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년편고 [紀年便攷n1-37책] - 본문 번역 묶음 011
- 책 ID:
kh2_je_a_vsu_20037_000
- 수록 기사: 75건
이연
- 기사 ID:
20037_005_014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5]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5
- 면/쪽: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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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연은 벼슬이 연산감무에서 그쳤고, 우리 왕조에서 정언으로 임명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독음
이연 관지 연산감무 아조 정언 부기
의미
이연은 연산감무(연산 지역의 감무라는 직위)까지만 관직에 올랐고, 이후 정언(임금의直言을 올리는 관직)의 임명에는 나아가지 않은 인물이다. 벼슬을 끝까지 구하지 않았던 불출사(不出仕)의 태도를 보이는 기록이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연 / 李涓, confidence=0.95
- office: 연산감무 / 連山監務, confidence=0.85
- office: 정언 / 正言,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連山監務(연산감무)의 구체적 직위 성격, 朝拜(조배)의 해석
민유
- 기사 ID:
20037_005_015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5]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5
- 면/쪽: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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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민유는 벼슬이 정주(府院君)에 이르렀으며, 국가의 흥망을 보고 난 뒤 물러나 통진(通津) 봉향리(鳳翔里)에 거처하며 다시는 벼슬하지 않았다.
독음
민유 관지 부원군 견국운걷 퇴거 동진 봉향리 부사
의미
민유는 정2품인 부원군 벼슬까지 올랐으나, 국가의 흥망을 모두 목격한 뒤 관직을 떠나 통진 지역 봉향리에隠居하며 다시는仕官하지 않았다. 고려 말~조선 초 정치인의 은퇴사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민유 / 閔榆, confidence=0.95
- office: 부원군 / 府院君, confidence=0.95
- place: 통진 / 通津, confidence=0.85
- place: 봉향리 / 鳳翔里,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見國運訖에서 ‘訖’의 정확한 문법적 기능(완료·종결 표지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인지)
이양소
- 기사 ID:
20037_005_015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5]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5
- 면/쪽: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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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양소는 순천출신으로, 승평백 이사고의 아들이다. 자는 여건, 호는 금은이다. 신우년 임술년에 열여섯 살의 나이로 우리 태종과 같은 방면에 합격하여进士에 급제하였다. 태종이 용潜 시절부터의 오랜 친구였다. 혁명 이후 연천 도당곡에 숨어들어 그를 찾아냈다. 여러 번 진출을 권유하였으나 끝내 나오지 않았다. 태종이 친히 그 거처를 찾아 산 이름을 내려 清華라 명명하였다. 이는 대개伯夷의 清風과希夷의華山에서 딴 것으로, 이에 清華를 그의 시호로 삼았다. 태종이聮句를 지어 ‘가을비 반쯤 개이면 사람도 반쯤 취한다’고 하니, 양소가 맞받아 ‘저녁 구름이 처음 펴치고 달이 처음 뜬다’고 하였다. ‘달이 처음 뜬다’는 것은 바로 임금이微時에 총애하던 바램이었다. 태종이 위아래 손을 맞잡으며 ‘참으로 나의 옛 친구로다’라고 하였다. 뒤차에 실어 가라고 명하였으나 굳이 사양하였고,谷山郡守의 관직을 내리었으나 또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元天錫·南乙珍·徐甄이 양소와 함께 세상을 피해 굽히지 않았으므로,世人들은 이를 고려의 네 처사로 불렀다.
독음
이양소 순천인 승평백사고의 아들 자는 여건 호는 금은 신우 임술년 십육세에 우리 태종과 같은 방进士에 급제했다. 태종 용潜时期的 오래된 교우였다. 혁명 이후 연천 도당곡에 숨어서 구하면서 구해 여러 번 징초하였으나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친히 그 거처에 와서 산 이름을 내려 清華라 명하였다. 대개伯夷의 清風과希夷의華山을 취한 것이므로 이에 清華를 그 시호로 삼았다. 태종이聮句를 지어 가로되 ‘가을 비 반쯤 갠다 사람 반쯤 취했다’ 하니, 양소가 받으며 가로되 ‘저녁 구름 처음 펴치고 달이 처음 나서다.’ 달이 처음 나다는 것은 바로 임금이微時에 총애하던姬이다. 위아래 침상에서 손을 잡으며 가로되 ‘참으로 나의 옛 친구이로다.’ 뒤차에 실어 달라고 명하였으나 굳이 사양하였고,谷山의 관职을 내리었으나 또 취하지 않았다. 당시에元天錫·南乙珍·徐甄이 양소와 함께世를遯하여 굽히지 않았으므로,世人이 이를 고려四位處士라 불렀다.
의미
이 기사는 고려말~조선초의 선비 이양소의 생애와 태종과의 관계를 기술한다. 이양소는 태종과 함께进士에 급제하여 오랜 친구였으며, 고려가 멸망한 뒤 연천 도당곡에 은거하며 여러 번의 진출 권유를 뿌리쳤다. 태종이 친히 찾아 清華山을 내려 그 시호로 삼았고,聮句를 나누며 우정을 확인하였다. 元天錫·南乙珍·徐甄과 함께 고려의 네 처사로 불렸다.
원문
李陽昭順天人昇平伯師古子字汝建號琴隱辛禑壬戌[주:年十六]與我太宗同榜進士太宗龍潜舊交也及革命隱于漣川陶唐谷物色求之屡徵終不起親臨所居命賜山名曰淸華盖取伯夷淸風希夷華山也因以淸華爲其謚太宗聮句曰秋雨半晴人半醉陽昭對曰暮雲初捲月初生月初生即上微時所幸姫也上下床握手曰眞予故人也命載後車固辭除谷山又不就時有元天錫南乙珍徐甄與陽昭遯世不屈時人謂之高麗四處士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양소 / 李陽昭, confidence=1.0
- person: 사고 / 師古, confidence=1.0
- person: 태종 / 太宗, confidence=1.0
- person: 백아이 / 伯夷, confidence=1.0
- person: 희이 / 希夷, confidence=1.0
- person: 원천석 / 元天錫, confidence=1.0
- person: 남을진 / 南乙珍, confidence=1.0
- person: 서점 / 徐甄, confidence=1.0
- place: 연천 / 漣川, confidence=1.0
- place: 도당곡 / 陶唐谷, confidence=1.0
- place: 청화 / 淸華, confidence=1.0
- place: 곡산 / 谷山, confidence=1.0
- office: 처사 / 處士, confidence=1.0
- office: 백 / 伯, confidence=1.0
- term: 용잠 / 龍潜, confidence=1.0
- term: 혁명 / 革命, confidence=1.0
- term: 연구 / 聯句, confidence=1.0
- term: 돈세 / 遯世, confidence=1.0
임귀연
- 기사 ID:
20037_005_015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5]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5
- 면/쪽: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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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임귀연은 나주 사람이다. 관직은 소윤에 그쳤고, 고려가 멸망한 뒤 조선 왕조에 출사하지 않았다.
독음
임귀연 나주 사람 관직은 소윤에 그쳤으며, 고려가 멸망하고 나서 우리의 조정에 출사하지 않았다.
의미
임귀연은 나주 출신의 인물로, 고려 시대에 소윤(종8품 관직)까지 올랐으나, 고려가 멸망한 이후 조선 왕조에 출사하지 않은 채 생을 마쳤음을 나타낸다. 고려에 대한 충절을 보여준 지식인의 사례이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임귀연 / 林貴椽, confidence=0.95
- place: 나주 / 羅州, confidence=0.95
- office: 소윤 / 少尹, confidence=0.9
- term: 고려 / 麗, confidence=0.95
- term: 우리 왕조(조선) / 我朝,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조희직
- 기사 ID:
20037_005_015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5]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5
- 면/쪽: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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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조희직은 창녕 출신으로 정언 벼슬을 맡았다. 이존오와 함께 상서 글을 올려 간악한 신하를 탄핵하여 쫓아냈고, 그 때문에 진도에 유배되었다. 우리 조선이 들어서자 강화도 부임할 것을 권하여 권학하였으나, 스스로 은자(伯夷)와 제비(夷齊)에 견줘 끝내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嘉兴 물가에 사금갈매기 정자를 짓고 그곳에서 삶을 마쳤다.
독음
조희직 창녕인 정언을 지내고 이존오와 함께 소서로 간악한 자를 물리치고 진도에 유배되었다. 우리 나라에 이르러 강화도 부임할 것을 권유받았으나 스스로 은·백아에 비겨 끝내 출사하지 아니하고嘉兴 물가에 작압오정을 지어 그곳에서 삶을 마쳤다.
의미
조선 건국 초기 태조 이성계 정권에 참여하지 않고 은·백아의 고절함을 본받아 세도를 멀리한 선비 조희직의 산거사를 기록한 기사이다. 창녕 출신 조희직은 말년의 혼란된 정치 상황에서 정언으로서 간악한 신하를 탄핵하다 유배되었다가, 조선建国 후 강화도 부임 권유를 사양하고嘉兴 물가에서 독거하며 생을 마감했다. 권력에 불욕한隐逸 선비의 모습을 보여준다.
원문
曺希直昌寧人爲正言與李存吾䟽斥奸旽竄珍島及我朝有勸進自比夷齊終不出作狎鷗亭於嘉興水邉以終
엔티티 후보
- person: 조희직 / 曺希直, confidence=1.0
- person: 이존오 / 李存吾, confidence=1.0
- place: 창녕 / 昌寧, confidence=1.0
- place: 진도 / 珍島, confidence=1.0
- place: 嘉兴 / 嘉興, confidence=0.8
- office: 정언 / 正言, confidence=1.0
- work: 작압오정 / 狎鷗亭, confidence=0.9
- term: 은·백아 / 夷齊,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원문 내 䟽斥奸旽竄 부분의 문헌 손상 가능성, 䟽는 서(疏) 오류 추정, 旽는 명말의 年號와 연관된 시간 표시 오류 가능성, 作狎鷗亭의 作字 위치 및 의미 해석歧異
주인
- 기사 ID:
20037_005_015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5]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5
- 면/쪽: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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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주인(朱寅)은 전주 출신으로 호는 송관(松官)이다. 벼슬은 좌시(左侍)에 이르렀으며, 중국(명나라)이 멸망하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고령(高靈)에서 종신토록 절의를 지키며 한강을 한 번도 건너지 않았다.
독음
주인 전주인 호 송관 관 지 좌시 중국 멸 망기 관 귀 고령 수절 종신 불도 한강
의미
조선 시대 전주 출신 관료 주인(朱寅)은 좌시 벼슬에 올랐으나, 1644년 명나라가 멸망하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후 종신토록 충절을 지키며 한강을 건너지 않았다는 기록이다. 이는 명나라를 정통으로 여기던 조선 문인층의 사대주의와 강화된 의리를 보여주는 사료로 평가된다.
원문
朱寅全州人號松村官止左侍中國亡棄官歸高靈守節終身不渡漢江
엔티티 후보
- person: 주인 / 朱寅, confidence=1.0
- place: 전주 / 全州, confidence=1.0
- office: 좌시 / 左侍, confidence=1.0
- place: 고령 / 高靈, confidence=1.0
- place: 한강 / 漢江, confidence=1.0
- term: 수절 / 守節, confidence=0.9
최타
- 기사 ID:
20037_005_015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5]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5
- 면/쪽: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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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3T19:45:45.04397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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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최타는 경주 출신의 진사이며, 관직은 군사 쪽 소감에 머물렀고, 자신의 왕조에 출사하지 않고 동래의 춘양에 거처를 정하였다.
독음
최타 경주인 진사 관지 군자소감 불쇄 아조 점거우 안동지 춘양
의미
최타는 경주 출신으로 진사 합격자였다. 관직은 군자소감까지 올랐으나 고려 왕조에 출사하지 않았고, 동래의 춘양 지역에 거처를 정했다. 하층 관료이자 정치에 불참한 선비로 기록된 인물이다.
원문
崔沱慶州人進士官止軍資少監不仕我朝卜居于安東之春陽
엔티티 후보
- person: 최타 / 崔沱, confidence=0.95
- place: 경주 / 慶州, confidence=0.95
- place: 춘양 / 春陽, confidence=0.7
- place: 동래 / 安東, confidence=0.85
- office: 군자소감 / 軍資少監, confidence=0.7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0.95
- term: 점거 / 卜居,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 춘양(구름나루 등 동래 인근의 구체적 위치 미상)
- 군자소감(고려 군사 재정을管하는 직위의 정확한 직무 범위)
- 卜居의 구체적 의미 - 점을 통해 거처를 정했는지 단순히定居之意인지는 원문만으로 불확실
채왕택
- 기사 ID:
20037_005_015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5]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5
- 면/쪽: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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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채왕택은 평강 출신으로, 관직은 영호군에 이르렀다가 그만두었다. 나라가 멸망하자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남쪽으로 가서 임피에 숨어 살았다.
독음
채왕택 평강인 관지 영호군 국가 멸망 부해이남 은거 임피
의미
고려 말의 무장 채왕택의 행적을 적은 기사이다. 평강 출신으로 고려의 관직인 영호군까지 올랐으나, 고려가 원나라에 의해 멸망하자 본국을 떠나 남쪽 임피 지역으로 건너가 은거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고려 멸망(1392년 이전) 후 원나라 영역을 거쳐 조선 남부 지역에 정착한 고려 유민의 사례를 보여준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채왕택 / 蔡王澤, confidence=0.95
- place: 평강 / 平康, confidence=0.85
- office: 영호군 / 領護軍, confidence=0.8
- place: 임피 / 臨陂,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 영호군(領護軍)의 정확한 직급과性质, 임피(臨陂)의 정확한 위치(전라남도 나주 또는 경기도 이천 등 유력), 부해이남의 구체적 이동 경로
최홍재
- 기사 ID:
20037_005_015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5]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5
- 면/쪽: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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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최홍재는 경주 출신으로, 지도(致遠)의 11세손이다. 벼슬하여 문반서가 되었으나, 함일의 아들로 관직은 참판에서 그쳤다. 공양왕 신미(1391)년에 벼슬을 내려官職을 버리고 남쪽으로 돌아가 공주 동쪽 산에 숨어 살았다. 채미歌를 지었다. 태조 무인(1378)년에 사망하였다.
독음
최홍재 경주인 지도원십일세손 문반서 함일자관지삼패 공양왕 신미 사관 남귀 은거하여 공주지도산 채미가 작수 태조 무인 졸
의미
최홍재는 경주 출신으로 선조 지도의 11세손이다. 문반서 벼슬을 지냈으나 공양왕 때 벼슬을 버리고 남쪽으로 내려가 공주 동산에 은거하며 채미歌를 지었다. 태조 무인년에 사망하였다. 주에 의하면 손자 손상존과 증손 경지가 확인된다.
원문
崔弘載慶州人致遠十一世孫文判書咸一子官止參判恭讓王辛未辭官南歸隱居于公州之東山作採薇歌太祖戊寅卒[주:孫尙柔見下曾孫敬止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최홍재 / 崔弘載, confidence=1.0
- person: 지도 / 致遠, confidence=1.0
- place: 경주 / 慶州, confidence=1.0
- place: 공주 / 公州, confidence=1.0
- office: 문반서 / 文判書, confidence=0.9
- office: 참판 / 參判, confidence=1.0
- work: 채미가 / 採薇歌, confidence=1.0
- person: 공양왕 / 恭讓王, confidence=1.0
- person: 손상존 / 孫尙柔, confidence=0.9
- person: 경지 / 敬止, confidence=0.9
- person: 태조 / 太祖,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咸一子
- 함일의 아들로 추정되나 정확한 세대 관계가 불분명
송교
- 기사 ID:
20037_005_015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5]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5
- 면/쪽: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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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1T17:39:15.96628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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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송교는 여산 출신으로서 관직은 전서에서 그쳤으며, 나라인이 멸망하자 여산에 들어가 은거하였다.
독음
송교 여산인 관지 전서 국망 병거 여산
의미
송교는 여산 출신의 관리로, 관직은 전서에서 머물렀다. 소속 국가가 멸망하자 여산으로 물러나 은거생활을 했다.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인물 기록으로, 국가 멸망 이후 은둔한 선비의 행적을 보여주는史料이다. 관직이 전서에서 그쳤다는 것은 최고 관직에 이르지 못했음을 뜻하며, 国亡 후 礪山의屏居는 조선시대 산隐 자前置와 유사한 사상적 배경이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송교 / 宋皎, confidence=0.97
- place: 여산 / 礪山, confidence=0.85
- office: 전서 / 典書, confidence=0.8
- term: 국망 / 國亡, confidence=0.95
- term: 병거 / 屏居,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礪山의 구체적地理位置와 현대 행정구역 대응
- 典書의 직제상과 정확한 직무 범위
- 宋皎의 구체적 활동 시대와 소속 국가
김자진
- 기사 ID:
20037_005_016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5]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5
- 면/쪽: 0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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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3T19:46:01.02697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5&aa15no=005&aa20no=20037_005_0160
한글 번역
김자진은 광산 사람으로서 관직은 사평에서 멈추었고, 나라가 멸망하자 나주로 물러나居住하여,麗(여)자의 글자 뜻으로 그 산과 밭의 정자에 이름을 붙였다.
독음
김자진 광산인 관직 사평에서 그치고 나라가 망하자 나주로 물러나 여(麗)자의 뜻으로 그 산과 전정에 이름을 붙였다.
의미
김자진은 광산 출신으로 현종 때 사평(司評)까지 올랐고, 고려가 멸망한 후 나주로 내려가隠居하였다. 나주의 지명을 구성하는 한자丽의 뜻에 따라 해당 산과 전정(田亭)에 이름을 붙인 인물로 기록되었다. 벼슬이 사평에서 멈춘 것은 나라 망년退居의 이유를 함께 보여준다.
원문
金自進光山人官止司評國亡退居羅州以麗字名其山及田亭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자진 / 金自進, confidence=0.95
- place: 광산 / 光山, confidence=0.9
- place: 나주 / 羅州, confidence=0.95
- office: 사평 / 司評, confidence=0.85
- term: 전정 / 田亭,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전정(田亭)의 구체적 형태가 산의 일부 정자였는지 밭의 정자였는지 추가 사료 없음
- 麗字의 어떤 뜻으로命名하였는지 구체적 맥락 불분명
김승길
- 기사 ID:
20037_005_016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5]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5
- 면/쪽: 0161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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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5&aa15no=005&aa20no=20037_005_0161
한글 번역
김승길은 광주의 사람으로, 관직은 현령에 그쳤다. 아버지가 좌천되어 장沙 任所에 갈 때 따라가 그대로 그곳에 거처하며 나가지 않았다. 아들 오형은 관직이 사정에 그쳤으며, 아버지의 유훈을 지켜 벼슬하지 않았다.
독음
김승길 광주인 관지 현령 수기부 좌천 장沙 임소 영거불출 자 오형 관지 사정 준 유계 불사
의미
김승길은 광주 출신으로 현령 작에 이르렀다. 아버지가 좌천되어 장沙로 부임할 때 따라가 그곳에 그대로 머물렀다. 아들 오형은 사정까지 오르며 관직에 머물렀으나,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벼슬을 하지 않았다.
원문
金承吉光州人官止縣令隨其父左遷長沙任所仍居不出子五行官止寺正遵遺戒不仕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승길 / 金承吉, confidence=1.0
- place: 광주 / 光州, confidence=1.0
- office: 현령 / 縣令, confidence=1.0
- place: 장사 / 長沙, confidence=1.0
- person: 오형 / 五行, confidence=0.9
- office: 사정 / 寺正, confidence=1.0
- term: 좌천 / 左遷, confidence=1.0
- term: 유계 / 遺戒,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仍居不出의 해석: ‘여전히 거처하며 나가지 않다’는 아버지 좌천에 따른 자연스러운 체류로 해석되지만, 의도적 은거의 가능성도 있다.
신성모
- 기사 ID:
20037_005_016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5]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5
- 면/쪽: 0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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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신성慕는 울산 사람으로서 호는 聽竹이며, 우리 조선에 출사하지 않았다.
독음
신성모 온산인호청죽불사아조
의미
신성慕는 조선 시대 울산 출신의 선비로, 청죽이라는 호를 사용하였으나 조정에 출사하지 않고 은거하였다. 명시되지 않은 정치적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사회적 격변기나 개인적 사정으로 관직에 나가지 않은 경우로 보인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신성모 / 申成慕, confidence=0.95
- place: 울산 / 蔚山, confidence=0.95
- work: 청죽 / 聽竹, confidence=0.9
- term: 불사(출사하지 않음) / 不仕, confidence=0.9
- term: 아조(우리 조선) / 我朝,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불사(不仕)의 구체적 배경과 시기는 원문에 명시되지 않았으므로 추측에 그친다.
민안부
- 기사 ID:
20037_005_016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5]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5
- 면/쪽: 0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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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5&aa15no=005&aa20no=20037_005_0163
한글 번역
민안부는 관직을 그만두하여 예의 판서가 되었다.
독음
민안부 관지 예의 판서
의미
閔安富(민안부)라는 인물이 관직을 그만둔 후 예의 판서로 재임명되었음을 뜻한다. ‘관지’는 관직을 그만두는 것을 의미하며, 이후 ‘판서’ 직책이 부여되었음을 나타낸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민안부 / 閔安富, confidence=1.0
- office: 판서 / 判書, confidence=1.0
- term: 관지 / 官止, confidence=0.95
범세동
- 기사 ID:
20037_005_016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5]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5
- 면/쪽: 0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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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범세동의 벼슬은 부윤에서 그쳤다.
독음
범세동 관지 부윤
의미
범세동의 관료 경력이 부윤 직위에서 멈추었음을 서술하는 기사이다. 부윤은 조선 시대 한성부의 수장 직위로, 품계는 정삼품 가량이었으나 그 이상 승진하지 못한 끝자리를 나타낸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범세동 / 范世東, confidence=0.9
- office: 부윤 / 府尹, confidence=0.95
민보문
- 기사 ID:
20037_005_016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5]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5
- 면/쪽: 0165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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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민보문의 관직은 군수에서 그쳤다.
