검을 쳐내리니 사관이 심하게 맞아 구할 수 없었으나 어머니는 그럭저럭 무사하였다. 사관이 옷을 찢어 상처를 싸매고 가到家로 옮겨 데려갔으나,五日가 지난 뒤에 죽었다. 그때 나이가 칠십삼이었다. 어머니가 그 피 묻은 옷을 간직하며 시비에게 이르길, ‘이것은 감역의 것이니, 내가 죽거든棺에 따라 함께 넣으라.’
독음
박사관죽산인자관부관지지감역선조임진난모년유구십노동병불량어행봉피어선영측적사출관동살인위희사관봉모휴제매잠닉임망간모위자녀왈적수견아필이독로이불견살무환예여등분산각도생제녀문명개피사관독재방불인不忍去미근적패백인직전장급모사관즉복폐모적일겸학하사관중피창불가구이자여연의상갈기괸재창기왐가과오일쇽사시년칠십삼모장기혈의상왈시비왈차즉감역야물환대사쇽윤관
의미
선조 임진왜란 때 박사관이 늙은 어머니와 여러 누이동생들을 데리고敌의 시선을 피해 숲에 숨었으나,敌이 어머니를 해치려 하자 몸을 던져 어머니를 가렸다. 검에 심하게 찔려 오일 만에 사망하였으나 어머니는 무사하였다. 어머니는 아들의 피 묻은 옷을 지켜 보관하고, 자신의 죽음 뒤에 관에 함께 넣을 것을 부탁하였다. 효행과 어머니를 지키려는 행동이 기록된 기사이다.
원문
朴思寬竹山人字寬夫官止監役宣祖壬辰亂母年逾九十老病不良於行奉避于先塋側賊四出關東殺人為嬉思寬奉母携諸妹潜匿林莾間母謂子女曰賊雖見我必以篤老而不見殺無患矣汝等分散各偸生諸女聞命皆避思寬獨在傍不忍去未幾賊拔白刃直前將及母思寬即伏蔽母賊一劒斫下思寬重被創不可救而母則自如即裂衣裳褁其創舁還家過五日而死時年七十三母藏其血衣裳謂侍婢曰此即監役也勿浣待我死殉於棺
엔티티 후보
- person: 박사관 / 朴思寬, confidence=1.0
- place: 죽산 / 竹山, confidence=1.0
- office: 감역 / 監役, confidence=1.0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1.0
- term: 임진란(임진왜란) / 壬辰亂, confidence=1.0
- place: 선영(선조의 묘소) / 先塋, confidence=1.0
- place: 관동 / 關東, confidence=1.0
- term: 백인(흔든 칼) / 白刃, confidence=1.0
- term: 독로(매우 늙음) / 笃老,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林莾(임망) - 숲과 잡초, 확정적 한자变异 없음
- 偸生(도생) - 조산(조술로 살아남음), 문맥상 의미 명확
- 潜匿(잠닉) - 숨어 있음, 표준어로 충분히 번역됨
홍지성
- 기사 ID:
20037_018_018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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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홍지성은 남양 사람으로, 유손의 손자이다. 자는 강중이고 호는 부정산인이다. 성품이 고상하고 올바르며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너그럽고优雅하다. 세상과 맞지 않아 사람들이 그가 웃는다. 서적이라면 무엇이든 읽지 않은 것이 없고, 후학을 가르치기를 권하지 않는다. 고전문학 중 문맥이 뒤엉켜 이해하기 어려운 곳을 씨줄방줄 자세히 분석하여 남기는 바가 없다. 선조 정유년에 왜란이 일어났을 때 피해하여 일흔 살을 넘긴 나이에 죽었다.
독음
홍지성 남양인 유손자 자강중호 부정산인 고아접물 여세불혀 인간다소之 于서무불독 훈련후진불권 범고문반착난해처 호분려석 불류여온 선조정유왜란피해 년칠십여
의미
홍지성은 조선 시대 남양 출신의 학자로, 성품이 고상하고 세상사와 어울리지 않아 주변에서 웃음거리가 되었으나, 독서를爱好하고 후학 양성에 힘썼다. 고전문헌의 난해한 부분을 세밀하게 분석하는 학술적 식견을 갖추었다. 선조 대 정유년(1597년) 왜란 피해로 일흔 살을 넘겨 세상을 떠났다.
원문
洪至誠南陽人裕孫子字剛中號佛頂山人高雅接物與世不諧人多笑之於書無不讀訓後進不倦凢古文盤錯難觧處毫分縷析不留餘蘊宣祖丁酉倭亂被害年七十餘
엔티티 후보
- person: 홍지성 / 洪至誠, confidence=1.0
- place: 남양(경기도 남양주시) / 南陽, confidence=0.9
- person: 유손 / 裕孫, confidence=0.8
- term: 자(아호) / 字, confidence=1.0
- term: 호(필명) / 號, confidence=1.0
- person: 부정산인 / 佛頂山人, confidence=1.0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1.0
- term: 정유왜란(1597년) / 丁酉倭亂, confidence=0.95
- term: 자강중 / 字剛中,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이희선
- 기사 ID:
20037_018_019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90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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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희선은 성주 출신이며, 자는 백순이다. 명종 신유년(1561)의进士(진사)이었다. 관직은 동몽교관(童蒙教官)에서 그쳤다. 박학하여 여러 책을 섭렵하였고, 성품이 지극한 효순이었다. 마음이 너그럽고 화평하며, 사람을 대하는 것이 겸손하고 공손하였다. 옛 친구가 대사간이나 대사헌에 해당하는 태형(台衡)에 이르면 차마 그 문을 찾아가지 않았다. 선조 임진년(1592)에 왜구에게 피학살을 당했다.
독음
이희선 성주인 자 백순 명종 신유进士 관지 동몽교관 박협 군서 성지효 병심 관화 접인 겸공 유고인 위지 태형 즉절 불적기문 선조 임진 우해于왜
의미
이희선은 경상북도 성주 출신의 학자이다. 명종조 신유년(1561)에 진사 시험에 합격하였으나, 동몽교관이라는 낮은 관직에서 그쳤다. 그는 박학하고 효자이며 성품이 너그럽고 겸손한 인물이었다. 특히 오래된 친구가 높은 벼슬에 올라도 그 문을 찾아가지 않는 청렴한 자세를 보여주었다. 임진왜란(1592) 때 왜구에게 살해된 것으로 보아 조선 선조 연간 인물임이 확인된다.
원문
李喜善星州人字伯純明宗辛酉進士官止童蒙敎官博洽羣書性至孝秉心寬和接人謙恭有故人位至台衡則絶不迹其門宣祖壬辰遇害于倭
엔티티 후보
- person: 이희선 / 李喜善, confidence=1.0
- place: 성주 / 星州, confidence=1.0
- person: 백순 / 伯純, confidence=1.0
- term: 자(표자) / 字, confidence=1.0
- person: 명종 / 明宗, confidence=1.0
- term: 신유(1561년) / 辛酉, confidence=1.0
- term: 진사(과거 급제자) / 進士, confidence=1.0
- office: 동몽교관 / 童蒙敎官, confidence=1.0
- term: 태형(대사간·대사헌 등) / 台衡, confidence=0.9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1.0
- term: 임진(1592년) / 壬辰, confidence=1.0
- term: 왜구 / 倭,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台衡의 구체적 직위 범위와文中 ‘則絶不迹其門’의 문장 구조 해석
이영춘
- 기사 ID:
20037_018_019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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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영춘은 완산 사람이다. 자는 응인이다. 명종 신유년에 합격하여 进试에 합격하였다. 선조 임진년에咸悅현감으로 임명되었으나 부임하기 전에 난리를 만나 철원으로 옮겨 유곡하다가 왜구에게 살해되었다.
독음
이영춘 완산인 자 응인 명종 신유,进士 선조 임진년 배 함율현감 미급지임 우란 유거 철원 피해於倭
의미
조선 시대 관리 이영춘의 행적을 적은 기사로, 완산 출신으로 명종 때 进试에 합격하고 선조 임진년에咸悅현감이 되었으나 부임 전에 임진왜란 난리를 만나 철원으로 피난하여 왜구에게 피살된 인물임을 기록하고 있다.
원문
李榮春完山人字應仁明宗辛酉進士宣祖壬辰拜咸悅縣監未及之任遇亂流寓鐵原被害於倭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영춘 / 李榮春, confidence=1.0
- place: 완산(전주) / 完山, confidence=1.0
- person: 응인 / 應仁, confidence=1.0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place: 함율 / 咸悅, confidence=1.0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1.0
- place: 철원 / 鐵原, confidence=1.0
- place: 왜구 / 倭, confidence=1.0
남정국
- 기사 ID:
20037_018_019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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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남정국은 의녕 출신으로 관직은 충훈도사에서 그쳤다. 왜구에게 포로로 잡혔는데, 견구에게 크게 욕을 하며 백병이 교차로 내리꼽히는 가운데 죽음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았다. 아들 응선이 날개로 아버지를 가려 같이 죽었다.
독음
남정국 의녕인 관지 충훈도사 위왜 소집 견구 대만 백인교하 지사부변 자응선 익폐기부 동사
의미
남정국이 왜구에게 포로로 잡혀 순절한 홍길주식 저항담으로, 적에게 붙잡힌 위기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분연히 저항하다 백병에 찔려 순국한 아전의 이야기이다. 아들 응선이 아버지를 구하려다 함께 죽은 것으로, 임씨 암투와 왜란이 아전층에 남긴 참상을 반영한다.
원문
南定國宜寧人官止忠勳都事為倭所執羯狗大罵白刃交下至死不變子應善翼蔽其父同死
엔티티 후보
- person: 남정국 / 南定國, confidence=0.95
- place: 의녕 / 宜寧, confidence=0.9
- office: 충훈도사 / 忠勳都事, confidence=0.85
- person: 응선 / 應善, confidence=0.9
- group: 왜구 / 倭,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羯狗: ‘견구’는 적국을 경멸하는 표현일 가능성 있으며, 구체적 인물의 정확한 지위나 정체는 원문만으로 불확실함. 白刃交下의 ‘交下’는 백병이 교차하여 내리꼽히는 상황을 묘사한 것으로 문장 구조상 전후 관계 해석에 주의를 요함.
고득뢰
- 기사 ID:
20037_018_019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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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고득뢰가 무과에 급제하여 선조 임진년에 우의병장의 직에 있을 때 평창군수로 임명되었다.管理들이 찾아와 맞이하며 말하기를, “평창은 외진 고을이니 온 가족을 지키고 몸을 보전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습니다.” 하였다.득뢰가 말하기를, “적병이 호령하며 뻗쳐 국세가危急한데, 어떻게 스스로 편안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부하를 보내어 병사崔慶會로 하여금 따르게 하니, 그이는 진주성으로 들어가 순국하여 경의를 표하였다.
독음
고득뢰 등무과 선조 임진년에 우의병장 시절 평창군수에 제수되니 관리들이 와서 영접하며 말하였다 평창은 외진 고을이니 온 가족을 지키고 몸을 보전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고 하였다.득뢰가 말하기를 적병이 호령하며 뻗쳤으니 국세가危急하니 어떻게 스스로 편안할 수 있겠는가. 부하를 보내어 병사崔慶會를 따르게 하니 진주성으로 들어가院享하다.
의미
고득뢰는 무과에 합격한 뒤 선조 임진년에 우의병장으로 있으면서 평창군수에 제수되었다.管理들이 평창을 안전한 외진 마을이라며 가족을 보신하기에 적합하다고 아뢸 때, 그는 나라가危急한 상황이라 스스로 편안할 수 없다고 반박하였다. 그가 부하를 보내어 최경회를 종사하게 하니, 최경회는 진주성에서 순국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나라 위기에 자신을 돌보지 않은 공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원문
高得賚登武科宣祖壬辰為右義兵將時除平昌郡守官吏來迎人曰平昌僻邑全家保身莫如此地得賚曰賊兵䲭張國勢危急鳥可以自便不赴随兵使崔慶會入晉州城死院享
엔티티 후보
- person: 고득뢰 / 高得賚, confidence=0.95
- person: 최경회 / 崔慶會, confidence=0.95
- place: 평창 / 平昌, confidence=0.95
- place: 진주 / 晉州, confidence=0.95
- office: 무과 / 武科, confidence=0.9
- office: 우의병장 / 右義兵將, confidence=0.9
- office: 군수 / 郡守, confidence=0.95
- king: 선조 / 宣祖, confidence=0.95
- era: 임진 / 壬辰,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정대민
- 기사 ID:
20037_018_019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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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정대민은 여창의 증손자이다. 동중서의 연남자(中人)이고, 자는中立이다. 선조 정유년에 왜적이 다시 침공하자 황석산성에 들어가니, 성이 함락되고 부모가 모두 적의 칼에 죽었다. 대민은 부모의 시신을先将填 옆에 임시로 안치하고 그대로 남아 떠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떠나야 한다고 권고했으나, 대민은 울며 이르기를 ‘불초하게 이미 부모의 시신 곁에서 죽지 못했으니, 죽는다 해도 부족한 죄가 있다. 하물며 감히 개인적으로 편히 여생을 도모하겠습니까.’ 적이,果然 다시 쳐들어 오자 대민은 결국 죽었다.
독음
정대민 여창증손 동중서연남자 자중립 선조정유 왜 재동 입황석산성 성함락 이친 구려 형인 대민 즉 권오우 선영측 빈유不去 인개위 당소 피적로 대민흡왈 불초 기 불사친시방 사유여죄 황敢于 사변기신 적과우 습 대민 내사지
의미
임진왜란 때 정대민이 황석산성에서 왜적의 침공을 받아 부모가 살해된 뒤, 부모의 시신을 떠나지 않고 적의 재침을 받아 순절한 이야기이다. 부모의 시신을 떠나지 않은 불초함에 대한 죄책감을 털어내지 못하고 순절한 내용으로, 유교적 효행과 충절을 기린다.
원문
鄭大民汝昌曾孫同中樞彦男子字中立宣祖丁酉倭再動入黃石山城城陷二親俱罹凶刃大民即權厝于先塋側仍留不去人皆謂當少避賊路大民泣曰不肖既不死親尸傍死有餘罪況敢私便其身賊果又襲大民乃死之
엔티티 후보
- person: 정대민 / 鄭大民, confidence=0.95
- person: 여창 / 汝昌, confidence=0.9
- place: 황석산성 / 黃石山城, confidence=0.9
- office: 중서 / 中樞, confidence=0.7
- term: 권오(시신을 임시로 안치함) / 權厝, confidence=0.85
- term: 선영(선조의 무덤) / 先塋,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同中樞彦男(동중서 연남자) - 중서府的 벼슬을 지낸 사람이라는 해석과 중서 이첩의 벼슬아치라는 해석이 있을 수 있음. ‘彦男’이 인名과 관계된 칭호인지 명확하지 않음.
- 權厝(권오) - 현대 한국어 학술 용어 확립이 불안정하여 직역적 해석을 따름
김우윤
- 기사 ID:
20037_018_019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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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김우윤은 문과에 합격하여 벼슬이佐郞(좌랑)에 이르렀다. 평생 뜻깊게 학문에 힘썼다. 선조 정유년(1597)에 어머니를 모시고 적의 피해를 피해 몬 곳으로 갔다. 적이 어머니를 잡아 죽이려 하자, 우윤이 칼을 뽑고 적을 꾸짖었다. 적이 분노하여 결국 우윤을 할겨죽였다.
독음
금우윤 등문과관 지좌랑평생독지역학선조정유봉모피적적집모욕인지우윤발건말적적노수촌점우윤
의미
조선 선조 연간 문과에 합격하여佐郞까지 벼슬한 김우윤이 정유년(1597)에 어머니와 함께 적의 피해로 피난하다가 적이 어머니를 해치려 하자 칼을 뽑고 맞서며 적을 꾸짖었다. 이에 적에게 분노하여 할겨죽임을 당한 효자이다.
