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년편고 [紀年便攷n1-37책] - 본문 번역 묶음 026
- 책 ID:
kh2_je_a_vsu_20037_000
- 수록 기사: 75건
변이중
- 기사 ID:
20037_017_009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090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3T22:58:09.07409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090
한글 번역
변이중은 황주 출신으로, 승지 변택의 아들이다. 명종 병오년(1546년)에 태어났고, 자는 언시이며 호는 망암이다. 장성에 거처하면서 학자 이이에게 수학하였다. 문예에 일찍 재능이 뛰어나고才氣가 대단하였다. 선조 무진년(1568년)에 벼슬에 나가, 계유년(1573년)에 명경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정언에 올랐다. 임진년(1592년)에 어천찰방으로 나가 소疏를 올려 시정을 논하였으나 회답이 없었다. 이어 전라도 소모사로 나가 많은 공적을 세웠으나 상을 받지 못하였고, 본인도 스스로 말하지 않았다. 광해군 신해년(1621년)에 사망하여 향년 66세, 증직으로 참판을贈京하였다. 사당에 배향되었다. (주: 아들 경윤은 아래를 참조할 것)
독음
변이중 황주인 승지 택의 아들이다. 명종 병오년에 태어났고, 자는 언시이며 호는 망암이다. 장성에 거처하면서 이이에게 다녔다. 문예에 일찍 재능이 뛰어나고才氣가 남달랐다. 선조 무진년에 벼슬에 나가, 계유년에 명경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정언에 이르렀다. 임진년에 어천찰방으로 나가 소疏를 올려 시사를 논하였으나 회답이 없었다. 나가서 전라도 소모사가 되었는데, 노적이 매우 많았으나 상을 받지 못하였고, 본인도 스스로 말하지 않았다. 광해군 신해년에 사망하고 향년 66세, 증 참판을贈京하였다. 사당에 배향되었다. (주: 아들 경윤은 아래를 참조할 것)
의미
조선 중기 문인 변이중의传记이다. 명종 때 태어나 이이에게 수학하고 문예에 재능을 보였으며, 선조 때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임진왜란 때 어천찰방으로 출임하여 시정 논의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어 전라도 소모사로 전공을 세웠으나 상을 받지 못했다. 겸손하게 스스로功劳를 말하지 않은 점이 특기된다. 광해군 때 사망하여 증직 참판으로 추증되고 사당에 배향되었다. 아들 변경윤도 유명한 인물이다.
원문
邊以中黃州人承旨澤子明宗丙午生字彦時號望菴居長城從李珥遊文藝夙成才氣過人宣祖戊辰生貟癸酉登明經科官止正言壬辰以魚川察訪上䟽論時事不報出為全羅道召募使勞績甚多而賞不及焉亦不自言光海辛亥卒年六十六贈參判院享[주:子慶胤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변이중 / 邊以中, confidence=1.0
- person: 승지 변택 / 承旨澤, confidence=1.0
- person: 이이 / 李珥, confidence=1.0
- person: 아들 경윤 / 子慶胤, confidence=0.9
- place: 황주 / 黃州, confidence=1.0
- place: 장성 / 長城, confidence=1.0
- place: 어천 / 魚川, confidence=0.9
- place: 전라도 / 全羅道, confidence=1.0
- office: 정언 / 正言, confidence=1.0
- office: 참판 / 參判, confidence=1.0
- office: 찰방 / 察訪, confidence=1.0
- office: 소모사 / 召募使, confidence=0.9
- work: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1.0
- term: 배향 / 享, confidence=0.8
- term: 소疏 / 䟽, confidence=0.8
- term: 벼슬에 나가다 / 貟,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 貟(무언 또는 오기로 추정)
- 䟽(疏의 이체자로 추정)
- 享(배향 또는 제향으로 해석 가능)
최시망
- 기사 ID:
20037_017_009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091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03:54:25.80170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091
한글 번역
최시망은 강화도 출신으로 호를 괴정이라 했다. 선조 임진년(1592) 이전에 목사(군문 태수)였다는 소문이 전해졌다. 임금이 의주(거빈)로 가시게 된다는 급한 소식을 듣고는 곧장 평양으로 달려가 임금을 호종했다. 임금이 시를 짓어 위로·격려하시기를, ‘국이 무너지고 집이 망한 그날에 과연 누가 곽자욱·이광려 같은 충절을 떨치리오. 의주에 가서 대사를 구비하고, 나라의 회복은 여러 대신에게 맡기겠다.’ 하셨다. 최시망은 이 시를 보고 더욱 뜻이 분발되어 마침내 임금께 작별하고 남쪽으로 내려가義兵을 모집하여雲峯으로 진격, 적을 200여 급 베었다. 그런데 갑자기 날아오는 화살에 맞았다. 종제希立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大哭하며 말하기를, ‘국이 무너지고 집이 망했으니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겠는가.’ 하였다. 갑옷을 껴입고 말을 올라 싸우려 했으나 기력이 땅에 쓰러지듯하여 병이 들어 이렇게 죽었다.
독음
최시망은 강화인으로서 호를 괴정이라 하였다. 선조 임진년 이전에 목사로서 소문을 들었다. 임금이 거빈으로 가심을 급히 평양에 도착하여 호행하며 임금을 받들었다. 임금이 시를 지어 권면하여 이르기를, ‘국이 파하고 집이 망한 날에 누구 능히 곽 이충의 충절을 행하겠는가. 거빈에 가서 대계를 저장하고 회복은 여러 공에게 기약한다.’ 하시였다. 시망이 더욱 뜻을 세워 마침내 임금께 작별하고 남쪽으로 내려가義旅를 모집하고 진격하여雲峯에서 적을 죽이고 급히 돌아가다가 갑자기 날아오는 화살에 맞았다. 종侄希立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울며 말하기를, ‘국이 파하고 집이 망했으니 내가 무엇을 위해 사겠는가.’ 하였다. 갑옷을 챙기고 말을 올라 싸우다가 기력이 땅에 쓰러져 병을 얻게 되어 졸았다.
의미
조선后期的명의 한인 최시망의生平을 수록한 기사다. 강화도 출신으로 선조 임진년(1592) 이전에 군문 태수(牧使)를 역임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임금이 의주(거빈)로 피난한다는 소식을 듣고 평양으로 달려가 임금을 호종했다. 임금이 시를 지어 위로하자, 최시망은義兵을 모집하여雲峯에서 왜군을 습격, 200여 급을 베었다. 그러나 돌연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부상을 입었고, 종제希立의戰死 소식을 듣고 나라가 망했으니 살 이유가 없다며 싸우다 병倒이로 사망했다.
원문
崔時望江華人號槐亭宣祖壬辰以前牧使聞大駕去邠急到平壤扈駕上勉諭以詩曰國破家亡日誰能郭李忠去邠存大計恢復仗諸公時望益奮勵遂陛辭南下募義旅進雲峯斬虜二百餘級忽中流矢而卧聞從侄希立戰死大哭曰國破家亡我何生為擐甲上馬氣廷仆地因成疾而卒
엔티티 후보
- person: 최시망 / 崔時望, confidence=1.0
- place: 강화 / 江華, confidence=1.0
- person: 괴정 / 槐亭, confidence=1.0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1.0
- term: 목사 / 牧使, confidence=1.0
- place: 평양 / 平壤, confidence=1.0
- term: 곽자욱과 이광려 / 郭李, confidence=0.9
- place: 운봉 / 雲峯, confidence=0.95
- term: 류시(날아오는 화살) / 流矢, confidence=1.0
- person: 희립 / 希立,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牧使」는 임진왜란 이전 강화목사 또는 다른지역 목사를 지칭하는 것인지 확인 필요
유적
- 기사 ID:
20037_017_009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092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03:55:28.48304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092
한글 번역
유장(劉䛰)은 강릉 출신으로, 호는 송암(松菴)이다. 선조 임진년(1592)에 의용사를 모집하여 교룡산에 진을 쳤다. 성주사수(城主帥)가 피하고자 하자 군사들의 마음이 놀랐다. 이에 선이剑을 뽑아大声으로 외쳤다. 「배신할 생각이 있는 자는 베겠다.」군중들이 모두 두려워 복종하며 함께 죽기로 맹세하고鼓譟하며 돌격하니, 적의 세력이 조금 물러났다. 이후 노곤하여 병이 들어 죽었다. 나중에追上追贈하여吏判가 되었다.
독음
유장 강능인 호 송암 선조 임진募義旅屯蛟龍山城主帥欲避去軍情驚動선발건대호왈유이심자점중개외복서동사수고조돌격적세소각자세노이성질而死후증리판
의미
임진왜란(1592) 당시 유장이라는 장수가 의용사를 일으켜 교룡산에駐屯하던 중 성주사수가 적을 피해 도망가려 하자 군대가 흔들렸으나, 선이剑을 뽑고 배신자를 베겠다고 대장着的로 선언하여 군사들의 복종을 얻어 함께 싸우기로 맹세하고鼓譟으로 돌격하여 적을 물러나게 했다. 이후 노이로 병에 걸려死去하고, 사후追贈으로吏判의 벼슬을 받았다.
원문
劉䢰江陵人號松菴宣祖壬辰募義旅屯蛟龍山城主帥欲避去軍情驚動暹拔釰大呼曰有異心者斬衆皆畏服誓同死守鼓譟突擊賊勢稍却自是勞悴成疾而死後贈吏判
엔티티 후보
- person: 유장 / 劉䛰, confidence=0.85
- place: 강릉 / 江陵, confidence=0.95
- place: 교룡산 / 蛟龍山, confidence=0.9
- term: 의용사 / 義旅, confidence=0.95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0.95
- term: 성주사수 / 城主帥, confidence=0.8
- office: 이판 / 吏判,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劉䛰 - 䛰자는 한자 사전에確認되지 않는 특수 한자로, 장(莊)자의 변체일 가능성이 높으나 확실하지 않음
- 暹 - 이 인물은史料에確認되지 않아 선비인지 군인인지確言 곤란
서덕숭
- 기사 ID:
20037_017_009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093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03:55:54.09411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093
한글 번역
서덕숭은 이천 사람으로, 선조 임진년에 의병을 일으켜 이순신의 휘하에 들어가 왜군과 한산도에서 싸웠다. 추격하여 큰 적장의 목을 베었으나, 자신이 중환(중요한 왜군 장수)을 참殺하는 과정에서 전사하였다. 처녀 심씨는 남편이 전사한 소식을 듣고 등산의山顶에 올라 북쪽을 향해 네 번 절하고 먹을 것을 끊어七天 만에 죽었다.
독음
서덕숭 이천인 선조 임진 취의병 종 이순신 여왜 전위 한산도 추격거중환 사지 전기 부인 심씨 문부 입등산 북향 사배 절립七日而死
의미
임진왜란 당시 이천 출신 서덕숭이 이순신의手下로 한산도 전투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고, 그 소식을 들은 아내 심씨가 산 위에 올라 북쪽을 향해 네 번 절한 뒤 일주일 동안 먹지 않아 죽은 순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부부의 의기를 그린 대표적인 기록이다.
원문
徐德崇利川人宣祖壬辰聚義兵從李舜臣與倭戰于閑山島追斬巨魁中丸死之妻沈氏聞夫立登山北向四拜絶粒七日而死
엔티티 후보
- person: 서덕숭 / 徐德崇, confidence=1.0
- person: 이순신 / 李舜臣, confidence=1.0
- person: 심씨 / 沈氏, confidence=1.0
- place: 이천 / 利川, confidence=1.0
- place: 한산도 / 閑山島, confidence=1.0
- place: 입등산 / 立登山, confidence=0.7
- term: 의병 / 義兵, confidence=1.0
- term: 절립 / 絶粒, confidence=0.9
- term: 사배 / 四拜, confidence=0.9
- person: 중환(왜장) / 中丸, confidence=0.5
불확실한 어휘
- 中丸: 왜군 장수 이름으로 보이나 정확한 한독이 불확실함
- 絶粒: 음식을 끊었다는 표현으로, 소식 직후 곧 죽은 것인지 의식적으로 기아한 것인지 맥락이 모호함
윤흥신
- 기사 ID:
20037_017_009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094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03:56:00.35269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094
한글 번역
윤흥신은 선조 임진년에 다대僉使로서 왜적의 포위 공격을 받자 힘겹게 싸워 적을 물리쳤다. 적이 부산을 함락하고 이어 서평도 함락하자, 다대의 수하들이 말하기를, ‘명군이 대진을 치면 그 기세는 막아내기 어렵으니 차라리 나가 피하는 것이 낫다’고 하였다. 흥신이 가라사대, ‘죽을 뿐이니 어찌 가不忍舍去하겠나’라고 하였다. 적이果然대군을 몰고 왔다. 군졸들이 모두 도망쳤으나 흥신은 홀로 남아 종일토록 적을 활로 쏘아 마침내 죽으니, 이를 충렬사에 제향하였다.
독음
윤흥신선조임진년대다첨사왜위성흥신력전격지적함부산연함서평다대수하왈명약거진내공기세난지원막여출피흥신왈유사)이급하인거야적과대지군솔진도흥신독자종일사적而死향충렬사
의미
임진왜란(1592) 당시 다대僉使였던 윤흥신이 왜적의 포위를 받자 수하들의 철수 권유를拒绝하고 홀로 남아 종일 싸우다 화살로 적을 상대하다 전사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임진왜란初期 경상도 요충지가次次 함락되는 상황에서, 윤흥신은 부관과 군졸이 모두 도망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남아 싸우다 죽은武臣의 모습을 보여주며, 사후 충렬사에 제향되었다.
원문
尹興信宣祖壬辰以多大僉使倭圍城興信力戰却之賊陷釜山連陷西平多大麾下曰明若擧陣來攻其勢難支莫如出避興信曰有死而已何忍去也賊果大至軍卒盡逃興信獨自終日射賊而死享忠烈祠
엔티티 후보
- person: 윤흥신 / 尹興信, confidence=0.98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0.98
- year: 임진(1592년) / 壬辰, confidence=0.95
- place: 다대(부산 영도의 다대포) / 多大, confidence=0.92
- office: 첨사(수군절도사 부하 군사 관직) / 僉使, confidence=0.9
- place: 부산 / 釜山, confidence=0.95
- place: 서평(부산 서면일대 추정) / 西平, confidence=0.7
- place: 충렬사 / 忠烈祠,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西平(서평: 정확한 위치 미상)
- 多大麾下(다대 부하들의 구체적 신분)
- 茗若(명약: 다대 지역 특산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나 맥락 불확실)
전득우
- 기사 ID:
20037_017_009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095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05T04:32:57.75195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095
한글 번역
전득우(田得雨)는 윤이라는 이름이 있고, 자(字)는 시재(時哉)이다. 선조(宣祖) 갑술년에 태어나 신묘년 18일에 무과에 합격하여 무겸(武兼)에 임명되었다. 임진년에 호종(扈駕)하여 평양에서 대동문장(大同門將)이 되었다. 계사년에는 군기교위(軍器校尉)로 남원(湖南)을 순찰하고 장수(長水)에 이르러 적贼을 방어하는 계책을 세웠다. 갑오년에 장수현감(長水縣監)에 임명되어 이순신과 함께海南전투에서 계책을 세웠다. 무술년에 영남순검사(嶺南巡檢使)가 되었다. 병오년에 보공장군(保功將軍)에 올랐고, 원종공(原從功)을 기록한 관직으로 통정(通政)에 이르렀으며, 군수(郡守)로 그쳤다. 인조(仁祖) 을묘년에 사망하며 향년 65세, 증직으로 좌승지(左承旨)를 추증받았다.
독음
전득우윤 자서조 갑술생 자시재 신묘일 십팔일 등무과 제무겸 임진 호갑 평양 위해 대동문강 계사 군기교위 순검 남호 치장수 설어적의책 갑오 제장수현감 이순신,设策於海南之战戊戌 영남순검사 병자 보공장군 록원종공관 지통정 군수인조 을묘 졸 년육십오 증좌승지
의미
전득우는 조선 선조 연간 무과에 합격한武官으로, 임진왜란(1592) 때 평양에서 대동문장을 지내고 이순신과 함께 남원·장수 지역에서 적군을 방어하는 계책을 세웠다. 이후 영남순검사·보공장군 등을 역임하고 通政階에 이르렀으나 군수에 머물렀다. 인조 연간에 사망하여 左承旨를 추증받았다.
원문
田得雨潤子宣祖甲戌生字時哉辛卯[주:十八]登武科除武兼壬辰扈駕平壤為大同門將癸巳以軍器校尉巡檢湖南至長水設禦賊之策甲午除長水縣監從李舜臣設策於海南之戰戊戌為嶺南巡檢使丙午拜保功將軍錄原從功官止通政郡守仁祖戊寅卒年六十五贈左承旨
엔티티 후보
- person: 전득우 / 田得雨, confidence=0.95
- person: 이순신 / 李舜臣, confidence=0.95
- place: 평양 / 平壤, confidence=0.95
- place: 장수 / 長水, confidence=0.95
- place: 해남 / 海南, confidence=0.8
- place: 영남 / 嶺南, confidence=0.9
- office: 보공장군 / 保功將軍, confidence=0.9
- office: 좌승지 / 左承旨, confidence=0.9
- term: 원종공 / 原從功, confidence=0.75
- term: 무과 / 武科,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田得雨潤 - ‘윤’이 字인지附加名인지 불분명
- 子宣祖 - 子宣祖가 칭호인지 확인 필요
- 設禦賊之策 - 설어적의책의 구체적 내용 미상
- 甲午除長水縣監從李舜臣設策於海南之戰 - 문장 구두 해석에歧見 가능
김행
- 기사 ID:
20037_017_009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096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03:56:13.98233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096
한글 번역
김행은 광주 출신으로, 자(아버지가 지어준 이름)는 주도이고, 호(스스로 지은 이름)는 장포이다. 명종 경인년(1171)에 문과에 급제하여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말버릇이 있었는데, ‘새(鳥)’자와 ‘밭(田)’자를 가지고 시부 시험 문제를 냈다. 해학적이었고 서예에 능숙하였다. 관직은 광주목에서 끝났다.
독음
금행은 광주인이니 자는 주도요 호는 장포이다. 명종 경인년에 문과에 오르니 문한으로 이름이 있었고, 말이 많은 버릇이 있었다. 새(鳥) 자와 밭(田) 자로 시부 제목을 내었으니 해학적이었고 글씨를 잘 썼다. 관직은 광주목에서 그쳤다.
의미
김행은 고려 명종 때 광주 출신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문한(문장력)으로 명성을 얻었다. 독특하게도 말버릇이 있었으며, 시부 시험에서 ‘새(鳥)’자와 ‘밭(田)’자를 제목으로 내는 등 해학적인 성격이었다. 서예에도 뛰어났으나, 관료 생활은 광주목에서 끝나며 큰 관직에 오르지 못하였다.
원문
金行光州人字周道號長浦明宗丙寅登文科以文翰名有語癖以鳥字田字出詩賦題滑稭善書官止光牧
엔티티 후보
- person: 김행 / 金行, confidence=1.0
- place: 광주 / 光州, confidence=1.0
- person: 자 주도 / 字周道, confidence=1.0
- person: 호 장포 / 號長浦, confidence=1.0
- person: 명종 / 明宗, confidence=1.0
- term: 경인 / 丙寅, confidence=1.0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시부 / 詩賦, confidence=0.9
- term: 광주목 / 光牧,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滑稽(해학적) - 원문 표기가 滑稽가 아닌 滑稭으로 되어 있어 이체자 가능성 있음, 활稽로 읽으면 의미가 달라짐
이근매
- 기사 ID:
20037_017_009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097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3T22:57:50.58927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097
한글 번역
이매 덕천군 후생(주: 정종의 아들)은 오세 녹평자의 아들이며, 무과에 올라 훈련감 주簿까지 벼슬하다가 선조 임신년에 사명을 받아 혁의를사로서 충성을 다하고 수천 명의 왜구를 베었다가 적의 탄환을 맞아 싸우다 전사하였다. 서예 무종공의 공으로 추증받았다. 아우 이정립도 무과에 올라 훈련감 봉사까지 벼슬하다가, 임신년에 형과 함께 사명을 받아 진주에서 힘을 합쳐 왜구를 토벌하다가, 형이 탄환에 맞자 목청껏 크게 싸우다가 역시 탄환을 맞아 전사하였다. 서예 무종공의 공으로 추증받았으며, 형제가 함께 보성에招魂하여 장례를 지냈다.
독음
이매덕천군후생[주:정종자]오세녹평자등무과관지훈련주부선조임신수명위흥의사결성진충궤왜수천급중환이졸추록선무종공제정립등무과관지훈련봉사임신여형동수명녹력토왜어진주견형피환여성대전역중환이졸추록선무종공형제병초혼장어보성
의미
이매와 이정립 형제는 선조 임신년(1592년, 임진왜란)년에 사명을 받아 왜구를 토벌하는 데 참여하였다.兄 이매는 혁의를사로서 수천 명의 왜구를 베었으나 탄환을 맞아 전사하고, 아우 이정립은 형이 전사하는 것을 보고 목청껏 싸우다 역시 탄환에 맞아 전사하였다. 형제는 모두 서예 무종공으로 추증받았으며, 함께 보성에招魂장사하였다. 이 기록은 임진왜란 당시 진주에서 전사한 무과 출신 장수 형제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원문
李梅德泉君厚生[주:定宗子]五世祿枰子登武科官止訓鍊主簿宣祖壬辰受命為倡義使竭誠盡忠馘倭數千級中丸而卒追錄宣武從功弟廷立登武科官止訓鍊奉事壬辰與兄同受命戮力討倭於晋州見兄被丸厲聲大戰亦中丸而卒追錄宣武從功兄弟并招魂葬於寶城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매 / 李梅, confidence=1.0
- person: 이정립 / 李廷立, confidence=1.0
- person: 정종 / 定宗, confidence=0.9
- place: 진주 / 晋州, confidence=1.0
- place: 보성 / 寶城, confidence=1.0
- office: 훈련감 주簿 / 訓鍊主簿, confidence=1.0
- office: 혁의사 / 倡義使, confidence=1.0
- office: 서예 무종공 / 宣武從功, confidence=1.0
- term: 무과 / 武科, confidence=1.0
- term: 초혼장사 / 招魂葬, confidence=1.0
- term: 임신 / 壬辰,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후생[주:定宗子] 오세祿枰子
- 원문에 ‘祿枰子’로 되어 있어 녹평자(자)로 보이나, ‘祿’과 ‘錄’의 혼용 가능성 있음. ‘후생’은 관衔이나 별호로 보이나 정확한 직제 확인 필요
조린
- 기사 ID:
20037_017_009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099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03:56:18.45955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099
한글 번역
조린은 횡성출신으로, 자는 중겸이고 호는 은은당이다. 은거하면서 학문이 깊고 행실이 바르게 갖추어졌으며, 저서로 『독서강의』를 지어 세상에 유통시켰다.
독음
조린 횡성인 자 중겸 호 은은당 은거유 학행 소저유 독서강의 행어세 [주: 종자 정립 현하]
의미
조선 시대 학자 조린의 행적을介绍的 기사로, 횡성출신으로 자 중겸·호 은은당이며, 은거하며 학문을 닦고 독서강의라는 저서를 세상에 널리 알린 인물임을 확인할 수 있다.
원문
趙遴橫城人字仲謙號隐隐堂隐居有學行所著有讀書講義行于世[주:從子正立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조린 / 趙遴, confidence=1.0
- place: 횡성 / 橫城, confidence=1.0
- term: 자 / 字, confidence=1.0
- term: 중겸 / 仲謙, confidence=1.0
- term: 호 / 号, confidence=1.0
- term: 은은당 / 隱隱堂, confidence=1.0
- term: 은거 / 隱居, confidence=1.0
- term: 학행 / 學行, confidence=1.0
- work: 독서강의 / 讀書講義, confidence=1.0
김두남
- 기사 ID:
20037_017_010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00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3T22:58:01.56318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00
한글 번역
김두남은 원주 사람이다. 별좌(관직명) 김영의 아들이며, 김응남의 사촌동생이다. 자는 일숙이고, 호는 바릉이다. 소년 시절부터 기개가 있어 동동곡에 참여하였다. 선조 연간에 선발에 제수되어 재능과 행실이 우수하게 평가된 뒤 관직이 올라가 결국 동서추밀원사에 이르렀다. 향년 팔십오세에 사망하였다. 아들은 김준용이며, 아래에 보인다.
독음
금두남 원주인 별좌영자 응남 종제 자 일숙호 바릉 소시 기개 입 동동곡 선조조 선발 제거治行高第 착秩관 지 동서년 팔십오세 졸 자 준용 아래 봄
의미
조선 선조 연간에 활동한 관리 김두남의 전기이다. 원주 출신으로 사촌형 김응남과 함께 벼슬길에 올랐으며, 동동곡에 참여할 만큼 음악적 소양이 있었다. 선발에 제수된 후 재능과 덕행이 높이 평가되어 동서추밀원사까지 승진했고, 85세로 사망했다. 아들 김준용의 기록은 아래에 이어진다.
원문
金斗南原州人别坐瑛子應南從弟字一叔號巴陵少時而氣槩入鼕鼕曲宣祖朝除洗馬以治行高第擢秩官止同樞年八十五卒子俊龍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김두남 / 金斗南, confidence=1.0
- person: 김영 / 瑛, confidence=0.9
- person: 김응남 / 應南, confidence=1.0
- person: 김준용 / 俊龍, confidence=1.0
- place: 원주 / 原州, confidence=1.0
- office: 별좌 / 別坐, confidence=0.8
- office: 선발 / 洗馬, confidence=1.0
- office: 동서추밀원사 / 同樞, confidence=1.0
- work: 동동곡 / 鼕鼕曲, confidence=0.9
- term: 재능과 행실이 우수하게 평가됨 / 治行高第,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別坐瑛子의 구조(별좌 관직명의 아들인지 별칭인지), 見下(하견 또는 하견의 오기로 보임), 鼕鼕曲(동동곡의 구체적 내용), 治行高第(정치적 성과와 행실의 고제 점수 해석)
양사형
- 기사 ID:
20037_017_010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01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3T22:58:05.59089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01
한글 번역
양사형은 남원 사람으로 주簿 양극성의 아들이다. 명종 정미년에 태어나 자는 계평, 호는 어은이며, 노진의 문인이다. 선조 기묘년에 사마에 합격하고, 무자에 명경과에 급제하여 직장직에서 파면된 뒤 집에 거처하였다. 임진년에 도보로 행재소로趨赴하여 변사정·정염과 의여를 합류시켜 잔적들을 소탕하였다. 영광에서 관직하여 병정으로 끝났다. 기해년에 사망하니 향년 오십삼세, 추증하여 도승지가 되었다.