독음
민보문 관지군수
의미
閔普文의 최종 관직이 군수(郡守)에 그쳤음을 기록한 기사이다. 관직명 ‘郡守’는 조선 시대 군현(郡縣)의 수령인 군수를 뜻하며, 관직이 ‘止’(그치다)라는 표현은 그 관직이 최종 직위였음을 나타낸다. 짧은 기사이지만 인물의 최종 관계를 알 수 있는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민보문 / 閔普文, confidence=0.95
- office: 군수 / 郡守, confidence=0.95
김위
- 기사 ID:
20037_005_016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5]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5
- 면/쪽: 0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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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금위(金煒)
독음
금위
의미
원문에 正文(본문)이 제공되지 않았으며, ‘금위(金煒)’라는 인물의 이름만 수록되어 있다. 해당 인물의生平이나 관련 사료가 원문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위 / 金煒, confidence=0.85
고용현
- 기사 ID:
20037_005_016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5]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5
- 면/쪽: 0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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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고용현은 제주 출신으로, 정승 경(慶)의 아들이다. 호는 야소(野叟)이다. 충숙왕 때 등과하여 장원(壯元)에 합격했으며, 벼슬은 간의동지(諫議同知)에 이르렀다. 우리 태조가 영상을 초빙하였으나 절개를 지키며 나아가지 않아 그해 죽었다. 향년 91세, 시호는 문영(文英)이다. 본명은 자수(自守)였다.
독음
고용현 제주인 정승 경자 호야소 충숙왕조 등과 장원 관지기간의동지 아태조 이영상 소지 수절부구 졸 년구십일 시문영 초명 자수
의미
고용현(제주 출신, 본명 자수)은 충숙왕조에 장원으로 합격하여 간의동지까지 벼슬했으며, 태조 시기에 영상의 관직을 제수받았으나 나아가지 않고 절개를 지켰다. 태조 사후 같은 해에 향년 91세로 사망하여 문영의 시호를 받았다.
원문
高用賢濟州人政丞慶子號野叟忠肅王朝登科壮元官止諌議同知我太祖以領相召之守節不就是年卒年九十一謚文英初名自守
엔티티 후보
- person: 고용현 / 高用賢, confidence=0.95
- place: 제주 / 濟州, confidence=0.95
- office: 정승 / 政丞, confidence=0.85
- term: 야소 / 野叟, confidence=0.85
- person: 충숙왕 / 忠肅王, confidence=0.95
- term: 등과 장원 / 登科壮元, confidence=0.8
- office: 간의동지 / 諫議同知, confidence=0.85
- person: 태조 / 太祖, confidence=0.95
- office: 영상 / 領相, confidence=0.9
- term: 문영 / 文英, confidence=0.95
- person: 자수 / 自守,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政丞慶子는 ‘정승 경의 아들’로 해석되나, 경(慶)이 인명인지 관직명인지 불확실.壯元은 보통 장원(狀元)으로 표기하나 원문상 壮元으로 고문헌 특유의 字形变异으로 추정됨.
김내
- 기사 ID:
20037_005_017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5]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5
- 면/쪽: 0170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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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3T19:46:27.53325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5&aa15no=005&aa20no=20037_005_0170
한글 번역
김내(慶州人)는 경주 사람이다. 參知門下(참지문하) 지윤(智允)의 아들稇의 형이다. 고려조(麗朝)에 평장사였다. 고려 태조(我太祖)가 여러 번 부르셨으나 응하지 않았다.
독음
금내 경주인 참지문하 지윤자중형 고려조 평장사 아타조 여초불취
의미
김내는 경주 출신으로, 고려 시대에 平章事(평장사)를 지낸 인물이다. 重房系統의 가문으로, 門下侍中(문하시중) 지윤(智允)의 아들稇의 형제 관계에 놓여 있다. 고려 태조 王建이 여러 차례 등용을 시도하였으나 일관되게不接受하여 불취의 뜻이 강하게 드러나는 기록이다.
원문
金㮈慶州人參知門下智允子稇兄麗朝平章事我太祖屡招不就
엔티티 후보
- person: 김내 / 金㮈, confidence=0.95
- place: 경주 / 慶州, confidence=0.95
- office: 참지문하 / 參知門下, confidence=0.85
- person: 지윤 / 智允, confidence=0.9
- office: 평장사 / 平章事, confidence=0.9
- person: 고려 태조 / 我太祖, confidence=0.95
- period: 고려조 / 麗朝,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㮈字的音讀與김내的對應關係
- 智允과 稇의 정확한父子關係確認
- 參知門下의 정확한官職名稱
박천상
- 기사 ID:
20037_005_017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5]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5
- 면/쪽: 0171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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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6T17:21:29.26653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5&aa15no=005&aa20no=20037_005_0171
한글 번역
박천상은 순천 출생으로서 이부시랑을 역임했다. 그의 아들의 관직은 모두 도겮의 시중에서 그쳤고, 평양부원군에 봉군되었다. 정몽주와 함께 순절했다. 아들 가흥은 검교정승에 오르고 시호는 정후였다. 가흥의 아우 가권은 판개성윤을 지냈다. 그 아버지(원룡)가 화를 입은 후 성주로 물러나 벼슬을 구하지 않았다. 가권은 죽음에 임하여 아들 유성에게 유언하기를, 나는 나의 왕을 위해 하고 너는 너의 왕을 위해 하라 하였다. 유성은 천거되어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했으며, 스스로 清白한 벼슬아치로서 才兼文武하고, 관직은 판의주목사에 이르렀다.彭年과는 8촌 형제였다. 5세손 양佐는 아래를 볼 것.
독음
박천상 순천인 이부시랑 아들의 관직은 모두 도겸의 시중에서 그쳤으며 평양부원군이 되었다. 정몽주와 함께 죽었다. 아들 가흥은 검교정승이 되고 시호는 정후이다. 가흥의 아우 가권은 판개성윤이니, 그 아버지의 화後 성주로 물러나 일어나지 않았다. 가권은 죽음에 임하여 아들 유성에게 유언하기를, 나를 위해서는 나의 왕을 위해, 너를 위해서는 너의 왕을 위해 하라 하였다. 유성은 나아가 천거되어 벼슬을 두루 역임하였으니, 스스로 백과 선정을 밝혀 才兼文武하고 관직은 판의주목사에 이르렀다.彭年과 8촌 형제이다. 5세손 양佐 아래를 볼 것.
의미
박천상의 가계와 후손 활동을 수록한 기사다. 박천상은 이부시랑을 지냈고 아들도 도겮의 시중·평양부원군에 이르렀다. 박천상 가문은 정몽주와 함께 순절한 것으로 유명하며, 가흥·가권 등 후손들이 관직에 진출했다. 특히 가권의 아들 유성은 清白한 벼슬아치로 才兼文武의才를 갖추고 판의주목사에 이르렀고, 가문의 대물림이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원문
朴天祥順天人吏部侍郞[주:元龍父淑貞爲關東存撫使時起四仙亭於三日浦官止成均祭酒寶文閣大提學]子官止都僉議侍中平陽府院君與鄭夢周同死[주:七世孫而絢見下]子可興檢校政丞謚靖厚[주:子錫命見下]可興弟可權判開城尹其父禍後退居星州不起[주:六世孫而章見下][주:可權臨卒遺言于其子柳星曰我爲我王爾爲爾王柳星就徵厯職氷自白守選淸白吏才兼文武官止判義州牧与彭年爲八寸兄弟五世孫良佐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박천상 / 朴天祥, confidence=1.0
- person: 숙정 / 淑貞, confidence=1.0
- place: 삼일포 / 三日浦, confidence=1.0
- person: 가흥 / 可興, confidence=1.0
- person: 가권 / 可權, confidence=1.0
- person: 유성 / 柳星, confidence=1.0
- place: 성주 / 星州, confidence=1.0
- person: 팽년 / 彭年, confidence=1.0
- office: 이부시랑 / 吏部侍郞, confidence=1.0
- office: 도겮의 시중 / 都僉議侍中, confidence=1.0
- office: 평양부원군 / 平陽府院君, confidence=1.0
- office: 검교정승 / 檢校政丞, confidence=1.0
- office: 판개성윤 / 判開城尹, confidence=1.0
- office: 판의주목사 / 判義州牧, confidence=1.0
- work: 사선정 / 四仙亭,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원룡父淑貞에서 ‘원룡父’가 원룡의 부친을 가리키는지 원룡 자신을 가리키는지 불분명
- 氷自白守가 의주 관련 직역명인지 불확실
- 八寸兄弟가 8촌 매질 관계인지 정확도 낮음
변중량
- 기사 ID:
20037_005_017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5]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5
- 면/쪽: 0172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1T17:41:32.21917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5&aa15no=005&aa20no=20037_005_0172
한글 번역
변중량은 초계 사람이다. 중추를 이끌었고, 옥란자의 아들이며, 태조의 형元桂의 사위였다. 호는 춘당이다. 문과에 합격하여 관직은 좌승지에 머물렀다. 정몽주에게 배웠으며, 몽주의 문장이 훌륭하게 발현되고 의리를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 왕씨가 그 기반을 잃게 되던 시절에, 몽주에게 음모를 고하고 미리 대비하도록 청하였다. 몽주가 죽자, 중량도 유배驱逐되는 화를 입었다. 그 위태하면서도 충렬한 절操은 스승과 제자가 함께 돌아갔다. [주: 아우季良은 아래를 볼 것]
독음
변중량 초계인 영중추 옥란자 태조 형 원계서黄帝 호춘당 문과 관지 좌승지 수학어정몽주 문장발월 의 충의를 위 기임 왕씨 취복지지 이 모고고 몽주 청예비 몽주기 사 중량 역피 피 총족지 화 기위 충탁절 사제 동귀
의미
조선 전기 문신 변중량의 전기이다. 초계 출신으로 문과에 급제한 뒤 좌승지까지 올랐으며, 명현 정몽주의 제자였다. 왕씨가 몰락하던 상황에서 정몽주에게 역모의 음모를 고하고 대비를 요청했으나, 몽주의 죽음 뒤 자신도 유배되었다. 스승과 제자 모두 위험한 충절을 지켜 결국 같은 결말을 맞이했다는 평가를 담고 있다.
원문
卞仲良草溪人領中樞玉鸞子太祖兄元桂婿號春堂文科官止左承㫖受學於鄭夢周文章發越以忠義爲已任當王氏墜服之際以謀告夢周請預備及夢周之死仲良亦被竄逐之禍其危忠卓節師弟同歸[주:弟季良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변중량 / 卞仲良, confidence=1.0
- place: 초계 / 草溪, confidence=0.9
- person: 옥란자 / 玉鸞子, confidence=0.8
- person: 원계 / 元桂, confidence=0.9
- office: 좌승지 / 左承旨, confidence=1.0
- person: 정몽주 / 鄭夢周,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취복 / 墜服, confidence=0.6
- person: 변계량 / 卞季良, confidence=0.9
- office: 중추 / 中樞,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초계(초계 또는 사계 가능)
- 취복(왕씨가 멸망하는 상황의 묘사로 추정되나 정확한 어휘 의미 미확인)
- 왕씨(조선 왕조 또는 그 이전 왕씨 세력으로 추정)
권엄
- 기사 ID:
20037_005_017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5]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5
- 면/쪽: 0173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1T17:41:20.44919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5&aa15no=005&aa20no=20037_005_0173
한글 번역
권엄은 안동 출신으로, 아버지는 중귀이다. 처음 이름은 왕원부였으나, 나중에 본래 성인 권씨를 되찾고 이름을 권엄으로改名하였다. 관직은 음직렬의 집의에서 그쳤다. 고려가 멸망한 뒤 종신토록 나가지 않았으며, 사망 당시 100세였다.
독음
권엄 안동인 중귀자 초명 왕원부 후복성개명 관지 음집의 고려망 종신불출 향년 백세
의미
권엄은 고려 말 안동 출신으로, 본래 왕성에서 권성으로改名한 인물이다. 고려 멸망 후에는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고隐居하며 100세까지 살았다. 삼국사기 후기에 수록된 고려 말~조선 초의地方 향반 관련 기록으로 보인다. 음집의 집의는 종9품 직급이다.
원문
權嚴安東人重貴子初名王元富後復姓改名官止蔭執義麗亡終身不出享年百歲[주:孫節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권엄 / 權嚴, confidence=0.95
- person: 중귀 / 重貴, confidence=0.85
- person: 왕원부 / 王元富, confidence=0.9
- place: 안동 / 安東, confidence=0.95
- office: 음집의 / 蔭執義, confidence=0.75
- term: 복성 / 復姓, confidence=0.85
- term: 개명 / 改名,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음집의(蔭執義)
- 주석의 孫節의 구체적 내용과 관계
정희
- 기사 ID:
20037_005_017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5]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5
- 면/쪽: 0174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1T17:41:38.75966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5&aa15no=005&aa20no=20037_005_0174
한글 번역
정희는 하동 출신으로 호는 묵은이었다. 관직은 집의에서 그쳤다. 금진양의 당에 연좌하여 도서로 유배되었으나, 태종이 명하여 용서하고 돌려보냈다. 정희는 한성城外의 아현리 마을에 집을 짓고 평생 나가지 않았다.
독음
정희하동인호묵은관집지의좌금진양지당유절도태종명유환희축실한성城外아현리종신불출
의미
정희는 하동 출신으로 호는 묵은, 관직은 집의로 끝났다. 금진양 일파의 사건에 연좌하여 도서로 유배되었으나, 태종의 특사로 풀려나와 한성城外 아현리에 은거하며 종신토록 사회적 활동을 중단했다. 사림파 인사들의 정치적 변혹과 귀양生活中的 은둔 양상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원문
鄭熙河東人號默隱官止執義坐金震陽之黨流絶島太宗命宥還熙築室漢城外阿峴里終身不出
엔티티 후보
- person: 정희 / 鄭熙, confidence=1.0
- place: 하동 / 河東, confidence=1.0
- person: 금진양 / 金震陽, confidence=0.9
- place: 한성 / 漢城, confidence=1.0
- place: 아현리 / 阿峴里, confidence=1.0
- person: 태종 / 太宗, confidence=1.0
- office: 집의 / 執義, confidence=1.0
- term: 유배 / 流,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金震陽之黨의 구체적 사건 성격과 규모
- 絶島의 구체적 섬 위치
남재
- 기사 ID:
20037_006_001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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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6T17:24:24.41839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6&aa15no=006&aa20no=20037_006_0010
한글 번역
남재는 의위에 사는 사람으로, 문시중 이蕃의 아들 이珍의 조카이다. 자는 경지, 호는 면정이다. 공민왕 신해년(1351)에 중진사로 배출되었다. 성스러운 임금이 장차 일어나려 하니, 바람과 구름이 서로契合하듯, 나라가禅代로 바뀌어遯野에 물러나 있을 때,功勳을 피해 초명이 겸이었다. 태조의 잠저에 계시던 옛 사람으로서,功을 생각하고物色하여 구해서 얻었으므로 지금 이름을 내렸다. 아마 그 있는 것을 기뻐한 까닭이다. 자경지의 경지는 임금이 내린 것을 경하한다는 뜻이다.개국功을 세워 일등으로 포상을 받았고,宜寧府院君에 봉해졌다. 태종 갑오년(1404)에 入相하여 領에 이르렀다.酒를 좋아하고 말이 많았으며,대략 손님과 종일 장기[着棋]를 두어 말을 피했다. 어느 날 국가의禁服을 입고 조정에 들어갔는데, 누군가 대신도禁服을 입는다고 물었다. 재가 황급히婢를 불러 물었다. “내가 朝會할 때에 입는 옷이 무엇이냐?” 사람들이 그 소탈함[踈脫]을 기특하게 여겼다. 세종 기해년(1459)에 사망하니 향년 예순아홉 살이었다. 임금이 친히 찾아와 조문하고 시호를 충경이라 했다.太祖庙庭에配享하였다. 손자暉은 태종贞善公主를 배우어 맞아,宜山君에 봉해지고 시호는昭簡이다.
독음
남재의위의인은문시중을번자하여을진질자경지호면정공민왕신해중진사출신성주장의흥학합기풍운급기선대돈야피훈초명겸태조잠저고인사고기공물색구득지차금명개희기재야자경지경군치지책개국공일등봉위의부원군태종갑오입상지영호주다대략여객종일착기이피언휘일일착국가금복입조혹언대신역위금복흠재저연호비문문피아문피아하제아여인복기쇄탈세종기해술년육십구상임표시충경배향태조묘정손훤尙태종정선공주봉이산군시소간
의미
남재는 고려 말 조선 초 전환기의 인물이다. 공민왕 치세에 중진사로 등용되었으며, 태조 이성계의潜邸 시절부터 알던 인연으로 개국功臣에 책록되었다.酒를 좋아하고 말이 많았으나 조심스럽게客과 장기로 대화 시간을 보내 말을 삼갔다. 국가禁服 착의 사소한 실수를 하며 소탈한 성품을 드러낸 모습이 기록되었다. 세종대에 향년 69세로 사망하여 태조庙庭에 배향되었고, 손자暉은 태종 황녀와 혼인하여 외척으로 부상했다.
원문
南在宜寧人文侍中乙蕃子乙珍姪字敬之號黾亭恭愍王辛亥中進士出身聖主將興契合風雲及其禪代遯野避勳初名謙太祖潜邸故人也思其功物色求得之賜今名盖喜其在也在自字敬之敬君賜之意策開國功一等封宜寧府院君太宗甲午入相至領好酒多大畧與客終日着棋以避言諱一日着國家禁服入朝或言大臣亦為禁服歟在瞿然呼婢問我朝會時所服何服耶人服其踈脫世宗己亥卒年六十九上臨吊謚忠景配享太祖廟庭孫暉尙太宗貞善公主封宜山君謚昭簡
엔티티 후보
- person: 남재 / 南在, confidence=0.95
- person: 문시중 / 文侍中, confidence=0.85
- person: 이蕃 / 乙蕃, confidence=0.9
- person: 이珍 / 乙珍, confidence=0.9
- person: 경지 / 敬之, confidence=0.95
- person: 면정 / 黾亭, confidence=0.95
- person: 공민왕 / 恭愍王, confidence=0.95
- person: 태조 / 太祖, confidence=0.9
- person: 태종 / 太宗, confidence=0.95
- person: 세종 / 世宗, confidence=0.95
- person: 손휘 / 孫暉, confidence=0.9
- person: 정선공주 / 貞善公主, confidence=0.9
- place: 위의 / 宜寧, confidence=0.85
- place: 돈야 / 遯野, confidence=0.7
- office: 부원군 / 府院君, confidence=0.9
- office: 입상 / 入相, confidence=0.85
- office: 영 / 領, confidence=0.8
- term: 선대 / 禅代, confidence=0.9
- term: 금복 / 禁服, confidence=0.85
- term: 중진사 / 中進士,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着棋(착기-장기 또는 바둑으로 추정되나 구체적 놀이 종류 불확실)
- 物色(물색-이성계가 직접 남재를 찾아냈다는 의미로 해석)
- 着大略(착다략-추측으로 장손님과 종일 장기를 두어 대화로 시간을 보냈다는 의미로 읽음)
이제
- 기사 ID:
20037_006_001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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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1T17:45:30.57333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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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제는 성주 출신으로, 조년도의 증손이자 밀직 임립의 아들이며 이직의 아우이다. 태조의 경순궁주를 장가하였는데, 주석에는 신덕왕후가 이 궁주에게서 탄생하였다고 적혀 있다. 개국공을 세워 일등 공으로 현안군에 봉해졌다. 무인년에 방석의 난이 일어났을 때 화를 입어 이제가 죽은 뒤, 태조가 직접 궁주의 머리카락을 깎으며 눈물을 흘렸다. 후에 그가 풀려나서 시호를 경무라고 하였고, 태조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독음
이제 성주인 조년도 증손자 밀직 임립자 직 종제 상 태조 경순궁주 주: 신덕왕후탄생 책개국공 일등 봉흥안군 무인 방석란 피화 제사 후 태조 친제 궁주 발 현연류루 후 신설 시대무 배향 태조 묘정
의미
이제는 고려 태조의 사위兼 처남으로, 개국공으로서 흥안군에 봉해졌다. 무인년(1050년) 방석의 난에 연좌되어 억울하게 죽었으며, 그가 죽은 후 태조가 딸의 머리를 직접 깎으며 통곡하였다. 후에 명맥이 회복되어 경무 시호를追贈받고 태조묘에 배향되었다. 이 기록은 신덕왕후(태조비)의 출생과 그녀와 이재의 관계를 밝히는 중요한 사료이며, 태조가 사위에게 보여준 특별 한 은혜를 보여준다.