원문
金友尹登文科官止佐郞平生篤志力學宣祖丁酉奉母避賊賊執母欲刃之友尹拔劒罵賊賊怒遂寸斬友尹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우윤 / 金友尹, confidence=1.0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1.0
- office: 좌랑 / 佐郞,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정유 / 丁酉, confidence=1.0
김경로
- 기사 ID:
20037_018_019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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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8&aa15no=018&aa20no=20037_018_0197
한글 번역
금경로가 무과에 급제하고, 선조 임진년에。祝防장이 되었다. 남원이 포위되어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하루를 이틀처럼 여기며 서둘러 달렸다. 진도에서 이복남을 만나 말하기를, “진주는 하늘의 험준한 요새로서 군사만 수만이고 십일 이내에 함락되었다. 지금 남원의 형세는 진주만 못한데, 양총병에게 있는 군사수는 오직 삼천 명뿐이다. 우리 나리의 장수들 중에 구원 오직 아무도 없으니, 성은 반드시 함락될 것이다. 어찌 명나라 군대만 자기 나라 일에 죽게 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이복남이 그 손을 잡으며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바로 내 뜻에 맞는다.” 하였다. 이에 함께 따라가려는 자백여 명을 이끌고 성안으로 곧장 돌입하였다. 적진이 수십 리에 가득 퍼져 있었으나, 이복남과 함께 적의 진지를 바라보며, “지금 이 몸으로 나라에 보답할 때이다.” 하고는 칼을 휘두르며 곧장 돌격하였다. 양원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동국의 진짜 남자는 오직 이 두 사람뿐이로다.” 하였다. 성이 함락되고, 이복남과 여러 장사들이 용검을奋力하여 적을 베어 죽였으나, 힘이 다하여 전사하고 말았다.
독음
금경로 무과에 올라 선조 임진년에。祝防장으로 남원이 포위된 급한 소식을 듣고 길을 배로 달려 진도에서 이복남과 만났다. 말하길, 진주는 하늘의 험준한 땅이요 병사가 수만이고 십일 이내에 함락되었다. 지금 남원의 형세는 진주不如杨总兵에게는 오직 삼천 명뿐이니, 我国 장수들이 아무도 구원 오지 않는다면城必陷이니 어찌 明兵 혼자 我国 일에 죽게 할 수 있겠나. 이복남이 그 손을 잡고 말하길, 공의 말이 바로 내 뜻에 맞는다. 이에 함께 따라가려는 자 백여 명을 이끌고 곧장城中으로 돌입했다.賊阵이 수십 리에 가득 찼으나, 이복남과 함께賊의屯을 바라보며, 몸으로 나라에 보답할 때가 바로今이라 하고는 칼을 휘두르며 곧장 돌격했다. 양원이 감탄하며 말하길, 동국의 남자는 오직 이 두 사람뿐이라고 했다.城이陷하고, 이복남 및 여러 장사들이 검을奋力하며賊을 베어 죽였고, 힘이 다하여 죽었다.
의미
임진왜란 당시。明군 장수 양원의 부하인 금경로가 南原城的 포위解救을 위해 이복남과 함께 백余名를 이끌고 돌입하여 最后까지 싸우다 전사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사람의 忠君무사 정신과。明군 장수 양원이 동국의武士를 칭찬한 内容으로, 任辰年 선조代에 晋州陷落 후 南原의 위기 상황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원문
金敬老登武科宣祖壬辰為助防將聞南原圍急倍道亟進遇李福男於淳昌曰晉州天險之地兵且数萬陷於旬日之內今南原形勢不如晉州楊捴兵只有三千兵馬我國諸將無一來援城必陷矣豈可使明兵獨死於我國之事福男執其手曰公言正合我意遂與率願從者百餘人直入城中賊陣彌滿数十里與福男望見賊屯曰■身報國此其時矣遂揮刀直進楊元感歎曰東國男子惟此二人城陷與福男及諸壯士奮劒斫賊力盡而死
엔티티 후보
- person: 김경로 / 金敬老, confidence=0.98
- person: 이복남 / 李福男, confidence=0.98
- person: 양원 / 楊元, confidence=0.97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0.99
- place: 남원 / 南原, confidence=0.98
- place: 진도 / 淳昌, confidence=0.85
- place: 진주 / 晋州, confidence=0.97
- office: 무과 / 武科, confidence=0.97
- office: 조방장 / 助防將, confidence=0.88
- term: 동국 / 東國, confidence=0.92
- term: 임진 / 壬辰, confidence=0.97
불확실한 어휘
박수일
- 기사 ID:
20037_018_019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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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06:15:37.92853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8&aa15no=018&aa20no=20037_018_0198
한글 번역
박수일은 밀양 출신으로, 자는 순백이다. 17세에 예안으로 가서 이황을 뵙자, 이황이 그를 매우 칭찬하였다. 처음 별시에 응시했으나 전시에서 합격하지 못했고, 그 뒤로부터 과거 시험에 더 이상 마음을 두지 않았다. 이에 스스로修身의 학문에 힘썼다. 선조 정유년에 왜구가 다시 쳐들어오자, 적의 칼날에 부딪혀 욕을 쉬지 않고하다가 죽었다.
독음
박수일 밀양인 자순백년십칠 왕예 이황어 예안 황보허지 초참 별시 불리어 전시 불리어 자시 불복 유의 거업 수분위위지학적 선조 정유 왜재동会遇到㓙풍 마불절구이사
의미
조선 선조 연간 밀양 출신의 박수일(자 순백)이 17세에 이황을 찾아가 칭찬을 받았으나 과거에 낙방한 뒤 학문에 뜻을 둔 인물이다. 임진왜란(宣祖丁酉) 때 왜구의 침공에 맞닥뜨려 적 앞에서 욕을 그치지 않으며 전사한 사또로 기록되어 있다. 불혹의 의열한 충절과 왜적에 대한 저항 의지를 보여주는 기사이다.
원문
朴遂一密陽人字純伯年十七徃謁李滉于禮安滉頗許之初參别試不利於殿試自是不復留意擧業遂奮為己之學宣祖丁酉倭再動遇㓙鋒罵不絶口而死
엔티티 후보
- person: 박수일 / 朴遂一, confidence=1.0
- person: 이황 / 李滉, confidence=1.0
- place: 밀양 / 密陽, confidence=1.0
- place: 예안 / 禮安, confidence=1.0
- term: 전시 / 殿試, confidence=1.0
- term: 별시 / 別試, confidence=1.0
- term: 왜구 / 倭, confidence=0.9
- term: 거업(과거 시험) / 擧業, confidence=1.0
- term: 정유(1592년) / 丁酉, confidence=0.9
- term: 적의 칼날 / 㓙鋒, confidence=0.6
불확실한 어휘
소상진
- 기사 ID:
20037_018_019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199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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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06:16:15.62111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8&aa15no=018&aa20no=20037_018_0199
한글 번역
소상진은 진주 출신으로, 무예 수련에 종사하였으나 운이 따르지 않아成就하지 못했다. 또한 일명(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었다. 선조 임진년, 달천에서 군대가 크게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단마로 서울에 들어가 왕을 도우며 나섰다. 이때 任眞寶와 계영이 군사를 일으키자, 소상진은 이에 별장으로 참여하여 성주 전투에서 용감하게 돌격하셨으나, 포탄을 맞아 싸늘한战场上에서 돌아가셨다.
독음
소상진은 진주인으로서 무예에 종사하였으나 운수가 나쁘하여成就하지 못하였다. 일명이라고도 하였다. 선조 임진년에 달천의 군대가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곧 단마로 서울에 들어가 왕을 도왔다. 任眞寶와 계영이 군사를 일으킬 때, 소상진은 이에 별장이 되어 성주의 전투에서 몸을 앞으로 밀며 적진에 돌격하였으나, 총알을 맞고 죽었다.
의미
이 기사는 임진왜란(1592년) 당시의 인물 소상진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진주 출신인 그는 무예 수련 중이었으나成就하지 못했으며, 임진왜란 발발 직후 달천(晋州一帶?)의 군대가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고 단마로 상경하여 왕을 도왔다. 이후 任眞寶와 계영이起兵하자 别將으로 가담하여 성주 전투에서 적진에勇敢히 돌격하였으나, 총알에 맞아 전사하였다. 晋州出身의武人이 임진왜란 시기에殉國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원문
蘇尙鎭晉州人從事武藝数奇不成一名宣祖壬辰聞達川軍敗即以單騎入京勤王會任眞寶啓英起兵尙眞因為别將星州之戰挺身突陣中丸而死
엔티티 후보
- person: 소상진 / 蘇尙鎭, confidence=0.95
- place: 진주 / 晉州, confidence=0.95
- work: 선조 / 宣祖, confidence=0.95
- term: 임진년(1592년) / 壬辰, confidence=0.9
- place: 달천 / 達川, confidence=0.75
- person: 임진보 / 任眞寶, confidence=0.9
- person: 계영 / 啓英, confidence=0.9
- place: 성주 / 星州, confidence=0.95
- office: 별장 / 别將, confidence=0.9
- term: 근왕 / 勤王, confidence=0.95
- term: 단기 / 單騎,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數奇不成(수기不成)의 정확한 의미, 數奇가運命의 불운을 뜻하는지 무예 수련의 실패를 뜻하는지 불확실
- 達川의 구체적 위치가 확실하지 않음
- 突陣이 돌격인지突破인지를 명확히 알 수 없음
- 中丸而死에서 丸이 포탄인지石丸(돌알)인지 구분 불가
이엽
- 기사 ID:
20037_018_020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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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8&aa15no=018&aa20no=20037_018_0201
한글 번역
이엽은 선조 임진년에 어후의 직임으로 있으면서 청정에게 사로잡혀 일본 관백에게로 보내졌다. 관백이 그를 대접함이 매우 후하게 하여 상사와 녹이 셀 수 없이 많았으며 큰 집을 주어 거처하게 하였다. 이엽이 재물을 모두 쏟아 부어 여러 왜인들을 유혹하여 도망가려 하였다. 추격자에게 포위되어 검을 뽑아 자신의 배를 갈라 자결하였다. 왜인들이 그 목을 시장에 세워,挂하여 불로 쪄여 죽였고, 도망친 사람도 수십 명이 죽었다. 아아, 옛날 이陵이 스스로 장사라 칭하였으나 일이 실패하여 노예에게 항복하고 돌아가 한나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이엽은 관백의 먹이饲养를 아랑곳하지 않고 만死를 당할 뻔한 고난을 겪으며 돌아가려는 그 뜻을 가졌으니 그 지향이 딱하고, 하물며 임종에 이르러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적의 손에 더럽혀지지 않았으니, 용감한 사람이 아니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독음
이엽선조임진년어후위청정소집지지일본관백대지황후상사무수대옥이처지이엽진산금박유여와도주위추자소봉건겁자결기서와적수십인오호석리릉자칭장사사업패항려무의귀한이엽불고관수환양만사래귀기지가비창자간살지욱선호난위야
의미
선조 임진년(1592년)에 왜군에게 사로잡힌 이엽이 일본 관백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후하게 대접받았으나, 모반을 꾀하여 도망치다 포위되어 자결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文中에서 이릉과 비교하며, 잡혀서도 굴복하지 않고 만死를 무릅써 돌아가려 한 이엽의 절개를 소재 높이 평가하고 있다.
원문
李曄宣祖壬辰以虞侯為淸正所執至日本關白待之甚厚賞賜無数大屋以處之曄盡散金帛誘諸倭而逃為追者所逼拔劒自決其腹以死倭䲷首于市以火炙殺與逃者数十人嗚呼昔李陵自称壯士事敗降虜無意歸漢曄不顧關酋豢養萬死來歸其志可悲且臨死自殺不辱賊手非勇者難為也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엽 / 李曄, confidence=0.95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0.98
- year_term: 임진 / 壬辰, confidence=0.95
- person: 청정 / 淸正, confidence=0.92
- person: 관백 / 關白, confidence=0.93
- person: 이릉 / 李陵, confidence=0.95
- office: 어후 / 虞侯, confidence=0.88
- place: 일본 / 日本, confidence=0.98
- place: 시장 / 市,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박철수
- 기사 ID:
20037_018_020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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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3T23:32:51.25096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8&aa15no=018&aa20no=20037_018_0202
한글 번역
박철수가 선조 임진년에 산골로 피신았다. 도적놈을 보고 분함하여 이기지 못하여 이르기를 ‘차라리 한 도적을 쏘고 죽으리라’ 하고는 살을 휘저어 쫙 보았다. 무리들의 도적들이 곧장 달려와 철수의 아내 옥사를 죽였다. 옥사가 풀밭에서 나오며 시체를 안고 울었다. 도적이 또 그를 해쳤다. 장자가 다시 나와 울자 도적이 또 그를 해쳤다. 문중에 충·효·열의 세 가지 절이 있다.
독음
박철수선조임진피어산곡견적불승기분왈영사일적而死완궁사지군적직전살철수재옥씨출자초간포시이곡적해지장자우출이곡적우해지문유충효열삼절
의미
임진왜란 때 선조가 산속으로 피신하시던 중 박철수가 도적놈을 만나 분한 나머지 한 도적을 쏘고 죽겠다는 맹세를 하며 활을 당겼다. 그러나 도적 무리가 달려들어 박철수의 아내 옥씨와 장자까지 연달아 죽이면서 문중에 충·효·열의 세 가지 절이 있다 기록한 기사이다.
원문
朴鐵壽宣祖壬辰避於山谷見賊不勝其憤曰寧射一賊而死彎弓射之羣賊直前殺鐵壽妻玉氏出自草間抱屍而哭賊害之長子又出而哭賊又害之一門有忠孝烈三節
엔티티 후보
- person: 박철수 / 朴鐵壽, confidence=1.0
- person: 옥씨 / 玉氏, confidence=0.9
- person: 장자 / 長子, confidence=0.9
- time: 임진(선조 25년, 1592년) / 壬辰, confidence=0.9
- term: 충효열 / 忠孝烈,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심탁
- 기사 ID:
20037_018_020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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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06:16:51.60379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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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심탁은 청송인으로서 덕부의 일곱째孙손이다. 자는 진원이다. 선조 임진년에 상주의 군이 패하자,탁이 꺼끄러이 상에게 청하여 스스로 심립의 군으로 가서效力하고자 하였다. 상이 이를 훌륭히 여겨 허락하였다. 아직 심립에 도착하기 전에 심립이 패하자,다시 심염을 종종하여 임진을 지켰다. 심염이 강을 건너 물을 등지고 싸우려 하자,탁이 만류하였으나 따르지 않았다. 탁이 알아차리기 이를 것이 반드시 패할 것이라,무사 홍승렬과 함께 물속에 뛰어들어 능히 탈출하게 하였다. 승렬이 말하기를, “다만 남겨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돌아감이 오히려 다시 의거를 도모하는 것이 낫겠다.”하였다. 탁이 말하기를, “내가 이미 군주에게 命令을 받았으니, 하물며 元帥 이하가 여기에 있거늘 바로 이것이 나의 죽을 자리이다.”하였다. 마침내 싸우다 전사하였고, 관직은 판관에 그쳤다.
독음
심탁청송인덕부칠세손자동원선조임진상주군패탁개연청상원의심립군자효상장이허지위립반복종심염수임진염욕강배수이전탁쟁지불청탁지기필패여무사홍승렬부산이탈승렬왈도류무위불여귀거재도’의거탁왈오기수명어군황원수이하재차재사소수전사관즉판관
의미
심탁은 선조 임진년(1592년) 상주군 전투 패배 후 스스로 심립군에 가서 싸우겠다고 자원했고, 선조의 허락을 받았다. 심립이 전사한 뒤 심염의 임진 방어에 참여했으나, 심염이 강을 건너 배수전을 벌이려 하자 만류했다. 심염이 듣지 않자 심탁은 홍승렬과 함께 물에 뛰어들어 그를 구출했고, 승렬은 돌아가 다시 의거하자는 제안을 했으나 심탁은 이미 군주의 명을 받았으니 떠나지 않겠다고 하였다. 결국 전사했으며 관직은 판관에 그쳤다.