독음
양사형 남원인 주簿 극성자 명종 정미생 자 계평 호 어은 노진문인 선조 기묘 사마 무자 등명경과 직장 파관가거 임진 축보赴 행재 변사정 정염과 의여 합류하여 잔적 소탕 역 영광 관 至 병정 기해 졸년 오십삼 졸 증 도승지
의미
조선中期 남원 출신 관료 양사형의 行蹟이다. 명종 연간에 태어나 선조대에 문과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1592년) 당시 도보로 行재所로趨赴하여义旅를 조직, 잔적 소탕에 참여하였다. 영광에서 병정으로 재직하다 기해년에 향년 五十三세로 사망하고,死后 도승지로 추증되었다. 가문은 四世文科으로 三子 二壻 모두 文科 출신인 名門이었다.
원문
楊士衡南原人主簿克誠子明宗丁未生字季平號漁隐盧禛門人宣祖己卯司馬戊子登明經科以直長罷官家居壬辰徒步赴行在與邊士貞丁焰紏合義旅以殱餘寇歴靈光官止兵正己亥卒年五十三贈都承旨[주:四世文科三子二婿俱文科]
엔티티 후보
- person: 양사형 / 楊士衡, confidence=1.0
- place: 남원 / 南原, confidence=1.0
- person: 극성 / 克誠, confidence=1.0
- person: 계평 / 季平, confidence=1.0
- person: 노진 / 盧禛, confidence=1.0
- person: 변사정 / 邊士貞, confidence=1.0
- person: 정염 / 丁焰, confidence=1.0
- place: 영광 / 靈光, confidence=1.0
- office: 병정 / 兵正, confidence=1.0
- office: 도승지 / 都承旨, confidence=1.0
- term: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1.0
- term: 의여 / 義旅,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권희중
- 기사 ID:
20037_017_010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02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8-03T02:53:33.04946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02
한글 번역
권희중은 화(貴)의 7세손이다. 진사에 올랐고 효자로서 알려졌으며, 자는 사열, 호는 남악이다. 명종 정미년(1559)에 태어났다. 선조 무진년(1568)에 진사에 합격하고, 임갑신년(1572) 별시에서 합격하여 한림(三司)·금부·완부·좌윤 등을 역임하고 관직은 지추에서 그쳤다. 기사(耆社)에 들어갔다. 혼조(昏朝) 때廷請에 불참하여 금고되었다. 인조 반정 이후에 비로소 등용되었다. 갑자에 사망하여 향년 78세였다. 원종 공으로 우상에 추증되었다. (주: 세 형제 중 문과 급제자이며, 형은 승지, 아우悏는 아래를 참조할 것)
독음
권희중
의미
권희중(1559~약 1626)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화(權)씨 7세손으로 진사에 합격하여 한림·금부·좌윤 등을 역임했으나, 광해군时期的 廷請에 불참하여 금고되었다. 인조 반정 이후 복관하여 기사(耆社)에 들어갔고, 원종 공으로 우상에 추증되었다. 효자로 명성이 높았으며, 향년 78세로 사망했다.
원문
權憘重貴七世孫進士孝子常子明宗丁未生字思悅號南岳宣祖戊辰進壬甲申登别試歴翰林三司錦伯完伯左尹官止知樞入耆社昏祖以不參廷請禁錮仁祖反正始敍甲子卒年七十八以原從功贈右相[주:三兄弟文科兄承旨弟悏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권희중 / 權憘重, confidence=0.95
- person: 명종 / 明宗, confidence=0.95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0.95
- person: 인조 / 仁祖, confidence=0.95
- person: 상자 / 常子, confidence=0.7
- office: 진사 / 進士, confidence=0.95
- office: 한림 / 翰林, confidence=0.9
- office: 삼사 / 三司, confidence=0.9
- office: 좌윤 / 左尹, confidence=0.9
- office: 지추 / 知樞, confidence=0.85
- office: 우상 / 右相, confidence=0.95
- term: 기사 / 耆社, confidence=0.9
- term: 원종공 / 原從功, confidence=0.9
- term: 청원 / 廷請, confidence=0.85
- term: 효자 / 孝子, confidence=0.9
- term: 금고 / 禁錮,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常子(자(字)와 이름의 혼용 가능성)
- 完伯(완부 직위의 정확한 직급명)
- 昏祖(혼조(昏朝)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문맥 확인 필요)
- 卒年(갑자년이 1626년인지 추가 확인 필요)
유공진
- 기사 ID:
20037_017_010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04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6T21:26:29.62920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04
한글 번역
류공진은 진주 사람으로, 삼봉 유자의 아들이며 명종 정미년에 태어났다. 자는 백첨이다. 성혼의 문인이다. 선조 경오년에 사마에 합격하여 많은 선비들을 이끌고 소를 올려 이이·성혼을 변론하고 성혼이 선비들을 모욕한 논의를 그 치다. 침소양 계미년에 별시에서 합격하여 한림을 역임하고, 봉교·전랑을 지냈다. 신묘년에 원한이 사방에서 일어나 郑澈·张云翼 등의 여러 사람과 함께 경원에 유배되었다. 다음 해에 왜란이 일어나자 귀가하여 정유년에 독운어사가 되었다. 왜구가 강화하고자 청화를 청하자, 공진은 대의에 근거하여 힘써 불가하다고 아뢨다. 갑진년에 졸했으며, 향년 58세였다. 관직은 승지에 머물렀으며, 호성·선무 원종 공으로 이이판을 추증받았다.
독음
류공진 진주인 삼봉 자시 명종 정미생 자 백첨 성혼 문인 선조 경오 사마 솔다사 항소 변 이이 성혼 비오 슬론 의지 침소양 계미 등 별시 역 한림 봉교 전랑 신묘 군한사기 와 정척 장운익 제인 동피 척配 경원 명년 유왜란 가사 정유 위 독운 어사 왜사 청화 공진 거대 의력진 불가 갑진 졸 년 오십팔 관 지 승지 이호성 선무 원종 공 증 이판
의미
류공진은 선조 연간에 활동한 선비로, 성혼의 문인이다. 이이와 성혼의 학문적 논쟁에서 성혼을 변론하다가 숙종 연간에 정척·장운익 등과 함께 경원에 유배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독운어사로 왜사와 강화 협상을論하였다. 갑진년에 졸하고 호성선무 원종 공로로 이이판을 추증받았다.
원문
柳拱辰晋州人參奉滋子明宗丁未生字伯瞻成渾門人宣祖庚午司馬率多士抗䟽辨李珥成渾柀誣士論擬之陳少陽癸未登别試歴翰林奉教銓郞辛卯羣憾四起與鄭澈張雲翼諸人同被謫配慶源明年有倭亂家釋丁酉為督運御史倭使請和拱辰據大義力陳不可甲辰卒年五十八官止承旨以扈聖宣武原從功贈吏判
엔티티 후보
- person: 류공진 / 柳拱辰, confidence=0.98
- place: 진주 / 晋州, confidence=0.97
- person: 삼봉 유자 / 參奉滋, confidence=0.85
- person: 성혼 / 成渾, confidence=0.97
- person: 이이 / 李珥, confidence=0.97
- person: 정척 / 鄭澈, confidence=0.96
- person: 장운익 / 張雲翼, confidence=0.95
- place: 경원 / 慶源, confidence=0.94
- office: 독운어사 / 督運御史, confidence=0.88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0.97
- office: 이판 / 吏判, confidence=0.95
- term: 항소 / 抗䟽, confidence=0.82
- term: 호성선무원종공 / 扈聖宣武原從功, confidence=0.78
불확실한 어휘
- 䟽
- 柀
- 羣憾
- 家釋
- 抗䟽辨 李珥成渾柀誣士論擬之陳少陽
강종경
- 기사 ID:
20037_017_010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05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3T22:58:19.98284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05
한글 번역
강종경은 극성의 아들이며, 자는 중영이고 호는 매서이다. 성혼과 마음의 친구가 되어 성리를 논하였다. 선조 기사년(1534)에 进학했으며, 任申년(1572)에 별시관에 오르고 학유에서 그쳤다. 남다른 재주가 있었으나 세상에 펼쳐지지 못하여 고생하며 세상을 떠났다. (주: 형제 중 文科이 있고, 형 先慶은 都事이며, 아들 晋昕은 아래를 볼 것이라.) 손자 裕後는 아래를 볼 것이라.
독음
강종경 극성자 자는 중영 호는 매서 성혼과 심어로 성리를 논하다 선조 기사进士 서신 별시관에 오르고 학유에 머물다. 절 인재의 재주가 있었으나 세상에 드러나지 못하여 간곤하게 세상을 떠났다. 형 先慶은 文科이고 都事이며 아들 晋昕은 아래를 볼 것이라. 손자 裕後는 아래를 볼 것이라.
의미
강종경은 성혼과 교류하며 성리학을 논한 조선 선조时期的 학자이다. 선조 기사년에 进学하고 任申년에 별시관에 오르며 학유에 머물렀다. 절 인재의 재주가 있었으나 세상에 인정을 받지 못하고 고생하며 세상을 떠났다. 형 강선경은 都事이고, 아들 강진昕이며 손자 강유후가 있다.
원문
姜宗慶克誠子字仲榮號梅墅與成渾為心友論性理宣祖己巳進士壬申登别試官止學諭有絶人之才而不遇於世坎坷而沒[주:兄弟文科兄先慶都事子晋昕見下]孫裕後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강종경 / 姜宗慶, confidence=1.0
- person: 극성 / 克誠, confidence=1.0
- person: 성혼 / 成渾, confidence=1.0
- person: 선경 / 先慶, confidence=1.0
- person: 진昕 / 晋昕, confidence=1.0
- person: 유후 / 裕後, confidence=1.0
- office: 학유 / 学諭, confidence=1.0
- office: 도사 / 都事, confidence=1.0
- term: 심우 / 心友, confidence=1.0
- term: 성리 / 性理,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별시관 / 別試官,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晋昕 - 자 형식이 명확하지 않음
- 裕後 - 자 형식이 명확하지 않음
임현
- 기사 ID:
20037_017_010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06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6T21:26:32.07971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06
한글 번역
임현은 풍천 사람으로, 문목사 몽신의 아들 由謙의 증손이다. 명종 정미년에 태어나 字는 士重이고, 호는 愛灘이다. 李珥과 成渾에게 스승으로 사사하였다. 선조 계미년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처음에 李元翼·李德馨·李恒福이 서로 추천하여 임현의 재능을 칭송하였으며, 남병사로 승진하였다. 명나라 장수 楊元이文武兼備한 자를 얻고자 하여 함께 데리고 왔는데, 임금의 지시로 임현을 가리키며 ‘이 사람 아니면 안 된다’고 하며 특별히 남원부사로 임명하였다. 정유년에 난리에 만나 적병 육만이 포위 공격하여 매우危急하였다. 楊元이城池를 버리고 도망가자, 임현은城池가 반드시 함락될 것을 알고 친구에게 글을 남겨 자손을 부탁하였다.城池가 함락되자 적을 꾸짖으며 굴하지 않고 죽었다. 판관 李德恢와 별장 金敬老도 함께 절의를 지켰다. 이때 임현의 나이는 오십한 살이었다. 사후 左賛成에 추증되고, 시호는 忠簡이며, 원향에 모셔졌고, 숙종 병유년에 정려에彰記되었다.
독음
임현 풍천인문목사몽신자유겸종증손 명종 정미생 자사중 호애탄 사사 이이성혼 선조 계미등정시험 초 이원역 이덕형 이항복 교천현재 뇌승남병사 명장 양원청득문무비구자여구 상지현일일 비차인막가 특배 남원부사 정유会遇到 난적 적병 육만 위공甚急 양원 기성遁거 현지성 필함 유서기유의 우탁기자손 급 성함 막적 불굴而死 판관 이덕회 별장 김경로 구여 사절 시현년 오십일 증좌찬성 시충간 원향 숙종 병유 정기려
의미
임현(任鉉)은 선조 연간에 활동한文武兼備한 인재로, 李珥·成渾에게 수학하고 선조 계미년 과거에 급제하였다. 李元翼·李恒福 등的重臣들이 추천하여 남병사에 승진하고, 明나라 将軍 楊元의 요청으로 특별히 남원부사로 발탁되었다. 丁酉년(1597년) 정유왜란 당시 왜적 육만 대군이 남원을 포위하자, 同將 楊元이 도망가자 임현은城池陷落不可避免을 예견하며 친구에게 유서를 남기고 必死으로抗敵하였다.城池가 함락되자 적 앞에서 굴하지 않고 크게 꾸짖으며 순절하였으며, 판관 李德恢와 별장 金敬老도 함께 의를 지켰다. 오십한 살의 나이에 전사한 뒤 左賛成에 추증되고 忠簡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숙종대에 정려에膺選되었다. 任鉉의 死節은 丁酉再亂期에 北쪽 장수들의 무책임한 행동과 대비되는 忠節의 표본으로 기록되었다.
원문
任鉉豊川人文牧使夢臣子由謙從曾孫明宗丁未生字士重號愛灘師事李珥成渾宣祖癸未登庭試初李元翼李德馨李恒福交薦鉉才錊陞南兵使明將楊元請得文武備具者與俱上指鉉曰非此人莫可特拜南原府使丁酉遇亂賊兵六萬圍攻甚急楊元棄城遁去鉉知城必陷遺書其友托其子孫及城陷罵賊不屈而死判官李德恢别將金敬老俱與死節時鉉年五十一贈左賛成謚忠簡院享肅宗丙戌㫌閭
엔티티 후보
- person: 임현 / 任鉉, confidence=0.98
- person: 몽신 / 夢臣, confidence=0.95
- person: 유겸 / 由謙, confidence=0.95
- person: 이이 / 李珥, confidence=0.97
- person: 성혼 / 成渾, confidence=0.97
- person: 이원역 / 李元翼, confidence=0.97
- person: 이덕형 / 李德馨, confidence=0.97
- person: 이항복 / 李恒福, confidence=0.97
- person: 양원 / 楊元, confidence=0.97
- person: 이덕회 / 李德恢, confidence=0.96
- person: 김경로 / 金敬老, confidence=0.96
- place: 풍천 / 豊川, confidence=0.95
- place: 남원 / 南原, confidence=0.97
- office: 남병사 / 南兵使, confidence=0.96
- office: 좌찬성 / 左賛成, confidence=0.96
- office: 판관 / 判官, confidence=0.95
- office: 별장 / 別将, confidence=0.94
- term: 정시험 / 庭試, confidence=0.94
- term: 정려 / 㫌閭,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錊陞의 정확한 의미와 독음
- 원문 기록상 錊陞이 올바른지 通陞(통승) 오기 여부
오빈사
- 기사 ID:
20037_017_010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08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03:59:16.00395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08
한글 번역
오빈사라는 사람이 있었다. 자는 영보이고, 광주에 거처하였다. 선조 경인년에 증광에 급제하여 관직은 정자에 머물렀다. 일찍이 의기로 스스로 자부하였고, 또 고경명 가문의 충절과 효도를 기꺼이 받들었다. 이에 종사가 되어, 계사년에 진주에서 순절하였으며, 향년 사십칠세였다.
독음
오빈사雲子字榮甫居光州宣祖庚寅登增廣官止正字嘗以義氣自許嘗歆高敬命家忠孝乃為從事癸巳殉于晋州年四十七
의미
오빈사(吳玭思)는 선조(即位前) 경인년(1570)에 증광 시험에 급제하여 광주에 거처하며 정자 벼슬에 머물렀다. 의기를 귀히 여기고, 임진왜란 때 선조의 총신이던 고경명 가문의 충절과 효도를 존숭하였다. 이후 종사로 추대되어 정유재란(임진왜란) 계사년(1593년) 진주에서 적과 싸우다 순절하였다. 향년 사십칠세.
원문
吳玭思雲子字榮甫居光州宣祖庚寅登增廣官止正字嘗以義氣自許嘗歆高敬命家忠孝乃為從事癸巳殉于晋州年四十七
엔티티 후보
- person: 오빈사 / 吳玭思, confidence=0.95
- person: 영보 / 榮甫, confidence=0.95
- place: 광주 / 光州, confidence=0.95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0.95
- term: 증광 / 增廣, confidence=0.9
- office: 정자 / 正字, confidence=0.9
- term: 의기 / 義氣, confidence=0.9
- person: 고경명 / 高敬命, confidence=0.95
- term: 종사 / 從事, confidence=0.85
- place: 진주 / 晋州,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박성
- 기사 ID:
20037_017_010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09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6T21:26:44.25851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09
한글 번역
박성은 밀양 사람이다. 일고령(一高靈)이라도 했다. 명종 정미년(1547)에 태어나 字는 德凝이고, 號는 大菴이다. 배신에게 수학하여 학문에 뜻을 두고 발愤하여 힘써 실행하였으며, 공자·孟子·子思·曾子의 서적 외에는 읽지 않았다. 선조 정유년(1597)에 成渾이 의거를 일으킨 후, 才과 行이 뛰어난 까닭에 왕자 사범으로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여러 관직을 거쳐 청송 부사에 이르렀으나 역시 취임하지 않았다. 인형의 당에 가담하여 정질을 소론하였고, 전 현감으로 李珥과 成渾을 소론하였다.奸党의 우두머리라고까지 하며, 또 成渾이 몰래 崔永慶을 죽였다고도 하였다. 병오년(1610)에 사망하여 향년 60세이고 서원에 배향되었다.
독음
박성 밀양[주:일고령] 인생 유명사눌자 명종 정미생 자 덕응호 대암 수업어 배신 개연지학 발분력행 비 공맹 소식 지서 불독 선조 정유년에 용이 의사 후 이才发现 특异 축 왕자 사전 불기 누적 관至 청송 부사 병 불기 이 인형지 당 소론 정질 이선 현감 소론 이어 성혼 지위 간당지괴 우일 성혼 음살 최영경 병오 졸 년 육십 원향
의미
조선中期의 유학자 박성은 명종 연간에 태어나 배신에게 수학하였으며, 공맹의 서적만을 읽고 학문 실천에 힘썼다. 선조대에 정치에 관여하여 成渾의 의거 후 왕자 사범과 청송 부사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인형의 당에 가담하여 정질과 李珥·成渾을 비판하고, 成渾이 崔永慶을 살해했다고 주장하였다. 1610년에 사망하여 60세를 누렸다. 西人派 학자이자 사림파 계열 인물로, 당파 논쟁에 적극 참여하였던 인물이다.
원문
朴惺密陽[주:一高靈]人生貟思訥子明宗丁未生字德凝號大菴受業於裵紳慨然志學發憤力行非孔孟思曾之書不讀宣祖丁酉龍倡義後以才行卓異除王子師傳不起累官至靑松府使并不起以仁弘之黨䟽論鄭澈以前縣監䟽論李珥成渾至謂奸黨之魁又曰成渾隂殺崔永慶丙午卒年六十院享
엔티티 후보
- person: 박성 / 朴惺, confidence=1.0
- person: 덕응 / 德凝, confidence=1.0
- person: 배신 / 裵紳, confidence=1.0
- person: 최영경 / 崔永慶, confidence=1.0
- person: 이이 / 李珥, confidence=1.0
- person: 성혼 / 成渾, confidence=1.0
- person: 정질 / 鄭澈, confidence=1.0
- place: 밀양 / 密陽, confidence=1.0
- place: 청송부 / 靑松府, confidence=1.0
- office: 왕자 사범 / 王子師傅, confidence=1.0
- term: 자(아호의 한 종류) / 字, confidence=0.9
- term: 호(별칭) / 號, confidence=0.9
- term: 원향(서원 배향) / 院享,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密陽[주:一高靈] - 원문에서 一高靈은 주석으로 보이는데 인물의 별칭인지 장소인지 불확실함
- 仁弘 - 성혼의 字로 보이나, 인명 표기가 명확하지 않음
- 龍倡義 - 成渾(율우)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이나 主語가 불분명함
- 䟽論 - 疏論(소론)과 疏(건의서)가 혼용된 표기로 보임
김영남
- 기사 ID:
20037_017_011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12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7-24T07:24:56.16402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12
한글 번역
김영남은 광산 출신으로, 벼슬은 문정랑이며 기자였다. 字는仲悟이고, 호는埽雲翁이다. 선조 임신년에 등별시에 합격하여 여러 부윤을 역임하고 관직은 공의로 그쳤다. 포도시를 지어 중국에서 명성을 얻었다.
독음
금영남 광산인 문정랑기자 자 중오 호 소운옹 선조 임신 등별시 력부윤 관지공의 이 포도시 명어 중국
의미
조선 선조 시대 문신 김영남의 약전이다. 광산 사람으로 문정랑 벼슬에 올랐고, 字는仲悟, 호는埽雲翁이었다. 선조 임신년(1572)에 등별시에 합격한 뒤 부윤 등을 지냈으나 최고 직위는 공의에 그쳤다. 특이하게 포도시를 지어 중국에서까지 명성을 얻었다고 전한다. 이는 당대 한문학의 국제적 교류와 조선 문인의海外名聲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원문
金穎男光山人文正郞誋子字仲悟號埽雲翁宣祖壬申登别試歴府尹官止工議以葡萄詩名於中國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영남 / 金穎男, confidence=1.0
- person: 자 중오 / 字仲悟, confidence=0.9
- person: 소운옹 / 埽雲翁, confidence=0.9
- place: 광산 / 光山, confidence=1.0
- office: 문정랑 / 文正郞, confidence=1.0
- office: 공의 / 工議, confidence=0.9
- term: 선조 임신년 / 宣祖壬申, confidence=0.9
- term: 등별시 / 登別試, confidence=0.9
- term: 부윤 / 府尹, confidence=1.0
- work: 포도시 / 葡萄詩,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임충간
- 기사 ID:
20037_017_011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14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3T22:59:02.86822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14
한글 번역
임충간은 평택의 출신으로, 문군수의 아들이었다. 자는 직경이다. 선조 왕조의 경인년(1590년)에 태어나 경제(요직)로서 신묘년(1615년)에 명경과에 합격했다. 정유년(1617)에 용인현령이 되어 재임 중 왜란을 만나 피난했으나, 이 때문에 붙잡혀 왕의 옥에 갇혔다. 다시 탈출했으나 나중에 잡혀 처형당했다.
독음
임충간 평택인 문군수 척자 직경 선조 경인년생 재 신묘년 명경과에 오르다 정유년 용인현령으로 재임 중 왜란을 만나 피난하다가 이로 인해 왕옥에 갇혔다. 다시 탈출했으나 뒤에 잡혀 죽임을 당하다.
의미
임충간(林忠幹)은 조선 시대 평택 출신으로, 문군수의 아들이다. 선조 시대인 1590년에 태어나 1615년 명경과에 합격하고 관료가 되었다. 1617년 용인현령으로 재직하던 중 왜란을 만나 피난했으나 체포되어 왕옥에 갇혔다. 이후 탈출했으나 결국 잡혀 처형당한 비극적運命을 가진 인물이다.
원문
林忠幹平澤人文郡守樞子字直卿宣祖庚寅生貟辛卯登明經科丁酉以龍仁縣令値倭亂避竄以此囚王獄又逃脫後捉被誅
엔티티 후보
- person: 임충간 / 林忠幹, confidence=1.0
- place: 평택 / 平澤, confidence=1.0
- place: 용인 / 龍仁, confidence=1.0
- term: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1.0
- term: 왜란 / 倭亂, confidence=1.0
- term: 왕옥 / 王獄, confidence=1.0
- office: 현령 / 縣令,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貟辛卯登明經科의 ‘貟’의 정확한 뜻이 불분명하나, 문맥상 재궤(재물, 요직)와 관련된 의미로 추정됨
임계영
- 기사 ID:
20037_017_011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15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6T21:27:15.15965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15
한글 번역
임계영은 예양(일설에는 장흥이라 한다) 사람으로, 희중의 아들이다. 자는 호부이고, 호는 삼도이다. 선조 밀자년(1576년)에 별시관에 나아가 정정(通政)에 이르러 목사가 되었다. 임진년(1592년)에 격문을 전달하여 병사를 모집하고, 최광과 함께 좌우 의병 대장이 되어 여러 번 큰 공을 세웠다. 나중에 병조 참판으로 추증되었다.(형제 중 문과에 합격한 사람이 있으며, 형 백영은 통정이다.)
독음
임계영예양[주의:일운장흥]인희중자자호부호삼도선조병자등별시관지고정정목사임진전계모병여최광회동위좌우의병대장려달대공후증병참[주의:형제문과형백영통정]
의미
조선 선조 연간 의병장 임계영의 간단한 전기이다. 예양出身으로 선조 밀자년(1576년) 무과에 합격하여 관직을 진급하고, 임진왜란(1592년) 때 최광과 함께 좌우 의병 대장이 되어 의병 활동을 전개했다. 뛰어난 전공을 세운 공으로 사후에 병조 참판으로 추증되었다.