원문
李濟星州人兆年曾孫密直仁立子稷從弟尙太祖慶順宮主[주:神德王后誕生]策開國功一等封興安君戊寅芳碩亂被禍濟死後太祖親剃宮主髮泫然流涕後伸雪謚景武配享太祖廟庭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제 / 李濟, confidence=1.0
- person: 조년도 / 兆年, confidence=0.95
- person: 밀직 / 密直, confidence=0.85
- person: 임립 / 仁立, confidence=0.9
- person: 자직 / 子稷, confidence=0.9
- person: 상 태조 / 尙太祖, confidence=0.95
- person: 경순궁주 / 慶順宮主, confidence=1.0
- person: 신덕왕후 / 神德王后, confidence=1.0
- person: 방석 / 芳碩, confidence=0.9
- place: 성주 / 星州, confidence=1.0
- title: 흥안군 / 興安君, confidence=1.0
- title: 경무 / 景武, confidence=1.0
- term: 개국공 / 開國功, confidence=1.0
- term: 배향 / 配享, confidence=1.0
- term: 신설 / 伸雪,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밀직(仁立) -官名 또는 人名으로 해석이 불확실
- 상 태조(尙太祖) - 장가함을 表示하는 俗語인지는 불확실
- 방석란 - 구체적 난의 성격과 경위
- 親剃宮主髮 - ‘宮主’는 경순궁주를 가리키는 것이 확실하나, 왜 직접 깎았는지는 맥락 추가 필요
조인옥
- 기사 ID:
20037_006_001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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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조인옥은 한양 사람이다. 상장군 조良琪의 손자이고, 밀직부제 조暾의 아들이며, 경부흥의 사위이다. 자는 군계라 하고, 고려조에서 벼슬하여 이부상서 벼슬에 이르렀다. 우리 조선에 투항한 뒤 개국에 공을 세워 일등 공로로 한산부원군에 봉해졌으며, 벼슬은 지중추에 이르렀다.风采는威严하고 장중하여 아무도 그와 나란히 쳐다보지 못했고, 응대하는 재능이 있었다. 사신이 올 때마다 반드시 접반하였다. 서적을 좋아하여 선비들이 많이 그와 교류하였다. 개국 이후 임금이 말하기를 ‘만약 남은 조인옥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대업을 이룰 수 있었겠는가’ 하였다. 시호는 충정이고, 태조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주: 6세손 곰은 아래를 참조]
독음
조인옥 한양인 상장군량기 손 밀직부제暾 자 경부흥 사위 자군계 사려조 관지리판 입아조 책개국 공 일등 봉한산부원군 관지지중추 풍채 경엄 장중인莫敢 평목시 대응지재 매사신 지지필 접반嗜서사 사대부다 종유 개국후 상일여남은 조인옥언능 성취대업 시호 충정 배향 태조 묘정
의미
조인옥은 고려 말 충정위的一位重臣으로, 고려조에서 이부상서 벼슬에 이르렀고, 조선 개국에 참여하여 일등 공로로 한산부원군에 봉해졌다.风采가威严하고 응대력이 뛰어났으며, 사신 접伴과 서적 독서에 적극적이었던 인물이다. 개국 후 태조의”中若无南誾赵仁沃焉能成就大业”라는 평가를 받았고, 시호 충정을 받고 태조 묘정에 배향되었다.
원문
趙仁沃漢陽人上將軍良琪孫密直副使暾子慶復興孫婿字君啓仕麗朝官止吏判入我朝策開國功一等封漢山府院君官止知中樞風釆矝嚴莊重人莫敢平目視有應對之才每使臣至必接伴嗜書史士大夫多從遊開國後上曰若無南誾趙仁沃焉能成就大業謚忠靖配享太祖廟庭[주:六世孫熊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조인옥 / 趙仁沃, confidence=1.0
- place: 한양 / 漢陽, confidence=1.0
- person: 양기 / 良琪, confidence=1.0
- person: 暾, confidence=1.0
- person: 경부흥 / 慶復興, confidence=1.0
- office: 이부상서 / 吏判, confidence=1.0
- office: 지중추 / 知中樞, confidence=1.0
- place: 한산부원군 / 漢山府院君, confidence=1.0
- term: 풍채 / 風采, confidence=1.0
- term: 접반 / 接伴, confidence=1.0
- term: 배향 / 配享, confidence=1.0
- term: 시호 / 諡號, confidence=1.0
- term: 충정 / 忠靖,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배극렴
- 기사 ID:
20037_006_001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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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1T17:46:27.10791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6&aa15no=006&aa20no=20037_006_0015
한글 번역
배극렴은 성주 출신으로, 소경 배현보의 아들이며 충숙왕 을축년(1325)에 태어났다. 字는 양가이다. 고려 말에 과거에 급제하여 청렴하고 근신한 것으로 이름을 떨쳤다. 벼슬은 태사에 그쳤다. 왜구와 황산에서 싸워 대승리를 거두었고, 이어 사근역에서도 싸웠으나 대패하여 강물이 피로 물들었다. 오늘날까지 그곳을 혈계라 부른다. 금번에 목의 임무를 수행하던 중 진양의 관아 정자에 잣나무를 심었는데, 백성들이 그 은덕을 사모하여 이를 시중백이라 불렀다. 예언에 이르기를, “예복을 입은 군자가 나타나 三韓을 다시 바로잡을 것인데, 그 인물이 곧 배극렴이다.”라고 했다. 임신년에 개국功臣으로 1등에 책록되어 성산부에 봉해지고, 영상의 내좌로 임명되었다. 이 해에 사망하여 향년 68세였다. 태조가 상을 당하여 직접 조문하였고, 시호는 절절을 내렸다.
독음
배극렴 성주인 소경현보의 아들 충숙왕 을축년에 태어났으며, 字는 양가, 고려 말에 급제하여 청렴하고 근신하다고 칭송받았다. 벼슬은 태사에 그쳤다. 왜적과 황산에서 싸워 대첩을 거두었고, 다시 사근역에서 싸워 대패하니 물줄기가 다 붉어져 오늘에 이르러까지 혈계라 이름한다. 금번에 목으로 있을 때 진양에 관아 정자에 잣나무를 심었으니, 백성들이 그 德을 사모하여 시중백이라 이름했다. 䜟에 이르기를, “예복着的 군자가 있을 것을 알겠으니, 三韓을 다시 바르게 하는 물건이 곧 배극렴이다.” 하였다. 임신년에 개국공功을 세워 1등으로 책록되고, 성산부에 봉해지며 영상에 임명되었다. 이 해에 사망하니 향년이 68세였다.太祖가 상을 당하여 친히 찾았고, 시호는 절절하였다.
의미
고려 말 명의 배극렴의 전기이다. 충숙왕 을축년(1325)에 태어나 고려 말에 급제하여 清廉謹愼한 인물로 알려졌으며, 왜구와 싸워 황산에서 대승을 거두었으나 사근역에서는 대패하여 강물이 피빛으로 물들었다. 그곳은 오늘날까지 혈계라 불린다. 관아 정자에 잣나무를 심어 백성들이 시중백이라 부르며 그리워했다. 예언은 그를 非衣君子로 칭했으며, 삼한을 바로잡을 인물이라 예언했다. 임신년(1393?)에 开国功으로 1등 공신에 책록되고 성산부에 봉해지며 영상에 오랐다. 同년에 사망하여 향년 68세였고, 태조가 직접 조문하여 절절이란 시호를 내렸다.
원문
裵克廉星州人少卿賢輔子忠肅王乙丑生字量可麗末登第以廉謹稱官止侍中與倭戰于黃山大捷又戰于沙斤驛敗績川水皆赤至今號血溪牧晉陽植柏于衙軒民慕其德名曰侍中柏䜟云非衣君子知復正三韓物卽克廉也壬申策開國功一等封星山伯仍拜領相是年卒年六十八太祖臨喪謚貞節
엔티티 후보
- person: 배극렴 / 裵克廉, confidence=1.0
- person: 현보 / 賢輔, confidence=1.0
- person: 충숙왕 / 忠肅王, confidence=1.0
- place: 성주 / 星州, confidence=1.0
- place: 황산 / 黃山, confidence=0.9
- place: 사근역 / 沙斤驛, confidence=0.8
- place: 혈계 / 血溪, confidence=0.9
- place: 진양 / 晉陽, confidence=0.9
- place: 성산부 / 星山伯, confidence=0.9
- office: 소경 / 少卿, confidence=0.9
- office: 시중 / 侍中, confidence=0.9
- office: 영상 / 領相, confidence=0.9
- term: 비의군자 / 非衣君子, confidence=0.8
- term: 삼한 / 三韓,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量可(자 양가의 의미 확인 필요)
- 衙軒(관아 정자로 해석, 정자의 구체적 구조 불확실)
- 䜟(예언 문헌의 구체적 출처와 全文 미확인)
- 牧(금번 목의 직위 명칭 정확도)
- 壬申(1510 또는 1393년으로 추정, 历史年代 검증 필요)
조준
- 기사 ID:
20037_006_001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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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1T17:46:59.33945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6&aa15no=006&aa20no=20037_006_0016
한글 번역
조준 (주: 태묘에 배향된 것을 볼 것)
독음
조준[주:견배향]
의미
조준이라는 인물에 대한 짧은 인용 항목이다. 주석으로 ‘견배향(見配享)’이 붙어 있는데, 이는 태묘에 배향된 인물의 상세 내용을 다른 곳에서 확인할 것을 가리키는 참조 표시이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조준 / 趙浚, confidence=0.95
- term: 견배향 / 見配享,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김사형
- 기사 ID:
20037_006_001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17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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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3T19:49:25.83228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6&aa15no=006&aa20no=20037_006_0017
한글 번역
김사형은 김사렴의 아우이며, 자는 평부이다. 충혜왕 신사년(1341)에 태어나 태조의 개국공로를 세워 일등으로 포상받고 상락부원군에 봉해졌다. 태조 즉위년인 계유년(918)에 좌상에 올랐고, 이후 좌사의 관직에 나아가 기사사(노인회)에 들어갔다. 평생 단 한 번도 탄핵을 받은 적이 없었다. 세종 기유년(1453)에 사망하고 향년 89세였다. 시호는 익원이다. 손자 작석은 아래를 참조하고, 증손자 숙동은 아래를 참조하며, 7대손 금흠은 아래를 참조한다.
독음
금사형 사렴제 자평부 충혜왕 신사생책개국공일등 봉상락부원군 태조 계유입상 지좌입기사사 평생 미탐 일피탄묵 세종 기유 졸년 팔십구 시익원 손작석견하 증손숙동견하 칠세손 금흠견하
의미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김사형의 행적을 수록한 기사이다. 충혜왕 때 태어나 태조의 개국에 참여하여 공을 세우고 상락부원군에 봉해졌다. 태조 때 좌상에 오르고 기사사에 참여하는 등 요직을 역임했으며, 특기할 점은 평생 한 번도 탄핵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종 때 향년 89세로 사망하여 익원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후손의 가계가 이어지며 손자 김작석, 증손자 김숙동, 7대손 김흠 등이 기록되었다.
원문
金士衡士廉弟字平甫忠惠王辛巳生策開國功一等封上洛府院君太祖癸酉入相至左入耆社平生未甞一被彈墨世宗己酉卒年八十九謚翼元[주:孫礩見下曾孫壽童見下七世孫欽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사형 / 金士衡, confidence=0.95
- person: 김사렴 / 金士廉, confidence=0.95
- person: 충혜왕 / 忠惠王, confidence=0.95
- person: 태조 / 太祖, confidence=0.95
- person: 세종 / 世宗, confidence=0.95
- person: 손자 작석 / 孫礩, confidence=0.9
- person: 증손 숙동 / 壽童, confidence=0.9
- person: 7대손 금흠 / 欽, confidence=0.9
- place: 상락 / 上洛, confidence=0.95
- office: 부원군 / 府院君, confidence=0.95
- office: 좌상 / 左相, confidence=0.95
- office: 기사사 / 耆社, confidence=0.9
- term: 개국공 / 開國功, confidence=0.95
- term: 시호 / 謚,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彈墨
- 辛巳年(1341년 확인 필요)
- 癸酉年(계유년确认 필요)
- 左入(좌사로 입직之意 또는 左,入으로 분리)
익안대군 방의
- 기사 ID:
20037_006_001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19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3T19:49:33.99664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6&aa15no=006&aa20no=20037_006_0019
한글 번역
익안대군 방의는 태조의 셋째 아들이며 신의왕후에게서 태어났다. 나라를 세우는 데서 첫째 공을 세운 원훈이요, 정종조에 책력하여 사회에 공을 세우고 일등을 받았다. 태종이 일찍이 그의 거처를 방문하시니, 풍의가 오래된 병으로 떠밀려 나오며 꿇어 엎드려 울매, 임금도 또한 눈물을 흘리셨다. 안장과 말과 솔개[鹰子]를 하사하시고, 술을 베풀었다. 임금이 말씀하셨다. 「형이 병이므로 형을 오래 앉혀为难하게 여기어 돌아가고자 한다.」 풍의가 말하였다. 「전하의 방문은 쉽지 않으니, 신도 병으로서 뵙지 못하였는데, 오늘 오히려 뵙게 되어 기쁩니다. 신이 취하여 누워있겠나이다.」 임금이 그날 종일 머물렀다. 풍의가 떠밀려 일어서서 추고, 임금도 또한 추었다. 작위를 멈추니 대광(大匡) 마한공(馬韓公)이고, 시호는 안양(安襄)이며, 정종 묘정에 배향하였다.
독음
익안대군 방의 태조 제삼자 신의왕후 탄생 책 개국원훈 정종조 책정 사공 일등 태종 증행기 제 풍의 구질 부출 납곡 상역 하루 사면 안마 응자 수치주 상왈 형병의 번형 구좌 건강 방의왈 전하 임행 불역 신역 병 불능 상알 금일 원견 신졸위 상 유 종일 풍의 북리 무 상역起舞 작지 대광 마한공 시 안양 배향 정종 묘정
의미
익안대군 방의는 조선 태조 이방원의 셋째 아들로, 태조의 정비 신의왕후 소생이다. 개국 원훈으로서 정종대에 사회에 공을 세운 일등 공신이었다. 태종이 그를 문병 오자 병으로 쓰러진 몸을 억지로 일으켜 달려나와 울었고, 임금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임금이 병구완을 위해 안마와 말, 솔개를 하사하고 술자리를 베풀었다. 돌아가려 하자 방의가 ‘전하의 내방이 쉬운 일이 아닌데 오늘 뵙게 되었다’며 만류하여 임금이 종일 머물렀다. 방의가 일어나 춤을 추고 임금도 함께 추었다. 작위는 대광에 추서되 마한공으로, 시호는 안양이며 정종 왕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원문
益安大君芳毅太祖第三子神懿王后誕生策開國元勳定宗朝策定社功一等太宗甞幸其第芳毅久疾扶出跪泣上亦下淚賜鞍馬鷹子遂置酒上曰兄病矣煩兄久坐欲還芳毅曰殿下臨幸不易臣亦病不能上謁今日願見臣醉卧上留竟日芳毅扶立而舞上亦起舞爵止大匡馬韓公謚安襄配享定宗廟庭[주:子石根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익안대군 방의 / 益安大君芳毅, confidence=1.0
- person: 태조(조선 태조 이성계) / 太祖, confidence=1.0
- person: 신의왕후 / 神懿王后, confidence=1.0
- person: 태종(조선 제2대 왕) / 太宗, confidence=1.0
- person: 정종(조선 제3대 왕) / 定宗, confidence=1.0
- person: 마한공 / 馬韓公, confidence=1.0
- person: 석근(방의의 아들) / 石根, confidence=0.9
- title: 대군 / 大君, confidence=1.0
- title: 대광 / 大匡, confidence=1.0
- title: 원훈 / 元勳, confidence=1.0
- title: 개국원훈 / 開國元勳, confidence=1.0
- title: 안마 / 鞍馬, confidence=1.0
- title: 응자(솔개) / 鷹子, confidence=1.0
- title: 안양(시호) / 安襄, confidence=1.0
- place: 사직(국가) / 社稷, confidence=1.0
- place: 묘정(묘전庭) / 廟庭,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鷹子는 사육용 솔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품종은 불확실
- ‘書策定社功一等’은 ‘책정하여 사공을 일등으로 삼았다’의 의미로 해석하나, 문헌에 따라 ‘책력(書策)의 공으로 일등’일 수도 있음
의안대군 방석
- 기사 ID:
20037_006_002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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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1T17:48:40.2652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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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의안대군 방석은 태조의 여덟 번째 아들이며 신덕왕후의 소생이다. 태조가 임신년에 왕세자로 책봉하였다. 무인년(1398년)의 변란 때, 조준 등이 왕세자를改建할 것을 청하자, 태조가 방석에게 이르기를 ‘너에게로 便하면 좋겠다’고 하니, 방석이拜辭하여 나갔다. 태종이兄弟 방번과 방석을 도상에서追殺하였다. 방석의 나이 열여섯 살이었다. 사후 五原부원군에 추증하고, 대군으로 추봉하며, 시호는 소도로 올렸다. 後사는 밀성군 이슴의 아들 춘성군 이담으로 삼았다.[주:10대손 이진형과 이진항은下文을 보라]
독음
의안대군 방석 태조 제팔자 신덕왕후 탄생 태조 임신에 책봉하여 왕세자 삼으니 무인지란에 조준등이、改封世子를 청하자 상이 방석에게 말하기를, 너에게로便하면 좋겠노라, 방석이拜辭하여 나가니, 태종이追殺芳蕃과 방석을 도상에서, 방석의 나이 십육세, 五原공으로贈하고, 대군으로追封하며, 시호는 소도, 밀성군 슴의 아들 춘성군 담으로 후사를 삼으니[주:십세손 진형과 진형은 하문을 보라]
의미
의안대군 방석은 태조와 신덕왕후의 아들로 태조 즉위 직후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1398년 무인정변 무렵 조준 등의 건으로 방석을 세자로 삼으려 하자 방석이 이를 사양하고 나갔다. 이후 태종이 형 방번과 함께 방석마저 도상에서殺害하였다. 열여섯 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五原부원군에 추증, 의안대군으로 추봉받았으며, 시호는 소도였다. 後사는 이담이 이었다.
원문
宜安大君芳碩太祖第八子神德王后誕生太祖壬申冊封王世子戊寅之亂趙浚等請改封世子上謂芳碩曰於汝便矣芳碩拜辭而出太宗追殺芳蕃芳碩于都堂芳碩年十六贈五原公追封大君謚昭悼以密城君琛子春城君譡為后[주:十世孫鎭衡鎭恒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의안대군 방석 / 宜安大君芳碩, confidence=1.0
- person: 태조(조선 태조) / 太祖, confidence=1.0
- person: 신덕왕후 / 神德王后, confidence=1.0
- person: 방번(창원대군) / 芳蕃, confidence=1.0
- person: 태종(조선 태종) / 太宗, confidence=1.0
- person: 조준 / 趙浚, confidence=1.0
- person: 밀성군 슴 / 密城君琛, confidence=1.0
- person: 춘성군 담 / 春城君譡, confidence=1.0
- place: 오원(五原) / 五原, confidence=0.9
- office: 왕세자 / 王世子, confidence=1.0
- term: 무인지란(1398년 무인정변) / 戊寅之亂, confidence=1.0
- term: 도상(집무청) / 都堂, confidence=0.9
- term: 추살 / 追殺,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改封世子(改建世子로 볼 수 있음)
- 拜辭(거절과 존대의 복합 의미)
정희계
- 기사 ID:
20037_006_002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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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정희계는 경주 출신이다. 벼슬은 대학에 이르렀고, 시호는 문충이다. 휘의 아들이며, 염제신의 사위이다. 호는 양성헌이다. 공민왕 기유년에 진사에 급제하여 같은 해 문과에 합격하였다. 개국功臣 일등을 세웠고, 계림부원군에 봉해졌다. 벼슬은 대학에서 그쳤다. 천성이 자비롭고 인자하며, 관용하고 온후하며 덕이 좋다. 공무를奉行하면서恪慎(각신)하고終始(종시)不懈(불해)하였다. 태조 병자년에 사망하였고, 향년 사십구 살이었다. 우상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양景이다.景定宗 조 때 太常에서 시호를 의논하여 三望을 올렸다. 안焬, 안황, 안감이었다. 임금이 노하여 말하기를, 다만 그 잘못만 논하고 공을 논하지 않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하였다.于是奉常少卿 안성 이하 여러 사람을窜(流竄)시켰다. 그리고 今謚으로 고쳤다.
독음
정희계 경주인 대학 시문충 휘자 염제신서 호양성헌 공민왕기유진사 동년문과책 개국공일등 봉계림부원군 관지대학 천성자인관서온량호덕 봉공각신종시불해 태조병자술년사십구 증우상시양 경정종조사상의시삼망안양안황안감 상노왈단론기과불론기공하야 선봉상소경안성이하제인내개금시
의미
정희계는 경주 출신으로 공민왕 연간 문과에 급제하고 개국功臣으로 계림부원군에 봉해졌으나 벼슬은 대학에 그쳤다. 천성이 자비롭고 온후한 인물이었다. 태조 원년에 사십구 살로 사망하여 우상에 추증되고 양景이라는 시호를 받았다.景定종조 때 太常에서 시호를 논할 때 모두 부정적인 의미의 안씨 시호를 올렸으나, 왕이 공을 고려하지 않고 잘못만 논한 것에 불만을 표시하여 해당 관리들을 처벌하고 결국 적절한 시호로改了하였다.
원문
鄭熙啓慶州人侍中謚文忠暉子廉悌臣婿號養性軒恭愍王己酉進士同年文科策開國功一等封雞林府院君官止侍中天性慈仁寬恕溫良好德奉公恪愼終始不懈太祖丙子卒年四十九贈右相謚良景定宗朝太常議謚三望安焬安荒安感上怒曰但論其過不論其功何也竄奉常少卿安省以下諸人乃改今謚[주:玄孫][주:承祖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정희계 / 鄭熙啓, confidence=1.0
- place: 경주 / 慶州, confidence=1.0
- office: 대학 / 侍中, confidence=1.0
- person: 휘 / 暉, confidence=1.0
- person: 염제신 / 廉悌臣, confidence=1.0
- place: 양성헌 / 養性軒, confidence=1.0
- work: 공민왕 기유년 진사 / 恭愍王己酉進士, confidence=1.0
- place: 계림부원군 / 雞林府院君, confidence=1.0
- office: 우상 / 右相, confidence=1.0
- term: 태상 / 太常, confidence=1.0
- person: 안성 / 安省,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정총
- 기사 ID:
20037_006_002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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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3T19:50:21.54663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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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정총은 청주 사람이다. 밀직추의 아들이자 자는 만석, 호는 복재이다. 이색의 제자였으나 그를 반대하여 공격하였다. 신우년(1368) 갑진년(1376)에 생원으로 급제하여 조선에 들어왔다. 개국 공로로 일등을 세워 서원부원군에 봉해졌고, 관직은 정당문학에서 그쳤다. 태조 병자년(1392)에 표문(상소문)이 불경스럽게 되었다고 하여 명나라에 체포되어 대리위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고, 시호는 문민이다.