원문
沈鐸靑松人德符七世孫字振遠宣祖壬辰尙州軍敗鐸慨然請上願至申砬軍自效上壯而許之未至砬敗復從申硈守臨津硈欲渡江背水以戰鐸爭之不聼鐸知其必敗與武士洪承烈赴水以脫承烈曰徒留無為不如歸去再圖義擧鐸曰吾既受命於君況元帥以下在此乃吾死所遂戰死官止判官
엔티티 후보
- person: 심탁 / 沈鐸, confidence=0.95
- person: 덕부 / 德符, confidence=0.9
- place: 청송 / 靑松, confidence=0.95
- person: 심립 / 申砬, confidence=0.95
- person: 심염 / 申硈, confidence=0.95
- place: 임진 / 臨津, confidence=0.95
- person: 홍승렬 / 洪承烈, confidence=0.9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0.95
- person: 판관 / 判官, confidence=0.85
- place: 상주 / 尙州, confidence=0.9
- place: 강 / 江,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서경충
- 기사 ID:
20037_018_020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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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06:17:22.29705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8&aa15no=018&aa20no=20037_018_0205
한글 번역
서경충은 이천 사람으로 자는 군보이다. 선조 임진년(1592년)에 순찰사 윤탁연을 찾아가 도적 토벌 전략을 아뢰다. 탁연이 그를 크게 기이히 여겨 복병장으로 임명하고, 군사들을 격려하여 함흥과 홍원에서 싸워 적을 많이 섬멸하였다. 공로를 1등으로 기록하였다. 정유년(1597년)에 다시 습격에 참여하고 또 힘껏 싸워 여러 차례 공을 세웠으나, 그에게 비루함이 있어 어쩌다 보니 이름이 사라지고 말았다.
독음
서경충 이천인 자군보 선조 임진 방문 순찰사 윤탁연 도적 토벌 전략을 진술하다 탁연이 크게 기이히 여기어 복병장으로 임명하고 대중을 격려하며 함흥 홍원에서 싸워 적을 많이 섬멸하고 공로 1등으로 기록하다 정유년에 다시 습격하고 또 힘껏 싸워 여러 차례 공을 세웠으나 그에게寒微하여未免 没落하다
의미
서경충은 이천출신으로 선조 임진년(1592년) 임진왜란기에 순찰사 윤탁연에게 도적 토벌 전략을 바르게 진술하여 인정을 받고 복병장이 되었다. 함흥과 홍원에서 적을 많이 섬멸하며 공로 1등을 기록했고, 정유년(1597년) 丁酉再乱 때에도 여러 차례 공을 세웠다. 그러나 그가 서자 출신 등 비천한家门出身이었기 때문에功績에도 불구하고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비극적 운명을 담고 있다.「、寒微」라는 표현은 그의 비루한 가문배경을 지적하며, 고전에서 능력 있음에도 가문으로 인해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원문
徐敬忠利川人字君輔宣祖壬辰徃見巡察使尹卓然陳討賊方畧卓然大奇之署為伏兵將激厲徒衆戰于咸興洪原殲賊甚多錄功一等丁酉再搶又力戰屡立功而以其寒微未免泯没
엔티티 후보
- person: 서경충 / 徐敬忠, confidence=1.0
- person: 윤탁연 / 尹卓然, confidence=1.0
- place: 이천 / 利川, confidence=1.0
- place: 함흥 / 咸興, confidence=1.0
- place: 홍원 / 洪原, confidence=1.0
- period: 선조 임진년(1592) / 宣祖壬辰, confidence=1.0
- period: 정유년(1597) / 丁酉, confidence=1.0
- office: 순찰사 / 巡察使, confidence=1.0
- office: 복병장 / 伏兵將,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徃見은 방문하다/가서 만나다로 해석 가능하나 현대 한국어 화자는 단순 가다/찾아가다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 激厲은 격려하다와 자극하다의 복합의미로, 병사들을 전쟁에 임하게 하다의 뜻으로 해석
- 泯没은 이름이 사라지다/묻히다로 해석하며, 서경충이功名을 이루지 못한 것을 의미
박종남
- 기사 ID:
20037_018_020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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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06:18:55.25006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8&aa15no=018&aa20no=20037_018_0207
한글 번역
박종남은 밀양 사람이다. 자는 자윤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병조참의에 이르렀다. 선조 기미년(1599)에 반란을 일으킨 오랑캐 니탕계를 토벌하는 데 종군하여 공이 있어 곡충으로 승진했다. 왜구의 난이 일어난 기해년(1599)에 전라도 첩방장이 되고, 이어 춘천부 방어사가 되어 왜군이 북쪽으로 오르는 것을 막았다. 여러 차례 싸워서 이겼다. 광해군이 세종으로 있을 때 종남을 호행장으로 삼았다. 임금을 받드는 벼슬에 발탁되어 갑오년(1614)에 진주牧使를 물러났다. 이순신이 청하여 수군 첩방장이 되었고, 해안 오 고을의 군사를 분임하여 간산·창문·영등·건려량에서 싸웠으나 모두 싸우는 것처럼만 알려져 실상은 이순신이 참소로 옥에 갇혔을 때 종남도 드러나지 않았다. 효종朝에 그 아들 영신의 은전으로 특별히命하여 종남을 병조참의로追贈했다[주:子營臣은 아래를 볼 것]
독음
박종남 밀양인 자는 자윤登武과宦止兵조참의 선조계미從征반호니탕개유공陞折충급왜흥기계拜전라도보방장으로이미춘천부방어사로서왜병지의 북상자를 억제多次戰敗광해世子취종남위호행장擢授承旨갑오递晋州목사 이순신 계산舟師助教分管沿海오읍군 종전간산창문영등건려량개유접문 연순신譖就理종남역불현효종조因其子영신貤贈특명증종남병참[주:子營臣見하]
의미
박종남은 선조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병조참의까지 올랐으며, 니탕계 토벌에功을 세우고 왜란 때 전라도 첩방장과 춘천부 방어사로 왜군을 막았다. 광해군 세자 시절 호행장이 되었고, 이순신의 수군 첩방장에서 간산 등 해전에서功을 올렸다. 이순신이 탄핵받아 옥에 갇히자 함께 부각되지 못했으나, 효종대에 아들 박영신의 덕으로 특별히 병조참의로追贈되었다.
원문
朴宗男密陽人字子胤登武科官止兵曺參議宣祖癸未從征叛胡尼湯介有功陞折衝及倭釁己啓拜全羅助防將已為春川府防禦使以遏倭兵之向北者屡戰敗之光海以世子取宗男為護行將擢授承旨甲午遞晉州牧使李舜臣啓請為舟師助將分管沿海五邑軍從戰閑山場門永登見乃梁皆以捷聞然舜臣以譛就理宗男亦不顯孝宗朝因其子營臣貤贈特命贈宗男兵參[주:子營臣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박종남 / 朴宗男, confidence=1.0
- place: 밀양 / 密陽, confidence=1.0
- person: 자윤 / 子胤, confidence=1.0
- office: 병조참의 / 兵曹參議, confidence=1.0
- year: 선조 기미(1599) / 癸未, confidence=1.0
- person: 니탕계 / 尼湯介, confidence=0.95
- office: 折衝(군직) / 折衝, confidence=1.0
- place: 전라도 / 全羅, confidence=1.0
- place: 춘천부 / 春川府, confidence=1.0
- person: 광해군 / 光海, confidence=1.0
- person: 이순신 / 李舜臣, confidence=1.0
- place: 진주 / 晉州, confidence=1.0
- place: 간산(거제 월독도) / 間山, confidence=0.95
- place: 창문(영등) / 門永登, confidence=0.85
- place: 건려량 / 見乃梁, confidence=0.85
- person: 효종 / 孝宗, confidence=1.0
- person: 영신(박영신) / 營臣,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譛就理(탄핵받아 옥에 갇힘)의 구체적 内容
- 門永登이 간산전투 관련 지명인지 否確認
- 見乃梁(건려량)의 위치와 전투 기록
- 貤贈(차전자살)의 구체적 절차와 범위
양덕록
- 기사 ID:
20037_018_020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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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3T23:33:29.67247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8&aa15no=018&aa20no=20037_018_0208
한글 번역
양덕록은 중화현 사람으로 자는 경수, 호는 뇌헌이다. 명종 때 경술년(1550년) 과거에 합격했고, 선조 임진년(1592년)에 임금이 서쪽으로 행차하시자, 德祿이 상소하여 격변의 원인과 회복의 계책을 매우 상세하게 아뢰었다. 임금이 이를 칭찬하시니,賊이 추격하여 행조에 이르자 세상이震驚하였다. 德祿이 용봉마을에 이르러 종제 육직과友人 이덕암과 함께兵을募하여 삼백여 명을 얻고 적개군이라旗號하였다. 여러邑에 격문을 전하여義旅를 격동하고, 적귓포로進兵하여三현의 요로를扼하여殺傷을 많이 하였다. 인조 정축년(1627년)에 적병이 대대적으로 이르러城을 포위하자, 德祿이 문묘에 들어가祠版을 등에지고벽지地方으로 피신하여, 격문一道를 전하여壬辰년의 일을 거행하고자 하였다. 얼마 아니하여 적병이 돌아가니 그만두었다.
독음
양덕록중한화인자경수호뇌헌명종경술진사선조임진서행덕록상소겁진치란지유회복지책상가의적추지행조진경덕록용봉마을종제육직友人이덕암募兵득삼백여호적개군전계열읍격기유의여進兵적귓포액삼현요로살획심다인조정축여병대지박성덕록입문묘부사판피벽지전계일도욕거임진고사미결여귀내이
의미
양덕록(1516-?)은 조선 중화현 출신으로 1550년 과거에 합격하고 선조 연간에 활동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상소를 올려 나라를 구할 계책을 아뢴 뒤, 적개군을 조직하여 의병을 일으키고 요격을 벌였다. 1627년 정축호란 때 적병이城을 포위하자 문묘의祠版을 지키며 격문을 돌려 의열을 펼쳐壬辰년의 이야기를 다시 하려 하였으나, 곧 적군이 물러가면서 그만두었다. 나라가 위급할 때마다 의병을 일으킨 충절의 인물이다.
원문
楊德祿中和人字景綏號悔軒明宗庚戌進士宣祖壬辰西幸德祿上䟽極陳致亂之由恢復之策上嘉之賊追至行朝震驚德祿至龍鳳村與從姪懿直友人李德嵓募兵得三百餘號敵愾軍傳檄列邑激起義旅進兵狄橘浦扼三縣要路殺獲甚多仁祖丁卯虜兵大至薄城德祿入文廟負祠版避僻地傳檄一道欲擧壬辰故事未幾虜歸乃已
엔티티 후보
- person: 양덕록 / 楊德祿, confidence=1.0
- person: 경수(양덕록의 자) / 景綏, confidence=1.0
- person: 뇌헌(양덕록의 호) / 悔軒, confidence=1.0
- person: 육직(양덕록의 종제) / 懿直, confidence=1.0
- person: 이덕암(양덕록의友人) / 李德嵓, confidence=1.0
- place: 용봉마을 / 龍鳳村, confidence=1.0
- place: 적귓포 / 狄橘浦, confidence=0.9
- place: 문묘 / 文廟, confidence=1.0
- term: 적개군 / 敵愾軍, confidence=1.0
- term: 사판 / 祠版, confidence=1.0
- term: 전계(격문 전하다) / 傳檄, confidence=1.0
- term: 유의(의병) / 義旅, confidence=1.0
- term: 임진고사(임진왜란의 전례) / 壬辰故事, confidence=1.0
- work: 중화현(경기도 파주) / 中和人, confidence=1.0
- office: 명종 경술년 합격한 진사 / 明宗庚戌進士,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䟽(소, 상소 문서의 오기 가능성)
- 德嵓(인명 표기가 불확실, 덕암과 이음 가능)
- 薄城(박성 또는 포위城池之意 해석)
주국정
- 기사 ID:
20037_018_020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209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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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06:19:32.13618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8&aa15no=018&aa20no=20037_018_0209
한글 번역
주국정은 상주의 사람으로서, 자(표자)는 위중이고 호는 과은이다. 아버지가 왜란에 죽자, 국정은 통곡하며 적 속에 들어가 시체를 업고 돌아왔다. 적이 말하기를 “진짜 효자이로다.” 하니, 그를 해치지 않았다.
독음
주국정 상주인 자 위중 호 과은 부 사어 왜란 국정 호곡 입 적중 부시而来 적 왈 진효자야 부지해
의미
주국정은 임진왜란 때 아버지가 왜적에게 살해된 뒤, 적진에 들어가 시체를 찾아 나온 인물이다. 그의 효행에 감동한 왜적이 그를 해치지 않았다는 기록으로, 조선시대 왜란 피해와 효도의 상징적 사례로 전해진다.
원문
周國貞尙州人字衛仲號果隐父死於倭亂國貞號哭入賊中負屍而來賊曰眞孝子也不之害
엔티티 후보
- person: 주국정 / 周國貞, confidence=0.95
- place: 상주 / 尙州, confidence=0.95
- person: 위중 / 字衛仲, confidence=0.95
- person: 과은 / 號果隐, confidence=0.95
- term: 왜란 / 倭亂, confidence=0.95
- term: 효자 / 孝子,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而来는 원문에서 두 글자가 붙어 있어 정확한 독음이 불확실하며 문맥상 ‘왔음’을 뜻하는 來(래)로 추정
이흥상
- 기사 ID:
20037_018_021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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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06:19:27.85157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8&aa15no=018&aa20no=20037_018_0210
한글 번역
이흥상의 6세손. 무과에 급제. 선조 임진년에 안정부사로 재임하면서 해정창에서 왜적을 치르고 전사했다. 시신이 실종되었으나 관복으로 장사지냈다. 향년 22세. 사후에 병판으로 추증했다.
독음
이흥상지란육세손등무과선조임진年以来성부사로격왜어해정창사절망시관관장년이십이증병반
의미
이흥상의 6세손이 무과에 급제하여 선조 임진년(1592)에 안정부사로 부임했다가 해정창(함경도 해주)의 전쟁에서 왜적을 공격하다 전사한 뒤 시신이 확인되지 않았으나 관복으로 장사 지낸 인물. 향년 22세에 병판으로 추증되었다.
원문
李興祥之蘭六世孫登武科宣祖壬辰以稳城府使撃倭于海汀倉死節亡屍衣冠葬年二十二贈兵判
엔티티 후보
- person: 이흥상 / 李興祥, confidence=1.0
- place: 안정 / 稳城, confidence=1.0
- place: 해정창 / 海汀倉, confidence=0.9
- office: 병판 / 兵判, confidence=1.0
- term: 사절 / 死節, confidence=0.95
- term: 관관장 / 衣冠葬, confidence=0.85
- work: 무과 / 武科,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之蘭六世孫: ‘之蘭’이 성(李) 외의 별칭·호인지 확실하지 않음
- 衣冠葬: 시신이 없어 관복만으로 장사 지낸 개념, 직역 ‘관관장’
승령규
- 기사 ID:
20037_018_021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8]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8
- 면/쪽: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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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승려령규는 속성이 박씨로 밀양 사람이다. 호는 기허당이고, 휴정의 고足了로 공주 반치에 거처하였다. 신력이 있어禅杖(선장)을 잘 사용하고 무예를 닦았다. 계용산에 들어가 휴정의 법맥을 전수받고 전습하였다. 후에 서봉사와 낙가산사에 주석하고, 다시 갑사로 옮겨 살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 검은 옷을 입은 제자 삼백 명을 거느리고 조헌의 막하로 나갔다. 그의 제자들이 모두 겸자를手持하고 호령이 매우 엄격하였다. 금산에서 패하고 헌이 순절하자, 혹자가령규에게 이르기를 “조의를 장차 죽게 될 것이니 적들이 더욱 많이 다가오니 오히려 떠나가는 것이 낫다.” 하였다.령규가 크게 부르짖어 말하기를 “죽으면 그만이지 어찌 홀로 살 수 있겠는가.” 하고 하루 종일 맹렬히 싸웠으나,령규도 죽고 모든 군사도 모두 죽었으며 감히后退(후퇴)하거나 살아남은 자가 없었다. 부다之法(불탑법)을 사용하지 않고 예로 장사지냈다. 청주 전투에서 비록 크게 이기지지는 못하였으나 더욱 물러서지 않았으므로, 적이 마침내 성을 버리고 떠났다. 이는 모두령규의 공로였다. 이에 명하여 당상에陞資시켜僉知를 삼고, 비단 옷 한 벌을 내려주었다. 금산에서 순절한 뒤 그의 문에旌表하고, 종용堂에 배향하며, 별묘와 서산사의 표충사에 이르게 되었다.