원문
任啓英汭陽[주:一云長興]人希重子字弘甫號三島宣祖丙子登别試官止通政牧使壬辰傳檄募兵與崔廣會同為左右義兵大將屢達大功後贈兵參[주:兄弟文科兄百英通政]
엔티티 후보
- person: 임계영 / 任啓英, confidence=1.0
- person: 최광 / 崔廣, confidence=1.0
- person: 백영 / 百英, confidence=1.0
- place: 예양 / 汭陽, confidence=1.0
- place: 장흥 / 長興, confidence=0.8
- office: 통정 / 通政, confidence=1.0
- office: 목사 / 牧使, confidence=1.0
- office: 병참 / 兵參, confidence=1.0
- term: 별시관 / 別試官, confidence=1.0
- term: 의병대장 / 義兵大將, confidence=1.0
- term: 전계모병 / 傳檄募兵, confidence=1.0
- work: 삼도(호) / 三島,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希重(부친의 이름으로 희중으로 읽으나 확실하지 않음)
- 兄弟文科兄百英通政(형제의 문과 급제와 백영의 통정 직임이 전체 문맥과 문장이 불분명하여 번역은 대략적인 의미로 추정함)
허휘굉
- 기사 ID:
20037_017_011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16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6T21:27:41.18171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16
한글 번역
허휘굉의 현손이 아버지의 관직 음도정의 녹으로 벼슬길에 들어, 육자라 이름하고 종숙 대헌의 자리에 이르렀다. 진후였으며, 휘지라는 字를 쓰고 퇴암이라는호를 지었다. 선조 시대에 행동과 의리로 천거되어 비로소 벼슬에 나갔다. 관직에서 행적을 남겨 이름을 알렸다. 채로써 광목을 수축하고 남성을 수축하고 양식을 비축하며 병기를 준비하였다. 병자년에 포위 공격을 당했을 때 백관과 삼군의 보급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호조판관을 거쳐 중추부사에 이르러 그만두고, 사후에 좌상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익정을 내렸다.
독음
허휘굉 현손 이 음도정 육자 위 종숙 대헌 진후 자 휘지 호 퇴암 선조조 이 행의 천시 치색 유성 채 이 광목 수 남성 수 양치 비개 당 병자 수위 백관 삼군 지수 무결언 역 호판관 지 판중추 증 좌상 시 호 익정
의미
조선 선조 때 인물 허휘굉의 가계를 적은 기록이다. 허휘굉의 4대손이 벼슬길에 들어가 선조대에 천거되어 관료로 활동하였다. 병자년(1636년)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군수 물자를 비축하여 포위 속에서도 백관과 군사들의 보급을 빠짐없이 처리한 공로로 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사후 좌상에 추증되고 충의와 어진 행실의 의미를 담은 익정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본문 일부 문장이 간결하게 쓰여 정확한 의미 전달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
원문
許徽硡玄孫以䕃都正昱子為從叔大憲晋后字徽之號退菴宣祖朝以行誼薦始仕治色有聲債以廣牧修南城峙粮備械當丙子受圍百官三軍之需無闕焉歴戶判官止判中樞贈左相謚翼靖
엔티티 후보
- person: 허휘굉 / 許徽硡, confidence=1.0
- person: 육자 / 昱, confidence=1.0
- person: 퇴암 / 退菴, confidence=1.0
- person: 익정 / 翼靖, confidence=1.0
- office: 도정 / 都正, confidence=1.0
- office: 중추부사 / 判中樞, confidence=1.0
- office: 호조판서 / 戶判官, confidence=1.0
- office: 좌상 / 左相, confidence=1.0
- period: 선조대 / 宣祖朝, confidence=1.0
- term: 병자년(1636년) / 丙子, confidence=0.9
- place: 남성 / 南城, confidence=0.8
- office: 대헌 / 大憲, confidence=0.9
- term: 행의 / 行誼, confidence=0.9
- term: 삼군 / 三軍,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박이장
- 기사 ID:
20037_017_011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17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3T22:59:44.76476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17
한글 번역
박이장은 字를 숙빈이라 하고, 호는 용담이며, 또한 낙촌이라 하였다. 선조 임금 때 계유년에 진사가 되었고, 갑술년에 참봉으로 과거에 합격하여 한림, 전랑, 사인, 부학 등을 역임하였다. 벼슬은 생육신에 이르렀고, 또 호를 기옹이라 하였다. 정구의 문인이다. 벼슬은 대군 사부에서 그쳤다.
독음
박이장양조자자숙빈호용담우낙촌선조계유진사병술이참봉등과역한림전랑사인부학관생리참자구호기옹정구문인관지도대군사부
의미
조선 선조 연간에 활동한 관료 학자 박이장의 행적을 수록한 기사이다. 과거에 합격하여 한림, 전랑, 사인, 부학 등 중앙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벼슬은 대군 사부(대군 스승)에 이르렀다. 성리학자 정구의 문인으로서 학통을 이었다.
원문
朴而章良佐子字叔彬號龍潭又駱村宣祖癸酉進士丙戌以參奉登科歴翰林銓郞舎人副學官生吏參子羾衢號畸翁鄭逑門人官止大君師傅
엔티티 후보
- person: 박이장 / 朴而章, confidence=1.0
- person: 숙빈 / 叔彬, confidence=1.0
- person: 용담 / 龍潭, confidence=1.0
- person: 낙촌 / 駱村, confidence=1.0
- person: 기옹 / 畸翁, confidence=1.0
- person: 정구 / 鄭逑, confidence=1.0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1.0
- office: 참봉 / 參奉, confidence=1.0
- office: 한림 / 翰林, confidence=1.0
- office: 전랑 / 銓郞, confidence=1.0
- office: 사인 / 舎人, confidence=1.0
- office: 부학 / 副學, confidence=1.0
- office: 대군사부 / 大君師傅, confidence=1.0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term: 등과 / 登科, confidence=1.0
- term: 문인 / 門人,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조공근
- 기사 ID:
20037_017_011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18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6T21:27:56.71416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18
한글 번역
조공근은 한양 출신으로, 연(涓)의 6대손이다. 아버지는 전한(典翰) 德源이다. 명종 정미년(1541)에 태어나 字는懷甫, 호는梳翁이다. 선조 임진년(1592)에 사직의 參奉이 되어 사직주를 따라가며 목숨을 바쳐 호종하였다. 그 공로로 副率에陞진하였다.皇上이遼東을 건너가는策을 결정하고, 광해군을 世子에 책봉하시니,大小的 조정에서 아직 教旨와 及寶가 내려지지 아니한 때에, 公瑾이 分朝의 假注書로서 아뢴바 「이제 종사의 중대한 것을 세자에게 맡기시거니와 教旨와 及寶가 내려지지 아니하면 除拜과 刑賞이 어디에 의지하겠나」하였다. 상이 말씀하시길 「사변이 급하니 생각할 겨를이 없다」하시고 마침내 내려주었다. 그후 여러 고을을 맡아 管理하고, 嘉善으로広州管止 副摠管에 올라 한興君에 봉작되었다. 광해군 무신년(1618)에 모를废之时 병을 핑계로 고향에 돌아갔다.仁祖丙寅년(1626)에 졸하니, 나이가 팔십이었다.
독음
조공근 한양인 연 육세손 전한 덕원자 명종 정미생 자 훠보 호 서옹 선조 임진에 사직 참봉으로 사직주를 떠나 호행하고 그 노고로 부율에 올라 상이도를 건너 갈策略을 결정하고 광해를 세자에 책봉하고大小的 조정에 교지가 及宝가 없거늘 공진이 分朝의 가주서로 상주하기를 「이제 종사의 중대한 것을 세자에게 맡기거니와 教旨와 及宝가 내려지지 않으면 除拜과 刑賞이 어디에 의지하겠나」하며 上이 「사변이 급하니 생각할 겨를이 없다」하고 마침내 주었으니 그後 여러 고을을 맡아 관리하고 가선으로広州管止 부총관에 올라 한興군에 봉작되고 광해 무신년에 모를废之时 병을 핑계로 고향에 돌아갔으며 인조 병인년에 졸하니 연세가 팔십이었으니
의미
조선 선조~인조대의 관료 조공근의 약력이다. 임진왜란 때 사직주를 호종한 공로로 발탁되었고, 광해군 세자 책립 과정에서 교지(教旨)와 及寶(인장)가 없었으나 종사重임을 핑계삼아 세자에게 교지를 받을 것을 건의하여 채비되었다. 이후 여러 지역 수령을 지내고 한興君에 봉작되었다. 광해군 때废母 사건에 연루되지 않으려 병을 핑계로 낙향하였고, 인조대에 사망하였다.
원문
趙公瑾漢陽人涓六世孫典翰德源子明宗丁未生字懷甫號梳翁宣祖壬辰以社稷參奉奉社主以死護行以其勞陞副率上决渡遼之策冊光海為世子分大小朝未有教旨及寶公瑾以分朝假注書奏曰今以宗社之重付世子教旨及寶未下除拜刑賞將憑恃上曰事急念不及乃賜之後屢典郡邑以嘉善拜廣州官止副揔管襲封漢興君光海戊午廢母時謝病歸鄕仁祖丙寅卒年八十[주:子贇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조공근 / 趙公瑾, confidence=0.98
- person: 연 / 涓, confidence=0.85
- person: 덕원 / 德源, confidence=0.95
- person: 광해군 / 光海, confidence=0.98
- place: 한양 / 漢陽, confidence=0.98
- place: 광주 / 廣州, confidence=0.9
- office: 전한 / 典翰, confidence=0.85
- office: 참봉 / 參奉, confidence=0.95
- office: 부율 / 副率, confidence=0.95
- office: 가선 / 嘉善, confidence=0.92
- office: 부총관 / 副摠管, confidence=0.95
- term: 세자 / 世子, confidence=0.98
- term: 교지 / 教旨, confidence=0.95
- term: 급보 / 及寶, confidence=0.92
- term: 분조 / 分朝, confidence=0.9
- term: 가주서 / 假注書, confidence=0.88
- work: 한흥군 / 漢興君, confidence=0.93
- person: 자윤 / 子贇,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연(涓)의 정확한 출신과 가문 정보
- 宣祖壬辰奉社主의 구체적 의미
- 上决渡遼之策의 구체적 내용
- 襲封漢興君의 세습 조건
- 子贇見下의 상세 관계
성여학
- 기사 ID:
20037_017_012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23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7-24T07:26:10.04545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23
한글 번역
성여학은 창녕 사람으로 호는 쌍천이며 또 학천이라고도 하였다. 어릴 때부터 시를 잘 지었으나 조화아에게 시달려서 불우하게 지냈고, 늙어서 예순을 넘도록 한 관직도 얻지 못했다. 유몽인이銓長 이정귀에게 추천하기를, 「노초에 달빛이 젖고 바람 나뭇가지에 새의 꿈이 위태롭다. 成某(이 사람)가 어찌 헛것리 늙을 뿐이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정귀가 즉시 시학教관을 제수했고, 또 「雨意偏傷夢, 秋光欲梁詩」, 「缺月棲深樹, 寒禽穴小籬」의 시구와 같은 것이었다. 그의 청고함이 이러하며, 벼슬은 别坐에 그쳤다.
독음
성여학 창녕인 호 쌍천 또 학천 자소 공시 위 조화아 소곤 간란 이 노년 과육십 미득 일명 유몽인 천于 전장 이정귀 말씀드리기를 노초 충성 습풍지 조 꿈 위험 지 성모 개 공 노호 전거 즉의 시학教官 유어 우의 편상몽 추광욕 양 시 결월 서 심수 한금 혈 소리 지구 청구차관 지학수 태현관此至 별좌
의미
조선后期的 시인 성여학의生平을 적은 기사로, 그는 창녕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재능이 있었으나造化兒(재화, 즉 재앙)에게 시달려 평생 불우했다. 예순이 넘도록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다가 유몽인의 추천으로 이정귀에게 발탁되어 시학教관에 제수되었다. 그가 지은 시구들은 모두 맑고、清苦한韻致를 보여주며, 결국 벼슬은 别坐에 그쳤다.造化兒는 자신의才學이 도리어自身的 고통이 되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원문
成汝學昌寧人號雙泉又鶴泉自少工詩為造化兒所困轗軻以老年過六十未得一命柳夢寅薦于銓長李廷龜曰露草䖝聲濕風枝鳥夢危之成某豈空老乎廷龜即擬詩學教官又如雨意偏傷夢秋光欲梁詩缺月棲深樹寒禽穴小籬之句其淸苦如此官止别㘴
엔티티 후보
- person: 성여학 / 成汝學, confidence=1.0
- person: 유몽인 / 柳夢寅, confidence=1.0
- person: 이정귀 / 李廷龜, confidence=1.0
- place: 창녕 / 昌寧, confidence=1.0
- work: 노초충성습풍지조몽위 / 露草蟲聲濕風枝鳥夢危, confidence=0.9
- work: 결월서심수한금혈소리 / 缺月棲深樹寒禽穴小籬, confidence=0.9
- office: 별좌 / 別坐, confidence=0.9
- term: 조화아 / 造化兒, confidence=0.8
- term: 시학관 / 詩學教官,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이덕일
- 기사 ID:
20037_017_012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24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7-24T07:26:39.28233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24
한글 번역
이덕일은 함사에 소속된 인물로, 자는 경이이고 호는 㓒실이다. 아버지가 꿈에 무묵(武穆)이 방에 들어와서 태어났다. 선조 시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어후(虞候)에 그쳤다. 용맹이 당시에 으뜸이었고, 문과와 무과를 모두 갖추었다. 강항과 사귀었고, 정유년에 왜적과 싸웠다. 나무 끝을 오가며 적들이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였으며, 이름이 중국에도 알려졌다. 이순신이 조정에 이 인물을 천거하여 자신의 자리를 대행하게 해줄 것을 청하였다. 날이 밝아 서간을 초안하여 이演进의讐母(원수인 어머니)의 죄를討할것을请旨하였으나, 상소가 올라가지기도 전에 우환과 분통으로 세상을 떠났으며,원에서 추존되었다.
독음
이덕일 함사사,字 경이,號 㓒실,父 꿈에병(무묵)이방에들어가서생김,선조조에무과에지원하여관직은어후에멈춤,용맹당시에으뜸,문무俱비,강항과교유,정유에왜와전쟁,나무끝을왕래하여賊영敢가가까이하지못함,명문 중국에,传李舜臣이朝廷에荐하여제로代할것을청,흑조에소초請斬演进하여讐母의벌을討,소문올라가지전에우愤하여졸,원에서추존됨
의미
이덕일은 선조 시대 무과 급제자로, 어후직까지 올랐다. 용맹이 당대 최고로 문무兼备했으며, 정유년 임진왜란 당시 나무 위에 서서 왜적과 싸워 이름을 날렸다. 이순신이 자신의 뒤를 이어줄 인사로 천거할 정도로 기대받았으나, 역모를 꾀한 이演进의母를討하자고 상소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기 전에 우환과 분통으로 사망하였다. 인물 사료로 활용 가능하나, 원문의 표기 오류와 불확실 부분이 다수 있어 교차 검증이 필요하다.
원문
李德一咸事人字敬而號㓒室父夢兵(武穆)入室而生宣祖朝登武科官止虞候勇冠一時文武俱備與姜沆遊丁酉與倭戰徃來樹杪止賊英敢近名聞中國李舜臣薦于朝請以代己昏朝草䟽請斬爾瞻以討讐母之罪䟽未上而憂憤卒院享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덕일 / 李德一, confidence=0.95
- person: 자 경이 / 字敬而, confidence=0.8
- person: 강항 / 姜沆, confidence=0.95
- person: 이순신 / 李舜臣, confidence=0.95
- person: 무묵 / 武穆, confidence=0.85
- place: 함사 / 咸事, confidence=0.6
- office: 어후 / 虞候, confidence=0.9
- office: 무과 / 武科, confidence=0.95
- era: 선조 / 宣祖, confidence=0.95
- year: 정유 / 丁酉, confidence=0.85
- term: 원에서 추존 / 院享,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 㓒室(호칭, 한자 미확인)
- 樹杪(적이 나무 위에 서 있었다는 표현인지 본인의 위치를 의미하는지 불분명)
- 昏朝(표기가 명확하지 않아 ‘날이 밝은 아침’으로 해석)
- 草䟽(소초 초안 과정에서 사망)
- 讐母(역모 주모자의 어머니를 의미하는지 확인 필요)
곽열
- 기사 ID:
20037_017_012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25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7-24T07:27:00.97618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25
한글 번역
곽열은 청주 사람으로 추의 여섯 대손이다. 아버지는 문정(문정懷英)의 아들이며, 명종 무신년(1554)에 태어났다. 자는 몽득, 호는 서포이다. 선조 기축년(1589)에 별시(別試)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라 태상정(太常正)을 지냈고, 관직은僉樞(兼判書의 낮은 관직)에서 그쳤다. 나이 들어 가선(嘉善)으로 승진했으며, 스승은闵純(민순)이었다. 성友成渾(우성혼)과 정철과 깊이 사귀었다.损益学(역학)과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고, 문장과 서예 모두 뛰어났다. 인조 경오년(1630)에 사망하였으며, 향년 팔십삼 세였다. 증직으로 예관(禮判)을 받았다. 조카希儉(희검)은 선교랑(宣教郞)이었다. 아들嫌(혐)은 선조 신묘년(1571)에 무과에 합격하여 벼슬은 현감(縣監)에 이르렀다. 임진년(1592) 신립(申砬)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충주 달천(撻川)에서 순절하였으며, 증직으로 부정(副正)을 받았다.
독음
곽열 청주인 추육세손 문정화의 아들 명종 무신생 자몽득 호서포 선조 기축 등별시력 태상정 관지기樞老陞 가선사 민순성수첨우성혼 정철 심어서역학성리능문장필법역묘인조경오졸년팔십삼증예판종자희검선교랑혐자선조신묘등무과관주기현감임진신립종사관而死절於충주탈천증부정
의미
이 글은 조선 시대 문신 곽열의 비문이다. 곽열은 명종 무신년(1554)생으로 청주 출신이며, 호는 서포이다. 선조 기축년(1589)에 과거에 합격하여 태상정 등 관직을 지냈고, 퇴임 후 가선으로 승진하였다. 易학과 성리학에 정통하고 문장·서예에 능했던 학자이다. 인조 경오년(1630)에 83세로 사망하여 예관에 추증되었다. 아들 혐은 선조 신묘년(1571)에 무과에 합격하여 현감이 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선임 장수 신립의 종사관으로서 충주 달천에서 순절하였다. 부정을 추증받아 부자父子가 모두 관직과 명성을 갖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원문
郭說淸州人樞六世孫文正懷英子明宗戊申生字夢得號西浦宣祖己丑登别試歴太常正官止僉樞老陞嘉善師閔純成守琛友成渾鄭澈深於昜學性理能文章筆法亦妙仁祖庚午卒年八十三贈禮判從子希儉宣教郞諴子宣祖辛卯登武科官止縣監壬辰以申砬從事官死節於忠州撻川贈副正
엔티티 후보
- person: 곽열 / 郭說, confidence=0.95
- place: 청주 / 淸州, confidence=0.95
- person: 추(조상) / 樞, confidence=0.8
- person: 문정 / 文正懷英, confidence=0.85
- year: 무신(1554년, 명종대) / 戊申, confidence=0.9
- person: 몽득(자) / 夢得, confidence=0.95
- person: 서포(호) / 西浦, confidence=0.95
- year: 기축(1589년, 선조대) / 己丑, confidence=0.9
- office: 태상정 / 太常正, confidence=0.95
- office: 첨樞(겸枢) / 僉樞, confidence=0.85
- office: 가선(가선대부) / 嘉善, confidence=0.9
- person: 민순(스승) / 閔純, confidence=0.85
- person: 우성혼 / 成渾, confidence=0.85
- person: 정철 / 鄭澈, confidence=0.9
- term: 역학(易學) / 易學, confidence=0.95
- term: 성리학 / 性理, confidence=0.95
- year: 경오(1630년, 인조대) / 庚午, confidence=0.9
- office: 예판(예조판서 추증직) / 禮判, confidence=0.85
- person: 희검(조카) / 希儉, confidence=0.85
- office: 선교랑 / 宣教郞, confidence=0.95
- person: 혐(아들) / 諴子, confidence=0.85
- year: 신묘(1571년, 선조대) / 辛卯, confidence=0.9
- person: 신립 / 申砬, confidence=0.9
- office: 종사관 / 從事官, confidence=0.95
- place: 충주 달천 / 忠州撻川, confidence=0.85
- office: 부정 / 副正, confidence=0.9
- year: 임진(1592년) / 壬辰, confidence=0.9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樞六世孫
- 추의 6대손이라는 표현이 구체적 조상을 특정하기 어렵다
- 別試
- 별시는 과거 합격 경로를 뜻하지만,文中에서는 구체적 시험명이 불분명하다
- 僉樞
- 겸樞의 직제와 품계가 단독관직인지 보결직인지 불확실하다
- 友成渾
- 성友成渾의 성을 成으로 볼지 우성으로 볼지 불확실하다
- 汚
- 아들 이름이 行으로 보이나 원문 글자가 불분명하다
이정형
- 기사 ID:
20037_017_012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28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04:05:35.69665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28
한글 번역
이정형은 이정형의 아우 이정핍의 사위로서 윤현의 서손이다. 명종 기유년에 태어나 字는 덕이다. 호는薰은 지지당, 동각, 퇴忧. 명종 정묘년에 열아홉 살에 진사에 급제하고, 선조 무진년에 스무 살에 별시[別試]에 합격하여 삼사를 두루 역임하였다. 임진년에 소나무를 남겨두고[松留] 벼슬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하자 벼슬을 그만두어刑參이 되었으며, 이후奉朝請으로 벼슬에 나왔고, 세상의 졸심을 내려놓고 한가롭게 여가를 즐기며 양식하였다. 저서로『동각잡기』가 있다. [주: 8세손 현稷은 아래를 참고하라]
독음
이정형 정형의 아우 정핍 윤현의 사위 명종 기유년에 태어나 자는 덕이라 한다. 훈의 호는 지지당, 동각, 퇴憂。明宗丁卯년에 열아홉 살에 진사가 되었고, 선조戊辰년에 스무 살에 별시[別試]에 급제하여 삼사를 역임하였다. 임진년에 소나무를 남겨두고[松留]官을 온전히 수守하지 못하여 벼슬이止되어刑參이 되었고,奉朝請으로 나오며 전退하며 한가롭게 양성하였다. 저서에『동각잡기』가 있다. 주: 8세손 현稷은 아래를 참조하라.
의미
이 기사는 李廷馨의 약력을 수록한 것이다. 명종 기유년에 태어난 이정형은 스무 살에 별시 합격 후 삼사를 역임했으나, 임진년에 소류(松留)로 인해 벼슬을 내려놓고刑參에 그쳤다. 이후奉朝請으로 나왔으며, 퇴직 후에는 세속적 염려를 내려놓고 한가롭게 여생을 보냈다. 호는 지지당·동각·퇴忧이고, 저서로『동각잡기』가 있으며, 8세손에 현稷이 있다.
원문
李廷馨廷馣弟尹鉉婿[주:明宗己酉生字德]薰號知足堂又東閣又退憂明宗丁卯[주:十九]進士宣祖戊辰[주:二十]登别試歴三司壬辰以松留不能全守官止刑參以奉朝請恬退養閑所著有東閣雜記[주:八世孫顯稷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정형 / 李廷馨, confidence=0.95
- person: 정핍 / 廷馣, confidence=0.95
- person: 윤현 / 尹鉉, confidence=0.95
- person: 현직 / 顯稷, confidence=0.9
- work: 동각잡기 / 東閣雜記, confidence=0.95
- term: 봉조청 / 奉朝請, confidence=0.95
- term: 별시 / 別試, confidence=0.95
- term: 소류 / 松留,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이인기
- 기사 ID:
20037_017_013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30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8-03T02:55:50.80274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30
한글 번역
이인기의 나란 6세손인 병사 옥자명의 아들이자, 종기유년에 태어나 자는 인서, 호는 송계이다. 선조 기축년(1589)에 사마 벼슬에 올라 음직에 이르렀고, 관직은 가의 동중추에 이르렀으며, 청릉군으로 봉호를 계승받았다. 박지화, 한수흥, 조헌, 정작, 조수륜, 이상의 건에게 수학하였으며, 교류한 인물들은 훌륭한 행실과 아름다운 절개를 지녔다. 문장에 능하며 초서와 예서, 금, 노래, 활쏘기와 마부 모두 그 묘함에 이르렀다. 혼란스러운 왕조 교체기에 시세의 큰 변동을 보고 도성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 십 년에 가까웠다. 정원 밭에 수박을 심어 이항복에게 보내었더니, 항복이 시로 사례하였다. 인조 신미년에 사망하니 향년 팔십삼세였다. 뒤에 추증하여 좌찬성에 이르렀다. 아들 중로의 기록은 아래를 참조하고, 현손 수민과 유민의 기록은 아래를 참조한다.
독음
이인기지나란 육세손병사옥자명종기유생자인서호송계선조기축사마음색지기사의가의동중추습봉청릉군수업어박지화한수흥조헌정작조수륜이의건교유탁행훼절능문장선초례금가사여급기묘혼조시간시대변불입성근십년원포종서과송이항복항복이사시사지인조신미졸년 팔십삼
의미
이인기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이인기의 6세손으로서 병사 옥자명의 아들이다. 1579년 태어나 1661년에 사망하였으며, 향년 83세였다. 선조대 사마에 진출하여 가의 동중추에 이르렀고 청릉군에 봉해졌다. 박지화, 한수흥, 조헌 등 명망 높은 학자에게 수학하여 학문을 익혔고, 글씨와 예술, 무예에 모두 능하였다. 임란 전후의 정치적 혼란을 목격하고 거의 십 년간 도성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은거生活中 수박을 재배하여 외교가 이항복에게 선물한 일이 전한다. 뒤에 좌찬성으로 추증되었으며, 아들 중로, 현손 수민과 유민의 기록이 후대에 전해진다.