독음
정총 청주인 밀직추자 만석호 복재 이색문인이 반공지 신우 병진 이미 생원등과입 아호 조개국 공 일등 봉 서원 부원군 관 지 정당 문학 태조 병자 이미 표사 불공 피 대於 황조 유 대리위로 졸 시 문민
의미
정총(1299~1392?)은 조선 개국功臣으로 청주 출신이다. 이색의 제자였으나 스승을 반대 비판하였다. 1376년 생원으로 급제하여 조선建国에 참여했고, 공로로 서원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러나 태조 이성계 치세인 1392년에 표문(조선建国을 알리는 상소문)이 불경스럽다는 명나라의 꾸중을 받아 체포·유배되어 대리위(현 중국 연변)에서 사망하였다. 시호는 문민이며, 6세손 약손과 곤수 등이 후대에 기록에 보인다.
원문
鄭摠淸州人密直樞子字曼碩號復齋李穡門人而反攻之辛禑丙辰以生貟登科入我朝策開國功一等封西原府院君官止政堂文學太祖丙子以表辭不恭被逮於皇朝流大理衛而卒謚文愍[주:六世孫擢孫崑壽見下逑見下弟櫂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정총 / 鄭摠, confidence=0.95
- person: 이색 / 李穡, confidence=0.95
- person: 이성계 / 李成桂, confidence=0.85
- place: 청주 / 淸州, confidence=0.95
- place: 대리위 / 大理衛, confidence=0.85
- place: 서원 / 西原, confidence=0.9
- office: 정당문학 / 政堂文學, confidence=0.9
- office: 부원군 / 府院君, confidence=0.95
- term: 개국功臣 / 開國功臣, confidence=0.95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95
- term: 표문 / 表辭, confidence=0.9
- term: 시호 / 謚, confidence=0.95
- term: 문민 / 文愍, confidence=0.95
- person: 만석 / 曼碩, confidence=0.95
- person: 복재 / 復齋, confidence=0.95
- person: 밀직추 / 密直樞,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密直樞子 - 밀직추의 아들로 ‘자’인지 직위명인지는 불분명
- 被逮於皇朝 - 명나라에 체포된 구체적 경위와罪名이 원문에 상세하지 않음
- 表辭不恭 - 어떤 표문으로 불경하다는 지적을 받았는지 구체적 내용이欠如
- 流大理衛而卒 - 대리위 유배지에서 사망한 정확한 시기 미상
안경공
- 기사 ID:
20037_006_002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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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1T17:50:17.24569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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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안경공은 순흥 태생으로, 종원자의 아들이다. 충목왕 정해년에 태어나 자는遜甫이고 호는 관동이다. 신우년 병진에 의영 부사로 과거에 급제하여 조선에 들어왔다. 개국공을 세워 3등으로 책록되고 흥녕부원군에 봉해졌다. 벼슬은 부국에서 그쳤고, 두 번이나 전선(관직 임명)을 맡았으나 사사로운 부탁을 듣지 않았다. 지사에 들어갔다. 세종 치세 신축년에 사망하니 향년 75세, 시호는 양도이다. 아들 子純은 아래에 보인다. 세 아우 중에 文科로 급제한 사람은景溫(進士)과景良(文)이며,西北靑面 都巡問使를 지냈다.
독음
안경공 순흥인 종원자 충목왕 정해생 자遜甫 호 관동 신우 병진 의영부사 등과 입조 책개국공 삼등 봉흥녕부원군 관지보국 재장전선 불용사엽 입지사 세종 신축 졸년 칠십오 세 시호양도
의미
고려 말 충목왕 때 태어난 安景恭의 졸기이다. 고려 우왕 연간에 과거에 급제하여 조선 개국에 참여하고 흥녕부원군에 봉해졌다. 벼슬은 부국 영의정(兼判兵曹事 겸 병조 판사) 직전까지 올랐으며, 인사 권력인 전선을 두 번 맡아 공정한 선발로名声을 얻었다. 세종대 75세로 사망하여 양도 시호를 받았다. 세 아들도 모두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원문
安景恭順興人宗源子忠穆王丁亥生字遜甫號關東辛禑丙辰以義盈副使登科入我朝策開國功三等封興寧府院君官止輔國再掌典選不用私謁入耆社世宗辛丑卒年七十五謚良度[주:子純見下三兄弟文科景溫進文密直提學景良西北靣都巡問使]
엔티티 후보
- person: 안경공 / 安景恭, confidence=1.0
- person: 종원자 / 宗源子, confidence=1.0
- person: 충목왕 / 忠穆王, confidence=1.0
- place: 순흥 / 順興, confidence=1.0
- term: 의영 부사 / 義盈副使, confidence=1.0
- place: 흥녕부원군 / 興寧府院君, confidence=1.0
- office: 부국 / 輔國, confidence=1.0
- office: 전선 / 典選, confidence=0.9
- office: 지사 / 耆社, confidence=1.0
- person: 경온 / 景溫, confidence=1.0
- person: 경량 / 景良, confidence=1.0
- office: 서북면도순문사 / 西北靑面都巡問使,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宗源子는 호·자·안호均可 가능
- 西北靑面은西北面과同一으로 보이나 정확한 地名 확인 필요
정탁
- 기사 ID:
20037_006_002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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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정탁은 형수 정민의 아우이다. 공민왕 임인년에 태어나 字는汝규이고, 호는 春谷이다. 신우(辛禑)의 임술년(1382년) 이전에 참군사에 올라 등과하여 조선에 들어왔다. 개국공을 세워 1등으로 포상받고 清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정종조에 入社功을 세워 2등이 되었고, 세종 임인년에 좌상에 오르다 벼슬을 내놓았다. 그 해에 죽었으니 향년 61세, 시호는 翼景이다. 太宗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독음
정탁 종제 공민왕 임인생 자汝규 호춘곡 신우 임술 이전 참군사 등과입 아조 책 개국공 일등 봉 청성부원군 정종조 책 사공 이등 세종 임인 년 좌상 치사、是년 졸 년육십일 시翼景 배향 태종묘정
의미
조선 建國功臣 清城府院君 정탁의 신원기이다. 고구려 말期조에 벼슬하여 고려말 군직에 있었고, 조선建国에 참여하여 공을 세운 원로功臣이다. 정종·태종 연간에 사공과 开国공을 세우고 세종대에좌상에 올랐으나 同年内에致仕하고 사망하였다. 태종묘정에 배향될 정도로 조선 초기에 位가 높았던 인물이다.
원문
鄭擢捴弟恭愍王壬寅生字汝魁號春谷辛禑壬戌以前參軍事登科入我朝策開國功一等封淸城府院君定宗朝策定社功二等世宗壬寅拜左相致仕是年卒年六十一謚翼景配享太宗廟庭
엔티티 후보
- person: 정탁 / 鄭擢, confidence=1.0
- person: 공민왕 / 恭愍王, confidence=1.0
- person: 여규 / 汝魁, confidence=0.9
- place: 춘곡 / 春谷, confidence=0.9
- title: 청성부원군 / 淸城府院君, confidence=1.0
- title: 좌상 / 左相, confidence=1.0
- title: 참군사 / 參軍事, confidence=1.0
- title: 익경 / 翼景, confidence=1.0
- person: 태종 / 太宗, confidence=1.0
- person: 세종 / 世宗, confidence=1.0
- person: 정종 / 定宗,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捴弟(형수), 定社功(정사공,功臣 등급), 期조(기조, 고려 말期生職)]
이직
- 기사 ID:
20037_006_002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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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6T17:26:41.80447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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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稷는 성주 사람으로 이조년의 증손이자 대제학 이인민의 아들이다. 공민왕 임인년에 태어났으며, 글자를 오정, 호를 형재라 하였다. 신우 왕 정사년에 산원(散員)으로 과거에 급제한 뒤 조선에 들어가 공로를 세워 开爴功(개국 혁공)으로 삼등에 녹훈되어 성산부원군에 봉해졌다. 태종조에佐命功(佐命功)으로 사등에 녹훈되고 선관을 장악하여 至公人으로 삼았으며, 산도에 견주었다. 양녕대군의 폐립을 간諫하다가 유배되었다. 을유년에 入相하여 좌議政에 이르렀고, 벼슬을 내려놓아 기사에 들어갔다. 세종 무진년에 사망하여 여든일곱 살이었다. 시호는 文景이다. 손자 이정녕은 한성윤이었고, 아들 이사후는 태종의 서녀 숙혜옹주에게下嫁하여 성원위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章節이었다.
독음
이稷 성주인 조년 증손 대제학 인민之子 공민왕 임인생 자 오정 호 형재 신우 정사 [주:열여섯] 이 산원 등과 입아조 책 개악공 삼등 봉 성산 부원군 태종조 책佐命功 사등 장선 至公人 비지 산도 간 양녕지폐 피 척 을유 입상 지좌 치사 입기사 세종 무진 졸 년 팔십칠 희 문경 손 정녕 한성윤 사후 자상 태종 숙혜 옹주 봉 성원위 희 장절 [주:子諿 아래 참조]
의미
조선 초기 문신 이稷의 약력이다. 고려 공민왕 때 태어나 고려 말에 과거에 급제하고 조선建国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태종 때 重用되어 선관 제조를 맡았으며, 산도와 비교될 정도로 청렴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양녕대군 폐립을諫直하다 유배된的经历도 있으나 后来相位에 올라 좌의정에까지 이르렀다. 세종대에 사망할 때까지 기사에 속했으며 文景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아들 이사후는 왕녀 숙혜옹주와 혼인하여 사위가 되었고, 손자 이정녕은 한성부 윤을 역임했다.
원문
李稷星州人兆年曾孫大提學仁敏子恭愍王壬寅生字虞廷號亨齋辛禑丁巳[주:十六]以㪚員登科入我朝策開爴功三等封星山府院君太宗朝策佐命功四等掌銓至公人比之山濤諌讓寧之廢被謫乙酉入相至左致仕入耆社世宗戊辰卒年八十七謚文景孫正寧漢城尹師厚子尙太宗淑惠翁主封星原尉謚章節[주:子諿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이稷 / 李稷, confidence=1.0
- person: 이인민 / 李仁敏, confidence=1.0
- person: 양녕 / 讓寧, confidence=1.0
- person: 이정녕 / 李正寧, confidence=1.0
- person: 이사후 / 李師厚, confidence=1.0
- person: 숙혜옹주 / 淑惠翁主, confidence=1.0
- person: 산도 / 山濤, confidence=1.0
- place: 성주 / 星州, confidence=1.0
- place: 성산부원군 / 星山府院君, confidence=1.0
- place: 성원위 / 星原尉, confidence=1.0
- place: 한성윤 / 漢城尹, confidence=1.0
- office: 대제학 / 大提學, confidence=1.0
- office: 산원 / 散員, confidence=0.8
- office: 장선 / 掌銓, confidence=0.9
- office: 좌의정 / 左議政, confidence=1.0
- office: 기사 / 耆社, confidence=1.0
- term: 佐命功, confidence=0.9
- term: 개악공 / 開爴功, confidence=0.7
- term: 지공인 / 至公人, confidence=0.8
- work: 형재 / 亨齋, confidence=1.0
- term: 자(글자) / 字, confidence=1.0
- term: 호 / 號, confidence=1.0
- term: 시호 / 謚, confidence=1.0
- term: 임인 / 壬寅, confidence=1.0
- term: 정사 / 丁巳, confidence=1.0
- term: 을유 / 乙酉, confidence=1.0
- term: 무진 / 戊辰,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강회백
- 기사 ID:
20037_006_003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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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3T19:51:20.84072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6&aa15no=006&aa20no=20037_006_0030
한글 번역
강회백은 진주 출신이다. 그는 성주(蓍子) 정구의 매부(妹夫)로서 공민왕 정유년에 태어났고, 字는伯父이고, 호는通亭이며, 권근의 문인이다. 신우(辛禑) 때 병진(丙辰)에 생원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가 제주(祭酒)·진현관(進賢館) 대제학에 이르렀다. 정몽주(鄭夢周)·이숭인(李崇仁)·염정수(廉廷秀)와 함께 호복(胡服)을 혁파하고 화제(華制)를 이어받자는 의견을 제기하였다.太祖(태조)가 즉위한 뒤, 회백은 진주의 달소(謫所)에 있었는데 상을 치르는 중이었다. 기복(起復)하여 벼슬에 나아가자 고사하였으나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나아가 모두巡問使·永興府尹를 역임하였다. 문장이 단려하고, 책을 한 번 읽으면 곧장 기억하며, 필법 또한 뛰어났다. 또한 성품을 좋아하여 노여움을 얼굴에 나타나게 하지 아니하였다. 손으로 매화 한 그루를 심고 일수(一絶)를 지어 “…천심이 보일 것이니…」라고 하였다. 그후 승(僧)에게 봉토(封土)를 맡기고 가지를 키우니 구부리고 굽어 있어 영남(嶺南) 하나의 옛 물건이 되었다. 태종 임오년에 사망하니 향년 사십육세였다. 左贊成에 추증하고 시호는戴敏이다.
독음
강회백 진주인찬성주자 정구매부 공민왕 정유생 자 백부호 통정권근문인 신우 병진 생원등과사지제주 진현관 대제학 여정몽주 이숭인 염정수개의 혁호복습화제 태조즉위 회백 진주 달소방거우기복拜관고사불허력도시순문永興府尹 문장단려독서일람전기필법우선성喜怒不形於색수직매일주일绝了曰일기기순환왕복래천심가견랍전매직장은행조실만향산중락우개기후거승봉토배양지간교굴위영남일고물 태종 임오졸년사십육증좌찬성謚戴敏
의미
강회백(姜淮伯,?~1402)은 진주 출신으로, 권근의 문인이다. 고려 말 신우왕 때 생원으로 급제하여 제주·진현관 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정몽주·이숭인·염정수와 함께 호복을 혁파하고 중국식 복제(華制)를 도입하자고 주장한 인물이다. 태조 이성계가 창업한 뒤에도 진주 달소에 있었으나 기복하여 벼슬에 나갔다. 문장력이 뛰어났고 성품이 삼가고 노여움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으며, 매화를 심어 시를 남겼다. 태종 2년(1402)에 사망하고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戴敏이다. 아들 종덕(宗德)·이탈(逸), 손자 석덕(碩德)이 등장하며, 아우淮仲도 문과에 올랐다.
원문
姜淮伯晋州人賛成蓍子鄭矩妹夫恭愍王丁酉生字伯父號通亭權近門人辛禑丙辰[주:二十]以生員登科仕止祭酒進賢舘大提學與鄭夢周李崇仁廉廷秀建議革胡服襲華制太祖即位淮伯在晋州謫所方居憂起復拜官固辭不許歴都巡問使永興府尹文章端麗讀書一覧輒記筆法又善性喜怒不形於色手植梅一株題一絶曰一氣循環徃復來天心可見臘前梅直將殷鼎調羮實謾向山中落又開其後居僧封土培養枝榦樛屈為嶺南一古物太宗壬午卒年四十六贈左賛成謚戴敏[주:子宗德逸掌令碩德見下三兄弟文科弟淮仲見下淮季恭讓王駙馬本朝㐫終]
엔티티 후보
- person: 강회백 / 姜淮伯, confidence=1.0
- person: 정구 / 鄭矩, confidence=1.0
- person: 권근 / 權近, confidence=1.0
- person: 정몽주 / 鄭夢周, confidence=1.0
- person: 이숭인 / 李崇仁, confidence=1.0
- person: 염정수 / 廉廷秀, confidence=1.0
- person: 종덕 / 宗德, confidence=1.0
- person: 이탈 / 逸, confidence=1.0
- person: 석덕 / 碩德, confidence=1.0
- place: 진주 / 晋州, confidence=1.0
- place: 영흥부 / 永興府, confidence=1.0
- place: 영남 / 嶺南, confidence=1.0
- office: 제주 / 祭酒, confidence=1.0
- office: 진현관 대제학 / 進賢舘大提學, confidence=1.0
- office: 좌찬성 / 左賛成, confidence=1.0
- office: 도순문사 / 都巡問使, confidence=0.9
- term: 호복 / 胡服, confidence=1.0
- term: 화제 / 華制, confidence=1.0
- term: 기복 / 起復, confidence=1.0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work: 일수(시) / 一絶,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공민왕 丁酉生의 정확한 생년 확인 필요
- 淮季이 공양왕에게 사직마를 바친 기록과의 관계
- 辛禑 丙辰 등위 건립 연호 변동 가능성
- 달소(謫所)의 구체적 위치와 상황
- 謚戴敏 시호 표기 및 의미 정확도
조무
- 기사 ID:
20037_006_003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32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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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6T17:27:32.15951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6&aa15no=006&aa20no=20037_006_0032
한글 번역
조무는 원래 장수였다. 원소의 졸개들이孔州에 집결했을 때, 後趙의 태조(石勒)가 동북쪽에 있었는데,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자는 결국 반드시 난을 일으킬 것이다.’ 이에 군대를 이끌고 공격을 했다. 그대의 용맹을 아까워하여 철살은 쓰지 않고 머리를 향해 쏘아 수십 명의 武들을 맞혔다. 조무가 이에 말을 타고 절하며 항복하자 졸개들은 결국 하인 신세로 평생 종으로 쓰임에 처했으며, 최종 관직은 工曹判書에 그쳤다.
독음
조무는 원래 장수였다. 원쇠의 졸개들이 모이면孔州를 근거로 하였는데, 時太祖가 동북면에 있으면서 부하들에게 말하기를, ‘이 사람은 결국 반드시 난을 일으킬 것이다.’ 이에 대중을 이끌고 공격하니, 그 용기를 아깝게 여겨 철살은 쓰지 않고 以撲頭로 수십 무를 명중시켰다. 武가 이에 말을 타고 절하며 항복하자, 졸개들은 결국廝養이 되어 종신토록 봉역하였고, 관직은工曹判書에 그쳤다.
의미
後趙 태조 石勒가 최타의 部將 조무의 반란 기운을 미리 감지하여 기습 공격을 감행한 이야기이다. 철살 대신扑頭(투박)로만 공격하여 조무의 武를 아끼며, 조무가 투항하자 졸개들은 모두廝養(하인)으로 전락케 하였다. 조무는 이후 工曹判書까지 관직에 올랐다. 조무의 용맹을 인정하면서도 도모하는 武略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원문
趙武元將也元衰卒衆㨿孔州時太祖在東北靣謂麾下曰此人終必為亂乃率衆撃之惜其勇銳不用鐵矢以撲頭射中数十武乃下馬拜降卒為厮養終身服役官止工曹判書
엔티티 후보
- person: 조무 / 趙武, confidence=0.95
- person: 원소 / 元衰, confidence=0.7
- person: 후조의 태조 / 太祖, confidence=0.75
- person: 공주 / 孔州, confidence=0.65
- place: 공주 / 孔州, confidence=0.6
- office: 공조반서 / 工曹判書,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㨿(据 또는 聚으로 추정, 근거로 점거하다의 의미로 보임)
- 勇銍(용기 또는 촉을 아깝게 여기다, 銍은 의심스러운 문자)
- 數十武(수십 명의 武部下들, 武는 인명 또는 무관)
- 厮養(사양, 하인·종의 뜻으로 보이나 고전 확인 필요)
안성
- 기사 ID:
20037_006_003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33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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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4T03:36:16.55198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6&aa15no=006&aa20no=20037_006_0033
한글 번역
안성(安省) 출신으로 광주 사람이다. 문전(文典)에 나아가 농사(農事)에 관계된 벼슬을 하였다. 기(器)자이고 충혜왕 갑신년에 태어났으며, 자는 습지(習之)이다. 하루에 세 호(號)를 사용하였는데, 천곡(泉谷)과 우서천(又雪川)이 그것이다. 태어나면서 한쪽 눈이 조금 어두웠기 때문에 올바른 이름이 아니었다고 하여 소목(少目)이라고 불렀다. 신우(辛禑)년에 경신(庚申)으로 성균진사에 합격하여 이문화(李文和) 이하 동진사 제17인이 되었다. 이불규칙한 이름으로 급제하였으므로 왕이 명하여 한 글자로 합쳐 오늘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밀직제학(密直提學)으로 입사하여 본조 벼슬에서 좌참찬(左參贊)에 이르렀다. 개성 유후(開城留後)에 봉임되었고, 평양백(平壤伯)에 봉해졌다. 청백리(淸白吏)로 선발되었다. 세종(世宗) 신축(辛丑)년에 일흔여덟 살로 사망하였다. 시호는 사간(思簡)이다.
독음
안성광주인문전농사사기자충혜왕갑신생자습之一일삼호천곡우설천생이일목차소고난명소목신우경신이성균진사등이문화방하동진사제십칠인이라난명등제왕명합위일자위금명云이밀직제학입사본조관지기좌참찬개성유후봉평양백선청백리세종신축졸년칠십팔혼시사간
의미
고려 말~조선 초의 관료 安省의 인물로, 광주 출신이다. 한쪽 눈이 어두웠던 까닭에 본래 소목(少目)이라 불렸으나, 경신년(1374 또는 이후) 성균진사 합격 후 왕의 명으로 한 글자로 합쳐 今名을 받았다. 고려에서 관료 생활을 하였으며, 조선成立后 좌참찬까지 올랐다. 개성 유후와 평양백에 봉해지고, 청백리에 선발되었다. 세종 신축년(1541)에 78세로 사망하여 시호 사간을 받았다.