독음
승령규속성박씨밀양인호기허당휴정고족거공주반치유신력호용선장연무기술입계용산전습휴정법학후주석어서봉사급낙가산사우증이어갑사임진란솔기자도삼백부조헌막하기도개지탐호령엄금산지패헌순절혹위령규왈조의를장사어재즉여불인거지령규대호왈사즉사이기간생투전종일령규역사제군진사무감퇴생자불용부탑법장지의청주전수무대승역불퇴북적수기성而去태령규지공야수명승당상위첨지사견의일습到於금산순절지가문향종용당별묘급서산사표충사
의미
이 기사는 임진왜란(임진란) 때 의병장 조헌과 함께 금산 전투에서 순절한 승려령규의事迹을 기록한 것이다.령규는 밀양 출신으로 휴정(休靜)의 제자이자 고足了로서,禅杖과 무예에 능하고 신력이 있어 제자 삼백 명을 이끌고 조헌의 의병에 합류하였다. 금산 패전 후 제자들과 함께 싸우다 전사하였으며, 后来 청주 전투에서도 그의 공로로 적군이 물러났다.死后 당상에陞資되고僉知에 任官되었으며, 금산 순절지에서 표창되고 종용당에 배향되었다.
원문
僧靈圭俗姓朴(氏)密陽人號騎虛堂休靜高足居公州板峙有神力好用禪杖演武技入雞龍山傳襲休靜法學後住錫于瑞鳳寺及落迦山寺又移住于岬寺壬辰亂率其緇徒三百赴趙憲幕下其徒皆持謙子號令甚嚴錦山之敗憲殉節或謂靈圭曰趙義將死矣賊益至不如去之靈圭大呼曰死則死耳豈可獨生鏖戰終日靈圭亦死諸軍盡死無敢退生者不用浮屠法葬之以禮淸州之戰雖無大勝亦不退北賊遂棄城而去皆靈圭之功也遂命陞堂上為僉知賜縀衣一襲到於錦山殉節之後旌閭享從容堂别廟及西山師表忠祠
엔티티 후보
- person: 령규(승려) / 僧靈圭, confidence=1.0
- person: 휴정(선사) / 休靜, confidence=1.0
- person: 조헌 / 趙憲, confidence=1.0
- person: 박(성) / 朴, confidence=1.0
- place: 밀양 / 密陽, confidence=1.0
- place: 공주 반치 / 公州板峙, confidence=1.0
- place: 계용산 / 雞龍山, confidence=1.0
- place: 서봉사 / 瑞鳳寺, confidence=1.0
- place: 낙가산사 / 落迦山寺, confidence=0.9
- place: 갑사 / 岬寺, confidence=0.9
- place: 금산 / 錦山, confidence=1.0
- place: 청주 / 淸州, confidence=1.0
- place: 서산 / 西山, confidence=0.8
- place: 종용당 / 從容堂, confidence=0.9
- office: 첨지(관직명) / 僉知, confidence=0.9
- term: 자도(검은 옷을 입은 제자, 승려) / 緇徒, confidence=0.9
- term: 부다之法(부다 장사법, 화장을 피하는 장사법) / 浮屠法, confidence=0.8
- term: 정려(문에 표창하는 것) / 旌閭,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기유광해군원년만력삼십칠년
- 기사 ID:
20037_019_000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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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광해군 원년인 기유년(1609년), 만력 37년에 창덕궁을 중건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이번에 재건하고, 류큐국이 사절을 보내어 우의를 청했다. 황흡의 분호조 설치로 재정을 정리하고 시민 부담을 완화하였다.
독음
기유광해군원년 만력 삼십칠년 창덕궁 중건. 임진년에 불타毁된 것을 이번에 중건完成役事后, 류큐국이 사절을 보내 형제 우의를 청했다. 분호조를 새로 설치하여 병란 이후 市에게 무상으로 징발하던 것을 해결하고, 황흔의 적극적인 대응으로市民들이 만족할 수 있는制度的 변화를 이루었다.
의미
광해군 즉위 초기에 창덕궁 중건, 류큐국과의 교류, 황흡의 분호조 설치 등 주요 변화를 이끈 역사적 사건을 담고 있다.
원문
[주:己酉][주:光海君元年萬暦三十七年]昌德。(宮)重建成[주:壬辰燬主是重建訖役]○琉球國來聘[주:移咨送方物請結兄弟之義]○剏設分戶曹[주:兵亂以來財竭費廣大小需用臨時白奪於市民民甚怨苦至是因熊劉两詔使之來戶判黃愼建設分戶曹凡詔使支供之物預備以用民甚便之]
엔티티 후보
- place: 창덕궁 / 昌德宮, confidence=1.0
- period: 광해군 원년 / 光海君元年, confidence=1.0
- period: 만력 37년 / 萬曆三十七年, confidence=1.0
- period: 임진년 / 壬辰, confidence=1.0
- place: 류큐국 / 琉球國, confidence=1.0
- office: 호조 / 戶曹, confidence=1.0
- office: 분호조 / 分戶曹, confidence=1.0
- person: 황흡 / 黃愼, confidence=1.0
- person: 곰 / 熊, confidence=0.8
- person: 유 / 劉,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熊劉两詔使 - 곰과 유 두 사람의诏使 정확한 이름이나 신분이 불확실
- 白奪 - 무상 징발의 구체적 방식이 불확실
갑인육년만력사십이년
- 기사 ID:
20037_019_000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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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갑인년 여섯째 해, 만력사십이년(1614). 정월, 세 개의 태양이 함께 나타났고, 흰 무지개가 해를 관통했다. 이월, 영창대군 㼁을 죽였다. 강화부사 정홍이爾瞻의 명을 받아 그를 비밀실에 가두어 문을 닫고 기름을 끼얹어 불을 놓아 그 혼이 몽매하게 누死于宥室한 뒤에 죽었다. 부司直 정蘊이 상소하기를, 대왕께서는 인륜의 변을 만나 불행하게도 차마悍한 무관에게 손을 빌려주셨으니 이것이 성덕에 끼치는 손해가 큽니다. 신은 어리석게도 생각건대, 정홍을斩杀하지 않는다면 대왕께서는 선왕의 사당에 들어갈 얼굴이 없을 것입니다. 또 아뢰옵기를, 대비가 비록 자비를 갖추지 않으셨다 하더라도 대왕으로서 어찌 대비에게 효도를 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况且 㼁은 이미 죽었으니 다시 무슨 의심이 있으리요. 참으로 원컨대 이제부터부터謟邪의 입을斥絶하고 교쟁의 길을塞断하며 삼가 사자의 직무를 다하여慈殿의 환심을 얻는다면, 어찌 과거의 과실을 덮고 새로운 교화를 밝히는 데 부족하겠습니까. 상소가 올라가자 대왕이 크게 노하여 그 상소를 불에 태웠고, 친히訊問하고자 하였다. 李元翼와 鄭昌衍이 힘써 구하여 大靜縣에 안치하였다. 전주 慶基殿이 준공되었다. 예판 金闓을 보내어 爾瞻의 명을 받아 李好義로 하여금 평양에서 태조의睟容을 받들어 옮겨다慶基殿에 안치하게 하였다.
독음
갑인육년만력사십이년 정월삼양병출백횡관일 이월살영창대군㼁강화부사정홍승저시서지밀실료기광울모이而死부사직정보온상소일殿下불행치인륜지변명면가수 於麤悍무부기위성덕지루대의矣침우이위불참정홍殿下무면목입어선왕묘정也又曰대비雖或不慈殿下안득부진효於대비乎况㼁이미사矣부하억의간지유哉성원계지금치선절첨사지구맹절교구로공위자사무득자전지환심칙이부족이전건명신화호수입대노수친곡이원역정창연력구안치대정현현
의미
만력사십이년(1614, 광해군 即位六年)에 일어난 정치적 사건을 기록한 기사이다. 핵심은 서인 세력이 정인척의 명령으로 영창대군 㼁을 비공개적으로 암살한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강화부사 정홍이爾瞻의 명을 받아 영창대군을 밀실에서 유압致死 시켰다. 이를 비판한 부사직 정蘊이 대왕이 정홍을斩殺하지 않으면 선왕 사당에 드는 얼굴이 없다고 상소하고, 비록 대비가 불효하더라도 효도는 다해야 하며, 영창대군이 이미 죽었으니 의심할 게 없다며 간쟁을 끊고慈殿의 환심을 사라고 간청했다. 대왕이 노하여 상소를 불태우고 관련자를 친鞫하려 했으나, 李元翼와 鄭昌衍의 만류로 大靜縣에 유배安置했다. 전주에 太祖의 초상화를 모신 慶基殿이 새로 지어졌다.
원문
[주:甲寅][주:六年萬暦四十二年]正月三暘并出白虹貫曰○二月殺永昌大君㼁[주:江華府使鄭沆承爾瞻㫖鎻之宻室焼其炕欝冒而死副司直鄭蘊上䟽曰殿下不幸値人倫之變未免假手於麁悍武夫其為聖德之累大矣臣愚以為不斬鄭沆殿下無面目入於先王廟庭也又曰大妃雖或不慈殿下安得不盡孝於大妃乎况㼁已死矣復何疑間之有哉誠願繼自今斥絶讒邪之口社塞交搆之路恭為子職務得慈殿之歓心則豈不足以掩前愆而明新化乎䟽入主大怒遂焚其䟽親鞫李元翼鄭昌衍力救安寘大静縣]○全州慶基殿成[주:遣禮判金闓承㫖李好義于平壤奉太祖睟容移安于慶基殿]
엔티티 후보
- term: 갑인 / 甲寅, confidence=1.0
- term: 만력사십이년 / 萬曆四十二年, confidence=1.0
- person: 영창대군 / 永昌大君㼁, confidence=1.0
- person: 정홍 / 鄭沆, confidence=1.0
- person: 이척 / 爾瞻, confidence=0.95
- person: 정온 / 鄭蘊, confidence=1.0
- person: 이원역 / 李元翼, confidence=1.0
- person: 정창연 / 鄭昌衍, confidence=1.0
- person: 김개 / 金闓, confidence=0.95
- person: 이호의 / 李好義, confidence=0.95
- place: 강화부 / 江華府, confidence=1.0
- place: 경기전 / 慶基殿, confidence=1.0
- place: 대정현 / 大靜縣, confidence=0.95
- place: 평양 / 平壤, confidence=1.0
- work: 태조 초상화 / 太祖睟容, confidence=1.0
- office: 부사직 / 副司直, confidence=1.0
- term: 백횡관일 / 白虹貫日, confidence=1.0
- term: 삼양병출 / 三暘并出,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신유십삼년희종철황제천계원년
- 기사 ID:
20037_019_001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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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신유년(1621년) 십삼년, 희종哲皇帝 천계 원년. 오랑캐가 요동(遼東)을 함락하였다. 찬학사(賛學使) 이시발이 장계하기를, 「난리를 피해 도망 온 당인(唐人)들이 몸을 일으켜 나오니, 옥강(玉江)과 유사(麟山)의 상하 섬에서 서로 안고 울부짖었다. 황조(皇朝)의 관대한 특령으로 참장(参将) 왕소훈(王紹勳)이 我国에 격문하여 정변을 토평할 원병을 요청하였다.」체찰사(体察使) 이경전(李慶全)이 강남(江華)으로 가서 行宫의 형상을 살폈다. 이영방(李永芳)이 백여 기사로 강남 보(堡)를 건너 당인을 수색하여 모두 죽이고 철퇴하여 진강(鎭江)으로 들어갔다. 편지를 보내어 위협하니 스스로 대금국(大海國)이라 칭하였다. [붙임: 영방(永芳)이 오랑캐에게 투항하여 그의 사위가 되었다.] 만포(滿浦) 첨사(僉使) 정충신(鄭忠信)을 파견하여 오랑캐 중에 왕래하게 하고, 삼남(三南)에 명하여 진왕병(勤王兵) 각각 삼천을 보내어 모두 수원(水原)에 집결하게 하였다. 이때 요동이 이미 함락되고中外가 소란스러우므로, 조정에서 원수(元帥)는 반드시 한준겸(韓浚謙)이어야 한다고 의론하였다. 이에 체배(謫配) 중에 있던 그를 불러 도원수(都元帥)로 임명하였으며, 한명련(韓明璉)을 순변사(巡邊使)로 겸임하고 귀성부사(龜城府使)에 임명하였다. 명련(明璉)이 행伍에서 발탁되어, 왜란(倭亂)에 효공을 여러 차례 하여 드디어 명성을 얻게 되었다.
독음
신유십삼년희종철황제천계원년
의미
1621년 명나라 희종 천계 원년, 만주 오랑캐가 요동을 함락한 상황을 기록한 기사이다. 도망 온 명나라 백성들이 강남 지역에서 비극적 처지에 놓였고, 이영방이 백여 기사로 강남 보를 습격하여 당인들을 모두 죽이고 진강으로 철퇴한 뒤 스스로 대금국을 칭하며 협박 편지를 보내왔다. 조선 조정은 정충신을 오랑캐 속에 파견하고 삼남에 진왕병 삼천 명씩을 수원으로 집결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 조정이 원수직에 한준겸을 기용하자, 체배 상태에서 불러 도원수로 임명하고 한명련을 순변사 겸 귀성부사로 임명하여 변방을 지키게 했다. 한명련은 왜란 때부터 전공을 세워 알려진 인물이었다.
원문
[주:辛酉][주:十三年熹宗哲皇帝天啓元年]虜䧟遼東[주:賛畫使李時發狀啓避亂唐人席捲出來自玉江麟山上下島嶼扶抱號哭云皇朝寬典参将王紹勳移檄本國請援兵以討暴亂軆察使李慶全徃江華審行宫形止李永芳以百餘騎渡江至玉江堡搜索唐人盡殺之退入鎭江移書恐喝自称大金國袝馬[주:永芳降虜為其婿]遣滿浦僉使鄭忠信徃還虜中令三南致勤王兵各三千皆會水原時遼東旣䧟中外汹汹廷議元帥非韓浚謙不可遂自謪中起拜都元帥以韓明璉為巡邉使兼龜城府使明璉起自行伍倭亂屡立功遂知名]
엔티티 후보
- period: 천계원년(명나라 희종 1년, 1621년) / 天啓元年, confidence=0.95
- period: 신유년(1621년) / 辛酉, confidence=0.95
- place: 요동 / 遼東, confidence=0.95
- person: 이시발 / 李時發, confidence=0.9
- person: 왕소훈 / 王紹勳, confidence=0.9
- person: 이경전 / 李慶全, confidence=0.9
- person: 이영방 / 李永芳, confidence=0.95
- person: 정충신 / 鄭忠信, confidence=0.95
- person: 한준겸 / 韓浚謙, confidence=0.95
- person: 한명련 / 韓明璉, confidence=0.95
- place: 옥강 / 玉江, confidence=0.85
- place: 유산 / 麟山, confidence=0.85
- place: 강화(江華) / 江華, confidence=0.9
- place: 옥강보 / 玉江堡, confidence=0.85
- place: 진강 / 鎭江, confidence=0.9
- place: 만포 / 滿浦, confidence=0.9
- place: 수원 / 水原, confidence=0.9
- place: 삼남(湖南·嶺南·湖南) / 三南, confidence=0.85
- place: 귀성 / 龜城, confidence=0.85
- office: 찬학사 / 賛畫使, confidence=0.85
- office: 체찰사 / 体察使, confidence=0.9
- office: 참장 / 參将, confidence=0.9
- office: 첨사 / 僉使, confidence=0.9
- office: 도원수 / 都元帥, confidence=0.9
- office: 순변사 / 巡邊使, confidence=0.9
- term: 대금국(후금의 자칭) / 大金國, confidence=0.9
- term: 부마(사위) / 袝馬, confidence=0.85
- term: 진왕병(황조 원조 병사) / 勤王兵, confidence=0.9
- term: 행伍(군대 편제·군인 출신) / 行伍,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席捲(습건) - ‘몫을 일으켜’로 해석하였으나 원문의 도망 온 당인들이 나가는 형상의 구체적 의미
- 袝馬 - 부마(사위)가 오랑캐의 사위가 됨을 나타내나, 후금 측 관직명과의 관계 불확실
- 皇朝寬典 - 황조의 관대한 특령의 구체적 내용이 명시되지 않아 정확한 취지를 파악하기 어려움
정인홍
- 기사 ID:
20037_019_001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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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정인홍[주: 선조조열전을 참고할 것]
독음
정인홍[주: 선조조열전을 볼 것]
의미
조선 선조 시대의 인물 정인홍에 대한 설명이며, 상세 내용은 선조조열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정인홍 / 鄭仁弘, confidence=1.0
- work: 선조조열전 / 宣祖朝列傳, confidence=1.0
정창연
- 기사 ID:
20037_019_001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16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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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06:27:27.53216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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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정창연[주: 선조 때 호당 편을 참조할 것]
독음
정창연[주:견선조조호당]
의미
정창연은 조선 선조 연간 호당(湖堂)에 나타나는 인물이며, 상세한 사적은 선조조 호堂 부분을 참고하라는 뜻이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정창연 / 鄭昌衍, confidence=0.9
- term: 호당 / 湖堂, confidence=0.7
- term: 견(참조) / 見, confidence=0.8
- term: 주(注释) / 注,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민몽룡
- 기사 ID:
20037_019_001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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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9&aa15no=019&aa20no=20037_019_0018
한글 번역
민몽룡은 효조 민증의 증손이며, 재종형제의 아들로 자는 치운다. 선조 갑신년(1544년)에 친시림과에 급제했다. 과거에 응시하기 전 꿈에 대나무 숲 속에서 호랑이가 뛰어오르며 그 꼬리를 잡았고, 과연 방문의 맨 뒤에 올랐다. 박시가 장원이 되었고, 인홍의 천거로 등용되었다. 광해군 정사(1621)년에 대비(仁穆大妃)를 폐위问题时左参赞으로서 의논에 참여하여 상주하기를, 유疏는 실로 공공에서 나왔으니 또 무슨 의논이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무오년(1619)에 우승상에 오르며 폐모론을 힘써 주장하였다. 폭사하여仁祖 연간에 추탈되었다.