원문
李麟奇之蘭六世孫兵使沃子明宗己酉生字仁瑞號松溪宣祖己丑司馬䕃仕止嘉義同中樞襲封靑陵君受業於朴枝華韓脩興趙憲鄭碏趙守倫李義健交遊有卓行姱節能文章善草隷琴歌射御皆極其妙昏朝時見時事大變不入城近十年園圃種西瓜送李恒福恒福以詩謝之仁祖辛未卒年八十三[주:贈左賛成子重老見下玄孫壽民裕民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인기 / 李麟奇, confidence=0.95
- person: 옥자명 / 沃子明, confidence=0.95
- person: 인서 / 仁瑞, confidence=0.9
- person: 송계 / 松溪, confidence=0.9
- person: 박지화 / 朴枝華, confidence=0.95
- person: 한수흥 / 韓脩興, confidence=0.95
- person: 조헌 / 趙憲, confidence=0.95
- person: 정작 / 鄭碏, confidence=0.95
- person: 조수륜 / 趙守倫, confidence=0.95
- person: 이의건 / 李義健, confidence=0.9
- person: 이항복 / 李恒福, confidence=0.95
- person: 중로 / 重老, confidence=0.9
- person: 수민 / 壽民, confidence=0.9
- person: 유민 / 裕民, confidence=0.9
- place: 가의 / 嘉義, confidence=0.9
- place: 청릉군 / 靑陵君, confidence=0.95
- office: 동중추 / 同中樞, confidence=0.95
- office: 병사 / 兵使, confidence=0.9
- office: 사마 / 司馬, confidence=0.95
- office: 좌찬성 / 左賛成,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之蘭(나란)
- :원문에서 ‘之蘭六世孫’으로 기록되었으나, 통상 ‘裔孫’ 또는 특정 가문의 계승 표현으로 보임
- , 䕃(음)
- :음직의 음자는 통용 표기로 보이나 확인 필요
유종지
- 기사 ID:
20037_017_013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31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8-03T02:55:59.38173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31
한글 번역
유종지, 자는 명중, 호는 조선. 학문을 좋아하고 실천에 힘썼다. 조식허를 술로 후하게 대접하며 그 추천을 받았다. 다시參奉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기축년에汝立 사건이 일어나자, 유생 정암수 등이 소를 올려 그가 역적과 결탁한 죄를 논하였다. 곤형을 맞아 죽었다. 그가晋陽 옥중에 있을 때, 최영경이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올바르다고 권면하였다.
독음
유종지 자 명중 호조선 호학역행 조식허 이하후후 재제삼봉 부취 기축 여립옥기 유생 정암수 등 소론 기 협력 역적지 죄피 겸사其在晋陽獄也 최영경 면이 순수 기정
의미
조선 중기의 선비 유종지는 호학역행(좋아하고 실천하는) 인물이었으나, 기축년(1655)의汝立 사건에 연루되어 유생 정암수 등의 탄핵을 받았다. 그가 역적과 결탁했다는 죄목으로 곤형을 맞아 죽었으며, 옥중에서 최영경의 권고를 받았다. 조식허의推舉로再仕하려 했으나 취임하지 않은 점이 주목되며, 시대적 사건과 관련된 인물로 기록되었다.
원문
柳宗智字明仲號潮溪好學力行曺植許以醉厚再除參奉不就己丑汝立獄起儒生丁巖壽等䟽論其締結逆賊之罪被杖死其在晋陽獄也崔永慶勉以順受其正
엔티티 후보
- person: 유종지 / 柳宗智, confidence=0.98
- person: 명중(유종지의 자) / 明仲, confidence=0.97
- person: 조선(유종지의 호) / 潮溪, confidence=0.96
- person: 조식허 / 曺植許, confidence=0.94
- office: 삼봉 / 參奉, confidence=0.92
- event: 여립옥(기축년의 옥사) / 汝立獄, confidence=0.88
- person: 정암수 / 丁巖壽, confidence=0.93
- person: 최영경 / 崔永慶, confidence=0.95
- place: 진양(경주) / 晋陽,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汝立獄의 구체적 사건 내용
- 曺植許以醉厚의 정확한 문맥 관계
- 參奉爵任의 구체적 관직명
유영서
- 기사 ID:
20037_017_013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35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6T21:30:49.82015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35
한글 번역
유영서(柳永緖)는 문화인 강자 연(堈子㙉)의 종질(형제의 아들)이다. 표자는 언소(彦紹)이고, 선조 때 계유년에 진사에 합격했으며, 병자년에 명경과에 합격하여 관직은僉正까지 올랐으나, 임진년에 왜구에게 피살되었다.
독음
유영서 문화인 강자 연 종질 자 언소 선조 계유 진사 병자 등명경과 관지첨정 임진 피왜해
의미
조선 선조 연간에 활동한 유영서는 선조 12년(1579) 계유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선조 9년(1576) 병자년에 명경과에 급제하여 관직을僉正까지 올렸다. 문화인 강자 연의 종질로, 임진년(1592) 왜란 때 왜구에게 살해된 인물이다. 명경과는 율려학(율학) 시험 중 전문과에 해당하는 시험으로, 과거 급제자의 이력을 수록한 기록이다.
원문
柳永緖文化人堈子㙉從侄字彦紹宣祖癸酉進士丙子登明經科官止僉正壬辰被倭害
엔티티 후보
- person: 유영서 / 柳永緖, confidence=0.98
- person: 강자 연 / 堈子㙉, confidence=0.92
- person: 언소 / 彦紹, confidence=0.97
- term: 종질 / 從侄, confidence=0.95
- term: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0.93
- term: 첨정 / 僉正, confidence=0.94
- term: 왜해 / 倭害, confidence=0.96
불확실한 어휘
- 堈子㙉의 정확한 한자 독음과 의미
- 㙉자의 판독
안황
- 기사 ID:
20037_017_013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37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04:07:36.79953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37
한글 번역
안황은 성 省의 6세손이다. 여목 여경의 아들로서, 덕흥대원군의 사위였다. 명종 기유년에 태어나 자는 경호였다. 음사로 벼슬을 시작하여 도정에 이르렀으나 품계는 가선에 머물렀다. 선조 임진년에 행차를 따라 용 만에 다녀갔다가, 계사년에 강서에서 죽었다. 향년 45세였다. 后来 숭록공신 2등에 녹선되었으며, 증직으로 영의정을 추증받고 광양군에 봉해졌다. 손자 주현의 행적은 아래를 볼 것, 증손 以下의 내용은 이후에 설명한다. 6세손 정복의 행적은 아래를 볼 것.
독음
안황성육세손여목여경자유흥대원군서명종기유생자경호음사 至도정계지 가선선조임진호차용만계사 졸어강서연사십오세퇴록호성공이등증형판광양군손[주:현징견하증손후설견하육세손정복견하]
의미
조선 시대 인물 安滉의 행적을 기록한 짧은 묘문이다. 安滉는 省(성) 씨의 6세손으로, 덕흥대원군의 사위였다. 1549년(명종 기유년) 태어나 자는 경호였다. 벼슬은 도정에 이르렀으나 품계는 가선(종2품)에 그쳤다. 1592년(선조 임진년) 임진왜란 때 선조의 행차를 따라 용만에 갔으며, 다음 해인 1593년(계사년) 강서에서 사망했다. 향년 45세였다.死后 숭록공신 2등에 녹선되고 영의정으로 추증받았으며, 광양군에 봉해졌다. 安滉의 손자 주현과 6세손 정복에 대한 행적은 별도 기록을 참고하도록 하였다.
원문
安滉省六世孫驪牧汝敬子德興大院君壻明宗己酉生字景浩䕃仕至都正階止嘉善宣祖壬辰扈駕龍灣癸巳卒于江西年四十五退錄扈聖功二等贈刑判廣陽君孫[주:獻徵見下曾孫後說見下六世孫鼎福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안황 / 安滉, confidence=0.95
- person: 여경 / 汝敬, confidence=0.85
- person: 경호 / 景浩, confidence=0.95
- person: 덕흥대원군 / 德興大院君, confidence=0.95
- person: 명종 / 明宗, confidence=0.95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0.95
- person: 정복 / 鼎福, confidence=0.85
- place: 용만 / 龍灣, confidence=0.85
- place: 강서 / 江西, confidence=0.9
- office: 여목 / 驪牧, confidence=0.8
- office: 도정 / 都正, confidence=0.9
- office: 형판 / 刑判, confidence=0.85
- title: 광양군 / 廣陽君, confidence=0.95
- term: 음사 / 䕃仕, confidence=0.9
- term: 가선 / 嘉善, confidence=0.9
- term: 호성공 / 扈聖功, confidence=0.9
- term: 퇴록 / 退錄,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驪牧汝敬子
- 주석 부분의獻徵見下·後說見下·鼎福見下이전한 정확한所指및관계
장언침
- 기사 ID:
20037_017_014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40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7-24T07:29:33.832768+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40
한글 번역
장언침은 진천 사람으로, 시호는 충국자이고, 자는 사부이며, 호는 모은이다. 금화에 거처하면서 선조 무자년(1598년)에 명경과에 합격하였다. 관직은 부사에서 그만두었고, 역학에 깊이 통달하였다. 흐린乱世인 혼조에는 벼슬하지 않았다가 세상을 떠났다.
독음
장언침 진천인 충국자 자 사부 호 모은 거금화 선조 무자년 명경과에 올랐다 관직은 부사에서 그쳤고 역학에 깊이 통하였다 혼조에 출사하지 않아 이에 세상을 떠났다
의미
조선后期的 학자 장언침은 선조 때 명경과에 급제한 뒤 부사까지관직에 올랐으나, 이후 관직을 떠났다. 그는 역학에 깊이 밝았으며, 나라가 어지러운 혼조의 시기에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은거하며 생을 마쳤다. 충국자 시호는 그의 충절을 기리는 것이다.
원문
張彦忱鎭川人忠國子字士孚號暮隐居金化宣祖戊子登明經科官止府使深於昜學不仕於昏朝而卒
엔티티 후보
- person: 장언침 / 張彦忱, confidence=1.0
- place: 진천 / 鎭川, confidence=1.0
- place: 금화 / 金化, confidence=0.8
- person: 사부 / 士孚, confidence=1.0
- person: 모은 / 暮隐, confidence=1.0
- term: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1.0
- office: 부사 / 府使, confidence=1.0
- term: 역학 / 昜學, confidence=0.9
- term: 혼조 / 昏朝, confidence=0.8
- person: 충국자 / 忠國子,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조대중
- 기사 ID:
20037_017_014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41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8-03T02:56:50.67698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41
한글 번역
조대중은 창녕 사람으로, 삼봉 세명의 아들이다. 자는 화(和) 또는 일홍(一弘)이고, 호는 정곡(鼎谷)이다. 선조 병자(1576)년에 진사가 되었고, 임오년에 명경과에 합격하여 벼슬이 전라도사로 끝났다. 여립의 죽음을 듣고 눈물을 흘렸으며, 평소 소행을 바르게 했다. 경인년에 고문 받아 죽었고, 인조 때에 원冤을 풀어 작위를 회복하였다.
독음
조대중 창녕인 삼봉세명자 화자일홍호 정곡선조병자진사 임오등명경과 관지전라도사 문여립지고류제경인고사인조조 설원부작
의미
조대중(1560~1630)은 선조 연간에 명경과에 급제하여 전라도사까지 올랐으나, 인조반정에 연루되어 곤장을 맞고 옥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효절공 비난과 함께 능를师德褒賞을 거쳐 본래 작위가 회복된 인물이다. 문여립의 죽음에 눈물을 흘린 기록은 그가 효열한 성품을 가졌음을 보여주며, 형 조경중은 군수였다.
원문
曺大中昌寧人參奉世明子字和字一弘字號鼎谷宣祖丙子進士壬午登明經科官止全羅都事聞汝立之死流涕行素庚寅栲死仁祖朝雪寃復爵[주:兄弟文科兄景中郡守]
엔티티 후보
- person: 조대중 / 曺大中, confidence=1.0
- person: 세명 / 世明, confidence=1.0
- person: 여립 / 汝立, confidence=1.0
- person: 경중 / 景中, confidence=1.0
- place: 창녕 / 昌寧, confidence=1.0
- place: 전라 / 全羅, confidence=1.0
- office: 삼봉 / 參奉, confidence=1.0
- office: 도사 / 都事, confidence=1.0
- term: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1.0
- term: 고사(고문 받다 죽음) / 栲死, confidence=0.9
- term: 설원(원冤을 풀다) / 雪寃,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字和字一弘 - 자가 화 또는 일홍 두 가지로 전하는 기록이 있어 불확실함
- 庚寅栲死 - 정확한 사망 연도 확인 필요
곽기수
- 기사 ID:
20037_017_014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42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04:09:35.46920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42
한글 번역
곽기수는 해미 사람으로 본명은 세공이고, 자(아호)는 미소이며, 호는 석포이다. 선조 기묘년(1579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계미년(1595년)에 별시에 합격하여 벼슬에 나아갔다. 관직은 호좌에 이르렀으나, 부모가 모두 구십이 되자 관직을 버리고 귀양하여 봉양하였으며, 결국 다시는 혼란스러운 왕조에 출사하지 않았다.
독음
곽기수 해미인 세공자 자 미소 호 석포 선조 기묘년 진사 계미년 별시에 등관 호좌에 이르러。父母년이 모두 구십이므로 기관하여 귀양하고 종신 혼조에 불립하다.
의미
곽기수는 전남 해미 출신으로 선조 때 진사에 합격하여 호좌까지 관직에 올랐으나, 부모가 모두 장수하여 구십이 되자 관직을 버리고 귀양하여 부모를 봉양하였다. 이후 다시 혼란스러운 시기에 출사하지 않았다. 홍씨 척신 정권이나 그에 반대하는 흐름 속에서 벼슬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원문
郭期壽海美人世功子字眉叟號石浦宣祖己卯進士癸未登别試官止戶佐以父母年皆九十棄官歸養終不立於昏朝
엔티티 후보
- person: 곽기수 / 郭期壽, confidence=0.95
- person: 세공(본명) / 世功, confidence=0.9
- person: 미소(자) / 眉叟, confidence=0.95
- place: 해미(전남 해남) / 海美, confidence=0.85
- place: 석포(호) / 石浦, confidence=0.85
- term: 별시 / 別試, confidence=0.9
- office: 호좌 / 戶佐, confidence=0.85
- term: 혼조 / 昏朝, confidence=0.7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0.95
- term: 기관 / 棄官, confidence=0.95
- term: 귀양 / 歸養,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昏朝(혼조) - 붕당 시대 특정 세력이나 정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나 정확히 어떤 세력을 의미하는지 불분명
- 世功子(세공자) - 본명과 아들 관계의 정확한 구조가文中 명시되지 않아 해석이 불확실
성로담
- 기사 ID:
20037_017_014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43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3T23:02:52.74270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43
한글 번역
성로와 담수의 증손자永國의 아들 明宗이다. 경술년에 태어나 字는重任이며, 호는石田·又三·一堂·又潜巖이다. 정철의 문인으로서 선조 경신년에進士로 급제하였다. 어릴 때부터修身勵行이 높고 벼슬에 대한 욕구가 없어서 과거 공부를 하지 않았다.司饔參奉에 제수되었다가 다시齊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항상 오래된 양잿빛 베개를 쓰고 스스로平凉子라 칭하였다. 부모의 우환을 근심하여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가白再到黑으로 돌아왔다. 권비와 가깝게 사귀었는데, 권비가 시문 사건으로 앉혀서 죽은 뒤에 시를 불에 태워버리고 정외로 내보내지 않았다. 이웃 노인이 술을 권하면 늘 가서 마시면서 스스로靖節 이후 혼자 그 묘妙를 얻었다고 말하였다. 모르는 사람은 그가 미쳤다고 여겼다. 시가 매우맑고 절묘하다. 광해군 을묘년에呻吟하지 않고 술을酣暢히 마시다가 세상을 떠났다. 육십육세였다.
독음
성로담수증손영국자명종경술생이자중임호석전우삼일당우삼엄정철문인선조경신진사소时有고행기무환정불사과업수사옹참봉재수제릉참봉개不起상대폐양자자칭평량자친제우전호발진백질환회흑여권비상호호비좌시안사후분기불출정외毗邻옹치주상邀칙첩조음자위정연후독得其妙부지자위광시묘을묘不作呻吟飮酣而来세년육십육
의미
조선 시대 선비 成明宗의 전기이다. 成輅聃壽의 증손으로 경술년(1674)에 태어났다. 정철의 문인으로서 선조 경신년(1580)에進士에 급제하였으나 관직에 뜻을 두지 않아 과거 공부를 하지 않았고, 사옹참봉과 제릉참봉을 거절하며隐居하였다. 부모의 우환으로 탈모에 시달렸으나 나중에 머리카락이 돌아왔다. 시사案으로 투옥된 권비와 벗이었으며, 권비가 죽은 뒤 그의 시를 불태우고庭外로 내보내지 않았다. 시가 절묘하여靖節陶淵明 이후 오직 자신만이 그 묘를 얻었다고 자부하였다. 광해군 을묘년(1625)에 병든 기색 없이 술을 즐기며 세상을 떠났다. 여든여섯 살.
원문
成輅聃壽曾孫永國子明宗庚戌生字重任號石田又三一堂又潜巖鄭澈門人宣祖庚辰進士少時有高行己無宦情不事科業授司饔參奉再授齊陵參奉皆不起常戴蔽陽子自稱曰平凉子親劑憂煎號髮盡白疾止還黑與權鞞相好鞸坐詩案死後焚棄不出庭外隣翁置酒相邀則輒造飮自謂靖節後獨得其妙不知者以為狂詩甚淸絶光海乙卯不作呻吟飮酣而逝年六十六
엔티티 후보
- person: 성로담수 / 成輅聃壽, confidence=0.95
- person: 영국 / 永國, confidence=0.95
- person: 명종 / 明宗, confidence=0.95
- person: 중한 / 重任, confidence=0.95
- person: 정철 / 鄭澈, confidence=0.95
- person: 권비 / 權鞞, confidence=0.95
- person: 정절 / 靖節, confidence=0.95
- place: 사옹 / 司饔, confidence=0.9
- place: 제릉 / 齊陵, confidence=0.9
- term: 증손 / 曾孫, confidence=0.95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0.95
- term: 자 / 字, confidence=0.95
- term: 시안 / 詩案, confidence=0.85
- term: 정외 / 庭外,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 庭外- 문 밖 바깥이라는 의미로 추정되나 구체적 상황 미상
- 詩案- 시문 관련 처벌 사건으로 추정되나 구체적罪名 미상
- 親劑憂煎- 부모의 우환을 근심했다는 의미로解釋하나劑字의 의미 명확하지 않음
서사원
- 기사 ID:
20037_017_014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45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3T23:02:47.84487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45
한글 번역
서사원은 달성 사람이다. 훈련도 합자의 아들이며, 명종 경술년에 태어나 자는 행보이고 호는 율재라 하였으며, 다시弥思齋라도 하였다. 정구의 문인으로서 효행과 학식 덕으로 감역관에 발탁되었으며, 최후 관직은 지사어에 이르렀다. 선조 임진년에 의병장이 되었고, 광해군 을묘년에 사망하여 향년이 육십육세이었다. 서원에 배향되었다.
독음
서사원 달성이인훈도합자 명종경술년생 자행보 호율재 우밀사재 정구문인 이후효행학식으로 감역관을배수관止시어 선조임진년에 의병장이되고 광해을묘년에 사망하여 향년 육십육원
의미
조선中期의 文人 서사원에 대한 기록이다. 달성 출신으로 정구의 문인이며, 효행과 학식으로 관료길에 올라 감역관에 임명되었다.宣祖 임진년(1592)에 의병장이 되어 왜란에 참여하였고, 이후 지사어까지 올라갔다. 광해군 을묘년(1615?)에 66세로 사망하여 서원에 배향되었다.训导洽子는训导관衔의 합자임을示하며, 후손의 관직世襲을 보여준다.
원문
徐思遠達城人訓導洽子明宗庚戌生字行甫號栗齋又彌思齋鄭逑門人以孝行學識拜監役官止司禦宣祖壬辰為義兵將光海乙卯卒年六十六院享
엔티티 후보
- person: 서사원 / 徐思遠, confidence=1.0
- place: 달성 / 達城, confidence=1.0
- person: 명종 / 明宗, confidence=1.0
- person: 정구 / 鄭逑, confidence=1.0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1.0
- person: 광해군 / 光海, confidence=1.0
- office: 감역관 / 監役, confidence=1.0
- office: 지사어 / 司禦, confidence=1.0
- office: 훈도 / 訓導, confidence=1.0
- term: 의병장 / 義兵將, confidence=1.0
- term: 서원배향 / 院享,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庚戌生의 정확한 서기 연도確認
- 달성徐氏의系譜內训导洽子의 관계
- 광해乙卯의 사망연도確認
남이신
- 기사 ID:
20037_017_014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46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6T21:32:07.46827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46
한글 번역
남이신은 응운손 군수 호의 아들이자, 자는 유이고 호는 진곡이다. 선조 임금의 경인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가선 대간까지 올랐으며, 사후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주: 형제는 문과에 급제했고 아우의 이름은 이공이며 아래 조목 참조, 아들 남두첨도 아래 조목 참조] 이 기사는 역년편고 제이십팔 권의 마지막이다.
독음
남이신 응운손 군수 호의 아들 자 유 호 진곡 선조 경인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은 가선 대간에 이르렀다가 영의정에 추증됨. [주: 형제는 문과 급제자이고 아우의 이름은 이공이며 아래를 참조, 아들 두첨도 아래를 참조] 역년편고 제이십팔 권 끄트머리
의미
조선 선조 연간에 문과에 급제하여 가선 대간까지 관직에 올랐던 남이신의 행적을 적은 전기 기사이다. 그는 응운손 군수 호의 아들이며, 자는 유, 호는 진곡이다. 사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었고, 아우 남이공과 아들 남두첨도 각각 문과에 급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사는 역사 편년서인 역년편고 제이십팔 권의 마지막 수록 기사로 끝난다.
원문
南以信應雲孫郡守琥子字子有號眞谷宣祖庚寅登文科官止嘉善大諫贈領相[주:兄弟文科弟以恭見下子斗瞻見下]紀年便攷第二十八終
엔티티 후보
- person: 남이신 / 南以信, confidence=1.0
- person: 남이공 / 以恭, confidence=1.0
- person: 남두첨 / 斗瞻, confidence=1.0
- person: 호 / 琥, confidence=0.9
- place: 응운 / 雲孫, confidence=0.6
- office: 군수 / 郡守, confidence=1.0
- office: 가선 / 嘉善, confidence=1.0
- office: 대간 / 大諫, confidence=1.0
- office: 영의정 / 領相, confidence=1.0
- work: 역년편고 / 紀年便攷,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자 / 字, confidence=1.0
- term: 호 / 號, confidence=1.0
- term: 추증 / 贈,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雲孫郡守琥子 - 응운손은 본관 또는 호稱으로 보이나 표기가 불명확하고,琥子를 호의 아들로 볼 때 人名 解讀이 추가 검증 필요
정명세
- 기사 ID:
20037_017_014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47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8-03T02:57:30.34200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47
한글 번역
정명세는 광노의 현손이다. 희장의 아들이 명종이며, 경술년에 태어났다. 자는 백시, 호는 독곡이다. 정묘년에 18세에 진사가 되었고, 선조 기묘년에 명경과에 합격했다. 임진년에 곡성장으로서 호서義兵別將을 겸임하고, 아산과 평택의 적을 공격하여 여러 차례 전공을 올렸다. 군 조표수(助防將)가 되었다. 계년에 금천일, 황진, 최경과 함께 진주를 수호하다 힘이 다하여 성과가 함락되자 여러 사람과 함께 강에 뛰어들어 죽었다. 나이 사십사세. 추증하여 도승지가 되었다. 아우 명원은 임진년에 청안현감이 되어 순절했으며, 아우 명형은 중진사로서 역시 적에게 피살되었다.
독음
정명세광노현손희장자명종경술생자백시호독곡정묘십팔진사선조기묘등명경과임진곡성장호서사의병별장격아산평택적적격차조절군조표수계사금천일황진최경회동수진주시갈력고성함여제인투강이지년사십사증도승지제명원임진청안현감순절제명형중진사역피적해
의미
정명세는 1555년 태어나 1579년 18세에 진사가 되고 명경과에 합격한 조선后期的 인물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곡성장으로서 호서義兵別將을 겸임하고 아산·평택의 적을 공격하여 전공을 세웠으며, 1593년에는 금천일·황진·최경 등과 함께 진주성을 수호하다 함락되자 적과 함께 강에 투신하여 순국했다. 44세의 나이에 추증되어 도승지가 되었고, 동생 명원도 같은 해 청안현감으로 순절했으며, 또 다른 동생 명형도 적에게 피살되었다. 정씨 일가가 모두 의절한 대표적인 기록이다.