원문
安省光州人文典農事事器子忠惠王甲申生字習之一日三號泉谷又雪川生而一目差少故亂名少目辛禑庚申以成均進士登李文和榜下同進士第十七人以亂名登第王命合為一字為今名云以密直提學入仕本朝官止左參賛開城留後封平壤伯選淸白吏世宗辛丑卒年七十八謚思簡[주:孫彭命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안성 / 安省, confidence=0.95
- place: 광주 / 光州, confidence=0.95
- person: 충혜왕 / 忠惠王, confidence=0.95
- person: 이문화 / 李文和, confidence=0.9
- office: 밀직제학 / 密直提學, confidence=0.9
- office: 좌참찬 / 左參贊, confidence=0.95
- place: 개성유후 / 開城留後, confidence=0.85
- title: 평양백 / 平壤伯, confidence=0.9
- person: 세종 / 世宗, confidence=0.95
- term: 청백리 / 淸白吏, confidence=0.9
- term: 성균진사 / 成均進士, confidence=0.85
- term: 시호 사간 / 謚思簡,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文典農事事 - 문전농사사, 문헌 관련 직위 여부가 불확실
- 字習之一日三號泉谷又雪川 - 하루 세 호를 사용한 것으로 읽으나 구두점 미확인
- 合為一字為今名云 - 今名의 실제 인물이 누구인지 확인 필요
- 孫彭命見下 - 주석 내용으로 원문과 관련 인물 여부 불확실
유만수
- 기사 ID:
20037_006_003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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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3T19:51:40.54255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6&aa15no=006&aa20no=20037_006_0034
한글 번역
유만수는 문화를 밝힌 사람으로, 우부대언이 되었고 총자(다스리는 자)의 자( 字)는득휴이다. 신우(辛禑) 때에 성(成) 이름의璘과 함께 모두 살打我에 맞고 유배되었다. 우리 태조의 위화회군(威化回軍) 때에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저항하게 하였는데, 만수가 먼저 들어가 패하여 돌아왔다. 태조가 말하기를, “만수는 눈은 크지만 빛이 없고 용기가 작은 사람이다. 가면 반드시 패주할 것이다.” 하였는데,果然 그대로 되었다. 무인년에 좌상이 된 방석(芳碩)과 장자 원지(原之)가 와서 부임하였는데, 이무(李茂)가 말하기를, “이도 역시 방석 등의 당이다.” 하고 명하여 목을 베게 하였으며, 원지도 함께 죽였다. 만수를 이상(貳相)으로 강등하였다. 세종 원년에 다시 관직에 복직하였다.
독음
유만수문화인우부대언총자득휴신우시아성명린동피장류아태조위화회군시사제인거전만수선입패환태조왈만수목대무광담소인료필북분북과연무인좌상방석여장자원지래복이무왈차역방석등당명절지병살원지강만수위이상세종원년부관
의미
고려 말기~조선 초기의 관료 유만수의 행적을 기록한 기사이다. 신우왕 때 성린과 함께 처벌받았다가 태조 이성계의 위화회군에 참여하여 적과 싸웠으나 패퇴하였고, 태조는 만수를 눈은 크지만 용기가 없는 사람으로 평하였다. 무인년에는 방석 등이 이무에게 당파세력으로 몰려 처형된 사건에 연루되어 이상으로 강등되었다가, 세종 원년에 복관되었다. 이 기사는 고려 말~조선 건국 초기 권력 갈등과 숙청의 역사적 맥락을 보여준다.
원문
柳曼殊文化人右副代言總子字得休辛禑時與成(名)璘同被杖(流)我太祖威化回軍時使諸人拒戰曼殊先入敗還太祖曰曼殊目大無光膽小人也徃必奔北果然戊寅為左相芳碩與長子原之來赴李茂曰此亦芳碩等黨命斬之并殺原之降曼殊為貳相世宗元年復官[주:孫洙見下原之孫自湄見下玄孫洵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유만수 / 柳曼殊, confidence=0.95
- person: 득휴 / 得休, confidence=0.95
- person: 성린 / 成璘, confidence=0.95
- person: 방석 / 芳碩, confidence=0.95
- person: 원지 / 原之, confidence=0.95
- person: 이무 / 李茂, confidence=0.95
- person: 태조(이자성계) / 太祖, confidence=0.95
- place: 위화회군 / 威化回軍, confidence=0.95
- office: 우부대언 / 右副代言, confidence=0.95
- office: 좌상 / 左相, confidence=0.95
- office: 이상 / 貳相, confidence=0.95
- term: 살打我(형벌) / 杖, confidence=0.85
- term: 유배 / 流,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문화人의 정확한 해석이 불확실하며, 관직명 총자의 의미와 직급 순서가 문헌에 따라 다를 수 있음
조영규
- 기사 ID:
20037_006_003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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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1T17:52:55.47720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6&aa15no=006&aa20no=20037_006_0035
한글 번역
조영규는 태조의 휘하 군사로서, 임신년에 태종의 명을 받들어 조영무 등과 함께 정몽주를 격살하고, 개국에 기여한 공을 세워 2등으로 부원군에 봉해졌다. 관직은 호조전서에서 최顶峰에 이르렀다.
독음
조영규인 태조휘하사 임신에 태종명을 받들어 조영무등과 정몽주를 격살하고 개국공을策划하여 이등에 부원군에 봉해졌으며 관직은 호조전서에서 그쳤다
의미
조영규는 태조 이성계의 휘하 군사 출신으로, 1392년 태조 즉위 직후 태종(정종)의 명을 받아 조영무 등과 함께 권신 정몽주를 암살한 인물이다. 이 공으로 개국功臣 2등에 책록되어 부원군에 봉해졌고, 최종 관직은 호조전서에 이르렀다.
원문
趙英珪人以太祖麾下士壬申承太宗命與趙英茂等撃殺鄭夢周策開國功二等封府院君官止戶曹典書
엔티티 후보
- person: 조영규 / 趙英珪, confidence=0.98
- person: 정몽주 / 鄭夢周, confidence=0.99
- person: 조영무 / 趙英茂, confidence=0.97
- person: 태조 / 太祖, confidence=0.99
- person: 태종 / 太宗, confidence=0.95
- office: 부원군 / 府院君, confidence=0.97
- office: 호조전서 / 戶曹典書,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戶曹典書는 호조전서로 읽으나, 일부 판본에서 戶曹判書(호조판서)로 표기된 가능성도 있음
- 등(二等封)의 구체적 등급 체계와功臣 목록상 위치 미확인
조온
- 기사 ID:
20037_006_003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36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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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6T17:27:40.12935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6&aa15no=006&aa20no=20037_006_0036
한글 번역
조온은 한양 사람이다. 인벽의 아들 환조의 외손자이며,闵渍의 사위였다. 태조 때 창업공로 2등을 세우고 한천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정종 때 사역공 2등, 태종 때 좌명공 4등을 세웠다. 개성백을 역임하고 관직은 보국좌찬성에서 그쳤다. 청렴한 덕과 곧은 절개를 갖추어 세상의 모범이 되었으며, 시호는 양절이다. [주: 증손 조원기는 아래를 참조하고, 현손 조광조는 아래를 참조하며, 아우 조윤은 아래를 참조한다]
독음
조온 한양인 인벽자환조외손 민적서 정책개국공이등 봉한천부원군 정종조책정사공이등 태종조책좌명공사등 녁개성백 관지보국좌찬성 청덕준절 위세해범 시호양절
의미
조선 초대功臣 조온의 행적과 가계를 수록한 기사다. 태조·정종·태종 三朝에 걸쳐 창업·사역·좌명功을 세우며 한천부원군에 봉해지고, 清德峻節로世의楷範이 되었음을 기록한다. 시호는 양절이며, 子孫과 兄弟에 대한 주석으로 가계 정보를 보충한다.
원문
趙溫漢陽人仁璧子桓祖外孫閔漬婿策開國功二等封漢川府院君定宗朝策定社功二等太宗朝策佐命功四等歴開城伯官止輔國左賛成淸德峻節為世楷範謚良節[주:曾孫元紀見下玄孫光祖見下弟肙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조온 / 趙溫, confidence=1.0
- place: 한양 / 漢陽, confidence=1.0
- person: 인벽 / 仁璧, confidence=1.0
- person: 자환(환조) / 子桓, confidence=0.85
- person: 민적 / 閔漬, confidence=1.0
- place: 한천부원군 / 漢川府院君, confidence=1.0
- place: 개성백 / 開城伯, confidence=1.0
- office: 보국좌찬성 / 輔國左賛成, confidence=1.0
- term: 개국공 / 開國功, confidence=1.0
- term: 좌명공 / 佐命功, confidence=1.0
- term: 청덕준절 / 淸德峻節, confidence=1.0
- term: 해범 / 楷範, confidence=1.0
- person: 조원기 / 元紀, confidence=1.0
- person: 조광조 / 光祖, confidence=1.0
- person: 조윤 / 肙,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子桓祖外孫 문맥상 인벽의 아들 이름이 子桓인지, 환조가 인벽의 아들이라는 의미인지 추가 문헌 확인 필요
홍길민
- 기사 ID:
20037_006_003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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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6T17:27:53.22592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6&aa15no=006&aa20no=20037_006_0037
한글 번역
홍길민은 남양 사람이다. 중추원사의 보현자의 서손이요, 경부흥의 손녀 사위이다. 자는 경문이다. 신우(1352)년에 병진(1376)으로 태어나, 음원등과에 급제하였다. 우리 조선에 들어와 개국공을 세워 2등으로 봉해져 남양부원군이 되고, 벼슬은 보국호판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문경이다.
독음
홍길민 남양인 중추원사 보현자 경부흥손서 자 경문 신우병진으로생 음원등과 입아조책개국공 이등봉남양부원군 관지보국호판 흔문경
의미
홍길민은 조선 建國功臣으로 음원등과에 급제하여 중추원사에 오르고, 경부흥의 손녀 사위가 되어 남양부원군에 봉해졌다. 벼슬은 보국호판으로 끝났으며, 시호는 문경이다. 이 기사는 조선 초기功臣의 가계와 관직 이력을 정리한 것이다.
원문
洪吉旼南陽人中樞院事普賢子慶復興孫婿字敬文辛禑丙辰以生貟登科入我朝策開國功二等封南陽府院君官止輔國戶判謚文景[주:子汝方見下八世孫茂續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홍길민 / 洪吉旼, confidence=0.98
- place: 남양 / 南陽, confidence=0.97
- office: 중추원사 / 中樞院事, confidence=0.95
- person: 보현자 / 普賢子, confidence=0.92
- person: 경부흥 / 慶復興, confidence=0.95
- person: 홍무속 / 洪茂續, confidence=0.85
- office: 보국호판 / 輔國戶判, confidence=0.85
- title: 남양부원군 / 南陽府院君, confidence=0.96
- title: 개국功臣 / 開國功臣, confidence=0.94
- term: 자(자호) / 字, confidence=0.98
- term: 시호 / 謚, confidence=0.97
- term: 음원등과 / 貟員登科, confidence=0.8
- term: 손서(딸의 남편) / 孫婿, confidence=0.9
- era: 신우(위계년호) / 辛禑, confidence=0.95
- era: 병진(연호년) / 丙辰, confidence=0.93
- term: 문경(시호) / 文景, confidence=0.96
불확실한 어휘
- 음원등과(貟員登科) - 음관(음리) 등급의 及第로 보는 학자도 있고, 成均館 恩方正額 등과의 약칭으로 보기도 한다.
- 貟 - 현재 한자 ‘員’의 오기이나 원문 그대로 둔다.
유창
- 기사 ID:
20037_006_003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38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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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6&aa15no=006&aa20no=20037_006_0038
한글 번역
유창은 강릉 출신이다. 문군사의 벼슬을 역임했고, 우계천봉자라 칭하였다. 자는 태화이고 호는 선암이다. 원래 이름은 경이었고 자는 만의이었다. 이색길재의 문인이다. 공민왕 치세 신해년(1351)에 진사로 급제하여 조선에 들어와 개국공을 세워 2등 공신에 녹선되었으며, 옥천부원군에 봉해졌다. 관직은 보문각 대제학으로 최상위직에 이르렀으나 그만 세상을 떠났다. 세종 즉위년인 갑자(1450)에 사망하였고 향년 예순아홉이었다. 시호는 문희이다. 상왕 태종 전하의 어필로 공심일시 사자를 내리시고, 종사不舍의 대상에서 제외하지 않도록 명하시었다. 송시열이 이를 찬술하기를,功业은 상나라의 이내와 전설에 견줄만하고, 도덕은 송나라의 정호와 주자에 필적하며, 도는 천년을 관통하고, 혜택은 만세에 이른다 하였다.
독음
유창은 강릉 사람이다. 문군사의 벼슬을 지냈고, 우계천봉자라 하였다. 자는 태화이고, 호는 선암이다. 처음 이름은 경이었고, 자는 만의이었다. 이색길재의 문인이다. 공민왕 신해년에 진사로 급제하여 우리 조선에 들어와 개국공을 정하였으니 이등으로, 옥천부원군에 봉하여졌다. 관직은 보문각 대제학으로 그쳤다. 세종 갑자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향년이 예순아홉이었다. 시호는 문희이다. 상왕 태종 전하의 어필로 공심일시 사자를 내려주시고, 불천으로 삼을 것을 명하시었다. 송시열이 이에 대하여 칭찬하기를, 공로는 상나라의 이내와 전설에 버금가고, 도덕은 송나라의 정호와 주자에 미치며, 도가 천추에 관통하고, 혜택이 만세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의미
유창(1327~1395 또는 1380~1448)은 고려 말 충의사상가 이색길재의 문인으로서 공민왕 치세에 진사로 급제하고, 조선建国에 참여하여 2등 공신에 녹선되었다. 옥천부원군에 봉해지고 보문각 대제학까지 올랐으나 별개의 출생연도 기록이 있어 추가考证이 필요하다. 세종 즉위년(1450)에 사망한 것으로도 기록되며, 시호는 문희이다. 태종 전하가 어필로 공심일시 四자를 내리고 宋時烈이 그 德業을 称賛하였다. 조선 최고学府의 长官으로서 学术과 政治的役割을 모두 수행한 인물이다.
원문
劉敞江陵人文郡事羽溪天鳳子字太和號仙菴初名敬字孟儀李穡吉再門人恭愍王辛亥[주:二十]以進士登科入我朝策開國功二等封玉川府院君官止寶文閣大提學世宗庚子卒年六十九謚文僖上王[주:太宗]御筆書下公心一視四字命不祧宋時烈賛曰功烈商之伊傅道德宋之程朱道貫千秋澤及萬世
엔티티 후보
- person: 유창 / 劉敞, confidence=1.0
- place: 강릉 / 江陵, confidence=1.0
- office: 문군사 / 文郡事, confidence=1.0
- person: 이색 / 李穡, confidence=1.0
- person: 이색길재 / 李穡吉再, confidence=1.0
- person: 공민왕 / 恭愍王, confidence=1.0
- place: 옥천 / 玉川, confidence=1.0
- office: 보문각 대제학 / 寶文閣大提學, confidence=1.0
- person: 세종 / 世宗, confidence=1.0
- person: 태종 / 太宗, confidence=1.0
- person: 송시열 / 宋時烈, confidence=1.0
- person: 이윤 / 伊尹, confidence=1.0
- person: 전설 / 傅說, confidence=1.0
- person: 정호 / 程顥, confidence=1.0
- person: 주희 / 朱熹, confidence=1.0
- term: 공심일시 / 公心一視, confidence=1.0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term: 개국공 / 開國功, confidence=1.0
- term: 불천 / 不祧,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출생 및 사망 연도(원문 1380~1448으로 추정되나 기록상 1327~1395 가능성 있음)
조연
- 기사 ID:
20037_006_003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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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1T17:53:34.41331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6&aa15no=006&aa20no=20037_006_0039
한글 번역
조연은 한양 태생이다. 온의 아우 환조의 외손으로서, 자는汝靜이다. 처음 이름은 卿이고 자는汝卿이었다. 일곱 살에 관荫 제도로 벼슬길에 들어 武事를 익혔으나 과거에 붙지 못했다. 신우(辛禑) 연간 갑인년(1386년)에 진사가 되었고, 아太祖(太祖王)在位하는 임신년(1392년)에 工曹 솔랑이 되어 同知, 工判를 역임하고, 사십,八十六에 보조국으로 승진했으며, 개국공勋 이등을 세워 한평부원군에 봉해졌다.太祖(王)가 등극하여雲劒이 되어 左右를 떠나지 않았고, 승하한 뒤 특별히陵을 모시게 했다. 태종조에吉州按撫使가 되어 큰 무리를剿滅하고威名을 북방에 떨쳤으며,佐命功臣으로册되었다.功勞 四等이었으며, 세종 갑오년에 우상에 오르고 기유년에 사망하니 나이 오십육 岁, 시호는良敬이다.
독음
조연 한양인 온제환조 외손 자여정 초명 경 자여경 칠세 음사 치무사 부제 신우병인 진사 아 태조 임신 위 공조 솔랑 역 동지 공판 승 보조국 책 개국공 이등 봉 한평부원군 태조 등극 위 운겸 불리 좌우 급 승하 특별 명시 능 태종조 이길주 안무사巢 좌거 엄진 북방 책 좌명공 사등 세종 갑오 배 우상 기유 졸 년 오십육 시 양경
의미
조연은 고려 말 조선 초의 관료로서, 일곱 살에 벼슬길에 올라 武事를 익혔으나 과거에 낙방한 뒤 工曹에서 출발하여 同知, 工判를 거쳐 보조국에까지 이르렀다. 개국공勋 二등으로 한평부원군에 봉해지고,太祖의側近으로서雲劒으로 근위했으니,太祖逝去 후에도陵을 모시는 특은을 받았다. 이후 태종 때 吉州按撫使로 반란 세력을平定하고北方의 안정을 도모했으며, 세종 때 우상에升至해 56세로 사망한 高位官僚이다.
원문
趙涓漢陽人溫弟桓祖外孫字汝靜初名卿字汝卿七歲蔭仕治武事不第辛禑丙寅[주:十三]進士我太祖壬申[주:十九]為工曹㧾郞歴同知[주:二十七]工判[주:四十]陞輔國[주:四十八]策開國功二等封漢平府院君太祖登極為雲劒不離左右及昇遐特命侍陵太宗朝以吉州按撫使勦除巨魁威振北方策佐命功四等世宗丙午拜右相己酉卒年五十六謚良敬[주:六世孫公瑾見下九世孫重呂][주:見下五世孫璞見下德隣見下絅見下澄見下應文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조연 / 趙涓, confidence=1.0
- place: 한양 / 漢陽, confidence=1.0
- person: 환조 / 桓祖, confidence=0.8
- person: 태조 / 太袓, confidence=1.0
- place: 길주 / 吉州, confidence=1.0
- office: 공조 / 工曹, confidence=1.0
- office: 동지 / 同知, confidence=1.0
- office: 우상 / 右相, confidence=1.0
- title: 부원군 / 府院君, confidence=1.0
- title: 운겸 / 雲劒, confidence=0.9
- title: 안무사 / 按撫使, confidence=0.9
- person: 공근 / 公瑾, confidence=0.8
- person: 중려 / 重呂,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溫弟 (온제) - ‘온’의 형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나 지명이 아니라 인명이다. 정확히 무슨 관계인지는 온·환 조로 보아 같은 조상 계열인 것으로 추정되나 해석이 불확실함
- 㧾郞 (솔랑) - 工曹属官으로 工曹佐郎의 오기일 가능성이 있으나 확인 필요
강회중
- 기사 ID:
20037_006_0042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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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6&aa15no=006&aa20no=20037_006_0042
한글 번역
강회중은 강회백의 아우이고, 자는 중부이다. 신우(1352)년 임술(1382)년에 전농시 승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옮겼다. 공参 총制를 지냈고 관직은 보문각 직제학에 이르렀다. 현손 강詗은 아래를 보이고, 6세손 강위는 아래를 보인다. 증손 저가 아래를 보인다. 손자 순은 문종(文宗)의 경숙 옹주(敬淑翁主)를 정실로 맞이하여 반성위(班城尉)에 봉해졌으나, 옹주가 사망하자 재혼하였다. 정희왕후(貞熹王后)의 명으로 서원으로 강등되어妾이 되었다. 이후부터 부마는 재혼하지 못하게 되었다.
독음
강회중화백제자중부신우임술이전농시승등과력공참총제관지보문각직제학손자순상문종경숙옹주봉반성위옹주졸재혼이정희왕후명강위예후자차부마부재혼
의미
조선 전기 문신 강회중의 가문과 관료 경력을 수록한 기록이다. 강회중은 전농시 승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공참총제, 보문각 직제학 등을 역임했다. 그의 손자 강순은 문종의 경숙 옹주와 혼인하여 반성위에 봉해졌으나, 옹주 사후 재혼한 죄로 정희왕후의 명으로 서원으로 강등되었다. 이로 인해 이후 부마는 재혼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례가 되었다.
원문
[주:淮仲號通溪与崔瑩]姜淮仲淮伯弟字仲父辛禑壬戌以典農寺[주:討平耽羅太祖卽位屡徵至兵判世宗徵以都㧾制皆不就]丞登科歴工參揔制官止寶文閣直提學[주:玄孫詗見下六世孫渭聘見下曾孫漬見下]孫子順尙文宗敬淑翁主封班城尉翁主卒再娶以貞熹王后命降為妾旡后自此駙馬不得再娶
엔티티 후보
- person: 강회중 / 姜淮仲, confidence=1.0
- person: 강회백 / 淮伯, confidence=1.0
- person: 강순 / 子順, confidence=1.0
- person: 경숙옹주 / 敬淑翁主, confidence=1.0
- person: 문종 / 文宗, confidence=1.0
- person: 정희왕후 / 貞熹王后, confidence=1.0
- office: 전농시 승 / 典農寺丞, confidence=1.0
- office: 공참총제 / 工參揔制, confidence=1.0
- office: 보문각 직제학 / 寶文閣直提學, confidence=1.0
- place: 반성위 / 班城尉, confidence=0.9
- term: 부마 / 駙馬, confidence=1.0
- term: 서원(側室) / 妾,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淮伯弟의 구체적 출처가『국조인물고』는지 확인 필요
- 耽羅太祖卽位屡徵至兵判世宗徵以都㧾制皆不就 주석의 연결 관계
이서
- 기사 ID:
20037_006_004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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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8-02T23:15:44.97596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6&aa15no=006&aa20no=20037_006_0043
한글 번역
이서는 홍주 사람으로, 제학 기종의 아들이며, 자는 맹양, 호는 맹옹이다. 공민왕 정유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우리 조선에 들어와 개국공을 세 등급으로 나누어 공을 세운 사람 중 셋째로 포상하여 안평부원군에 봉하였다. 태종 경진년에 재상으로 들어갔고, 영의정에 이르렀으며, 다시 관직을 내려놓고 기사에 들어갔다. 기에게几杖을 하사받았고, 경인년에 사망하였다. 향년 75세, 시호는 문간이다. 효행이 드러나 表창되었다. (주: 5세손 이종장은 아래를 볼 것)
독음
이서 홍주인 제학 기종자 자맹양 호맹옹 공민왕 정유문과입 아조책개국공 삼등 봉안평부원군 태종 경진입상 지영 재치사 입기사 기几杖 경인 졸 년칠십오 세 음문간 효정
의미
이서는 조선 왕조 개국공신으로 문과에 합격한 인물이다. 태종 때 재상에 나아가 영의정에 이르렀으며, 관직을 내려놓은 뒤에도 기사에 편입되어几杖을 하사받았다. 75세로 사망하고 문간 시호를 받았으며, 효행이 드러나 표창되었다. 5세손 이종장의 기록은 아래를 참고하라는 주석이 있다.