독음
민몽룡효증증손 소식재종자 치운 선조갑신등친시림과몽죽림중유호등약내측미과참방말박시위상태원인의힘천등용광해정사폐대비수의시이좌참찬헌기의왈유소실출어공공경유화의무차배우삼성력주폐모론폭사진조계해추탈
의미
민몽룡(閔夢龍)은 조선 선조 때 갑신년(1544년)에 친시림과에 급제한 인물이다. 과거 전梦见 호랑이 꼬리를 잡는 꿈을 꾸었고, 실제로 방가 막내가 되었다. 박시(朴箎)가 장원했으며, 인홍의 천거로 관에 등용되었다. 광해군 치세 丁巳년(1621)에 대비 폐위 논쟁에左参赞으로서 참여하여 유疏는 공에서 나왔다고 발언했다. 戊午년(1619)에右丞相에 올랐으며 폐모론을 강력히 주장한 인물로, 결국仁祖 연간 폭사하고追奪을 당했다.
원문
閔夢龍孝曾曾孫祥子馨男再從字致雲宣祖甲申登親試臨科夢竹林中有虎騰躍乃捉其尾果參榜末朴箎為壮元以仁弘力薦登庸光海丁巳廢大妃収議時以左參䝺獻議曰儒䟽實出於共公更有何議戊午拜右相力主廢母論暴死仁祖癸亥追奪
엔티티 후보
- person: 민몽룡 / 閔夢龍, confidence=1.0
- person: 박시 / 朴箎, confidence=1.0
- person: 인홍 / 仁弘, confidence=1.0
- person: 대비(仁穆大妃) / 大妃, confidence=0.9
- office: 우승상 / 右相, confidence=1.0
- office: 좌참찬 / 左參贊, confidence=1.0
- term: 추탈 / 追奪,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박홍구
- 기사 ID:
20037_019_002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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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박홍구는 박원형(元亨)의 5세손이다. 직학 랑영의 아들로 명종 임자년에 태어났으며, 자는 응군이다. 처음 이름은 홍로였고, 선조 임오년에 태어났다. 진사에 함께 급제하고 같은 해에 명경과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한림원 벼슬을 지내고, 광해군 무오년(1618)에 우승상에 오랐다. 폐모 사건 때 이의를 제기하며 서 궁에 세우자고 건의했고, 묻는 것을 끝까지 폐하지 않았다. 인조 반정일에 특명으로 좌승상에 오르고, 정사를 가결하는 데 참여했으며, 공으로 기사사에 들어갔다. 갑자년(1624)에 자점에게 함정에 빠뜨림을 당하여 군복 차림으로 영적을 맞이하다 사약을 받고 죽었다. 향년 73세. 숙종 신미년(1721)에 억울함을 풀어주고, 당녕 공년(1730)에 관직을 회복하였다.
독음
박홍구원형오세손직학랑영자명종임자생자유응군초명홍로선조임오年生進俱중동년등명경과력한림광해무오배우승상폐모후시회의입삼성궁문안종시불폐인조반정일특배좌승상참정사원범공입기사사갑자위자점소설이융복영적혜사사년간십칠삼렴종신미신,宽정경해갑자복관
의미
박홍구(1539-1619)는 조선后期的 문신으로, 명종과 선조 연간에 벼슬하여 한림원, 우승상, 좌승상에 이르렀다. 광해군 때 폐모 사건에 적극 반대하여 서궁 추복을 건의했고, 인조 반정에는 참여하여 좌승상에 오르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인조 갑자년(1624) 자점의 영길 사건에 연좌되어 군복 차림으로 영적을 맞이하여 사사를 받았다. 향년 73세. 사후 100여 년이 지나 숙종 신미년에 억울함이 풀리고, 당녕 공년에 관직이 회복되었다.
원문
朴弘耉元亨五世孫直學蘭榮子明宗壬子生字應郡初名弘老宣祖壬午生進俱中同年登明經科歴翰林光海戊午拜右相廢母后時獻議立異西宫問安終始不廢仁祖反正日特拜左相參靖社願泛功入耆社甲子為自點所䧟以戎服迎适賜死年七十三肅宗辛未伸寃當宁庚戌復官
엔티티 후보
- person: 박홍구 / 朴弘耉, confidence=1.0
- person: 원형 / 元亨, confidence=0.9
- person: 랑영 / 蘭榮, confidence=0.9
- person: 명종 / 明宗, confidence=1.0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1.0
- person: 광해군 / 光海, confidence=1.0
- person: 인조 / 仁祖, confidence=1.0
- person: 자점 / 自點, confidence=0.9
- person: 숙종 / 肃宗, confidence=1.0
- person: 영길 / 适, confidence=0.9
- office: 직학 / 直學, confidence=0.9
- office: 한림 / 翰林, confidence=1.0
- office: 우승상 / 右相, confidence=1.0
- office: 좌승상 / 左相, confidence=1.0
- office: 기사사 / 耆社, confidence=0.9
- term: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0.9
- term: 반정 / 反正, confidence=1.0
- term: 정사 / 靖社, confidence=0.8
- term: 응군 / 應郡, confidence=0.9
- place: 서궁 / 西宫,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자래장
- 기사 ID:
20037_019_002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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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子來章의 자(字)는 而慶이다. 광해군 기유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임자년에 明經科에 올라 벼슬이 교리에서 그쳤다. 당시 사람들이 이르기를, ‘박장팔의 팔장(八章)에 章來章의 文章이 있다’고 했다. 한국오국을 定國하고 흉국을 물리친다. 갑자년에 옥에서 곤장으로 맞아 죽었다.
독음
자로래장 자 이경 광해 기유 진사 임자 등명경과 관지교리 시인왈 박장팔 장래장 문장 한국오국 정국 흉국 갑자 옥장사
의미
자래장은 광해군대에 진사에 합격하고 임자년에 명경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교리직에서 끝났다. 당시 사람들은 박장팔의 팔장과 자래장의 문장을 함께 칭송하였다. 갑자년(1624년, 인조 즉위년)에 인조반정과 관련한 옥사에서 곤장으로 맞아 죽은 인물로 추정된다. 문장의 뛰어남을 인정받았으나 정치적 혼란 속에서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조선 중기의 선비이다.
원문
子來章字而慶光海己酉進士壬子登明經科官止校理時人曰朴章八章來章文章韓國五國定國凶國甲子獄杖死
엔티티 후보
- person: 자로래장 / 子來章, confidence=1.0
- person: 이경 / 而慶, confidence=1.0
- term: 자(별칭) / 字, confidence=1.0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term: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1.0
- office: 교리 / 校理, confidence=1.0
- person: 박장팔 / 朴章八, confidence=0.9
- term: 문장 / 文章, confidence=1.0
- event: 갑자옥장사(1624년 옥사에서 곤장 맞아 죽음) / 甲子獄杖死, confidence=0.85
- period: 광해군대 / 光海,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한국오국·정국·흉국 관련 구절이 짧게 압축되어 있어 구체적 사연 해석이 어렵습니다. 인조반정·병자호란 등 정치적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나 문맥이 단절되어 있습니다.
조정호
- 기사 ID:
20037_019_002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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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조정호는 조정의 아우 조언수의 종조카로서 명종 경해년에 태어나 자는 여호, 호는 죽천이다. 선조 임오년에 진사에 급제하고, 다음 해 계미년에 명경시에 합격하였다. 을유년에 사정 벼슬로 중시에 합격하였으며, 이내첨이 주도한 폐모론에 가담하였다. 광해군 기미년에 우상에 제청되고 기사에 입사하였다. 인조 갑자에 원임 호종으로 공주에 종종하였다. 무술년에 여러 차례 적에게 포섭되는 일이 있어 남해도에 유배되었다. 기사에 일흔아홉 살로 사망하였으며, 숙종조에 관직이 회복되었다. 아들 유희분은 서자이며, 글자는 则見이다. 선조 병오년에 태어나 광해군 경술년에 명경과에 급제하였다. 삼사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고 증지의 직위에서 그쳤다. 무술년에 역옥에 연좌되어 도주하였다.
독음
조정호, 조정은 아우 언秀, 종姪 명종 경해생, 자 여호, 호 죽천, 선조 임오진사, 계미등정시, 을유 사정으로 중시데 붕, 이내첨의 폐모론에 가담, 광해 기미에 우상에拜하고 기사에 입사, 인조 갑자에 원임호종으로 공주에 종종, 무술에 여러 번 적에게 포섭되어 남해로 유배, 기사에 사망, 예순아흔 살, 숙종조에 관직 회복, 아들 유희분, 서류 글자이면, 선조 병오생, 광해 경술에 명경과에 급제, 삼사 관력을 역임하고 증지에서 그침, 무술에 역옥에 연좌되어 도주함
의미
조정호(1551~1629)는 조선 선조·광해군·인조 시대의 관료로, 진사·명경시·중시 합격 등 여러 시험에 합격하고 좌의정까지 올랐다. 이내첨의 폐모론에 가담한 이력이 있으며, 인조반정 이후에도 벼슬길에 나갔다가 적에게 포섭되었다는罪名으로 남해에 유배되었다. 광해군 시기부터 벼슬을 했지만 숙종대에 이르러 비로소 관직이 회복되었다. 아들 유희분 역시 관료로 활동했으나 역옥에 연좌되어 도주하였다.
원문
趙挺振弟彦秀從姪明宗辛亥生字汝豪號竹川宣祖壬午進士癸未登庭試丙戌以司正登重試附爾瞻主廢母之論光海己未拜右相入耆社仁祖甲子以原任扈從公州戊辰屡出賊招謫南海己巳卒年七十九肅宗朝復官子有道柳希奮婿字則見宣祖丙午生貟光海庚戌登明經科歴三司官止承㫖戊辰逆獄坐竄
엔티티 후보
- person: 조정호 / 趙挺豪, confidence=0.95
- person: 언秀 / 彦秀, confidence=0.7
- person: 이내첨 / 爾瞻, confidence=0.95
- person: 유도 / 有道, confidence=0.5
- person: 유희분 / 柳希奮, confidence=0.95
- place: 남해도 / 南海, confidence=0.9
- place: 공주 / 公州, confidence=0.95
- office: 사정 / 司正, confidence=0.9
- office: 우상 / 右相, confidence=0.95
- office: 기사 / 耆社, confidence=0.9
- office: 증지 / 承㫖, confidence=0.75
- term: 종질 / 從姪, confidence=0.85
- term: 정시 / 庭試, confidence=0.9
- term: 중시 / 重試, confidence=0.9
- term: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0.9
- term: 역옥 / 逆獄, confidence=0.85
- work: 죽천 / 竹川,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彦秀 앞의 ‘振弟’는振의 아우 조언수인지 미확인
- 有道가 유도인지 ‘자道’로 볼 여지 있음
- 字則見의 则見이 정확한 한자인지 불확실
- 附爾瞻主廢母之論에서 ‘附’의 정확한 뜻(가담·의거 등) 미확정
이수
- 기사 ID:
20037_019_002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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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9&aa15no=019&aa20no=20037_019_0025
한글 번역
이수는 진천군(晋川君) 옥정자(玉貞子) 귀성군(龜城君) 준의 5대손이다. 무과에 합격하여 황병과 위병직을 두루 거쳤으며, 광해조 시대에 훈련장職에 임명되었다.
독음
이수 진천군 옥정자 귀성군 준 종증손 등무과 역황병 위병 광해조 단배훈장
의미
조선 광해군 시대의武科合格者 이수에 관한 기록이다. 武科 무과에 합격하여 무관이 되었고, 黄兵營과 蔚兵營 등 중앙 군사 부서를 차례로 역임한 뒤 광해조에서 훈련장(訓将)에 오랐다. 系譜상으로는 진천군·옥정자·귀성군 등을 역임한功臣 자손인 준의 5대손으로 표현되었다.
원문
李璲晋川君玉貞子龜城君浚從曾孫登武科歴黄兵蔚兵光海朝登壇拜訓将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수 / 李璲, confidence=0.98
- person: 진천군 / 晋川君, confidence=0.95
- person: 옥정자 / 玉貞子, confidence=0.92
- person: 귀성군 / 龜城君, confidence=0.95
- person: 준 / 浚, confidence=0.88
- office: 무과 / 武科, confidence=0.98
- office: 황병 / 黄兵, confidence=0.85
- office: 위병 / 蔚兵, confidence=0.85
- term: 광해조 / 光海朝, confidence=0.97
- office: 훈장 / 訓将, confidence=0.82
불확실한 어휘
- 壇拜訓練将의 壇拜 부분이 단(壇)인지 선(擅)인지 불분명하며, 黄兵·蔚兵은 각 병영 명칭으로 보이나 정확한 全名이 확인되지 않아 병기(兵)만 단독으로 표기된 原典 그대로 음독 표기함
이용빈
- 기사 ID:
20037_019_002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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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용빈은 효녕대군의 6대 후손이다. 군수 이자량의 종조카로서 무과에 급제한 뒤全军도평병, 남북병통어사 등을 역임하고, 광해군 때 훈련대장에 오르며 순변사를 지냈고, 관직은 참판에서 멈추었다.
독음
이용빈 효녕대군 보육세손 군수아자량 종자 등무과 역사全军병평병 남북병통어사 광해조 단坛 배훈장 역사 순변사 관지참판
의미
조선 광해군 시대의 무관 이용빈의 이력이다. 효녕대군의 6세손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군사 관직을 두루 거쳤으나, 훈련대장(參判 등)의 직위에서 그쳤다. 通䱥使는 通津使 오기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원문
李䇯賓孝寕大君補六世孫郡守櫓子樑從子登武科歴全兵平兵南北兵統䱥使光海朝登壇拜訓将歴巡邉使官止參判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용빈 / 李用賓, confidence=0.7
- person: 효녕대군 / 孝寧大君, confidence=0.9
- person: 이자량 / 櫓子樑, confidence=0.7
- place: 광해군 시대 / 光海朝, confidence=0.9
- office: 군수 / 郡守, confidence=0.9
- office: 참판 / 參判, confidence=0.9
- office: 순변사 / 巡邊使, confidence=0.9
- office: 훈장 / 訓將,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䇯(용으로 추정되나 고자 확인 필요)
- 䱥(通津使 오기 가능성, 통진사로 추정)
- 坛(壇 오기 가능성, 단坛 구조 불명확)
성윤문
- 기사 ID:
20037_019_002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27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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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3T23:36:45.848888+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9&aa15no=019&aa20no=20037_019_0027
한글 번역
성윤문은 창녕 사람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무예로 일찍이 높은 관직에 올랐다. 율산·병京(서울)·수평等地的 군직을 두루 거쳤다. 선조 임진년(1592년)에 권칙의 말을 빌어 김덕령을 잡았다. 광해군 시대에 단坛에 올라 훈련장교에 임명되었고, 결국 판윤에 이르렀다.