원문
鄭名世光露玄孫希章子明宗庚戌生字伯時號獨谷丁卯[주:十八]進士宣祖己卯登明經科壬辰以谷城守兼湖西義兵别將擊牙山平澤之賊屢次奏捷軍助防將癸巳與金千鎰黃進崔慶會同守晋州力竭城陷與諸人投江而死年四十四贈都承旨弟名遠壬辰以淸安縣監殉節弟名弘中進士亦被賊害
엔티티 후보
- person: 정명세 / 鄭名世, confidence=0.98
- person: 희장 / 希章, confidence=0.85
- person: 금천일 / 金千鎰, confidence=0.95
- person: 황진 / 黃進, confidence=0.95
- person: 최경 / 崔慶, confidence=0.95
- person: 명원 / 名遠, confidence=0.97
- person: 명형 / 名弘, confidence=0.97
- place: 곡성 / 谷城, confidence=0.92
- place: 진주 / 晋州, confidence=0.96
- place: 청안 / 淸安, confidence=0.9
- place: 아산 / 牙山, confidence=0.9
- place: 평택 / 平澤, confidence=0.9
- office: 사의병별장 / 義兵別將, confidence=0.88
- office: 도승지 / 都承旨, confidence=0.97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0.95
- office: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0.93
- term: 선조 / 宣祖, confidence=0.98
- term: 현손 / 玄孫, confidence=0.92
불확실한 어휘
- 光露
- 丁卯進士의 해석이 丁卯年十八歲에 及第之意인지 丁卯에 18세로 及第之意인지 불확실
- 湖西義兵別將
신맹경
- 기사 ID:
20037_017_014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48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3T23:03:29.999768+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48
한글 번역
신맹경은 원주 출신으로, 신성부원군 벼슬을 지냈다. 태어난 해는 명종 경술년이며, 자는 백상, 호는 운계다. 처음 벼슬길에 나서서 참봉이 되었으나,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벼슬을 그만두었다. 선조 기사년과 갑오년에는 걸인들이 문전에 가득 찾아왔고, 그들에게 죽을 나눠주어 먹여 살렸다. 두 명의 계집하인을 두어 그들을 붙잡아 두되 종들이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널리 살펴 환送했으니,果然 선한氏族이었다. 어머니가 병에 걸리자 의원이 살모사의 약용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그 살모사가 갑자기 나타나 사용했더니,果然 낫았다. 사위가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을 했으나 문을 닫고 만나지 않았다. 이는 벼슬에 나가면 어머니를 홀대할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광해군 신유년에 졸했으며, 관직은 제천현감에서 그쳤다. 향년 72세였고, 효자문에 올라 그 행적을 삼강적록에 기록하였다.
독음
신맹경은 원주 사람이다. 신성부원군 찬후직장介福子,明宗,경술년에 태어나,字는 백상,호는 운계. 처음 벼슬을 받아 참봉이 되었으나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벼슬하지 않았다. 선조 기사년과 갑오년에 유리들이 문前에 가득하고 生粥으로 먹여 살렸다. 두 명의丫鬟를 두고 去留하여 종족들이 서로 가깝지 않게 하였다. 넓게 살펴보고 돌아와 보내니果然 양족이었다. 어머니가 아프자 의원이 蝟이 필요하다고 하니,蝟이 갑자기 前에 도착하여 使用하였더니,果然 차疽되었다. 사위가 등과하여 벼슬에 올랐으나 문을 닫고 보지 아니하였다. 그,这是因为 벼슬에 오르면 어머니를 그르칠까虑함이었다. 光海 신유년에 벼슬에서 떠나官止는 제천현감이었고,年七十二세에孝㫌录되어 그 行을 삼강적록에 적었다.
의미
신맹경(1555-1621)은 조선后期的 효자로, 어머니 봉양을 위해 벼슬을 그만두었다. 어려운 시절에도 걸인들에게 죽을 나눠주고 가족을 돌보며 至孝를 실천했다. 어머니가 병에 걸렸을 때 살모사가 스스로 나타난 일화는 당시 사람들에게 감응으로 여겨졌다. 사위가 벼슬에 올라도 만나지 않은 것은 어머니 간호를 소홀히 할까 한 염려에서였다. 제천현감으로 벼슬이 끝났고, 효자문 삼강적록에 行實이 기록되었다.
원문
申孟慶原州人信城府院君賛後直長介福子明宗庚戌生字伯祥號雲溪始除參奉為養不仕宣祖癸巳甲午流丐盈門哺以饘粥有二丫鬟使留之勿令奴僕相近廣探還送果良族也有至孝母病醫云當用蝟蝟忽前至用之果瘳有婿登科閉門不見以其參廢母䟽故也光海辛酉卒官止堤川縣監年七十二孝㫌錄其行於三綱績錄
엔티티 후보
- person: 신맹경 / 申孟慶, confidence=1.0
- place: 원주 / 原州, confidence=1.0
- place: 신성 / 信城, confidence=0.9
- person: 명종 / 明宗, confidence=1.0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1.0
- person: 광해군 / 光海, confidence=1.0
- office: 참봉 / 參奉, confidence=1.0
- place: 제천 / 堤川, confidence=1.0
- term: 삼강 / 三綱, confidence=1.0
- term: 효문 / 孝㫌, confidence=0.9
- work: 삼강적록 / 三綱績錄,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송대립
- 기사 ID:
20037_017_014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49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6T21:32:28.612748+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49
한글 번역
송대립侃은 송대립의 6대 손으로 흥양에 거주하였다. 왜구扰乱을 맞아 나라를 위해 죽을 결심하고 붓을 던져 무과에 급제하였다. 선조 갑오년에 무과에 올라 벼슬은훈정에 이르렀다. 정유년에 아우 지도의 만호인 희립과 함께 박순신의 막하에 나아가니, 권慄이 그의 기략을 인하여 창의별장으로 추천하자 적이 감히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였다. 문득 포탄을 맞아 죽으니 향년 48세, 병의로 추증하였다.季子인諶은 아래를 본다. 아우 희립은功을 세운 뒤 벼슬이 본도좌수사에 이르렀다.
독음
송대립侃 육세손 거흥양치왜난이사국위심축투필선조갑오등무과관지훈정정유여제지도만호희립동부박순신막하권찰천인이략위창의별장적개불감근홀중포환이 졸연사십팔증병의제자첨견하제희립입공후관치본도좌수사
의미
송대립侃은 선조 연간 왜구扰乱기에 나라를 위해 무과에 급제한 인물이다. 박순신의 部将로서 권慄의 추천으로 창의별장이 되었고, 적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였으나 포탄에 맞아 48세에 전사하였다. 동생 희립은功을 세워 좌수사에 이르렀다. 이 기사는 조선 선조 연간 의병 활동과 임진왜란 전후의 군사 조직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된다.
원문
宋大立侃六世孫居興陽値倭亂以死國為心逐投筆宣祖甲午登武科官止訓正丁酉與弟智島萬戶希立同赴李舜臣幕下權慄薦以才畧為倡義别將賊不敢近忽中砲丸而卒年四十八贈兵議[주:季子諶見下]弟希立立功後官止本道左水使
엔티티 후보
- person: 송대립侃 / 宋大立侃, confidence=0.95
- person: 희립 / 希立, confidence=0.95
- person: 첨 / 諶, confidence=0.9
- person: 박순신 / 朴舜臣, confidence=0.85
- person: 권慄 / 權慄, confidence=0.95
- place: 흥양 / 興陽, confidence=0.7
- place: 지도 / 智島, confidence=0.85
- office: 훈정 / 訓正, confidence=0.9
- office: 만호 / 萬戶, confidence=0.95
- office: 창의별장 / 倡義別將, confidence=0.85
- office: 병의 / 兵議, confidence=0.9
- office: 좌수사 / 左水使, confidence=0.95
- term: 왜란 / 倭亂, confidence=0.95
- term: 무과 / 武科, confidence=0.95
- term: 포환 / 砲丸,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흥양(소재지 미상)
- 지도(전한이 집성된 섬으로 추정되나 위치 불확실)
- 창의별장(의병 계열 관직으로 추정되나 상세 불확실)
신요숙
- 기사 ID:
20037_017_015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50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05T04:33:31.48289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50
한글 번역
신요숙은 주자의5대손이다. 현감 언맹의 아들이며, 字는季涉이다. 선조 임오년(1598)에 진사가 되었고, 신축년(1601)에 명경과에 합격하여 삼사와춘방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관직은 正에 이르렀으나, 광해군 을묘년(1619)에 상소를 올렸다가 귀양을 가게 되었다. 아들 광추는 중진사에 합격하여 시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광해군 14년(1622)에 진사와 같은 해文科에 합격하였는데, 어려서 발탁되어 才學으로拔出되어 15세에及第하였다.
독음
신요숙주는오세손현감언맹자자체계선조임오진사신축등명경과력삼사진방관지지광해을묘항소피척자광추중진사이시명세광병십사진사동년문과이연소발십오의
의미
신요숙은 朱子의5대손으로 현감 언맹의 아들이다. 선조 말期的에 진사, 명경과에 합격하며 관직을 역임하였다. 광해군 시대에 상소를 올렸다가 귀양을 가게 되었으나, 아들 광추는 중진사에 합격해 시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광추는 어려서 발탁되어 15세에文科에 합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문
申橈叔舟五世孫縣監彦溟子字季涉宣祖壬午進士辛丑登明經科歴三司春坊官止正光海乙卯抗䟽被謫子光樞中進士以詩名世光柄十四進士同年文科以年少拔十五矣
엔티티 후보
- person: 신요숙 / 申橈叔, confidence=0.95
- person: 주자 / 朱子, confidence=0.85
- person: 언맹 / 彦溟, confidence=0.8
- person: 체계 / 季涉, confidence=0.9
- person: 광추 / 光樞, confidence=0.9
- person: 광해군 / 光海, confidence=0.85
- person: 광해군 / 光柄, confidence=0.8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0.95
- office: 삼사 / 三司, confidence=0.9
- office: 춘방 / 春坊, confidence=0.9
- office: 정 / 正, confidence=0.7
- term: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
- place: 항소(상소를 올림) / 抗疏, confidence=0.85
- term: 피척(귀양 감) / 被謫,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유의신
- 기사 ID:
20037_017_015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51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04:11:24.94035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51
한글 번역
유의신이 천안에 거주하였다. 선조 계미년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임진년에 이리진 권관으로 선봉장이 되어 加德에서 대승하고, 조정이 훈련주簿로 발탁하였다. 다시 熊川에서 대승하고 훈련검정으로 승진하였으며, 閑山島 중원에서 전사하였다. 향년 사십삼세. 추증하여 선무종공의 공을 기록하고 호의로 추증하였다.
독음
유의신거천안선조계미등무과임진이지리진권관위선봉장대절우고정용발훈련주簿재절우고형천곡반훈련검정지한산도중완이자년사십삼추록선무종공증호의
의미
조선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한 유의신이 임진왜란 때 선봉장으로 전공을 세워 관직이 올라갔다. 加德과 熊川에서 연이은 대승을 거둔 뒤 閑山島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향년 사십삼세에 호의 관직으로 추증받았다.
원문
柳義臣居天安宣祖癸未登武科壬辰以梨津權管為先鋒將大捷於加德朝廷擢拜訓鍊主簿再捷于熊川拜訓鍊僉正至閑山島中丸而卒年四十三追錄宣武從功贈戶議
엔티티 후보
- person: 유의신 / 柳義臣, confidence=1.0
- place: 천안 / 天安, confidence=0.95
- place: 이리진 / 梨津, confidence=0.9
- place: 가덕 / 加德, confidence=0.9
- place: 웅천 / 熊川, confidence=0.85
- place: 한산도 / 閑山島, confidence=0.9
- office: 권관 / 權管, confidence=0.95
- office: 선봉장 / 先鋒將, confidence=0.95
- office: 훈련주簿 / 訓鍊主簿, confidence=0.95
- office: 훈련검정 / 訓鍊僉正, confidence=0.95
- office: 호의 / 戶議, confidence=0.9
- term: 선무종공 / 宣武從功, confidence=0.9
- term: 추록 / 追錄,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梨津權管의 정확한 위치와 읽기, 加德의 현 위치特定, 中丸의 의미(中丸은 전투 부대 편성 단위일 가능성)
이효원
- 기사 ID:
20037_017_015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52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7-24T07:31:06.16438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52
한글 번역
이효원은 이양의 현손이며 이관의 아들이다. 명종 연간 경술년에 태어나 이수경의 사위가 되었다. 자는 성백이고 호는 장포이다. 선조 임금의 경오년에 진사가 되었고, 갑신년에 친시(親試)에 합격하였다. 선조 임금 재위 말년에 장련발·인홍·이에첨(등)을 멀리 유배 보내자는 간소를 올렸다. 광해군 초기에 자신의 반격을 받아 거제에 엉켜 진을 쳤으니, 16년을 유배지에서 보냈다. 인조反正 뒤에 호를 노청陽으로 바꾸고 전리(田廬)에서 지내다가 놓임을 받았다. 그 날 자기 아들子澥에게 먼저 물었다. “예전에 임금은 어떻게 되었는가?”子澥는功臣에 가담하셨으나 오랫동안 등용되지 않았다.子澥가 맨몸으로臥內에 들어가 눈물을 흘리니, 효원이 권하여 解해주었다. 여러 번 벼슬을 내리라는 명이 있었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성혼·이이를 물리쳤으나 말년에 크게 깨닫고 마침내 定論을 세웠다. 군자는 그 마음이 公正하고 의로운 일에 용감하다고 많이赞誉하였다. 또한 그 손자 의길이从容히 논의하자 깨달았다고 한다. 벼슬은嘉義大夫大司諫에서 그쳤다. 송시烈이 그 큰 절개를称赞하였다. 기사년에 80세로 졸했다.领相咸豊府院君에 추증되고 시호는景獻이다. [주: 子澥는 아래를 참조, 손 의길은 아래를 참조, 형제文科의 아우弘元刑佐를 참조]
독음
이효원 양현손 예판관자 명종 경술생 이수경서 자성백호장포 선조 경오진사 갑신등친시 상지말년 이찰 장련발 인홍 이에첨(등) 원산지기 광해초 위 기 반시 전측 거제 십육년 재 적 인조반정 호 노청양 전로 몽방지일 선문 구군。何소처之子해 참여훈 불견자 구해 적신 입와내 류제 효원 계而来解지 뉘유 제명 종불기 초 척 성혼 유지 말년 대오 수위 정기 군자 다기 심 공 이 용어 시의 又因其 손 의길 종용 변론 이 각오 云 관지 가의 대사감 송시열칭기 유 대절 기사 졸 년 팔십 증 영상 함풍 부원군 시 경헌
의미
조선中期의 文臣 이효원(1529~1609)은 明宗代에 태어나 이수경의 사위가 되었다. 선조 연간 진사가 되어 친시에 합격한後, 선조 말년에 장련발·인홍·이에첨 등의權姦을 물리칠 것을 간했으나 좌절되었다. 광해군 시대에 반대세력의 반격으로 거제에 유배되어 16년을 보냈고, 인조反正 뒤에 풀려났다. 아들 子澥의 功臣 참획에도 등용되지 못한 사정을 위로하며, 성혼·이이를 물리쳤던 자신을 후대에 깨달아 定論을 세웠다. 공의심과 의로운 일에 대한 용기로 군자로 称賛받았으며, 손자 의길의 말을 듣고恍然大悟하였다. 종신 벼슬은 大司諫에 그쳤으나 사후에領相에 추증되고 시호는景獻이다.
원문
李効元良玄孫禮判瓘子明宗庚戌生李首慶婿字誠伯號長浦宣祖庚午進士甲申登親試上之末年以諫長連發仁弘爾瞻(等)遠竄之啓光海初為其反噬栫棘巨濟十六年在謫仁祖反正號老靑陽田廬蒙放之日先問舊君何以處之子澥參勳不見者久澥赤身入卧內流涕效元戒而觧之屢有除命終不起初斥成渾李珥末年大悟遂為定論君子多其心公而勇於徒義又因其孫義吉從容卞論而覺悟云官止嘉義大司諫宋時烈稱其有大節己巳卒年八十贈領相咸豊府院君謚景獻[주:子澥見下孫義吉見下兄弟文科弟弘元刑佐]
엔티티 후보
- person: 이효원 / 李効元, confidence=0.98
- person: 이관 / 李瓘, confidence=0.95
- person: 명종 / 明宗, confidence=0.98
- person: 이수경 / 李首慶, confidence=0.97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0.98
- person: 자해 / 子澥, confidence=0.95
- person: 의길 / 義吉, confidence=0.92
- person: 성혼 / 成渾, confidence=0.97
- person: 이이 / 李珥, confidence=0.97
- person: 송시열 / 宋時烈, confidence=0.98
- place: 거제 / 巨濟, confidence=0.96
- place: 함풍 / 咸豊, confidence=0.85
- office: 대사감 / 大司諫, confidence=0.95
- office: 영상 / 領相, confidence=0.93
- term: 반정 / 反正, confidence=0.94
- term: 시호 / 謚, confidence=0.96
불확실한 어휘
- 禮判瓘子
- 이 부분이 이관의 관직과 서술인지 명확하지 않음
- 長連發仁弘爾瞻 등
- 四人 명의 나열 방식이 불확실함
- 流涕效元戒而觧之
- 효원이 자해에게 권하여 解했다는 文脈이 특정되지 않음
강부성
- 기사 ID:
20037_017_015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53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05T04:34:00.36921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53
한글 번역
강복성은 유복자 이연경의 외손으로, 명종 경술년에 태어났으며, 자는 명지, 호는 죽간이다.卢守愼의 문인이다. 선조 기묘년에 사마가 된 후 다시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유일에,推擧되어 여러 고을을 맡아治理했으며,功績으로 관직을 승진하여 부총관이 되었다. 광해군의 정치가 어지러운 것을 보고 배를 빌려 남쪽으로 돌아왔다.仁祖反正後에 富平과 星州를 거쳤으며, 전후합하여 십군을 두루 다스렸다. 清白함을 스스로 기준으로 삼았고,또한 시를 잘 지었다. 관직은 正憲知樞까지 올라 갑술년에 사망하니 여든다섯 살이었다.
독음
강복성유선유복자 이연경외손 명종경술생 자명지 호죽간,卢守愼문인 선조기묘사마후부복응거 유일려전주군 지정적증질 부총관견광해정란임선남귀 인조반정 제부평성주전후범십군빙옥자기규,又能시 관지지정헌지추 갑술 졸년팔십오
의미
조선后期的文武兼備한 管理者인 강복성의 개요이다.卢守愼의 문인으로서 선조 기묘년에 사마가 된 뒤 과거 진학을 포기하고, 유에,推輿되어 여러 지역을治理하며功績으로 부총관까지晋升했다. 광해군 시대 정치가 어지러운 것을 보고 남쪽으로 돌아와 인조反正後에 富平·星州 등 십군을 두루 다스렸다. 清白과 詩才로知樞·正憲에 이르렀으며, 갑술년에 여든다섯 살로 사망했다.
원문
康復誠惟善遺腹子李延慶外孫明宗庚戌生字明之號竹澗盧守愼門人宣祖己卯司馬後不復應擧以遺逸屢典州郡以聲績增秩以副揔管見光海政亂賃船南歸仁祖反正除冨平星州前後凡十郡以氷玉自規又能詩官止正憲知樞甲戌卒年八十五
엔티티 후보
- person: 강복성 / 康復誠, confidence=1.0
- person: 이연경 / 李延慶, confidence=1.0
- person: 卢守愼 / 盧守愼, confidence=1.0
- person: 명종 / 明宗, confidence=1.0
- person: 광해군 / 光海, confidence=1.0
- person: 인조 / 仁祖, confidence=1.0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1.0
- place: 부평 / 富平, confidence=1.0
- place: 성주 / 星州, confidence=1.0
- office: 사마 / 司馬, confidence=1.0
- office: 부총관 / 副揔管, confidence=1.0
- office: 정헌 / 正憲, confidence=1.0
- office: 지추 / 知樞, confidence=1.0
- term: 유복자 / 遺腹子, confidence=1.0
- term: 유일 / 遺逸, confidence=1.0
- term: 빙옥 / 氷玉, confidence=0.8
- term: 반정 / 反正, confidence=1.0
- work: 죽간 / 竹澗,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氷玉(빙옥) - 清白·純潔을 비유한 것으로 보이나 그 구체적 의미 확인 필요
- 典州郡(전주군) - 구체적으로 어떤 고을을 맡았는지 불분명
정호
- 기사 ID:
20037_017_015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54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04:46:06.86727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54
한글 번역
정호는 희계의 8세손으로, 아버지는 좌랑 한종이다. 자는 원중이다. 선조 기사년(1578년)에 무과에 급제하고, 임진년(1592년)에 부장으로 이순신의麾下에 들어가 당포·한산·발포의 왜구를 여러 차례 격파하고 전공을 바쳤으며, 귀환하던 길에서 포탄을 맞아 사망하였다.
독음
정호희계팔세손 좌랑 한종자 원중선조경오등무과임진이부장으로 이순신을 졸破당포한산발포적헌왜귀로중환이 졸
의미
정호는 조선 선조대 무과에 급제하여 임진왜란 때 이순신휘하의 부장으로 출전, 당포·한산·발포 해전에서 왜구를 연달아 격파하는 전공을 세운 뒤 귀군길에 포탄을 맞아 전사한 인물이다.
원문
鄭浩熙啓八世孫佐郞漢宗子字遠中宣祖庚午登武科壬辰以部將從李舜臣屢破唐浦閑山鉢浦賊獻馘歸路中丸而卒
엔티티 후보
- person: 정호 / 鄭浩, confidence=1.0
- person: 한종 / 漢宗, confidence=1.0
- person: 이순신 / 李舜臣, confidence=1.0
- office: 좌랑 / 佐郞, confidence=1.0
- place: 당포 / 唐浦, confidence=1.0
- place: 한산 / 閑山, confidence=1.0
- place: 발포 / 鉢浦, confidence=1.0
- term: 무과 / 武科, confidence=1.0
- term: 부장 / 部將, confidence=1.0
- term: 왜(적을 베어 바침) / 馘,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丸 - 전한 문헌에서 火丸 또는 丸이炮弹으로 해석되나, 원문 그대로丸(포탄/탄환)로 번역
한덕원
- 기사 ID:
20037_017_015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55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8-03T02:57:18.38154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55
한글 번역
한덕원은 청주 출신이다. 세대는 곤자이고, 명종 기유년에 태어났으며, 자는 어백이다. 선조 계유년에 진사가 되었고, 임오년에 명경과에 합격하여 기연 등의 관직을 두루 역임했으며, 벼슬은 지樞에서 그쳤다. 기사에 入舍하였고, 인조 기사에 사망하였다. 향년 팔십한 살이었다.
독음
한덕원 청주인곤자 명종기유년생 자어백 선조계유년진사 임오등명경과 기연관직지樞 기사入社 인조기사에 사망 팔십일세
의미
조선后期的 관료 한덕원의略傳이다. 청주 출신으로 명종기에 태어나 선조 때 과거에 합격하고 관료 생활을 하였으며, 지樞(樞密院 관련 벼슬)까지 올랐다. 노령이 되어 기사사에 入舍한 후 인조 때 향년 81세로 사망하였다.
원문
韓德遠淸州人悃子明宗己酉生字毅伯宣祖癸酉進士壬午登明經科歴畿伯官止知樞入耆社仁祖己巳卒年八十一
엔티티 후보
- person: 한덕원 / 韓德遠, confidence=1.0
- place: 청주 / 淸州, confidence=1.0
- person: 명종 / 明宗, confidence=1.0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1.0
- person: 인조 / 仁祖, confidence=1.0
- term: 자 / 字, confidence=1.0
- term: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0.95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office: 지樞 / 知樞, confidence=0.9
- office: 기사사 / 耆社,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悃子(세대 명칭으로 정확한 의미 미확인)
- 畿伯(구체적 직위와 누차 임명 여부 불확실)
- 官止知樞(최종 관직이 지樞 단독인지 다른 관직 경력 포함인지 불확실)
최상중
- 기사 ID:
20037_017_015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56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3T23:03:52.05711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56
한글 번역
최상중은 항렬 6세손으로, 영수(穎)의 아들 용의 종제(從子)이다. 자는汝厚이고, 호는未能齋이다. 선조 병자년(1576)에 진사에 합격하고, 기축년(1589)에 별시에서 급제하였다. 한림원과 삼사를 두루 역임하고, 관직은 사간에서 그쳤다. 덕망이 있었으며, 이이(李珥)를 위해 상소하여 억울함을 풀어주었다. 先見이 있었고, 유립(汝立)과 인홍(仁弘)과 근처에 있었으나 끝내 만나지 못하였다.
독음
최상중항육세손영자용종자유호후호미능재선조병자진사고축등별시력한림삼사관지사감유덕망위이이상장변무유선견여유립인홍재근지종불견
의미
최상중(崔尙重)은 조선 선조 연간에 활동한 관리이자 학자이다. 항렬 6세손으로, 선조 병자년(1576) 진사 합격, 기축년(1589) 별시 급제하여 한림원과 삼사를 두루 역임하고, 궁궐의 비망기 직위인 사간에서 관직 생활을 마쳤다. 덕망이 높아 이이(李珥)를 변호하는 상소를 올렸다. 예지력이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同期 출신인 유립(汝立)과 인홍(仁弘)과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서로 만나지 못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원문
崔尙重恒六世孫穎子顒從子字汝厚號未能齋宣祖丙子進士己丑登别試歴翰林三司官止司諫有德望為李珥上章辨誣有先見與汝立仁弘在近地終不見[주:子荇蘊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최상중 / 崔尙重, confidence=0.98
- person: 이이 / 李珥, confidence=0.98
- person: 유립 / 汝立, confidence=0.95
- person: 인홍 / 仁弘, confidence=0.9
- person: 유온 / 子荇蘊, confidence=0.85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0.95
- term: 사간 / 司諫, confidence=0.95
- term: 한림삼사 / 翰林三司, confidence=0.9
- term: 별시 / 別試, confidence=0.95
- term: 자(아호) / 字, confidence=0.95
- term: 호(호칭) / 號,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이대기
- 기사 ID:
20037_017_015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57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8-03T02:57:28.66989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57
한글 번역
이대기는 12대째 손손으로, 군사감정(軍資監正)을 지낸 이 득분의 아들이자 이희언의 외손이다. 명종 기해년에 태어나, 자는 임중이고 호는 설학이다. 최영경에게 수학하고, 또한 조식의 문하에도 드나들었다. 처음으로 장원의 제공관으로 제수되었으며, 관직은 사도첨정까지 올랐다. 선조 임진년의 난 때 의병을 모집하여 낙동을 가로막고, 우수 등과 여러 사람이 서로 응원하였다. 북론이 한창 왕성할 때 상소를 올려 극력直言하여 백령으로 유배되었다. 지은 책으로 《백령지(白翎志)》와 《설학소문록(雪壑謏聞錄)》이 있다. 인조 무진년에 죽어 향년 78세였으며, 서원에 배향되었다. 아들은 없고 딸이 다섯이었다.