원문
李舒洪州人提學起宗子字孟陽號戆翁恭愍王丁酉文科入我朝策開國功三等封安平府院君太宗庚辰入相至領再致仕入耆社賜几杖庚寅卒年七十五謚文簡孝旌[주:五世孫宗張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서 / 李舒, confidence=0.95
- place: 홍주 / 洪州, confidence=0.9
- person: 기종 / 起宗, confidence=0.9
- person: 맹양 / 孟陽, confidence=0.95
- person: 맹옹 / 戆翁, confidence=0.95
- person: 공민왕 / 恭愍王, confidence=0.95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person: 태종 / 太宗, confidence=0.95
- place: 안평부원군 / 安平府院君, confidence=0.9
- office: 재상 / 相, confidence=0.9
- office: 영 / 領, confidence=0.85
- office: 기사 / 耆社, confidence=0.9
- term: 기장 / 几杖, confidence=0.85
- person: 이종장 / 宗張,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再致仕(재치사의 구체적 시기)
- 孝旌(효정 표창의 구체적 내용)
한상질
- 기사 ID:
20037_006_004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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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4T03:37:04.65072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6&aa15no=006&aa20no=20037_006_0046
한글 번역
한상질은 청주 사람이다. 수자(修子)는 자(字)가 중질이고 호는 죽소이다. 신우(辛禑) 연호의 경신년(庚申年)에 좌랑으로 과거에 급제하였다. 관직은 정당문학에서 그쳤다. 우리 왕조(조선)에 들어와 대제학이 되었으며, 시호는 문열이다. [주: 손자 한명해, 한명연参照 下 ‘삼형(三兄)’] [주: 아우 한문, 아우 한상경参照 下 ‘상덕(尙德)’, 호조참의]
독음
한상질청주인수자자중질호죽소신우경신이좌랑등과관지정당문학입아조위대제학謚문열손명해명연견하삼형제문과제상경견하상덕호조참
의미
한상질(1376~1442)은 청주 출신의 고려 말~조선 초 문신이다. 1384년(신우 연호 경신년)에 좌랑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정당문학까지 승진했고, 조선에 편입된 후 대제학(문관 최고직)을 역임하였다. 사후 시호 문열을 받았다. 손자에 한명해(당상관 ), 한명연이 있고, 아우 한문(문과 급제)과 한상경(호조참의)이 있다.
원문
韓尙質淸州人修子字仲質號竹所辛禑庚申以佐郞登科官止政堂文學入我朝為大提學謚文烈[주:孫明澮明淸見下三兄][주:弟文科弟尙敬見下尙德户參]
엔티티 후보
- person: 한상질 / 韓尚質, confidence=1.0
- person: 청주 / 淸州, confidence=1.0
- person: 중질 / 仲質, confidence=1.0
- person: 죽소 / 竹所, confidence=1.0
- person: 한명해 / 明澮, confidence=1.0
- person: 한명연 / 明淵, confidence=1.0
- person: 한문 / 文科, confidence=1.0
- person: 한상경 / 尙敬, confidence=1.0
- office: 좌랑 / 佐郞, confidence=1.0
- office: 정당문학 / 政堂文學, confidence=1.0
- office: 대제학 / 大提學, confidence=1.0
- office: 호조참의 / 戶參, confidence=1.0
- term: 등과(과거 급제) / 登科, confidence=1.0
- term: 시호 / 謚,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修子(수자의 정확한 의미, 수재와 구별 필요 여부)
- 入我朝(구체적 편입 시점)
이백유
- 기사 ID:
20037_006_004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47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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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1T17:55:27.65108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6&aa15no=006&aa20no=20037_006_0047
한글 번역
이백유는 전주출신으로, 조상 막조(穆祖) 이상의 계통으로 분파 정당문학 문정손의 서자 부사몽자의 아들이었다. 본명은 처음에 재공이라 했다. 이색의 문인이었으며, 공민왕 치세 신해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개국공 三등으로 서용되고 완산부원군에 봉해졌다. 관직은 예판에서 그쳤으며, 시호는 양후이다.
독음
이백유 전주인 막조이상 분파정당문학 문정손 부사몽자 초명재공 이색문인 공민왕 신해 문과책 개국공 삼등 봉완산부원군 관지예판 시양후
의미
조선 전기 문신 이백유(李白由)의 이력이다. 전주 이씨로서 이색의 문인이며, 공민왕 원년(1351) 문과에 합격하여 개국功臣 3등에 녹임되었다. 완산부원군에 봉해지고 예부판서까지 역임했으며, 시호는 양후이다. 본래 이름은 才恭이었다.
원문
李白由全州人穆祖以上分泒政堂文學文挺孫副事蒙子初名才恭李穡門人恭愍王辛亥文科策開國功三等封完山府院君官止禮判謚良厚[주:玄孫穆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백유 / 李白由, confidence=1.0
- place: 전주 / 全州, confidence=1.0
- person: 막조 / 穆祖, confidence=0.9
- person: 문정 / 文挺, confidence=0.9
- person: 몽자 / 蒙子, confidence=0.9
- person: 이색 / 李穡, confidence=1.0
- person: 공민왕 / 恭愍王, confidence=1.0
- year: 신해(1351) / 辛亥, confidence=0.9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개국공 / 開國功, confidence=0.9
- title: 완산부원군 / 完山府院君, confidence=1.0
- office: 예판 / 禮判, confidence=0.9
- term: 시호 / 謚, confidence=0.9
- term: 양후 / 良厚,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分以上分泒政堂文學의 정확한 구조 해석이 불분명하며, 政堂文學이 관직명인지 문학의 한 분야인지 명확하지 않음
- 副事蒙子에서 副事가 관직명인지 계보 관계 표기인지 불확실
- 주석 ‘玄孫穆見下’는 本文과 통합 해석이 원문 편집 과정에서 혼란을 야기한 것으로 보임
한상경
- 기사 ID:
20037_006_004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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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4T03:37:20.10080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6&aa15no=006&aa20no=20037_006_0048
한글 번역
한상경은 한상질의 아우로 자는 숙경이고 호는 신재이다. 신오년과 임술년에 사선서령으로 과거에 합격하였다. 태조의 조선에 들어와 개국 공로 3등으로 서원부원군에 봉해졌다. 태종 명시년에 재상이 되어 영의정에 이르렀다. 왕씨 왕손들이 낮에 誅殺을 당하자, 한상경이 그들을 구출하여 면하게 하였으니, 전조의 은혜에 보답함이었다. 清名雅操로 한 시대에 존경받았다.世宗 기묘년에 사망하니 향년 64세, 시호는 文簡이다. 아들 한자惠는 호를 松齋라 하고, 태종 정유년에 갑과로 급제하여 즉시 正言에 임명되었다. 여러 벼슬을 거쳐 북쪽의 방백이었고, 벼슬은 예조참의에 이르렀다. 清山君을 이어받았고, 영상부원군으로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襄平이다.
독음
한상경 상질 제 자 숙경 호 신재 신오 임술년에 사선서령으로 등과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태조의 조선 개국에 들어가 건국 공로 3등으로 서원부원군에 봉해졌다. 태종 명시년에 재상에 들어갔다가 영의정에 이르렀다. 왕씨 자손들이 낮에誅殺을 당하는데 상경이 그들을 구해 면하게 하여 전조의 은혜에 보답했다. 清名雅操로 한 시대에 존경받았다.世宗 기묘년에 사망하니 향년 64세, 시호는 文簡이다. 아들惠는 호를 松齋라 하고, 태종 정유년에 갑과로 급제하여 즉시 正言에 나아가 벼슬했다. 北伯을 두루 지내고 벼슬은 예조참의에 머물렀다. 清山君을 이어받았고, 영상부원군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襄平이다.
의미
한상경은 조선 建國功臣으로 태조의 조선에 참여하여 공로 3등으로 서원부원군에 봉해진 인물이다. 태종 때 재상이 되어 영의정에 올랐고, 高麗 왕씨 왕손들이 학살당할 위기에 처하자 그들을 구출하여 전조(高麗)에 대한 보은의 표시로 삼았다. 清名雅操로 당대에 존경을 받았으며, 향년 64세에 사망하여 文簡 시호를 받았다. 아들 한자惠는 松齋라는 호를 가지고 태종 정유년 갑과에 합격하여 正言 벼슬을 시작하고 北伯, 예조참의를 역임한 뒤 清山君을 계승하고,死后에 영상부원군에 추증되어 襄平 시호를 받았다. 한자繼美繼禧繼純은 다음에 수록됨.
원문
韓尙敬尙質弟字叔敬號信齋辛禑壬戌以司膳署令登科生壯文壯入我朝策開國功三等封西原府院君太宗丙申入相至領王氏子孫晝被誅殺尙敬救免之以報前朝之恩淸名雅操見重一世世宗癸卯卒年六十四謚文簡子惠號松齋太宗丁酉甲科直拜正言歴北伯官止禮參襲封淸山君贈領相府院君謚襄平[주:子繼美繼禧繼純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한상경, confidence=1.0
- person: 한상질, confidence=1.0
- person: 한자유 / 한자惠, confidence=0.9
- person: 계미 / 繼美, confidence=0.9
- person: 계희 / 繼禧, confidence=0.9
- person: 계순 / 繼純, confidence=0.9
- place: 서원 / 西原, confidence=1.0
- place: 청산 / 淸山, confidence=1.0
- office: 사선서령 / 司膳署令, confidence=1.0
- office: 정언 / 正言, confidence=1.0
- office: 북백 / 北伯, confidence=1.0
- office: 예조참판 / 禮曹參判, confidence=1.0
- office: 영상부원군 / 領相府院君, confidence=1.0
- term: 개국공 / 開國功, confidence=1.0
- term: 갑과 / 甲科, confidence=1.0
- term: 시호 / 謚,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生壯文壯入我朝 - 文壯이 문장과壮年之意인지 명확하지 않음, 王氏子孫晝被誅殺 - 王氏 子孫이 고려 왕족을 지칭하는 것인지 추가 맥락 필요
이천우
- 기사 ID:
20037_006_004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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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6T17:29:25.47256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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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천우는 완풍군 원규의 아들이며 문제의 사위였다. 정종조에 개국공 이등을 서임받고, 선정사에서 공 이등을 서임받으며, 태종조에佐命功 이등을 서임받았다. 관직은 판서에서 그쳤고,死后 대匡輔國으로 증직되고 완산부원군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襄度이고 태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형 이양祐는 선정사에서 공 이등을 서임받고 완원부원군에 봉해졌으며, 관階는 종록에서 그쳤다. 시호는 안소이다.
독음
이천우 완풍군 원규의 아들 문제의 사위 정종조에 개국공 이등을 책정하고 선정사에서 공 이등을 책정하며 태종조에佐命功 이등을 책정하고 관직은 판서에서 그쳤으며 대匡輔國을 증직하고 완산부원군에 추증하고 시호는양도이며 태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형량은祐 선정사에서 공 이등을 책정하고 완원부원군에 봉했으며階는 종록에서 그쳤고 시호는 안소이다.
의미
조선 초대功臣 이천우의 행적을 수록한 기사이다.完豊君 원규의 아들로서 문제의 사위이자 태종 즉위 과정에서 佐命功을 세운功臣이다. 정종과 태종两朝에서 단계적으로 개국공· 선정사功·佐命功 등 세 가지 공을 서임받고, 최종 관직은 판서였으나死后高官으로 추증되어完山부원군에 봉해지고 태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형 이양祐도 역시功臣으로完원부원군에 봉해졌다. 인물 신분과 시대 배경, 관직과 작위 체계를 파악할 수 있는史料이다.
원문
李天祐完豊君元桂[주:桓祖一男謚襄平]子閔霽婿策開國功二等定宗朝策定社功二等太宗朝策佐命功二等官止判書贈大匡輔國完山府院君謚襄度配享太宗廟庭兄良祐策定社功二等封完原府院君階止崇祿謚安昭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천우 / 李天祐, confidence=0.95
- person: 완풍군 원규 / 完豊君元桂, confidence=0.95
- person: 환조 / 桓祖, confidence=0.9
- person: 문제 / 閔霽, confidence=0.95
- person: 양우 / 良祐, confidence=0.9
- person: 태종 / 太宗, confidence=0.95
- person: 정종 / 定宗, confidence=0.95
- place: 완산부원군 / 完山府院君, confidence=0.9
- place: 완원부원군 / 完原府院君, confidence=0.9
- office: 판서 / 判書, confidence=0.95
- term: 개국공 / 開國功, confidence=0.9
- term: 좌명공 / 佐命功, confidence=0.9
- term: 사공 / 社功, confidence=0.85
- term: 종록 / 崇祿,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社功의 정확한 의미와 선정사功의 범위
- 大匡의 정확한 직위 명칭과 品階
- 配享의 구체적 방식과 위치
안순경
- 기사 ID:
20037_006_005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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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안순경의 아들의 자는 현지이고, 호는 죽계이다.恭讓王(공양왕) 기사년에 長興 直長으로 등과하여, 관직은 進賢舘 大提學에 이르렀다.우리 조선에 들어와서 관직은 崇政大夫 戶判에 이르렀다.司憲府 雜端이었을 때, 궁녀가 범죄를 범하자 임금이 大憲 趙璞에게 즉시 죽이라고 명하였다. 순이 말하기를, “헌부는 형관을관이 아니니, 하물며 그 죄를 바로잡지도 않고 죽인다니, 가합니까?” 하였다.璞이 임금의 명을 받아 강하게 재촉하자, 순이 말하기를, “인명은 지중하고, 죽으면 다시 살지 못하니, 갑자기 죽이는 것이 의리에 어찌 합당하겠습니까?” 하였다.官司에 넘겨 심문하라 하니, 임금이 듣고 뉘우치어 그 말을 따랐다.戶判으로 퇴임하여 염천에 거처으니, 나라에大事가 있으면 반드시 물어보았고, 耆社에 들었으며, 일흔 살에 졸하였다. 시호는 靖肅이다.
독음
안순경 공자 자현지 호죽계 공양왕 기사 이장흥 직장 등과 관지 진현관 대제학 입아조 관지 숭정호판 위 사헌 잡단시 궁아 범죄 상명 대헌 조벽 입살지 순일 헌부 비형관 차 부정기죄而来살지 가호 순일 인명 至重 사 불복생 거살지 어의 하为宜 가지유사 구訊 상문 이어 충거지 호판 퇴거 염천 고유대사 필문 입기사 년 칠십 졸 시영 정숙
의미
안순경은 고려말 장흥 직장으로 등과하여 진현관 대제학까지 올랐고, 조선에 들어와 숭정 대부 호판에 이르렀다. 사헌부 잡단 시절 궁녀 범죄 사건에서 임금이 즉시 처형을 명하였으나, 안순경은 헌부가 형관이 아닙니다, 죄를審問하지 않고 죽이는 것은 부당합니다, 인명은 지중하여 죽으면 다시 살 수 없다며官司에 넘겨 심문할 것을 주장하였다. 임금이 이를 받아들여 심문하니, 安純景의 말을 따랐다. 호판으로 퇴임한 뒤 염천에 거처하며 나라의大事에 자문을 받았고, 일흔 살에 졸하여 시호靖肅을 받았다.
원문
安純景恭子字顯之號竹溪恭讓王己巳以長興直長登科官止進賢舘大提學入我朝官止崇政户判為司憲雜端時宮娥犯罪上命大憲趙璞立殺之純曰憲府非刑官且不正其罪而殺之可乎璞以上旨强之純曰人命至重死不復生遽殺之於義何宜付有司鞫訊上聞而悟從之以户判退居衿川國有大事必問入耆社年七十卒謚靖肅[주:子崇善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안순경 / 安純景, confidence=1.0
- person: 현지 / 顯之, confidence=1.0
- person: 조벽 / 趙璞, confidence=1.0
- person: 공양왕 / 恭讓王, confidence=1.0
- place: 장흥 / 長興, confidence=1.0
- place: 염천 / 衿川, confidence=1.0
- office: 직장 / 直長, confidence=1.0
- office: 진현관 대제학 / 進賢舘大提學, confidence=1.0
- office: 숭정 대부 / 崇政大夫, confidence=1.0
- office: 호판 / 戶判, confidence=1.0
- office: 사헌부 / 司憲府, confidence=1.0
- office: 기사 / 耆社, confidence=1.0
- term: 기사 / 己巳, confidence=1.0
- term: 정숙 / 靖肅,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雜端(잡단) - 직함이 정확히 사헌부의 어떤 직책인지 문헌마다 표기가 다를 수 있음
민여익
- 기사 ID:
20037_006_005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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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민여익은 고위 관리의 증손으로 벼슬길에 올라 품의를 지내고 관리 발령을 받았다.恭愍王 즉위년인 기해년에 태어나 갑인년에 16세가 되었다.后来辛禑王的 사마 벼슬을 역임하고, 경신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조선 조정에 들어갔다. 책开个국공으로 삼등 공을 세우고,驪川부원군에 봉해졌다. 벼슬은 대광대제학에서 그쳤다가 기사에사에 들어갔다. 세종왕 원년인 기유년에 사망하여 향년 71세, 시호는 양경이다.
독음
민여익은 증손이다. 품의 벼슬을 지내고, 현자의 아들이었다.恭愍王의 기해년에 태어나 갑인년에 16세였다.辛禑의 사마 벼슬을 역임하고, 경신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우리 조정에 들어갔다. 책开个국공으로 삼등을 기록하고,驪川府院君에 봉해졌다. 벼슬은 대광대제학에 이르러 그쳤으며, 기사사에 들어갔다. 세종 기유년에 사망하여 향년 71세, 시호는 양경이다.
의미
조선 전기 문신 민여익의 약력이다.恭愍王 치세인 기해년에 태어나 경신년 문과에 합격하여 등용되었다. 책开个국공 3등의 공으로驪川부원군에 봉작되고, 벼슬은 대광대제학으로 끝났다. 세종대 연간 사망하여 향년 71세의 나이에 시호 양경을 받았다.
원문
閔汝翼漬曾孫評議玹子恭愍王己亥生甲寅[주:十六]司馬辛禑庚申文科入我朝策開國功三等封驪川府院君官止大匡大提學入耆社世宗己酉卒年七十一謚良敬
엔티티 후보
- person: 민여익 / 閔汝翼, confidence=1.0
- person: 공민왕 / 恭愍王, confidence=1.0
- person: 신우 / 辛禑, confidence=1.0
- person: 세종 / 世宗, confidence=1.0
- place: 영천 / 驪川, confidence=1.0
- office: 품의 / 評議, confidence=1.0
- office: 사마 / 司馬, confidence=1.0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office: 대광대제학 / 大匡大提學, confidence=1.0
- office: 기사사 / 耆社, confidence=1.0
- term: 부원군 / 府院君, confidence=1.0
- term: 개국공 / 開國功, confidence=1.0
- term: 시호 / 謚,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浸泡(증손의 의미인지 확인 필요)
- 玹子(名字의 해석이 불확실)
이종선
- 기사 ID:
20037_006_005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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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종선은 충학(李種儐)의 아우이다. 공민왕 무신년(1356)에 태어나 권근(權近)의 사위가 되었다. 신우(辛禑) 임술년(1382)에 문과에 합격하여 고려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벼슬하여 관직은 지중추원사에 이르렀다. 기사(耆社)에 들어갔으며, 세종 무오년(1438)에 졸하였다. 향년 71세였다.死后 영상의 작위를 증여받고 한산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양경이다. 아들 계전은 아래를 참조. 아들 계렴은 아버지의 녹을 이어받아 세종조에 출사하여 책佐翼의 공으로 2등 공신에 봉해져 한산군이 되었으며, 관직은 찬성에 이르렀다. 시호는 공무이다.
독음
이종선 충학제 공민왕 무신생 권근서 신우 임술 문과입아조 관지지중추원사 입기사 세종 무오 졸 년칠십일 증영상 한산부원군 시양양경 아제전견하 전자계렴 음서 세종조 책좌익공 이등 봉한산군 관지찬성 시공무
의미
고려 말 조선 초의 관료 이종선의 행적을 수록한 기문이다. 공민왕 무신년에 태어나 권근의 사위가 되었고 신우 임술년에 문과에 합격하였다. 조선에서 지중추원사까지 벼슬하고 세종 무오년에 사망하였다. 영상의 작위와 한산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양경이다. 아들 이계렴은 세종조에 출사하여 책佐翼 공신 2등에 봉해지고 한산군이 되었으며, 관직은 찬성에 이르렀다.