독음
성윤문 창녕인 등무과 의무예 조치화秩력위병경수병병 선조임진 인칙언포 김덕령 광해조 단등배훈장관 지판윤
의미
성윤문은 조선 선조~광해군 시대의 무과 급제 장수이다. 무예에 능하여早日 높은 관직에 올랐으며, 율산·서울·수평 등지의 군직을 두루 거쳤다. 임진왜란 당시 권칙의 청에 따라 김덕령을 체포하는 공을 세웠고, 광해군 때 훈련장교로 임명되어 최종적으로 판윤(방백)에 이르렀다.
원문
成允文昌寕人登武科以武藝早躋華秩歴蔚兵京水平兵宣祖壬辰因權慄言捕金德齡光海朝登壇拜訓将官止判尹
엔티티 후보
- person: 성윤문 / 成允文, confidence=1.0
- place: 창녕 / 昌寧, confidence=1.0
- person: 김덕령 / 金德齡, confidence=1.0
- person: 권칙 / 權慄, confidence=1.0
- office: 판윤 / 判尹, confidence=1.0
- office: 훈련장교 / 訓将官, confidence=0.9
- term: 화직 / 華秩, confidence=0.9
- place: 율산 / 蔚,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蔚(율산 또는 율병 해석 불확실)
- 華秩(화직-고관의 뜻으로 추정)
- 壇登(단坛-훈련場所로 추정)
구사직
- 기사 ID:
20037_019_002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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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6T22:13:45.10877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9&aa15no=019&aa20no=20037_019_0028
한글 번역
구사직은 영주 출신이고, 자는 원양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황해도 병마사, 충청도 병마사, 경기도 수군절도사, 전라도 병마사를 역임하였다. 선조 임진년(1592년)에 공신이 되었으며, 광해군 시대에 대언이 되고 훈련대장에 임명되었다.
독음
구사직 영주인 자 원양 등무과 력황병 충병 기수 전병 선조 임진 공신 광해조 대언 배 훈련장
의미
조선后期的 무관 관료 구사직의 약력이다. 영주 출신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지역의 병마사직을 두루 역임했고, 임진왜란(선조 25년, 1592년) 때 공을 세워 공신 칭호를 받았다. 이후 광해군대에 대언과 훈련대장 등 요직을 거쳤다.
원문
具思稷綾州人字元養登武科歴黄兵忠兵畿水全兵宣祖壬辰功臣光海朝登壇拜訓将
엔티티 후보
- person: 구사직 / 具思稷, confidence=1.0
- person: 원양(자) / 字元養, confidence=1.0
- place: 영주 / 綾州, confidence=1.0
- office: 황해도 병마사 / 黄兵, confidence=0.9
- office: 충청도 병마사 / 忠兵, confidence=0.9
- office: 경기도 수군절도사 / 畿水, confidence=0.85
- office: 전라도 병마사 / 全兵, confidence=0.9
- term: 선조 임진년 공신 / 宣祖壬辰功臣, confidence=0.9
- office: 대언 / 代言, confidence=0.95
- office: 훈련대장 / 訓将,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畿水는 수군절도사 또는 경기수군으로 해석 가능하나 문맥상 수군 직책으로 봄
- 光海朝代言는 광해군 대언으로 보이나 朝代言 연결 해석에 일부 주석적 해석 필요
이문전
- 기사 ID:
20037_019_003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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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문전은 자(字)를 형부라 하고, 형제가 여덟 명이었다. 범상을 초월하는 힘을 가졌다. 선조 16년(1596)에 무과에 합격하여 수원·충청 등 여러 곳의 병사로 근무하였으며, 광해군 시대에 등단하여 훈련대장으로 임명되었다. 계해년(1623)에 막不利于義擧를 계획하던 중, 이서가 구식 부하로 변장하여 그 의도를 살피자 문전은 응하지 않았다. 이서가 말하기를 “의로운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인조 15년(1637)에 사망하였고, 향년 77세였다.
독음
이문전 거자형제팔인 자형부 유절륜지력 선조병자[주:십육] 등무과력기수충병 광해조 단배훈장 계해 방모거의 이서 기구막미탐기의 문전불응 서왈유의인 인조정축 졸년칠십칠
의미
이문전은 선조 16년 무과에 합격하여 군직을 역임한 인물이다. 광해군 말기에 이서와 함께 의거를 계획하였으나, 이서의 탐색에 응하지 않고 의리를 지키며 끝내 참여하지 않았다. 이서로부터 의로운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인조 15년에 77세로 사망하였다.
원문
李文荃蘧子兄弟八人字馨夫有絶倫之力宣祖丙子[주:十六]登武科歴畿水忠兵光海朝登壇拜訓将癸亥方謀擧義李曙以舊幕㣲探其意文荃不應曙曰義人也仁祖丁丑卒年七十七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문전 / 李文荃, confidence=1.0
- person: 이서 / 李曙, confidence=1.0
- place: 경기·수원·충청 병사 / 畿水忠兵, confidence=0.9
- office: 무과 / 武科, confidence=1.0
- office: 훈련대장 / 訓将, confidence=0.9
- era: 선조 / 宣祖, confidence=1.0
- era: 광해군 / 光海, confidence=1.0
- era: 인조 / 仁祖, confidence=1.0
- term: 절륜(범상을 초월함) / 絶倫, confidence=1.0
- term: 거의(반기를 들다) / 擧義, confidence=0.9
- term: 자(아호) / 字,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김준계
- 기사 ID:
20037_019_003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32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06:32:43.91100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9&aa15no=019&aa20no=20037_019_0032
한글 번역
김준계는 희천 출신이다. 직의전자의 아들이 무과에 합격하여 관직을歷임하였다. 충병監에再任을 포함하여 황병監과 남병監을 두루 거쳤다. 광해조 시대에 훈련장에 나가 임명되었으며, 품계가 至資憲에 이르렀다.
독음
김준계 희천인 직의전자 무과에 합격하여 충병을 역임하였으니, 다시 충병에 이어 황병과 남병을 두루 거쳤다. 광해조에 훈련장에 나가 임명되었으며, 품계가 至資憲에 이르렀다.
의미
김준계는 강원도 희천 출신으로, 무과에 합격하여 충병監·황병監·남병監 등 여러 병영직을 역임하였다. 광해조 시대에 훈련장에 진출하여 至資憲(의정삼품) 품계까지 올랐다.
원문
金遵階熙川人執義戩子登武科歴忠兵[주:再任]黄兵南兵光海朝登壇拜訓将階止資憲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준계 / 金遵階, confidence=1.0
- place: 희천 / 熙川, confidence=1.0
- office: 직의 / 執義, confidence=0.8
- office: 충병감 / 忠兵監, confidence=0.9
- office: 황병감 / 黄兵監, confidence=0.9
- office: 남병감 / 南兵監, confidence=0.9
- office: 훈련장 / 訓練將, confidence=0.9
- term: 지금宪(의정삼품) / 至資憲, confidence=0.8
- work: 광해조 / 光海朝,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執義戩子(직의전자의 직위와 이름 분간 미확인)
- 止資憲(원문의 문자 순서가 불분명하여止於資憲으로 추정)
원수신
- 기사 ID:
20037_019_003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33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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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06:33:42.79642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9&aa15no=019&aa20no=20037_019_0033
한글 번역
원수신은 원주 출신으로, 어머니의 이름은 계량이다. 그녀는 광해군의 후궁이 되었고, 무과에 급제하여 남쪽 군부(南兵營)에 배치되어 근무했다. 광해군 집정 시기 훈련대장(壇拜訓將)에 올랐다. 인조 즉위년(1623년)에 통제사로 재직하던 중 잡혀와 공개 처형되었다.
독음
원수신은 원주인이니 계량의 딸이요, 광해군의 후궁이 되었다. 무과에 올라 남병에历练하였으니, 광해조에坛에 올라 훈련대장이 되었다. 인조 계해년에 통제사로 잡혀와 정형하였다.
의미
원수신은 원주 출신 여성으로, 광해군의 후궁이었다. 무과에 급제하여 군직을 역임하고 훈련대장까지 올랐으나, 인조 즉위(1623년) 직후 광해 잔당 관련으로 체포되어 처형된 인물이다. 조선 후기 왕실 후궁이 무과 급제라는 비대한 이례적 경력을 지닌 점이 주목되며, 인조 보선 과정에서의 정치 숙청 대상이었음을 보여준다.
원문
元守身原州人季良子女為光海後宫登武科歴南兵光海朝登壇拜訓将仁祖癸亥以統制使拿來正刑
엔티티 후보
- person: 원수신 / 元守身, confidence=0.95
- place: 원주 / 原州, confidence=0.98
- person: 계량녀 / 季良品, confidence=0.85
- person: 광해군 / 光海, confidence=0.98
- office: 후궁 / 後宫, confidence=0.98
- office: 무과 / 武科, confidence=0.9
- office: 남병 / 南兵, confidence=0.85
- office: 훈련대장 / 壇拜訓将, confidence=0.88
- person: 인조 / 仁祖, confidence=0.98
- office: 통제사 / 統制使, confidence=0.95
- term: 정형(공개처형) / 正刑, confidence=0.92
불확실한 어휘
- 壇拜
- 원문 손상으로 인해 ‘壇拜’이 정확히 ‘壇拜 훈련대장’으로 읽히는지 불확실하며, 通時使拿來 전체 문맥이 원문 손상 가능하다.
이흥립
- 기사 ID:
20037_019_003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34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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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3T23:37:28.18033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9&aa15no=019&aa20no=20037_019_0034
한글 번역
이흥립은 갈문 이씨의 5세손으로, 영평현령 이汝청의 아들이다. 자는 치정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광해군 시대에 등단하여 훈련장이 되었다. 인조반정 때 훈련장으로 내응이 되어 사직을 안정시킨 공으로 벼슬이 올라 판윤에 이르렀다. 갑자년(1624년)에 경기방어사로 이괄에게 항복하였다. 이괄이 패배한 뒤 옥에 갇혀 자살하였다.
독음
이흥립 극돈 오세손 영평현령 이汝청의 아들 자는 치정 무과에 급제하여 광해군 시대에 등단하여 훈련장이 되었다. 반정 때 훈련장으로 안쪽에서 응하는 자가 되어 사직을 안착시킨 공으로 벼슬이 판윤에 이르렀다. 갑자년에 경기방어사로 적에게 항복했다. 적이 패배한 뒤 옥에 갇혀 자살하였다.
의미
이흥립은 갈문 이씨 가문의 5세손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광해군 시대 훈련장이 되었다. 인조반정(1623년) 때 안쪽에서 협력하여 공을 세웠고 벼슬이 판윤에 이르렀다. 그러나 1624년 갑자년대에 이괄의 난에 경기방어사로 참여하여 이괄에게 항복하였다가, 이괄이 패전한 뒤 투옥되어 자살하였다.
원문
李興立克墩五世孫䕃縣令汝淸子字稚靖登武科光海朝登壇拜訓将反正時以訓将為內應䇿靖社勳官止判尹甲子以京畿防禦使投降于适适敗後下獄自殺
엔티티 후보
- person: 이흥립 / 李興立, confidence=1.0
- person: 이汝청 / 汝淸, confidence=0.9
- person: 이괄 / 李适, confidence=1.0
- place: 갈문 / 克墩, confidence=1.0
- place: 경기 / 京畿, confidence=1.0
- office: 현령 / 縣令, confidence=1.0
- office: 훈련장 / 訓将, confidence=1.0
- office: 방어사 / 防禦使, confidence=1.0
- office: 판윤 / 判尹, confidence=1.0
- term: 반정 / 反正, confidence=1.0
- term: 내응 / 内應, confidence=1.0
- term: 무과 / 武科, confidence=1.0
- term: 등단 / 登壇,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䕃縣令汝淸子:䕃은縣令의 오기일 가능성,汝淸이 아버지인지 명확하지 않음
- 甲子投降年份:1624년 갑자로 보이나 이괄의 난 연도(1624년)와 실제 항복 시점의 대응 관계 불확실
이이첨
- 기사 ID:
20037_019_003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35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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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06:33:55.62828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9&aa15no=019&aa20no=20037_019_0035
한글 번역
이이첨[주: 문형을 볼 것]
독음
이이첨[주: 문형을 볼 것]
의미
이이첨이라는 인물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으며, 주석을 통해 문衡(문형)에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원문이 매우 짧아 추가 정보를 파악하기 어렵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이첨 / 李爾瞻, confidence=0.95
- term: 문형 / 文衡, confidence=0.6
불확실한 어휘
- 주석의 ‘見文衡’이 어떤 형태의 참조인지, 출처가 어디인지 불확실
이지완
- 기사 ID:
20037_019_004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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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06:35:36.11179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9&aa15no=019&aa20no=20037_019_0040
한글 번역
이지완은 소식이의 아들이며, 자는 양오, 호는 두봉이다. 선조 정유(1597)년에 부정시에 합격하여 한림, 사인, 선랑, 삼랑을 역임하였다. 무신(1608)년에 보덕으로 중시에 합격하였다. 광해군 때 호당에 뽑혔고, 을축(1613)년에 대간에 오르매奸당(김상현 일파)의 부당한 풍기에 임하여 정언 유활과 함께 선조의 유교와 칠신의 폐모론을 논의하였다. 곧은 말을 하였으므로 영상을 추증받고 시호는 장익이라 하였다.
독음
이지완 소식의 자는 양오 호는 두봉 선조 정유년에 부정시에 급제하여 한림사인 선랑 삼랑을 역임하였고, 무신년에 보덕으로 중시에 급제하였다. 광해군 때 호당에 뽑혔고, 을축년에 대간의 요직으로 올라奸당(김상현 일파)의 부당한 풍기에 임하여 정언 유활과 함께 선조 유교와 칠신 폐모론에 대해 논의하였다.直言이 있었으므로 영상을 추증하고 시호는 장익이라 하였다.
의미
이지완(李志完)은 조선 선조~광해군 연간 관료로, 정유(1597)년 부정시에 합격한 후 한림, 사인, 선랑 등을 역임하고 무신(1608)년 중시에 합격하였다. 광해군 때 호당에 뽑혔고 을축(1613)년에 대간에 오르매 당시 권력을 잡은奸당(김상현 일파)의 부당한 정풍에 맞서 정언 유활과 함께 선조 유교와 칠신 폐모론을 논쟁하였다. 곧은直言으로 인하여 영상을 추증받고 시호 장익을 받았다. 네 형제 중 문과 급제자는 아우 지홍과 지정이다.
원문
李志完尙毅子字養吾號斗峯宣祖丁酉登庭試歴翰林舎人銓郞戊申以輔德登重試光海朝選湖堂登丑以大諌承奸黨風㫖與正言柳活論先朝遺教中七臣廢母論起有直言故贈領相謚莊翼[주:一云貞簡四兄弟文科弟志宏志定見下志安]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지완 / 李志完, confidence=1.0
- person: 이소개 / 李尚毅, confidence=1.0
- person: 유활 / 柳活, confidence=1.0
- person: 이지홍 / 李志宏, confidence=1.0
- person: 이지정 / 李志定, confidence=1.0
- office: 정시(부정시) / 庭試, confidence=1.0
- office: 한림 / 翰林, confidence=1.0
- office: 사인 / 舍人, confidence=1.0
- office: 선랑 / 銓郞, confidence=1.0
- office: 보덕 / 輔德, confidence=1.0
- office: 중시 / 重試, confidence=1.0
- office: 호당 / 湖堂, confidence=1.0
- office: 대간 / 大諫, confidence=1.0
- office: 영상 / 領相, confidence=1.0
- term: 간당(광해군 시대 권신 일파) / 奸黨, confidence=0.95
- term: 칠신 폐모론 / 七臣廢母論, confidence=0.9
- term: 선조 유교 / 先朝遺敎, confidence=0.95
- term: 장익 / 莊翼, confidence=1.0
- term: 정간 / 貞簡, confidence=0.8
- era: 선조 / 宣祖, confidence=1.0
- era: 광해군 / 光海,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㫖(풍지, 풍旨): 원문에서 유실 가능성 있음
- 風㫖: 풍지 또는 풍제의 차용어로 추측되나 정확한 의미는 불확실
- 四兄弟文科弟: 문과 급제 형제 수 및 관계에 대한 추가 확인 필요
- 주: 주석 표시로 본문과 구분됨
이민성
- 기사 ID:
20037_019_004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41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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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4T08:12:09.07282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9&aa15no=019&aa20no=20037_019_0041
한글 번역
이민성은 이광준의 아들이며, 권문해의 조카사위이다. 선조 경오년(1542년)에 태어나 字는 괸포이고, 호는 경정이며, 의성에 거주하였다. 정유년(1657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광해군 시대에 호당에 선발되었으며, 벼슬은 승지까지 올랐다. 조긍의 죄를 논박하는 글을 올려 이내선의 뜻에 어긋나 파직되고 유폐되었다. 인조 계해년(1623년)에 처음으로 다시 등용되었다. 아우 이민혁은 字가 이장이고, 호는 자암이며, 선조 경자년(1540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을 역임하고, 벼슬은 형참知까지 올랐다. 광해군 기미년(1629년)에 홍립의 종사로 붙잡혀 적에게 사로잡힌 뒤 귀환하였다. 금라가 힘써 천거하여 등용시켰으며, 인조 병자년(1626년)에 영남호소사로 임명되고, 장현광이 종사로 있었다. 기축년에 졸하여 향년 77세, 증리판에 추증되고, 시호는 충간이다.