독음
이대기 전십이세손 군사감정 득분에 자 이희언 외손 명종 기해생 자임중 호설학 취학어최영경우출입조식지문시제장원제공관차사도첨정선조 임진지란 소식의병 곡락동여郭再祐제인상여성원 북론방성 항소극언 척백령 소재유 백령지 설학소문록 인조 무진 졸 년칠십팔 원향
의미
이대기는 조선中期 문관兼武官으로, 명종기에 태어나 최영경과 조식에게 수학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낙동강 방어에 참여하고, 우수 등과 호응하였다. 북론 세력이 활발하던 시기에 강화 반대 상소를 올려 백령으로 유배된 바 있다. 저서로 《백령지》와 《설학소문록》이 있고, 인조 무진년에 78세로 사망하였다. 서원에 배향되었으나 아들 없이 딸 다섯만 두었다.
원문
李大期仟十二世孫軍資監正得蕡子李希顔外孫明宗辛亥生字任重號雪壑就學於崔永慶又出入曺植之門始除掌苑别提官止司導僉正宣祖壬辰之亂招集義兵截洛東與郭再祐諸人相與聲援北論方盛抗䟽極言謫白翎所著有白翎志雪壑謏聞錄仁祖戊辰卒年七十八院享[주:無子有五女]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대기 / 李大期, confidence=1.0
- person: 최영경 / 崔永慶, confidence=1.0
- person: 조식 / 曺植, confidence=1.0
- person: 郭再祐(궁재유) / 郭再祐, confidence=1.0
- place: 백령(백령도) / 白翎, confidence=1.0
- work: 백령지 / 白翎志, confidence=1.0
- work: 설학소문록 / 雪壑謏聞錄, confidence=1.0
- office: 군자감정 / 軍資監正, confidence=0.9
- office: 장원제공관 / 掌苑别提官, confidence=0.8
- office: 사도첨정 / 司導僉正, confidence=0.8
- term: 북론 / 北論, confidence=0.9
- term: 의병 / 義兵,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仟(전십이 또는 천)
- 得蕡(득분에 해당하는 인명)
- 抗䟽(항소, 상소를 의미하는 불확실 용어)
황혁정
- 기사 ID:
20037_017_015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59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7-24T07:31:53.87910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59
한글 번역
황혁정은 옥자의 아들이다. 명종 기해년에 태어나, 자는휘之, 호는 독石이다. 선조 기축년에 별시에서 1등으로 뽑혔고, 별시관 직임을 지내고 승지에 이르렀다. 문장은 가정에서 터득했고, 재기와 기개가 빼어났다. 이는 타고난 천성에 힘입은 바가 컸다. 광해군 임자년에 옥사가 일어나자 그 수사에 연루되어 고문而死했으며, 향년 62세였다. 인조 반정 후 특지의로 강화하여 이조판서에 추증하였다. [형제가 있었으니 문과에 급제한 아우 황奭은 아래를 참조하라] 손자 황상은곤后의 아들이며, 외손자는 남彦經이다. 외증손으로 장운翼의 사위가 있었으니, 임자년 옥사에 원통하게 억울하게 죽은 뒤持平으로 추증되었다. [현손 황璿은 아래를 참조하라. 오세손 황景源과 황昇源은 아래를 참조하라]
독음
황혁정이 옥자명종기해생자휘지호독석선조경신괴별시관지고승지문장득지가정이재기준율즉천득위다광해임자지옥사련고사년육십이인조반정후특증리판형제문과제실에서문자문과제외제휴하자견하손황상곤후자남경경영외손장운측서임자옥원사증집평기현손선견하오세손경원승원견하
의미
황혁정은 조선 명종기에 태어나 선조 때 별시에서 장원으로 합격하고 승지까지 오른官僚였다. 문장은 가정에서 익혔고 타고난 재기와 기개가 빼어났다. 광해군 치세인 임자년 옥사에 연루되어 고문으로 사망했으며 향년 62세였다. 인조 반정 후 대북파 숙청의 하나로 밝혀져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문과 급제한 아우 황奭, 손자 황상, 외손자 남경경, 외증손 장운측(임자년 옥사 피살 후持平에 추증) 등 가족 관계가 기재되어 있다.
원문
黃赫廷彧子明宗辛亥生字晦之號獨石宣祖庚辰魁别試官止承旨文章得之家庭而才氣俊逸則天得為多光海壬子之獄辭連栲死年六十二仁祖反正後特贈吏判[주:兄弟文科弟奭見下]孫裳坤厚子南彦經外孫張雲翼壻壬子獄冤死贈持平[주:玄孫璿見下五世孫景源昇源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황혁정 / 黃赫廷, confidence=0.98
- person: 황식 / 黃奭, confidence=0.95
- person: 황상 / 黃裳, confidence=0.95
- person: 남경경 / 南彦經, confidence=0.92
- person: 장운측 / 張雲翼, confidence=0.95
- person: 황선 / 黃璿, confidence=0.9
- person: 황경원 / 黃景源, confidence=0.88
- person: 황승원 / 黃昇源, confidence=0.88
- person: 황혁정의 아들(옥자) / 黃赫廷子, confidence=0.85
- term: 자(표자) 희지 / 字晦之, confidence=0.97
- term: 호 독석 / 號獨石, confidence=0.97
- term: 별시 장원 / 別試魁, confidence=0.93
- term: 승지 / 承旨, confidence=0.98
- term: 임자년 옥사(광해군 시대 옥사) / 壬子之獄, confidence=0.97
- term: 고문而死 / 栲死, confidence=0.97
- term: 인조 반정 / 仁祖反正, confidence=0.98
- term: 이조판서 / 吏判, confidence=0.98
- term: 집평(잡관 직급) / 持平, confidence=0.98
- term: 현손(4대손) / 玄孫, confidence=0.95
- term: 오세손(5대손) / 五世孫, confidence=0.95
- office: 별시관 / 別試官,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坤厚子(곤후자)
- 子南彦經(자남경경영으로 읽으나 단어 구분이 불확실)
문덕교
- 기사 ID:
20037_017_016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60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04:47:12.85029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60
한글 번역
문덕교는 개녕 출신이며, 자는 가화이고 호는 동호거이다. 함흥에서 선조 기유년에進士에 급제한 뒤 을유년에 명경과에 올라 벼슬은 형조좌문학에서 그쳤다. 문학적인 행실과 도의가 뛰어나 향里的人들이 그의 제사 지냈다.
독음
문덕교 개녕인 자 가화 호 동호거 함흥 선조 계유進士 을유등명경과 관지형좌문학생애칭향인조두지
의미
조선 선조 시대 인물 문덕교의的行履를 적은 기사로, 개녕 출신으로 함흥에서 급제하여 명경과에 오른 뒤 형조좌문학 벼슬에 이르렀으나 그 이상 진급하지 못하였다. 문학적인 인물로서 행실과 도의가 우수하여 향里的人들 사이에서 존경받았음을 보여준다.
원문
文德敎開寧人字可化號東湖居咸興宣祖癸酉進士乙酉登明經科官止刑佐似文學行誼稱郷人爼豆之
엔티티 후보
- person: 문덕교 / 文德敎, confidence=0.95
- place: 개녕 / 開寧, confidence=0.9
- place: 함흥 / 咸興, confidence=0.95
- place: 동호거 / 東湖居, confidence=0.85
- office: 형조좌문학 / 刑佐文學, confidence=0.75
- term: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0.95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0.95
- term: 조두 / 爼豆,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심우승
- 기사 ID:
20037_017_016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64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04:49:50.55782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64
한글 번역
심우승은 字를 달원이라 하고, 손文監司의 아들이다. 明宗代 신해년에 태어나 字는 士進이고, 호는 晩沙이다. 宣祖代 계유년에 태어나,慶辰년에 별시도에 합격하였다. 임진년에 서장관으로 재임하면서 鄭崑壽와 함께 상국에 원병을 요청하였으며, 그 진심이 中包胥에게 비유되었다. 돌아와서 調度使에 임명되었고, 임금의 명으로 시·서·화 三奇을 뽑을 때 우승과 함께 言官으로 거절을 만류하였다.嘉善郡伯에 나아가 임진년에 사망하니 향년 오십이세였다. 扈聖功二等을 추록하고 領相으로 증직하여 青溪府院君을 추증하였다.
독음
심우승 달원 손문감사잡자 명종 신해생 자사진 호 만사 선조 계유생 원인 경진 등별시 임진 서장관 여 정곤수 청원상국 혈성호휼 화인 비지 중포서 귀배조도사 상명 선 시서화 삼기 우승 여언관 지 가선기백 임진 졸년 오십이 추록호성공 이등 증영상 청구부원군
의미
심우승은 조선中期 文官으로, 서장관 시절 明나라의 원병 요청에 적극 동참하였으며, 赤誠을 바쳐 中包胥처럼 칭송받았다. 후에 調度使로 복귀하여 朝政에 관여하고, 임금의 시서화 三奇 선발에 참여하였다. 오십이세의 짧은 생애였지만 扈聖功臣으로 추존되어 青溪府院君에 추증된 충절의 관료이다.
원문
沈友勝達遠孫文監司銓子明宗辛亥生字士進號晩沙宣祖癸酉生貟庚辰登别試壬辰以書狀官與鄭崑壽請援上國血誠號籲華人比之中包胥歸拜調度使上命選詩書畫三奇友勝與言官止嘉善畿伯壬寅卒年五十二追錄扈聖功二等贈領相靑溪府院君[주:子詻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심우승 / 沈友勝, confidence=0.95
- person: 정곤수 / 鄭崑壽, confidence=0.95
- person: 중포서 / 中包胥, confidence=0.9
- term: 서장관 / 書狀官, confidence=0.95
- term: 조도사 / 調度使, confidence=0.95
- term: 별시 / 別試, confidence=0.9
- term: 삼기 / 三奇, confidence=0.85
- term: 호성功臣 / 扈聖功臣, confidence=0.9
- office: 가선군백 / 嘉善郡伯, confidence=0.9
- title: 청계부원군 / 靑溪府院君, confidence=0.95
- term: 자 / 字, confidence=0.95
- term: 호 / 號, confidence=0.95
- era: 명종 / 明宗, confidence=0.95
- era: 선조 / 宣祖,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貟(원인 또는 賓으로 추정)
- 言官止(참여 여부 및 해석)
- 等(추상된 표현)
이지
- 기사 ID:
20037_017_016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65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04:49:51.70514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65
한글 번역
이익은 효종과 인조의 증손으로, 사간원 벼슬을 지낸 죽담 유근의 아들이다. 주: 유회의 종자이다. 명종 기해년(1551)에 태어나 자는 중순이었다. 무과에 급제하여 수사(물使) 벼슬에 이르렀다. 광해군 갑인년(1614)에 흉악한 의견을 힘껏 물리치고 간당(奸黨)에게 모함당하여 투옥되었으며, 7일 동안 음식물 섭취 없이 굶어 죽었다. 향년 64세였다. 인조조에 형판으로 추증되고, 숙종조에 본향으로 돌아갔다.
독음
이익효종인조증손사간원죽담유근자(주지유회종자)명종기해생자중순등무과관수사광해갑인역배흉의위간당소오수계불식칠일이지년육십사인조조증형판숙종조전려
의미
이익(1551~1614)은 조선 왕실의 종친 출신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수사 벼슬까지 올랐다. 광해군 시대인 1614년 갑인년 환국 사건 당시 갑훈세력과 대립하여 흉恶한 의견을排斥하고奸당에게 모함당 투옥, 7일간 단식한 끝에 옥사한 인물이다. 인조와 숙종대에 명예가 회복되어 형판으로 추증받고 본향에 돌아갔다.
원문
李止孝宗仁曾孫司諌院竹潭惟謹子[주:惟誨從子]明宗辛亥生字仲純登武科官止水使光海甲寅力排凶議為奸黨所誣收繋不食七日而卒年六十四仁祖朝贈刑判肅宗朝旋閭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익 / 李止, confidence=0.95
- person: 효종 / 孝宗, confidence=0.95
- person: 인조 / 仁祖, confidence=0.95
- person: 명종 / 明宗, confidence=0.95
- person: 광해군 / 光海君, confidence=0.95
- person: 죽담 / 竹潭, confidence=0.9
- person: 유근 / 惟謹, confidence=0.9
- office: 사간원 / 司諫院, confidence=0.95
- office: 수사 / 水使, confidence=0.9
- office: 형판 / 刑判, confidence=0.85
- term: 무과 / 武科, confidence=0.95
- term: 간당 / 奸黨, confidence=0.85
- term: 흉의 / 凶議,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旋閭(전려) - 구체적 의미 확인 필요, 본향 귀환 또는 재임명仪式로 추정
이형욱
- 기사 ID:
20037_017_016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66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3T23:05:17.78296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66
한글 번역
이형욱은 경녕군 비(裶)의 5대손이다. 아버지는 홍자수광이며, 같은 종족의 형수가 있다. 명종 경해년에 태어나, 글자를 덕무라 하고 호를 난호라 하였다. 선조 갑오년에 별시(별도 시험)에 합격하여 대간 벼슬을 두루 역임하였고, 관품은 자헌에 이르렀다. 정기사에 들어갔다. 인조 경미년에 졸하였으며, 향년 81세였다. 아들의 이름은 취이다.
독음
이형욱 경녕군 비 태종자 오세손 홍자수광 족형 명종 경해생 자 덕무 호 난호 선조 갑오등 별시 역사 대간 품계 자헌 정기사 입 인조 경미 졸 년 팔십일 자 취
의미
조선 시대 관리 이형욱의生平을 적은 기사이다. 태종의 아들 경녕군 비의 5대손으로 명종 경해년(1549)에 태어나 선조 갑오년(1594) 별시에 합격하여 대간 벼슬을 오르며 관리 생활을 하였고, 품계 자헌에 이르렀다. 이후 정기사에 참여하여 인조 경미년(1629) 81세로 사망하였다. 호는 난호, 자는 덕무이고 아들 취가 있다.
원문
李馨郁敬寧君裶[주:太宗子]五世孫洪子睟光族兄明宗辛亥生字德懋號蘭臯宣祖甲午登别試歴大諌階止資憲入耆社仁祖辛未卒年八十一子熽[주: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이형욱 / 李馨郁, confidence=1.0
- person: 경녕군 비 / 裶, confidence=1.0
- person: 태종 / 太宗, confidence=1.0
- person: 홍자수광 / 洪子睟光, confidence=1.0
- person: 명종 / 明宗, confidence=1.0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1.0
- person: 인조 / 仁祖, confidence=1.0
- person: 취 / 熽, confidence=1.0
- term: 별시(별도 시험) / 別試, confidence=0.95
- term: 대간 / 大諫, confidence=0.95
- term: 자헌 / 資憲, confidence=1.0
- term: 정기사 / 耆社, confidence=0.9
- term: 5대손 / 五世孫, confidence=1.0
- term: 족형(같은 종족의 형) / 族兄, confidence=0.85
- term: 자(아호의 일종) / 字, confidence=1.0
- term: 호 / 號,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族兄은 이 문맥에서 족형(같은 종파의 형) 또는 종형(같은 종족의 형) 모두 가능하며,文中에서는洪子睟光과의 관계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임
- 洪子睟光은 아버지 이름으로 해석하나洪字가 성인지 확인 필요
이충
- 기사 ID:
20037_017_016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67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04:50:00.41308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67
한글 번역
이충은 11대째 되는 손자로, 문목사 소혜의 아들 경기의 종질로서, 명종 신해년에 태어나,字는 물기, 호는 이각선인이라 하였다. 묘荐으로 들어가 벼슬길에 나아갔으며, 벼슬은 군자감 부정에 그쳤다. 광해군 갑인년에 세상을 떠나 여든네 살이었다. 시집이 남아 있다. 아들 언신,字는 정이, 호는 백석선인이다. 광해군 정사년에 선교로 부임하면서 즉시 폐모를 물리치고 떠날 곳을 물으며 은거하여 용인에 이르렀다.
독음
이충가仟십일세손 문목사 소혜의 아들 경기를 종질 명종 신해년에 나서 자는물기 호는 이각선인 관에서 묘천하여 입사하고 벼슬이 군자감 부정에 머물렀으며 광해 갑인년에 사망하고 나이가 六십사세이었으며 시집이 있다 아들 언신 자는 정이 호는 백석선인 광해 정사에 선교로 나아가 즉시 폐모를 물리치고 떠남겨 은거하니 용인에 이르니라
의미
조선后期的的人物 李忠의生平을 수록한 기사이다. 文牧使 廔禧의 아들 明宗代에 태어났으며, 軍資監副正까지 관직에 올랐고, 64세에 사망했다. 시집이 있었다. 아들 李言慎은 호가 白石散人으로, 광해군대에 선교 벼슬에 올라 폐모 논란이 있던 인물이었으나 곧바로 벼슬을 버리고 용인에 은거하였다.
원문
李忠可仟十一世孫文牧使廔禧子慶禥從姪明宗辛亥生字勿欺號棃各㪚人以廟薦入仕官止軍資監副正光海甲寅卒年六十四有詩集子言慎字靜而號白石㪚人光海丁巳以宣教卽疏斥廢母遯居龍仁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충 / 李忠, confidence=1.0
- person: 이언신 / 李言愼, confidence=1.0
- office: 문목사 / 文牧使, confidence=0.9
- office: 군자감 부정 / 軍資監副正, confidence=0.9
- place: 용인 / 龍仁, confidence=1.0
- work: 시집 / 詩集, confidence=1.0
- term: 선인(散人) / 㪚人, confidence=0.8
- person: 소혜 / 廔禧, confidence=0.9
- person: 경기 / 慶禥,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 可仟十一世孫(가仟십일세손) - 가문의 정확한 계보 표기 여부
- 㪚人(선인) - 원문 㪚는,散·撰 오류 가능성
- 棃各㪚人(이각선인) - ‘棃各 合字’ 가능성, 㪚의 정확 뜻
여대로
- 기사 ID:
20037_017_016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68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3T23:05:12.25108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68
한글 번역
여대로는 성주 출신이다. 학유 응구의 아들이며, 자는 위소, 호는 감호이다. 금정에 거처 살았다. 선조 임오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계미년에 별시에서 급제하였다. 관직은 군수에서 그쳤다. 임진년에 박사 서윤으로서 군사를 징집하여 토벌을 도왔으며, 금면과 함께 지례 금강산의 적들을 협공으로 공격하였다. 그 뒤에 적에게 습격받아 힘써 싸우다 전사하였다.
독음
여대로 성주인 학유응구之子 자는위소 호는감호。金山에 거주。선조임오년 진사。계미년 별시에 등극。관직은 군수에 그쳤다。임진년에 박사로聚軍하여助討하였다。금면과 함께 知禮金山의賊을 협격하였다。그 뒤에賊에게 습격받아力戰하여 죽었다。
의미
조선 선조 때 학자 여대로의 행적을 기록한 기사이다. 성주 출신으로 호는 감호이며, 선조 연간 진사와 별시에 합격하여 군수까지 올랐으나 관직이 높지 못하였다. 임진왜란 때 박사로 군사를 모아 토색에 참여하고, 금면과 함께 금강산의 적을 협공하였으나, 이후 적의 습격을 받아 전사하였다. 학관으로서 왜군 토벌에 참여하고 죽은中层 관료의 사례이다.
원문
呂大老星州人學諭應龜子字渭叟號鑑湖居金山宣祖壬午進士癸未登别試官止郡守壬辰以博士聚軍助討與金沔恊撃知禮金山之賊其後為賊所襲力戰死
엔티티 후보
- person: 여대로 / 呂大老, confidence=0.98
- place: 성주 / 星州, confidence=0.97
- person: 응구 / 應龜, confidence=0.95
- person: 금면 / 金沔, confidence=0.93
- place: 금강산 / 金山, confidence=0.96
- term: 박사 / 博士, confidence=0.85
- term: 군수 / 郡守, confidence=0.95
- term: 별시 / 別試, confidence=0.95
- term: 임진년(1592) / 壬辰, confidence=0.95
- term: 임오년(1598) / 壬午, confidence=0.95
- term: 계미년(1599) / 癸未,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知禮金山의 적 - 지례 금강산 지역을 공략하던 왜군이나 산적류였을 가능성을 모두 포함하는 표현으로, 구체적 정체가 불확실함
조탁한
- 기사 ID:
20037_017_016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69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04:50:26.68620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69
한글 번역
조탁한은 질손의 아들이며, 아버지는 몽정이다. 명종 즉위년(임자년)에 태어나 字는 대이, 호는 이양당이다. 중진사에 급제하여 벼슬을 했으나 부율 벼슬에 이르러 그만두었고, 선조 때 벼슬하지 않았다. 기해년에 별시에서 장원을 했다. 경기도 관찰사를 역임하고 벼슬이 낮은 계급의 판서까지 올랐다. 광해군 즉위년(신유년)에 사망하여 향년 70세에 이르렀고, 증영상에 추증되었다. 세 형제 모두 문과에 급제하여 동생 조탁(倜)은 정랑, 조길(佶)은 정랑 벼슬을 했다. 아들 조명훈의业绩은 아래를 참고하라.
독음
조탁한 질손 증영상 몽정 아들 명종 임자생 자 대이호 이양당 중진사 벼슬 지止 부율 불사 선조 기해 괴별시력 기백 관지 약간 판단 광해 신유 졸 년 칠십 증영상
의미
조선中期의 文臣 조탁한의 行蹟을 적은 졸기이다. 명종 임자년에 태어나 중진사에 합격하고 부율 벼슬을 지냈으나 선조 때는 벼슬을 그만두었다. 이후 기해년 별시에서 장원하고 경기도 관찰사를 역임한 뒤 낮은 등급의 판서까지 벼슬했다. 광해군 치하인 신유년에 향년 70세로 사망하여 증영상에 추증되었다. 세 형제 모두 文科에 급제하여 동생 조탁과 조길은 정랑 벼슬을 했다는 점이 特記할 만하다.
원문
曺倬漢弼孫贈領相夢禎子明宗壬子生字大而號二養堂中進士仕止副率不仕宣祖己亥魁别試歴畿伯官止若判光海辛酉卒年七十贈領相[주:三兄弟文科弟倜正郞佶正郞子明勗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조탁한 / 曺倬漢, confidence=1.0
- person: 질손 / 弼孫, confidence=0.9
- person: 몽정 / 夢禎, confidence=0.95
- person: 명종 / 明宗, confidence=1.0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1.0
- person: 광해군 / 光海, confidence=1.0
- person: 조탁 / 倜, confidence=0.9
- person: 조길 / 佶, confidence=0.9
- office: 영상 / 領相, confidence=1.0
- office: 부율 / 副率, confidence=1.0
- office: 정랑 / 正郞, confidence=0.95
- office: 판서 / 判書, confidence=1.0
- place: 경기도관찰사 / 畿伯, confidence=0.9
- term: 중진사 / 中進士, confidence=1.0
- term: 별시 / 別試,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弼孫은 선조나 조상一代로 해석할 수 있음
- 官止若判의 若判이 정확한 직위 명칭인지 불확실
장윤
- 기사 ID:
20037_017_017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70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3T23:05:27.79931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70
한글 번역
장윤은 목천 사람이다. 선전관 응익의 아들이며, 형의 이름은 자명이다. 명종 임자년(1552)에 태어나 字는 명보이다. 선조 임오년(1582)에 무과에 급제하여 북도 변장(변방 장수)에 제수되었다. 신묘년(1591)에 왜의 난이 이미 일어나자 조정은 윤의 충성과 용기를 높이 평가하여 특별히 사천현감에 임명하였다. 임진년(1592)에는 좌의병 부장이 되었다. 전후 수십 전투에서 적의 목을 많이 베었다. 의병을 일으킨 김천익, 본도 병사 최경회, 충청도 병사 황진이 모여들어 진군하자, 황진이 대장이 되고 장윤은 그 부장이 되었다. 윤은 이어서 진주 목사가 되어 김해 부사 이종인과 서로 왕래하며 구원하고 적을 공격하였다. 적이 삼중으로 포위하고 철환(철알)이 비 오듯 쏟아졌다. 황진이 총알에 맞아 죽자, 장윤이 대장을 대행하여 대장으로서 힘써 싸웠다. 여덟 밤낮 동안 맹렬히 싸우다가, 갑자기 날아드는 총알에 맞아 죽으니 나이 사십일이었다. 사후에 병참에 추증되었다.
독음
장윤 목천인 선전관 응익자 명종 임자생 자 명보 선조 임오등 무과 수 북도 변장 신묘 왜혐 기폐 조정 이윤 충용 특별히 사천현감 배임 진辰 좌의병 부장 전후 수십전 전투에서 참수한 적의 목을 많이 베었으며, 츤의를 시행한 使金千鎰, 본도 병사 최경회, 충청도 병사 황진이 와서 회합하고 진군하여 대장이 되어 윤은 그 부장이 되었다. 그때 계속하여 진주 목사가 되었고, 김해 부사 이종인과 왕래하며 서로 구원하였다. 적이 삼중으로 포위하고 철환이 비 오듯 하였는데, 진이 환중에 맞아 죽자 윤이 대장이 되어 대장으로서 힘써 싸웠다. 여덟 밤낮 동안 힘써 싸우다가 갑자기 날아드는 환에 맞아 죽으니 나이 사십일, 죽은 후 병참에 추증되었다.
의미
장윤(1552~1592)은 선조 연간 무과에 급제하여 왜란기에 의병 부장으로 활약한 장수이다. 왜란 초기 사천현감으로 부임하여 왜군과 싸웠고, 좌의병 부장이 되어 김천익, 최경회, 황진 등과 연합군을 구성하였다. 황진이 전사한 후 대장을 이어받아 진주에서 여덟 밤낮간 철환이 비 오듯 쏟아지는 가혹한 포위 속에서 맹렬히 싸웠으나, 날아드는 총알에 맞아 순직하였다. 향년 사십일, 사후 병참으로 추증되었다.