원문
李種善鍾學弟恭愍王戊申生權近婿[주:后]辛禑壬戌[주:十五]文科入我朝官止知中樞院事入耆社世宗戊午卒年七十一贈領相韓山府院君謚良景[주:子季甸見下]子季疄蔭仕世祖朝策佐翼功二等封韓山君官止賛成謚恭武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종선 / 李種善, confidence=0.98
- person: 권근 / 權近, confidence=0.97
- person: 이종렴 / 李種儐, confidence=0.95
- person: 이계렴 / 李季疄, confidence=0.96
- person: 이계전 / 李季甸, confidence=0.9
- person: 신우 / 辛禑, confidence=0.95
- place: 한산부원군 / 韓山府院君, confidence=0.95
- place: 기사 / 耆社, confidence=0.92
- office: 지중추원사 / 知中樞院事, confidence=0.97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0.98
- office: 영상 / 領相, confidence=0.96
- office: 찬성 / 賛成, confidence=0.97
- term: 시호 / 謚, confidence=0.96
- term: 음서 / 蔭仕, confidence=0.92
- term: 책좌익공 / 佐翼功, confidence=0.88
불확실한 어휘
- 鍾學弟의 구체적 관계와 충학의 정확한 호칭
- 書字 하자의 위치와 의미
- 2등封의 공신 서임장 등급 명칭
박강생
- 기사 ID:
20037_006_005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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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3T19:53:22.14613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6&aa15no=006&aa20no=20037_006_0055
한글 번역
박강생은 밀양 사람이다. 아버지 밀산군 심忱의 음보로 벼슬에 나아갔다. 자는 유지이고, 호는 라산과 고양이다. 공양왕 경오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집현원 부提학에 이르렀다. 우리 나라 태조가 즉위하자 특별히 호조 전서로 임명했으나赴任하지 아니하였다. 또한功勳을 기록할 때도固辭하여 사직하지 아니하였다. 문雅으로서 이름을 날렸으며, 일찍이排佛論을 지어中外에 이르기까지 모두 명예와功蹟을 남겼다. 세종 임인년에 사망享年 54세이며, 사천 서원에 제향되었다.
독음
박강생 밀양인 음사 밀산군 심자 유지호 라산 고양 윤양왕 경오년 문과 사치 집현 부제학 입아조 태조 특별히 호조 전서에 임명하고 부임하지 아니하며 또 기록된 훈功을固辭固辭하여 사직하지 아니하였으며 문아文雅로서 이름을 날렸으며 늘 著排佛論中外에 이르러 모두声名과 业蹟을 남겼으며 세종 임인년에 사망享年 오십사세 사천 서원에享享향되었다
의미
조선 태조의 신하 박강생의略傳이다. 밀양 출신으로 공양왕 때 문과에 급제하고 집현원 부提학에 이르렀으며, 태조에게 호조 전서로 특채되었으나赴任하지 아니하고功勳도 사양하였다. 문雅之名으로知롭게 되었으며排佛論을 지어国内外에名声을 남겼다. 세종 임인년에 54세로 사망하고 사천 서원에 제향되었다. 子孫 관련 주석이末尾에 첨부되어 있다.
원문
朴剛生密陽人蔭仕密山君忱子字柔之號蘿山耕叟恭讓王庚午文科仕止集賢副提學入我朝太祖特拜户曺典書不就又錄勳固辭以文雅名甞著排佛論中外所至皆有聲績世宗壬寅卒年五十四享沙川書院[주:子審問見下孫仲孫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박강생 / 朴剛生, confidence=1.0
- person: 심 / 忱, confidence=1.0
- person: 공양왕 / 恭讓王, confidence=1.0
- person: 세종 / 世宗, confidence=1.0
- person: 태조 / 太祖, confidence=1.0
- place: 밀양 / 密陽, confidence=1.0
- place: 사천 서원 / 沙川書院, confidence=1.0
- office: 밀산군 / 密山君, confidence=1.0
- office: 호조 전서 / 户曺典書, confidence=0.9
- office: 집현원 부提학 / 集賢副提學, confidence=1.0
- work: 배불론 / 排佛論,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음보 / 蔭仕, confidence=0.9
- term: 자 / 字, confidence=1.0
- term: 호 / 號,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전서(典書) - 고문헌에서 ‘전서’는 관직명 일종으로 볼 수 있으나 정확히 어떤 직위인지 확정적이지 않음
- 음보(蔭仕) - 아버지의 관직으로 인한 특별 任用 제도인데 ‘음사’로도 읽을 수 있음
조박
- 기사 ID:
20037_006_005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57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3T19:53:15.36504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6&aa15no=006&aa20no=20037_006_0057
한글 번역
조박은 평양 출신으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의 字는 사겸이고 호는 우정이다. 신우 연간, 임술년 이전에 별장이 되었고 과거에 합격한 후 집현전 직제학을 역임하였다. 조선에 입조하여 개국功臣에 책록되고 평원군에 봉해졌으며, 관직은 호판에서 그쳤다가 나중에 훈작을 박탈당하였다.
독음
조박 평양인 문과 사겸之子 호 우정 신우 임술 이전 별장 등과력 집현전 직제학 입아조 책개국공신 봉평원군 관지호판 후삭훈
의미
조선 초기 문신 조박의 이력 기사로, 고려 말 신우 연간에 별장으로 등과하여 중앙 관료 길에 올랐고, 조선 건국에 참여하여功臣에 책록된 인물이다. 집현전 직제학을 역임하고 평원군 작위를 받았으나 최종 관직은 호판에 그쳤으며, 이후功臣 작위도 박탈되었다.
원문
趙璞平壤人文科思謙子號雨亭辛禑壬戌以前别將登科歴集賢殿直提學入我朝策開國功臣封平原君官止户判後削勳
엔티티 후보
- person: 조박 / 趙璞, confidence=1.0
- place: 평양 / 平壤, confidence=1.0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person: 사겸 / 思謙, confidence=1.0
- term: 자호 / 子號, confidence=1.0
- term: 우정 / 雨亭, confidence=1.0
- term: 신우 / 辛禑, confidence=1.0
- term: 임술 / 壬戌, confidence=1.0
- office: 별장 / 別將, confidence=1.0
- term: 등과 / 登科, confidence=1.0
- office: 집현전 / 集賢殿, confidence=1.0
- office: 직제학 / 直提學, confidence=1.0
- term: 개국공신 / 開國功臣, confidence=1.0
- title: 평원군 / 平原君, confidence=1.0
- office: 호판 / 戶判,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호판(戶判) - 호부 또는 호房으로 해석 가능하나 조선 초기 직제 체계상 호부판사로 추정
이첨
- 기사 ID:
20037_006_005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59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21T17:58:43.37801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6&aa15no=006&aa20no=20037_006_0059
한글 번역
이첨은 홍주 출신으로, 퓰자(본명)는 취자, 자는 소숙, 호는 쌍매당이다. 공민왕 이복년에 급进士에 합격하고, 무신년에 文壯科에 올랐다. 고려가 멸망한 뒤 우리 조선에 입조하여 知議政府事까지 관직에 올랐다. 한때 간관으로 재임하면서 박상충, 전녹생과 함께 上書하여 이인임을 处斷할 것을 청하였다가, 이로 인해 春川으로 左遷되었다. 이인임을 비호하는 자가 있었다하여 이첨을 受鞫하도록 청한 일이 있었다. 이후 三國史略을 编纂하였으며, 사후 文安이란 시호를 받았다.
독음
이첨은 홍주인이다. 취자, 자는 소숙, 호는 쌍매당이다. 공민왕 을사년에 급제하고, 무신년에 문장에 올라 우리 조정에 들어왔다. 관직은 知議政府事에 이르렀다. 한번은 간관이 되어 박상충, 전녹생과 함께 서병을 올려 이인임을 토씨할 것을 청했다. 유배되어 춘천에 봉住宿守했다. 이인임을 아는 자가 이첨을 옥문할 것을 청했다. 삼국사략을 편수했으며, 시호는 문안이다.
의미
이첨(씨)은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으로, 공민왕 연간에 급제하여 고려灭亡 후 조선에 입조해 知議政府事에 이르렀다. 간관 재임 시 이인임(권신)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春川으로 유배되었다. 이인임을 비호하는 자의 의해 옥문당한的经历도 있었으며,身后 三國史略을 편수한 것으로 알려져 시호는 文安이다.
원문
李詹洪州人趣子字少叔號䨇梅堂恭愍王乙巳進士戊申文壯入我朝官止知議政府事甞為諌官與朴尙衷田祿生上書請誅李仁任謫守春川有阿仁任者請鞫詹修三國史略謚文安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첨 / 李詹, confidence=1.0
- person: 이인임 / 李仁任, confidence=1.0
- person: 박상충 / 朴尙衷, confidence=1.0
- person: 전녹생 / 田祿生, confidence=1.0
- place: 홍주 / 洪州, confidence=1.0
- place: 춘천 / 春川, confidence=1.0
- office: 知議論政府事(참서의) / 知議政府事, confidence=0.85
- office: 간관 / 諌官, confidence=1.0
- work: 삼국사략 / 三國史略, confidence=1.0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term: 문장 / 文壯, confidence=1.0
- term: 공민왕 / 恭愍王, confidence=1.0
- term: 시호 / 謚,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䨇梅堂: ‘쌍매당’(쌍梅堂)이라는 호로 추정되나, 䨇은 ‘쌍’(쌍生)의 古字이나 전거 확인 필요
- 趣子: 퓰자(본명) 표기로 보이나, ‘취자’인지 ‘저자’인지 이음 불확실
- 甞: ‘曾’(이미)的 이음으로 보이나, 확인 필요
- 阿仁任者: ‘阿’는 비호·편질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 李仁任을 비호하는 자로 보이나 원문 전체 맥락 확인 필요
송우
- 기사 ID:
20037_006_006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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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송우는 진천 사람이다. 임자의 아들이며 호는 송정이다. 또 우거암(辛禑)이라는 호도 썼다. 신우(辛禑)년인 병신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우리 나라 조정으로 들어갔다. 예의 벼슬을 지내고 양주관을 역임했으며, 관직은 가선으로 끝났다. 마지막으로 안변부사가 되어 사직했다. [주: 현손 찬이 이에 대한 것을 아래에 보인다]
독음
송우 진천인 임자 호 송정 우거암 신우 병신 문과 입아조 역례의 양주 관지 가선 안변부사 치사 [원주: 현손 찬 견하면 아래]
의미
송우의 가문과 관직 이력을 수록한 짧은 부고문이다. 진천 출신으로 문과에 합격하여 예의, 양주관 등을 역임하고 가선으로 관직 생활을 마감했으며, 안변부사로 마지막 벼슬을 하고 사직했음을 알 수 있다.
원문
宋愚鎭川人琳子號松亭又寓菴辛禑丙辰文科入我朝歴禮議楊州官止嘉善安邉府使致仕[주:玄孫賛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송우 / 宋愚, confidence=1.0
- place: 진천 / 鎭川, confidence=1.0
- person: 임 / 琳, confidence=1.0
- term: 호 / 號, confidence=1.0
- work: 송정 / 松亭, confidence=1.0
- work: 암 / 菴,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예의 / 礼議, confidence=1.0
- office: 양주관 / 楊州官, confidence=1.0
- office: 가선 / 嘉善, confidence=1.0
- office: 안변부사 / 安邉府使, confidence=1.0
- term: 치사 / 致仕, confidence=1.0
- person: 현손 / 玄孫, confidence=1.0
- person: 찬 / 賛, confidence=1.0
이지직
- 기사 ID:
20037_006_006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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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지직은 집에서 자는 바른 평평한 성품을 갖추었다. 신우년(辛禑年)에 태어나 경신년(庚申年)에 전구사승(典厩署丞)으로 과거에 합격하여 우리 조정에 들어왔다. 관직은 형의를 역임하면서 끝났다. 선정백리(淸白吏)에 뽑혔다. 아들 세 명과 손자 여덟 명 모두 문과에 합격했다. [주: 아들 인손은 아래를 볼 것, 현손 영부는 아래를 볼 것, 7세손 윤우와 8세손 도장은 아래를 볼 것]
독음
이지직 집자 자 백평 신우 경신 이 전구사승 등과 입아조 관지형의 선청백리 삼자팔손俱全과문
의미
이지직은 신우년에 태어나 경신년에 전구사승으로 과거에 합격하여 조선에 진출한 인물이다. 형의를 역임하고 선정백리로 뽑혔으며, 아들 세 명과 손자 여덟 명 모두 문과에 합격한 학문적 가문이었다. 후손으로 증손 이영복, 7세손 이윤우, 8세손 이도장이 이어진다.
원문
李之直集子字伯平辛禑庚申以典厩署丞登科入我朝官止刑議選淸白吏三子八孫俱文科[주:子仁孫見下玄孫英符見下七世孫潤雨見下八世孫道長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지직 / 李之直, confidence=1.0
- person: 백평 / 伯平, confidence=1.0
- person: 영부 / 英符, confidence=1.0
- person: 윤우 / 潤雨, confidence=1.0
- person: 도장 / 道長, confidence=1.0
- office: 전구사승 / 典厩署丞, confidence=1.0
- office: 형의 / 刑議, confidence=1.0
- term: 선정백리 / 淸白吏, confidence=1.0
- term: 등과 / 登科,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삼자팔손 / 三子八孫,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조용
- 기사 ID:
20037_006_006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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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조용은 진보(眞寶)이며, 일설에는 염천(醴泉) 출신이라고도 한다. 본래 이름은 중걸(中傑)이었고, 호는 송정(松亭)이다. 정몽주의 문인이다. 공민왕 임금님께癸丑년에 문과에 합격하고, 공양왕 임금님께壬申년에 왕과 이시중(我木祖)이 동맹을 맺을 때, 조용이 사예의 관직으로 그 동맹 서류를起草하였다. 조선에 입조한 뒤 국자감을 스무余年主管하며, 학문이 정밀하고 깊었으며, 사람을 가르치기에 힘쓰고 끊이지 않았다. 어떤 일에 연좌되어 염천으로左遷되었으며, 관직은 예의 판서에서 그쳤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독음
조용진보 주일운역천출신인초명중걸호송정정몽주문인공민왕계축문과공양왕임신왕여이시중주아목조동맹용이사예초기맹서입아조장국자이십여년학문정수회인불권인사謫역천관지지례의판서호문정
의미
조선 초기 문신 조용(號 송정)의 행적을 적은 기사다. 정몽주의 문인으로서 공민왕 연간 문과에 합격하고, 공양왕 연간 이색과 함께 왕의 동맹 서류를 작성하였다. 조선에 입조한 후 国子监을 스무余年主管하며 학술 교육에 힘썼으나, 어떤 죄로 인해 염천으로左遷되어 예의 판서 직에서退官하고 문정 시호를 받았다. 묘년은 기록되지 않았다.
원문
趙庸眞寶[주:一云醴泉]人初名中傑號松亭鄭夢周門人恭愍王癸丑文科恭讓王壬申王與李侍中[주:我木祖]同盟庸以司藝草其盟書入我朝長國子二十餘年學問精邃誨人不倦因事謫醴泉官止禮儀判書謚文貞
엔티티 후보
- person: 조용 / 趙庸, confidence=0.98
- person: 진보 / 眞寶, confidence=0.95
- person: 중걸 / 中傑, confidence=0.95
- person: 송정 / 松亭, confidence=0.98
- person: 정몽주 / 鄭夢周, confidence=0.98
- person: 이시중 / 李侍中, confidence=0.75
- person: 아목조 / 我木祖, confidence=0.7
- place: 염천 / 醴泉, confidence=0.88
- office: 사예 / 司藝, confidence=0.85
- office: 국자 / 國子, confidence=0.88
- office: 예의판서 / 禮儀判書, confidence=0.88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맹서 / 盟書, confidence=0.92
- term: 시호 / 謚,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我木祖(이색의 호칭으로 추정되나確實한 대응 한자 불분명)
- 眞寶出身地 일설 주장이 정확한지 미확인
- 因事謫醴泉의 구체적 죄목 미기재
신유정
- 기사 ID:
20037_006_006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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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신유정은 영산 사람으로, 도원수 한종유의 외손이며, 자는 득지였다. 고려조에 출사하여 지안무사가 되었으며, 태조조에 원종공으로 등용되었다. 여러 번 도와와 진무에 임명되어 공을 세웠고, 왜적이 강원도를 침범하자 태종의 특命으로 가서 토평하였다. 벼슬이강릉兼任兵馬節制使까지 승진하여, 칼을 들고 변방을 지키니武烈이라 일컬었다. 그러나 성품이 불 같아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극히 격렬하게 노여움을 쏟아낸 뒤에야야 멈추었다. 그가 죽자 임금이 묘시를 내렸다.
독음
신유정 영산도 사람이다. 도원수 한종유의 외손이며 자는득지다. 고려조에 출사하여 지안무사로 임명되었다. 태조조에 원종공으로 올라가屡任藩鎭征討하여功을 세우고, 왜구가 강원도를 침노하자 태종이 특명으로 나아가 토평하였다. 근무하여 벼슬이강릉兼任兵馬節制使에 이르렀으며, 장력으로 변방을 지키니 무렬이라 칭송되었다. 그러나 성품이불 같아 사람 을 만나면 반드시 극구 노여움을 풀어낸 뒤에야 그쳤는데, 사망할 때에 임금의 묘시를 내렸다.
의미
신유정은 고려 초기의 무장으로, 왜적의 침입을 평정하고 강릉兼任兵馬節制使로 변방을 지켰으나, 불같은 성격으로 유명했다. 사망 시 임금의 묘시를 받은 것으로 보아功勳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원문
辛有定灵山人都元帥富子韓宗愈外孫字得止仕麗朝止按撫使太祖朝錄原從功屡任藩鎭征討有功倭冠江原道太宗特命徃討平之陞秩拜江陵兼兵馬節制使杖銊鎭邉以武烈称然性火急見人不可必極口怒罵而後止及卒降御輓賜田十五結謚武節[주:子引孫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신유정 / 辛有定, confidence=0.95
- place: 영산 / 靈山, confidence=0.9
- person: 한종유 / 韓宗愈, confidence=0.95
- office: 도원수 / 都元帥, confidence=0.85
- office: 안무사 / 按撫使, confidence=0.85
- place: 강릉 / 江陵, confidence=0.95
- office: 병마절제사 / 兵馬節制使, confidence=0.9
- title: 원종공 / 原從功, confidence=0.85
- place: 강원도 / 江原道,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윤호
- 기사 ID:
20037_006_0066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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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인호는 파평출신으로, 국가를 건국하는 데 공을 세워 2등급 작위를 받았으며, 파평부원군에 봉해졌다. 관직은 숭록으로 끝났고, 시호는 정원이다.
독음
인호 파평인 책개국공 이등 봉파평부원군 관지숭록 시정원
의미
조선 건국 초기功臣 인호의 행적을 기재한 내용이다. 파평 지역 출신으로 개국에 기여하여 2등功田 작위인 파평부원군에 봉해졌고, 관직은 문관 최고위階인 숭록(崇祿)散騎常侍至仕官으로 끝났다.死後 시호는靖原이 부여되었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인호 / 尹虎, confidence=0.95
- place: 파평 / 坡平, confidence=0.92
- office: 숭록 / 崇祿, confidence=0.88
- title: 파평부원군 / 坡平府院君, confidence=0.9
- term: 개국공 / 開國功, confidence=0.92
- term: 시호 / 謚,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파평의 구체적地理位置 및行政구역
- 시호 定遠의 諱字 여부
- 作 등급 구체적 책봉 연유
이민도
- 기사 ID:
20037_006_006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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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민도는 중원에서 와서 상주에 입적되었으며, 개국功臣으로서 2등으로 고산부원군에 봉해졌다.
독음
이민도 자중원출래 사적상주 척개국공 이등 봉고산부원군
의미
이민도는 중국 중원 지역에서 이주하여 고려에 귀화하고, 개국功臣으로 인정받아 2등 공로의 작위인 고산부원군에 봉해진 인물이다. 사적(賜籍)은 귀화 후 왕실에 입적된 신분적 특권을 의미한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민도 / 李敏道, confidence=1.0
- place: 중원 / 中原, confidence=0.9
- place: 상주 / 尙州, confidence=1.0
- office: 부원군 / 府院君, confidence=1.0
김원계
- 기사 ID:
20037_006_006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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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1T18:00:20.19017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6&aa15no=006&aa20no=20037_006_0068
한글 번역
김원계가泥城 만호가 되었다. 태조 丁丑년에 왜구가 선천을 공격하자, 김원계가 군사들을 이끌고支援에 달려가 왜군과 싸웠으나 패하여 포위를 풀고 물러났다. 김원계는 싸움의 기세를 타고追撃하여 적진 한가운데로 뛰어들었으나, 결국 적에게 죽임을 당했다.諫官이 아뢴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만民众의 목숨을 건졌으니 그功勳이 빛나고, 죽은 뒤에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니 관직을追贈하고 사당을 세우며子孫을 기록任用하도록 请求하소서.’ 하고, 그 请求대로 시행하였다.
독음
금원계가泥城 만호가 되었다.太祖丁丑년에 왜구가 선천을 쳤을 때, 원계가 군사들을 이끌고 지원을 가서 왜구와 싸웠으나 패하고 포위를 벗어나고 떠나갔다. 원계가 싸움의 승세를 타고 이를 추격하여 돌격하여 적진 한가운데로 쳐들어가니, 마침내 적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비변관(諫官)이 아뢰기를, ‘한 몸의 죽음을 가지고 만 백성의 목숨으로 바꾼 것이니 그 공功이 밝을 밝이고, 죽어서도不存在하지 않을 것이니 청하여 관직을 증직하고 사당을 세우며 자손을 기록하여 쓸 것을 청하니, 그 청한 바와 같이 시행하였다.’
의미
조선 태조 때 왜구가 선천을侵攻하자, 김원계가泥城 만호로서 군사들을 이끌고救援에 나갔으나戦敗하고 포위를 벗어나려 하였다. 이후 전투의 승세를 타고追撃하듯 적진으로 돌격했으나 적에게 살해되었다. 비변관(諫官)이 상소하여, 김원계의牺牲로萬民의 목숨을 건事한 위대한功勳을 기리며 관직追贈과 사당建立, 子孫厚遇를 요청했고, 그대로 시행되었다.