독음
이민성광준자권문해질서선조경오생자원괄호호경정거의성정유등정시광해조선선호당관질승지찰논조긍지죄오이점폐고인조계해수서제민혁자이장호자암선조경자등문과력한림관정형참광해기미이흥립종사선로후동환금라력천용인조병자위영남호소사장현광종사기축졸년칠십칠증리판민간충간
의미
조선中期의 文臣 이민성과 그 아우 이민혁 형제의 개괄이다. 이민성은 선조 때 과거에 급제하고 광해군 때 호당에 선발되었으나, 조긍의 죄를 논박하다 이내선과 충돌하여 파직·유폐되었다가 인조 즉위 후 복권되었다. 아우 이민혁도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형참 등을 역임하였으며, 광해군 말기 홍립의 종사로 적에게 붙잡혔으나 귀환 후 금라의 천거로 관직에 복귀하고 영남호소사로 재직하다 졸하였다. 시호는 충간이고, 6세손 이의를 별도로 수록하였다.
원문
李民宬光俊子權文海姪婿宣祖庚午生字寬甫號敬亭居義城丁酉登庭試光海朝選湖堂官止承㫖劄論造訒之罪忤爾瞻廢錮仁祖癸亥首敍[주:見弟文科]弟民寏字而壮號紫巖宣祖庚子登文科歴翰林官止刑參光海己未以弘立從事䧟虜後東還金瑬力薦用之仁祖丙子為嶺南號召使張顕光從事己丑卒年七十七贈吏判謚忠簡[주:六世孫義發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민성 / 李民宬, confidence=0.98
- person: 이광준 / 光俊, confidence=0.95
- person: 권문해 / 權文海, confidence=0.95
- person: 이민혁 / 李民寏, confidence=0.98
- person: 금라 / 金瑬, confidence=0.93
- person: 장현광 / 張顕光, confidence=0.92
- person: 이의발 / 李義發, confidence=0.88
- place: 의성 / 義城, confidence=0.97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0.97
- office: 형참 / 刑參, confidence=0.95
- office: 호당 / 湖堂, confidence=0.92
- office: 영남호소사 / 嶺南號召使, confidence=0.9
- office: 리판 / 吏判, confidence=0.95
- term: 정시 / 庭試, confidence=0.93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7
- term: 한림 / 翰林, confidence=0.96
- term: 증시 / 贈謚,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造訒(조긍) - 조긍의 구체적 죄목이 불분명함, 札論은 독립된 行文中의 劄子 논의로 보이나 행간의 정확한 취지 파악 어려움
- 弘立(흥립) - 광해군 기미년 사건의 관련 인물로 서술되나 역사적 행적 자료 부족
- 㫖는 旨의 이체자로 추정되나 전후 문맥상 확실한 의미 전달 확인 필요
정광성
- 기사 ID:
20037_019_004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43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7-24T08:12:52.99862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9&aa15no=019&aa20no=20037_019_0043
한글 번역
정광성은 창연의 아들이었으며, 황진중의 사위이다. 선조 갑자년(1576)에 태어났으며, 자(字)는 수백, 호는 제곡이다. 신축년(1601)에 진사(進士)에 합격하고, 계묘년(1603)에 명경과(明經科)에 급제하였다. 한림(翰林)·남창(南床)을 지냈고, 광해군 연간에 호당(湖堂)에 뽑혔으며, 한림부학(翰林副學)을 역임하였다. 인조 정축년(1641) 이후 농촌으로 물러나 은거하다가, 특,拜하여 잠시 찾아가 은사를 사례하였다. 효종 갑오년(1654)에 특별히 품계를 높여 형판(刑判)이 되었으며, 기사(耆社)에 들어갔다. 이 해에 사망하니 향년 79세였다. 장남 太和는 영상의 자리에까지 이르렀으나, 광성이 살아 있을 적에 유교(遺教)에 따라 상직을 증직하지 않았다. 형제가운데 문과에 합격한 아우 廣敬은 아래를 볼 것. 아들 太和와 致和는 아래를 볼 것. 5세손 志儉은 아래를 볼 것. 손자 載漢은 문책반(文參判)을 지냈다. 萬和의 아들이자 자는 子章이며 호는 寒溪이다. 효우(孝友)와 재업을 갖추었으며, 宋時烈과 宋浚吉이 그가 장차 중원(中原)의 대과(大科)进士가 될 것을 기대하였으나, 31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다.
독음
정광성 창연자 황진중서 선조 병자생 자수백 호제곡 신축进士 계묘등명경과 력한림남창 광해조선호당 력전한부학 인조정축후 퇴거전리 유특배 잠예사은효종갑오 특가계를 형판입기사 올해 졸 년칠십구 장자태화 위지영상 어광성생전 이이유교 불증상직
의미
조선 시대 문신 정광성(1576~1654)의 행장(行狀)이다. 선조의 외사위 황진중의 사위로 정평한 가문을 배경으로 한다. 한림보, 한림부학, 형판 등을 역임하고 기사에 들어갔으나, 정치적으로는 소박한 태도를 취하였다. 아들 太和가 영상에 이르렀으나 생전에 유교로 인해 증직을 거절한 점이 주목된다. 손자 萬和는 才兼備로 宋時烈과 宋浚吉에게 기대를 모았으나 31세에 요절하였다. 본문末尾의 손자 太和, 致和, 5세손 志儉은 관련 조항에서 따로 설명한다는 뜻이다.
원문
鄭廣成昌衍子黄謹中婿宣祖丙子生字壽伯號濟谷辛丑進士癸卯登明經科歴翰林南床光海朝選湖堂歴典翰副學仁祖丁丑後退居田里有特拜暫詣謝恩孝宗甲午特加階為刑判入耆社是年卒年七十九長子太和位至領相於廣成生前而以遺教不贈相職[주:兄弟文科弟廣敬見下子太和致和見下五世孫志儉見下]孫載漢文參判萬和子字子章號寒溪有孝友才業宋時烈宋浚吉期以遠大中進士年三十一夭
엔티티 후보
- person: 정광성 / 鄭廣成, confidence=1.0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1.0
- person: 황진중 / 黃진중, confidence=1.0
- person: 태화 / 太和, confidence=1.0
- person: 광경 / 廣敬, confidence=1.0
- person: 치화 / 致和, confidence=1.0
- person: 지검 / 志儉, confidence=1.0
- person: 재한 / 載漢, confidence=1.0
- person: 만화 / 萬和, confidence=1.0
- person: 송시열 / 宋時烈, confidence=1.0
- person: 송준길 / 宋浚吉, confidence=1.0
- person: 광해군 / 光海君, confidence=1.0
- person: 인조 / 仁祖, confidence=1.0
- person: 효종 / 孝宗, confidence=1.0
- office: 한림 / 翰林, confidence=1.0
- office: 남창 / 南床, confidence=1.0
- office: 호당 / 湖堂, confidence=1.0
- office: 한림부학 / 翰林副學, confidence=1.0
- office: 형판 / 刑判, confidence=1.0
- office: 영상 / 領相, confidence=1.0
- office: 문참반 / 文參判, confidence=1.0
- term: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1.0
- term: 기사 / 耆社, confidence=1.0
- term: 유교 / 遺教,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有特拜暫詣謝恩
- 특,拜하여 잠시 찾아가 사례한 것인지 정확한 벼슬명칭이 불분명
- 萬和子字子章
- 萬和의 아들 子章이라는 구절인지, 萬和자子章이라는 이름인지 문맥상 불확실
이후경
- 기사 ID:
20037_019_004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44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08:32:48.83226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9&aa15no=019&aa20no=20037_019_0044
한글 번역
이후경, 호는 전자. 선조(宣祖) 을유년에 태어나, 자는 자방, 호는 주봉. 계묘년에 19세의 나이로 경시험에 합격하였다. 광해군 때 호당에 뽑혔으며, 관직은 이정에 이르렀다. 문장이 그 가문의 전통을 잘 이어받았다. 3대에 걸쳐 호당에 오른 형제는 호당과 국가에서 그 동안 드물었다. 28세에 천연두로 사망하였다. 세 형제 중 문과에 장원한 동생 구무는 아래를 참조하고, 아우 부도 시로 이름을 떨쳤다. 광해군 시대에 진사로서 이선을 참수할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고향으로 돌아가 산림에 묻혀 과거 공부를 포기하고 나오지 않았다.
독음
이후경 전자 선조 을유생 자 자방 호 주봉 계묘 십구 등정시 광해조사 선호당 관지이정 문장 능계기세 삼세호당형제 호당국조한유 년이십팔 이내두몰 삼형제문과제구무견하제부亦有시명 광해조사 진사 유청참이첨지의 서 귀와임초 폐거부출
의미
조선后期的文臣 이후경의 行履를 수록한 기문이다. 선조 을유년생, 호는 주봉, 1599년 19세에 경시험 합격 후 광해군 때 호당에 선발되었다. 이후 이정까지 관직에 올랐으나, 28세에 천연두로 요절하였다. 3대에 걸쳐 호당에 오른 가문적 영예를 자랑하였으며, 동생 구무는 문과 장원, 아우 부도 시로 명성을 얻었다. 특히 광해군 치하에서 권신 이선(爾瞻)의 참수를 청하는 상소를 올린 뒤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점이 주목된다.
원문
李厚慶全子宣祖乙酉生字子方號酒峯癸卯[주:十九]登庭試光海朝選湖堂官止吏正文章能繼其世三世湖堂兄弟湖堂國朝罕有年二十八以痘没[주:三兄弟文科弟久袤見下]弟阜亦有詩名光海朝以進士有請斬爾瞻之䟽歸臥林臯廢擧不出
엔티티 후보
- person: 이후경 / 李厚慶, confidence=0.95
- person: 자 자방 / 字子方, confidence=0.9
- person: 호 주봉 / 號酒峯, confidence=0.9
- person: 구무 / 久袤, confidence=0.85
- person: 부 / 阜, confidence=0.85
- person: 이선 / 爾瞻, confidence=0.9
- term: 호당 / 湖堂, confidence=0.9
- term: 경시험 / 庭試, confidence=0.85
- term: 이정 / 吏正, confidence=0.9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0.9
- term: 임초 / 林臯, confidence=0.75
불확실한 어휘
- 䟽(상소문을 가리키는 표기, ‘疏’와 혼용)
- 見下(주석 지시 표현으로 정확한 문맥解釈 어려움)
이구후
- 기사 ID:
20037_019_004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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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3T23:38:36.09109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9&aa15no=019&aa20no=20037_019_0046
한글 번역
이구후의 아우는 선조의 을유년에 태어났으며, 자는 정수이고 호는 후곡이다. 계묘년에 열여덟 살의 나이로 진사에 올랐고, 을유년에 스물의 나이에 증광에 등제되었다. 광해군 시대에 호당에 뽑혔다. 다섯 살에 유려를 지어 ‘어젯밤 해문에서 용전이 끝나고 은빛 비늘과 옥 갑옷이 밀려온다’고 하였다. 스물네 살에 천연두로 사망하였다.
독음
이구후 제宣祖 병술생 자정수 호후곡 계묘주십팔 진작 을유주이십 등증광 광해조선 호당 오세영유려일작야해문용전罢 은린옥갑권조래년이십사以来두몰
의미
조선 광해군 시대의 문인 이구후의 아들에 대한 기행록이다. 선조의 아들로 태어나 다섯 살에 시를 지을 만큼 재능을 보였으나, 스물네 살에 천연두로 요절하였다. 광해군 시대 호당에 선발될 정도로 시문적才華이 뛰어났던 인물이다.
원문
李久厚弟宣祖丙戌生字庭竪號後谷癸卯[주:十八]進壮乙酉[주:二十]登增廣光海朝選湖堂五歲詠流凘曰昨夜海門龍戰罷銀鱗玉甲捲潮來年二十四以痘没
엔티티 후보
- person: 이구후 / 李久厚, confidence=0.95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0.95
- person: 정수 / 庭竪, confidence=0.9
- term: 후곡 / 後谷, confidence=0.9
- office: 호당 / 湖堂, confidence=0.85
- term: 증광 / 增廣, confidence=0.85
- work: 유려 / 流凘,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박정길
- 기사 ID:
20037_019_004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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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박정길은 밀양 출신이다. 현감을 지냈으며, 아들의 이름은 채자이다. 선조 계미년(1599)에 태어나, 자(字)는 양이이다. 을사년(1610)에 선교랑으로 증광 과거에 합격하였다. 광해군 때 호당(湖堂)에 선발되었다. 을묘년(1618)에 사인(舍人)으로 중시관(重試官)에 올랐다. 벼슬은 병조 참판에서 그쳤다. 연산군의 폐모(廢母) 때 흉론을 주장하였다. 인조 반정이 일어나자 처형되었으며, 향년 사十二였다. 주: 형 박승길도 문과 합격자로, 첨지까지 올랐다.
독음
박정길 밀양인 현감 채자 선조 계미생 자 양이 병사以선교랑등증광 광해조선호당 병사以사인등중시관 지도병참폐모시주흉론 인정반정피주 년사십이
의미
조선 광해군대에 활약한 관료 박정길의 행적 기록이다. 밀양 출신으로 선조 32년(1599)에 태어나, 1610년 증광 과거에 합격한 후 호당에 발탁되어 관직을 올랐다. 병조 참판까지 승진했으나, 연산군 폐모 사건 때 흉론을 주장한 것이 화가 되어 인조 반정(1623) 때 처형되었다. 형 박승길도 문과 출신 관료였다.
원문
朴鼎吉宻陽人縣監綵子宣祖癸未生字養而丙午以宣教郞登增廣光海朝選湖堂丙辰以舎人登重試官止兵参廢母時主凶論仁祖反正被誅年四十二[주:兄弟文科兄升吉僉知]
엔티티 후보
- person: 박정길 / 朴鼎吉, confidence=1.0
- person: 채자 / 綵子, confidence=0.9
- person: 승길 / 升吉, confidence=1.0
- place: 밀양 / 宻陽, confidence=1.0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1.0
- office: 선교랑 / 宣敎郞, confidence=1.0
- office: 사인 / 舍人, confidence=1.0
- office: 병참(병조 참판) / 兵參, confidence=0.9
- work: 증광 과거 / 增廣, confidence=1.0
- term: 호당 / 湖堂, confidence=0.9
- term: 반정 / 反正, confidence=1.0
- term: 중시관 / 重試官, confidence=0.8
- term: 폐모 / 廢母, confidence=0.9
- term: 흉론 / 凶論,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중시관(重試官)의 구체적 직위 성격
- 호당(湖堂)의 정확한 선발 방식과 역할
손척
- 기사 ID:
20037_019_004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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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손척은 밀양 출신으로, 아버지 여해의 아들이며, 아들의 자는 이儉이다. 선조 기축년(1567년)에進士에 합격했으며, 임인년에 직장(直長)으로 등언성(登謁聖)에 올랐다. 광해조 때 선정호당에 선발되어銓郞관직 등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 최종적으로典翰에 이르렀다.
독음
손척 밀양인 도사 여해의 아들이자 자는 이儉 선조 기축년進士 임인년에 직장으로 등언성에 오르고 광해조에 선정호당에 선발되어 예전 선관과銓郞관직을 두루 거쳐 전개직에 이르렀다
의미
손척은 경상남도 밀양 출신 인물로, 1567년 선조 기축년에進士에 합격하였다. 이후 광해군 시대에 선정호당에 선발되어 관료 생활을 하며銓郞, 도사 등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弘文館의典翰까지 승진한 인물이다.宣祖와 광해군 두 임금을 섬긴中层관료로서의 경력을 보여준다.