원문
張潤木川人宣傳官應翼子明宗壬子生字明甫宣祖壬午登武科授北道邊将辛卯倭釁已啓朝廷以潤忠勇特拜泗川縣監壬辰為左義兵副將前後數十戰斬馘甚多倡義使金千鎰本道兵使崔慶會忠淸兵使黃進來會推進為大将潤爲其副仍為晋州牧使與金海府使李宗仁徃來相救賊圍三匝鐵丸如雨進中丸而死潤代為大將力戰八晝夜忽為飛丸所中而卒年四十一贈兵叅
엔티티 후보
- person: 장윤 / 張潤, confidence=1.0
- person: 응익 / 應翼, confidence=1.0
- person: 자명 / 子明, confidence=1.0
- person: 김천익 / 金千鎰, confidence=1.0
- person: 최경회 / 崔慶會, confidence=1.0
- person: 황진 / 黃進, confidence=1.0
- person: 이종인 / 李宗仁, confidence=1.0
- place: 목천 / 木川, confidence=1.0
- place: 북도 / 北道, confidence=0.9
- place: 사천 / 泗川, confidence=1.0
- place: 진주 / 晋州, confidence=1.0
- place: 김해 / 金海, confidence=1.0
- office: 선전관 / 宣傳官, confidence=1.0
- office: 변장 / 邊将, confidence=1.0
- office: 의병 부장 / 義兵副將, confidence=1.0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1.0
- office: 목사 / 牧使, confidence=1.0
- office: 병참 / 兵叅, confidence=1.0
- term: 극(적의 귀를 베어 참수) / 馘, confidence=0.9
- term: 철환(철알) / 鐵丸, confidence=0.9
- term: 비환(날아드는 총알) / 飛丸, confidence=0.9
- term: 삼중 포위 / 三匝, confidence=0.9
- term: 층의 使(의병을 일으킨 자) / 倡義使,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층의 使(倡義使)의 관직명 여부 및 정확한 직위 등급)
- 삼匝의 정확한 포위 형태와 전술적 의미
강복남
- 기사 ID:
20037_017_017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73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3T23:05:34.18058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73
한글 번역
강복남은 희맹의 6세손이다. 검직이었으며, 임란에 순절한 공으로 증참판에 추증되었다. 아들의 이름은 명종으로, 임자년에 태어났다. 자는 수상, 호는 백절이다. 선조조에 무과에 급제하여, 임진년에 수문장이 되었다. 두 아우와 함께 아버지를 따라 출전하였는데, 아버지가 전사하자 낮고 밤으로 울부짖었다. 이순신의 휘하에서 수영으로 들어가 연속으로 싸우며 적을 사격하여 열 손가락이 모두 끊어졌다. 무신년에 세상을 떠나며 향년 57세였고, 진양군에 추증되어 시호는 충毅였다.
독음
강복남 희맹 육세손 검사주임란순절증참판 자 명종 임자생 자 수상 호 백절 선조조 등무과 임진 이수문장이아니 이제 출전 부死晝夜호곡 이순신 입수영 연전사적십지진절 무신졸년 오십칠 증진양군 시충毅
의미
조선 선조조 무인 강복남의 평전이다. 희맹의 6세손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임진왜란 당시 수문장이 되었고, 아버지가 전사한 뒤에도 이순신과 함께 수영에서連戦勇敢히 싸웠으나 열 손가락이 모두 끊어지는 중상을 입었다. 이후 무신년에 사망하여 진양군에 추증되고 충毅의 시호를 받았다.
원문
姜福男希孟六世孫檢[주:壬亂殉節贈參判]子明宗壬子生字受堯號栢節宣祖朝登武科壬辰以守門將與二弟從父出戰父死晝夜號哭從李舜臣入水營連戰射賊十指盡絶戊申卒年五十七贈晋陽君謚忠毅
엔티티 후보
- person: 강복남 / 姜福男, confidence=1.0
- person: 강희맹 / 姜希孟, confidence=1.0
- person: 이순신 / 李舜臣, confidence=1.0
- place: 수영 / 水營, confidence=1.0
- office: 수문장 / 守門將, confidence=1.0
- office: 참판 / 參判, confidence=1.0
- place: 진양 / 晋陽, confidence=1.0
- term: 임란(임진왜란) / 壬亂, confidence=1.0
- term: 무과 / 武科, confidence=1.0
- term: 순절 / 殉節,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檢字의 정확한 직품 위치 파악
- 수영의 구체적 지리적 위치
이광정
- 기사 ID:
20037_017_017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74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3T23:05:43.47700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74
한글 번역
이광정은 연안 사람으로, 㴻의 아들 귀령의 7세 손이다. 명종 임자년에 태어나 허潜의 사위가 되었다. 자는 덕휘, 호는 해곡이다. 선조 계유년에 사마에 합격하고, 경인년에教官으로 증광에 합격하여翰林院에 근무하였다. 임진년에 임금을 수행하여 용만(龍灣)에 호행하고, 정유년에 심부사의 보좌를 맡았다. 무술년에 마提督과 함께 위산에서 출정하여功을 세우고 2등으로 책록되어 연원부원군에 봉해졌다. 청백리 선관에 뽑혔으며,官止는輔國吏判이고 다시卜相하여耆社에 들어갔다. 인조 기묘년에 사망하여 향년 78세이며, 시호는忠肅을 하사받았다. 유교를 고수하여不接受하였다.
독음
이광정 연안인 㴻자귀령종칠세손 명종임자생 허잠서 자덕휘호해곡 선조계유사마 경인이교관등증광력한림 임진호겁용만 정유빈심부사 종령표 무술마제독우위산 책호성공이등봉연원부원군 선청백리관지보국리반 재차복상입기사 인조기사 졸칠십팔 척시충숙 유교불수
의미
조선后期的文武官인 이광정은 명종 임자년(1522년)에 태어나 인조 기묘년(1629년)에 향년 78세로 사망하였다. 선조 연간에 사마에 합격하고壬辰乱(임진왜란) 때 용만에서 임금을 호위하였으며, 정유乱 때 심부사 보좌로 출정하고 위산 전투에 참여하여 공을 세워 연원부원군에 봉해졌다. 清白吏로 선발되어 보국직에 이르렀으며,卜相하여耆社에 들어갔다. 충숙 시호를 받았다.
원문
李光庭延安人㴻子貴齡從七世孫明宗壬子生許潜婿字德輝號海臯宣祖癸酉司馬庚寅以教官登增廣歴翰林壬辰扈駕龍灣丁酉儐沈副使從領表戊戌随麻提督于蔚山䇿扈聖功二等封延原府院君選淸白吏官止輔國吏判再次卜相入耆社仁祖己巳卒年七十八賜謚忠肅以遺教不受[주:子袨禂見下兄弟文科弟昌庭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이광정 / 李光庭, confidence=1.0
- place: 연안 / 延安, confidence=1.0
- person: 허잠 / 許潜, confidence=1.0
- term: 자 덕휘 / 字德輝, confidence=1.0
- term: 호 해곡 / 號海臯, confidence=1.0
- place: 용만 / 龍灣, confidence=1.0
- place: 위산 / 蔚山, confidence=1.0
- title: 연원부원군 / 延原府院君, confidence=1.0
- title: 보국리반 / 輔國吏判, confidence=0.9
- term: 기사 / 耆社, confidence=1.0
- title: 충숙 / 忠肅, confidence=1.0
- term: 청백리 / 淸白吏, confidence=1.0
- person: 마제독 / 麻提督, confidence=0.9
- person: 심부사 / 沈副使,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강수남
- 기사 ID:
20037_017_017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76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3T23:05:53.65604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76
한글 번역
강수남은 강회중의 6세손으로, 강이숙의 아들이 삼촌인 进사(강进士)의 양자가 되었다. 호는 해곡이다. 명종 임자년에 태어나 字는 인소이며, 조식의 문인이다. 효도와 우정을 깊이 닦고 문장에 뛰어났다. 선조 경신년에 별시 시험에 합격했으나, 당권을 건드려 화를 불러 양성 군수로 나갔다가 正郞에서 그쳤다. 임진란이 일어나자 강봉수와 함께 沈岱의 종사가 되어朔寧 전투에서 싸웠다. 사십한 살로 세상을 떠났으며, 추증하여 都承旨가 되었고 다시 吏叅을 더赠했으며, 다시 吏判을 더赠했으며, 시호는 忠烈이다. 창렬堂의 비문에는 이르길, 주인이 왕사를 위해 이미 죽었으니 종이 어찌 홀로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함께 안고 있어 함께 죽임을 당했다 하니, 명을 내려 그 가문을 회복시켰다
독음
강수남 회중 육세손 이숙자 위숙부 진사호 해곡。明종 임자년생 자 인소 조식 문인。笃효우 부사조 선조 경신년 답별시。忤당䟯 출위 양성 관지 정랑。임진란 강봉수 동위 심대 종사朔寧전쟁。年 사십일 증 도승지 가증 이후 가증 이참 가증 이패 시호 충열。창렬 문구 노검산왈 주기사於왕사 노긔忍 독활 상보지遇해 명복기 가족
의미
조선 명종~선조 연간에 활동한 文人 장수 강수남의略傳이다. 문장과 효행으로 알려졌으나, 선조 연간 별시 시험에 합격했으나 당권의 利弊를 건드려 벼슬에서 밀려났다. 임진란 때 同族인 강봉수,上司인沈岱의 명으로朔宁 전투에 참여하여 마흔한 살에 전사했다.死后 추증되어 至都承旨에 이르렀으며, 시호는忠烈이다.文中 삽입된 비문의 내용으로, 주인을 위해 함께 죽은 충절한 종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원문
姜壽男淮仲六世孫以璹子為叔父進士號海谷瑞后明宗壬子生字仁叟曺植門人篤孝友富詞藻宣祖庚辰登别試忤當䟯出為陽城官止正郞壬辰亂與姜鳳壽同爲沈岱從事狥于朔寧之戰年四十一贈都承旨加贈吏叅加贈吏判謚忠烈㫌閭奴檢山曰主旣死於王事奴豈忍獨活相抱持遇害命復其家
엔티티 후보
- person: 강수남 / 姜壽男, confidence=1.0
- person: 강회중 / 淮仲, confidence=1.0
- person: 강봉수 / 姜鳳壽, confidence=1.0
- person: 심대 / 沈岱, confidence=1.0
- person: 조식 / 曹植, confidence=1.0
- place: 양성 / 陽城, confidence=1.0
- place: 삭녕 / 朔寧, confidence=1.0
- office: 도승지 / 都承旨, confidence=1.0
- office: 정랑 / 正郞, confidence=1.0
- office: 이참 / 吏參, confidence=1.0
- office: 이패 / 吏判, confidence=1.0
- term: 별시 / 別試, confidence=1.0
- term: 임진란 / 壬辰亂, confidence=1.0
- term: 충열 / 忠烈,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민인백
- 기사 ID:
20037_017_017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77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3T23:06:21.15659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77
한글 번역
민인백은 여흥 사람으로, 음부정에 보임되었다. 사권자의 아들이며 충원 종가의 6세손이다. 명종 임자년에 태어났고, 자는 백춘, 호는 대천이다. 성곤의 문인이었으며, 선조 계유년에 진사에 급제하고 갑신년 별시에서 장원으로 합격했다. 문장이 있고 행실이 낙탁하여 세상과 잘 맞지 않았으므로 출세하지 못했다. 기축년에 진안군수가 되어汝立을 잡았고, 예의(관직)에 오르고 단평의 난정을 평정한 공으로 2등을 기록하여 여양군에 봉해졌다. 벼슬은 知中樞에서 그쳤으며, 노사(노인社团)에 들어갔다. 인조 병인년에 세상을 떠나享年 75세, 좌찬성에 추증되고謚號는景靖이었다. [주: 아들 항은 아래를 볼 것] 조카 반은 무도정에 보임되었고, 인질은 삼봉 등의 수아이,科挙에參奉으로 응시하여 무과에 올랐다. 벼슬은 수사(물使)에서 그쳤으며, 소현을 따라 심양에 갔다.
독음
민인백여흥인음부정사권자충원종육세손명종임자생자백춘호대천성곤문인선조계유진사고신별시급제유문행낙탁불협회세부득통현사기축이진안군수捕汝立배예의단평난공이등봉여양군관지知中樞입뇨사인조병인졸년칠십오증좌찬성謚景靖[주:자항견하]종자반음무도정인질자이삼봉등수과관지수사배소현입심양
의미
민인백(1488-1562)은 조선 시대 문신으로, 충원 종가 6세손이다. 선조 연간 진사에 합격하고 갑신년 별시에서 장원으로 급제했으나 낙탁한 성격으로 세상과 잘 맞지 않아 출세가 더뎠다. 뒤에 진안군수가 되어 반란을 평정하고 공을 세워 여양군에 봉해졌으며, 벼슬은 知中樞에서 그쳤다. 인조 때 사망하여 좌찬성에 추증되고景靖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조카 인질은 무과에 합격하여 수사가 되었고, 소현세자와 함께 심양에 끌려갔다.
원문
閔仁伯驪興人䕃副正思權子冲源從六世孫明宗壬子生字伯春號苔泉成渾門人宣祖癸酉進士甲申魁别試有文行落拓不諧於世不得通顯仕己丑以鎭安郡守捕汝立拜禮議丹平難功二等封驪陽君官止知中樞入耆社仁祖丙寅卒年七十五贈左賛成謚景靖[주:子垶見下]從子墡䕃武都正仁佶子以叅奉登武科官止水使陪昭顯入瀋陽
엔티티 후보
- person: 민인백 / 閔仁伯, confidence=1.0
- person: 사권자 / 思權子, confidence=1.0
- person: 여립 / 汝立, confidence=0.9
- person: 자항 / 子垶, confidence=0.9
- person: 종자반 / 從子墡, confidence=0.9
- person: 인질 / 仁佶, confidence=0.9
- person: 소현 / 昭顯, confidence=1.0
- place: 여흥 / 驪興, confidence=1.0
- place: 진안 / 鎭安, confidence=1.0
- place: 여양 / 驪陽, confidence=1.0
- place: 심양 / 瀋陽, confidence=1.0
- office: 음부정 / 䕃副正, confidence=0.9
- office: 지중추 / 知中樞, confidence=0.9
- office: 좌찬성 / 左賛成, confidence=0.9
- office: 군수 / 郡守, confidence=1.0
- office: 예의 / 禮議, confidence=0.8
- office: 수사 / 水使, confidence=0.9
- office: 무도정 / 武都正, confidence=0.8
- term: 낙탁 / 落拓, confidence=0.9
- term: 뇨사 / 耆社,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유영순
- 기사 ID:
20037_017_017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79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6T21:35:43.21681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79
한글 번역
유영순은 증손(曾孫)인 음부사(蔭府使) 규(珽)의 아들 영경(永慶)의 재종제(再從弟)이다. 명종 때 임자년에 태어나字는 순지(詢之)이고, 호는 북천(北川)이며 두峰(斗峯)과 송간(松澗)으로도 불렸다. 선조 때 계유년에 태어나 기축년에 명경과(明經科)에 급제하여翰林院과 삼사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고, 끝으로 호삼참(戶叅)에 이르렀다. 인조 임신년에 사망하여 향년 81세였다. 형 유금(永謹)은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 시강을 지냈다.
독음
유영순 참증손 음부사 규자 영경 재종제 명종 임자생 자 순지 호 북천 우두봉 우송간 선조 계유생 기축년 명경과 급제력翰林 삼사 관 지호참 인조 임신 졸년 팔십일
의미
조선中期 文臣 유영순(1512~1632)의略傳이다. 明宗 연간에 태어나宣祖 연간에 明經科에 급제하여翰林院과 삼사 등 중앙 관직을 두루 거치며 끝으로 戶叅에 이르렀다. 향년 81세로 사망했다. 형 유금도 文科出身으로 사간원 시강을 역임했다. 생몰년이 역대 왕의 재위와 대비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원문 전사의 정확성에 검토가 필요하다.
원문
柳永詢斬曾孫䕃府使珽子永慶再從弟明宗壬子生字詢之號北川又斗峯又松澗宣祖癸酉生貟己卯登明經科歴翰林三司官止戶叅仁祖壬申卒年八十一[주:兄弟文科兄永謹司諫]
엔티티 후보
- person: 유영순 / 柳永詢, confidence=0.95
- person: 영경 / 永慶, confidence=0.85
- person: 유금 / 永謹, confidence=0.95
- person: 규 / 珽, confidence=0.85
- office: 음부사 / 蔭府使, confidence=0.75
- office: 명경과 / 明經科, confidence=0.95
- office: 翰林원 / 翰林, confidence=0.95
- office: 삼사 / 三司, confidence=0.95
- office: 호삼참 / 戶叅, confidence=0.9
- office: 시강 / 司諫, confidence=0.95
- term: 재종제 / 再從弟, confidence=0.95
- term: 증손 / 曾孫, confidence=0.95
- term: 자 / 字, confidence=0.95
- term: 호 / 號,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䕃府使(蔭府使 오기로 추정)
- 珽(珽 또는 班의 오기로 추정)
- 宣祖(원문 해독 불확실)
- 斬曾孫(전승손 또는 오기)
문경호
- 기사 ID:
20037_017_018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81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6T21:35:25.11464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81
한글 번역
문경호는 남평 사람이다. 호는 역양이다. 중생원(과거)에 합격하고 관직은 탐방에서 그쳤다. 한번은 염홍의 명색 좋은 글을 따라다니며 그릇된 소문을 퍼뜨렸다가 화를 입었다. 선조 임진년에 郭再祐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독음
문경호 남평인 호 역양 중생원 관지 탐방 당유 염홍지 명서 뇌성 혼 선조 임진 여 郭再祐 체결
의미
문경호는 조선 시대 남평 지역 출신으로 호는 역양이었다. 과거에 합격하여 중생원의 자격을 얻었으나 관직은 탐방에 그쳤다. 생전에 염홍이라는 인사의 글에 기대어 잘못된 소문을 퍼뜨렸다가 화를 입은 일이 있었다. 선조 임진년(1592년)에는 郭再祐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왜군에 저항한 인물이다.
원문
文景虎南平人號嶧陽中生貟官止察訪嘗遊仁弘之明疏誣成渾宣祖壬辰與郭再祐倡義
엔티티 후보
- person: 문경호 / 文景虎, confidence=1.0
- place: 남평 / 南平, confidence=1.0
- place: 역양 / 嶧陽, confidence=0.9
- office: 중생원 / 中生貟, confidence=0.8
- office: 탐방 / 察訪, confidence=0.9
- person: 곽재우 / 郭再祐, confidence=1.0
- person: 염홍 / 仁弘, confidence=0.8
- year: 임진 / 壬辰,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中生貟은 중생원과 중시원 사이 불확실, 明疏의 구체적 의미 불분명, 成渾의 정확한 해석 불확실
이치
- 기사 ID:
20037_017_018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82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04:52:40.68992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82
한글 번역
이칙은 현손 이성손의 현손이다. 여러 번 벼슬하여 사과에 이르렀으며, 관직이 정지에 이르렀다. 호는 귀각헌이었으니, 유실한 선비로서 벼슬은 판관에 그쳤다. 선조 임진년의 난리에 백의 종사[복사와 같은 임시 직위]로 종군하였고, 천장 이여송의 아래에서 장巡처럼 여러 차례 싸웠다. 선무후에 종공한 공로로 아들 덕언을 두었다. 덕언의 자는 외지, 호는 언포이며, 정철의 문인이다. 스물한 살에 학행으로 천거되어 세마에 오르렸으나 벼슬에 오르지 못하고, 관직은 함여 판관에 이르렀다. 오십구세에 죽어 좌승지를 추증했다. 덕언의 손자 동형, 자는 춘경, 호는 사우당이며, 송시열의 문인이다. 인사가 있되 벼슬길은 서윤에 이르렀고, 품계는 가선至巧增이며, 뇌참을 추증했다.
독음
이칙현손현손인사과승무자호귀각헌이유탈관지판관선조임진란위백의종사천장이여송비제장巡참선무후종공자덕언자유외지지호언포정철문인년이십일일학행천제세마불숙관지함여판관년오십구세 졸증좌승지덕언손동형字符春卿號사우당송시열문인인사치지서윤계가선증뇌참
의미
이 기사는 조선后期的 관료 이씨 가문의 계보와 관직 경험을 수록한 것이다. 이칙은 선조 임진년에 백의 종사로 참전하여 천장 이여송 아래서 싸웠고, 덕언·동형 등 후손들은 학행으로 발탁되어 벼슬길에 올랐다. 특히 동형은 송시열의 문인으로서 사우당을 호로 삼았다. 가문 내 모든 구성원이 벼슬이 높지 못하고 중도에 그쳤거나 낮은 품계에 머문 점이 특징이다.
원문
李錙賢孫玄孫䕃司果承武子號龜殼軒以遺逸官止判官宣祖壬辰亂為白衣從事天將李如松比諸張巡叅宣武厚從功子德言字畏之號言圃鄭澈門人年二十一以學行薦除洗馬不孰官止咸與判官年五十九卒贈左承旨德言孫東亨字春卿號四友堂宋時烈門人䕃仕止庶尹階嘉善贈吏參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칙 / 李錙, confidence=1.0
- person: 이여송 / 李如松, confidence=1.0
- person: 덕언 / 德言, confidence=1.0
- person: 외지 / 畏之, confidence=1.0
- person: 언포 / 言圃, confidence=1.0
- person: 정철 / 鄭澈, confidence=1.0
- person: 동형 / 東亨, confidence=1.0
- person: 춘경 / 春卿, confidence=1.0
- person: 사우당 / 四友堂, confidence=1.0
- person: 송시열 / 宋時烈, confidence=1.0
- person: 장巡 / 張巡, confidence=0.9
- office: 판관 / 判官, confidence=1.0
- office: 사과 / 司果, confidence=1.0
- office: 백의종사 / 白衣從事, confidence=1.0
- office: 세마 / 洗馬, confidence=1.0
- office: 좌승지 / 左承旨, confidence=1.0
- office: 함여판관 / 咸與判官, confidence=0.8
- office: 뇌참 / 吏參, confidence=0.8
- event: 선조 임진년의 난리 / 宣祖壬辰亂, confidence=1.0
- place: 현손(後孫) / 玄孫,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함여(咸與)
- 뇌참(吏參)
- 가선(嘉善)
- 불숙(不孰)
- 印仕止
홍난상
- 기사 ID:
20037_017_018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85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3T23:06:53.74403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85
한글 번역
홍난상은 여형제의 아우이며, 자는 군서, 호는 습지이다. 문순의 문인이고, 또한 권비的门下에서도 배웠으며, 벼슬은 형정에 이르렀다. 문장과 덕행으로 이름을 알렸고, 72세에 졸하였다. 아들 임이 귀해져 영상의 직을 증赠받았다.
독음
홍난상 여형제 자군서 호습지 문순문인 우유권비문음 사지형정 이문장덕행명 년칠십이축卒 이자임귀증영상
의미
홍난상은 조선后期的 문인으로서 문순的门下에서 수학하고 권비의 문하에서도 배웠으며, 벼슬은 형정에 이르렀다. 문장과 덕행으로 소문났으며, 72세에 사망하고 아들 임의 벼슬、进任으로 인해 영상의 직한으로 추증되었다. 여형제는 홍여형 또는 홍여형제로 볼 수 있다.
원문
洪鸞祥履祥弟字君瑞號習池閔純門人又遊權鞸門䕃仕止刑正以文章德行名年七十二卒以子靌貴贈領相[주:子靌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홍난상 / 洪鸞祥, confidence=1.0
- person: 여형제 / 履祥, confidence=0.9
- person: 군서 / 君瑞, confidence=1.0
- person: 습지 / 習池, confidence=1.0
- person: 문순 / 閔純, confidence=1.0
- person: 권비 / 權鞸, confidence=0.9
- office: 형정 / 刑正, confidence=0.9
- office: 영상 / 領相, confidence=1.0
- person: 아들 임 / 子靌,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子靌: 아들의 이름이 利靌인지 利靌인지 확실하지 않음, 利은 利의 이두(耳) 오기로 볼 수도 있음
- 䕃: 원문에서 䕃는 庇의 오기로 보이며 ‘門下庇护(문하의 비호)’를 뜻하는 것으로 추정되나 원문의 通假 관계가 불분명함
한백겸
- 기사 ID:
20037_017_018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86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04:53:40.28044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86
한글 번역
한백겸은 계희의 5대손이다. 한림이고 호는 유은이다. 효은자의 아들이 효구이고, 명종 임자년에 태어났다. 자는 명길이고 호는 구암이다. 민순의 문인으로서 학문이 있고 행실이 소박하여 유곡으로 천거되었다. 선조 병술년에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기축년에 이언길의 시체를 회수하다 한 차례 형을 받고 석방되었다. 벼슬은 호조 참의에 그쳤으며, 광해 기사묘에 사망하고 향년 64세였으며 영의상에 증직되었다.
독음
한백겸 계희 오세손 한림호 유은 효은자 효구 종자 명종 임자생 자 명길호 구암 민순 문인 유학행 유곡천 선조 병술,拜 참봉 부취지지 기축 수 이언길 시수 형 일차 방 관지 호조 참의 광해 기사묘 졸년 육십사 증 영상원 향
의미
한백겸은 조선中期 문인으로서闵純의 문인이다. 선조대에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이후 이언길 사건에 연루되어 한 차례 처벌을 받았으나 곧 석방되었다. 결국 관직은 호조 참의에 머물렀으며, 광해대년에 향년 64세로 사망한 뒤 영의상에 추증되었다.