원문
金原桂為泥城萬户太祖丁丑倭寇宣川原桂率兵赴援倭戰敗觧圍去原桂乘勝逐之突入虜中遂為賊所害諌官上言以為以一身之死易萬民之命其功烈烈死且不杇請贈官立祠敍錄子孫依請施之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원계 / 金原桂, confidence=1.0
- person: 태조 / 太祖, confidence=0.95
- place: 니성 / 泥城, confidence=0.85
- place: 선천 / 宣川, confidence=0.95
- office: 만호 / 萬户, confidence=0.95
- office: 비변관 / 諫官, confidence=0.8
- term: 포위 해제 / 觧圍, confidence=0.9
- term: 적진 돌격 / 突入虜中,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泥城이 현 위치(咸鏡道)인지 다른地区의 별칭인지 불확실
- 觧圍는 解圍로 解의甲骨文 발췌로 보이나 解圍와同一視하여도 무방할지 불확실
- 死且不杇에서 杇가 不朽의 通假인지 최종 확신 어려움
권담
- 기사 ID:
20037_006_006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69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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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1T18:00:27.145598+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6&aa15no=006&aa20no=20037_006_0069
한글 번역
권담의 증손으로 호는 회정이다. 신우왕 치세 경신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우리 나라 조정에 들어왔으며, 관직은 자헌 대부까지 올랐다. 남에게 아름다운 문명을遗留하였다.
독음
권담부증손호회정신우경신문과입아조관치지자원유유문명
의미
권담의 증손으로 호가 회정인 인물이 고려 신우왕 연간 경신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조정에 출사하고 관직은 자헌 대부까지 이르렀으며, 문학적으로 명성이 있었다는 내용이다. 고려말~조선초 문신으로 보인다.
원문
權湛溥曾孫號槐亭辛禑庚申文科入我朝官止資憲松留有文名
엔티티 후보
- person: 권담 / 權湛, confidence=0.95
- person: 회정 / 槐亭, confidence=0.95
- person: 신우 / 辛禑, confidence=0.9
- office: 자헌 / 資憲,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증손 / 曾孫,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松留는 ‘송에게 남겨졌다’는 뜻으로 해석하나, 특정인물인지 불분명
연사종
- 기사 ID:
20037_006_007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70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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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8-02T23:16:57.07616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6&aa15no=006&aa20no=20037_006_0070
한글 번역
연사종은 상산 출생으로 좌윤을 지냈으며, 아들의 이름은 주자였다. 태조와 태종을 섬기고 장군과丞相을 지냈다. 태종조에 책사명공 4등으로 서임되어 곡산부원군에 봉해졌다. 한때 우상 조규와 병판 조말생과 함께 남에게 소송당하여 노비가 관여된 사연이 있었고, 헌부에서審査하여 사실을 알아냈다. 세 사람 모두 중도에서 유배되었다. 시호는 정후이다.
독음
연사종 상산인 좌윤 주자 영사 태조 태종 신체장상 태종조 책사명공 사등 봉곡산부원군상과 우상 조규 병판 조말생受人 상 소송 노비 헌부 안핵득정 삼인 병중도 부처 시 호 정후
의미
연사종은 고려 태조와 태종을 섬긴 장수로, 장상과丞相을 역임하고 곡산부원군에 봉해진 인물이다. 우상 조규와 병판 조말생과 함께 노비 소송에 연루되어 헌부 조사를 받았고, 세 사람 모두 유배되는 처벌을 받았다.死后 시호로 정후를 받았다.
원문
延嗣宗象山人左尹柱子歴事太祖太宗身都將相太宗朝策佐命功四等封谷山府院君甞與右相趙涓兵判趙末生受人相訟奴婢憲府按覈得情三人并中途付處謚靖厚
엔티티 후보
- person: 연사종 / 延嗣宗, confidence=0.95
- person: 주자 / 柱子, confidence=0.75
- place: 상산 / 象山, confidence=0.9
- office: 좌윤 / 左尹, confidence=0.95
- person: 태조 / 太祖, confidence=0.95
- person: 태종 / 太宗, confidence=0.95
- person: 조규 / 趙涓, confidence=0.9
- person: 조말생 / 趙末生, confidence=0.9
- place: 곡산 / 谷山, confidence=0.85
- office: 헌부 / 憲府,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박신
- 기사 ID:
20037_006_007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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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박신은 운봉의 사람으로 호는 초헌이며, 정몽주의 문인이다. 신우조(고려 우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좌찬성에 이르렀다. 포은집(圃隱集)의 발문(서적의 뒷부분에 붙인 글)을 지었고, 시호는惠肅이다.
독음
박신 운봉인 호 초헌 정몽주 문인 신우조文科官 지좌찬성 작포은집발 문혜숙
의미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 박신의 약력이다. 경상도 운봉 출신으로 조선 태조 이성계의 핵심 졸족이자 공론을 담당했던 명언 정몽주의 문인이다. 우왕(辛禑) 치세에 문과에 합격하여 관직을 올렸으나, 이방원 일파와의 거리로 좌찬성에서 관직이 멈췄다. 고려 말 문인 이갑용(포은)의 문집인 포은집에 발문을 썼다. 사망 후惠肅이란 시호를 받았다.
원문
朴信雲峯人號樗軒鄭夢周門人辛禑朝文科官止左賛成作圃隐集跋謚惠肅
엔티티 후보
- person: 박신 / 朴信, confidence=0.98
- place: 운봉 / 雲峯, confidence=0.95
- person: 정몽주 / 鄭夢周, confidence=0.99
- person: 우왕(신우) / 辛禑, confidence=0.97
- office: 문과관 / 文科官, confidence=0.85
- office: 좌찬성 / 左賛成, confidence=0.97
- work: 포은집 / 圃隱集, confidence=0.85
- term: 발문 / 跋, confidence=0.82
- term: 시호 / 謚, confidence=0.95
- term: 혜숙 / 惠肅,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圃隱集(포은집)의 정확한 저자와 시대, 圃隐이 이갑용인지 이색인지,文科官止左賛成의 구두점 위치에 따른 해석 차이
권홍
- 기사 ID:
20037_006_0073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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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권홍은 안동 사람으로, 고려조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검교영상에 이르렀다. 일찍이 문학으로 이름이 났으며, 특히 전서와 예서의 서예에 능했다.献陵의 비문을 전서로 썼고, 성균관의 비문도 썼다. 한성 판을 역임할 때 상서하여 기자의 사당에 비를 세울 것을 청했으므로 임금이 그 말을 따랐다. 남산 기슭에 집을 정하여 두 개의 못을 파고 연을 심었으며, 폭건과 래장을 하고서는 도요자감하여 스스로 편안히 지내니, 소연하기 그지없어 마치 신선과 같았다. 하늘을 받은 나이가 87세요, 기사에 들어갔다.
독음
권홍안동인려조문과관지기교영상조이문한제명유공어전예서헌능비전성균관비판한성시다서청립자기사비상종지甞복재남산수혈쌍지종연폭건려장소요자감연연약神仙향년팔십칠입기사
의미
권홍(고려~조선 초) 인물사로, 안동 출신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검교영상까지 올랐으나 실직은 아니었다. 뛰어난 문인과 서예가로 유명하여献陵과 성균관의 비문을 전서로 썼고, 한성 판임 시에는 기자의 사당에 비를 세우도록 건의하여 채택되었다. 퇴직 후엔 남산 기슭에 연못을 파고 연을 심으며 폭건래장의 도복으로 소요자감하여 신선 같은 은거 생활을 하였고,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원문
權弘安東人麗朝文科官止檢校領相早以文翰著名尤工於篆隷書獻陵碑篆成均舘碑判漢城時上書請立箕子詞碑上從之甞卜宅南山陲鑿䨇池種蓮幅巾藜杖逍遙自適蕭然若神仙享年八十七入耆社
엔티티 후보
- person: 권홍 / 權弘, confidence=0.98
- place: 안동 / 安東, confidence=0.97
- place: 남산 / 南山, confidence=0.92
- office: 검교영상 / 檢校領相, confidence=0.85
- office: 한성판 / 判漢城, confidence=0.9
- work: 헌릉비 / 獻陵碑, confidence=0.95
- work: 성균관비 / 成均舘碑,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7
- term: 폭건 / 幅巾, confidence=0.88
- term: 기사 / 耆社,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기자의 구체적 신원(商의 재상인가를 명확히 알 수 없음), 쌍지(兩個池)의 위치 세부사항
유염
- 기사 ID:
20037_006_0074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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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유염은 진주 출신이다. 밀직사 유혜손의 아들 유자윤의 종제(사촌 동생)이며, 호는 묵재이다. 신우년(1374) 계해(1353)년에 판관으로 과거에 합격하였다. 관직은 이판 대제학에 이르렀고, 청백리 선정되었으며, 시호는 문간이다. [주:5대손 유순선을 아래의 유염 조목 아래 참조. 유염의 아우 유瑱이 있고, 7대손 유舜翼이 있다.]
독음
유염 진주인 밀직사혜손의 아들 자윤의 종제호묵재 신우 계해에 판관으로 등과하고 관직은 이판 대제학에 이르렀으며 선청백리로 뽑혀 시호를 문간이라 함[주:5세손 순善 아래琰의 아우瑱7세손舜翼을 볼지어다]
의미
조선 초기 문신 유염의 행적을 적은 기사로, 진주 출신으로 과거에 합격하여 이판 대제학까지 승진하고 청백리 선정 및 문간 시호를 받은 인물임을 보여준다. 유씨 가문의 계보 정보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원문
柳琰晋州人密直使蕙孫子珣從弟號默齋辛禑癸亥以判官登科官止吏判大提學選淸白吏謚文簡[주:五世孫順善見下琰弟瑱七世孫舜翼]
엔티티 후보
- person: 유염 / 柳琰, confidence=1.0
- person: 유혜손 / 惠孫, confidence=1.0
- person: 유자윤 / 子珣, confidence=1.0
- person: 유瑱 / 瑱, confidence=1.0
- person: 유순익 / 舜翼, confidence=1.0
- place: 진주 / 晋州, confidence=1.0
- office: 밀직사 / 密直使, confidence=1.0
- office: 판관 / 判官, confidence=1.0
- office: 이판 / 吏判, confidence=1.0
- office: 대제학 / 大提學, confidence=1.0
- term: 종제 / 從弟, confidence=1.0
- term: 묵재 / 號默齋, confidence=1.0
- term: 등과 / 登科, confidence=1.0
- term: 청백리 / 淸白吏, confidence=1.0
- term: 문간 / 謚文簡, confidence=1.0
노숭
- 기사 ID:
20037_006_0075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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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盧嵩은 광주의 출신으로, 자(字)는 中甫이고, 호(號)는 桑村이다. 공민왕 즉위 연도인 을사년(1355)에 문과에 급제하여 조정에仕관하고, 벼슬은 右政丞으로 끝났다. 서사에 참여하여 기층하다가 향년 78세에 사망하였으며, 시호는 景平이다.
독음
노숭은 광주인이요, 자는 중보이며, 호는 상촌이다. 공민왕 을사(1355)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우리 나라(조선)에 들어와 벼슬은 우정승에 이르렀으며, 서사에 들어갔다. 향년 칠십팔세에 사망하고, 시호는 경평이다.
의미
조선 초기의 관료 盧嵩의 행적을 수록한 인물 전기 기사이다. 본래 고려 공민왕대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고려 멸망 후 조선에 다시 출사하여 우정승에 이르렀으며, 서사에 참여하고 78세로 사망한 인물이다. 8세손守愼의 기사가 아래에 수록되어 있다는 주석이 덧붙여져 있다.
원문
盧嵩光州人字中甫號桑村恭愍王乙巳文科入我朝官止右政丞入耆社年七十八卒謚景平[주:八世孫守愼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노숭 / 盧嵩, confidence=1.0
- person: 수신 / 守愼, confidence=1.0
- place: 광주 / 光州, confidence=1.0
- office: 우정승 / 右政丞, confidence=1.0
- office: 서사 / 耆社, confidence=1.0
- term: 자 / 字, confidence=1.0
- term: 호 / 號,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시호 / 謚, confidence=1.0
- term: 조선 출사 / 入我朝,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光州人이 고려 말 광주(현광주)인지, 역사적 광주 지역인지
공부
- 기사 ID:
20037_006_0077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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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공부는 원주출신으로 살중 공소의 아들이다. [혹자는 공소의 손자라 하고, 집현학사 당자소이며, 공자의 53세손이다. 원각로로서 올라와 원장공주를 수행하여 공민왕의 비가 되었다가 와서 봉림원백에 봉해졌다.] 자는 백공, 호는 어촌이며, 신우 갑진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이 보문각 제학에 이르렀고, 조선에 들어와서는 한성윤으로 관직이 끝났다. 예서에 능숙하여 서명이 필원에 기록되었다. [후손이 없고, 종증손 서윤린은 아래를 참고할 것]
독음
공부 창원인 살중 소자 [혹자는 소손이라 하며, 집현학사 당자소, 공자의 53세손, 원각로로 올라와서 원장공주를 수행하여 공민왕 비가 되고, 와서 봉림원백에 봉해짐] 자는 백공 호는 어촌, 신우 갑진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이 보문각 제학에 이르렀고, 우리 조선에 들어와서 관직이 한성윤에 그쳤으며, 예서에 능하여 서명이 필원에 기재됨 [후손이 없으며, 종증손 서윤린은 아래를 참조]
의미
고려 말 조선 초의 인물 공부에 대한 기록이다. 공자는 공자의 53세손으로, 고려 말 원종의 조력으로 올라와 원장공주를 수행하여 공민왕의 비가 된 인물이다. 신우 갑진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보문각 제학까지 올랐으며, 조선 개국 후 한성윤으로 관직이 끝났다. 서예에 능해 필원에 이름이 전해졌다. 후손이 없고 종증손 서윤린이 언급된다.
원문
孔俯昌原人侍中紹子[주:或云紹孫集賢學士帑子紹孔子五十三世孫以元閣老陪魯元長公主為恭愍王妃而來封檜原伯]字伯恭號漁村辛禑丙辰登科官至寶文閣提學入我朝官止漢城尹善隷書名入筆苑[주:無后從曾孫瑞麟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공부 / 孔俯, confidence=1.0
- person: 공자 / 孔子, confidence=1.0
- person: 서윤린 / 瑞麟, confidence=1.0
- place: 창원 / 昌原, confidence=0.7
- place: 회원 / 檜原, confidence=0.9
- office: 살중 / 侍中, confidence=1.0
- office: 보문각 제학 / 寶文閣提學, confidence=1.0
- office: 한성윤 / 漢城尹, confidence=1.0
- office: 집현학사 / 集賢學士, confidence=1.0
- work: 필원 / 筆苑, confidence=1.0
- term: 신우 갑진 / 辛禑丙辰, confidence=0.8
- term: 등과 / 登科, confidence=1.0
- term: 예서 / 隷書,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살중
- 원주출신인지 확인 필요
- 봉림원백의 정확한 위치
- 공민왕 비로서 고려에 남았는지 조선에 왔는지
김승주
- 기사 ID:
20037_006_0078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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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김승집은 순천 출신으로, 목사가 되었다. 유정의 아들이며, 처음 이름은 을보(乙寶)이고 호는 월담(月潭)이다. 태조(太祖)가 한발이 들었을 때 기도를 명하였는데, 기도를 올리자 즉시 비가 내렸다. 승집에게 특별히 지금의 이름을 하사하였다. 아버지의 은전을 입어 태조와 태종朝에 벼슬하였다. 공로와 청백으로 곧은 행실을 드러냈다. 태종朝의 책에 원훈(佐命功臣) 사등(四等)에 기록되었고, 평양부원군(平陽府院君)에 봉해졌다. 관직은 대광(大匡)에 머물렀으며, 시호는 양경(襄景)이다. [주: 6세손 여어(汝岉)는 아래의 흥국(興國)조, 윤안(允安)은 아래를 볼 것]
독음
김승집 순천인목사 유정자 초명 을보호 월담 태조 우한명 도 기도철우 승집특사 금명 음사 태조 태종조로 염로청백착 태종조책좌명공 사등 봉 평양부원군 관지 대광 예 양경
의미
김승집은 조선 태조와 태종대에 벼슬한 인물로, 한발 피해 시 기도를 올리자 즉시 비가 내리자 특별히 이름을 하사받았다. 태종조佐命功臣 四等으로 평양부원군에 봉해졌으며, 관직은 대광에 이르렀다. 6세손 여어는 흥국조에, 윤안도 후대에 기록되어 있다.
원문
金承霔順天人牧使惟精子初名乙寶號月潭太祖遇旱命禱禱輒雨霔特賜今名蔭仕太祖太宗朝以勳勞淸白著太宗朝策佐命功四等封平陽府院君官止大匡謚襄景[주:六世孫汝岉見下興國見下允安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승집 / 金承霔, confidence=0.95
- person: 유정 / 惟精, confidence=0.9
- person: 을보 / 乙寶, confidence=0.95
- place: 순천 / 順天, confidence=0.95
- office: 목사 / 牧使, confidence=0.95
- place: 평양부원군 / 平陽府院君, confidence=0.95
- person: 여어 / 汝岉, confidence=0.9
- person: 윤안 / 允安, confidence=0.9
- term: 대광 / 大匡, confidence=0.9
- term: 좌명공신 / 佐命功臣, confidence=0.9
- term: 기도하자마자 비가 옴 / 禱輒雨,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음사(蔭仕) - 아버지의 공으로 벼슬길에 올랐다는 해석이 유력하나 정확한 현대어 대응어 불분명
- 특사(特賜) - 특별히 하사받았다는 의미이나 문맥상 금명(今名)과 연결된 구체적 의미 추가 확인 필요
최운해
- 기사 ID:
20037_006_0079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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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최운하는 설곡출신으로 나라 초기의 명장이었으며, 관직은 서면도순문사에서 승서부사에 이르렀다. [주: 아들 윤덕은 아래를 참조]
독음
최운해 설곡인 위국초 명장관 지서업면도순문사 승서부사[주:자윤덕견하]
의미
최운해는 경상도 양산 부근인 설곡출신으로 나라 초기(고려 말~조선 초 추정)의 명장이었다. 관직은 서면도순문사에서 승서부사에 올랐으며, 아들 윤덕도 관련 기록이 있다.
원문
崔雲海歙谷人為國初名將官止西业靣都巡問使承樞府事[주:子潤德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최운해 / 崔雲海, confidence=0.95
- place: 설곡 / 歙谷, confidence=0.85
- office: 서면도순문사 / 西面都巡問使, confidence=0.8
- office: 승서부사 / 樞府事, confidence=0.9
- person: 윤덕 / 潤德,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西业靣은 西面의 오기로 추정. 서면은 군현 아래 행정단위
정수홍
- 기사 ID:
20037_006_0080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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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정수홍은 동래 별파판서이고, 가종자(宗子)의 자(字)는 역백이며, 호는枫천이다. 공양조朝天에 과거에 급제하여 우리 조정에 진출하였으며, 관직은 대사헌에 이르렀다. 문장에 능하였다.
독음
정수홍 동채별파판서가종자 자역백 호枫천 공양조 등과 입조 관至 대사헌 능문장
의미
조선 시대 인물 정수홍의略傳이다. 호는枫천이고, 공양조 시절 과거에 급제한 후 대사헌까지 관직에 올랐으며, 문장에 뛰어났다. 동래 별파판서를 역임한 것으로 보이는데, 동래 부사의屬官이었을 듯하다.
원문
鄭守弘東菜别泒判書可宗子字毅伯號楓川恭讓朝登科入我朝官止大司憲能文章[주:玄孫彦信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정수홍 / 鄭守弘, confidence=1.0
- person: 역백 / 毅伯, confidence=0.9
- person: 枫천 / 楓川, confidence=0.9
- place: 동래 / 東萊, confidence=0.8
- office: 별파판서 / 別派判書, confidence=0.6
- office: 대사헌 / 大司憲, confidence=0.95
- term: 등과 / 登科, confidence=0.95
- term: 자 / 字, confidence=1.0
- term: 호 / 號, confidence=1.0
- person: 언신 / 彦信,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여칭
- 기사 ID:
20037_006_0081
- 권책: 기년편고[紀年便攷v6]
- 권책 ID:
kh2_je_a_vsu_20037_006
- 면/쪽: 0081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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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21T18:03:16.15358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037_006&aa15no=006&aa20no=20037_006_0081
한글 번역
여칭은 함양사람이다. 자는 중부, 호는 추곡이다. 고려조에 과거에 급제하여 조선에 들어와 벼슬하니 관직이 지정부사에 머물렀다. 시호는 정평이다. [주: 8세손 유길과裕吉은 아래를 참조할 것]
독음
여칭 함양인 자 중부 호 추곡려조등(과)입아조관 지지정정부사 시호 정평
의미
고려 출신으로서 과거에 급제하고 조선에 벼슬한 인물 여칭의 기록이다. 함양출신이며 자는 중부, 호는 추곡이다. 조선에서 지정부사에 이르렀고 시호는 정평이다. 8세손 유길과裕吉이 있으며 이후에 그 기록이 등장한다.
원문
呂稱咸陽人字仲夫號樗谷麗朝登(科)入我朝官止知政府事謚靖平[주:八世孫祐吉裕吉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여칭 / 呂稱, confidence=1.0
- person: 중부 / 仲夫, confidence=1.0
- person: 추곡 / 樗谷, confidence=1.0
- place: 함양 / 咸陽, confidence=1.0
- office: 지정부사 / 知政府事, confidence=1.0
- term: 등과 / 登科, confidence=1.0
- term: 시호 / 謚, confidence=1.0
- person: 유길 / 祐吉, confidence=0.9
- person: 유길 / 裕吉,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裕吉의 한자 표기가 명확하지 않고,麗朝登(科)의斷句와 해석(麗조 등과 여부를 고려조 등과로 볼지)에 다소 불확실함이 있다.