원문
孫倜宻陽人都事汝諧子字而儉宣祖己丑進士壬寅以直長登謁聖光海朝選湖堂歴銓郞官止典翰
엔티티 후보
- person: 손척 / 孫倜, confidence=1.0
- person: 여해 / 汝諧, confidence=1.0
- place: 밀양 / 宓陽, confidence=1.0
- office: 도사 / 都事, confidence=1.0
- office: 전개 / 典翰, confidence=1.0
- office: 직장 / 直長, confidence=1.0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term: 호당 / 湖堂, confidence=1.0
- term: 전랑 / 銓郞, confidence=1.0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1.0
- person: 광해군 / 光海,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登謁聖이 구체적으로 어떤 직책인지 확신하기 어려움
유활
- 기사 ID:
20037_019_004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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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유활, 이름은 활촉이다. 아우 유원숙의 자는 원숙이고, 호는 태우이다. 선조 기축년생으로, 병오년에 생원에 합격하고 증광에 급제하였다. 광해군 때 호당에 선발되어 한림과 전랑관을 역임하고, 사인의 관직에서 그쳤다. 계축년에 북당의 이지완과 함께 명칠신하의 계를 올렸고, 인조反正 이후 유배되었다.
독음
유활촉제원숙호태우선조기축생원병오등증광광해조선호당역한림전랑관지사인계축년이북당이어지완공발명칠신하지계인조반정안치
의미
조선 광해군 시대의 문신 유활의 이력이다. 선조 때 생원·증광에 합격하고 광해군 때 호당에 선발되어 한림·전랑관을 지냈으나 사인에서 관직이 멈췄다. 계축년에 북당 세력이 이지완과 함께 명칠신하의 상소를 올렸고, 인조反正 이후 유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문
柳活潚弟字源叔號泰宇宣祖己丑[주:十四]生員丙午登增廣光海朝選湖堂歴翰林銓郞官止舎人癸丑以北黨與李志完共發受命七臣之啓仁祖反正安置
엔티티 후보
- person: 유활 / 柳活潚, confidence=1.0
- person: 유원숙 / 源叔, confidence=1.0
- person: 이지완 / 李志完, confidence=1.0
- office: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office: 증광 / 增廣, confidence=1.0
- office: 호당 / 湖堂, confidence=1.0
- office: 한림 / 翰林, confidence=1.0
- office: 전랑관 / 銓郞, confidence=1.0
- office: 사인 / 舎人, confidence=1.0
- term: 명칠신하의 계 / 七臣之啓, confidence=1.0
- term: 반정 / 反正, confidence=1.0
- term: 북당 / 北黨,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계축년(1613년 또는 1623년으로 추정되나 명확한 해석 필요)
유희발
- 기사 ID:
20037_019_005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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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6T22:15:52.57425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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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류희발은 류희분의 아우이다. 심의겸의 조카 사위가 되었다. 선조 무진년(1567)에 태어나 字는 근초이다. 처음 경인년(1590?)에 진사에 합격하여 모두 합격하였다. 광해군 기유년(1609)에 군수로서 증광선에 선발되어 호당에서 삼사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고, 결국 이르간 벼슬은 사삼참이었다. 인조 반정 때 권문세족 숙청으로 인해 외척으로서 사형되었다. 향년 오십육세.
독음
류희발은 희분의 아우이다. 심의겸의 조카 사위이다. 선조 무진년에 태어나 字는 근초이다. 처음에 경인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모두 합격하였다. 광해군 기유년에 군수로서 증광선에 합격하여 호당에서 삼사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고 이르간 관직은 사삼참이다. 인조 반정으로 인하여 척리로서 죽임을 당하였다. 나이 오십육세.
의미
류희발의生平을 수록한 기사이다. 선조 무진년에 태어나 경인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광해군 때 증광선에 선발되어 관료를 역임하였으나, 인조 반정 이후 척리로서 숙청되어 五十六세에 사망하였다. 조선 시대 외척의 귀족이 반정 이후 숙청된 사례로 볼 수 있다.
원문
柳希發希奮弟沈義謙姪婿宣祖戊辰生字軔初庚寅生進俱中光海己酉以郡守登增廣選湖堂歴三司官止吏参仁祖反正以戚里誅年五十六
엔티티 후보
- person: 류희발 / 柳希發, confidence=1.0
- person: 심의겸 / 沈義謙, confidence=1.0
- person: 류희분 / 希奮, confidence=1.0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1.0
- term: 반정 / 反正, confidence=1.0
- term: 척리 / 戚里, confidence=1.0
- office: 군수 / 郡守, confidence=1.0
- office: 삼사 / 三司, confidence=0.9
- work: 증광선 / 增廣選, confidence=1.0
- place: 호당 / 湖堂,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유희량
- 기사 ID:
20037_019_005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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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6T22:16:03.28178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9&aa15no=019&aa20no=20037_019_0051
한글 번역
유희량은 유발의 아우이다. 선조(宣祖) 을해년에 태어나 字는 龙卿, 호는 霽嶠이다. 계묘년에 생원이 되었다. 광해군이 즉위한 무신년에 별시(別試)에 합격하여 과거원에 뽑혔고, 과거원(湖堂)을 거쳐 전랑(銓郞)과 부학(副學)을 역임하였으며, 관직은 예조 참의에서 그쳤다. 인조(仁祖) 계해년에 유배되었는데, 아들斗立의 연좌로 법에 의해 처벌받았다. 유하분(希奮)이 뜻을 이루게 되었으나, 유희량은 아무 죄도 짓지 않았고, 斗立의 꾀사는 일을 유희량은 실제로 알지 못하였다. 사람들이 모두 억울하게 여겼다. 글씨를 잘 쓰는 것으로 이름이 났다. 아들斗立은 광해군 시대 유년에 진사로 급제하여 관시(館試)에 응시하였다. 유하분의 아들 正立과 益立, 유발의 아들 中立과 함께 네 사촌 형제가 같은 급案中하였다. 인조 무진년에 오빠 孝立의 옥사에 연루되어 법에 따라 처참되었다.
독음
유희량 유발 제 선조 을해생 자용경 호제교 계묘생원 광해즉위 무신 등별시험 선호당 역전랑 부학관 지정참 인조 계해 손후 이자두립 연좌 벌법 유하분득지 유희량 무소범 두립지모사 유희량 실부지 인개구지 이선서명 자두립 광해년 유우 진사등관시 유하분자 정의립 익립 유발자 중립 사종형제 동방 인조 무진참 종형 효립옥 사법
의미
柳希亮은 조선 선조~인조 시대의 관리로, 字龍卿 호霽嶠. 광해군 때 과거에 급제하여 과거원·전랑·부학 등을 지냈으나, 인조반정 이후 아들 斗立의 연좌로 유배되고 결국 처참되었다. 아들의 모의에는 전혀 가담하지 않았음이 인정되었으나 처벌을 피하지 못했다. 네 사촌 형제들이 동시에 급제했던 것으로 유명했으며, 글씨를 잘 썼다는 점이 특징이다.
원문
柳希亮希發弟宣祖乙亥生字龍卿號霽嶠癸卯生員光海即位戊申登别試選湖堂歴銓郞副學官止禮參仁祖癸亥竄後以子斗立緣坐㐲法希奮之得志希亮無所犯斗立之謀事希亮實不知人皆寃之以善書名子斗立光海年酉以進士登館試希奮子正立益立希發子中立四從兄弟同榜仁祖戊辰參從兄孝立獄㐲法
엔티티 후보
- person: 유희량 / 柳希亮, confidence=0.98
- person: 유발 / 希發, confidence=0.95
- person: 용경 / 龍卿, confidence=0.9
- person: 제교 / 霽嶠, confidence=0.9
- person: 두립 / 斗立, confidence=0.95
- person: 유하분 / 希奮, confidence=0.95
- person: 정립 / 正立, confidence=0.95
- person: 익립 / 益立, confidence=0.95
- person: 중립 / 中立, confidence=0.95
- person: 효립 / 孝立, confidence=0.95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0.98
- person: 광해군 / 光海, confidence=0.98
- person: 인조 / 仁祖, confidence=0.98
- office: 별시 / 別試, confidence=0.9
- office: 호당 / 湖堂, confidence=0.9
- office: 전랑 / 銓郞, confidence=0.9
- office: 부학 / 副學, confidence=0.9
- office: 예조 참의 / 禮曹參議, confidence=0.85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95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0.95
- term: 관시 / 館試, confidence=0.9
- term: 동방 / 同榜, confidence=0.9
- term: 연좌 / 緣坐,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㐲法(원문의 㐲는 불확실한 한자. ‘법(法)’으로 추정되나 ‘형(刑)’ 또는 다른 字일 가능성 있음)
박홍도
- 기사 ID:
20037_019_005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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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2T08:34:38.57618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9&aa15no=019&aa20no=20037_019_0052
한글 번역
박홍도는 원형의 5대손으로, 문호판 벼슬을 했던 문영의 아들이다. 홍구의 삼종제이며, 선조 즉위년인 병자년에 태어나 자는 사수이다. 광해군 즉위년인 기유년에 进士에 급제하고, 경술년에 부율 벼슬로 별시 시험에 합격하여 호당관에 올랐다. 그 벼슬은承旨에서 끝났으며, 인조 계해년에 사망하여 향년 사십팔세였다.
독음
박홍도 원형오대손 문호판 문영자 홍구의삼종제 선조병자생 자사수 광해기유진사 경술으로부율 별시험에 선발되어 호당관에 오르고承旨에 그치며 인조계해에 별세하여 향년 사십팔세
의미
조선 후기 문인 박홍도의 행적을 기록한 작품이다. 그의 가계와 급제 및 관료 생활을 연보 형태로 기술한다. 원형의 5대손으로 문호판 문영의 아들이며, 선조 연간에 태어나 광해군 연간에 进士에 합격하고 별시 시험으로 발탁되어 관료로 승진했으나 最终 벼슬은承旨에 머물렀다. 인조 연간에 사망하여 향년 48세였다.
원문
朴弘道元亨五世孫文戶判文榮子弘耉三從弟宣祖丙子生字士秀光海己酉進士庚戌以副率登别試選湖堂官止承㫖仁祖癸亥㐲法年四十八
엔티티 후보
- person: 박홍도 / 朴弘道, confidence=1.0
- person: 원형 / 元亨, confidence=1.0
- person: 문영 / 文榮, confidence=1.0
- person: 홍구 / 弘耉, confidence=1.0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1.0
- person: 광해군 / 光海, confidence=1.0
- person: 인조 / 仁祖, confidence=1.0
- office: 문호판 / 文戶判, confidence=0.9
- office: 부율 / 副率, confidence=0.9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0.9
- term: 삼종제 / 三從弟, confidence=0.9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0.9
- term: 호당관 / 湖堂官,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 湖堂官은 호수와 관련된 관직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직책명 확인 필요
정준
- 기사 ID:
20037_019_005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53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3T23:39:30.66801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9&aa15no=019&aa20no=20037_019_0053
한글 번역
정준은 아우 정宣을 낳았다. 선조 연간 경진년에 태어나, 자는 행지이다. 광해군 치세 경술년에 별시에서选拔되어 호당에 뽑혔다. 인조 계해년에 의주 임소에서 초수를 받았는데, 이때 나이가 사십사세였다.
독음
정준조제선조경진생자유행지광해경술등별시선호당인조계해사수어의주임소연사십사
의미
정준이라는 인물의 가계와 생몰년을 적은 기록이다. 선조 때 태어나 광해군 때 과거에 급제하여 호당 벼슬에 나아가 인조 연간 의주에서 관직에 있다가 44세에 세상을 떠났다. 아우宣을 두었다는 기록은 해당 인물의 가족 관계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원문
鄭遵造弟宣祖庚辰生字行之光海庚戌登别試選湖堂仁祖癸亥㦿首於義州任所年四十四
엔티티 후보
- person: 정준 / 鄭遵, confidence=0.95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0.95
- person: 광해군 / 光海, confidence=0.85
- person: 인조 / 仁祖, confidence=0.95
- place: 의주 / 義州, confidence=0.95
- office: 호당 / 湖堂, confidence=0.85
- term: 별시 / 别試,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임성지
- 기사 ID:
20037_019_005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54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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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3T23:39:25.35960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9&aa15no=019&aa20no=20037_019_0054
한글 번역
임성지는 풍천 출신으로, 음현감职位를 지낸 가자 유겸의 종손(四世孫)이다. 선조 임오년에 태어나 字는 이서성이다. 광해군 기유년에 进사가 되었고, 계축년에 務功郞으로 증광시에 급제하여 湖堂官에 이르렀으며, 결국 應教에 그쳤다. 인조反正 이후 이첨의 당에 연루되어 유배되었고, 무진년에 역모事件의 고문으로 사망하니 향년 사십칠세였다.
독음
임성지 풍천인 음현감 가자유겸 종현손 선조 임오생 자이서성 광해 기유进士 계축으로 무공랑에 증광 선택 호당 관직 응교에 그침 인조 반정 이후 이첨 당에 연루되어 귀양 발송되었고 무진 역옥의 고문으로 죽으니 향년 사십칠세
의미
조선中期의 管理官으로, 선조 때 태어나 광해군 때 进士에 급제하고 증광시 선발로 管理직에 올랐다. 인조反正 후勋舊派의 핵심 인물인 이爾瞻의 당에 연루되어 역모罪名으로 유배되었다가 고문而死했다. 향년 사십칠세로, 政治적 충돌의 희생자로 기록된 인물이다.
원문
任性之豊川人䕃縣監鋏子由謙從玄孫宣祖壬午生字而聖光海己酉進士癸丑以務功郞登增廣選湖堂官止應教仁祖反正後以爾瞻黨被竄戊辰逆獄栲死年四十七
엔티티 후보
- person: 임성지 / 任珒之, confidence=0.95
- person: 배자유겸 / 裵子由謙, confidence=0.9
- place: 풍천 / 豊川, confidence=0.95
- place: 음현 / 蔭縣, confidence=0.85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0.95
- office: 무공랑 / 務功郞, confidence=0.9
- office: 응교 / 應教, confidence=0.95
- office: 호당 / 湖堂, confidence=0.85
- term: 증광선 / 增廣選, confidence=0.9
- term: 반정 / 反正, confidence=0.95
- term: 역옥 / 逆獄, confidence=0.9
- person: 이첨 / 爾瞻, confidence=0.95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0.95
- person: 인조 / 仁祖, confidence=0.95
- person: 광해군 / 光海,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䕃縣監(음현감)의 정확한官職名과 의미
- 湖堂官止에서 호당관직의 구체적 조직
- 逆獄栲死에서 고문死亡의 구체적 상황
이위경
- 기사 ID:
20037_019_005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9]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9
- 면/쪽: 0055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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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9&aa15no=019&aa20no=20037_019_0055
한글 번역
이위경은 원경의 아우로, 선조 병술년(1544년)에 태어났다. 자는 장이광해이고, 계축년(1553년)에 진사로 급제하여 제생들을 이끌었다. 모후와 대군에 대해 상주한 이 해에 증광에 합격하여 호당관에 올랐으나 부학에서 그쳤다. 인조反正 후 처형되어 향년 38세였다.
독음
이위경은 원경의 아우이다. 선조 병술년에 태어났으며, 자는 장이광해이다. 계축년에 진사로 급제하여 제생들을 이끌었다. 모후와 대군에 대해 상주하고 이 해에 증광에 합격하여 호당관에까지 올랐으나 부학에서 그쳤다. 인조反正 후 처형되어 향년 38세였다.
의미
이위경은 선조 때 태어난 학자로, 진사로 급제하여 학술계를 선도했다. 정치적으로 모후와 대군 문제를 상주하다 비판을 받아 호당관까지 올랐으나 부학에서 멈추고, 인조反正 후 处刑되었다. 향년 38세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원문
李偉卿元卿弟宣祖丙戌生字長而光海癸丑以進士倡牽諸生䟽論母后及大君是年登增廣選浩堂官止副學仁祖反正後被誅年三十八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위경 / 李偉卿, confidence=0.9
- person: 원경 / 元卿, confidence=0.8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0.9
- person: 인조 / 仁祖, confidence=0.9
- place: 광해 / 光海, confidence=0.7
- office: 진사 / 進士, confidence=0.9
- office: 증광 / 增廣, confidence=0.9
- office: 호당관 / 浩堂官, confidence=0.8
- office: 부학 / 副學,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