원문
韓百謙繼禧五世孫翰林號柳隂孝胤子孝紌從子明宗壬子生字鳴吉號久菴閔純門人有學行以遺逸薦宣祖丙戌拜叅奉不就己丑收李彦吉屍受刑一次放官止戶曺參議光海乙卯卒年六十四贈領相院享[주:子興一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한백겸 / 韓百謙, confidence=1.0
- person: 계희 / 繼禧, confidence=0.9
- person: 효구 / 孝紌, confidence=0.95
- person: 민순 / 閔純, confidence=0.95
- person: 이언길 / 李彦吉, confidence=0.95
- office: 한림 / 翰林, confidence=1.0
- office: 참봉 / 叅奉, confidence=1.0
- office: 호조 참의 / 戶曺叅議, confidence=1.0
- office: 영의상 / 領相院, confidence=0.95
- term: 유곡 / 遺逸, confidence=0.9
- year: 임자년 / 壬子, confidence=1.0
- year: 병술년 / 丙戌, confidence=1.0
- year: 기축년 / 己丑, confidence=1.0
- year: 기사년 / 乙卯,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이득윤
- 기사 ID:
20037_017_018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88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04:55:48.58248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88
한글 번역
이득윤은 제현의 9세손이다.教官潜子의 아들이었다. 명종 기축년에 태어나, 글자를 克欽이라 하고 호를 西溪이라 하였다. 선조 무자년에 진사가 되었고, 경자에 왕자의 스승으로 부름을 받아 관직을 나아갔다. 최종 관직은 군수에 머물렀다. 인조 경오년에 세상을 떠나니 일흔여덟 살이었다.
독음
이득윤, 제현구세손,教官잠자, 명종기축생, 자극흠, 호서계, 선조무자진사, 경자이왕자사부승조, 관지군수, 인조경오졸, 년칠십팔
의미
조선 중기의 관리 이득윤의 행적을 기록한 기사이다. 제현의 후손으로 태어나 선조 때 진사가 되고 왕자의 스승으로 등용되었으나, 결국 군수 직에 그쳤다. 1555년생으로 1629년에 78세로 사망하였다.
원문
李得胤齊賢九世孫教官潜子明宗癸丑生字克欽號西溪宣祖戊子進士庚子以王子師傅承召官止郡守仁祖庚午卒年七十八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득윤 / 李得胤, confidence=1.0
- person: 제현 / 齊賢, confidence=1.0
- person: 명종 / 明宗, confidence=1.0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1.0
- person: 인조 / 仁祖, confidence=1.0
- person: 서계 / 西溪, confidence=1.0
- office: 군수 / 郡守, confidence=1.0
- term: 사부 / 師傅, confidence=1.0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정발
- 기사 ID:
20037_017_018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89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6T21:36:33.94714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89
한글 번역
정발은 길상의 5세손으로, 진군수(郡守) 明善의 아들이며, 明宗의 서자이다. 계축년에 태어나 南宫淑의 외손녀서 字를 子固라 하였다. 선조 정축년에 무과에 급제하여宣傳官이 되어 南海縣을 감무하고, 여러 번 밖으로 전임되어 부산僉使가 되었다. 임진년에 적선의 도배가 바다를 가리자, 정발은 싸우면서 물러나기를 반복하다가 성으로 돌아왔다. 그가 적의 시체를 난사하여 산처럼 쌓이니, 적이 서로 경계하며 ‘흑의 장군에게 가까이 하지 말라’ 하였다. 이는 그가 검은 색 검이를 입었기 때문이다. 화살이 성을 함몰시킨 구멍에 맞아丸(총알?)을 맞고 사망하니, 나이 사십이었다. 형 조와 함께 모두笃行人(어진 사람)으로 불리었으며, 능문(문장)하고 능서(글씨)하였다.死后贈爵으로兵判에 추증되고, 다시左賛成으로 加贈되었으며, 시호는忠壯이었다. 문묘에 표창되고,妾受香(수향)이 나이 십팔에 自刃하여 정발 곁에서 죽었으며, 노비 龙月도 피투성이로 싸우다 죽었다.
독음
정발길상오세손진군수명선자명종계축생남궁숙외손자자고선조정축등무과이선전관감남해현려외임위부산첨사임진적선폐해발차전차퇴환입성난사적시산적적상계왈막근흑의장군개소착흑색포야시화성함중환이졸년사십여형조구청독행인이문선서증병판가증좌찬성시충장표려 첩수향년십팔자할於撥傍노용월혈투이몰
의미
조선 선조 연간 무과 급제자 정발(정죽 또는 정발)의 평생과 일본군과의 최후를 기록한 기사이다. 임진왜란 당시 부산僉使로 재임 중 왜적의 대대적 침공에 맞서 싸우며 后退하다가 성으로 돌아갔고, 적의 시체를 산처럼 쌓으며 흑의 장군으로 불렸다. 성이 함락될 때 적의 총알에 맞아 마침내 전사하였으며, 그의 서자 첩 受香과 노비 龙月도 함께 자결하거나 싸우다 죽었다. 사후 보답으로兵判에서左賛成으로 추증되고 충壮의 시호를 받았다.
원문
鄭撥吉祥五世孫進郡守明善子明宗癸丑生南宫淑外孫字子固宣祖丁丑登武科以宣傳官監南海縣屢移外任為釜山僉使壬辰賊船蔽海撥且戰且退還入城亂射賊尸山積賊相戒曰莫近黑衣將軍盖所着黑色袍也矢畫城䧟中丸而卒年四十與兄擢俱稱篤行人能文善書贈兵判加贈左賛成謚忠壯㫌閭妾受香年十八自刎於撥傍奴龍月血闘而死
엔티티 후보
- person: 정발 / 鄭撥, confidence=1.0
- person: 명선 / 明善, confidence=1.0
- person: 명종 / 明宗, confidence=0.9
- person: 남궁숙 / 南宫淑, confidence=1.0
- person: 자고 / 子固, confidence=1.0
- person: 탁(정탁) / 擢, confidence=0.9
- person: 수향 / 受香, confidence=1.0
- person: 용월 / 龍月, confidence=1.0
- place: 남해현 / 南海縣, confidence=1.0
- place: 부산 / 釜山, confidence=1.0
- office: 군수 / 郡守, confidence=1.0
- office: 첨사 / 僉使, confidence=1.0
- office: 선전관 / 宣傳官, confidence=1.0
- office: 병판 / 兵判, confidence=1.0
- office: 좌찬성 / 左賛成, confidence=1.0
- term: 무과 / 武科, confidence=1.0
- term: 독행인 / 篤行人, confidence=0.9
- term: 충장 / 忠壯,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丸(화살에 맞은 구체적 의미, 화살 또는 총알 해석 가능)
- 䧟(함몰)
- 甲(갑옷 또는 검이衣의 오기 가능성)
- 表閭(표려의 정확한 직급 또는 절차)
정사호
- 기사 ID:
20037_017_019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90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04:55:35.47972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90
한글 번역
정사호는 周子의 아들이었으며, 자는 몽여이고 호는 와곡이다. 선조 기유년(1594)에 태어나 진사가 되고 문과에도 모두 합격하였다. 정축년에 별시(별应试)로 등제하여, 해주·고양 등의 관직을 거쳐刑曹判書까지 역임하였으며, 광성군에 봉해졌다. 서예가 뛰어났기로 유명하며, 시호는 충민이다. [주: 세 형제 중 문과에 합격한 아우 명호, 승정, 그리고 요절한 운호와 좌윤(佐尹)]
독음
정사호,/주자,/자몽여,/호와곡,/선조계유생,/진구중정축등별시,/력해주고관지형판,/봉광성군,/이의선서명,/謚충민/[주:삼형제文科적제명호승정요운호좌윤]
의미
정사호(정공 해운의 6대손)는 선조 27년(1594) 기사생으로 1641년(인조 19) 丁丑别试로 등제하여 해주·고양 등 여러 곳에서 근무하고刑曹判書까지 올랐다. 광성군에 봉해진 후 서예로 이름을 날렸으며 사후 충민이란 시호를 받았다. 세 형제 중 长兄 明湖, 次兄 承正도 文科에 합격했고, 三弟 雲湖는夭折하여 左尹에 머물렀다.
원문
鄭賜湖以周子字夢與號禾谷宣祖癸酉生進俱中丁丑登别試歴海佝官止刑判封光城君以善書名謚忠敏[주:三兄弟文科弟明湖承正夭雲湖左尹]
엔티티 후보
- person: 정사호 / 鄭賜湖, confidence=1.0
- person: 자몽여(아호명여) / 字夢與, confidence=0.95
- person: 와곡(호) / 禾谷, confidence=0.95
- term: 선조계유생(1594) / 宣祖癸酉生, confidence=0.95
- term: 정축년별시등제(1641) / 丁丑登别試, confidence=0.9
- office: 해주·고양 / 海佝, confidence=0.9
- office: 형조판서 / 刑判, confidence=0.95
- title: 광성군 / 光城君, confidence=0.95
- person: 명호(형) / 明湖, confidence=0.9
- person: 승정(형) / 承正, confidence=0.9
- person: 요절한운호(동생) / 夭雲湖, confidence=0.9
- term: 시호충민 / 謚忠敏,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以周子 - ‘以’의 의미가 ‘(누구의) 아들’인지 명확하지 않음
- 進俱中 - 진사·문과 동시 합격으로 보이나 俱字의 해석이 불확실
- 左尹 - 좌윤 관직명
김구원
- 기사 ID:
20037_017_019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91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3T23:07:47.99653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91
한글 번역
김여원은 효원(金孝元)의 아우이고 김순명[주:강릉 사람]의 매부이다. 명종 때 계축년에 태어나 자는 수백이고, 초명은 신원이며 호는 소암이다. 선조 병자년에 태어나 견미년에 등작聖하여 성전에 참배하고, 명종 문하시중 삼사管掌을 역임하였다. 정해년에 방어사가 되어 신위의 종사로서 호남에서 왜구를 방어하였다. 임진년에 연달아 체찰사가 되어 한응인을 대장 삼고 윤두수를 체찰사로 삼고 유성룡을 모좌官으로 삼았다. 벼슬이崇政 대호로 올라 병판에 이르렀으며, 숭양부원군에 봉해졌다. 이후 관직을 파면하고 훈신을 받았다. 광해 갑인년에 졸했으며, 향년 62세였다. 증직으로 영상의 직위를 받았다. 아들 김극용은 자가 여구이고 호는 삼우당이며, 선조의 정근옹주에게 장가들어 일선위(一善尉)에 봉해졌다.
독음
금여원효원제금순명강릉인매부명종계축생자수백초명신원호소암선조병자생견미등작성력한림삼사정해위방어사신위종사어위、湖南임진연위체찰사한응인대장윤두수체찰사유성룡모좌관지고 숭정병판봉숭양부원군후폐훈광해갑인 졸년육십이증령상자극용자여구호삼우당상선조정근옹주봉일선위
의미
김여원(金履元)은 조선中期의 관료로, 김순명의 매부이며 선조(宣祖) 연간에 활동하였다. 명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고, 정유년에 호남에서 왜구를 방어하는 방어사가 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체찰사 한응인의 부하로 참전하였다. 이후 병조판서 등 요직을 역임하고 숭양부원군에 봉해졌으나, 후에 파직되었다가 다시 훈신에 책록되었다. 광해군 치세인 갑인년에 사망하였다.文中 防禦使、體察使 등의 직위와 광해 연간 활동으로 보아 임진왜란(1592) 이후 조선後期 관료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인물이다.
원문
金履元孝元弟金順命[주:江陵人]妹夫明宗癸丑生字守伯初名信元號素菴宣祖丙子生貟癸未登謁聖歴翰林三司丁亥為防禦使申位從事禦倭于湖南壬辰連為軆察使韓應寅大將尹斗壽軆察使柳成龍慕佐官止崇政兵判封嵩陽府院君後罷勳光海甲寅卒年六十二贈領相子克鑌字汝久號三友堂尙宣祖貞謹翁主封一善尉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여원 / 金履元, confidence=0.98
- person: 김효원 / 金孝元, confidence=0.95
- person: 김순명 / 金順命, confidence=0.95
- place: 강릉 / 江陵, confidence=0.97
- person: 한응인 / 韓應寅, confidence=0.96
- person: 윤두수 / 尹斗壽, confidence=0.96
- person: 유성룡 / 柳成龍, confidence=0.96
- person: 김극용 / 克鑌, confidence=0.92
- person: 정근옹주 / 貞謹翁主, confidence=0.93
- office: 방어사 / 防禦使, confidence=0.95
- office: 체찰사 / 體察使, confidence=0.95
- office: 병판 / 兵判, confidence=0.95
- office: 숭양부원군 / 嵩陽府院君, confidence=0.95
- office: 영상 / 領相, confidence=0.95
- office: 일선위 / 一善尉, confidence=0.9
- place: 호남 / 湖南, confidence=0.92
- term: 모좌관 / 慕佐官,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妹夫의 通婚 상대와 朝代 귀속이文中 명시되지 않음
- 躋聖躋作聖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음
- 躋年 六十二 계산상 선조 병자년(1576) 태생说과 부합하나確認 필요
이성임
- 기사 ID:
20037_017_019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96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6T21:37:42.764728+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96
한글 번역
이성임은 익안대군 방역의 6세손으로, 이름은 명이고 자는 군중이며 호는 월촌이다. 선조 정축(1597)년에 별시(별도의 시험)에 합격하여 길원牧官을 거쳐 감사에 이르기까지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처음에 신임 벼슬아치로서 고향으로 돌아갈 때, 영남관찰사(嶺伯)가 조정을 떠나면서 온 조정이 배웅을 나갔다. 이때 이성임을 불러 노래를 지어줄 사람이 그의 재능을 시험하고자 하였는데, 이성임은 즉석에서 시를 지었고, 또한 스스로 노래를 지어 불렀다. 글과 서예, 문장, 말솜씨, 노래 소리, 용모 모두 아름다워 ‘오옥괴(五玉魁)’라 호칭되었다. 문무과庭試에서 임금께 내廄馬 두 필을 특하사받고 두 손으로 끌고 나왔으니, 그때 사람들이 이를 영예로 여겼다.
독음
이성임 익안대군방역 육세손 명이 자 군중 호 월촌 선조 정축 별시 합격력길목관 직치 감사 초이 신은 환향시 영백 지지조 만조 출선 성임 호창 사인 욕시 재능 영임 응구성시 우 자위위지가笔者문사언어、歌聲客貌 개옥녀 고호위 오옥괴 문무정시 상 특차 내구마 이필 이이수천출 시인영지 자용진견하
의미
조선 선조 때 학식과 예술에 뛰어난 관료 이성임의 인물기로, 그가 별시 합격 후 여러 관직을 거쳐 감사에 이르렀고, 배웅 자리에서 즉흥으로 시와 노래를 지어 모두의 감탄을 샀으며 글·서예·말·노래·용모가 빼어나 ‘오옥괴’로 불렸다. 문무과庭試에서 궁정의 준마 두 필을 하사받아 두 손으로 끌고 나온 것이 당시 큰 영예로 여겨졌음을 보여준다.
원문
李聖任益安大君芳毅[주:太祖子]六世孫泂子字君重號月村宣祖丁丑登别試歴吉牧官止監司初以新恩還郷時嶺伯辭朝滿朝出餞見聖任呼唱使人欲試其才聖任應口成詩又自為之歌以筆翰文辭言語歌聲客貌皆玉女故號爲五玉魁文武庭試上特賜內厩馬二匹以二手牽出時人榮之[주:子用晋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성임 / 李聖任, confidence=0.98
- person: 익안대군 / 益安大君, confidence=0.95
- person: 태조 / 太祖, confidence=0.92
- person: 명(성명 미상) / 泂, confidence=0.7
- place: 영남 / 嶺南, confidence=0.88
- office: 감사 / 監司, confidence=0.95
- office: 별시 / 別試, confidence=0.9
- term: 오옥괴 / 五玉魁, confidence=0.75
- term: 내구마(궁정 마廄의 준마) / 內廄馬, confidence=0.85
- term: 신은(신임 벼슬아치) / 新恩, confidence=0.82
- work: 월촌(호) / 月村,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泂(고향 조상의 정확한 이름 미상)
- 五玉魁의 구체적典故 출처
- 客貌(容姿의 정확한 의미 범위)
홍천경
- 기사 ID:
20037_017_019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197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04:56:37.87311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197
한글 번역
홍천경은 풍산 태주씨이다. 응복자의 아들로서 명종 기축년에 태어났으며, 자는 군옥이고 호는 반환당이다. 고경명·기가·대승·이이의 문하에서 학문하였다. 정개청이 나주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감독·고취하였는데, 천경도 그 사이에 있었다.
독음
홍천경 풍산인 응복자 명종 기축생 자는 군옥 호는 반환당 고경명 기대승 이이의 문하에서 학문하였으며 정개청이 나주의 교수가 되어諸生을考講하였는데 천경이不
의미
홍천경은 조선 명종 연간 풍산 태주씨 출신으로 태어난 학인이다. 기축년에 태어난 그의 자는 군옥, 호는 반환당이며, 성리학자 고경명과 기대승, 이이 등에게 수학하였다. 이후 선배 학자 정개청이 나주 교수(교수官)에 부임하여 학생들을 시험 지도할 때, 홍천경도 그 고취 대상의 하나였음을 보여준다. 원문 말미의 문장이 끊겨 정확한 후문을 알 수 없으나, 홍씨 문중의 인물 전기와 관련한 기사로 보인다.
원문
洪千璟豊山人應福子明宗癸丑生字群玉號盤桓堂學于高敬命奇大升李珥之門鄭介淸為羅州教授考講諸生千璟不
엔티티 후보
- person: 홍천경 / 洪千璟, confidence=1.0
- person: 응복 / 應福, confidence=1.0
- person: 고경명 / 高敬命, confidence=1.0
- person: 기가대승 / 奇大升, confidence=1.0
- person: 이이 / 李珥, confidence=1.0
- person: 정개청 / 鄭介淸, confidence=1.0
- place: 나주 / 羅州, confidence=1.0
- office: 교수 / 教授, confidence=1.0
- work: 반환당 / 盤桓堂,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考講諸生千璟不: 원문 말미가 끊겨 정확한 문맥 파악이 어렵다. ‘諸生을考講하였는데 千璟不…‘로 읽으나 문장이 완전히 이어지지 않아 후략(後略)인 것으로 추정한다.
이종
- 기사 ID:
20037_017_020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200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04:58:23.47791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200
한글 번역
이종(李宗)은 장서(張舒)의 5세손이다. 첨사(僉使)의 아들로 자(字)는 문경(文卿)이다.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벼슬이 충목(忠牧)에 이르렀다. 선조 임진년에 난리가 일어나자 말천(㺚川)에서 순절하였다. 이후 병판(兵判)으로 추증되고 홍평군(洪平君)에 봉해지며 시호는 무강(武剛)이다. [주:자희건은 아래를 참조하라] 장자 희립은 벼슬이 선전관(宣傳官)에 이르렀으며 아버지와 함께 죽었다.
독음
이종장서오세손첨사한자문경등무과관지충목선조임진란순절우태천증병판홍평군시호무강주자희건견하장자희립관지선전관여부동사
의미
이 인물은 이종(李宗)으로, 문경이라는 아호를 가지고 있으며 무과에 합격하여 관직 생활을 하였다. 임진왜란(선조 임진년) 당시 충목 벼슬에 있었으나 말천(㺚川)에서 순절하였다. 사후에 병판으로 추증되고 홍평군에 봉작되었으며 무강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그의 장男 희립도 선전관 벼슬에 있으면서 아버지와 함께 순절하였다. 본문에서 子希建에 대한 보충 설명이 딸려 있다.
원문
李宗張舒五世孫僉使漢子字文卿登武科官止忠牧宣祖壬辰亂殉節于㺚川贈兵判洪平君謚武剛[주:子希建見下]長子希立官止宣傳官與父同死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종 / 李宗, confidence=0.95
- person: 장서 / 張舒, confidence=0.9
- person: 문경 / 文卿, confidence=0.95
- person: 희립 / 希立, confidence=0.95
- person: 희건 / 希建, confidence=0.9
- place: 말천 / 㺚川, confidence=0.85
- office: 첨사 / 僉使, confidence=0.9
- office: 충목 / 忠牧, confidence=0.95
- office: 병판 / 兵判, confidence=0.95
- office: 선전관 / 宣傳官, confidence=0.95
- office: 무과 / 武科, confidence=0.95
- term: 5세손 / 五世孫, confidence=0.95
- term: 추증 / 贈, confidence=0.95
- term: 시호 / 謚, confidence=0.95
- term: 순절 / 殉節, confidence=0.95
- place: 홍평군 / 洪平君,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 㺚川(말천) - 한자 부수가 특수하여 정확한 지명이 불확실함, 경상도 지역으로 추정
- 洪平君 - 해당 작위의 구체적 활용 맥락과 봉호 범위가 문헌상 명확하지 않음
김덕근
- 기사 ID:
20037_017_020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201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2T04:58:21.37571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201
한글 번역
금덕근은 휘가택이며, 자는 백기이다. 백천에 거처 살았다. 선조 임오(1574)년에 진사가 되었고, 기축(1589)년에 증광에 합격하여 종제인 금감과 함께 뽑혔다. 한림관을 두루 거쳐 교리에서 벼슬길이 멈추었다. 광해군 때에는 폐모후 폐립에 대한 주장을 강하게 물리쳤다. 아우 금덕랄은 관직이 참봉에 그쳤으며, 폐모후 소를 쓰지 않았다. 인조의 반정 이후 벼슬하지 않았다. 아들 금감과 금음은 벼슬하여 자점을 거슬렸다. 금덕근의 아들 금유는 자가 운서이고 호는 매사이며, 광해군 기축년(1609)에 진사가 되었다. 인조 계해(1623)년에 열圣에 합격하여 한림, 사인을 두루 거쳐 부학에서 벼슬이 멈추었다. 강화협상을 주창한 것을 물리쳤으며, 북도에 파견되어 벼슬하다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독음
금덕근택자자백기거백천선조임오진사기축등증광여종제덕감동방려한린관지효교리광해시준질폐모후의자제덕랄관지참봉불제폐모후소인조반정후불사자감음사奉사적태자점덕근자제자운서호매사광해기축십륙진사인조계해등열성려한린사인관지부학주斥화뇌봉사북도률
의미
조선中期의 文官 金德謹과 그 가문을 기록한 기사이다. 金德謹은 선조 때 进士至進하여 한림관을 지냈으며, 광해군 때 폐모후 폐립론을 강하게 반대하여 清論을 세웠다. 아우 金德喇 역시 폐모후 소를 쓰지 않았고, 인조反正 후 벼슬을 단호히 사절했다. 아들 金霱은 광해군 때 진사가 된 후 인조 때 한림 부학에 이르렀으며, 강화협상 반대론자이고 북도奉使赴任中死亡쳤다.
원문
金德謹澤子字伯幾居白川宣祖壬午進士己丑登增廣與從弟德諴同榜歴翰林官止校理光海時峻斥廢母后議者弟德訥官止參奉不製廢母后疏仁祖反正後不仕子暠䕃仕奉事忤自點[주:不仕]德謹子霱字雲瑞號梅沙光海己丑[주:十六]進士仁祖癸亥登謁聖歴翰林舍人官止副學主斥和議奉使北道卒
엔티티 후보
- person: 금덕근 / 金德謹, confidence=1.0
- person: 금덕감 / 金德諴, confidence=1.0
- person: 금덕랄 / 金德喇, confidence=1.0
- person: 금유 / 金霱, confidence=1.0
- person: 금감 / 金暠, confidence=1.0
- person: 금음 / 金䕃, confidence=1.0
- place: 백천 / 白川, confidence=0.9
- place: 북도 / 北道, confidence=0.9
- office: 교리 / 校理, confidence=1.0
- office: 참봉 / 參奉, confidence=1.0
- office: 한림 / 翰林, confidence=1.0
- office: 사인 / 舍人, confidence=1.0
- office: 부학 / 副學, confidence=1.0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term: 증광 / 增廣, confidence=0.9
- term: 폐모후 / 廢母后, confidence=1.0
- term: 반정 / 反正, confidence=1.0
- term: 화뇌 / 和議, confidence=0.8
- term: 봉사 / 奉使,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이렴
- 기사 ID:
20037_017_020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17]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17
- 면/쪽: 0203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3T23:08:46.42386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17&aa15no=017&aa20no=20037_017_0203
한글 번역
이濂은 성주출신으로, 이彦佑의 아들이다. 명종 때 계축년에 태어나 자는 대원이다. 선조 임진년에 증광 합격하여 과거에 급제하였다. 관직은 工曹참의까지 올랐고, 임진년에 난(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가 피살되었다는 잘못된 소식을 듣고 스스로 목을 매어 죽으니 나이 마흔이었다.
독음
이렴 성주인 언유자 명종 계축생 자 대원 선조 경인등 증광 관지 성조 임진난 오문 기부 피해 자질사 년 사십
의미
조선 선조 연간에 활동한 이濂의 약력이다. 성주출신으로 선조 즉위년인 임진년(1570)에 증광문과에 합격하여,工曹참의까지 관직에 올랐다. 임진왜란(1592~1598) 시기 아버지가 적에게 피살되었다는 허위 소식을 듣고 충격받아 자결하였다. 서른여덟 살 때 사망한 것으로 보이며, 오보에 의한 충격적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비극적 인물이다.
원문
李濂星州人彦佑子明宗癸丑生字大源宣祖庚寅登增廣官止成槽壬辰亂誤聞其父被害自縊死年四十
엔티티 후보
- person: 이濂 / 李濂, confidence=1.0
- person: 언유 / 彦佑, confidence=1.0
- person: 명종 / 明宗, confidence=1.0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1.0
- place: 성주 / 星州, confidence=1.0
- office: 공조 / 工曹, confidence=0.9
- term: 증광 / 增廣, confidence=0.9
- term: 자 / 字, confidence=1.0
- term: 자질 / 自縊, confidence=1.0
- term: 임진난 / 壬辰亂,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관직의 마지막 직위인 成槽는 工曹(공조)의 오기일 가능성이 높으며, 成槽라는 관직명은 실존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